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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문학과 역사학적 방법론을 병행한 홍명희 읽기

강영주 『벽초 홍명희 평전』, 사계절 2004

 

 

유시현 柳時賢

홍익대 강사 ryu8383@yahoo.com

 

 

 

홍명희(洪命憙, 1888~1968)는 식민지시대와 해방공간에 걸쳐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문학가이자, 신간회·민주독립당 활동을 통해 좌파와 우파 사이의 민족협동전선 활동에 앞장선 ‘진보적 민족주의자’이다. 즉 『벽초 홍명희 평전』(이하 『평전』)의 저자 강영주(姜玲珠) 교수의 표현처럼, 홍명희는 “작가이자 동시에 민족지도자”(5면)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인물 연구에 관해서는 문학과 역사학 두 분야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기록된 사료(史料)를 강조하는 역사학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은”(93면) 또한 “자기 이야기를 즐겨하지 않는”(153면) 홍명희는 접근하기 까다로운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가 무엇이며 이를 어디까지 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아직은 역사학에서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살피는 문학적인 방식이 수용되기는 어렵다. 저자는 홍명희의 문학작품은 물론 역사학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료를 활용하여 홍명희의 개인사와 시대상을 생동감있게 복원했다.

The Quarterly Changbi흔히 접하는 위인전이나 자서전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태어난 시기의 시대적 환경이 어떠했는가, 어느 가문 출신이며 어느 학교에서 학문적 수련과정을 경험했는가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태어난 시기가 이후 그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수십 수백에 달하는 ‘누구의 자손’ 및 ‘어느 학교 출신’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평전』은 이러한 전형적인 서술에서 탈피하여, 홍명희와 저자 사이의 ‘가상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홍명희의 삶과 사상, 문학을 복원하고자 했다. 저자는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오늘날 소설 『임꺽정』을 읽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홍명희의 감회 및 북에서 고향 충북 괴산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을 미루어 ‘상상’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상상’은 철저하게 역사학에서도 활용하는 자료를 통해 이루어진다. 『평전』이 전공자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상정하고 씌어진 글이기에 인용자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달고 있지 않지만, 저자의 공저서인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사계절 1996)에는 홍명희의 저술, 홍명희와의 대담, 홍명희에 대한 인물평 등을 수록하고 있다. 『평전』의 ‘가상대담’은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입체적으로 이루어진 서술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상상력의 표현이면서 감성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의 ‘가상대담’은 한 인물의 삶을 한권의 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평전의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산문시 「사랑」과 소설 『임꺽정』 등을 통한 홍명희의 내면세계 읽기는–식민지시기 동안 홍명희의 삶의 중요한 고비를 채울 수 있는 자료로 사용됨으로써–한 인물에 대한 연구에서 역사학과 문학이 만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인물에 대한 평전은 한 인물을 통해 그/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읽는 방식이다. 따라서 근현대사 인물 평전은 한말–식민지시기–해방 이후라는 격동기 속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개별적 삶과 고민을 다른 어떠한 서술방식보다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인물 평전은 서술인물 중심의 역사서술이 강조되고 대상인물에 대한 ‘애정’에 빠지기 쉽다. 저자도 이를 피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인다. 예를 들면 홍명희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홍명희가 1909년 끄로뽀뜨낀의 『빵의 약탈』을 읽었고 “조선의 지식인들 중에서는 초보적이나마 사회주의 서적에 접한 거의 최초의 인물”(137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와의 관련성 여부가 정리되어야 하겠지만, 초기 사회주의 수용과정에서 홍명희보다도 국외(연해주, 일본 등지)의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경우들이 더욱 주목을 받아야 한다. 또한 1930년대 홍명희의 조선학운동과의 관련성을 논의하면서 저자는 그가 정인보·안재홍·문일평과의 사상적으로 밀접했음을 설명하고, “조선학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신채호의 사론들이 국내에서 발표되도록 적극 주선”(205면)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1931~32년 신채호의 글이 『조선일보』에 실릴 수 있었던 것은 홍명희보다 조선일보사에 있던 안재홍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평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의 큰 흐름 속에서 홍명희의 개인적인 삶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구성하고, 일반 독자가 즐겨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저자의 목표는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홍명희를 통해 한말–식민지시기–해방공간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아주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를 수용하면서 전통에 부정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신지식층’ 내부의 다양한 결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평전』을 통해 볼 때 홍명희는 한학을 배운 노론 명문가의 양반 출신으로 신학문 수용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유교지식인과 달랐으며, 신간회 활동 등 민족운동에 참여하였고, 일본의 근대에 압도된 ‘민족개량주의자’ 최남선·이광수와 달랐으며, 또한 사회주의 사상운동과 프로 문예운동에 참가함으로써 안재홍·정인보와도 다른 삶의 궤적을 걸었다. 다시 말해 『평전』은 홍명희 개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물들의 활동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준다.

시대가 인물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조선의 삼재(三才)’라고 불린 홍명희·최남선·이광수는 각각 두살 터울로 1910년대 신문화의 기수인 동시에 식민지시기 학술·문화계를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홍명희 개인뿐만 아니라 홍범식–홍명희–홍기문–홍석중으로 이어지는 그의 가문 역시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특하고 의미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민족운동가로서 홍범식–홍명희–홍기문으로 삼대(三代)이면서, 한국문학가로서 홍명희–홍기문–홍석중으로 삼대가 이어지는 집안이다. ‘상상력’을 철저히 자료를 통해 구체화시킨 홍명희에 대한 『평전』이 이루어졌듯이, 앞으로 저자의 연구를 통해 ‘조선 삼재’를 함께 보는 연구와 이들 삼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때를 즐겁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