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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소연 朴昭娟
1964년 대구 출생.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눈부처』가 있음. budnamuale@hanmail.net
9월 9일
오솔길을 올라가다 인혜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산을 오르다 함박눈을 만났을 때처럼, 눈송이가 소리 없이 뒤에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인혜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해는 이미 지고, 저녁놀도 사그라졌다. 그런데 어둔 하늘에 점점이 작은 빛들이 돋아오르고 있었다.
천문대 사람들은 이선생과 막역한 사이인지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었다. 사무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이선생을 따라 돔으로 올라갔다. 인혜는 그토록 검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길을 올라올 때 본 작은 점들은 어느새 형형색색 꽃송이가 되어 밤하늘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별빛은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기 때문에 눈부시다. 바람이 불자 화르르 별에 불이 옮겨 붙으며 불꽃이 번졌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운명 위에도 별은 얼마나 찬란한가.
칠이 벗겨진 낡은 망원경이 밤하늘 한 지점을 향해 멈췄다. 망원경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선생이 조절손잡이를 돌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북두칠성을 찾아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북두칠성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프리카 촌부나 뉴욕 히피 들의 공통점 하나는 북두칠성을 찾는다는 거예요.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찾는 길잡이 별자리거든요. 옛 폴리네시아사람들은 나침반도 없이 수천킬로를 항해했다고 해요. 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인간만이 별자리로 방향을 잡는 건 아니에요. 유리무당새처럼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도 밤하늘 별빛으로 길을 찾아요. 자, 이리 와서 봐요.”
이선생이 망원경 앞자리를 내주었다. 인혜는 조심스럽게 렌즈 안을 들여다보았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두번째 별, 미자르를 봐요. 그 옆에 작은 별 하나가 붙어 있죠? 알코르예요. 로마에서는 이 별을 식별할 수 있는지로 시력검사를 했어요.”
두개의 별이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있어 하나로 보였지만, 그것은 두개의 별이었다. 그들은 동행하고 있었다.
인혜가 중학교 과학교사인 이선생을 만난 것은, 한 지역잡지에 그달의 화제인물을 취재하는‘인물스케치’란 꼭지를 맡아 글을 쓰게 되면서였다. 그날은 마지막 취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병우가 과학실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몇번이나 이야기가 끊어지면서 인혜는 평소 같은 긴장감있는 질문들을 놓치고 있었다. 병우를 데려온 속사정을 말하지 못했지만, 이선생은 안전한 교구들을 꺼내 아이가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인터뷰는 해가 질 무렵에야 끝났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낯선 행인에게 털어놓는 것 같았어요.”
인혜가 녹음기 전원을 끄고 가방을 싸는데 이선생이 말했다.
전철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호의를 받아들였다가 이선생과 친분이 있는 인근의 사설 천문대에까지 들렀고, 인혜는 난생처음 천체망원경으로 별구경까지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인혜는 늦게까지 문을 연 단골 피씨방에 들렀다. 잠든 병우를 안고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수십통의 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병우가 급성위염으로 입원했다는 제목으로 구조 요청을 했을 때조차 남편은 우편함을 열어보지 않았다. 인혜는 때때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답장을 쓰진 않더라도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면 어딘가에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실마리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도 인혜는 남편의 이메일 주소로 편지를 썼다. 천문대에서 미자르와 알코르를 본 이야기를 썼다. 보이지 않지만 함께 가고 있는 두 별 이야기를 했다.
인혜에겐 몇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대학 동기인 원영의 편지도 있었다. 원영은 그날 진선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었다. 과외비를 곧바로 은행계좌로 돌려줬다는 얘길 전해 듣고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전날 오후에 인혜 집 앞에서 그대로 돌아간 섭섭함도 잊고 원영은 편지 끝에 생일을 축하하는 짧은 글을 덧붙였다.
인혜는 원영에게 상의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일을 사과하는 답신을 썼다.
‘좋은 친구에게 신용을 잃고 싶진 않아. 만회할 수 있게 다른 자리가 있으면 소개해줘.’
병우를 업고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습관처럼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요금이 밀려 전기가 끊긴 지 이레째였다. 양초와 일회용 건전지가, 끊어진 전선들을 대신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이부자리를 깔고 병우를 눕혔다.
아이가 잠들자 인혜는 부엌으로 나와 씽크대 옆에 상을 끼고 앉았다. 전날 태우다 만 초에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켰다. 촛불이 켜지자 부엌은 의외로 아늑했다. 촛불 한자루에 위로받는 것은 그날 천문대에서 본 별빛의 여운일 거라고 인혜는 생각했다. 취재노트에 얼룩진 망원경 윤활유 냄새마저도 천문대의 상큼한 밤공기를 환기시켰다.
언뜻 낯선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다. 돌아보니 나리꽃이었다.
전날 시어머니와 경황없이 헤어지고 돌아오니 뜻밖에 원영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도, 휴대폰도 없으니 연락할 길이 없잖아. 잘 갔다 왔어?”
진선의 집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주선해준 건 원영이었다. 자기가 수학을 가르치는 집에 인혜를 영어선생으로 소개해줬다.
“안하게 됐어.”
“왜?”
“………”
만일 시어머니와 함께 왔다면 집 앞에서 원영과 마주쳤을 것이다. 진선의 집에서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쳐온 원영을 시어머니가 모를 리 없었다. 진선의 집에서 원영과 마주칠 때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집 앞에서 기다리던 청년을 불편해할 것이다.
원영이 돌아간 뒤에야 문고리에 끼어 있는 꽃다발과 카드를 보았다. 인혜는 비로소 자신의 귀빠진 날인 것을 알았다. 인혜는 꽃을 병에 꽂아 씽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하루가 지난 사이 나리꽃 봉오리가 활짝 열렸다. 촉촉한 꽃잎 안쪽에 수술 가루가 떨어져 붉게 번져 있었다. 인혜의 시선은 씽크대의 나리꽃에서 다시 앉은뱅이책상으로 돌아왔다.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선생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옆에서 조용히 자박자박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빠르게 써내려가던 인혜의 볼펜 소리가 천천히 멈췄다.
