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발표
참신한 상상력과 힘찬 서사로 한국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의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3,0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갈까』
심사위원
최원식 성석제 은희경 진정석 강영숙 백지연
2007년 10월
심사평
올해 첫회를 맞은 창비장편소설상에는 모두 187편의 작품이 투고되었다. 기대를 넘어선 양적인 풍성함에서 응모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들의 형식과 내용 역시 다양하고 폭넓어서 장편소설에 대한 창작자들의 고민이 숙성되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그동안 창비를 포함하여 최근의 문학계가 진지하게 논의해온 장편소설 활성화론은 서사정신의 회복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의 새로운 출구를 찾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현실을 포착하는 입체적인 시선과 긴 호흡을 요구하는 장편소설이야말로 한국문학의 활로를 모색하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 호응하듯 응모작들은 최근 문학독자들의 관심을 모을 만한 다양한 주제들을 반영하고 있다. 현대 도시사회의 물화된 삶과 풍속을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나 가족, 결혼, 연애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작품들은 여전히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인물 설정을 통해 경계넘기라는 주제를 형상화하려는 시도들도 눈에 많이 띈다. 판타지, 추리, SF, 팩션 등의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보여주는 탈현실주의 계열의 작품도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소재와 형식이 모두 의미있게 형상화된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 기록을 재구성, 실험하는 팩션 장르라든가 판타지 소설의 경우는 기성 작품의 형식을 안이하게 모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상당수 응모작들이 장편양식을 분량의 측면에서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단편의 연장으로서의 장편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끈질긴 문제의식이 살아있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1차 심사에서 올린 작품들은 김주희의 『어느 인사이더의 죽음』 박단아의 『몽키하우스』 백연우의 『나비꽃칼』 서유미의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갈까』 성희의 『치로-치로문학사』 윤재이의 『장미와 칼』 정윤수의 『기억, 투쟁!』 등 7편이었다. 이 중 2차 심사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백연우의 『나비꽃칼』 정윤수의 『기억, 투쟁!』 서유미의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갈까』이다.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소재로 다룬 백연우의 『나비꽃칼』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대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자유롭게 유랑했던 최승희의 생애를 문학적으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끌고 나가는 화자의 시점이 객관화되지 못하여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였다. 전기자료와 인물의 내면 고백, 시점의 전환 등 여러가지로 시도된 서술형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문제에서 비롯된다. 공들여 서술된 여성적 욕망과 경험 역시 인물들의 주관적 고백의 차원을 넘지 못해 공감을 끌어내기 어려웠다. 실존인물을 다루는 서사일지라도 그것이 허구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 애정과 몰입을 넘어선 냉정한 시선의 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윤수의 『기억, 투쟁!』은 방대한 자료와 이국적 공간 설정, 참신한 도입부 등으로 인해 눈길을 끈 작품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네명의 입주자들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서두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효과를 준다. 지역과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공간의 설정은 작가의 의욕을 드러낸다. 그러나 흥미로운 도입부와 달리 개별 인물들의 삶과 사연을 풀어나가는 전개과정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나열되어버렸다. 미적인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단조롭고 장황한 문체 역시 약점으로 지적됐다. 풍성한 자료와 소재가 인물들의 삶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밋밋하게 마무리된 것이 아쉽다.
긴 논의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서유미의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갈까』는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솜씨있게 끌고 가는 측면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이다. 물론 이 소설도 많은 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 일상세태에 대한 디테일은 자칫 평범한 세태담으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으며, 정직한 인물 묘사와 화법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사회의 일상 속에서 마모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그려내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는 위악과 냉소의 화법을 넘어서려 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미덕으로 다가왔다. 낭만적인 연애와 화려한 결혼, 직업적 성공과 자아실현에 대한 판타지를 가로질러 소설 속의 인물들이 궁극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환멸적인 일상 그 자체이다. 작가는 소비욕망에 포획된 세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도 이것에 대한 예리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잊지 않는다. 지치고 불안한 현대 여성들의 내면적 욕망을 향한 이 작품의 담담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실감과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기꾼의 풍부한 자질을 갖고 있는 이 작가가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창비장편소설상에 관심과 열정을 보내주신 응모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격려를 전하고 싶다.
최원식 성석제 은희경 진정석 강영숙 백지연
수상소감
서유미
1975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
사람들은 모두 제 몫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내 앞에 놓인 항아리는 유난히 거대해 보였고 내 손에 들린 바가지는 너무 작은 것 같았다. 나는 물을 채우기 위해 바가지를 들고 종종거렸다. 조바심 때문에 바가지에 든 물을 전부 바닥에 쏟은 적도 있고 다른 사람의 바가지를 기웃거린 적도 있었다. 겨우 몇번 붓고 나서 곧바로 자를 들이대며 물 높이를 확인했고 가끔은 밑 빠진 독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날씨 좋은 날과 놀고 싶은 날에도 빈 항아리는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면 나는 툴툴거리면서 바가지를 손에 쥐었다. 불평을 하면서도 내가 바가지를 들고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건, 저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면 포도주로 변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2006년과 2005년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가끔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내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과감하게 원주행을 택했는데도 익숙했던 것들을 끊어내는 일은 힘들었다.
바가지를 들고 같은 길을 반복해서 오가는 동안 내 안에서 부글거리던 욕심과 원망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나와 내 남편은 수도사처럼 정해진 시간표와 패턴에 따라서 살았다. 지극히 단순한 삶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지는 미련한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내가 미련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기대했던 글과 선택받은 글과 아직 쓰지 않은 글에 대해 생각한다. 항아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뜨겁다. 내 청춘이 항아리 안에 고스란히 누워 있는 기분이다. 여전히 쓰고 있는 글과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그래서 바가지를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수상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격려해주신 대학 은사님들과 형성 선배님들, 그리고 오랜 지인들께 감사드린다. 변함없이 응원을 보내주시는 부모님과 동생들, 시댁 식구들 그리고 미국에서 날아와 우리를 축하해주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또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제는 가족 같은 백만인 교우분들께도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부족함이 많은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기어이 살아남고 좋은 글을 써서 그분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한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 왜 제 글은 외면하세요,라는 투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의 글도 사용하십니까,라는 감격의 고백이 있다. 나에게 글 담는 항아리와 바가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수상소식을 전했을 때 눈물을 글썽이던 남편, 눈물을 닦은 후에는 광분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던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아마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바가지도 팽개치고 항아리도 때려부순 채 징징 울고만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보다 더 큰 소설가가 될 남편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