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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

 

김수영 미발표 유고-일기

 

 

1954년

 

 

11월 22일

 

침착한 사람

소설을 뱃속에 내포하고 사상의 성장을 기다리는 듯이 보이면서

사무를 처리하고, 사리를 가리고 남하고 이야기하되 친절을 기대(基台)로 하고

그러나 그 친절이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치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조심성을 잃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고 그 안에서 시간을 삭이어가면서

그는 어디까지 침착하려 하는가.

침착의 용사여.

시간과 소설이 그의 뱃속에 무지개와 같이 다리를 놓고 있다.

(유주현을 만나고)

 

 

11월 25일

 

(전략)1

 

‘프린스’라는 다방에 처음 들어가보았다. 지-아이들이 드나드는 것이 보이고 여자 손님들의 질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것을 핑계 삼고 오래 앉아서 책을 읽었다.

 

나의 머리 안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는 여자에의 관심을 나는 없애야 한다.

오직 문학을 위하여서만 내 몸은 응결(凝結)2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사실 오랜 시간을 나는 허비하고만 온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은 나를 절망으로 이끈다.

나는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추궁하고 있는 것은 저 눈먼 당나귀 앞에 걸린 인삼 같은 것이 아닐까.

죽는 날까지 이것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되는 날이 올는지 아니 올는지, 삭막하고도 고통스러운 이 인삼을 얻기 위하여 나는 결국 맴을 도는 불쌍한 당나귀가 아닌가?

 

오늘의 자랑이라면 ‘프린스’다방에서 오래 앉아 책을 읽었다는 것.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좀 오래 앉아 있을 만한 인내심이 생겨야 할 터인데.

이것은 강인한 정신이 필요하다.

오래 앉아 있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을 배우자.

육체와 정신과 통일과 정신과 질서와 정신과 명석과 정신과 그리고 생활과 육체와 정신과 문학을 합치시키기 위하여 오래 앉아 있자!

 

 

11월 27일

 

(전략)3

 

집에서 나오는 길에 이모집에를 들렀다. 별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글픔에 쫓기기 시작하는 나는 진정할 수 없는 마음을 쉬우기 위하여 갑자기 누구의 얼굴이라도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양식 도아를 열고 시어머니와 동네 여편네들과 앉아서 이모는 잡담을 하고 앉았었다.

“아주머니 왜 어머니는 자꾸 집에서 나가라구만 하우. 내가 그렇게 보기 싫은가?”

하고 속으로 지나친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응석 비스듬히 이런 말을 던져본다.

이 말을 들은 이모의 시어머니가 옆에 앉았다가 창을 는다.4

“아니 왜 장가는 아니 가는 거야? 나이 먹어 늙으면 어떻게 한담.”

야멸찬 어조다.

내가 무엇이라 여기 대항하기 위하여 말을 만들기도 전에 이모가 시어머니의 말을 받아

“정말 그러더라 요전에 어디 물어보러 간 데서도 그러던데. 너는 어머니하고 따로따로 살아야지 출세한다고!”

나는 이제 이러한 공격들에 정면으로 대항할 힘을 잃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무슨 말을 만들어볼까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에 이모는 젖먹이를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너 왜 어머니한테 붙어 있니? 집식구들을 벌어 먹이려고 있니?”

“아 그럼 돈으로 벌어야 꼭 버는 거요. 정신으로도 버는 수가 있지.”

하는 나의 말은 사소한 효력도 발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모욕, 아니 이것보다 더 큰 모욕에라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하여진다.

“그렇다고 나는 반드시 어머니를 부려먹기 위하여 집에 붙어 있는 것일까?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어머니 밑에서 갖은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하고 나는 이모의 집을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 홀로 생각하여보았다.

길가에 늘어선 오동나무는 잎을 다 잃고 노랗게 마른 땅 위에 그림자도 없이 서 있다.

뿌옇게 색을 잃은 초겨울 하늘을 힘없이 우러러보는 나의 머리는 한없이 답답하기만 하였고 어떻게 하면 금방 눈물이라도 흘러나올 것같이 마음이 엷어지기만 한다.

동경? 출가? ……그러나 어저께 이 길을 걸어나갈 때에 나는 극히 무심하게 살자고 결심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느끼기도 싫은 내 마음에 사람들은 아예 돌을 던져주지 말았으면 하고 나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아서 기도라도 하고 싶어졌다.

쓰라린 아침이었다.

 

어머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의 목숨은 저 풀 끝에 붙은 이슬방울보다도 더 가벼운 것입니다.

나에게 제발 생명의 위협이 되는 말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나는 돈을 벌어야 할 줄 알고

나의 살림이 어머니와는 떨어져서 독립을 해야겠다는 것도 알고

나의 길을 씩씩하게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나에게

더이상 괴로움을 주지 마세요.

 

어머니가 무엇이라 나에게 괴로운 말씀을 하여도 아예 바보같이 화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제발 모른 척하고 있어주세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상태를 비참하다고도 보지 마시고

걱정도 하지 마시고 간섭도 하지 마시고 그냥 두세요.

애정이라 해도 그것이 괴로운 나는 지금 내가 얼마큼 타락하였는지 그 깊이를 나도 모를 만큼

한정 없이 가로 앉아버렸습니다.

