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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정부,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

 

촛불의 경제학

한반도경제의 미시적 기초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최근 저서로 『한반도경제론』(공저), 『중국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ilee@hs.ac.kr

 

 

1. 역동성과 무질서

 

흔히들 한국사회의 특징을‘역동성’이라고 한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정권은 승승장구했지만, 바로 그후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으로 촉발된‘촛불집회’는 대중의 저력과 정권의 무능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점령군 같던 집권세력은 컨테이너박스로 둘러쳐진‘산성’안에서 농성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고, 길거리 정치의 대중은‘집단지성’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동성의 또다른 얼굴은‘무질서’이기도 하다.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롭고 진취적인 경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질서가 계속되거나 확대될 것이라는 불안 아래 있다. 경제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무질서는 불확실성을 증대하며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든다. 질서는 장기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고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1 우리는 질서를 만들 능력이 있는가? 진보개혁진영도‘이명박과 반대로’만 하면 되는 것인가?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진보개혁세력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전을 전혀 쟁점화하지 못했다. 그나마 촛불집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악화를 일정하게 저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이미 승리했다”는 선언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 승리를 심화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촛불의 일상화·지속화·제도화를 응당 말해야 하지만,2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목표로 삼고 지향하려 하는 질서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먼저 힘을 쏟아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질서의 기본요소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 문제는 촛불집회를 촉발하고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발전했지만, 촛불집회에서 남북문제·노동문제에 대한 의제가 직접 제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힘은 거버넌스 또는 조직의 형태로 응축되고 이어 남북문제·노동문제 등 제도환경을 새롭게 구축하는 문제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촛불의 힘은 여러 차원의 경로를 거쳐‘한반도경제’에 작용할 텐데, 이 글에서는 촛불을 전후로 한 자원배분과 경제조직의 변화방향을 살펴봄으로써 한반도경제의 미시경제학적 논의를 시도하고자 한다.3

 

 

2. 촛불의 배경: 스태그플레이션

 

이명박정부의 신조는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친화적 조치를 취하면 성장과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을 전환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이것만으로 반드시 투자증대 등 즉각적인 자원배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성장단계를 볼 때 투입재의 증대를 통한 성장효과는 이제 제한적이고, 기술 및 제도혁신에 의한 생산성 증대가 문제되는 시점이다. 이는 국민경제 차원이건 지역경제 차원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행정수도 이전이나 대운하 건설 같은 외연적 투입에 의한 개발프로젝트는 성장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클 가능성이 많다.

대선 국면에서 면밀하게 인식되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좀더 직접적으로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등장했다. 석유와 식량 등 원자재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고,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적 차원의 유동성 과잉과 금융시장 불안이 문제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물가상승, 소비감소, 경기침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무리한 성장정책보다 물가안정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필요한 금리인상, 재정긴축 등 정책수단을 동원하면 어느정도의 성장 정체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정부는 성장지상주의에 편향되어 위험관리를 소홀히함으로써,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키우고 말았다.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가득한 여건 속에서, 이명박정부는‘747’이라는 엉터리 항공기를 띄우려고 했다. 연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강국을 달성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연구결과에서 아무리 낙관적인 씨나리오라도 잠재성장률이 6% 이하로 계측되었으므로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처음부터 허황된 목표라는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명박정부 선진화전략의 경제적 목표치는 현실에서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분기 대비 성장률을 보면, 2007년 3분기 1.5%, 4분기 1.6%였는데, 2008년 1분기 0.8%, 2분기 0.8%로 내려앉았으며, 하반기에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른 경제지표들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2008년 6월 소비자물가는 5.5% 상승하여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간 흑자를 나타내던 경상수지도 2008년에는 적자로 전환할 것이 확실해졌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는 한반도 민중의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실질소득 감소 때문에 생계비 관련 노동파업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사회적 타협 능력이 제한되어 탄력적인 가격조정이 지연됨으로써 그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또 물가상승의 효과는 집단별, 계층별로 비대칭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교섭능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에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물가상승은 채무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소유구조하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부동산 대출금리가 급등할 경우 상당수 중산층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북한에서도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다. 2007년에 발생한 여러차례의 수해로 자체 곡물 생산량이 줄었고, 국제 식량가격이 급상승하여 식량 수입량과 국제사회의 지원물량이 줄어들었다. 장마당(시장)에서의 식량가격이 1년 사이 3배 이상 상승하여 하류층에서는 이미‘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식량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다. 남한은 2000년대 들어 매년 40~50만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해왔는데, 이를‘퍼주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문제와 관련된 대화가 급물살을 탔다. 6자회담이 급진전되고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결정하자, 이명박정부는 뒤늦게 지원 재개의사를 북한에 전했으나 북한은 이를 일축했다. 세계적 차원의 인플레이션과 남북한 당국의 줄다리기 속에서 북한 주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4

