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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정부,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
인터넷 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 이야기
아고라와 82cook네티즌이 말하다
이것이 아고라다
나명수 nastream@hanmail.net
아고라 닉네임•권태로운 창
나의 이름은 아고라. 나는 21세기의 새로운 시민민주주의다. 나는 용광로다. 끓어넘치는 열망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차가운 이성의 칼날이다. 십대 소녀의 호들갑과 순수한 감성이 노인의 콜록거리는 해소(咳嗽) 기침과 어울려 춤을 추는 세대의 결합이다. 카오스다. 화해할 수 없는 자들의 전쟁터다. 예쁘게 포장된 비밀이 존재할 수 없는 날것의 싱싱함이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건방진 강물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흐름이다.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강물, 오직 부활의 바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생명의 강물이다.
촛불소녀의 잔혹한 봄, 거리에 서다
할룽~ 저는 16살 중3 여학생. ^^* 겨우 16년밖에 못 살았어요. 어른들은 우리의 절망을 알까요?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이 괴담인가요? 초딩 5학년 내 동생은 벌써 일제고사 부활 때문에 걱정이에요. 엄마가 학원을 두군데나 더 보낸대요. 내 동생 정말 불쌍해요. 종일 책상에 앉아 초라하게 시들어가는 우리를 우열반으로 편가르기 하겠다며 협박하는 당신들은 이미 존경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렇게도 뉴타운 개발로 돈이 벌고 싶었군요. 양심은 이제 시궁창에 버렸겠군요. 제 오빠 안단테가 뿔난 거 아세요? 오빠는 어른들이 너무 미워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 중이에요. 순식간에 150만명 이상이 서명했더군요. 그래도 아직 양심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에 좀 위안이 돼요. 근데 뭐? 안단테 오빠를 연행했다네요. 배후가 누구냐고 치매기 다분한 말을 순사 나으리께서 했답니다. 다행히도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께서 “내가 배후다, 내가 안단테다!” 하시며 애틋한 사랑을 듬뿍 보내주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직 죽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우리 아직 희망을 가지고 촛불을 들어도 되는 거지요? 힘들지만 모두 힘내요. 아자아자, 파이팅! 며칠 전에 온 아고라 아빠의 짧은 글을 소개해드리면서 전 이만 갈게요. 이따가 촛불로 함께 만나요.
대통령 각하! 차라리 대운하를 하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인터넷 종량제, 의료보험 민영화는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정책입니다.
아들아, 딸아. 정말 미안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못난 아버지가
상상력의 소통, 이것이 우리의 무기다
청와대와 권력자들은 국민과 소통 없는 소통을 하겠다고 호들갑이지만 우리는 늘 열린 광장의 공간에서 만난다. 우리의 대화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수평적 검증으로써 가부와 진위를 판별한다.‘조선일보 칭찬하기’운동의 예를 보겠다. 익명의 어떤 분이 왜곡과 과장, 축소보도를 일삼는 조중동의 폐해를 지적하며 조중동 폐간운동을 하자고 했다. 이에 다른 아고리언께서 “한놈만 패자, 한놈만!” 하며 논제를 집약했다. 순식간에 찬성의 추천과 댓글이 무수히 달리며 베스트 글이 되었다. 그러자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다들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안티조선운동의 결과를 볼 때, 이 운동이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런 부분이었다. 잠시 후 기발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이 올라왔다.
신문의 자금은 광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문의 판매는 수익성이 낮으며, 판매부수로 인한 수익 창출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러므로 광고불매운동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는 기업에 전화를 하여 다음과 같이 정중하게 말합시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계속 게재하신다면 귀사의 제품을 불매하겠으며, 이는 광고비까지 포함된 제품을 구매하는 우리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가능한 한 예의를 갖추시길 바라며 지속적인 항의에도 변화된 태도가 없다면, 당연히 그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합시다.
