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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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한아

정한아

1982년 서울 출생. 2005년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달의 바다』가 있음. hanah1419@hanmail.net

 

 

아프리카

 

 

내 주머니 속에는 아프리카가 들어 있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만져본다. 사장 할머니에게 혼이 났을 때, 몸이 아플 때, 언니들과 다투었을 때, 나쁜 손님을 겪었을 때. 나는 가게 뒷골목으로 빠져나와서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에 쪼그려앉는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을 만져본다. 뜨거운 햇살과 돌연변이 새들, 초원의 야생동물들이 나를 콕 콕, 찌른다. 그러면 웃음이 난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어려서부터 나는 동물을 좋아했다. 생명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하마와 치타, 뱀 같은 동물에 특히 사족을 못 썼다. 인간과는 친해질 가망이 없는 것들, 손을 내밀면 덥석 물어버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쪽에 언제나 마음이 더 끌렸다. 그들이 그러는 게 사실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런 동물과 마주치게 되면 ‘이건 오해야’ 하면서 한발 더 다가서지 않고 돌아서서 못 본 척해줄 것이다. ‘나는 널 이해해.’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면서. 내가 보기엔 그런 게 진짜 존중이다.

내 주변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언니들이 많았지만 오래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어린 동물들이 적응하기에 가게생활은 너무 불규칙적이기 때문이다. 대개가 변덕스러운 주인의 생활패턴을 견디지 못하고 병에 걸리거나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상상 속으로만 생각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동물 한마리가 몰래 내 방에 숨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늦은 밤에 몰려오는 피로나 외로움 같은 것도 제법 견뎌진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리면 눈을 뜨지 않고 속삭인다.

“잘 자.”

 

가게에서 제일 조용한 시간은 아침나절이다. 웬만해선 다들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장 할머니가 부엌과 거실을 들락거리는 게 전부다. 따로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아침 시간에는 뭐든지 말갛게. 말소리도 행동도, 말갛게. 그것만은 서로가 지켜줘야 하는 부분이다. 밤새 손님을 겪은 언니들에겐 헐떡거림, 침, 그리고 이리저리 쓸린 몸뚱이만 남아 있다. 그들에게는 지난밤을 희석시킬 고요가 필요하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혼자 유령처럼 가게를 떠돌아다니곤 한다. 방문을 열면 언니들이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니들은 입을 벌리고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드러누워 있다. 낙천적인 아가씨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언니들의 발치에 엎드려서 만화책을 읽는다.

나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책을 여기에 와서 읽었다. 어렸을 때 내가 자란 곳은 책 같은 것을 읽기에 문제가 많았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3, 4년쯤 후에 집을 떠나버렸다고 하니 그녀에 대한 기억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달에 한두번 음식과 인형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것이라곤 내 숨소리뿐인 집이었다.

나는 혼자서 냉동음식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사팔뜨기가 될 정도로 현관문만 바라보던 날도 있었고, 온종일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길거리를 내려다보던 날도 있었다. 내 기다림을 병에 담으면 수천번도 더 그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매번 아버지를 용서했다.

아버지는 내 존재를 보류의 상태로 둔 채 새 가정을 이루었고, 그후로는 나를 등장시킬 타이밍을 영영 놓쳐버렸다. 우리 관계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떠난 것은 열한살이 되던 해였다. 집을 나오던 날 나는 아버지의 등에 유릿조각을 박아넣었다. 등을 찔린 순간 아버지는 무척 놀랐지만, 곧 안심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쓰러진 아버지의 옷을 뒤져 지갑을 꺼내 나왔다. 아버지는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는 침착하게 신발을 신고, 멀리멀리 걸어갔다.

나는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남자애를 따라갔다. 그애는 나를 자기 무리에 소개했는데 한눈에 봐도 모두들 가진 게 없는 아이들이었다. 싸구려옷을 입고, 지저분한 얼굴에, 눈동자에만 힘이 들어간 그 아이들은 인상을 쓰듯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를 받아들였다.

