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백석문학상 발표
백석문학상의 제9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故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으며, 상금은 1,000만원입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9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김정환 시집 『드러남과 드러냄』
심사위원
본심: 신경림 이시영 이숭원
예심: 박형준 이장욱 박성우
2007년 10월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2007년 9월 14일 모임에서 제9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박형준·이장욱·박성우 3인을, 본심위원으로 신경림·이시영·이숭원 3인을 위촉하였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심사대상으로 하는 규정에 따라 예심위원들이 각자 3권 안팎의 시집을 추천하도록 했는데, 예심을 거쳐 총 9권의 시집이 본심에 올라왔다.
김신용 『도장골 시편』, 김정환 『드러남과 드러냄』, 엄원태 『물방울 무덤』, 유홍준 『나는, 웃는다』, 이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정윤천 『구석』, 조연호 『저녁의 기원』, 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황학주 『저녁의 연인들』(가나다 순).
본심은 10월 22일에 진행되었는데, 본심 대상 시집 모두 각기 다른 개성과 시력(詩力)을 발산해서 심사의 어려움과 동시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김신용 김정환 엄원태 하종오 시집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끝에 김정환 시집 『드러남과 드러냄』(강 2007)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드러남과 드러냄』은 시인 특유의 예술론과 문명사적 사유를 일상의 언어로 탐구하면서 유려한 상상력과 활달한 리듬을 창출하여 요즘 보기 드문 시적 형상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아 심사위원 전원의 흔쾌한 합의를 얻었다.
심사평
신경림(申庚林) 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집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은 김정환의 『드러남과 드러냄』이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시집 또한 그의 이전 시집과 마찬가지로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사고는 너무나 복잡하고 은유나 상징은 보편성과 상식을 과도하게 초탈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복잡한 사고의 실오라기를 한올 한올 풀어가는 재미며 은유나 상징을 그의 개인사 속에서 보물찾기처럼 찾아내는 재미는 그의 시가 아니고는 다른 무엇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시집은 여기저기 발표한 시들을 모은 것이 아니고 전작으로 씌어진 작품으로서, 그의 시가 가지는 난해성과 복잡성이 어디서 기인하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도 있어 흥미로웠다.
분량이 보통 시집의 세 배쯤 되는 이 시집은 크게 1, 2권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다시 고교시절과 중학시절이 배경이 된 1, 2부로 나뉘어 있고, 앞뒤로‘서’와‘에필로그’가 붙어 있으며, 그 1, 2부는‘Interlude/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2권은 1, 2, 3부로 나뉘어 있으며, 1권과 마찬가지로 처음과 끝에‘서’와‘에필로그’를 달고 있다. 1권을 두 부로 나누고 2권을 세 부로 나눈 것은 둘과 셋의 나눔과 조화가 만들어내는 조형미와 안정감을 노린 극히 의도적인 구성일 터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배려 때문인지 내용과 관계없이 이 시집을 통독하고 나니 마치 아름답고 우아한 미뉴에트를 들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으며 내가 감동한 것은 이런 데만 연유하는 것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세월과 연륜의 파편들이 찾아지고 역사와 사회가 그의 몸에 남긴 상처를 볼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파편과 상처 들은 시로밖에 남길 길이 없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도 한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2권에서는 이 시집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아무렇게나 뒤져 읽어도 쉽게 절창과 마주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김정환 시인이야말로 아무도 걷지 않는 그만의 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외로운 시인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풀잎처럼 쏠리는 우리 시에서, 『드러남과 드러냄』은 그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면서 바위처럼 튼튼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시영(李時英) 시인
전작으로 씌어진, 1, 2권 합쳐 시만 무려 327면에 달하는 김정환 시집 『드러남과 드러냄』은 담대한 언어와 상상의 모험, 서양의 번역시를 연상시키는 듯한 독특한 어법으로 인하여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전(前) 시집들과 닮았다. “감각〓총체”“음악〓죽음”“웃음〓가면” 같은 김정환 특유의 구체보다 관념이 앞서는 중첩 메씨지들을 감안하더라도, 그리고 해설자 황광수의 집요한 추적을 참조하고서도 나는 이 시인이 요즘 어떤 메타철학을 시적으로, “예술〓총체”적으로 사유하고 있구나,라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그의 시집에서 감지해내지 못했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지 김정환이 “넘치는 지혜”(「해설」 329면)와 “천리안의 더듬이”(「시뮬레이션」)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방대하고 사유는 복합을 넘어 다기하고 시적 주제는 난해하다.