이러한 요지의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합법적이고 충분히 실천 가능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검증은 끝났다. 82cook이나 마이클럽, 쌍코, 소울드레서, 장백 등 수많은 까페로 이 글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네티즌들은 즉각 실천에 들어갔으며 조중동에 광고를 낸 기업들은 바로 업무마비 수준의‘조류독감’에 시달려야 했다. 기업들은 처음에 대체로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고래 힘줄보다 질기다. 이미 질긴 놈이 이긴다는 철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속적인 네티즌의 요구와 불매운동 실천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농심은 사과광고까지 내야 했다. 광고주들은 광고계획을 철회했다. 어떤 기업은 예약한 광고비의 손실을 감수하고서 광고를 싣지 않았다. 조중동은 네티즌의 행동을 아주 가볍게 무시했다가 쌍코피를 흘리게 되자 엄살을 부리더니 급기야 네티즌들을 협박하기 시작했고, 권력은 불법이라며 네티즌에게 재갈을 물렸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단 한마디 말로 이들을 비웃었다.‘조중동 불매운동’에서‘조중동 칭찬하기’와‘오늘의 숙제’로 말을 바꾼 것이다. 이 패러디는 불매운동을 더 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매운동의 망명정부를 만들기도 했다. 구글에는 매일 그날의 숙제가 올라온다. 우리는 매일 숙제를 한다. 덕분에 조선일보의 지면은 40면 이하로까지 줄었고, 전년 대비 2008년 6월 광고수입은 40% 가까이 감소했다. 그리고 네티즌의 바람에 부응한 많은 광고주와 기업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부쩍 판매량이 늘어난 삼양라면이 그 좋은 예다.
유모차부대,‘명박산성’에 대항한‘국민토성’의 상징성, 예비군부대 등 헤아릴 수 없는 독특한 창의성과 예리한 통찰력 그리고 실천적 의지로 가득한 곳이 바로 아고라인 것이다.
비밀의 권력, 그 허물을 조롱한다
아고라의 그물에 포획되면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가 있어도 아고리언들은 그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뻔뻔한 철가면이라도 발가벗겨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이 즉각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고라는 권력자나 위선자에게 눈엣가시다. 번지르르한 권위는 사정없이 조롱당한다. 아무리 고고한 척해도 시궁창은 시궁창인 것이다.(중략)
❇이 내용에 대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므로 생략합니다-편집자.
이처럼 국회의원의 근엄한 권력도 네티즌에게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 권력의 허상이 드러나는 순간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나모 의원이 MBC 「100분토론」에 나와서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라고 하자, 하나의 문장이 추천의 수직선을 타고 곧바로 올라왔다.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
아고라는 그 모든 부당한 권위와 거짓을 거부하고 그것에 저항한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그 모든 것들을 목표로 한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와 폭력진압을 했던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대의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융단폭격에 며칠 동안 써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그 어떤 연령과 직업, 계급적 구분의 경계도 무너뜨린다. 평등의 수평적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담장 안에 숨어 있는 누구처럼 벽을 쌓아놓고 고집부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담장을 넘어가는 넝쿨의 힘인 것이다. 연약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푸르른 희망인 넝쿨.
긍정적 사유의 공간, 행동하고 저항한다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용감하지만 현실에서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문화지체 현상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고라에서는 이 말이 무의미하다. 혹자는 말한다. 아고라의 이야기대로라면 아고라에 접속하는 네티즌의 10%만 나와도 50만이다. 그런데 실제로 집회에 나오는 사람은 5만은커녕 5천명이나 될까? 맞는 말이다. 선선한 5월과 6월에는 수만, 수십만 이상의 아고리언이 집회현장을 장악했으나, 더운 7월에 들어서는 많이 줄었다. 평일에는 보통 최대 5천명 내외, 주말에는 1~2만명 안팎이다. 하지만 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 발상이다. 꼭 집회현장에 나와야만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인가?
