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제23회 신동엽창작상 발표

 

고 신동엽(申東曄)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고 역량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신동엽 시인의 유족과 창비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상 제23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5년 11월 18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3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심사위원

본심:구중서 한기욱 남진우

예심: 손택수 천운영

 

2005년 7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심사평

 

예심위원들(손택수 천운영)의 노고를 거쳐 본심에 올라온 각각 다섯 권의 소설집과 시집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우선 시집보다는 소설집에 주목했다. 대체로 소설집의 성과들이 더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토론을 거쳐 강영숙의 『날마다 축제』, 김지우의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로 대상을 압축했는데, 서사기법과 표현양식, 문체와 세계관에서 사뭇 다른 이 세 소설집은 우리 시대 젊은 작가들이 구사하는 소설서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강영숙의 소설서사는 느리고 비연속적이지만 종종 환상성과 그로테스크의 요소와 결합되어 특별한 효과를 빚어낸다. 그는 지극히 낮은 목소리와 둔중한 언어로써 우리 시대의 황량하고 신산한 삶의 현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 예술적 근성과 끈기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단편 장르에서 요구되는 좀더 집중적이고 명료한 효과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지우는 투명하고 사실적이며 실감나는 언어, 특히 사투리 구사에 능하다. 일상적 현실을 꼼꼼히 묘사하는 성실성, 그 불가피한 부조리를 감내하려는 뚝심, 그리고 곤경의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자세는 사줄 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일상적 현실이 진정 무엇인가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사유와 치열한 탐색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민규의 소설서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엉뚱하기까지 한 그 재기발랄하고 거침없는 상상력이다. 물론 이 기발한 상상력이 매너리즘이나 말장난으로 떨어질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의 비루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정치한 묘사력이나 구어와 문어를 유연하게 섞어서 다성적 효과를 자아내는 소설언어의 혁신이 그의 상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박민규의 서사는 실업자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떨거지 인생들의 삶을 신나게 풍자하고 냉소하지만, 바로 그 장면에서조차 그들에 대한 작가의 근본적인 공감과 연민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의 서사는 흔히 균열과 파편, 그리고 불합리한 비약 등을 내장한 탓에 현실세계에 대한 엄정한 이해가 결여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확실히 그의 종잡을 데 없는 무규칙한 서사가 총체성을 내던져버린 시대의 특징적 징후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의 엉뚱하지만 기막힌 상상력이 종종 우리가 속한 이 거대하고 불가해한 현실에 힘차게 부딪치는―그리하여 그만큼의 사회적 통찰마저 성취하는―패기와 언어적 활력을 지닌 점을 높이 평가하여 심사위원들은 그를 신동엽창작상의 수상자로 뽑기로 합의하였다. 계속적인 정진을 기대한다.

〔具仲書 韓基煜 南眞祐〕

 

 

수상소감

 

신동엽-수상소감-이미지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울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 출간.

 

 

통보를 받은 그날 밤

누렇게 손때 묻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꺼내 읽었다.

달은 밝고

아깝게도 개발지구를 벗어난

경기도 외곽의

청보리 그믐밤이었다.

 

이십년 전

이 시집을 열심히 읽던 청년 하나가

 

가슴속에서 소릴 죽여 울기 시작했다.

 

오늘 상(賞) 하나를 받았다며 딴에는 흐뭇해하던

그, 모오든 쇠붙이 같은

자신의 껍데기가 부끄럽고 슬퍼서였다.

 

감사하고, 죄송하다.

더 열심히 쓰겠다.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말도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