“아버지가 실종됐을 때 어머닌 스물일곱이었어요. 처음에 어머니는 한동안 서울을 오가며 아버지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내가 열살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일하러 갔지요. 방학이 되면 설레는 마음에 어머니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인혜는 인터뷰 도중에 여기서 녹음기를 껐다. 그러나 녹음되지 않은 이선생의 이야기는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길게 타올랐다.
“어머니가 시골집을 다녀가실 때마다 어머니 사진이 하나둘 없어졌어요. 그런 사실은 나 혼자만 알았어요. 어머니가 서울로 돌아가시고 나면 몰래 사진첩을 열어봤어요. 어머니가 다시 사진을 넣어두었길 바라는 마음과, 또다른 사진을 꺼내갔는지 확인하고 싶은 의심이 함께 있었어요. 사진이 없어진 걸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실까 앨범을 치웠다가 어머니가 오시면 제자리에 갖다뒀어요. 말없이 사진을 꺼내가는 어머니의 태도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어요…… 어머니는 얼마 뒤 재가하셨어요……”
그때 교실 한쪽에 잠들어 있던 병우가 선잠을 깨서 울었다. 인혜는 병우를 안고 한쪽에 가서 젖을 물렸다. 창문에 언뜻 이선생 옆모습이 비쳤다. 그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름이 지기 시작하면서 윤곽이 뚜렷해져 오히려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지는 사십대 후반의 얼굴이었다. 인혜는 그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열다섯살 이후로 인혜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사십대였다. 어머니는 허리 굽은 할머니로 늙어가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잘생긴 사십대였다. 인혜는 늙은 아버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시계는 그날에 멈춰 있었다.
녹음기 속 이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내일이 아버지 제삽니다. 기일을 모르는 조상은 예로부터 9월 9일에 제사 지내는 유풍이 있습니다. 오히려 정통 유교에서는 민간의 9월 9일 제사를 인정하지 않지요. 몇몇 사찰에서 이날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한 천도제를 지내고 있지만, 대부분 일반 가정에서는 밖에 알리는 것을 꺼리고 가족 단위로 조용히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조사나 통계 자료가 없는 실정이에요. 그러나 지금도 음력 9월 9일이면 농협 식품매장에 제사떡이 일찍 동나는 걸 보면, 이날 제사 지내는 집이 적지 않은 걸로 추정돼요. 일제 때 징용됐다 객사했거나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사람, 납북 어부의 가족들이 이날 제사를 지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으로 소식이 끊기거나 생사를 모르는 이산가족이 많다 보니 민간에 이런 풍속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어요.”
인혜는 아버지를 닮아 속필이었지만, 그날은 좀처럼 글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이가 실종되면 길을 잃었거나 납치됐다고 보고 주위에서 도와주려 애쓰지요. 그러나 어른이 실종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동기를 의심하며 추궁하는 경찰과, 사회의 냉정한 시선에 부딪치며 가족들은 상실감에 더해 존엄성에 상처를 입……”
갑자기 이선생의 말이 뚝 끊겼다. 잡음 속에 튀어나오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그곳은 과학실이 아니었다. 천문대였다. 인혜가 천체망원경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병우가 녹음기를 만진 모양이었다.
도막초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렵게 녹음한 내용이 지워진 것을 알고 인혜는 허탈해 상을 밀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녹음기에서 다시 이선생 목소리가 들렸다. 애써 녹음했던 인터뷰는 지워지고, 엉뚱하게도 천문대에서 이선생이 들려준 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과학실과는 달리 천문대에서의 이선생 목소리에는 흥분이 숨어 있었다.
“북극성은 가장 밝은 별은 아닙니다. 마흔아홉번째로 밝은 2등성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지요. 언젠가 저 별을 보면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아버지뿐 아니라 내 삶도 미완에 불과하다는 절박한 생각을 했어요.”
이선생의 이야기는 귓가에 흩어졌다. 인혜의 하늘엔 북극성이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삶의 중심축을 잃은 지 오래였다.
초는 심지가 다해 파드득거리더니 마침내 빛을 잃었다. 촛불이 꺼지자 아늑했던 작은 서재는 사라졌다.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방과 달리, 부엌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촛불이 꺼지자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이상하게도 녹음 소리는 더 잘 들렸다. 이선생의 별 이야기는 북극성에서 북두칠성 주위로 흐르는 은하수의 성단들로 옮겨갔다. 이선생의 이야기를 따라 인혜는 찬란한 은하수 물결에 감겨들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남편과 연애시절 지리산에서 본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날 산에서 감기약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전날부터 몸살기운이 있던 인혜는 어둡기 전에 세석산장에 닿지 못할까 조바심이 나서 점심식사 후 출발하기 전에 감기약을 먹어두었다. 그런데 약기운이 퍼지면서 도리어 몸이 무거워지더니 나중에는 걸음을 한발짝 떼기조차 힘들었다. 한번 주저앉자 인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더니 언젠지도 모르게 약기운에 취해 잠이 들었다.
꿈결에 인혜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정신이 들어보니 바위 아래 침낭 속에 누워 있었다. 지훈이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 작은 관목 숲이 어둠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을 올려다본 인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을 축으로 별들이 회오리쳤다. 별들은 형형히 오로지 두 사람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배고파.”
“이제 기운이 나는구나.”
지훈이 배낭에서 먹을 걸 꺼냈다. 빵을 나누어먹고 나니 인혜는 지훈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지훈이 말했다.
