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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나리오

 

 

정상현

정상현 鄭尙鉉

추계예대 영상문화학부 4학년. 1979년생.

mariobava@hanmail.net

 

 

 

탈선

 

 

씨놉시스

사랑하는 딸을 껴안아준 뒤 아내에게 입 맞추고 집을 떠나 지방 출장을 가는 보험조사원 우고진.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불만을 느낀 중년 부인의 협박으로 피곤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행복하다.

태양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승용차를 몰고 국도에 진입하자마자 히치하이킹하는 팔등신의 매력적인 여자를 태우게 된다. 옆에 탄 여자를 시기라도 하듯 앞길을 내주지 않고 욕설을 내뱉으며 시비 거는 거친 밀렵꾼들. 고진이 밀렵꾼들의 지프를 앞지르다 작은 충돌이 발생한다. 더러운 일, 남들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방관해온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의 고진은 도망가듯 모른 척 지나간다.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 사이 사라져버린 여자, 그리고 밀렵꾼들의 등장! 고진은 승용차를 몰고 홀로 도망친다. 하지만 얼마 뒤, 사라진 여자는 고진의 차 트렁크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보험금 조사를 하면서 참혹한 사건사고들을 많이 본 고진. 그래서인지 그의 생활방식은 방어적인 경우가 많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하던 고진은 시체에 묻은 자신의 지문 등을 제거한 후 시냇물에 그 시체를 흘려보내고 모른 척 길을 떠난다.

마음을 안정시키며 출발하는 순간, 그 앞에 버젓이 놓여 있는 여자의 시체! 시냇물에서 갓 건져올린 듯 촉촉하다. 도대체 누가, 왜, 시체를 이렇게 옮겨놓은 것인지 아니면 고진의 착각인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믿지 못하는 듯 시체를 손으로 찔러본다. 보험금 지급에 원한을 품은 중년 부인의 복수인지 앞서 시비가 붙었던 밀렵꾼들의 짓인지 혼란스러워지는 상황.

시체를 다시 유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쫓는 것만 같은 승용차와의 미묘한 신경전. 일이 꼬여가면서 범인이라 생각되는 사람을 구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전혀 상관없는,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시체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 다시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 안에 놓여 있는 등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더욱 큰 위압감을 느끼는 고진. 심지어는 보이는 모든 사소한 것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을 법한 모든 것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적으로 여겨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승용차 안에 놓여 있는 피 묻은 칼과 날카로워지는 고진의 포악한 행동은 점점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데, 밀렵꾼들이 재등장하고 시비가 격해지는 과정에서 배후의 누군가가 이것들을 사주했음에 점차 무게가 실린다. 더불어 시체가 밀렵꾼들의 손에 있음이 밝혀진다. 시체를 유기하며 모른 척 피해가던 고진, 이제 시체를 찾아, 진실을 찾아 밀렵꾼들의 지프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극단적인 사건과 비논리적 상황에서 고진의 의식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새로 참혹한 진실이 점차 드러난다. 평화로워 보이던 고진의 일상에 숨겨진 진실, 고진의 일상과 현실에 숨어 있는 죄와 죄의식은 무엇일까? 죽은 여자는 그 죄의식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언제나 친절했던 우고진,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다. 초원의 맹수처럼 아래턱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송곳니가 근질거린다. 송곳니에 피를 묻혀야 진정될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그의 질주가 시작된다.

 

*지면사정으로 작품의 일부만 싣습니다.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등장인물

우고진(남, 39세) 허영미(여, 27세) 밀렵꾼 1(남, 50세), 밀렵꾼 2(남, 31세) 남자 1(35세)

 

 

 

(전략)

 

#14. EXT. 고속도로 → 국도 (낮)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는 고진의 승용차, 우회전하며 국도 쪽으로 빠진다. 수많은 차들에서 점차 멀어진다.

 

#15. INT. 고진의 승용차 (낮)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땅. 매끈한 고속도로에 비해 다소 거친 국도를 달리는 고진. 그에 따라 룸미러에 걸린 가족사진이 좌우로 왔다갔다 흔들린다.