그러나 쉽다고 좋은 시집이 아니듯이 난해하다고 해서 나쁜 시집이 아니다. 얼마큼 실다운 내용과 새로운 차원의‘시’를 내장하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이상한 활력과 음악의 탄생을 선사한다. 김정환에게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 도저한 시적 활력과 음악은 어디로부터 기원하며, 도대체 앞행이 뒷행을 물고 달리는, 혹은 말들이 미끄러지면서 서슴없이 다른 차원의 말들을 낳는 이 눈부신 광경의 김정환식 정언명제들의 “연쇄적인 흐름”(「해설」 335면)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리고 단일한 그 무엇으로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때로는 독해 불가능한 이 시집의 강력한 흡인력은 또 무엇인가?
나는 이 시집이 발산하는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가, 그의 낱낱의 시편들이 형식과 사유 공히 고투 끝에 성취한‘일상의 심화’혹은‘일상의 심미화’에 있다고 본다. 김정환은 지금 나이든 화자로서 중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들여다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자본이 쌓아올린 이 거대도시 서울의 너저분하고 누추한 일상-「과거의 주소」 「아버지와 사거리」 등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서울의 풍경을 보라!-을‘나’의 일상대로 승인하면서 그 난삽한 파편들을 응축·심화하여‘미래〓전망’으로 열리는 “단단한 대리석”(「대리석」) 형상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영리한 그는 그 단단한 예술적 형상도 결국은 “흐름 위에 보금자리를 튼”(「해설」 358면) 것임을 안다. 모든 것은 다 시간 속으로 흘러 사라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자도, 한 평자(황현산 「김정환의 한국어 문법」,『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도 지적했듯이 이 많은 이야기들의 “황홀한 응집”(「3학년 8반」)인 「실업의 잡무」, 그리고 2권 1부의 표제시와 닫는 시 「Che Guevara사진」 「Che Guevara사진 2」는 이 시집의 백미이다. 김수영이 최고의 시를 만났을 때‘죽음의 음악’이 들린다고 했는데, 이 기묘한 도시의 번잡 속에서 최고의 음악을 연주할 줄 아는 그는 이 시대의 흔치 않은, 독보적인‘예술가〓시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엄원태의 『물방울 무덤』 또한 수상작으로서 손색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집이었다. 어떤‘결핍’이 만들어내는 “낮고 겸손”(「귀한 마주침, 텅 빈 충만」)한 마음자리가 발견한 시적 성스러움이 읽는이의 마음을 둔중하게 울렸다. 「불탄 나무」 「저녁 일곱시」 등의 시는 그로 인해 밝아진 내 마음자리를 오래 떠나지 않았다. 굳이 수상작을 골라야 했을 때 나는 다만 이 귀한 발견의 시편들이 우리 시의 활달하면서도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연주하지는 않는다는, 다른 말로 바꾸면 이 정직의 시학이 익숙한 세계를 너무 익숙한 방법으로 재현하는 데에 바쳐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다른 소중한 하나를 배제하는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그와 선의의 경쟁을 벌인 다른 시인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이숭원(李崇源)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집들은 모두 대단한 역량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한 시집을 선별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시인 백석의 이름을 앞세운 문학상이니 백석의 시정신과 통하는 시집을 천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으로서의 연륜도 고려하였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네 권의 시집이 눈길을 끌었다.