“중학생 때, 쇠꼴을 먹이러 들판에 나갔다 깜빡 잠이 든 일이 있어. 깨보니 사방은 어두운데, 고삐를 매어둔 소가 없어졌어. 어둔 들판에서 혼자 소를 찾는데, 문득 별빛의 감촉을 느꼈어. 별에 쎈서가 있어서 나를 알아보고 불이 켜진다는 생각이 들었어. 별이 깜빡일 때마다 나도 심장이 뛰었어. 그 순간은 별과 내 심장이 이어져 있다고 느꼈어. 아버지께 꾸중들을 일도 잊고, 무엇에 홀린 듯 집에 와보니 소가 외양간에 돌아와 있었어. 그날 이후로 별에 세상을 만지고 분별하는 촉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마치 인간의 지문처럼 말이야. 옛날 어느 천문학자는 별자리가 밤하늘에 찍힌 신의 지문이라고 생각했대. 실제로 분광기라는 특수카메라로 별을 찍으면 별마다 다른 줄무늬가 찍힌다는 거야.”
인혜는 지훈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의 지문도 별이 될 수 있을까……”
지훈이 인혜를 돌아보지 않은 채 어눌하게 말했다.
“지문은 닳아 없어질 수는 있어도, 변하진 않아……”
뒤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지훈이 한 유일한 고백이었다.
초여름이었지만 산속의 유월은 추웠다. 적막 속에서 산 울음이 길게 메아리졌다. 그믐날 밤에 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산엔 바람이 갈기를 세웠다. 머리칼을 휘감는 바람을 막아줄 지붕도 바람막이도 없었지만, 지리산 바위 자락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아늑한 둥지가 되었다.
여행은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선물을 준다. 잘못 먹은 감기약 때문에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보낸 밤은 두 사람의 계획을 바꾸어놓았다. 인혜는 덜컥 임신했고, 그들은 들떠서 결혼했다.
그때로부터 삼년이 지났다. 전기가 끊긴 부엌 천장에 다시 그날의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플라네타륨의 스위치를 누르고 빛을 쏘아올린 것처럼 작은 천장에 별이 보석처럼 박히고 있었다. 초라한 반지하 천장은 어느새 아름다운 돔이 되었다. 인혜는 가슴이 뛰었다.
그때였다. 누가 문을 두드렸다. 천장의 별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구세요?”
급히 일어나다 인혜는 그만 씽크대에 부딪쳤다. 무언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밖에서 원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둥대다 인혜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을 밟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바닥에 박힐 때의 통증이 천장에 박히던 별빛처럼 눈부셨다.
손을 더듬어 라이터를 켰다. 꽃을 꽂아놓은 유리병이 떨어져 산산조각나 있었다. 인혜는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자 달빛이 어두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자는 걸 깨웠구나.”
원영은 늦은 밤에 불쑥 찾아온 걸 미안해했다.
인혜는 병우에게 젖을 물린다고 브래지어를 풀어놓아 옷 위로 젖꼭지가 도드라진 것도 모르고 부스스한 얼굴로 원영을 맞았다. 전기가 끊긴 궁색한 살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인혜는 급히 카디건을 걸치고 나갔다.
“네 메일 받았어…… 요 앞 편의점에 가서 차나 한잔 마실까?”
그러나 인혜는 병우가 깰지도 몰라 집 주위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인혜는 가로등 아래 원영과 꼬부리고 앉았다. 원영이 물었다.
“왜 그만뒀는지 물어봐도 되니? 과외비를 은행계좌로 돌려줬다면서?”
“………”
“이유를 알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묻는 거야.”
원영이 서운함을 잊고 다시 찾아와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인혜는 진선네 집에서 있었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천문대에서 본 별 이야기를 했다. 언뜻 원영의 눈이 슬프게 빛났다.
“이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야?”
“이십여년 동안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다닌 분이야.”
“찾았어?”
인혜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상을 밝혀내고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켰어.”
“아니, 피가 흐르잖아!”
원영이 인혜의 슬리퍼에 눈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원영이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는 발바닥을 감싸쥐었다. 그런데 원영이 어디를 건드렸는지 발바닥이 몹시 쓰라렸다.
그때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병우 깼나 봐. 가봐야겠어. 조심해서 가.”
인혜는 서둘러 원영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원영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에 인혜는 발의 통증을 참으며 절뚝거리지 않으려 애썼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다 뒤돌아보았다. 원영이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인혜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정작 병우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려다 인혜는 나뭇잎 날리는 소리를 들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창을 닫으려다 원영이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병우가 기침을 했다. 인혜는 소리를 죽여 창문을 닫았다. 문은 닫혔지만 오히려 마음의 문은 원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열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혜는 자기 전부를 걸고 원영을 생각했다.
인혜는 진선네 집에서 시어머니를 만났다는 말을 원영에게 하지 못했다. 과외를 마치고 나올 때만 해도 인혜는 누가 기다리고 있다고는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선불로 받은 돈으로 밀린 보육료와 전기요금부터 치러야겠다는 생각에 상기된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눈보라치듯 쏟아졌다. 거리는 온통 황금물결이었다. 인혜가 막 아파트를 꺾어 돌 때였다.
“아가!”
귀에 익은 낮은 음성이었다. 인혜는 걸음을 멈추었다. 시어머니가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었다. 거리에서 기약도 없이 헤어진 지 열달 만이었다. 시누이를 통해 간간이 소식은 들었지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으리라 싶을 만큼 시어머니는 야위어 있었다.
“여긴 어떻게……”
인혜는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진선네 집에서 일해……”
시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렸다. 시어머니가 신고 있는 비닐신발에 눈이 닿았다. 진선네 집 현관 한쪽에 외따로 놓여 있던 낡은 신발이었다. 인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열달 전, 시어머니가 사채업자를 피해 슬리퍼 바람으로 급히 집을 빠져나와 찾아왔을 때 인혜는 급한 대로 동네 시장에서 비닐신발 한켤레를 샀다. 두 사람은 시장 사거리에서 헤어졌다. 눈길 위로 멀어지는 시어머니를 전송하고 나니 함박눈이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발을 신은 채 시어머니가 낙엽을 밟고 서 있었다. 인혜는 비로소 진선 엄마의 잔소리에 말대꾸조차 없이 쉬지 않고 부엌과 거실을 오가던 숨죽인 발소리를 떠올렸다.