(…)

다시 툭 내리치자, 조용해지는 내비게이션. 이때 저만치 앞에서 홀로 걷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고진의 승용차가 다가가자 뒤를 돌아보는 여자, 작은 가방을 옆으로 멘 채, 약간 하늘거리는 흰색 상의와 무릎 바로 위 정도까지 오는 흰색 치마를 입고 힘겹게 걷는다. 고진의 승용차를 보자 튀어나오듯 길 한가운데를 막아선다.

 

고진 (당황스럽게) 뭐, 뭐야?

 

당황스럽지만 할 수 없이 여자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고진. 육감적인 몸매, 긴 머리에 청순하고 맑은 느낌의 여자, 허영미. “창문 좀 열어주세요”라는 영미의 입모양과 손짓. 고진이 창문을 열자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밝은 미소를 짓는 영미. 영미의 얼굴에서 왠지 아내 가희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미 (밝은 음성으로) 좀 태워주실래요? 버스에서 졸다 잘못 내렸는데 또 안 오네요. (더운 듯 손부채질을 하며) 아, 덥다.

(고진, 갈등하는 듯 시계를 바라본다)

영미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안되나요?

고진 (어딘지 아쉬운 듯) 제가 좀 바쁜데……

 

고진의 시점으로 영미의 가슴골이 슬쩍 보인다. 침 넘어가는 고진의 표정.

 

#16. EXT. 국도 (낮)

 

조수석 문이 탁 닫힘과 동시에 먼지를 일으키며 출발하는 고진의 승용차, 부감으로 보이는데 어딘지 불안하다.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17. INT. 자동차 (낮)

 

여자와 둘만 있는 고진, 어딘지 약간 어색하고 긴장된 표정이다. 하지만 고진의 시선은 은밀하게 영미의 신체를 훑는다. 손가락에 끼어 있는 노란 반지가 반짝인다. (…)

 

고진 혼자 오셨어요?

영미 (갑자기 표정이 쀼루퉁해져 한탄하듯) 아니요. 남자친구랑 왔는데 싸워서요. 근데 그냥 버리고 가는 거 있죠.

 

영미, 얘기를 하자 속이 타는지 가방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영미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죠, 어린 남잔 별로예요. 맨날 이랬다가 저랬다가. 여자를 이해를 못해요. 이러니까 (룸미러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며) 유부남들하고 사귀나 봐요. 그렇지 않나요?

 

고진의 눈이 갑작스레 슬쩍 빛난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가족사진에 다시 한번 쏠린다.

 

영미 결혼하면 여자를 잘 이해해주죠? 그쵸?

 

영미, 요염한 눈빛으로 고진을 올려다본다. 고진의 시점으로 영미의 파인 가슴라인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이 보인다. 고진, 침이 꿀꺽 넘어간다.

 

영미 ○○에는 무슨 일로 가세요? 놀러?

고진 출장 가요.

영미 (뒤를 훑어보더니) 근데 짐이 하나도 없네요.

고진 트렁크에 넣어놔서요.

영미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잠시 머뭇거리는데 전화가 울린다.‘발신번호 미확인’.

 

고진 네, 우고……

중년부인(V.O.) (다짜고짜) 야, 이 개새끼야. 보험금 왜 안 주냐? 그렇게 양심을 속이고 하늘이 무섭지도 않냐. 소리 안 나는 총 있으면 쏴버릴 새끼야.

고진 (안 들리는 시늉을 하며) 여보세요? 잘 안 들리거든요.

중년부인(V.O.) 안 들리긴 뭐가 안 들려, 이 새끼야.

고진 (태연하게 목소리 톤을 굵게 바꾸며) 여보세요? 잘못 거신 거 같 거든요. 끊겠습니다.

중년부인(V.O.) (정말 잘못 걸었나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우고진씨 아니에요?