 

 

3. 촛불의 동력: 정보경제의 확대와 소비자의 진출

 

십대 청소년들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두달 넘게 지속되면서, 규모와 내용 모두 1987년 6월항쟁이나 2004년 탄핵반대 시위를 훌쩍 넘어섰다. 촛불집회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대의제인가 직접민주주의인가 하는 쟁점이 가장 뚜렷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게임의 공식규칙, 즉 제도환경을 변경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우선은 좀더 직접적인 자원배분상의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단절적인 흐름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인데, 촛불집회를 전후해서 정보 흐름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부실한 통상협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식과 정보의 유통량과 유통경로에 무지한 집권 정치세력, 관료집단, 보수언론이 힘을 보태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미 전부터 이메일, FTP(개인간 파일전송 프로토콜), 뉴스그룹 등 다양한 인터넷 수단들이 웹으로 통합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총량이 폭증했고, 웹과 결합된 새로운 개인미디어의 출현으로 정치와 경제의 전과정에서 대중과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5 이러한 조건에서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쇠고기 안전성 문제에 관한 정보의 흐름이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여성과 중고생의 역할이 컸는데, 이 문제가 일단 소비자 의제로 정립되자 광범한 소비자들이 정보의 흐름에 빠른 속도로 결집했다.6

이와같이 정보의 주도권이 대중과 소비자에게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정부나 보수언론은 과거의 관성대로 자신들의 메씨지를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려고 시도했다.7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과학’의 이름으로 대중을 계몽하려 들어 상황을 계속 악화시켰다.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 화학첨가물, 환경오염물질 등에 의해 유발되는 질환은 그 위해가 만성적이고 치명적인데, 이것들이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만성질환이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평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지식과 규제조치들은 급성질환과 달리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광우병을 일으키는 특정 위험부위에 대한 입장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제수역사무국(OIE), 미국, EU, 일본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8 결국 광우병은 물론 많은 식품안전 관련 사안이 아직은‘과학적 지식’의 차원에서 판단될 수 없는 문제이고, 오히려‘개성적·국지적 지식’‘집합적·암묵적 지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안전성이란 과학기술의 발달과 소비자가 허용하는 위험의 범위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 개념으로, 정부나 언론이 가르치거나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나 보수언론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를‘몽매’한 것으로 비난했으나, 경제이론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주체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지만, 그 행위의 배경을 꼼꼼히 살피면 얼마간은 그럴듯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제한적이지만 합리적인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적이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개인들이 가진 정보가 완전하지도 균일하지도 않기 때문에 시장은 불완전해지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장 바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이러한 정보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현시점의 과학적 지식의 수준 때문에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 시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보다 낮은 수준의 안전성을 공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소비자는 마치 중고차 시장에서 그러듯이 시장에 나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소비자는 식품의 안전성에 더욱 민감해지고 관련된 식품의 수요를 줄이게 된다. 광우병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쇠고기의 경우,‘역선택’에 의한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수입산은 물론 국내산에도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품질을 보증해야 한다.9 어찌 보면 촛불은 시장실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옹호자 하이에크(F. A. Hayek)는 일찍이 경제체제에서 지식 이용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지식은 분산되어 있고 불완전하며 종종 모순적이다. (…) 사회의 경제문제가 주로 시공간의 특정한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문제라는 데 우리가 동의한다면, 최종적 의사결정권은 그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 우리는 분권화의 한 형태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10 그런데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은 어떻게 했는가? 이와는 반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촛불집회의 전개양상을 볼 때, 확실히 정보 흐름의 확대는 분권화된 의사결정의 비용을 크게 낮추고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분권화는 분산된 지식을 더 잘 이용하게 해주며 하부단위의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정보화와 소비자경제의 확대는 이러한 분권화의 이점을 더욱 증대시킨다. 물론 분권화가 능사는 아니다. 의사결정이 분산되면 그에 수반하여 결정주체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고, 여러 의사결정을 서로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며, 중앙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은 않으며, 적절한 정도의 분권화 수준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정보경제의 확대와 소비자의 진출은 분권화 수준을 좀더 높이는 것이 유리해지는 쪽으로 경제조직·제도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4. 촛불 이후의 경제조직 문제