“병우 애비 소식은!”
“………”
한떼의 여자들 목소리가 들리자 시어머니는 놀라 얼른 등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인혜는 조금 떨어져서 뒤따라갔다.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자 시어머니는 비로소 인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 가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밥은 먹고 있는지, 어디서 자는지……”
시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병우 소식을 물었다.
“어린이집에 있어요.”
시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렸다. 인혜는 마른 시선으로 딴 곳을 응시했다. 시어머니는 쌀쌀맞은 며느리의 태도에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얼른 눈물을 훔쳤다.
인혜는 전철을 타고 시어머니와 함께 병우를 찾으러 갔다. 어린이집 원장은 인혜의 눈치부터 살폈다. 주머니 안에는 선불로 받은 돈이 있었지만 인혜는 봉투에 손댈 수 없었다. 아침에 병우를 맡기며 밀린 보육료를 갚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원장은 지친 표정으로 인사도 받지 않고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사이 병우는 할머니 손을 끌고 슈퍼로 가고 있었다. 병우가 과자 봉지를 들고 노는 것을 보며 두 고부는 놀이터 한쪽에 앉았다.
시어머니는 사채업자들을 피해 몸을 숨기고 사는 저간 사정을 얘기했다. 시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노숙자들이 많은 서울역과 영등포역, 청량리 쌍다리굴을 배회하고 다닌다고 했다.
“옛날 보릿고개는 굶어도 같이 넘었는데, 이 아이엠에프고개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니…… 예전엔 송홧가루 날릴 때가 되면 보리가 익었는데, 이 보릿고개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러면서도 아들이 어딘가에서 재기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며 며느리를 안심시키려 했다.
인혜는 남편의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구립도서관 대출증을 만들려고 등본을 뗐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법적인 부랑자가 된 셈이다. 그들 가족은 구석으로 몰리며 설 땅을 잃고 있었다. 인혜는 그들이 놓인 상황을 깨달았다. 공공복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삶의 근간을 잘리는 것이었다. 대출증을 만들 수 없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가 아파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병우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그들이 살고 있는 반지하 빌라에는 취학통지서가 배달되지 않을 것이다. 인혜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느꼈다.
“참, 사부인은 안녕하시지? 낼모레가 병우 외할아버지 제사가 아니냐?”
인혜는 아버지 제사를 잊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붙잡는 인혜의 손을 뿌리치고 시어머니는 서둘러 벤치에서 일어났다.
인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진선의 집으로 전화했다. 사정이 생겨 진선을 가르치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하고 은행계좌번호를 물어 받아적었다. 이튿날 시어머니가 진선의 집에 가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었으므로, 시간외 수수료를 물면서도 그날 받은 과외비를 돌려주었다. 은행을 나온 인혜는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전당포에 들렀다. 언제부턴가 주위에 전당포들이 소리 없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인혜는 차고 있던 시계를 맡겼다. 다시 찾을 가망도, 기약도 없는 전표를 잘 접어 지갑에 넣었다.
잡지사에 보낼 글을 마무리하고 인혜는 24시간 문을 여는 피씨방에 원고를 입력하러 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 박힌 날카로운 것이 날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하늘에는 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혜는 상처의 통증과 밤하늘 별빛을, 반짝임과 아픔을 구분할 수 없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피씨방에서 잠투정이 심한 병우와 씨름하며 일을 마쳤다. 녹음이 지워진 부분은 취재노트를 반복해 읽다 보니 오히려 카세트테이프에 의존할 때보다 글이 생동감있게 써졌다.
먼동이 트는 길을 병우를 업고 걸었다. 인혜는 새벽안개 속에 희미하게 사라지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이선생이 들려준 별의 말년 이야기가 생각났다.
“밤하늘이 찬란하지만, 저 속에는 빛나지 않는 별도 있어요. 눈으로도 보이지 않고, 망원경 렌즈에도 잡히지 않지만, 빛의 용광로가 이미 꺼져버린 별도 있어요.”
사랑이 빛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분노와 의심이 사랑보다 더 강렬한 감정인지 인혜는 알지 못했다. 1퍼센트의 의혹이 99퍼센트의 믿음을 일시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이 떠난 자리에 언제부턴가 담쟁이덩굴이 자라나 인혜네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푸르른 잎사귀는 뻗어나가 남루한 벽을 덮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추억이었다. 사랑은 빛이 꺼졌지만, 추억은 사랑보다 생존력이 강했다. 삶이 낡아 보푸라기가 일수록 인혜는 남편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문소리에 인혜는 잠이 깼다. 나가보니 원영이 눈을 쌍그런 채 서 있었다.
“그렇게 문을 두드리니까 빚쟁이라도 온 줄 알았잖아.”
“인혜야, 병원에 가보자.”
인혜의 한쪽 발은 산달 임산부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원영의 성화에 못 이겨 인혜는 외출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머리를 빗다 달력에 그날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음력 9월 9일이었다.
“범인은 이거였어요!”
의사는 핀堊으로 한참이나 상처를 헤집고 뒤지더니 유리파편 하나를 찾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붉은 파편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빛났다. 인혜는 병원을 나오면서도 반짝이는 것이 왜 통증을 일으키는지 의문이 들었다.
“원영아, 오늘은 병원에 데려다주고, 며칠 전엔 아르바이트를 구해줬어. 넌 받는 거 없이 주기만 하니 이건 불공평해.”
“인혜야, 버스를 타고 오는데, 가로수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어. 늘 보던 길인데, 오늘 아침은 전과 달랐어. 아름다운 그 가로수길을 나도 너한테 줄 수 있을까?”