주부는 집에서 식품 불매와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 숙제를 하고, 어떤 소심한 아가씨는 몰래 뉴라이트의 실상을 꼼꼼히 밝힌 수제 전단지를 제작해 아파트 현관과 전철에 살짝 붙여놓기도 한다. 멀리 미국과 유럽에서도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조용히 촛불을 밝히는 따스함은 분노에 치를 떠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고라는 긍정의 위력을 안다. 조중동 칭찬하기가 바른 언론을 위한 비판이라면, 이의 대척점에 있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KBS와 MBC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많은 분들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구독과 추천을 실천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5월 이후 구독부수가 매달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이즈음의 월구독자 증가치가 예년의 연간 증가치에 버금간다고 한다. 또한 아고리언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공영방송의 소중함을 잘 안다. 하여 KBS가 내부의 어용노조와 친이명박 세력에 장악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벌써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KBS정문 앞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많은 촛불들이 공영방송을 사수하고자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미 KBS이사회의 편법행위를 막은 적도 있다. 항상 승리의 희망과 긍정의 철학을 생산하는 아고라는 경탄의 공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아고라는 지금 위기상태다. 아고라에서 생산되고 아고라에 의해 창출된 의제가 현시국의 급소를 날카롭게 찌르자, 모든 부당한 권력의 힘과 억압이 아고라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심스마일’을 비롯한 수많은 소위 알바들이 의도적으로 아고라의 물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 명쾌하다. 이명박과 조중동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좌파며 빨갱이며 반미라는 것이다. 도식화된 매카시즘의 전형이다. 그들의 빈약한 논리는 흑백의 이분법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아고리언들은 이 어려움 속에서도 놀라운 자정능력을 보이며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명박퇴진〕이라는 말머리를 붙임으로써 아고리언과 알바가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알바라 해도 차마 〔명박퇴진〕 등의 말머리를 붙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주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알바들의 조직적인 활동과 당국의 압박으로 인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포털‘다음’이 네티즌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버린다면, 그순간 우리는 산산히 부서질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한단계 더 승화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것이 맞다. 아고라는 갇힌 공간이 아니다. 새로운 망명도 이미 차근차근 추진 중이다. 바라건대 망명을 택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포털‘다음’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휘청거리자 권력은 그것을 빌미로 손쉽게 아고라를 주무르게 되었다. 900여개를 상회하는 아고리언들의 IP추적이 이미 끝났다는 제보가 있다. 정설이든 아니든 언론을 장악하는 수순을 마친 후, 현정권은 반드시 아고라를 철저히 탄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열망은 꺾이지 않는다. 그리 된다면 우리는 망명 아고라에서 더 치열하고 조직적인 저항을 할 것이다.
도도한 아고라 강물의 종착지, 바다
아고라는 거대하고 건방지며 도도한 강물이다. 지류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들이 들어온다. 맑고 신선한 물도 있지만, 요즘 들어 부쩍 폐수들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류는 지류이고 거대한 강물은 본류인 것이다. 제 아무리 썩은 물이 발버둥친들 어찌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수많은 촛불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강물, 수억의 반짝이는 조각들이 모여 흐르는 강물은 어떠한 불의와 탄압으로도 막을 수 없다.‘명박산성’으로 청와대를 이중, 삼중으로 막을지라도 우리는 흐를 것이다. 아고라는 진정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한점 부끄러움 없는 대한민국을 우뚝 세우기 위해 민중의 염원을 담아 거대한 바다를 이룰 것이다. 그 바다에는 생명이 숨을 쉬고 지혜와 용기가 넘실거리고 푸른 희망만이 푸른 하늘과 함께할 것이다. 아고라는 바다이다. 모든 것의 근원이자 부활의 노래이다.
여성들이 뿔났다
김수진 pianiste@empal.com
82cook닉네임•Pianiste
내가 촛불을 든 지도 어언 석달이 지났다.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투표건 모두 했지만, 그외에는 정치의‘ㅈ’에도 관심이 없었고 아는 바도 전무했던 내가 이제는 너무 달라졌다. 나는 죽기 전에 국회의원 5명의 이름을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해서 보좌관하고 싸울 일이 생길지도 몰랐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서 내 뜻을 전달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정치라는 게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준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딱 이 부분에서만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두가지 점에서는 정말 크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첫째, 국민들을 엄청 똑똑하게 만들어줬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 때문에 과학, 국제통상법, 의학 등 잘 모르던 분야에서 거의 준(準)전문가가 되게끔 만들어줬고, 둘째,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을 때 얼마나 단기간에 나라가 망가질 수 있는지 몸소 실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내 한표를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제대로 알게 해줬다. 이 정도면 거의 한몸 불살라서 국민들을 계몽시키는, 살신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두가지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너무나 많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잘한 업적이 묻히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여성들이 나섰냐고?