 

촛불집회는 규모와 지속성, 진행방식의 새로움 등에서 매우 놀라운 것이었지만, 촛불집회에서 다루지 않거나 피해간 이슈들도 많았다.‘거리의 정치’는 생동감있는 일상의 의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생활정치의 현장이지만 헌법, 정당, 재산권, 남북관계, 노동문제 등 제도환경을 구축하는 장기적 과제를 다루기에는 덜 적합하다. 그래서 거리정치냐 제도정치냐 하는 식으로 문제틀을 짜면 별 소득이 없고, 그보다는 일상과 제도의 중간수준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조직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 논의를 생산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조직(organization)은 일상의 의제를 내부화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제도환경의 구축이라는 과제와 연결시키는 미시적 단위이다.

경제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촛불집회 또는 진보개혁진영의 문제제기 수준은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쇠고기 문제 외에 5대의제, 즉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물산업 사유화, 교육, 대운하, 공영방송 문제 등을 공론화한 바 있다. 모두 쉽게 풀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공기업 민영화는 경제체제를 구성하는 기본조직을 어떻게 짤 것인가와 관련된 거버넌스 문제로서 일상의 의제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사안이다.

이명박정부는 공기업 개혁방안으로 매각과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이 기본방침이라고 밝혔는데, 현재로서는 거버넌스 재구조화를 위한 정밀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거시경제상 위험관리에도 무능을 드러내고 있는 정부씨스템을 감안하면, 훨씬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공기업 민영화를 졸속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효율성이 증대되기는커녕 공유자산의 사적 침탈로만 귀결되고 말 것이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거시경제 여건 속에서 무리하게 공기업 자회사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정부 보유지분을 시장에 매각할 경우, 주식시장에 충격을 주고 시장 인프라를 약화시킬 수 있다. 어쨌거나 촛불집회의 힘은 수도, 전기, 도로, 가스, 건강보험 등 물가상승, 소비자 이익과 직결되는 공공부문의 민영화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의 여론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공기업 민영화의 본질을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영화 반대-이 말을‘사유화 반대’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이다-가 진보개혁운동이 지향하는 절대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는 특정 재화와 써비스를 공급하는 데 어떤 조직형태가 효과적인 경제조직인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거버넌스 구조로서의 기업의 장점은 팀 작업에서 생길 수 있는 태만을 감독하는 메커니즘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정밀한 감독을 위해 장기에 걸쳐 거래를 안정시키는 계약인데, 이 때문에 일회적인 시장거래보다 인쎈티브의 집중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관료제의 비용 부담이 생겨난다. 이러한 기업 거버넌스의 단점은 공적 관료에서는 더욱 커지므로, 기본적으로 공적 관료는 가장 나중에야 선택할 수 있는 조직형태이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시장을 시도해보고, 불완전한 장기계약을 시도해보고, 기업을 시도해보고, 규제를 해보고 나서, 이 모든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공적 관료에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한 거래에서는 공적 관료가 이를 조정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가 있으나, 이것이‘과다사용’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11

민영화 문제는 남한에서도 중요하지만, 국유부문 비중이 압도적인 북한의 경우를 생각하면 경제조직 형태의 선택은 다른 무엇보다도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이다. 한반도경제의 차원에서 보면 민영화는 선택 가능한 하나의 방안이지, 그것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구사회주의국가들의 이행의 경험을 살펴보면, 민영화정책의 단기효과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민영화가 반드시 기업조직 형태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는 더더욱 입증하기 어렵다.12

북한에서는 관료제에 의한 자원배분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정정도 민영화를 통해 조직형태를 재배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민영화한다고 해서 효과적인 지배구조가 즉각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영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한반도 차원에 시선을 둔다면, 무리하고 졸속적인 정책집행이 막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은 좀더 조심스럽고 완만하게 그리고 미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변화와 이행의 시기에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서두르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새로운 경제조직의 발전 가능성

 

