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 제22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7년 11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2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
심사위원
최원식 황종연 신경숙 김수이
2007년 7월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2007년 6월 8일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최원식 황종연 신경숙 김수이, 이상 네 분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했고, 7월 3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제22회 만해문학상 심사가 진행되었다.
첫번째 모임에서 지난 3년 동안 출간된 시집과 소설집 중에 등단 10년 이상 작가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시와 소설 분야 각 3권씩으로 최종 심사대상을 압축했다. 김신용 『도장골 시편』, 김정환 『드러남과 드러냄』, 최정례 『레바논 감정』(이상 시), 김영하 『빛의 제국』,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이상 소설).
두번째 모임에서는 심사위원 각자가 여섯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소설과 시 분야 추천작이 경합했으나, 점차 소설 분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논의를 거듭한 결과, 심사위원들은 힘있는 서사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오늘의 세태를 예리하게 해부하며 개인의 소통 문제를 성공적으로 확장한 점을 높이 평가해,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을 제22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심사평
최원식(崔元植) 문학평론가
이번부터는 예심이 없다. 1차 심사대상작 20권 중에서 심사위원회는 우선 집중적으로 검토할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토의를 거쳐 시집 셋, 소설집 둘, 장편 하나, 총 여섯권을 가렸다. 2차 회의에서는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활발했다.
김정환의 『드러남과 드러냄』은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통상적 시집이 아니라 뚜렷한 주제의식 아래 기획된 두툼한 연작시집이다. 이 다변(多辯)의 시집을 통독하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힘에 비할 때, 그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침묵은 돌연하다.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은 최근의 다산(多産) 탓인지 풀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최정례의 시집 『레바논 감정』은 나로서는 요령부득이다. 윤대녕의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는 작가적 연륜의 한 단계를 충실히 보여준다. 다만 가작 「고래등」조차 그러하듯 노성(老成)한 게 걸린다. 은희경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도 여전한 필력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영토를 찾아나선 작가의 실험이 도중에 있음을 이 소설집은 확인해준다. 김영하의 장편 『빛의 제국』은 여러모로 돋보인다. 지령이 오래 끊어진 상태에서 남한사회를 살아가던 간첩에게 갑자기 내려진 귀환명령이라는 설정을 통해 남과 북을 마주 보는 거울로 상대화하는 이 소설은 분단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혁명적 낭만주의를 비판하되 그 짝패인 환멸적 냉소주의로 탈주하지 않는 점은 소중하지만, 아직은 해체주의를 해체하는 지경에 미치지 못한 것이 주저하게 하는 바 없지 않다.
진지한 토론 끝에 우리는 『빛의 제국』을 수상작으로 삼는 데 합의했다. 부처를 죽이는 사유의 모험 속에 자신의 삶과 문학을 끝없이 갱신한 만해를 다시 생각하면서 김영하씨의 정진을 기대한다.
황종연(黃鍾淵) 문학평론가
만해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정환, 김신용, 최정례의 시집이 해당 기간에 출간된 시집 중에서 우수한 편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사라진 시간 속의 잊혀진 계시를 찾는 김정환의 분방한 연대기, 자기구원에의 열망이 투사된 김신용의 산골풍물지, 자아의 환상을 응시하는 최정례의 명상록, 그 어디에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 구절이 박혀 있다. 그러나 세 시인의 성과가 역대 만해문학상 수상시인의 업적에 견주어 손색없는 것인가, 또한 소설 분야의 경쟁작을 능가할 만한 것인가. 나는 그러한 의문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윤대녕, 은희경, 김영하 세 작가의 작품을 놓고 우열을 말하기란 상당한 확신과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주제 설정, 플롯 구성, 문체 규율 등에서 그들을 당대 일급으로 만들어준 기예가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설의 투식(套式)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까지 눈에 띈다. 초월적인 것의 현현(顯現)에 열중한 윤대녕의 감각은 세상살이의 서러운 깊이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고래등」은 비범한 작품이다. 은희경이 가족과 사회의 변화를 다루면서 상실의 경험을 포착한 방식도 감동적이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상찬에 값한다. 하지만 윤대녕과 은희경의 어떤 좋은 작품도 김영하의 작품에 대한 나의 편애를 저지하진 못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장편이기 때문이다.
『빛의 제국』은 운동권 세대, 분단상황, 소비사회, 가족윤리 등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고상하게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겐 거북할지도 모른다. 『율리씨즈』와 『광장』에 대한 참조에다 스파이 스릴러에서 포르노그래피에 이르는 대중장르 참조가 뒤섞인 불경스러운 패스티시(pastiche)가 난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다양한 차원의 한국적 경험을 그렇게 광범위한 상호텍스트적 관계 속에서 조리있게 조직하는 영특한 재주가 한국작가에게는 희귀한 것이다. 더욱이 이 장편은 시장경제의 지배하에 있는 동시대 서울 중산층의 풍속을 서술하는 가운데 간담을 서늘케 하는 탈신비화를 성취하고 있다. 냉정하게 메스를 들고 정밀하게 작성한, 한국 자본주의사회의 일상생활 해부도이다.