무리와 떠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익혔다. 더이상 혼자 밥을 해먹는 일은 없었지만, 남자애들이 달라붙어 귀찮게 굴 때가 많았다. 임신한 여자애들은 가차없이 버려졌다. 나는 아랫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다가 팡, 터지는 악몽을 꾸곤 했다.

이곳에 올 때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제 그건 아주 옛날의 일처럼 희미해졌다. 나는 괴로웠던 기억은 잘 잊어버린다. 생각나는 건 낄낄대며 웃었던 일들, 신나게 소리를 질렀던 일들뿐이다. 이를테면 남자애들과 바이크를 타고 지구 한끝에서 한끝까지 날아다니던 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고개를 젖혀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세상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지고 싶지는 않아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정오가 지나면 언니들은 방문을 열고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온다. 화장기 없이 커다란 파자마를 입은 언니들은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조금 쑥스러워하며 소파에 앉는다.

“커피 좀.”

미연 언니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한다. 옆에서 수진 언니도 비시식 웃으며 손을 든다. 나는 막내답게 날렵한 자세로 일어나서 물을 끓인다.

언니들은 속이 쓰리다고 난리를 피우면서도 눈을 뜨면 커피부터 찾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입 안에 머금고 눈을 감은 언니들의 얼굴은 꽤 어려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건 언니들의 나이에 딱 맞는 모습이다. 뽀얀 피부에 스물서너살 된 아가씨들의 모습. 둘러앉아서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나면 언니들의 눈동자도 차츰 생기를 띤다.

“오늘 옆집 가게 정리한다던데. 어떻게 돼가나 모르겠네.”

수진 언니는 창문의 커튼을 젖히고 옆집을 내다본다. 옆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장이 어제 이삿짐쎈터 불러와서 전부 비웠대. 애들 몸만 나가면 될걸.”

미연 언니가 뜨거운 커피를 훌훌 마시면서 말한다.

폐업을 신고한 가게들의 벽에는 일제히 빨간색 철거 표시가 붙었다. 이제 골목 안에 남은 가게는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남은 가게들은 업주들의 보상금 합의가 될 때까지 시위영업을 하고 있다. 구청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 건 우리 가게뿐이다. 사장 할머니는 영업금지 명령을 대책없이 무시하고 있다.

골목 곳곳에선 이미 공사를 시작해서, 한낮부터 여기저기 건물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가게가 전부 철거되면 주민들을 위한 잔디공원이 건설된다고 한다. 이 골목에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조깅을 하고 줄넘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다른 가게들도 금방 다 정리되겠지?”

수진 언니가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자리만 옮기는 건데 뭐.”

미연 언니는 큰 소리로 말하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러면서도 쉽게 가게를 떠나지 못하는 걸 보면 언니도 두려워하는 게 분명하다. 여길 떠나서 갈 곳이라고는 뻔히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열명이 넘던 언니들은 차례차례 가게를 떠났다. 이제 남은 사람은 수진 언니와 미연 언니 그리고 나뿐이다. 가게에서 제일 겁이 많던 세 사람만 남은 셈이다.

 

사장 할머니는 점심때가 되면 낡은 자전거를 타고 가게로 나온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점심을 짓고 가게 청소도 한다. 혼자서 꾸물꾸물 일을 하다가, 구청 사람들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가버린다.

“노인네가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이때껏 아가씨들 이용해서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말이야!”

구청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할머니는 코웃음을 친다.

“말은 쉽다, 이놈들아.”

언젠가 할머니는 말했다. 자기는 한평생 스스로에게 속았기 때문에 이제 누구에게도 속지 않는다고. 사장 할머니는 일생을 오로지 아들만을 위해서 살았지만 그 아들이란 사람은 할머니가 가진 걸 전부 빼돌린 뒤에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는 어머니를 수치스러워했다. 이제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이 가게 하나뿐이다.