 

(하략)5

 

 

11월 28일

 

김수영27면(누끼)

 

중국인 소학교 운동장에 있는 ‘이런 운동기구’에 매어달리어서 아이들이 째째거리며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윳빛 황혼 유리창 문 앞을 스쳐가고 이 초겨울 메마른 운동장에는 어느덧 아이들의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운동장 저편에는 서울의 유수한 빌딩들이 두부조각같이 서 있고 그 아래 고기점같이 깔려 있는 벽돌집에는 전기불이 금가락지 같은 테를 두르고 비치고 있다.

식은 이 한점 전깃불을 보려고 시선을 모은다. 그러나 그가 두번째 생각하던 고개를 고쳐서 들어볼 때 그 불은 꺼져버리고, 소학교 마당에는 다시 아이들의 검은 그림자가 어정댄다. 어느 놈은 연회색 시멘트 층계 위에 드러누워 있는 놈도 있고 어느 놈은 층계를 올라서서 학교 교사 안으로 들어간다. 모두 열닷6을 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로구나 생각하며, 식은 눈에 짚이는 대로 그의 나이를 점쳐본다.

암만 보고 있어도 이 평범한 풍경이 싫지가 않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신의 생각도 저 풍경들과 같이 특색이 없으며 구스한7 것뿐이다.

‘어디 시골 학교에 교원 노릇이나 하러 갈까?’

이렇게 자문하여보았으나 이런 장래에의 계획도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열흘이고 한달이고 이렇게 한정 없이 앉아서 저 풍경 속에 빨려 들어가보고 싶은 의욕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든가, 그들의 움직임이라든가. 그들의 주고받는 말 같은 것도 그러하였다.

식은 그냥 그것을 보고 듣고만 있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무한한 향기가 풍겨나오는 것 같다고 그는 느끼는 것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11월 30일

 

결론은 적극적인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설움과 고뇌와 노여움과 증오를 넘어서 적극적인 정신을 가짐으로 (차라리 획득함으로) 봉사가 가능하고,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 전체가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생활이 발견되고 사랑이 완성된다.

비록 초 끝에 묻어나오는 그을음같이 연약한 것일지라도 이것을 잡는 자만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마음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이다.

 

비참과 오욕과 눈물을 밟고 가는 길이지만, 나는 오늘이야말로 똑바로 세상을 보고 걸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을 의식하게 되었다. 말론 쉽고 평범한 것이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도 무한한 고통과 남모르는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나 지금 나는 지나간 일을 헤아릴 틈이 없다. 앞길이 바쁘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지(旣知)의 ‘나’보다는 미지(未知)의 ‘나’가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더 한층 앞길이 바쁘다는 초조감에 빠지는 것이다.

나무를 보더라도 검은 진창을 넘다가도 바람이 뺨을 스치고 가는 것에 눈이 뜨이듯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린다. 이러한 감정이 일시적 감상(sentiment)이 되지 않기를 원할 따름이다.

희망은 구태여 찾을 것이 아니지만, 다가오는 희망을 애를 쓰고 버릴 필요는 없다.

자기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던 자에게 처음 희망의 의식이 돌아올 때에 그것은 가을의 새벽 햇빛보다도 맑고, 부드럽고, 산뜻하고 반가운 것이다.

희망을 의식한다는 것은 ‘사는 권리’를 얻었다는 의미가 되고, 삶을 찾아야겠다는 의무감을 준다.

창밖에서는 늦은 가을 궂은비가 덧없이 내리지만, 지금 나의 가슴속에는 봄의 새싹이 터오르는 것 같다. 나는 지금 희망의 지평선 위에 두 다리를 버티고 크게 서서 두 손을 훨씬 치키면서 기지개라도 켜고 있는 셈이다.

생활을 찾아가자. 나의 길 앞에 원자탄보다 더 무서운 장애물이 있으면 대수이냐! 지금이야말로 아깃자깃한, 애처로운, 그리고 따스하고, 몸부림치고 싶은, 코에서는 유황냄새 같은 것이 맡아오는, 와사등 밑에 반사되는 물체처럼 아련하고도 표독한 생활을 찾아가자. 자유는 나의 가슴에 붙은 흰 단추와 같다.

 

아름다운 여자와 신(神)을 꿈꿀 필요는 없다.

너의 앞에는 깊은 너의 업이 있나니 너의 온몸을 문대고 나가야 할 억센 업이 있나니

작고 속되다고 남을 비웃기 전에 너 자신의 작음을 부끄러워하고

도달하지 못할 우주의 미개지를 향하여 사람의 무기가 아니고 무슨 신(神)의 무기처럼 날아가거라.

 

너의 모-든 말이 없어질 때, 너의 소설(小說)이 시작한다.

 

소아과 병실에서 일하는 여의사는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너무나 말쑥하게 보이는 생활. 저것을 해부하고 저것을 로마네스크화하는 방법은?

 

흡사 원숭이같이 생긴 갓난아이가 간호원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살빛도 짐승같이 까무잡잡하고 얼굴이 앙상하게 뼈만 남은데다가 쌍꺼풀이 진 큰 눈이 도무지 사람의 눈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조그마한 생물은 살아 있었다. 살아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눈이 가더라.

그의 부모는 어떠한 사람일까? 역시 이 어린아이와 같이 그렇게 뼈만 남은 해골같이 생긴 사람일까?

장사하는 사람일까?

어디 회사의 중역일까?

군인일까? 혹은 부모가 없는 아이인가?

