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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정부,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
이명박정부의 지역개발전략과 민주주의
하승수 河昇秀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저서로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등이 있음. haha9601@dreamwiz.com
1. 대운하 중단? 그것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선진화’와 ‘신개발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사태로 인해 이명박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사상 최대의 지지율 격차를 보이면서 당선되어 출범한 정부이다. 또한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180석이 넘는 압도적 다수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정부의 지금 지지율과는 별개로 이명박정부가 서 있는 이념적·정책적 기반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와‘한반도 대운하’가 이슈화되면서 오히려 이명박정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소홀하게 이루어지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명박정부가 표방하는‘선진화’이데올로기는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율의 등락과는 별개로 한국사회에서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라는 점이다. 또한 지역개발과 관련해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되살아난 개발주의의 흐름, 즉 신개발주의1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단기적 이슈보다는 장기적 흐름을 보아야
이런 흐름이 지속되는 한, 한가지 이슈가 해결된 듯 보인다고 해서 그 문제가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니며 다른 모든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단되었던 새만금 공사가 재개되어 결국 새만금 갯벌이 죽은 것처럼, 2004년 부안에서 중단되었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2005년 비이성적인 주민투표를 거쳐 다시 경주에서 시작된 것처럼, 지리산 자락에서 시민단체와 불교계의 반대로 중단되었던 지리산댐이 다시 추진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잠정적으로 중단된 듯 보이는 한반도 대운하는 언제든지 다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낙동강운하, 영산강운하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고, 현재 대운하사업 실시를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등에 업고 한층 적극적인 형태로 재등장할 수도 있다.2 지금도 김태호(金台鎬) 경남도지사는 “대운하 포기는 직무유기”라며 사업실시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규제완화’를 명분으로 한 교육·의료 시장화도 지역에서부터 추진되고 있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교육·의료 개방과 규제완화의 테스트베드(testbed)가 된 제주도에서는 올해 7월에 국내 영리병원 허용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도에 한해서 국내자본이 설립하는‘주식회사 병원’을 허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 1,1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반대의견이 더 많이 나오는 바람에 일단 유보되기는 했지만, 제주도지사는 다시 기회를 보아 영리병원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 추진되고 있는 영어교육도시에는 영어전용 교육을 하는 초·중·고등학교 12개가 설립될 예정이다. 애초에는 1년 정도의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두려고 했으나, 지금은 정규 교육과정을 둔 사립학교들을 유치하겠다는 안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외국자본도 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료 시장화는 언제든지 제주도를 뛰어넘어 전국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선진화’론자들이 추구하는 기본방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 발생하는 문제들은 일련의 흐름에서 파생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단기적 이슈에 매몰되기보다는 장기적인 흐름과 경향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나 한반도 대운하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이명박정부가 말하는‘선진화’이데올로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이 지역개발정책과 관련해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지역개발정책에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대운하사업에 부화뇌동하려 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위는 어떻게 볼 것인가? 부동산값 상승과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기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신개발주의에 대한 민주적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 이상, 대운하사업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2. 토건국가+신자유주의 시장화=이명박식 선진화?
선진화론자들이 빠진 함정
지난 몇년간 정부는 부동산가격 폭등을 통제하지 못했다. 특히 민주화 이후의 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정부도 그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동산가격을 잡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정부에서 부동산가격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등했다. 그런데‘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이명박정부의 정책아젠다들을 미리 생산해온‘선진화’이데올로그들은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인해 전국적으로 땅값이 오르고 부동산투기가 조장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런 도시 건설을 위해 전국의 토지 약 1억 5천만평이 파헤쳐지고, 토지보상비로 5년간 약 67조 5천억원이 풀렸으며, 전국의 땅값이 4년간 88.3% 상승했음을 지적하고 있다.3 상당히 설득력있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은 환경적 입장에서 노무현정부를 비판해온 사람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선진화론자들이 기대를 건 이명박정부는 더 큰 개발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토를 파헤치는 한반도 대운하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추진된다고 하자 역시 대운하 예정지 주변 땅값이 치솟았다. 선진화론자들이 비판해온 행태가 이명박정부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정부가 부르짖는 선진화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기묘한 조합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에 영향을 준 두뇌집단을 꼽는다면, 한반도대운하연구회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을 꼽을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반도대운하연구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주도해온 집단이다. 그리고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이명박정부의 국정이데올로기라고 하는‘선진화’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정책아젠다들을 정리해온 집단이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데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역할이 컸을 테지만, 실제로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를 솔직히 드러낸 것은 한반도대운하연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상당히 어울릴 듯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집단이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가 대운하 같은 토목사업을 옹호하는 집단이라면,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수도권 규제완화와 교육·의료·복지 시장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화·개방화 성향을 뒷받침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묘한 조합의 결과물이 이명박정부의 국정이데올로기인‘선진화’라 하겠다.