“내가 이 장사를 접으면 하루아침에 책방을 할 거냐, 식당을 차릴 거냐? 살기는 계속 살아야 되고, 나나 얘들이나 어디로 흘러갈지는 안 봐도 뻔한 기다.”

할머니 말대로, 골목을 떠난 업주들은 전부 불법 안마시술소나 마싸지업소를 차렸다. 언니들 역시 단체이동이라도 하듯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골목 철거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언니들을 보면 한가지는 분명하게 알게 된다.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삶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환각제에 흠뻑 취해 있었다. 바이크 타는 애들과 어울려 손대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내 진행속도가 제일 빨랐다. 증세가 심해지자 아무데서나 구역질을 했고 경련에 시달렸다. 걸핏하면 피를 흘리고 쓰러졌기 때문에 친구라고 부르던 애들도 전부 내 곁을 떠났다. 약에 취해서 새벽 거리를 헤매다 보면 몸이 붕붕 떠올라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늘로 날아가는 대신 길바닥에 고꾸라진 나는 청소년보호소로 보내졌다. 당시에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다. 축 늘어진 몸으로 정신을 잃은 나는 몇달간 잠만 잤다. 보호소의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까무룩 잠드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열에 들뜬 밤이면 스스로의 체온에 깜짝깜짝 놀라서 깨어나곤 했다.

깨끗한 침대에 누워서 과일주스를 마셔댄 덕분인지 점차 내 몸은 기운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주먹을 쥘 힘도 없었는데,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젊음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계절이 지나자 한 발로도 땅 위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퇴소 후 보내진 자립쎈터에서 나는 채 보름도 견디지 못했다. 본디 참을성이 없는 성격인데다 사람들의 목적 없는 호의를 믿지도 못했던 것이다. 거리로 나오자 찢어진 비닐봉지처럼 내쳐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겨울을 버티다가 이 골목으로 들어왔을 땐 집에라도 돌아온 기분이었다.

가게에 온 첫날, 사장 할머니는 내게 작은 방을 내주었다. 나무로 된 탁자와 솜이불 두 채가 들어 있는 방이었다.

“이제 막 보일러 넣었으니까 따뜻해질 거다.”

사장 할머니가 방에서 나가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책이 몇권 있었다. 그중 커다란 책이 삐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책을 끌어당겼다.

선명한 노란색 표지의 그 책은 아프리카에 관한 것이었다. 책장을 열자 지원아,까지 쓰고 만 메모가 보였다. 나는 점퍼도 벗지 않고 무릎에 기대 책을 읽었다.

‘아프리카 땅이 건조해진 것은 2500만년 전의 일이다. 대륙판이 갈라지면서 갑자기 기후에 변화가 생겼고 어느날부터 타는 듯한 고온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기를 멈추자 아프리카 땅에 남은 생물들은 진화하거나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를 택한 동물들이 변화한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럽고, 조금 외로워 보였다. 나는 수증기가 입 안에 고이도록 온종일 고개를 숙이고 사는 얼룩무늬 원숭이를 바라보았다. ‘곤란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구나.’ 점차 공기가 덥혀지자, 나는 옷을 벗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페이지마다 실린 정글과 사막, 싸바나와 산맥의 사진이 실제처럼 생생했다. 나는 먼 하늘에서 찍은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땅은 꼭 심장의 모양을 닮아 있었다.

 

가게의 불이 모두 환하게 켜지면 그때부터는 누구든지 안으로 들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언니들과 나는 홀에 나가서 앉아 있기도 하고 거리에서 손님을 데려오기도 한다. 각자 일한 만큼 돈을 벌기 때문에 수입은 차이가 크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장 할머니는 유난히 공들여 유리창을 닦는다. 할머니는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을수록 좋은 손님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나는 수진 언니와 옥수수를 뜯어먹으며 사장 할머니가 뽀드득뽀드득 유리창 닦는 것을 바라본다. 골목의 가게들이 점점 비어가고 있으니 그것은 할머니로서도 얼마 남지 않은 의식이다.