82cook은 『일하면서 밥해먹기』의 저자 김혜경 선생님이 자신의 책에 대한 애프터써비스 차원에서 만든 싸이트였다. 요리라는 주제에 관심있어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회원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요리에서 삶의 지혜, 주부들의 너무나 큰 관심사인 시댁 문제, 패션, 자식교육 등으로 옮겨갔고, 급기야는 그 관심사가 확대되면서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접할 수 있는 커다란 커뮤니티가 되었다. 여전히 가장 주요한 이슈가 요리이긴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만큼 82cook에서 다뤄지는 이야깃거리들은 정말로 각양각색이다. 82cook에 주부들만 있냐고? 절대 아니다. 나처럼 미혼인 분들도, 그리고 남자분들도 꽤 많다. 이러다가 82cook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 나온다면 아마 정말 82cook에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촛불 초반부터 느꼈지만 기존 집회나 시위 때와는 다르게,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여성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KBS모프로그램과 인터뷰할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여성들이 그리고 엄마들이 촛불집회 현장에 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내 대답을 듣더니 인터뷰하던 남자분은 원하던 방향의 대답이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로 내 생각이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 나와야 하는 일인데, 남자들이 많이 안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아 보이는 거라고.
이번 촛불을 계기로 여성 및 주부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로잡혔다면 상대적으로 내게는 남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새로 생겼다. 생각이 나와 다른 것은 당연히 인정해주지만, 생각이 같은데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남자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82cook’게시판에서도 그런 글들이 꽤 많이 보였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남편분이랑 촛불 때문에 많이들 싸우셨다고. 왜일까. 친한 친구(남자)랑 이 문제로 얘기하다가 싸우기도 했는데 여전히 내게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집회현장에서 만난 새로운 남성들도 많기 때문에 서운함(?)이 많이 가시기는 했다.
82cook의 첫 활동은 여러 커뮤니티들이 연합해서 한겨레, 경향 및 몇몇 일간지들에 촛불 광고를 내는 걸로 시작됐다. 내 실명계좌로 모금된 돈이 무려 1700여만원이나 되었다. 그런데 통장내역을 정리하면서 나를 울린 몇분들이 계시다. “일주일 점심값-20,000원” “돼지저금통-28,500원” “고맙습니다-500,000원”. 이런 분들을 포함해서 왜 이렇게 국민들이 각자의 주머니에서 정말 피 같은 돈을 꺼내야 했는지,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다. 딱 한사람 때문에 너무 많은 국민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너무너무 속상하다.
82cook, DVDPrime, 마이클럽, ppomppu, SLR클럽, 談화ZONE회원들이 함께해준 두차례의 광고제작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많은 분들을 알게 됐다. 나를 포함해 82cook회원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촛불을 계기로 기존의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새로운 인간관계들이 형성되고 있다…… 농담처럼 이런 글도 올라온다. 미래의 남편감으로 혹은 선 볼 상대로‘촛불집회 열번 이상 참석자’를 택해야겠고, 선을 봤는데 상대방 남자가 촛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기에 대판 쏴주고 들어왔다고. ㅋㅋㅋ
82cook이 해낸 일들
그렇게 광고만 끝내고 쉬려던 나는 조선일보 덕분에 또다시 총대를 메게 됐다. 조선일보가 82cook운영자에게 자사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정말 어이없는 협박성 공문을 보낸 것이다. 운영자가 공개한 글에 대한 회원들의 분노는 가히 폭발적이었다.‘조용한녀자’님이 조선일보 쪽에 즉각적으로 항의전화를 했고, 아예 항의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게 됐는데 나는‘풀빵’님,‘delight’님과 함께 그 성명을 읽게 되었다.