인혜가 잠든 병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원영이 말없이 인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원영과 헤어져 전철역을 나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궂은비도 즐거운 놀잇감이 되는지, 병우는 창밖 빗물을 친구삼아 서리 낀 마을버스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아이가 하는 양을 보고 있으니 인혜도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병우야, 엄마가 오늘 원고료 받으면 돈까스 먹으러 갈까?”
먹는 얘기에 아이는 신이 났다.
그러나 정작 잡지사 선배는 예전처럼 인혜를 반기지 않았다. 유수의 출판사와 책 도매상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부도 위기에 직면한 선배의 출판사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인혜는 정리해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선배 앞에서 가불을 부탁하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나왔다.
인혜는 보채는 병우를 데리고 한적한 곳에 가 젖을 물렸다. 병우는 젖에 무섭다 싶을 만큼 애착을 보였다. 어찌나 세게 빨아대고 자주 깨무는지 젖꼭지는 이미 너덜너덜했다. 통증이 가라앉을 새도 없이 젖꼭지에는 다시 피가 났다.
밖으로 나오자 인혜는 다리가 헛도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인혜는 자신도 발에 밟히는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놓은 채 저만치 혼자 넋을 잃고 걷고 있는 엄마를 아이는 울음을 참으며 종종걸음으로 쫓고 있었다. 전철역 매표소에 오자 인혜는 과자를 사 병우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인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의 인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병우를 놓고 온 전철역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이 울음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그런데 병우 울음소리 속에 또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난 너희들을 키울 수 있었으니 다행이야. 하지만 너희 아버진…… 나와 너희들을 모두 잃었어……”
인혜는 환청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역에서 객차 문이 닫히려는데 급히 뛰어내려 반대방향 전철로 갈아탔다. 돌아가보니 병우는 과자 봉지를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들고 서 있었다. 인파로 붐볐지만 병우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인혜는 멀리서 병우를 지켜보다가 화장실로 가 손을 벌벌 떨며 담배를 피웠다. 몇대 피우고 나니 메스꺼운 게 좀 가라앉았다. 다시 가보니 병우는 벌써 한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인혜는 역사 안 상가를 배회했다. 앙증맞게 아이 옷을 진열한 가게 쇼윈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 병우가 없었다. 놀라 허둥지둥 아이를 찾아 주위에 물어보았다.
“요샌 왜 그리 전철역에 버려진 애들이 많은지……”
인혜는 핏기가 가시고 얼굴이 노래졌다. 걸음이 자꾸 헛돌았다. 아이 이름을 부르며 전철역 일대를 헤맸다. 그런데 병우는 정작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병우는 장난감 자동차를 늘어놓은 좌판을 가리켰다. 오줌을 싼 지 오래됐는지 병우 바지가 쌍그렇게 식어 있었다.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병우는 엄마 등에 업히자 칭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하릴없이 걷는데 눈에 익은 버스가 지나갔다. 인혜는 발을 멈추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인혜가 집과 학교에 매일 타고 다니던 버스였다.
버스 번호에 둥근 테가 둘려 있었다. 그날 아침 달력에서 본 빨간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인혜는 무작정 35번 버스가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인혜는 몇번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다시 추어올렸다. 정류장에 다시 35번 버스가 서는 것이 보였다.
과일 봉지를 들고 초라한 행색으로 반년 만에 집에 나타난 인혜를 보자 어머니는 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쌀쌀맞게 어머니 시선을 피하며 다그치는 물음에는 묵묵부답이었지만, 언니 인경이 밥상을 차리자 인혜는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웠다. 병우도 옆에서 할머니와 이모가 먹여주는 걸 잘도 받아먹었다.
“내 배 갈라 낳은 애가 어찌 그리 찬바람 나니?”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인혜는 어머니 푸념에 좀 누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하며 잠이 와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직도 젖을 안 뗐니?”
삼십대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마르고 쭈그러진 젖을 보자 인경은 화가 나 동생을 책망했다.
“젖을 뗄 겨를이 없어. 참, 인수네는 아기 낳았어?”
인혜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 그저께 아들 낳았어.”
모녀가 둘러앉아 아기 태어나던 날 이야기를 하는 사이 병우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인혜는 아이를 방에 눕히고 서둘러 앞치마를 두른 뒤 언니가 하던 일거리를 받아들고는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병우 아빠가 이번 제사에는 못 오니? 택배로 약주만 보내구.”
인혜는 놀라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언니에게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내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인경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인혜는 남편이 보낸 택배 상자를 찾았다. 주소를 확인하는데 손이 떨렸다. 택배를 부친 곳은 서울이었다.
가정을 이루는 경제 기반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함께 살아야 가족이라는데 소식을 모르고 산 지 벌써 반년째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하자, 지훈은 말없이 돌아섰다. 그러고는 그를 보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뒤 둘째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어물어물하는 사이 임신 삼개월이 훌쩍 넘어버렸고, 결국 금 모으기 행사장을 지나다 결혼예물을 푼돈으로 바꿔 위험부담이 높은 수술을 강행했다. 병우가 급성위염으로 입원했을 때도 인혜는 혼자서 아이 병상을 지켰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중간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와야 했다. 빚의 늪에서 헤어나 병우를 키우려면 이혼하는 도리밖엔 없는 것 같았다. 인혜는 지훈을 만나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미국에 있는 인선이었다.
“오늘 아버지 제사지? 못 가서 미안해.”
“거기서 음력 날짜까지 알아?”
“인터넷으로 달력을 보잖아. 인혜야, 어제 꿈에서 아버질 봤어. 이상하지? 서울에 살 땐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이역 머나먼 꿈자리엘 찾아오시다니, 내가 향수병을 앓나 봐……”
전화를 바꾸자 어머니는 수입산 조기를 국산 조기로 잘못 산 얘기를 시작했다.