나에게도 사장 할머니의 유리창처럼 매일 닦고 또 닦는 계획이 있다. 언젠가 옷을 파는 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부드러운 천으로 된 원피스와 티셔츠를 한가득 걸어놓고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입구에는 구슬로 엮은 모빌을 걸어놓고 환한 조명도 곳곳에 달아둘 것이다. 가게의 평수, 인테리어, 벽지 색깔, 마네킹의 포즈까지 수도 없이 그림을 그려봐서 옷걸이 몇개가 어디에 걸려야 하는지도 정확히 떠올릴 수 있다.

반복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 손님을 받는 일이 괴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아주 뜨거운 징검다리처럼 여겨진다. 맨발로 그것들을 딛고 가는 건 몹시 힘든 일이지만 다리라는 걸 잊지 않으면 된다. ‘저쪽 뭍에 닿을 때까지만’이라고.

“솔이 왔네.”

귀가 밝은 수진 언니가 가게 구석에서 보지도 않고 중얼거린다. 과연 조금씩 음악소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길 끝을 바라본다. 멀리서부터 흔들흔들 리어카를 끌고 오는 솔이 보인다.

각설이 엿장수인 솔은 일주일에 세번씩 이 골목에 온다. 누구 하나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없지만 대부분 그의 체격을 보면 이 사람은 왕년에 건달짓을 했겠군, 추측하게 된다. 피부색이 어두운데다 작은 눈이 길게 찢어져서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솔은 아주 예술적인 화장을 하고 각설이 춤을 춘다. 하늘색 물감으로 그린 탱글탱글한 콧물들이 진짜처럼 실감난다. 그 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찢어진 천조각들이 같이 흔들린다. 나는 지칠 때마다 유리창에 기대서 그 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현란한 몸짓에 정신을 팔다가 돌아서면 공터처럼 마음이 텅 비어버린다. 쓸데없이 복잡한 것보다는 그 편이 확실히 낫다. 눈이 마주치면, 그는 내게 윙크를 해준다.

솔은 커다란 구형 카세트를 리어카에 싣고 골목 사이를 누빈다. 그의 음악은 가게 안에서도 다 들릴 만큼 시끄럽지만 사장 할머니는 그게 장사에 도움이 된다며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 그 요란한 트로트 메들리들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빠르고 단순하게 흐른다. 그나마 솔이 있어서 골목의 빈자리가 메워지는 느낌이다. 엿을 녹여 먹으며 사랑의 트위스트 같은 노래에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으면 손님도 금세 더 많이 찾아온다.

 

찾아오는 손님 중엔 오래된 단골도 있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 사십대의 카드 아저씨는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초반에 만난 손님이다. 무슨 의리 같은 것인지 이후로는 빠짐없이 나를 찾아오는데, 횟수는 꼭 삼개월에 한번이다. 올 때마다 화대를 삼개월 할부로 끊고 가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자.”

추가금액을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나를 붙든다. 걸핏하면 술을 먹이려고 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같이 취해버리고 만다. 그는 자기가 노총각이라고 했다가, 아내가 있다고 했다가, 러시아에 아내를 구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는 가끔 온 힘을 다해서 내 목을 그러잡지만 이내 힘없이 손을 떨어뜨려버리고 만다. 방에서 나오면 아저씨는 그 커다란 손으로 카드명세서에 꼼꼼히 싸인을 한다. 반복적으로 그 싸인을 보지만, 매번 나는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만다.