하종오의 『국경 없는 공장』은 소외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연민이 주조를 이루고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공생의 꿈을 그 사이에 담아 넣었다. 인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이 근간에 깔려 있다. 이것을 “진보문학의 갱신, 민족민중문학의 새로운 역할”(고명철의 해설)과 연결짓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많은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여러가지 현상을 아우르는 벼리가 뚜렷하지 않았다.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 역시 뛰어난 시집이다. 자연과 함께 살며 자연에서 배우는 생태적 삶의 전범을 오롯하게 펼쳐낸다. 계몽적인 담론이 개입하면서도 설득하려는 강제가 없는 점이 최대의 미덕이다. 적절한 시어를 찾아내고 새로운 시어를 만들어 배치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데, 형식의 변화가 없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엄원태의 『물방울 무덤』은 12년 만에 낸 시집이라 그런지 서정의 밀도가 아주 높다. 시인도 투병생활로 생의 극점에 서 있는 셈인데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생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서술한 점이 이채롭다. 절제와 견인으로 이룩한 몇편의 절창은 매우 감동적이다. 얼마 전 다른 문학상을 수상하였기에 이중 수상의 부담을 피하기로 하였다.
김정환의 『드러남과 드러냄』은 “넘치는 지혜를 가누지 못하고 하산하는 차라투스트라”(황광수의 해설)라는 말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어법과 이미지의 다채로운 전환이 눈부실 정도로 매혹적이다. 가슴속에 내장된 추억의 힘으로 360면이 넘는 전작 시집을 엮어냈다. 일상의 추억을 실존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개인의 감정을 시대의 아픔으로 환치하는 폭 넓은 시선이 압도적이다. 별다른 이견 없이 이 시집을 수상작으로 정하였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수상소감
그것, 참
김정환 金正煥
195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80년 『창작과비평』에 「마포, 강변동네에서」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예수전』 1·2·3 『회복기』 『좋은 꽃』 『해방서시』 『우리, 노동자』 『기차에 대하여』 『사랑, 피티』 1·2·3『희망의 나이』 『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 『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 『텅 빈 극장』 『순금의 기억』 『해가 뜨다』 『하노이-서울 시편』 『레닌의 노래』 『드러남과 드러냄』 등이 있다.
백석. 1936년, 24세 때 낸 시집 『사슴』 단 한권으로 한국 근대문학 1백년사에 참으로 단아하고 절통한, 단아해서 더 절통하고 절통해서 더 단아한 아름다움의 경지를 예리하고 넉넉하게, 예리해서 더 넉넉하고 넉넉해서 더 예리하게 새긴 시인. 그를 기려 제정된 상을 53세의, 덥데데한, 그에 비해 문학인생이 쓸데없이 길고 요란하고 지리했던 내게 주다니. 사양하자니 인생 더 요란해질 것 같고. 그것, 참. 20대라면 상이 무서운‘채찍’이겠고, 30대라면 더 잘하라는‘격려’겠고, 40대라면 기운을 조금 더 내보라는‘약발’이겠으나, 50대에 생애 첫 상(난‘연출’과科일망정,‘단상壇上’과는 전혀 아니다)을 이리 뼈아픈 대비로써 받다니 내 팔자가 이 상을 받고도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백석의 사망 연도가‘요절’의 1963년이 아니고‘무려’1995년이었다고 하니‘절정 이후’60년 가까이 이어진 백석의 침묵에 나의 장황할 뿐 쓸데없는 문학을 제물로 올리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것, 참. 요즘, 기침 감기 며칠 동안 너무 심하게 앓느라 담배를 끊었더니 난데없이 담배가 나를 끊어버렸다. 담배 생각이 좀체 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하게 난데, 없이, 드는 생각. 1930년대 영문학을 전공한 백석이‘사투리를 구사하며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썼다면, 이것은 민족주의적인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제임스 조이스가 그랬듯, 모국어와 국제어(혹은 제국어) 사이 간극을 통해, 망국의 설움으로 더 선명해진 언어의 흔들림을 통해 더 우월한 언어를 창조하려는‘국제적’혹은 언어예술적 노력의 산물 아니었을까? 백석은 견결한 고전주의자 아니었을까? 자신의 작품이 유행하되, 너무‘민족-낭만주의적’으로 읽히는 작금의 현실이 혹시 못마땅하시다면 나의 수상이 백석 선생께 혹시 위로가 되실까? 근데, 백석 선생도‘백선생’일세. 그것, 참. 속설을 꿰뚫고 백석문학과, 백석문학상과 나를 연결짓느라 엄청 애쓰셨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물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