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박형준 朴瑩浚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등이 있음. agbai@korea.com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어린 송골매는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연습을 한다.

 

근육은 날자마자

고독으로 오므라든다

 

날개 밑에 부풀어오르는 하늘과

전율 사이

꽃이 거기 있어서

 

絶海孤島,

내려꽂혔다

솟구친다

근육이 오므라졌다

펴지는 이 쾌감

 

살을 상상하는 동안

발톱이 점점 바람무늬로 뒤덮인다

발아래 움켜쥔 고독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외침이 절해를 찢어놓으며

서녘 하늘에 날라다 퍼낸 꽃물이 몇 동이일까

 

천길 절벽 아래

꽃파도가 인다

 

 

 

밤 산보

 

 

그 고양이는 습관적으로 비둘기를 사냥한다

가을의 한귀퉁이가 봉함엽서처럼 뜯겨 있는

토요일, 거기서 삐져나온 달,

노숙자와 연인이 뒤섞인 공원,

상처를 잊기 위해 고양이는

전율하며, 억센 발톱을 밀어내며

야외공연장의 난간에서 파란 불꽃을 쏘아낸다

 

한때는 주인의 발밑에 웅크리고

졸음을 파고드는 손길에

한없이 나른한 목덜미를 맡겼으리라

근육은 오직 사랑을 받기 위해

둥글게 꼬리를 말아쥐는 데만 사용됐으리라

 

그러나 저 파란 불꽃은

상처를 잊기 위한 것

난간에 숨어 십미터쯤 떨어진

비둘기를 사냥하기 위한 것

밤공기 속에 몸을 묻고

팽팽한 근육에 화살을 메겨

단숨에 공중을 꿰뚫는

저 단단한 불꽃

 

누가 그랬을까, 고양이의 꼬리는 뭉툭하게 잘렸다

손톱 같다, 비둘기를 향해 초원의 사자처럼

밤공기를 밟으며 나아갈 때마다

치켜진 꼬리에서 적의가 흘러내린다

눈가에 칼날이 긋고 간 흔적이 뚜렷하다,

어둠으로 깊어진 눈동자에 들어 있는 저 초승달

전율하는 꽃이 거기 있었다는 듯

공중에 솟구친 날렵한 허리의 근육

그리하여 존재가 거기 있기라도 한 듯,

억센 발톱이 한순간에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낚아챈다

 

그는 습관적으로 비둘기를 사냥한다

입에 물린 상처를 내려놓고

다시 야외공연장의 난간에서 고독은 냄새를 맡는다

주인의 발밑에 웅크리고 한없이 꼬리를 말던

근육, 억센 발톱을 밀어낸다

토요일에 연인들은 플라타너스 그늘

흔들리는 야외공연장에 팝콘을 던진다

나는 쉰 목소리로 전율한다

달빛을 쪼며,

미열에 들떠 한없이 공중에 솟구치다

까무룩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