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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조지프 스티글리츠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21세기북스 2008

대안적 세계화를 찾아서

 

 

이승주 李昇柱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eungjoo@cau.ac.kr

 

 

인간의얼굴을한세계화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가 또 한권의 책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의 전작들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rade for All)이 그러했듯 이번 책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Making Globalization Work, 홍민경 옮김) 역시 세계화의 음과 양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듯싶다. 1997년 금융위기 당시 IMF가 제시한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그를 기억하는 한국 대중에게는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세계화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화에 비판적이되 세계화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며, 더 나은 세계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양 극단에 위치한 친세계화론자도 반세계화론자도 아니다. 또한 정보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음에도, 선진국 중심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주류 경제학계 및 워싱턴 컨쎈서스의 옹호자들과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그의 이력 역시 특별하다. 그가 주류 경제학의 안락한 둥지에 안주하지 않고 이와같은 고단한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의 세계화 과정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전망에서 비롯된다.

세계화가 초래하는 문제에 관한 그의 주장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그에 의하면 세계 65억 인구 중 약 40%가 빈곤상태에 놓여 있는 등 (중국 이외의) 개발도상국의 빈곤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73면). 그는 더욱이 빈곤의 확산은 비단 개도국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초국적 이주는 선진국 비숙련 노동자의 실직 위험을 증가시키거나 임금의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153면). 즉, 선진국·개도국을 불문하고 현재의 세계화 과정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이것이 현재의 세계화 과정을 개혁해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또한 세계화의 진행과정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의 이득을 설파하면서도 자국 농민에게 농업 보조금을 계속 지급하는 미국의 이중적 행태가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실질적으로 저해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WTO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국제무역체제는 개도국에 불리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161면). IMF와 세계은행 또한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을 개도국에 일방적으로 적용하여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제기구의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않으며, 그 기구들이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이 배타적으로 반영되도록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453면).

전작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는 언제나 그의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특별기고문에서 그는 1997년의 위기를‘외환’위기라고 명명하는데, 여기서 위기를 보는 그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외환’위기의 발생은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한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한국 정부가 급격한 자유화 정책을 시행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지, 한국 경제체제의 구조적 결함 때문은 아니다(31면).

그의 세계화론은 여타의 세계화 비판론들과 구분되는 미덕을 지닌다. 우선 그는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데 언제나 열정적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공정한 무역씨스템의 구축,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의 개선, 지구온난화의 방지,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 증대, 개도국의 부채 탕감, 국제금융의 안정을 도모할 글로벌 준비제도의 개혁 등 그가 제시한 대안은 실로 방대하고 구체적이다. 이 점에서 그는 도도한 세계화의 시대적 추세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능사로 삼고 세계경제와의 단절 이외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게으른 여타의 세계화 비판론자들과는 분명 다르다.

또한 그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사실과 자료를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는 세계화 비판론자들과 다르다. 이들은 세계화에 적극 동참한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그러지 않았던 국가들보다 높았다는 주장에 대하여 결정적인 반박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티글리츠는 이 문제에 자신의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세계화론자들이 제시하는 자료는 개별국가가 선택한 세계화 전략의 다양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장한다. “자료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경제에 통합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고 나타나 있다. 그러나 성장의 원동력은 무역장벽 철폐가 아니라 수출이다”(159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세계화 전략은 세계경제와의 무조건적인 통합이 아니라 수출을 주된 방식으로 하는 통합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총량 자료에 근거하여 세계화의 길에 단 하나의‘레씨피’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설명과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의 세계화론에 대해 몇가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스티글리츠는 세계화를 관리하는 국제기구가 개도국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야 하고, 의사결정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증대시켜야 하며, 개도국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460~63면). 세계 각국이 협력할 경우 양극화, 지구온난화, 질병 등 초국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주장은 분명 옳다. 그러나 그 협력이 개별국가들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대안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민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해서는‘글로벌 정체성’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마치 자신의 대안이 현실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지 못함을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둘째, 세계화의 기관차인 다국적기업이 개도국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다는 그의 주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개도국이 스스로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개도국의 부패의 심각성을 여러차례에 걸쳐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그는 개도국의 지도자를 매수하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부패의 공범인 개도국 지도자에게는 면죄부 아닌 면죄부를 주고 있다. 개도국이 지속적 발전을 위해 국내적으로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를 수립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지난 20여년간의 세계화 과정은 누구나 세계화의 혜택을 고르게 누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알게 해주었다. 국내적 차원에서 볼 때 지속가능한 세계화의 유일한 길은 세계화에 따른 경제개방의 충격과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세계화 문제의 해결을 주로 국제적 차원에서 접근한 까닭에 국내적 차원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하다. 국내적으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화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정책결정과정에 사전에 반영하여 세계화의 완급을 조절하거나, 세계화에는 적극적으로 동참하되 피해세력에 사후적으로 보상하는 두가지 방식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세계화를 둘러싼 논쟁이 지난 10여년간 계속되어왔음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까닭은 세계화가 그만큼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탓일 것이다. 좀더 근원적으로는 세계화 논쟁이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속성과, 경쟁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을 희구하는 속성 양면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어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