 

아침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국 말아 뜨던 숟가락을 멈추고 맨밥을 떠서 눈을 꾹 감고 먹어보았으나 도무지 효력이 없다. 목에 가시가 걸린 지도 참 오래간만이라고 생각하면서 밥 덩어리를 입 속에 넣고 침을 발라서 흙덩어리 삼키듯이 몇번 고생하여 넘겨보았지만 가시는 영 깐작깐작 목에 걸려 넘어가려 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앉아서 일을 하려던 것이 이렇게 되면 불가부득 또 거리로 나가야 한다.

차라리 속에 가시나 걸렸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다른 고장이라도 생겼으면 큰일날 노릇이다.

부랴사랴 옷을 갈아입고 수도육군병원을 찾아갔다. 이 병원에 친구가 군의관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동에서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싱거운 웃음을 짓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 하나 때문에 이렇게 먼 길을 수고를 하고 와야 할 생각을 하니 내 자신이 무슨 희극배우 모양으로 여간 우습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자동차를 내려서 중앙청 앞까지 다다랐을 때 소설가 H씨의 부인을 우연히 만났다. 어디를 가시느냐고 묻는 말에 부인은 어저께 저녁에 어린아이가 자동차에 치여서 지금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이라는 난데없는 소식을 고하면서 눈자위가 붉어지면서 눈물까지 글성글성하여진다.

“……하마터면 죽는 줄 알았어요!”

하면서 부인은 호소하는 듯이 놀란 나의 얼굴을 치여다본다.

“어서 가보세요. 저도 이따가 가보지요.”

하고 나는 우선 나의 목의 가시부터 빼야 할 생각으로 부지런히 경복궁 앞을 지나 수도육군병원을 찾아 들어갔다.

수술중이라는 C중위를 나는 복도 위에서 이십분 동안이나 기다렸다. 오래간만에 병원에 와보니 어깨의 기운이 탁 풀리고 기분 좋은 한숨까지 나오는 것이 방정맞은 소리지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친애감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나만이 혼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리라.

C중위는 내 손을 붙잡고 아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산보를 왔느냐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아냐 목구멍에 가시가 박였어! 이것 좀 빼주게!”

C중위는 한번 더 너털웃음을 웃고 나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층계를 올라가다가 C는 나를 돌아보고

“H씨 어린아이가 자동차에 다쳤네.”

하고 그는 내가 모르는 줄 알고 말하는 것이다.

“나도 알어, 지금 막 요 앞에서 H씨 부인을 만났어.”

하면서 무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가보니 당번 군의는 보이지 않았다.

기어코 나는 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C와 같이 병원을 나왔다. 둘이서 같이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는 데 우리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병원을 나오다가 병원차가 개천 한복판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C도 나도 웃었다.

빠진 자동차를 건져내기 위하여 군인 둘이 출동하여 삽과 곡괭이를 들고 방축에 치켜쌓은 돌벽을 뭉개고 있었다.

침을 연거퍼 삼켜보았으나 여전히 가시는 목에 걸린 채 좀체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것도 눈물이 나오도록 뜨끔뜨끔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 어떻게 침을 삼키면 아무렇지도 않다가 또 어떻게 침을 삼키면 딱작딱작거리는 것이 기분이 상하기 똑 알맞을 정도이어서, 이렇게 감질을 내면서 걸려 있는 놈의 가시가 더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참고 C의 뒤를 따라 하이야를 타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차를 내리자 궂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시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는 생각을 하니 귀찮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웃음이 나온다.

세브란스병원에는 소아과가 사층에 있었다. 우리는 사층의 8호실을 찾아갔다. H씨와 아주머니가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섰다가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하여 맞아준다.

나는 나의 목의 가시를 다행히도 세브란스병원 아래층에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빼게 되었으나 이 가시를 빼기까지 나는 근 한시간 반이나 기다리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그동안에 C와 H씨와 같이 역 앞에 다방에 가서 차를 마시고 들어왔으며, C는 H씨의 일로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여러가지 일을 보아주었다.

그러나 이 가시를 빼는 데 상당한 힘이 들었다.(未完)

 

(하략)8

 

 

12월 23일

 

처음 哲範9을 알았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이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詩와 文學 이야기를 오래간만에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였을 때 나는 한없이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이만한 사람도 지금 여기 환경 속에서는 가뭄에 콩 나기같이 어려운 일이다.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돈에 대한 근심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침잠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차게 ‘업’을 계속하여야 한다.

순수와 인내와 의지와 절약과 냉정은 영원할지어다.

 

 

엣징그10 (12월 28일, 화)

 

다방 ‘카나리아’11

 

소설가 C씨와 이른 점심을 먹고 찾아 들어가본 집. 여기는 K의 옛날 고향 같은 곳이었다.

“마치 정거장 대합실 같고먼.”

하면서 C씨의 시선은 다방의 주인이며 가극계의 여왕 역을 하는 카나리아가 앉아 있는 카운터- 뒤로만 흔히 날아갔다.

카운터 앞에 있는 테이블에서 회색 외투에 진한 화장을 하고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차를 마시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는 것이 유명한 박연마다.

“저것이 박연마야.”

하고 C씨는 나에게 약간의 자랑스러운 입김으로 일러준다.

“어느 미국놈하고 같이 살았대요. 그리고 지금 그 어린애까지 있다는데요.”