고진 아닌데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고진. (…)

커브길에 접어드는 고진의 승용차. 이때 차체 전체가 녹이 슨 2인승 지프 스타일의 고물차 한대가 앞에 나타난다.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기어가다시피 하는 고물차. 고진의 승용차, 속도가 점차 줄어들어 속도계는 거의 30km를 가리킨다.

계속되는 커브길에 고진은 앞지르기도 뭐해 난감해하던 중, 반대쪽에서 자동차 한대가 가로질러 간다. 고진, 시계를 보더니 클랙슨을 빵 하고 울린다. 그 클랙슨 소리에 반응하듯 속도를 올리는 고물차. 고진 승용차의 속도도 점차 올라가는데, 다시 속도를 팍 줄이는 고물차, 오히려 펑 하는 굉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다.

 

고진 뭐야? 왜 이래?

 

고진, 다시 클랙슨을 누른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고물차. 고진의 승용차 속도는 오히려 20km로 더 떨어진다. 고진, 다시 클랙슨을 누르면, 고물차 운전자는 싸이드미러로 고진을 흘끗 볼 뿐 반응이 없다가 오히려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

 

영미 저 사람들 왜 저래요? 그냥 앞질러버려요.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힘을 주는 고진.

 

#18. EXT. 국도 (낮)

 

고진의 승용차, 속도를 올리기 시작해 반대 차선으로 따라붙으면 고물차 또한 속도를 슬며시 올리면서 고진의 차가 끼어드는 것을 은근슬쩍 막는다. 고진, 앞지르려 하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자동차 때문에 타이밍을 놓친다.

 

#19. INT. 자동차 (낮)

 

이때 영미의 휴대폰이 울린다.

 

영미 (다소 딱딱하게) 왜?

 

화면에 보이는 고물차는 다시 속도를 늦춘다.

 

영미 (잠시 듣고 있다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응, 그래,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자기야 화 풀어. 자기 화내니까 내가 슬퍼.

 

고진, 다시 승부욕을 불태우듯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는다. 역시 마찬가지로 속도를 내는 고물차.

 

영미 (태도가 돌변하며 씨니컬하게) 이럴 줄 알았어. 뭐? 내가 잘못했으니 사과해야 한다고? 진짜 어이없어. (사이) 그래! 헤어져. 나도 너 같은 인간 싫어!

 

고물차와 나란히 달리는 고진의 승용차. 새까맣게 탄 험상궂게 생긴 고물차의 운전수 밀렵꾼 1과 조수석에 앉은 밀렵꾼 2. 야릇하고 비릿한 미소를 띠고 혀를 날름거리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고진과 영미를 바라본다. 커브길에서 자꾸 밀려 다시 뒤로 오는 고진의 승용차.

 

영미 그래, 너랑 연애 안해! 다른 남자 아무나랑 사귈 거야. 너보단 낫겠지!

 

휴대폰을 끊은 영미는 열 받은 듯 물을 마신다. 다시 고물차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고진의 승용차가 앞지를락 말락 하는 찰나, 영미가 물을 고진의 바지 한가운데에 엎지른다. 영미가 당황한 듯 고진의 바지 한가운데에 손을 대자 고진은 아찔해하고, 차가 좌우로 흔들린다. 고물차 안에서 보기에는 이들이 마치 애무를 하는 듯하다.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밀렵꾼들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영미 (글로브박스를 열며) 휴지, 휴지 어딨죠?

 

영미가 휴지를 꺼낼 때, 글로브박스에 놓여 있는 흰 편지봉투. 다시 쿵 닫히는 글로브박스. 고진, 액셀러레이터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자 속도 계기판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고진이 완전히 앞지를 때, 자동차끼리 가벼운 마찰이 발생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올려 도망가듯 가버리는 고진. 고물차,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린다. 조수석에서 밀렵꾼 2가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는 “야, 씨발새끼야!”라고 소리지른다. 괴로울 만큼 클랙슨을 울려대는 고물차. 고물차로부터 멀어지는 고진의 승용차, 룸미러 속의 고물차는 어느덧 점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작아졌지만 여전히 들리는 고물차의 신경질적인 경적소리! 끝에 탕 하는 총성 비슷한 소리가 들리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 룸미러로는 알 수 없다.