고전적 기업이나 주식회사 같은 투자자 소유 기업은 협업과 분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류가 발명해낸 매우 우수한 조직형태로 평가된다.13 그러나 투자자 소유 기업만이 존재 가능한 유일한 조직형태는 아니고, 현실에서는 시장과 기업 사이에 여러 형태의 혼합형 조직(hybrid organization)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오히려 현실의 추세는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계약형태가 다양해지고 일원화된 소유제 구조에서 탈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청계약, 공급체인이나 유통채널 등 기업네트워크, 프랜차이징, 집단상표, 파트너십, 협동조합, 기업동맹 등 혼합형 조직이 확대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형태로 협동조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은 투자자가 아닌 생산자-소비자가 소유자인 조직형태로, 생산자-소유자는 지분을 투자하지만 잔여소득은 후원의 원리 또는 조합활동에 기초해서 분배된다. 협동조합은‘모호하게 정의된 재산권’때문에 인쎈티브 문제를 발생시키며 이는 협동조합 조직의 운영비용을 크게 증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자와 조직 간‘정보의 비대칭성’‘신뢰’의 측면에서는 협동조합이 투자자 소유 기업보다 우수할 수 있다.14

경제조직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는 자산 특수성, 거래빈도, 불확실성 등 여러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 그중에서 자산 특수성이 중요한 요인인데, 경제주체들이 함께 투자를 했을 경우 그 투자의 특수성이 클수록 기회주의적 행동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고 통제의 형태도 더욱 촘촘해진다. 또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회주의의 위험도 커지고 좀더 집권화된 조정형태가 나타나게 된다.15 협동조합 등 혼합형 조직은 기업형태보다 통제의 정도는 낮고 자립의 정도는 높다. 소비자의 요구는 기업이나 농장이 식품 안전성에 더욱 많은 자원을 배분하도록 추동하는 인쎈티브가 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계약과 인증된 안전씨스템이 폭넓게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품질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커지는 한편으로, 경제통합의 추세에 따른 경제조직 차원의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협동조합이 지닌‘신뢰’의 강점이 발휘될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협동조합 내부적으로는 감독을 강화할 수 있는 더욱 집중화된 조정형태를 발전시킴으로써 조직의 거래비용을 감소시켜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소비자의 고양된 영향력은 투자자 소유 기업의 운영방식을 일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촛불집회의 진행과정에서 쇠고기 문제를 넘어 좀더 보편적인 소비자운동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나타난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비자들은 미국 쇠고기를 옹호한 보수신문들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그 신문들의 구독률이 떨어지고 광고수익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운동이 철옹성 같던 언론시장의 독과점구조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운동이 활성화되고 제도화되면,‘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공의 이익과 여러 이해관계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기업에 재무적 이익과 함께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추구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각 경제주체들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정부가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각종 규제나 금지사항들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16 소비자운동은 투자자 소유 기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법치의 제도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한편,17 더욱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경제형태를 조직할 수 있는 각성된 시민을 형성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18

소비자운동은 또한 사회적 기업(social business)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직될 수도 있다. 사회적 기업은 기존의 투자자 소유 기업과 조직구조는 동일하지만 이윤 극대화 대신 사회적 혜택 우선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즉 사회적 기업은 투자자금을 회수할 권리가 있는 소유자를 두고 있지만, 그들에게 제공할 수익을 최대한 축적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빈곤퇴치 등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비손실·비배당 기업인 것이다.19

한반도경제에 주어진 과제는 경제의 통합과정에서 효율화와 격차해소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경제조직들에서 역동적인 상호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여러 조직형태가 창의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투자자 소유 기업과 국가가 빈곤과 환경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형태로 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

 

 

6. 진보적 중도주의의 경제체제

 

노무현정부의 퇴장과 이명박정부의 집권은 진보개혁세력이 새로운‘질서’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웅변했다. 그러나 지금도 거듭되는 이명박정부의 실정(失政)과 그에 따른 촛불집회의 항의는, 보수세력도‘무질서’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음을 공시하고 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정보경제의 확대와 소비자의 진출 현상이다. 이는 새로운‘질서’, 즉 새로운 조직과 제도를 형성하는 영향력이 축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이 급속히 증대하고 있는데, 이는 조직 내에서의 분권화 수준을 좀더 높이는 것이 유리한 쪽으로 비용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증가는 조직 내외의 정보소통, 즉‘신뢰’를 증대시키기에 용이한 조직형태를 선호하도록 자원배분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원배분상의 변화는 경제조직의 새로운‘질서’를 형성할-꼭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필요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질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그것이 시장, 기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혼합형 조직들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지금보다 더 시장과 기업의 조직형태를 발전시켜야 하고, 남한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혼합형 조직형태의 비중을 높이고 그 안에서 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이 뚜렷한 역할을 맡도록 해야 한다. 이는 시장이나 기업 어느 한 형태가 극단적으로 지배하는 일원화된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조직형태가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를‘중도(中道)’의 경제라고 말하고 싶다.20