신경숙(申京淑) 소설가
전년도에 시집이 수상작이었던 연유로 소설이 우선 검토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종 심사에 올라온 소설 분야 세 작품들 중에선 어느 작품이 수상해도 손색이 없다고 여겼으므로 한편을 선택하는 데 곤혹스러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견했으나, 의외로 『빛의 제국』을 선정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종 심사대상작 중에서 유일하게 장편소설인 『빛의 제국』이 작품성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빛의 제국』은 스파이라는 이색적인 신분의 소유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본인조차도 자신이 남파간첩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자본주의사회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중 갑자기 귀환명령이 떨어진 후의 하루. 그 하루 속에 우리의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오늘날의 세태와 일상이 날카롭게 포착되어 있다. 이 작가만이 탄생시킬 수 있는 절묘한 구성과 활달한 입담이 시시각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며 냉혹하게 펼쳐진다. 그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냉혹한 세계는 타자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현대인의 내면세계이기도 하다는 점이 아프게 다가온다. 어느 화자에게도 연민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건조한 문장은 거리감을 조성해 감상성을 제거하고, 예리한 사회비판과 남북 체제이데올로기의 해부가 이루어지며 우리 사회에 미만한 여러 문제들까지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자본주의의 소시민이 된 채 출발점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우리 시대의 오디쎄이와 그를 이해하거나 위로해주기는커녕 연하의 남성들과 삭막한 게임을 벌이는 고독한 페넬로페의‘쓰디쓴 유희’의 하루는 오늘날의‘인간극장’으로도 읽힌다.
작품성에는 모두 동의하면서도 이 작가의 문학세계가‘만해’라는 이름과 걸맞으냐, 인간에 대한 성찰이 너무 차가운 것 아니냐를 두고 잠시 토론이 있었으나 이 또한 작품외적 논란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김수이(金壽伊) 문학평론가
즐겁고도 난감한 고민의 시간이었다.‘선택’과‘집중’이 거듭되는 가운데 최근 문단의 지형에 관한 입체적 그림들이 그려졌고, 아쉽게도 시 쪽의 후보작은 그림의 최전면에 배치되지 못했다. 세 시집은 각기 독특한 반경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해당 시인의 시세계에서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선택의 잉여는 계속되는 현재의 평가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노동, 삶과 시가 합일하는 지점을 전유(하고자)하는 순간들을 형상화한다. 시어가 핍진하고, 체험에서 우러난 사유들이 내밀하고 깊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깨달음의 상황들이 누적되면서 각 시편의 농도가 감소되는 측면이 있다. 노동의 의미를 망각한 시대에, 노동의 체험과 미학을 존재와 삶의 동력으로 육화해온 김신용의 시적 성과는 이제 널리 공인된 것이 되었다. 앞으로 김신용은 노동자시인의 이력이 역으로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의 시차를 극복하면서 자신과의 새로운 싸움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김정환의 『드러남과 드러냄』은 시가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간단히 섬멸(殲滅)한다. 이 섬멸의 무자비함과 통쾌함이‘드러냄과 드러냄’의 분기점인바, 개인적 체험과 시대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장면들은 시적이며 시적이 아닌 고통스러운 감흥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 고통이 『드러남과 드러냄』의 모태이자, 이 시집을 읽는 쉽지 않은 일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최정례의 『레바논 감정』은 사건과 세계를 파고드는 간명한 통찰력이 미덕인 시집이다. 사건과 세계의 어떤 부분을 얇게 저미어내 타자의 시선 앞에 제시하는 솜씨와 감각이 뛰어난 반면, 그것이 시적 감동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군더더기없이 잘 빚어진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삶의 폐부를 찌르는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는 소설을 읽는 기쁨을 한껏 누리게 해준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 기꺼이 표를 던진 것은 이 장편소설이 지닌 문제의식과 동시대의 삶의 전체성을 향한 서사적 의욕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남파간첩이‘내면’의 확보를 통해‘개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그 내면과 개인의 황폐한 실상을 보여주면서, 감시용 전자팔찌를 찬 간첩의 자리에 남한사회의 시민인 우리를 가져다놓는다. 21세기 분단현실의 멀티장르 버전이라고 할 만한 이 소설이 가족, 일상, 성애, 자본주의, 청소년 문제 등을 아우르면서 결국 제기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인 문제인 것이다. 뛰어난 질문의 능력과 상상력(만)으로‘빛의 제국’을 건설한 김영하 작가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수상소감
고독한 작업을 격려하는 손길
김영하 金英夏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황순원문학상·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상을 받으면 역시 기쁘다.
가끔 함께 어울려 일하는 예술가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막이 내리고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들은 같이 술을 마시며 누가 잘했니 누가 못했니 하며 떠들 것이다. 그런 시끌벅적함과 왁자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우애 같은 것.
소설 쓰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 탈고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이다. 그 새벽에 누구를 불러낼 수도 없고 설혹 나와준다 해도 그는 남일 뿐이다. 원고를 넘기고 그 원고가 책이 돼서 나올 때쯤 서점에서 가서 남몰래 들춰보고 슬쩍 쓰다듬어본다. 이 모든 게 다 혼자 하는 짓이다.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고독한 작업이다.
그러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누군가가 읽어주었구나, 고생했다, 애썼다 말해주는구나 싶어서 그럴 것이다.
『빛의 제국』은 도시락이 쓴 소설이다. 아침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사람 없는, 창 없는 골방에 가서 썼다. 뜨거운 차를 곁들여 혼자 도시락을 야금야금 먹고 있노라면 나 같은 한량도 조금은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도시락까지 싸왔는데 한줄이라도 쓰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 한줄이 한장이 되고, 그 한장 한장이 모여 한권의 책이 됐다.
문학상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도시락 같은 구석이 있다. 상까지 받았으니 정말 열심히 쓰자,고 생각하게 된다. 든든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몇발 더 앞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해본다. 이런 좋은 상으로 문학계의 격려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심사위원들과 창비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