“균형발전을 이끌 새로운 발전축”(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주장한 한반도 대운하를 연구해온 한반도대운하연구회의 주장은 한마디로‘국토개조론’이다. 류우익(柳佑益) 전 대통령실장에 따르면 한반도 대운하 구상은 종합적인 국토개조사업이다. 그는 내륙지방은 낙후될 수밖에 없어 내륙에 바닷길을 내고 항구를 만드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의 구조로는 안되고 대운하를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국토를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4 이러한 구상은 일본의 타나까 카꾸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주창했던‘일본열도 개조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가 주창한 일본열도 개조론은 부동산가격 폭등 등 큰 후유증을 남겼다.
그래서 한반도대운하연구회의 구상을 보면, 토건국가(土建國家)라는 개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토건국가라는 용어는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이 일본을 두고 쓴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그것은 우리 현실이 일본의 현실과 기막히게 유사하기 때문이다. 매코맥은 정부관료들이 끊임없이 토목공사를 벌이고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그런 공사를 하는 기업들과 유착되어 있는 일본의 현실을 보면서 그 용어를 사용했다.5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대규모 공공사업이 벌어지고 토건업이 국가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국토개발계획이 수립되고 댐건설, 하천공사, 해안매립 등이 집중적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런 과정에서 토목과 건설업이 정치·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중앙정치와 지역정치에 토건업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한반도 대운하는 이런 토건국가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골화하고, 그 절정을 보여준 프로젝트였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의 주장에서 겉포장을 벗겨내고 알맹이를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토목공사뿐이기 때문이다. 물류효과, 환경개선효과, 관광효과가 허울뿐이라는 것은 이미 드러났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임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와 운하구간 주변을 개발해 얻을 수 있는 개발효과만 있을 뿐이다. 결국 사업의 이익은 건설업체와 부동산 소유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는 전형적인 토건국가형 토목공사 구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이명박정부의 또다른 두뇌집단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노무현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을 포퓰리즘적이라고 비판한다.6 특히 집중적인 공격대상이 되는 것은‘반쪽 수도이전’이라고 부르는‘행정중심복합도시’와‘공공기관 지방이전’이다. 이런 인위적인 분산정책은 수도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지역간 갈등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한다. 그리고 대도시권 중심의 광역적인 지역발전전략을 내놓으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전제로 하는 혁신도시 건설을 전면 중단할 것을 주장한다.7
이명박정부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주장과 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출범 초기에 수도권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혁신도시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자, 지난 7월 21일‘수도권 규제완화는 속도조절을 하고, 광역적인 지역발전전략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비수도권 지역의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속도조절을 하더라도 결국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려 들 것이다. 그럴 경우 수도권으로의 집중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5+2 광역경제권과 각종 개발프로젝트
한편 이명박정부의 대도시권 중심 발전전략은‘5+2 광역경제권’으로 나타나고 있다. 광역경제권이란 기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구역을 뛰어넘어 산업·교육·의료·문화 등 모든 분야의 기능이 결합된 인구 5백만명 내외의 권역으로, 올해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토를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충청권(대전 충북 충남), 호남권(광주 전남 전북), 대구·경북권(대구 경북), 동남권(부산 울산 경남)의 5개 광역경제권으로 나누어 지역개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강원도와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경제권으로 따로 구분했다. 그래서‘5+2’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5+2 광역경제권’은 결국 대규모 개발을 동반하는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 핵심 프로젝트로 거론되는 새만금프로젝트니 남해안 썬벨트(Sun Belt)니 하는 개발사업들도 결국 토목공사와 부동산 투기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개발이 거론되는 지역의 부동산가격은 많이 올랐다. 게다가 지난 7월 21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토지수용권을 포함한 개발권을 주겠다는 등 토지개발 위주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상들은 개발이익을 일부 기업에 몰아주는 특혜를 낳을 것이며, 환경파괴, 난개발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남부권에 신공항을 조기 건설하겠다고 하고, 도로와 고속철도를 대폭 확충하겠다고 한다.8
우리나라는 어떤 거창한 전략이나 비전도 결국 토목공사로 실현되는 구조를 가진 토건국가이다. 농어촌 지원을 해도 토목공사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고,‘경쟁력 강화’니‘국제화’니‘혁신’이니 하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도 결국은 토목공사 벌이는 것으로 귀결된다. 5+2 광역경제권도 결국 전국토에서 토목공사 벌이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방을 명분으로 한 내부 흔들기
한편 김대중정부 이후‘개방’을 명분으로 우리 사회의 내부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IMF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주로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제기된‘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는 결국 규제완화와 개방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 지역을 정해서 우선적으로 규제완화와 개방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명분은 외국인이 투자하기 좋은 경영환경을 만들고 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대중정부 말기에‘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인천, 광양만,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었다. 그리고 제주도는 사람·상품·자본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가 되었다.
