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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P. 로버츠 『석유의 종말』, 서해문집 2004

체계적인 에너지정책이 시급하다

 

 

허은녕 許殷寧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eoe@snu.ac.kr

 

 

석유의-종말

국제원유시장의 현물가격이 배럴당 5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이때, 일찌감치 이를 예측이나 한 듯 제목부터 경고의 메씨지를 잔뜩 담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폴 로버츠(Paul Roberts)의 『석유의 종말』(The End of Oil: On the Edge of a Perilous New World, 송신화 옮김)은 현재의 찬란한 인간문명이 얼마나 빈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인지를 상당히 맛깔스럽고 흥미진진하게 알려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바클라프 스밀(Vaclav Smil)의 『기로에 선 에너지』(Energy at the Crossroads)가 통계자료 등 학술적인 분석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면 이 책은 일반인의 시각에서 출발, 저자가 에너지에 대하여 깊이있게 연구해가는 과정에서 느끼고 발견하게 된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과 관점, 그리고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마치 여행일지를 쓰듯이 서술하고 있다.

모든 종말론의 실체가 그렇듯이 실제 종말이 일어난 사례는 아직 없다. 에너지의 경우도 물리적인 자원고갈이 일어나기 전에 대부분 경제성 또는 편리성의 이유로 땔나무가 석탄으로, 그리고 다시 석유로 대체되어왔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들 화석에너지원들을 매우 싼값에 캐내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견과 기술의 발달로 아직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인 자원고갈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저자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비록 제목에 ‘종말’을 언급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지만 석유가 정말로 고갈되어 없어져버릴 것이라는 종말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인류가 에너지원의 유한성에 대하여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일반소비자들의 책임도 크다.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 것인지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28~29면) 그러고는 저자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무임승차’라 이름붙인 책의 첫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어 ‘세계는 지금’ 및 ‘미지의 길’에서는 결국 인류가 기대야 하는 것은 기술개발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땅에서 캐내는, 따라서 고갈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기술로 만들어내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에너지원의 탄생에 기대를 걸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에너지절약, 에너지효율성 향상 또는 신·재생에너지로 불리는 것들이며, 저자는 이들을 ‘새로운 차세대 에너지경제’라고 이름붙이고 정통 경제학에 의한 에너지 분석을 이제는 이들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에너지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저자는 이산화탄소 회수처리기술, 에너지효율성 향상, 탄소세, 국제협력 등 여러 정책적 대안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로빈스나 캐먼, 골드스타인, 로젠필드 등 일반인에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비주류 에너지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싣고 있다. 저자의 노력 덕택에 우리는 에너지 관련 정책에 대하여 유익한 지식들을 많이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해하기 힘든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400면이 넘는 데도 단 하나의 표나 그림도 싣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저술 추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문적인 내용의 글에 이를 설명하는 그림이나 표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상당한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도 이 책을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역자나 출판사에서라도 첨가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은 책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또한 서술이 주로 저자의 경험에만 의존할 뿐 전문적인 분석이 생략되어 있어서 한차원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게다가 전문용어의 적절치 못한 번역도 여기저기 눈에 띄어 안타깝다. 따라서 이 책은 초보자나 전문가보다는 에너지에 대하여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의 이해를 넓히는 데는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원생 정도가 가장 적당한 수준의 독자로 보이며, 필자 역시 그런 학생들에게 권유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단 읽어내려가는 데 성공한다면 독자들은 저자가 긴 여정에서 얻은 결론들에 동감하며 동시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에너지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저자의 결론대로 에너지기술의 혁명은 어느날 갑자기 마법처럼 날아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에너지체계의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석유의 종말 정도가 아니라 인류의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