하고 K는 자기도 모르는 말로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K는 이 호화스러운 허영의 분위기에 자기도 조금쯤은 동화하여도 무관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K가 여가수 박에게 대한 말은 수일 전에 집에서 나오는 길에 버스 창 너머로 가수 박이 혼혈아 같은 나이 열아문살 되는 사내하고 같이 하이야를 타고 가는 것을 본 데에 기인하였던 것이다. 그 이상의 아무 특별한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한데서 모여 있는 것으로 남이 보면 무슨 짐승들이 서로 놀고 있는 동물원 우리 안의 풍경같이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는 K의 말에 C씨도 그렇다는 동의의 웃음을 지었다.

“나머지 원고는 이삼일 내로 써다 드리겠어요.”

하고 말하려다가 C씨의 모습이 너무 비참하게 보이어서 말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원고료를 탔으니까 이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것같이 생각이 되어서 그것이 싫어서 일체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K는 결심하였다.

지금 K는 C씨가 주간 하고 있는 잡지사에서 원고료를 받아가지고 나오는 길에 C씨를 청하여 점심을 대접하겠노라고 데리고 나온 것이다.

K와 C씨는 나이의 차도 있지만 어디인지 쑥스러운 사이다. K는 그저 선배이거니 하고 C씨를 대접하고 있었다. K가 C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C씨도 물론 K가 싫은 것은 아니다. K는 C씨의 소설이 싫었다. 그뿐이었다.

“여봐라! 여기 차 아니 가지고 오니?”

하고 맞은편 구석에 앉은, 지금 막 들어온 굵은 안경을 쓰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 남자가 소리를 벌컥 지르는 바람에 K도 C씨도 그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가수도 아니며 배우도 아니다. 뚱뚱한 몸집이며 기름 낀 두 볼이 나온 미련한 얼굴이 예술가 같다기보다는 실업가에 가까운 것이었다.

K는 그것이 흥행업자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K의 감각은 그러한 것을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바빴다. 무엇인지 모르게 바빴다. K는 언제나 바쁜 사람이다. 때로는 돈으로 바쁘고 때로는 원고로 바쁘고 때로는 사색으로 바쁘고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불안으로 바쁜 사람이다. 이러한 K인지라 지금은 허영에 바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추억에 바쁜 것이었다.

K의 눈앞에 비치는 다방 ‘카나리아’의 광경은 모두가 지나가버린 광경이다. 그리고 또한 썩은 광경이다. K의 썩어 없어진 과거와 같이 이 다방도 벌써 오랜 기억 속에 매장되어 있어야 할 광경이었다.

“이 집 주인이 카나리아지요?”

하고 K는 자기는 모른다는 듯이 C씨에게 물어보았다. K는 C씨에게 이러한 질문을 함으로써 일종의 승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K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이‘카나리아’ 다방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한하여서는.

K는 6·25 전에 정화라는 가극단의 댄서와 사랑을 한 일이 있었고, 그때 K는 정화의 외삼춘인 김인이와 친하게 되었다. 정화와 김인이는 미아리고개 넘어 싸그러진 오막살이집에서 같이 살았고 K는 매일같이 아침만 먹으면 이 집을 찾아가서 놀았다.

정화가 지방 순행에 나가서 집에 없을 때는 그는 김인과 같이 산보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K는 정화와 김인을 통하여 가극단과 그 허영에 관한 것을 하나서부터 열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김인은 K에게 이런 소리를 하였다.

“‘마스키슴’이라는 것을 내가 가르쳐줌세. ‘마스키슴’이란 우리말로 고치면 ‘가면주의’(假面主義)란 의미이지. 우선 우리는 가면을 써야 한단 말이야. 때는 이른 봄서부터 늦은 가을까지……”

하면서 철학자다운 열성을 띠면서 김인이 K에게 설득한 ‘마스키슴’의 신조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맵시나게 옷을 입어야 한다. 모양을 내는 데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이러한 수단을 써야 한다. 고물상업자하고 친하여야 한다……

 

문 들어오는 편 구석에 작당을 지어서 앉아 있는 희극배우 이철이가 손을 휘두르면서

“차를 차를 차를 자꾸 가지고 오라!”

하고 무대 억양을 붙여서 손짓까지 하여가며 넌센스를 피운다.

이 바람에 안경을 쓴 중년 사나이도 껄껄대고 웃었다.

다방 안은 C씨의 말과 같이 정거장 대합실 같은 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유행가수 남윤식이 필그림 가죽가방을 들고 나가면서

“내일 와! 내일.”

하고 검정 낙타외투를 입고 칼멘같이 머리를 웨이브한 여가수를 보고 웃는다.

 


1955년

 

1월 2일 (일) 밤

 

乘夜圖12

 

어둠을 일주하고 돌아왔다

나는 죽음13을 걸고 청춘을 지켜야 한다

어둠을 일주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어둠이 끝이 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속된 마음이란 남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타락하여버린 마음이다

죽음을 일주하고 돌아왔다는 말을 차마 쓰지 못하고

어둠을 일주하고 돌아온 것으로 영원히14f 내가 오인을 받더라도 나는 가만히 이대로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가슴에 청춘이 있으면

청춘과 죽음이 입을 맞추고 있으면 그만이다-

 

“여보게 나도 한몫 끼우세. ‘첼로’를 옆의 약방집에서 빌려가지고 왔으니 밤이 늦었더라도 나와 같이 삼중주15를 하여보세. 어서어서 열어주게.” 하고 영원이라는 놈이 문을 두드리면서 야단법석이다.