노무현정부 말기에는 황해(평택 당진), 새만금·군산, 대구·경북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추가 지정되었다. 경제자유구역이 사실상 전국화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면 곧바로 전국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제자유구역이나 국제자유도시를 지정하면 금방이라도 외국인투자가 활발해질 것처럼 과대포장했지만, 그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오히려 부동산가격 상승이 초래되었고, 부동산 투기이익을 노린 자본들이 진출하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지역적 특례들이 애초의 명분과는 달리 우리나라 내부의 교육·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경제자유구역이나 국제자유도시가 추진될 때는 외국어 써비스 제공,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 외국 교육기관 설립을 허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자유구역과 제주국제자유도시를 기반으로 교육·의료 시장화를 추진하려 한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용이 아니라 내국인용 정책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에 만들어지는 외국 교육기관에 내국인 입학을 점차 확대 허용하려 하고 있다. 제주영어교육도시의 경우에는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전용 교육을 하는 12개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이기도 하다. 해외유학 수요를 흡수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고비용의‘특별학교’들이 세워져 결국 국내 공교육체계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의료의 경우에도 외국인용 의료기관의 설립을 허용하는 데서 점차 변질되어 지금은 국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려는 단계까지 갔다. 이번에 제주에서 국내 영리병원 설립은 일단 중단되었지만, 제주도와 6개 경제자유구역에서 의료시장화는 계속 추진되고 있다.9
3. ‘선진화’된 지역개발전략의 본질
결국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는 선진화의 두 축은 바로 과거를 답습한 토건국가와 신자유주의적 시장화·개방화이다. 그리고 지역개발정책과 관련해서도 그같은 두 축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시장화·개방화만 주창하는 일부 선진화론자들에게 당혹스러운 것일 수 있다. 선진화를 표방하면서 60~70년대식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이 흐르고 있다. 선진화론자들 중 상당수는 낡은 토목사업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해 침묵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2007년 9월 출간한 『21세기 대한민국 선진화 4대전략』은 선진화론의 핵심 이데올로그라고 할 박세일(朴世逸), 나성린(羅城麟)이 공동으로 펴낸 책자이다. 이 책에서 이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재정운영을‘대중영합적 재정낭비’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대형 국가프로젝트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런데 정작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인 대운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10 당시에 이미 대운하는 국가적 쟁점이 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선진화론자들 스스로 빠져 있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선진화를 표방하면서도 토목사업에 의존하려는 이명박정부의 성향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이다. 일종의 야합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화론자들은 토건국가를 용인하고, 토건국가론자들은 선진화라는 그럴싸한 외피를 얻는 야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 노무현-이명박정부의 공통점: 규제완화와 토목사업
한편 이명박정부를 비판하면서 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신개발주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물론 이들을 완전히 동일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정부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해온 일련의 흐름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정부가 노무현정부와 가장 다른 점은 행정중심복합도시나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 규제완화에 좀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두 정부의 정책은 유사한 측면도 많다. 마치 노무현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했고 이명박정부가 그것을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두 정부는 기본적으로 규제완화와 개방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료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노무현정부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국제자유도시에서부터 교육·의료와 관련된 여러 규제들을 완화하고 외국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을 유치하려 했다. 이명박정부도 그러한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이며, 규제완화와 개방의 속도를 좀더 높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두 정부 모두 교육·의료를 공공성이라는 측면보다는‘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편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도 두 정부는 유사하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비판하지만, 이들은 노무현정부 시절에 새만금,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들이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물론 규모나 성격에서 차이가 나지만, 그런 대형 개발사업들과 한반도 대운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한 방식의 접근법이 부동산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우리나라를 더욱 토건국가화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5. 지역개발전략과 민주주의
개발동맹과 지역