“흠향하지 않을 음식을 어찌 제상에 올리냐 말이다.”
인혜가 된장을 풀어 제육을 삶는 동안 어머니는 지방과 축문을 꺼내 확인했다. 한획 한획 힘들게 써내려간 글씨는 삐뚤어지고 이지러져 있었다.
“인자 손이 떨려 제문도 못 쓰겠다. 내년부턴 니가 써라.”
비틀린 글씨는 손에 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떨림처럼 느껴졌다.
“죽기 전에 한번 만나고 싶어…… 너희 아버진 날 알아보지 못하겠지……”
어머니는 물끄러미 거울로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를 넘겨다 보며 쓸쓸하게 말했다.
“나도 못 알아볼지 모르지. 길에서 스쳐갔어도 그냥 지나쳤는지 몰라…… 너희 아버지 생사를 모르면, 의문을 풀지 못하면 차라리 내가 미칠 거 같은 때가 있었다…… 그래도 그게 나았을 거야.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도무지 헛꿈을 꾸는 것 같아……”
어머니는 고사리를 다듬다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아버지 소식이 끊기고 오륙년이 지났을 때였다. 할머니와 이모가 서울에 올라왔다. 이모는 조카들이 듣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엄마에게 재가할 것을 권했다.
“오년 이상 소식을 끊고 집에 안 돌아오만 이혼사유 되는 거 모르나? 하루라도 젊을 때 마음 바까무라.”
인혜는 등을 돌리고 책을 읽고 있었지만 이모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보지 않는 척하고 있었지만 가타부타 말이 없는 어머니를 불안하게 곁눈질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며 말했다.
“이서바(이서방)이 십년 지나쿠로 소식이 없으믄 더 지다리지 말고 제사 지내주그라. 기일을 모르는 사람은 예부터 9월 9일에 제사 지내니라. 이서바이 비명횡사해 객귀가 돼 구천을 떠돌면 되겠나? 살아 있어도 제사 지내주믄 어디서든 잘산다 캤다. 세상이 이래 어수선하고 세월이 부치이 소식 끊기고 생사 몰라 제삿날 모르는 집이 어디 한둘이가? 더는 지다리지 마라. 지다리는 건만치 몬할 짓이 없데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독을 닦기 시작했다. 이불과 요 호청을 죄다 뜯어 삶아 풀 먹여 살짝 말린 뒤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밟게 했다. 빳빳하게 다린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인혜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누울 때마다 햇살에 바싹 말린 베개 메밀속통이 사각거렸고 풀 먹인 이불이 바스락댔다.
어머니는 아이들 공부에 집념을 보였고 그 덕에 인경 밑으로 동생 셋은 대학에 갔다. 아버지가 실종됐을 때 다섯살이었던 막내 인수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였다. 어머니가 인혜 형제들을 불렀다.
“하루하루를 기다리며 살았다. 현실에선 만날 수 없으니 꿈길에서라도 만나려고 애쓰며 살았다. 십오년이 지났다. 살아 계시면 안 돌아왔을 리가 없다. 인자 제사 지내드리자.”
그러나 인혜는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은 아버지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설 것 같았다. 인혜 가족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통과의례를 치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장례를 지내며 망자와 분리되면서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인혜 가족은 그런 분리의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들은 줄곧 아버지를 기다려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기한 없는 기나긴 기다림이 계속돼왔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만남의 근사치로 다가가는 기다림이 아니라, 만날 가능성이 줄어드는 보람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버지의 행방은 인혜 가족에겐 삼십년이 되어가도록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실종되자 어머니는 몇가지 실마리를 붙잡고 아버지 행방을 찾아다녔다. 실종되기 전 아버지가 한 말과 행동은 일시에 모두 수수께끼가 되었고 동시에 행방을 쫓는 단서가 되었다. 어머니는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시신안치소의 주인 없는 행려병자 시신을 확인하러 다닌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방을 둘러싼 의문을 해명해줄 결정적인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목격자도, 증거도 없었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한 지점에서 끊어졌다.
인경은 동생들에게 아버지 제사를 지내드리자고 했다. 그러나 인혜는 아버지 제사에 반대했다. 살아 계실지도 모를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탱해왔던 사회구조가 해체된 이상 제사는 존재 의미가 사라지면서 스스로 폐기될 문화라고 인혜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인혜에게는 할아버지 제사의 추억이 있었다. 아버지는 인혜 형제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제문을 직접 썼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듯이 제문을 읽었다. 할아버지가 열네살 때부터 보부상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배운 이야기라든가, 아버지가 원당소학교에 입학하자 매일 고개를 세개나 넘어 아버지를 학교에 데리고 다닌 것도 제문에서 듣게 된 이야기였다. 학교가 파하면 논밭에서 김을 매다 하교시간에 맞춰 달려오느라 땀에 흠뻑 젖은 할아버지가 산 고개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이때가 당신의 삶에서 가장 진짜배기였다고 추억했다 한다.
인경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자 동네 외할머니 댁으로 몰려왔다. 병우도 그 소리에 잠이 깼다. 어머니 혼자 사는 좁은 아파트는 아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혜는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이 없었다. 다만 전화가 울릴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질 뿐이었다.