“당신은 여기에 들어올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바른쪽 어깨가 성하니까 문을 두드릴 힘이 있겠지만 우리는 둘이 다 왼쪽 발과 궁둥이가 없으니 당신에게 문을 열어주러 나갈 수가 없어요.” 하고 청춘 여사는 한층 더 힘있게 죽음을 껴안는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게 비행기가 날아와서 자네의 어깨를 떼어갈 걸세. 적어도 평명까지는 그렇게 될 것이야.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문을 열어주지.” 하는 죽음의 말에

“평명이 무엇인가?” 하고 영원이 물어보니

“평명이란 평할 평자에 밝을 명자이지. 그리고 그 뜻은……”

평명에 대한 해석은 죽음이 한 대답이 아니라 하늘이 돌멩이 던지듯이 가벼웁게 던져준 말이었으며

그 뜻은 바늘이라는 것이라나.

 

 

1월 5일 (수)

 

감기가 가서 이틀 동안을 누워 있다가 시 한편을 써가지고 동아일보를 찾아갔다.

새해에는 번역일을 아니하려고 하나 어찌 될 것인지.

희망사 사장에게 이십환을 선불을 받아가지고 ‘오-레오-마이신’을 사고 『하-파스』와 『애트랜·틕』16을 사가지고 다방 ‘행초’에 와서 앉는다.

그저께 밤에 쓴 시 「나비의 무덤」이 안 호주머니에 그저 들어 있다.

앉으나 서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 좋은 단편이여, 나오너라.

방 안에 있을 때의 막다른(절박한) 생각과 밖에 나와 보고 느끼는 세계는 너무나 딴판이다.

세상은 겉도는 것이다.

 

김수영39면

 

 

이런 그림이 아니다.

무슨 기계의 치차 같은 것이 나의 몸 위에서 돌아간다.

문학은 나의 복부(腹部)와 이 기계와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침이 나고 넓적다리가 차고 시리다.

문학을 위하여서는 의식적으로 몸에 병을 만들어도 상관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월 7일 (금)

 

冒險(아반출17)

 

○ 매춘부 집에 가서 ‘패스-포-트’를(이것은 나의 分身이다) 맡기고 잠을 자고 나왔다.

생리적인 쾌락이 나로 하여금 여기에 침윤시키는 것이 아니다.

요는 이것을 통하여 방생되는 冒險이 단조로운-너무나 단조로운-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미혹하는 것이다.

○ 내가 쓰는 글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1월 10일 (월)

 

동백꽃

 

“전라도에서 동백꽃을 38만환어치를 사가지고 왔대요. 그것이 몽땅 얼어서 원 손해를 보았대요.”

라고 하면서 동백꽃을 사노라고 다방 마담에게 권하는 사나이를 추운 아침에 차를 마시러 들어가서 보았다.

어제는 ‘호영’이를 만나서 ‘진수’와 더불어 계동 어느 술집에서 대포를 마시고 낙원동 S여관에서 잤다.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젊은 사나이에게서 짝사랑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그리고 모자간의 트라블에 관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것이 무슨 이야기였던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노선생과 「인생유전」을 본 어젯밤 일이 아직 생각이 남아 있어서 나의 명석한 머리의 흐름을 방해한다.

나의 사랑(노선생과의)도 바로 언 동백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나는 혼자 웃는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는 더욱 미웁다. 미워서 죽겠다.

 

 

2월 8일 (화)

 

PEONIES

牡丹

 

「自殺한 黃貞蘭과 作家 崔泰應」의 原稿請託을 기어코 拒絶하고 나니 큰 戰亂을 치르고 난 것처럼 氣分이 晴明하다.

나의 精神은 봄 窓 앞에서 아무 秘密도 없이 透明한 內部를 露出시키고 있는 유리甁 같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無色의 壓力으로 금방이라도 그 작은 甁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다.

‘뷔엔나’에 가서 유우젠·다비18의 『北호텔』을 읽다. 三章까지 읽으니 倦怠스러워 집어치고 나오다.

어린아이가 만화책을 보듯이 나는 이 小說을 읽어가야겠다. 심심하다.

東亞日報에를 들려서 容燦을 만나보다.

茶房 ‘梅蘭’에서 다섯시 반에 만나자고 한다. 燦과 만나보아야 뻔한 일이다.

그저 묵묵히 술이나 마실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술을 마시면서 약간의 (저울추만한) 不安과 不自由를 느낄 것이다……

그래도 그의 約束을 거절할 理由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약속시간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한시간 반은 착실히 남아 있다.

이 시간을 죽이려고 나는 德壽宮에 들어온 것이다.

 

PEONIES

牡丹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찾으려고 봄도 아직 다가오기 전의19 빈 덕수궁을 찾아서 들어왔나?

 

PEONIES

牡丹

 

이라는 빈 말뚝만이 박혀 있는 박물관 뒷동산 모란밭을 돌아서 아까 앉아 있던 벤치에 와서 다시 앉다.

중학생들이 오륙명 사진기를 가지고 옆의 풀잔디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데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대단히 신경에 거슬린다.

정원20을 산책하는 여인들도 있다. 여자를 볼 적마다 R선생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내일부터 또 계속하여야 할 그 지긋지긋한 ‘번역일’하고……

 

PEONIES

牡丹

 

이라는 간판을 보니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도서관에를 통학21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이 정체(停滯)22된 지금의 생활에서 무슨 새로운 빛과 기운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PEONIES

牡丹

LIBRARY

圖書館

 

아아 무슨 飛躍이 있어야겠다. 奇蹟 같은 큰 飛躍이 와야겠다.