 

밤이 깊어지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가게로 들어온다. 차를 몰고 와서 유리문 안을 몇번씩 훑어보고 들어오는 남자들은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언니들은, 당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쳐줬다. 겪을 만큼 겪다 보니 나도 이제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다. 곤란을 느끼는 횟수가 줄어들자 손님을 상대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손님들의 기묘한 행각이란 늘 상상을 초월한다. 그 모든 것에 일일이 반응한다면 온 정신이 고단함에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몸상태를 조절하는 건 우리 일에서 제일 중요한 기술이다. 요령을 부릴 줄 모르면 금세 체력이 바닥나버린다. 나는 가게에서 보이는 고층빌딩의 창문들을 기준으로 삼고 마음속으로 하나둘 불을 켠다. 열개를 채우기 전에 지쳐버리면 새벽장사는 물 건너가고 만다.

자정이 넘으면 솔도 장사를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한겨울에도 너덜거리는 각설이옷에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온갖 살림살이를 다 실은 리어카를 묵묵히 끌고 간다.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카세트의 음악을 바꿔 트는데, 물결 같은 목소리의 여자가 부르는 오페라 음악이다. 언젠가 내게 그 음악의 제목을 가르쳐주었다. ‘부디 바람이 잠잠하기를.’ 길게 끌리는 각설이의 누더기옷과 오페라 아리아는 묘한 조합을 이뤄서 길을 가던 사람들도 멈추어 서서 리어카의 행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한다.

솔이 떠나고 맞는 새벽 두세시경이, 내게는 하루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그 시간에 하늘은 깊은 바닷속의 색깔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호흡이 가빠온다.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의 불빛이 모두 꺼지고 창문에서는 사람들의 잠든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선명한 정신으로 그때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세상의 일원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 언제까지나 거기에 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짓누른다.

그즈음 들어오는 손님들은 대개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반복된 동작에 지친 나와 언니들은 소리없이 그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지탱하기 위해서, 거부하지 않기 위해서, 시작한 일들을 끝마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는 것이 조금도 없다. 그들의 절망이 어떤 모양일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물개처럼 젖은 눈을 한 언니들이 내뿜는 희뿌연 담배연기, 남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새벽, 죽고 싶을 때마다 대신 바라보려고 손목 아래 그려놓은 빨간 점선 같은 것뿐이다. 그럴 때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프리카 한구석을 만져본다. 순간순간을 넘기면 하루가 지나간다. 이유도 정당함도 없지만, 내 몫의 하루도 공평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기억하시는 대로 말씀해보세요.”

아나운서의 말에 여자는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화면 속의 그 여자는 은은한 회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꼭 어디선가 그 옷을 본 것만 같아서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그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나는 일찌감치 눈을 떠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새벽에 비운 휴지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가서 휴지통을 세제 거품으로 몇번씩 흔들어 씻고, 그런 뒤에 새 비닐을 씌워 방으로 가져왔다. 나는 바깥의 빗소리가 들리도록 창문을 조금 열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텔레비전을 켰던 것이다.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사진이 한장 있고요. 1987년…… 서울생이에요. 이름은 임유진.”

여자는 낮은 목소리로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듯 발음했다. 카메라는 여자가 들어올린 사진을 똑바로 클로즈업해서 비추었다. 창문에서 들이친 빗방울들이 내 목덜미에 와 닿았다. 그 때문에 선득한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고개를 숙인 여자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찾을 수만…… 있다면……”

여자는 내내 출렁거리던 뭔가를 토해내듯 울기 시작했다. 아나운서가 여자의 마이크를 받아들었고, 방청객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화면의 하단에서 여자가 찾는 사람의 이름과 나이가 커다란 자막으로 지나갔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내내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는데 소리를 알아차린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손님이 적다. 언니들과 나는 홀에 앉아서 그치지 않는 비를 쳐다본다. 사장 할머니는 유리창 옆에서 다홍색 사과의 껍질을 깎는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사과 한개를 다 먹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솔을 찾아간다.

“무슨 일인가, 친구?”

리어카를 고정시키고 있던 솔은 허리를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선다.

“여길 뜨게 되면…… 그때, 우리 같이 갈래?”

솔은 말없이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뭐,라고 되묻는다.

“같이 떠나면 어떨까 해서.”