 

영미 (애교 섞인 목소리로) 미안해서 어떡해요. 제가 바지를 다 적셨네요.

 

영미, 여전히 서슴없이 고진의 바지를 닦고 있다. 고진, 민망해 영미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둘의 손이 닿는다. 어딘지 야릇하고 민망한 표정의 고진.

 

고진 괘, 괘, 괜찮아요.

영미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러면서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진의 바지를 닦는 영미. 이때 고진의 시선이 가족사진에 꽂힌다.

 

고진 (갑자기 약간 언성을 높이며) 됐다니까요!

 

다소 당황한 표정의 영미, 약간 겁먹은 듯 손을 뗀다. 고진의 시점으로‘3km앞 허목휴게소’라는 팻말이 보인다. (…)

 

#23. 화장실 (낮)

 

웅 하고 돌아가는 핸드드라이어. 드라이어 옆에는 콘돔 자동판매기가 부착되어 있다. 고진, 콘돔 자동판매기를 바라보며 드라이어에 바지의 젖은 부분을 대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다. 이때 변기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 1 나온다. 고진과 눈이 마주치는 남자 1. 고진은 태연스럽게 엉덩이를 빼고 능청맞게 손을 핸드드라이어에 말리는 척한다. 손을 씻는 남자 1의 시선은 거울을 통해 고진의 젖은 바지 부분에 머물러 있다. 남자 1, 젖은 손을 들고 핸드드라이어 앞에 다가서자 고진은 옆으로 슬쩍 물러난다.

고진, 남자 1에게 말리라는 듯 손동작을 하면 남자 1은 잠시 핸드드라이어를 보고 말리려는 자세를 취하다가 뭔가 찜찜한 듯 안 말리고 그냥 나간다. 나가면서 고진을 한번 쓰윽 돌아보는 남자 1. 고진과 남자 1의 시선이 교차한다. 남자 1, 이내 사라지면 다시 핸드드라이어에 바지를 말리는 고진. 이때 휴대폰 벨이 울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휴대폰을 꺼내 받는 고진.

 

고진 여보세요?

중년부인(V.O.) 우고진씨 맞죠?

고진 (아차 하는 표정, 목소리를 확 바꾸며) 아닌데요.

중년부인(V.O.) (맞다는 걸 확신한 듯, 하지만 차분하고 교양있는 목소리로) 저기요. 제 남편이 자살할 사람이 아니에요.

고진 ………

중년부인(V.O.) 부인 있고, 자식들 잘 크고, 학교 선생이 뭐가 아쉬워서 자살을 하겠어요, 자살을.

고진 저……

중년부인(V.O.) (말을 자르며) 우리 보험사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고진 저……

중년부인(V.O.) 선생님, 저희 힘들어요. 식물인간 된 남편…… 전 뭐 먹고 살아요, 가정주분데요. 도와주세요.

고진 사모님.

중년부인(V.O.) (다소 희망에 찬 목소리로) 네.

고진 그만 좀 하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중년부인(V.O.) (냉정하게) 한번만 더 물어볼게요.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없나요?

고진 (약간 짜증스럽게) 저한테 왜 그러세요?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중년부인(V.O.) (차분하게) 당신이 사람이야? (날카롭게) 니가 사람새끼면 이럴 수 있어? 짐승 같은 새끼. 당신 무사할 줄 알아?

고진 사모님, 동물원 좋아하세요?

중년부인(V.O.) (정적) 미쳤구나?

 

중년부인, 휴대폰을 뚝 끊어버린다. 꺼진 휴대폰을 잠시 바라보는 고진.

 

#25. INT. 자동차 (낮)

 

승용차 앞창(화면)을 향해 걸어오는 고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타는데 차 안에 있던 영미가 사라지고 없다.

 

고진 (문을 닫으며 혼잣말로) 화장실 갔나?