사실 기자회견 전날 마음이 상당히 착잡했다. 나는 그냥 연합광고만 진행하고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항의성명을 읽어도 될까. 개인적으로 혹시 어떤 피해를 보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82cook회원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고, 여러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와 기자회견은 성황리에(?) 끝났다. 덕분에 취재 나왔던 MBC 「PD수첩」의 PD와 인터뷰도 하고 그중 일부가 방송에 나오긴 했는데, 분명 미혼이라고 말했는데도 82cook에 주부들이 많아서 착각했는지 소개자막에‘82cook주부회원’으로 나왔다. 덕분에 후배한테서 “PD수첩에 너무 닮은 사람이 나왔는데 주부라던데?”라는 문자도 받고, 지인들한테 “주부였어? 언제 나 모르는 새 결혼했대? ㅋㅋㅋ” 같은 문자를 꽤나 받았다. ㅎ
조선일보의 무식한 작태는 지면에 광고를 싣는 기업의 제품들에 대한 82cook회원들의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요새도 끊임없이‘오늘 숙제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꾸준히 싣고 있는 대기업 중 SK텔레콤, S-Oil, 금강제화, 교보생명, 대한생명,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휘센), CJ등이 회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개념있는(?) 기업들이다. 특히나 SK텔레콤은 현재 네티즌 사이에서 100만명 해지하기 운동 대상으로 선정됐다. 나도 SK를 해지할 예정이고, 많은 회원들도 8월중에 번호이동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삼양라면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농심 불매운동을 했는데, 농심의 매출이 급감했고 급기야 농심이 “소비자의 마음이 돌아설 수 있도록 쓴소리를 소중히 듣겠다”는 내용의 광고까지 내보내게 만드는 쾌거를 이뤄냈다.
82cook에서 현재 하고 있는 가장 주요한 활동은‘delight’님이 주체가 되어 82cook에서 모인 성금으로 촛불집회 현장에서 밤에 간식을 지원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성금을 보내주었다. 그 성금으로‘delight’님은 지치지도 않고 종류도 가지가지로 바꿔가면서 촛불집회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하는 시민들에게 야밤 느지막한 시각에 간식을 지원한다. 이 야식 지원에‘개념부부 1, 2’네분,‘풀빵’님 등이 함께 수고해주시는데, 가장 수고하시는 분은 성금 모금, 간식 구입부터 현장 배포까지 모두 맡아서 하는‘delight’님이다. 차량 지원이 필요할 때는 자동차연합 분들께서 도와주신다.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delight’님의 야식 지원을 도우면서 아무래도 내 차를 모닝이 아니라 카니발 중고로 구입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닝의 공간에는 다 싣지도 못할 양의 주먹밥 400개는 자동차연합 분들이 아니었다면 시민들에게 전달되지도 못할 뻔했다.‘delight’님은 정말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 에너자이저다. 지칠 줄 모른다. 돈이 떨어져야 그 고생이 끝날 것 같아 성금 모금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현장에서 밤새 뛸 때 지원되는 간식은 정말 꿀맛일뿐더러, 비록 현장에 못 나오더라도 국민들이 함께 해주시는구나 하는 큰 응원이 되기 때문에 작은 찰떡 초코파이 하나라도 시민들은 매우 고마워하면서 드신다. 그렇게 고마워하고 힘내는 걸 보면 간식 지원을 멈출 수 없기에 우리들끼리는 이를‘마약’이라 부른다. 신월동 성당에서 이길준 이경(전의경제 폐지를 주장하며 복무거부를 선언한 현역 전경이다)이 농성하던 와중에는 함께 농성하는 분들을 위해 30인분의 카레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제는 달라진 우리들
82cook회원들은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올라오는 글들 역시 시국이나 나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매주 목요일, 「100분토론」 출연자들 대진분석표를 올리는 박학다식하신‘82의여인’님의 글은 인기가 폭발적이며, 빨리 올려달라는 요청도 올라온다. 회원들이 뉴스도 빼놓지 않고 보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시사프로의 몇십배 분량을 챙겨보며, 생방송할 때면 실시간으로 댓글 릴레이까지 펼치면서 함께 시청한다. 「100분토론」에‘에헤라디어’님이 전화로 연결되어 조리있게 말씀하신 후에 그분 팬이 급증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서두에 밝혔듯이 순전히 이명박 대통령의 공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절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82cook회원들이 정치〓삶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라 돌아가는 것에 무관심했던 점에 대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개인주의자였던 내가‘우리’라는 개념을 마음속에 품게 됐으며,‘우리’나라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박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에 배후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는데, 감히 말하고 싶다. 촛불의 배후는 우리 아이들이고 우리 후손들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강경·폭력진압과 무차별 연행으로 촛불이 좀 사그러든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촛불은 사그러든 게 아니라 숯불로 그 형태만 바뀌어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고. 자기들 정권이 백만년 갈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믿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분명 제대로 심판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끝으로, 열심히 활동하셨는데 미처 이 글에 밝히지 못한 82cook회원분들이 많다. 현장에서 고생하며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과 온/오프라인상에서 응원하고 뛰어주시는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