내 우산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 솔의 얼굴 위에 물감과 함께 흘러내린다. 그의 눈썹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미안해. 난 팀플레이는 믿지 않아.”

솔은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가 이내 놓아준다. 바람이 강하게 불자 나뭇잎들이 휘청휘청 파도처럼 움직인다.

 

언젠가 발이 시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이 있었다. 이불 속으로, 뜨거운 아랫목으로 발을 들이밀어도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을 뒤치다가 결국 두 손으로 발을 움켜쥐고 겨우 잠이 들었다. 그날 나는 밤새 동그란 공이 되어서 정신없이 언덕을 굴러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등이 아팠더랬다. 그래도 아침이 되자 발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여기서 뭐해? 한참 찾았잖아!”

가게 뒷골목에 앉아 있는 나를 본 수진 언니가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뭐야?”

언니는 가까이 와서 내가 손을 감추는 모양을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가게 전부 일찍 문 닫는대. 손님도 없고, 업주들 회의한다고.”

우산을 쓴 언니가 옆에 와서 쪼그려앉더니 작은 소리로 묻는다.

“무슨 고민 있어?”

“아니.”

“요 며칠 계속 이상한데. 가게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언니는 수상한 눈길을 보낸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골목은 온통 새카맣고 조용하기만 하다. 한때 이곳에 가득하던 사람들은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서 이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텅 빈 유리창에 까만 골목길이 비친다.

“다들 우리만 두고 여행을 간 것 같아.”

내 말에 수진 언니는 우울하게 웃는다.

 

미연 언니는 부엌에서 전골을 끓이고 있다. 냄비 속에서 당근, 표고버섯, 쑥갓, 숙주나물까지 동그랗게 원을 이루며 보글보글 끓는다. 나는 언니들과 나란히 앉는다. 수진 언니가 가져온 맥주를 마시고, 쇠고기를 건져 먹고, 국자로 국물을 떠서 밥에 부어 먹는다. 창밖에는 계속 비가 내린다.

“비가 안 그쳤으면 좋겠다.”

수진 언니가 말한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응.”

미연 언니가 수진 언니를 돌아본다.

“아마 그때에도 우리는 방주에 안 태워줬을걸?”

입을 꾹 다문 수진 언니에게 미연 언니는 웃으면서 맥주를 따라준다.

“그래도 끝까지 제일 열심히 허우적거렸을 거야. 가라앉지 않으려고.”

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담뱃불을 붙인다. 따뜻한 것을 먹은 뒤라 졸음이 온다. 허리를 벽에 대고 눈을 감자, 희미하게 시야에 분홍빛이 차오른다. 수천마리의 홍학떼가 줄지어 선 아프리카의 호숫빛, 그리고 그 여자의 스웨터빛.

‘미안해.’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두고 가서 미안해.’ 여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과 아들, 딸이 나와서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여자는 그들의 팔을 밀어냈다. 여자는 숨을 가누려고 애쓰며 몸을 떨었다. 그 어깨가 마이크에 부딪혀 자꾸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이명처럼 귀에서 윙윙거린다. 수진 언니는 부엌에 가서 술을 더 가져온다. 오래전, 환각제에 취해서 바라봤던 높고 낮은 불빛들이 떠오른다. 그때 그 빛은 늘 멀고 희미하게만 보였다. 나는 주머니 속의 아프리카를 만지고 또 만진다.

“얘가 또 딴청이네.”

수진 언니가 손으로 내 머리를 콩 박는다. 미연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정도 안 맞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미연 언니를 끌어안는다. 달콤한 냄새가 난다.

“징그럽게 얘는!”

나는 밀어내는 언니의 가슴에 더욱 꽉 달라붙는다.

 

눈을 뜨자 이른 아침이다. 잠에서 깬 나는 방금 전 들린 소리 때문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언니들은 이불도 없이 자고 있다. 나는 바닥에 어질러진 것들을 발로 슬슬 밀면서 바깥으로 나간다.