인혜는 남편과 선후배 사이로 만나 결혼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시간강사 생활에 지쳤던 것일까. 지훈은 벤처를 창업해보자는 친구 권유를 받고 들떴다. 한창 벤처기업 바람이 불 때였다. 전세금을 빼주고 사글셋방으로 옮길 때만 해도 인혜는 설사 실패하더라도 여기서 새로 시작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이 무너지고 투자자들이 손을 뗐을 때도 남편은 투자유치에 실패한 사실을 숨겼다. 고리사채를 끌어들이고 카드를 돌려 막으면서 시간을 벌어보려 했다. 채권자들이 들이닥쳤을 때까지 이런 사실을 몰랐던 인혜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논문을 쓰고 있었다. 빚 독촉을 피해 병우와 여관방을 전전하면서도 인혜는 논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인혜는 병우를 놀이방에 맡기고 일을 다시 시작했다. 오후에는 입시과외를 하고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논문에 매달렸다. 그러나 논문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인혜는 밤새 칭얼거리다 눈도 못 뜨는 병우를 이른 아침 놀이방에 맡기고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열람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잠으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인혜는 그즈음 천천히 걸어본 적이 없었다. 늘 뛰어다녔다. 일하러 갈 때도, 놀이방에 병우를 찾으러 갈 때도, 도서관에서 화장실 갈 때도 뛰었다. 낯선 놀이방에서 병우가 엄마를 기다리며 우는 듯한 귀울음 때문에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다.
낙타가 긴 사막을 여행할 수 있는 건 백리 밖 오아시스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라고 아버지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몸속 수분을 절반 가까이 잃고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맡았던 백리 밖 오아시스를 인혜는 꿈꿀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왜 나를 세상에 던져놓았을까?’
잠이 들면 다시 아버지 손을 놓치고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어린 시절의 인혜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아이는 병우로 바뀌었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산부인과 병원에 있는 올케였다. 모두들 전화를 바꿔 몸조리 잘하라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인혜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가방에서 병우 옷을 찾다, 인혜는 피 묻은 손수건을 발견했다. 전날 밤 원영이 발에 묶어준 손수건이었다. 유리 파편이 살을 아리게 하던 통증과 함께 맨발에 닿던 원영의 따뜻한 손길이 되살아났다. 인생엔 황금 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인혜는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손수건을 깨끗하게 빨아 반듯하게 펴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번 비누칠했지만 손수건에 진 얼룩은 쉬이 빠지지 않았다.
인수가 오자 아이들은 삼촌 팔다리에 매달렸고 집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기는 보고 왔니?”
“응, 병원에 들렀다 왔어. 어제보다 예뻐졌던데.”
모두들 새로 태어난 아기를 두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마와 딸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사이 제사 준비는 거의 끝났다. 제상을 차리고 시간이 됐다. 향을 사르고 혼백을 부르는 의식을 하자 자리가 숙연해졌다. 들뛰던 아이들도 덩달아 조용해졌다. 인경의 가족이 절을 하고 있는데 현관문에서 인기척이 났다. 인혜는 가슴이 가파르게 뛰었다. 조용히 들어온 사람은 인선의 남편이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뛰어왔는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어머니는 반가운 얼굴로 사위를 맞았다.
“마침 자네 차롈세. 제주 올리게.”
외국에 간 가족의 빈자리를 한국에 혼자 남은 인선의 남편이 대신했다.
인경이 나지막하게 축문을 읽었다.
“……아버지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하시고, 꿈에 나타나 부디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아버지가 실종되기 전까지 인혜 가족은 남들처럼 단란한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 어느날 아버지의 상담실로 환각 증세를 호소하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처음에는 본명을 숨긴 채 불면증, 변비, 소화불량, 환청 증세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추방된 야당 정치인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서 알아서는 안되는 정권의 치부를 듣게 되었다. 청년은 그의 결혼식장에 사람들이 모일 것을 꺼린 통치자가 약혼녀를 어떻게 미국으로 빼돌렸는지 털어놓았다. 연인을 잃고 친구들마저 그를 피하게 된 슬픔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청년에게 상담료를 받지 않았다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것은 대학에서 해직된 뒤 겪은 고난에 대한 동료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 아버지에게는 불운이 잇따랐다. 늦은 밤 인적이 끊긴 길에서 검은 쎄단이 아버지를 치고 달아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대퇴부가 부러져 가슴에서부터 발끝까지 깁스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다 다시 출근했지만, 상담실은 수색영장을 들고 온 형사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실종됐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동분서주했다. 얼마 뒤 민주화의 봄이 왔다. 아버지의 실종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를 찾아갔고,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경찰에 행방불명 신고를 하자 담당형사는 오히려 여자나 돈 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고의로 잠적한 게 아닌지 캐물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를 기다려 실종을 위장하는 사례가 많아요.”
어머니는 심한 모욕을 느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피폐해갔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열정은 점점 스러졌다. 어머니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여자와 애정도피를 했다거나, 객사했거나 월북했다는 점괘를 내놓았다. 어머니는 점집을 찾아다니는 일도 그만두었다. 한번 자리에 눕자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종일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어린 자식들이 굶어도 끼니를 챙겨주지 않았다.
어느날 인혜가 학교에 갔다 와보니 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너희 아버지 행방을 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이걸 나 자신한테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지 모르겠어……”
기력을 차리자 어머니는 전직 교사의 이력서를 들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학원강사로 근근이 살림을 꾸리면서도 어머니는 인경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과외금지령이 내리면서 어머니는 일자리를 잃었고 그뒤 보험회사 외판원, 보따리 행상, 식당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그러나 인형공장에서 단순작업을 할 때도 어머니는 제대로 된 인형 제작공정을 정리해 책으로 내겠다고 하는가 하면, 태백지역을 돌며 책을 팔 때는 탄광촌 어린이도서관을 짓는 계획안을 당국에 내겠다고도 했다. 인혜는 어머니의 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문을 끝맺는 인경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을 되새기고 뜻을 받들겠습니다.”
‘아버지는 무엇을 내게 남겼을까?’
인혜는 자문해보았다. 사람은 죽으면서 남은 자에게 유언이나 재산, 시신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느 것도 남기지 않았다.
