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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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金應敎

1962년 서울 출생.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씨앗/통조림』이 있음. eungsil@hanmail.net

 

 

 

비행기 접기

 

 

술집을 전전하다가

나이 들어 더이상 탱탱한 알몸이 아니기에

동네 남자들에게 속살을 팔다가

호텔에서 마싸지하며 지내다가

담배에 찌든 시꺼먼 간장 덩어리,

괄약근 늘어진 할망구 웃음, 급기야

불심검문에 잡혀, 그저께 한국으로 강제 송환된

그녀의 빈방에서

 

아내 팬티도 갠 적 없는 내가

가슴에 못만 박힌 여자 팬티를

비행기 접듯 접어 상자에 넣을 때,

주민등록상으로 쉰 하고도 넷에게서

국제전화가 왔다

 

선생님, 스커트나 구두나 침대나 냉장고는

유학생이나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요

옷장 위 박스에 제 방을 들락거리던 남자들 옷이 있어요

그건 북한돕기운동 하는 데 보내주세요

 

아내 팬티도 갠 적 없는 내가

낚시터의 미끼처럼 버려진 여자의 과거를

비행기 접듯 접어 하늘 창고에 날린다

 

 

 

야래향

 

 

나 태어난 이태원 근처에는 양색시들 많았어

아이들은 양색시가 사는 집을 야래향이라고 불렀어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어

꼭 양색시 집만 아니라

일본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 집도 그렇게 불렀어

야래향 앞에는 가끔 아이노꼬 소녀가

오도카니 양무릎 오므리고 앉아 있다 들어가곤 했어

투명한 물방울, 소녀를 훔쳐보던 나는

달빛 덮인 야래향만 생각하면 코끝이 열리곤 했지

야래향 야래향, 아이들은 소녀를 놀렸는데

야래향, 단어만 들으면

왜 코끝에 분냄새 돌고 어지러웠을까

 

30여년 지나서야 분냄새의 정체를 알았어

우연히 중국집 간판을 보고 알았지 뭐야

한문으로 夜來香, 밤에 오는 향기

 

문득 내 어린시절이 떼쓰며 엉겨붙어

자리가 꽉 찼다는 그 중국집을 밀치듯 들어간 거야

특히 밤에 향기가 멀리 진하게 퍼져간다는 꽃

야래향의 중국어 발음은 옐라이샹이라고 메뉴판에 써 있더라

짜장면하고 개구리튀김을 시켜 먹는데,

친구들과 짜장면 먹고 돈 모자라서 내빼던 순간,

둑가에서 회초리로 때려잡은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던 순간,

야래향이란 단어만 들으면 고추 끝이 따끔해지던 순간,

들통날까봐 비장해두었던 궤짝 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순간 순간들

그 많던 순간들은 어디로 갔는가

에라이 썅! 슬그머니 욕했는데 글쎄

 

옐라이샹 옐라이샹 노래 부르며

야래향 소녀가 쟁반 들고 다가오는 거야

가슴도 제법 봉긋 부풀어 있었어

소녀야 그때 미안해 말 걸고 싶어도 수줍고 떨렸어

너만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그냥 그랬어

라고 말하려는데, 아뿔싸, 식당 종업원이지 뭐야

그래도 기뻤어

야래향만이 남아 꽃향기 내뿜고*

그 시절 야래향 한됫박쯤 가슴 가득 채워졌거든

 

*“只有那夜來香 吐露着芬芳”: 중국 가수 떵 리쥔(鄧麗君)의 노래 「옐라이샹(夜來香)」의 한 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