 

고진, 영미를 찾으려고 휴게소를 쭉 둘러보는데 싸이드미러에 보이는 밀렵꾼의 고물차! 몸을 돌려 뒤에 있는 고물차를 확인한다. 하지만 고물차 안 밀렵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감에 점차 크게 쿵쿵거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화면을 뒤덮는다. 빠르게 좌우를 살펴보는 고진. 밀렵꾼도 영미도 보이지 않는데 고진의 눈에 휴게소에서 걸어 나오는 밀렵꾼 2가 비친다. 고진에게 비릿한 미소를 씨익 날리며 걸어오는 밀렵꾼 2.

고진, 다급하게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열쇠가 바닥에 떨어진다. 다시 주워들고 열쇠를 꽂는 고진. 재빠르게 후진하는데, 뒤쪽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밀렵꾼 1의 모습이 보이자 동공이 커지는 고진. 후진하던 고진의 승용차, 스키드마크를 내며 방향을 돌린다. 다급하게 출발하는 고진의 승용차, 이와 동시에 가족사진이 떨어진다.

 

#26. EXT. 휴게소 (낮)

 

떠나는 고진의 승용차를 바라보는 밀렵꾼 1, 2. 이때 밀렵꾼의 고물차 트렁크 안에서 흔들거리며 요동치는 어떤 생명체의 소리가 들리자, 트렁크 쪽을 발로 팡팡 걷어차는 밀렵꾼 2.

 

밀렵꾼 2 쉿!

 

고물차 트렁크에서 요동이 멈춘다. 고진의 승용차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 밀렵꾼 1의 비릿한 미소.

 

#27. INT. 자동차 (낮)

 

국도를 질주하는 고진의 승용차. 룸미러를 흘낏흘낏 바라보며 뒤에 따라오지 않나 하는 불안한 표정의 고진. 룸미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비로소 안심하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듯하다. 룸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고진, 이내 입가에 피식거리는 헛웃음이 걸린다.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가족사진을 보고는 집어서 조심스레 다시 룸미러에 건다. 이때 울리는 휴대폰. (…)

뚝 끊기는 휴대폰, 동시에 룸미러에 걸려 있는 줄이 끊어지며 가족사진이 바닥에 떨어진다. 운전을 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집기 위해 한 손으로 바닥을 더듬는 고진.

 

#28. EXT. 국도 (낮)

 

카메라가 화면 바닥에서 열심히 돌고 있는 고진의 승용차 뒷바퀴를 잡고 있다가 서서히 틸트업하면, 가늘게 흘러내리고 있는 피가 보인다. 화면이 더 올라가면 트렁크와 열쇠구멍 사이에 끼어 있는 피 묻은 흰 옷자락이 보인다. 차가 가볍게 덜컹거릴 때마다 트렁크 문이 조금씩 위로 밀려 올라간다.

 

#29. INT. 자동차 (낮)

 

의자 밑에서 손가락으로 간신히 사진을 집는 고진. 몸을 일으켜 제대로 앉으려는 찰나 자동차가 돌부리에 걸려 한번 덜컹거리더니 고진의 시점으로 룸미러에 트렁크가 확 열리는 것이 보인다.

 

#30. EXT. 국도 (낮)

 

화면을 향해 다가오다 끼이익 멈추는 고진의 승용차.

 

고진 (룸미러를 보며 짜증난다는 듯) 뭐야.

 

문을 열고 내리는 고진의 등 뒤를 화면이 쫓는다. 트렁크 뒤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옆에서 젖혀진 트렁크를 손으로 내리민다. 그리고 운전석 쪽으로 다시 몸을 돌리는데, 물컹하는 둔탁한 느낌과 함께 트렁크 문이 위로 튕겨 올라간다. 고진, 침을 꿀꺽 삼키고는 불안한 시선으로 트렁크 쪽으로 몸을 돌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삐쭉 트렁크 쪽으로 고개를 내밀면,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피 묻은 손이 보인다. 그리고 손가락에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반지. 이어 보이는 여자의 피 묻은 팔. 비로소 다 드러나는 여자의 뒷모습, 영미의 옷차림새다.