우리나라에서는‘개발동맹’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신개발주의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어이다.‘동맹’이라는 표현의 어감이 지나치게 강한 면은 있지만, 실제로 개발동맹은 일종의 연결망 형식으로 존재한다. 중앙정부관료·정치인-지방자치단체-지역개발세력(토호)으로 이어지는 개발동맹에 의해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진행되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농지를 조성한다면서 갯벌을 매립해놓고 지금은 간척지의 70%를 농지가 아닌 산업·관광용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 새만금사업이다. 이런 새만금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중앙정부·정치인-전라북도-지역관변단체·지방언론 등의 개발세력으로 이어지는 개발동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명박정부는 지역개발세력과의 개발동맹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의 기득권세력들을 조직화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시장화도 이런 개발동맹을 통해 추진할 것이다. 당장 교육·의료 시장화를 전국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지지율이 너무 낮다. 따라서 지역의 개발심리를 이용해 몇군데부터 특례를 인정하는 식으로 추진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개발동맹
현재 한국의 대의민주제는 심각한 결함상태에 놓여 있다. 대의민주제가 그나마 작동하려면 다양한 세력이 다양한 가치, 다양한 정책으로 경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단순히 대통령-국회-광역지방자치단체장-광역의회가 대부분 동일한 정당 소속이라는 점뿐 아니라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비전이 동일하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지금 중앙정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신개발주의를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지역 내에서도 견제장치가 없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다수가 신개발주의를 신봉하고 개발을 추구하는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들은 끊임없이 토목공사를 벌이고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당도 의미가 없다. 중앙정부에서 개발구상을 던지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쫓아가기에 바쁘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추종하기 바빴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으로 갈수록 신개발주의는 일방적인 독주를 계속하고 있다.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내세우면, 아무런 견제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해달라고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추진하는 것이다.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주장해온 흐름에 대한 성찰이 필요
그동안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주장해온 지역과 시민사회의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도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토건국가적 개발주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혁신도시 같은 물리적인 개발 중심의 사업을 용인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점 중심의 그리고 물리적 토지개발 중심의 균형발전정책은 전국적인 부동산가격 상승을 초래했고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런 방식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불균형발전이며 개발주의의 또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내건 중앙과 지역의 개발동맹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결국 환경파괴와 예산낭비 그리고 삶의 질 악화를 초래하는 신개발주의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주장해온 지식인들이나 지역운동가들도 되짚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명박정부의‘선진화’든 노무현정부의‘균형발전’이든 결국 토건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화라는 두 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신개발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정부식‘선진화’는 신개발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만이 신개발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정부만 비판하고 노무현정부부터 이어지는 그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아니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 똬리를 틀고 있는 토건국가와 천박한 양적 성장 우선주의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개발과 관련해서 다른 접근이 시작되어야 한다. 양적인 경제성장 일변도의 전략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지역발전전략이 나와야 한다. 양적인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 반드시 비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토건국가식 개발은 지역내총생산(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 GRDP)은 증가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환경을 파괴하고 주거비용을 상승시키는 등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 국가적으로도 높은 부동산가격은 미래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빈부격차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며 사회를 병들게 한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단기적 경제성장과 비정규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지역주민들의 장기적인 삶의 질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번에 제주에서 많은 주민들이 국내 영리병원에 반대한 것도, 그런 정책이 의료비 상승과 양극화 심화 등을 가져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 정착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성장보다 중요한 것이 삶의 질이다. 물론 이때 삶의 질은‘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삶의 질’을 의미한다. 삶의 질은 정치, 경제, 복지, 문화, 교육, 환경, 성평등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고,11‘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지금 진행되는 기후변화와‘석유시대의 종말’까지도 염두에 둔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발전전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내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개발동맹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참여에 바탕을 둔 민주적인 정치·행정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 사회운동의 활성화도 필요하고, 대의정치의 변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의 기성 정당들은 모두 신개발주의의 흐름에 편입되어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고 토건국가의 구조하에서 정치적 이익을 누려온 기성 정당들로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신개발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필요하다.