새벽까지 내린 비는 이제 다 그치고 처마에 고여 있던 물방울만 떨어지고 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진다. 문밖에서 사람들이 크게 떠들어대는 소리, 어수선하게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고개를 살짝 내밀고 대문 밖을 본다.

좁은 골목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길 안으로 포클레인을 밀어넣으려고 씨름을 하고 있다. 지휘자가 손짓을 하고, 운전대에 앉은 남자는 그에 따라 방향을 틀면서 조금씩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다른 가게 언니들도 모여서 멀거니 구경하고 있다. 잠옷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헝클어진 머리를 동여맨 여자들. 나는 다소 신기한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표정은 곧 무너지려는 것들, 무너뜨리려 밀고 들어오는 것들에 별 감흥도 없이 담담하다. 마치 쇠똥구리라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런 일은 지금껏 일어나왔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의 눈빛이다. 그럼에도 그 눈빛은 체념이나 공포를 닮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농담인가를 주고받은 뒤에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사장 할머니는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미연 언니와 나는 엉망이 된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좀더 할머니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오지 않는다.

“목욕탕에나 갈까?”

벌떡 일어난 미연 언니가 목욕바구니를 챙기고 나선다. 수진 언니는 잠에서 덜 깨 눈도 잘 뜨지 못하는데 미연 언니는 그런 수진 언니를 뒤에서 자꾸 민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자들이 우리를 흘금거린다.

목욕탕에 도착하자 미연 언니는 옷을 훌훌 벗더니 곧장 뜨거운 열탕으로 들어간다.

“앗 뜨거!”

따라 들어가려던 수진 언니는 열탕에 발가락을 넣어봤다가 기겁을 한다. 수진 언니와 나는 몇번 더 시도해보다가 포기하고 바로 옆의 온탕으로 들어간다. 뜨거운 물결이 가슴팍을 넘실거린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열심히 몸뚱이를 문질러대는 벌거벗은 여자들이 보인다.

“어디로 갈 거야, 이제?”

겉모습이 변해버린 아프리카 동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들이 과연 예전에 같은 종이었던 무리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만약 만난다면, 그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에 나온 대로라면, 이별한 종들은 다시는 합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구구절절한 사연 같은 것은 없다. 아프리카 동물들은 독자적으로 살아남았고, 그것이 그들이 바란 전부였기 때문이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언니들은 꼭 십대 여자애들처럼 보인다. 나는 선풍기 앞에 서서 바나나우유를 마신다. 미연 언니는 옷도 입지 않고 바닥에 앉아 발톱을 깎는다. 딱, 딱, 딱, 소리가 탈의실 안에 울린다.

“골목이 다 무너지기 전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던 수진 언니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계획이 생길 때까진, 여기 있을 거야. 지금은 달리 갈 데가 없잖아.”

로션을 바르고 가방에 손을 넣어본 나는 깜짝 놀란다. 가방 속이 물기로 흥건하다. 목욕바구니에서 흐른 물 때문에 수첩까지 전부 다 젖고 말았다. 얇은 종이들은 손으로 만지자마자 죽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만다. 펜으로 적어놓은 것들도 넓게 번져버려서 알아볼 수 없다.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첩을 한참 바라보다가 휴지통에 던져넣는다.

목욕탕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생생하게 팔뚝에 와닿는다. 언니들과 나는 처음 보는 나무 밑을 지나간다. 가지가 울퉁불퉁하고 고르지 못해서 어지간히 보기 흉한 나무다. 바람이 불자 못생긴 잎사귀들이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속옷 사러 가야겠다.”

미연 언니가 불쑥 중얼거린다.

“어떤 걸로?”

“그냥 속옷이면 돼.”

햇살이 주위의 사물을 뜨겁게 비춘다. 그러자 모든 것이 한층 더 선명해진다. 어디선가 길게,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걸음을 옮긴다. 나는 주머니 속 깊숙이 두 손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