고진, 불안하고 떨리는 손으로 트렁크 속 여자를 자신의 쪽으로 돌리면 가슴에 날카로운 것으로 찔린 듯 피가 번져 있고 바닥은 피범벅이 되어 있다. 창백한 얼굴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영미가 보인다. 비명소리도 안 나오는 듯 뒤로 나자빠지는 고진,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트렁크 속을 바라보면 고진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영미의 시체.

고진,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으로 영미를 쿡 찔러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영미. 시체의 코에 손을 갖다대보고 심장박동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여전히 반응이 없자 고진, 시체를 손으로 흔든다.

 

고진 (조심스럽게) 이봐요. 말 좀 해봐요. (점차 격하게 흔들며) 이게 무슨 일이에요? 말 좀 해봐요! 말하라고!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고진을 노려보고 있는 영미의 시체, 미동조차 없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쬔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왔다갔다 하는 고진,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한다. 손가락 끝을 잘근잘근 깨무는 고진. 그러다가 휴대폰으로 1, 1, 2를 누르고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통화버튼을 누른다. 애써 괜찮다는 듯 표정을 관리한다.

 

112(V.O.) 112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진 저……

112(V.O.) 네, 말씀하세요.

고진 숨을 안 쉬면 죽은 거죠?

112(V.O.) 네?

고진 사람이 죽으면 신고해야겠죠?

112(V.O.) (싸늘하게) 장난전화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겁을 먹은 듯 휴대폰을 탁 덮어버리는 고진. 트렁크 앞에서 왔다갔다 한다.

 

고진 (중얼대며) 생각을 하자, 생각을. 우고진. 생각 좀 하자.

 

영미의 시체를 한번 들여다보더니 결심을 한 듯 1, 1, 2를 누른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 갑자기 퍼붓는 빗소리, 천둥소리와 함께 끼이익 거리는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이 오버랩된다.

 

(후략)

 

 

 

심사평

 

시의 속성이 언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면 씨나리오의 본질은 상황을 경제적으로 꾸려나감에 있다. 시적인 밀도에 덧붙여지는 유장한 서사, 자본의 억압이나 시대흐름에 대한 예민한 안테나, 장편소설적인 내용을 단편소설 분량에 함축하는 까다로움, 인문학적 정서의 바탕 위에 공학적인 손끝으로 인간 세상을 구축하는 과정들. 앞에서 열거한 것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방법적·내용적 제약이 많은 것이 씨나리오의 운명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에 응모한 53편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그 까다로운 기능적인 지뢰밭을 잘 넘어온 유기체들로 보였다. 이야기 만들기의 훈련병들로서 그러한 지점을 통과했다는 것, 즉 100씬 내외의 분량으로 우리 삶의 여러 측면을 구성적 파탄 없이 무난하게 돌파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응모자 대부분은 스스로 씨나리오작가 세계의 등용문을 통과했다고 위무해도 좋을 것이다. 괜한 칭찬이 아니다. 응모된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펼쳐놓고 토론을 벌여보고 싶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차후에 영화계에서 만나게 될 날 개별 작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이것 또한 괜한 약속이 아니다.

53편의 작품을 놓고 이러저러한 흠집 내기와 시비 걸기를 했지만 6편의 작품은 심사위원의 테이블에서 살아남았다. 그 작품은 다음과 같다. 「사기와 연애의 방정식」 「탈선」 「판타스틱 맨션」 「딴쓰의 혁명」 「바람 불다」 「영화에 갇히다」. 「사기와 연애의 방정식」은 현란하고 빠른 전개, 매끄럽게 진행되는 대사 등으로 봐서는 프로작가의 작품 못잖은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기존의 특정 영화를 그대로 복사했다는 혐의의 늪에 빠진 아쉬움이 있었다. 환상의 맨션에서 벌어지는 고단한 청춘들의 이야기 「판타스틱 맨션」은 끈기를 가지고 좀더 발전시켜야 할 단계가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요시모또 바나나 소설을 읽는 듯한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세계를 안정적으로 펼쳐나간 「바람 불다」는 심사위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쎄미다큐 형식을 차용한 「영화에 갇히다」는 영화에 대한 그 진지한 자세로 인해 기성 영화인으로서도 다시 한번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환기하게 해주었다.