새로운 질서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역사상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진행되며 과거에 제약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유일한 균형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복수의 경로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진보’를 사전에 정해진 유일한 경로를 목적론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인간과 사회는 끊임없이 새롭게 변하는 세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실험, 작용과 반작용을 포함하는 적응을 통해 냉혹하고 무자비한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진보’를‘진화’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21

체제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에게는, 깨끗하고 품위있는 가난의 욕구도 있지만 장엄과 영화에 대한 욕망도 중요한 본능이다. 그들은 때로는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별다른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적응에 작용하는 두개의 힘, 즉 환경에 적응하려는 힘과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힘은 한반도경제 안에서도 작용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백낙청(白樂晴)은‘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의 시대’에서의‘진보’를‘변혁적 중도주의’로 규정한 바 있다. 즉 분단체제의 극복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변혁적’이며,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하는 점진적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에서‘중도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22

필자는 이러한‘변혁’과‘중도’의 과제 실행의 주요한 미시적 기초가‘중도적〓혼합적’경제조직이며, 이는 경제주체들의‘진보〓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남북한 경제통합과 총체적 개혁을 수행하는 조직·제도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경향성”, 그것을‘진보적 중도주의의 경제체제’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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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글러스 노스 지음, 조석곤 옮김 『경제변화과정에 관한 새로운 이해』, 해남 2007, 제8장.
  2. 이남주 「‘거리의 정치’, 비정상과 일탈이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08.6.18; 김종엽 「촛불이 갈 길」, 『창비주간논평』 2008.7.9.
  3. 필자와 필자의 동료들은 일전에 우리가 새롭게 형성해야 할 질서로‘한반도경제론’을 제기한 바 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그간의 일국주의적·계급주의적 전망은 현실에 부적합하므로 국민국가와 그 아래의 지역, 민족국가 그리고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지역을 함께 포함하는 복합적 공동체를 상상해보자는 것이었다(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한반도경제론』, 창비 2007, 「책머리에」 참조). 이에 대해 서동만(徐東晩)은 세밀한 검토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통렬했던 것은, 우리의 작업이‘한반도경제론’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울 만큼 이론적 체계나 인식적 전제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서동만 「대안체제 모색과‘한반도경제’」,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 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모든 이론은 미성숙한 데서 출발하여 발전하는데, 발전의 각 단계를 넘어서려면 엄격한 공식화와 경험적 검증을 거쳐야만 하며, 중도에 탈락하게 되는 비공식 이론(informal theory)이 수없이 많다.‘한반도경제론’도 의욕적으로 출발선을 달려나간 정도인데, 우선의 과제는 미시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좋은 벗들’(www.goodfriends.or.kr)은 2008년 4월말 이후 황해남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평안남북도, 량강도, 자강도 지역 등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북한 인구의 절반 정도인 1천만명이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고, 그 가운데 3백만명 이상의 취약계층이 풀죽으로 연명하며 곧 아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오늘의 북한소식』 169호, 2008.7.17.
  5. 이러한 현상을 앨빈 토플러(A. Toffler)는‘프로슈머’(prosumer)로(『부의 미래』), 이번 슈워츠(E. I. Schwartz)는 웨버노믹스(webonomics)란 표현으로 개념화했다(『웹 경제학』).
  6. 촛불집회에서 예민하게 다뤄졌던 문제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0교시 부활, 수도·의료민영화 등은 모두 소비자 의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소비자운동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비정규직,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북한 식량난 등의 문제는 정면으로 다뤄지기 어려웠다.
  7. 인터넷에 기반을 둔 팬클럽의 지원으로 출범한 노무현정부도 집권 후기에는 이러한 태도를 나타냈는데, 국민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중단이 민심을 이반하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8. 양병우 「식품 안전성의 위기: 미국 쇠고기 파동의 본질」, GS&J인스티튜트, 2008.5.28.
  9.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일어나는 사례는 중고차 시장이 전형적이다. 신차의 품질은 일정수준으로 통제되어 있지만, 중고차의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보다 그 차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중고차에 결점이 있는데 이를 구매자가 파악할 수 없을 경우 중고차의 품질은 구매자가 원하는 수준보다 낮아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장에는 품질이 나쁜 차가 많아져서 구매자는 품질이 낮은 차를 선택하게 된다. George A. Akerlof, “The Market for ‘Lemons’: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Mechanism,”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84, No.3 (1970).