이런 흐름은 지역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기득권 정당체제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중심에 놓고, 실제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구성함으로써 정치의 주체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일본의 지방정당(local party)이나 독일의 유권자단체 같은 형태도 고려해볼 만하고,12 새로운 형태도 시도해볼 수 있다. 또한 정치의 의제도 변화시켜야 한다. 양적인 경제성장이 아니라 삶의 질을 정치의 중심의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만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길이다. 더이상 겉돌기만 해서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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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개발주의(neo-developmentalism)는 조명래(趙明來)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서, 1960~70년대식 개발주의가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시장만능주의의 성향을 띤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것을 지칭한다. 조명래 「욕망과 자연의 상품화와 신개발주의」, 『신개발주의를 멈춰라』, 환경과 생명 2005, 43~47면 참조.↩
-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는 집요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반면, 이슈를 중심으로 반대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나 주민들은 그 이슈가 장기화될수록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역의 개발선호세력들은 끊임없이 지역여론을 조성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중앙정부에 개발사업 추진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면 일단 중단된 개발사업은 일정한 잠복기간을 거친 후 다시금 수면 위로 나오고, 그때는 이전보다 반대여론이 줄어들게 된다. 전국의 수많은 지역에서 각종 개발사업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추진되어왔다.↩
- 신도철 『21세기 새로운 지역발전정책 패러다임』, 한반도선진화재단 2008, 79면 참조.↩
- 류우익 「물길 이어 국토개조」,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엮음 『한반도 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 경덕출판사 2007, 35~41면 참조.↩
- 개번 매코맥 지음, 한경구 외 옮김 『일본, 허울뿐인 풍요』, 창비 1998, 61~75면 참조.↩
- 박세일 「차기정부 15대 국정과제의 기본철학과 방향」, 박세일·나성린 엮음 『21세기 대한민국 선진화 4대전략』, 한반도선진화재단 2007, 21면 참조.↩
- 박세일 「대한민국 선진화 4대전략 기본방향과 과제」, 같은 책 108~109면 참조.↩
- 이원섭 「광역경제권 구축방향과 과제」, 『지역경제』 2008년 봄호 17면.↩
- 지난 4월 25일 기획재정부 등이 발표한‘써비스산업 선진화방안’에서도 경제자유구역내 외국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호텔 등 숙박업)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공표했다. 제주도에서도 그러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2007년 2월 28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낸‘의료써비스산업 고도화와 과제’라는 이슈페이퍼(issue paper)에서 “영리의료법인 허용의 전 단계로 부대사업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박세일 「차기 정부 15대 국정과제의 기본철학과 방향」 17면.↩
-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2005년 물질적 복지수준, 건강, 정치적 안정성과 치안, 가정생활, 공동체적 생활, 기후와 지리, 고용안정, 정치적 자유, 성적 평등 등을 지표로 삶의 질을 평가했다.↩
- 일본의 지방정당이나 독일의 유권자단체는 지방선거에만 후보자를 내는 지역적 정치참여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