오늘 아침 이불 속에서 나는 지나간 날 P가 한 이야기를 몇번이고 생각하여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날을 바랄 따름이다.”

책도 읽지 않고 여행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고 벗과도 사귀지 않는 그러한 생활.

그가 원하고 있었던 것은 필경 이것이었을 것이다.

 

12월 21일

 

<隨筆>

劣等感

 

어째서 이렇게 眩氣症이 나는가 하였더니 겨울의 氣候가 시키는 所作이 있었다. 季節의 推移가 주는 原始的 悲感에 몸을 委託하기에 익숙하여진 내가 ‘또 한번 무엇에 속았구나’하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이 나 自身의 愚鈍을 비웃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變化란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賢明도 마찬가지다.

나는 요즈음 命令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것도 겨울이 준 膳物이라고 생각한다. 추위를 몸에서 떨어버리기 위하여, 몸의 새로운 溫氣와 活力을 얻기 위하여, 그러나 그보다도 ○○적인23 不安을 털기 위하여 나는 命令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境遇에 나의 小心한 命令을 후뚜루 받아야 하는 것이 나의 아내이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한없이 창피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날에 생각나는 것은 특히 벗들이다. 벗이라 하지만 나의 벗들은 모두가 나 모양으로 每事에 自信이 없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外樣만 어른이지, 마음은 어린 兒孩보다도 軟弱하고 愚鈍한 사람들이다.

나는 올해에 난생처음으로 外套를 샀다. 어느 고마운 친구가 惶悚하게도 幾拾萬圓짜리 큰일을 맡아주어서 德分에 貧血症이 걸리기는 하였지만 二萬圓짜리 古物 駱駝外套가 생겼다. 사흘에 물 한통을 사먹는 (아내는 물장사에게 지불하는 돈이 아깝다고 三冬에도 사흘에 한통씩 물을 대어놓고 먹는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到底히 國産新造外套를 사 입을 수가 없어서 아내가 古物市場에 가서 美製古物을 사온 것인데, 이러한 外套도 나의 所重한 벗들 앞에 입고 나가기는 정말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집도 家族도 없는 그들에게 나는 지난겨울에 처음 이러한 사과를 한 일이 있었다고 記憶한다. 曰 “미안하이, 나만 家族을 가져서 미안하이.” 하고. 그리고 “그러나, 家族을 갖게 되었다고 내가 자네들보다도 幸福한 것은 決코 아닐세, 응”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벗들이다. 外套를 입고 나가서 미안한 感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째서 그런지, 나날이 추워서 그런지, 혹은 貧血症이 생긴 탓인지, 도무지 거리에 나갈 勇氣가 아니 난다. 나가면 所重한 벗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고, 만나면 또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만, 그리고 ‘나만 外套를 입었다’는 劣等感을 느끼는 것이 싫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모든 理由에서부터가 아니라, 어째서 그런지 나는 밖에 나가기가 싫어졌다.

九穴炭爐 옆에 앉아서 나는 나도 모르는 웃음을 짓고 있다.

옆방에서 버선을 꿰매고 있던 안해가,

“난로에 구공탄을 새로 넣어서 냄새가 날 터이니 조심하세요.”

 

 

12월 23일

 

歐羅巴로 떠나는 벗을 飛行場이 아닌 숨은 뒷골목에서 손을 잡고 헤어졌다. 그도 섭섭한 表情이라곤24 손톱만치도 없고 나의 얼굴도 그의 얼굴과 極히 同一하였을 것이다.

“편지를 꼭 한장 할 터이니, 형의 주소를 가르켜주시오”라고 하는 벗의 말에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였던가, 생각하기도 싫은 말을 던지고 나는 기어코 나의 住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1956년

 

2월 9일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고

이 그림자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시든 낙엽처럼 가는 곳마다 뚝뚝 떨어뜨리고 다니면서 그것을 모르는 것이고

그렇다고 내가 그대들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눈동자여

새싹이 틀 때에는 잠시 갈피를 잡으라)

 

오한이 전신을 사뭇 뒤흔든다

나는 나무 위에서 떨어진 새 모양으로

지저귀는 소리도 잊어버리고 하늘을 향하여 일어서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이 처참한 추락에서 일어섰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순서와 조목을 나는 번개같이 알아차렸다

그러나 신은 내 가슴에서

달아나고

나뿐만 아니라 나의 시야에 비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시체가 되었다

-이러한 시체와 같은 그림자를 사람들은 저마다 지니고 있으며25 이것을 볼 눈이 있지 않다

행복과 봄의 영광이 충만되26 방에서 탈출하는 법을 내가 배운 것은

이때부터이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않기로 맹세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더러운 香爐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검은 철을 깎아 만든, 고궁의 흰 댓돌 위의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잊어버린 애아(愛兒)를 찾은 듯이

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는 날이 오더라도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나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겠느냐

 

향로인가 보다

나는 너와 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인가 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원인을,

너가 지니고 있는 긴 역사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過誤)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여보는

향로가 이러하고

내가 그 향로와 같이 있을 때

살아 있는 향로

소생하는 나

덧없는 나

 

이 길로 마냥 가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티끌도 아까운, 더러운 것일수록 더 한층 아까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면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 보는 이 더러운 길27

(於 茶房 ‘月宮’)

 

무엇을 하러 나왔는지 우암동(예전 삼판통)을 거쳐서 여기까지 나왔다.

시를 쓰러 나온 것이 아닌데 또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시를 썼다.