최종까지 생존한 두 작품은 「탈선」과 「딴쓰의 혁명」이었다. 의식의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는 한 남자의 로드무비인 「탈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묵직하게 진행되는 수작이었다. 반면 「딴쓰의 혁명」은 마치 주성치 영화를 보는 듯, 설렁설렁 농담하듯이 가볍게 이야기를 진행해서 아주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얘기를 듣는 듯했다. 이렇게 상반된 두 작품을 두고 두 사람의 심사자는 지난한 입씨름을 해야만 했고, 결국 인간 내면의 죄의식과 균열, 고통에 관한 진지한 세계관을 유감없이 드러낸 「탈선」에 수상작이라는 명분을 내주기로 했다. 명분. 창작품의 공모란 명분일 뿐이다. 이 말로써 다른 응모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모든 응모자들을 영화계에서 다시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전한 김희재

 

 

 

당선소감

 

낮은 모래산을 배경으로 구불구불 길게 펼쳐진 황량한 고속도로 위,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외롭게 달려가는 거대한 트럭. 화면, 점차 클로즈업해 들어가면, 트럭 밑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한 사내가 보인다. 굽이진 길을 지날 때마다 사내, 매섭게 돌아가는 바퀴에 뭉개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유일한 무기인 총을 아쉽게 놓치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매달려 있다. 거머리처럼.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럽의 좁은 길,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들 때문에 운전대 한번 잘못 꺾었다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곳에서, 미끈한 자동차 두 대가 미친 듯 쫓고 쫓기며 추격전을 벌인다. 길 위의 사람들을 장애물 삼아 아슬아슬하게 질주한다.

앞뒤 내용을 모르더라도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이런 아찔한 장면들을 만나면, 우리는 어느새 화면과 싸운드에 압도되어 손에 땀을 쥐고 그 스릴을 만끽한다.

이처럼 내게 재밌는 영화란, 우선 눈과 귀를‘즐겁게 압도’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던‘자동차 로드무비’의 쾌감을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펼쳐 보이고 싶었다. 환경적 특성상 고속도로, 빽빽한 도심공간보다 국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적하면서도 우발적 사건이 펼쳐질 수 있는 시각적 긴장감이 있고, 고요한 느낌을 주면서도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듯한 주변 소리가 자동차의 기계음과 맞물리면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사건 속에 있는 주인공의 신경을 점차 자극하며, 관객의 눈과 귀에‘즐거운 압도’를 선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도에서 한 남자가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여자가 시체가 되어 나타나고, 남자는 여자 시체를 유기하며, 승용차를 몰고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다. 관객이 보는 것은 그게 전부다. 하지만 점차 그가 기대어 살아왔던 가치, 모른 척 피해왔던 진실에 대면하는 순간, 최종적으로는 죄의식에 이르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눈과 귀로 즐기던 영상과 동떨어진 뭔가가 스멀스멀 다가와 관객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 그러다 낌새를 챌 때쯤 가슴이 먹먹하도록 한방 먹이는 것! 내게 궁극적으로 재밌는 영화는‘즐거운 압도’를 선사하던 영상이 어느새 한편의 이야기가 되어 날리는‘한방’, 그것이다. 씨나리오의 존재이유 또한 그 한방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 씨나리오는 재밌는 영화, 더 나아가 재밌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툴(tool)을 적용해본 실험작이다. 얼마만큼 성공했는지 모르며 현재도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중간과정에 있을 뿐이다. 무모해 보이는 실험을 하도록 용기를 주시고 조언을 해주신, 그리고 글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오도록 새로운 실험요소를 함께 고민해준 학교 친구들에게 고맙다.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정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