어릴 때 인혜의 집은 이사가 잦았다. 이사할 때마다 살림살이가 줄었지만 어머니는 어떤 상자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가지고 다녔다. 나중에 어머니는 상자들을 가리키며 “너희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건 아버지가 풍찬노숙하며 얻은 임상실험 자료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와 그 자료를 긴히 쓸 날을 기다렸다. 아버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해 이삿짐을 싸다 자료상자들이 심하게 곰팡이가 슬고 부식된 것을 알게 되었다. 비가 새는 부실한 집에서 여름을 나는 동안 상자를 보관한 캐비닛에 물이 찬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차곡차곡 정리돼 있던 자료들은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돼 있었다. 너덜너덜 떨어져나간 빛바랜 종이들 위로 회복하기에는 이미 때늦은 햇살이 무기력하게 내리비쳤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고 노고가 서린 임상기록은 학설을 뒷받침하는 활기찬 자료로 살아남지 못한 채 사장되었다. 사회에서 비롯된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열정을 기울였던 아버지의 유산은 이렇게 보람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아버지의 유산이 조용히 인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버지는 학자로서 실패한 사람이다. 이론이나 학설을 정립하지도 못했고 학계에 발자취를 남기지도 않았다. 한창 연구할 사십대에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학에서 해직된 뒤에도 전업하지 않았다. 사업이나 장사로 생활방편을 삼지 않았다. 아버지는 재야에 남아 연구를 계속했다. 연구실이 없어 풍찬노숙하면서도 연구 열정을 꺾지 않았다.’
인혜는 벌써 몇번째 논문에 실패했다. 여관을 전전할 때도 논문자료부터 챙겼고 우는 병우를 놀이방에 맡기고 돌아설 때 인혜는 이미 논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에서 쓴 이번 논문도 제때에 제출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어떤 말도 인혜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벼랑에 선 지금, 실패한 아버지의 삶이 인혜의 지친 어깨를 감싸는 것이었다.
제사상의 수저를 밥그릇에 꽂아놓고 모두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왜 밖에 나가는 거야?”
병우는 제사를 재미있는 놀이처럼 생각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할아버지 혼백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자리를 비켜드리는 거야.”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제사 전과 뒤가 음식 맛이 다르다. 혼백이 와서 흠향한 음식은 특이한 맛이 난다” 하면서 쉴 새 없이 옆에서 딸들을 참견하던 어머니는 제사가 가까워올 즈음 기력이 떨어져 정작 제사 지내는 내내 숨이 차 가르랑거렸다.
전화벨이 다시 울린 것은 제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인혜의 큰 눈이 수화기를 향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인수가 전화를 받더니 인혜를 바꿔주었다. 인혜는 방문을 닫고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었다.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오랫동안 끊어졌던 전기가 들어오며 전등불이 몸속에서 차례차례 켜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제사는 끝났다. 축문과 지방을 태우고 들어오는 인선의 남편을 어머니가 자리에 앉히고 물었다.
“인선이가 없어 제사는 어찌 모셨나?”
“아,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전화 한 통화면 제시간에 맞춰 제사상까지 차려주는 데가 있습니다. 희진이 엄마 돌아올 때까진 대행업체 손을 빌려야지, 어쩌겠습니까?”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기러기아빠의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인혜는 문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기울였다. 남편이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밖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혜는 마음이 급해 서둘러 밥을 먹고 일어섰다. 형부가 차로 데려다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택시를 탔다.
급히 서두른 탓인지 약속시간이 되려면 아직 삼십분이 더 남아 있었다. 그래서 택시비도 아낄 겸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기로 했다. 언니가 바리바리 싸준 짐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병우와 손을 잡고 가다 보니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먼 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석을 쇠려고 능곡 할머니 댁에 가다가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막차를 놓친 적이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차도 끊겼고 버스터미널 근방에서 밤을 보내기도 여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차라리 걸어서 할머니 댁에 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줄줄이 어린아이들을 업고 걸려서 통행금지된 밤에 먼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어머니가 낙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에게는 어려움을 즐겁게 풀어버리는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는 짐을 메고 들고 한 손에 인혜 손을 잡으며 흥겨운 여행이라도 떠나듯 언니들을 돌아보았다. 언니들도 각자 가방을 메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어머니도 잠든 막내를 포대기에 업었다.
얼마 가지 않아 차도를 벗어나자 논밭을 낀 조용한 황톳길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앞서서 걸으며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웃으며 귀를 기울이고 어머니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풀잎을 밟으며 밤이슬에 바짓부리가 젖는 것도 즐거웠고 풀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도 기분 좋았다. 이야기도 노래도 시들해지자 밤길에 숨어 있던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혜는 밤이 그토록 많은 소리를 품고 있는지 몰랐다. 밤송이가 툭툭 터지는 소리, 무거운 벼이삭이 바람에 쏠리는 소리, 새 날갯짓 소리, 갈대숲에 바람이 일 때 울리는 방울벌레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달밤에 아름답게 그늘진 밤은 온갖 소리들로 풍요로웠다. 떠들며 노래하고 상상에 젖다 보니 어느새 새벽 동이 트고 여명이 번졌다. 새벽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버지 고향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당산나무 아래를 지나며 인혜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로 걸어 들어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끔씩 들렀다는 대폿집을 지나 흙돼지를 키우는 돼지막을 돌아갔다. 샘물가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나뭇잎을 말아 까르르거리며 물을 떠먹었다.
“이 집은 예전에 누에를 쳤는데 지나가면 누에 뽕잎 먹는 소리가 났어.”
인혜의 귀에도 어느새 사각사각 뽕잎 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 댁에 다다랐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할머니와 고모들이 잠자리에서 뛰어나왔다가, 어린애들을 업고 걸려온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 길을 걸어왔지만 이상하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길의 동행은 어려움도 오히려 즐거움이 되는 인생의 비밀을 가르쳐주었다. 하나의 별을 보며 함께 걸었던 행복한 여정은 결국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인혜는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손을 잡고 걸으면 먼 길도 별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북두칠성이 오롯이 빛나고 있었다. 별에 특별한 감지기가 달려 있어서 인혜와 병우를 알아보고 환하게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병우야, 빨리 가자. 아빠가 기다리고 계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