어제 덕수궁에서 본 ‘향로’를 생각하니 어느 고독한 사나이가 하루에 한번씩 ‘향로’를 만지러 가서 거기에서 위안을 받는…… 환상이 떠오르고 이것을 실마리로 한 小說을 구상하여보려 한 것이다.

써놓은 시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걸어나온 것이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하여본다.

서울의 중황지대28에서 떨어져나와서 요마큼만 와도 이향(異鄕)의 냄새가 난다.

『北호텔』을 읽으려 하나 모가지만 꼿꼿하게 되고 책을 읽을 마음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무슨 이변(異變)이 있어야 하겠다. 다가오는 봄과 더불어 나의 생활에도 무슨 변함이 생겨야 하겠다.

그리고 그 이변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한층 더 안타깝다.

 

(하략)29

(於 龍山 ‘月宮’)

 

 

2월 15일

 

도회의 기름 위에 떠 있는 여자의 모습

바른손에 종이 묶음을 들고 왼손에는 ‘핸드·빽’과 ‘X레이’를 들었으며 ‘나이론’의 엷은 봄 목도리를 감았는데 작은 눈과 짧은 코가 도회의 지성을 대변하는 듯이 어디인지 싸늘한 감을 주었으며 자기의 의식과 남이 볼 의식을 통합하여 또 하나의 고도한 의식을 지향하는30 듯한 시선의 방향과 호리호리한 몸맵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면서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같이도 보이며 어떤 ‘밋숀’계통의 여의사같이도 보이며 고급관리의 젊은 부인같이도 보이는 자존심이 어지간히 강한 여자-이런 여자가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

도무지 ‘독립된 존재’같이 보이지 않으며 소속이 불선명하고 모든 범주에서는 벗어난 듯한 여자-

결국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현대의 비밀이라고 할까 투명한 비밀이라고 할까.

 

그렇다…… 여자에게는 비밀이 있다!

삼류극장 뒤에서 낮잠을 자는 듯이 혹은 버림을 받은 여자같이 시들어가는 다방 안의 식은 난로 옆에서 손등을 쓰다듬고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

건너편 모란집 여주인 같기도 하고 상업학교 어귀에 있는 문방구점 주인 여편네 같기도 한 허름한 옷차림을 한 중년 부인이 차도 아니 마시고 앉아서 이 찻집 주인여자하고 무슨 용무가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이런 여자가 와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다방 안에서 생동하는 사람(손님)들의 모양이 실제 이상으로 야비하게 보이는데

나는 책을 읽을 때 기운도 없이 맥을 놓고 앉아서

‘여자’를 생각한다.

아까 남대문 옆에서 서 있던 ‘레디’이며 지금 나의 건너편에 쭈그리고 앉은 목덜미가 허여멀건 여자이며 왼쪽 구석의자에 등을 보이고 앉아서 ‘슈-샤인-뽀이’에게 구두를 내어주는 눈이 똥그란 여자이며 이 다방 주인같이 썩은 얼굴을 한 여자이며 이러한 여자들의 운명과 고독을 나는 나의 마른 손바닥에 쥐어본다.

이 여자들도 모다 아무런 결론이 없는 여자들이 아니냐?

‘양키’ 상대의 음매부들 많이 살고 있는 적산가옥이 많은 골목에 오면 나는 마음을 놓고 여러가지 인생을 관찰한다.

결론이 없는 여자들과 지평선.

아아 검은 지평선.

(於 ‘月宮’)

 

‘미스 崔’(茶房 ‘돌체’)

병으로 드러누웠다고 창문을 여는 레지의 표정

 

아래층에서 유리 깨어지는 소리.

‘매담’이 불안한 표정으로 뛰어나가서 문을 열고 보다.

‘임축옥’씨가 웃는 낯을 지으며 슬며시 들어온다.

그의 얼굴에는 멋적은 빛도 없다.

 

 

2월 16일 (수)

 

矺薐草31

(ホウレンソウ)

 

숲이 창밖에 있다는 믿음이 이다지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만족이 지나쳐도 웃음이 나오는가 보다.

남산을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혜숙의 집을 들렀다. 내가 문학을 안한다면 같이 살아도 좋겠지만 나의 앞에는 문학이 있고 이 거츠러운 길에 그를 끌고 들어올 용기는 나지 않고 또 그가 끌려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명동에 나와 이활을 만났더니 돈은 아니되고 그가 사주는 저녁만 얻어먹었다.

이활과 헤어진 후에도 혜숙의 일이 자꾸 떨어지지를 않아 검은 숲이 고요한 창밖에 있는 빈 다방에 와서 혼자 앉아 있다.

눈이 떠 있는 한 ‘글’을 생각하고만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요즈음의 고독한 생활에 혜숙의 일은 부풀어오르는 봄의 꽃봉오리같이 따스하다.

 

(하략)32

 


1960년

 

9월 23일

 

スベテノ理念ノ敗北カラ

スベテノ誘惑カラ 立テ!33

 

西獨 革新勢力(政治)의 당면한 투쟁의 상대는

‘貧困’과

‘暴力’이라고.

아, 暴力의 抹殺을-

社會主義로부터도 暴力의 抹殺을-

 


1961년

 

3월 24일

 

이것은 ‘詩作’에도 물론 간접적인 影響을 가지고 온다.34

그처럼 R. 아롱의 『知識人의 阿片』은 그것이 社會主義를 反對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社會主義의 現代的 狀況을 前提로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詩 「數字」를 쓰다. 前作 「연꽃」에서 이루지 못한 ○○○ ‘飛翔’을 드디어 遂行하였다. 마음이 가뿐하다.