  10. F. A. Hayek,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American Economic Review, Vol.35, No.4 (1945), 519~20면.
  11. 꼭‘국가’만이‘계획’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국가’사회주의는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으며 관료제의 비용이 막대한 조직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복지‘국가’들도 각각의 구체적인 사정에 기초해서 체제의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 재정정책의 효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큰 정부’‘증세’담론이 꼭 진보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 안정성을 더 중시하고,‘적절한 규모의 정부’‘꼭 필요한 만큼의 세금’을 운영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12. Peter Murrell, “Institutions and Firms in Transition Economies,” Claude Ménard and Mary Shirley, eds., Handbook of New Institutional Economics, Springer 2005.
  13. 일각에서는 주식회사 모델이 주주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꼭 적절한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주주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표하에서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그들에게 수익을 제공한다. 주주를 포함하여 노동자, 하청업체, 소비자,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해관계자 모델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아직 여러 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메커니즘을 이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14. Michael E. Sykuta and Michael L. Cook, “A New Institutional Economics Approach to Contract and Cooperatives,” American Journal of Agricultural Economics, Vol.83, No.5 (2001), 1272~74면.
  15. Claude Ménard, “The Economics of Hybrid Organization,”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Vol.160, No.3 (2004).
  16. 예컨대 영국의 잡지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는 아디다스, 로레알, 월마트 등을 불매운동 목록에 올렸다. 그 이유는 다양한데, 아디다스는 일부 축구화 제조에 캥거루 가죽을 쓴다고, 로레알은 화장품 개발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한다고, 월마트는 기후변화협약에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에 기부를 많이 한다고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임항 「지금 왜‘기업의 사회적 책임’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 노동연구원 2007.
  17. 투자자 소유 기업의 씨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인격적 거래와 법치의 제도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과제의 최대 난관은 재벌, 특히 삼성그룹인데, 편법상속, 비자금 조성, 행정·입법·사법 등 중요 국가기구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와 결탁, 노조의 단결권 제약 등 법치 유린행위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8.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은 독특한 논법으로 소비자의 의미를 주장한다. 그는 소비자운동의 현실적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치가 있다. 그에 따르면, 생산영역에서 노동자는 경영자와 같은 의식을 가지며 특수한 이해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어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유통의 장에 들어섰을 때는 소비자가 되는데, 여기에서는 자본에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된다. 생산과정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은 자본의 우위에 설 수 없지만, 유통과정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 즉 보이콧 같은 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투쟁에 자본은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라따니 코오진 지음, 조영일 옮김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 b 2008, 158~62면.
  19. 무함마드 유누스 지음, 김태훈 옮김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물푸레 2008, 제2장.
  20. 김종철(金鍾哲)은 새로운 질서를‘농적(農的) 순환사회’로 그리고 그 요소를‘소농 혹은 생산자 연합체’로 규정했다(김종철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 『창작과비평』 2008년 봄호). 소농과 생산자 연합체는 모두 혼합형 경제조직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두 조직형태가 작동하는 원리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소농은 자신의 직접적 감독으로, 생산자 연합체-이는 협동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의에 의한 자유의 반납과 그에 기초한 조직적 감독으로 인쎈티브 문제를 해결한다. 소농에 기초한 농적 순환사회는 경제의 복잡화 현상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21. 다윈의 진화론은 종종 무한경쟁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지만, 진화론이 꼭 이타주의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화론을 새롭게 구성할 경우 좌파가 일찍부터 꿈꿔왔던 유토피아를 냉철한 현실적 비전으로 대체할 수 있다. 피터 씽어 지음, 최정규 옮김 『다윈의 대답 1-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이음 2007 참조.
  22.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31면; 백낙청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 『창작과비평』 2008년 여름호, 462~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