 

 

3월 25일

 

少數者가 暴力을 사용하는 것은 國家의 無力化, 엘리트의 沒落, 혹은 時代錯誤的인 制度 등으로 때때로 不可避하고 必要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理性을 가진 사람, 특히 左翼의 人士들은 보통 治癒法보다 外科醫의 메스를 써야 한다. 戰爭보다 平和를, 專制政治보다 民主政治를 尊重해야 하며 또 革命보다도 改革을 존중해야 한다. 때때로 革命的인 暴力은 그들이 希求하는 變化를 얻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 같고 또는 不可缺의 條件인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革命的 暴力 自霣는 옳은 것이 아니다.

-R. 아롱 『知識人의 阿片』

 

 

3월 26일

 

좁은 범위의 知識人에 한정된 保守主義는 經濟의 발전에 대해서가 아니고 영구적인 精神的 價値의 分散에 저항하려 애쓰고 있다.

-E.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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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날 일기의 앞부분은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누락된 뒷부분만 소개한다. 『김수영 전집』 2-산문(개정판), 민음사 2003, 482~83면.
  2. 원문에는 ‘의결’로 되어 있으나 한자 ‘凝結’은 ‘응결’로 읽어야 한다. 김수영의 오기이다.
  3. 이날 일기의 앞부분 역시 전집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누락된 뒷부분만 소개한다. 같은 책 483~84면.
  4. ‘창을 는다’는 아마도‘창을 넣는다’의 구어로‘참견을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5. 이 부분부터는 독립적인 시로 간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하여, 「꽃」이라는 가제를 붙여 새로 발견된 시편들에 포함시켰다.
  6. 열다섯살.
  7. ‘구스한’으로 되어 있는데 의미 파악이 곤란하다.
  8. 여기부터 끝까지는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같은 책 484~85면. 전집에는 여기서 하략된 부분을 별도의 일기로 간주했지만 날짜를 확정 못하고 ?월 ?일로 처리했는데 원문의 흐름으로 보면 그대로 11월 30일자의 연속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날만 날짜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9. 평론가 이철범을 말한다.
  10. ‘엣징그’는 ‘엣징’, 즉 영어로 ‘edging’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dging’은 ‘윤곽 그리기’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이 글이 구상중인 소설의 한 부분이거나 소설을 위한 습작이었음을 시사한다.
  11. 이 글은 ‘나비의 무덤’이란 제목의 노트에 1954년 12월 28일자로 쓴 글이지만, ‘꽁뜨’라고 이름 붙여 김현경 여사가 원고지에 청서한 글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청서본을 여기 소개한다.
  12. 이 글을 한편의 시로 간주하여 새로 발견된 시편들 속에 포함시킬까 했지만, 지나치게 산문적인데다 완성 여부도 불분명하여 그대로 두었다.
  13. 원문에는 ‘주검’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상 ‘죽음’으로 고쳤다. 이하 동일하다.
  14. 원문에는 ‘연원히’로 되어 있지만 ‘영원히’의 오기로 보인다.
  15. 원문에는 ‘삼중조’로 되어 있으나 의미상 ‘삼중주’로 고쳤다.
  16. 미국의 시사문예지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과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7. ‘아반출’은 아마도 ‘advanture’(모험)를 뜻하는 듯하다.
  18. 외젠 다비(Eugène Dabit, 1898~1936), 프랑스의 소설가.
  19. 원문에는 ‘닥아 전의’로 되어 있으나, ‘다가오기 전의’의 오기로 보인다.
  20. 원문에는 ‘저 원’으로 되어 있으나, ‘정원’의 오기인 듯하다.
  21. 원문에는 ‘동학’으로 되어 있으나, ‘통학’의 오기인 듯하다.
  22. 원문에는 ‘진태(停滯)’로 되어 있으나 ‘정체(停滯)’의 오기인 듯하다.
  23. 원문에는 ‘享望’(?)에 가깝게 표기되어 있으나 식별이 불가능하다.
  24. 원문에는 ‘表情이라는’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고려하여 ‘表情이라곤’으로 고쳤다.
  25. 원문에는 ‘있으면’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있으며’로 고쳤다.
  26. 이 부분이 ‘충만된’의 오기인지 ‘충만되어’의 오기인지 불확실하다. 어느 한쪽을 취할 경우 뜻이 완전히 달라질 우려가 있어 일단 그대로 두었다.
  27. 전집에 실린 「더러운 향로」(『김수영 전집』 1-시, 개정판 65~67면)와 비교해보면 행갈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문과 발표 지면과 전집 사이의 정밀한 대조를 통한 텍스트 확정이 긴요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8. 오기로 간주하여 ‘중앙지대’라고 고칠까 하다가 ‘노른자위 지대’의 뜻으로 읽을 수도 있어 그대로 두었다.
  29. 여기서 시 한편을 더 쓰고 있는데 「소라」라는 가제를 붙여 새로 발견된 시편들에 포함시켰다.
  30. 원문에는 ‘지양하는’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지향하는’으로 고쳤다.
  31. ‘파릉초’는 시금치를 말한다. ‘ホウレンソウ’는 그 일본말인데 원문에는 ‘ホウレンサウ’로 오기되어 있다.
  32. 이하는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33. “모든 이념의 패배로부터, 모든 유혹으로부터 독립하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34. 이 문장 앞에 6줄가량이 지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