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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제임스 러블록 『가이아의 복수』 세종서적 2008

살아 있는 지구를 위한 위태로운 처방

 

 

김기윤 金基潤

한양대 강사, 과학사 kiyoonkim@hanmail.net

 

 

김기윤_가이아의복수제임스 러블록(James Lovelock)은 40여년 전 지구 토양과 대기의 화학적 조성이나 온도 및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데 지상의 동물·식물·미생물의 활동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후 러블록은 소설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제안에 따라, 생물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기조절 능력을 보인다는 뜻에서 지구를 가이아(Gaia)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적인 저술과 과학자들을 상대로 한 연구를 통해 지구환경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제들을 찾아서 발표해왔다. 따라서 그간의 저술은 대체로 인간 활동이 일으키는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지구의 조절능력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제 『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 이한음 옮김)에서 러블록은 지구의 조절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으며,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핵에너지라고 주장한다.

가이아이론을 착상해냈던 1960년대 후반, 러블록은 독립 연구자로서 미항공우주국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가이아이론을 둘러싼 그의 열정에는 공학자로서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자기조절하는 지구’라는 개념에는 변화에 저항하는 지구의 정화능력에 대한 신뢰가 스며 있었다. 가이아를 파괴할 수 있는 인간의 활동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공학자로서의 적극적인 태도도 담겨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과학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공학자로서의 러블록은 자연과 인간사회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각에 편협한 데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온난화 문제가 아니라 핵에너지의 위험성, 산성비의 폐해, 오존층 파괴가 환경분야의 주요 이슈였다. 그 와중에 러블록은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되는 집단의 선전이나 환경론자들의 과장 때문에 핵에너지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자동차에 깔리고 부딪혀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본 일이 있는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행위를 용인하면서 핵에너지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러블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육류를 먹어치우고 그에 따라 가축이 늘어남으로써 발생하는 지구환경의 폐해에 비하면, 산성비에 대한 떠들썩한 논란 역시 어이없는 작태로 보였다. 육류 소비의 결과에 대한 연구가 환경론에서 산성비에 대한 논란만큼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면, 그런 환경론은 이성적인 환경론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존층 파괴에 대한 비상한 관심 역시 오도된 열정으로서, 이성적인 환경론자라면 전기톱에 의한 삼림파괴를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러블록은 핵에너지의 필요성을 한층 더 강조한다. 체르노빌을 경험하지 않았느냐고? 사고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 중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실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핵기술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를 통해 오염되었으리라고 여겨진 라플란드(Lapland) 지역의 순록을 모조리 도륙한 행위는 그곳 주민들에게 결코 정의롭지 못한, 비이성적인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가이아 개념은 발표 초기에 반(反)문화 기류 속에서 히피, 여성주의자 그리고 환경론자들에게서 열렬한 사랑을 받았지만, 신중한 과학자들은 이를 곧장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당시 널리 쓰이기 시작한‘지구씨스템과학’이라는 개념과 러블록의 가이아이론이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훌륭한 과학이론과 마찬가지로, 가이아이론은 검증과 개선과정을 거쳐 좀더 정교한 이론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론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 전형적인 과학이론이라고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가이아이론이 점차 수용되어가는 동안, 정작 가이아의 자기조절 능력에 관한 러블록 자신의 낙관적 믿음은 점차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러블록은 자신의 일생 동안 변해온 지구, 가이아의 모습에서 분명한 위험징후를 느꼈다. 지질학자들과 고기후학자들이 화석연료의 사용이 계속될 경우 필경 지구의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해수면 역시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뒷받침하는 갖가지 연구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극지방 부근의 일부 지역에서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문명이 21세기를 넘기기 어려우리라는 직관이 이어졌으며, 살아남을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낼 힘이나마 남겨주기 위해서 러블록은 최선의 방책을 모색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며 지속가능한 후퇴(sustainable regression)를 준비해야 한다는 러블록의 주장은 많은 독자들이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러블록은 온난화를 지연시키고 잠시라도 더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은 핵에너지라고 주장한다. 조력,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의 대안이 모두 엄청난 에너지원, 특히 전기를 요구하는 현 문명을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예컨대 바이오에너지로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식량생산을 위한 토지보다도 훨씬 광대한 농지가 필요하며, 조력을 최대한 동원해봐야 현 문명이 요구하는 전력의 5~10%를 조달할 수 있을 뿐이고, 풍력발전 역시 경관을 해칠 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문명을 유지하려면 원자력발전으로 시간을 벌면서 궁극적으로는 핵융합에너지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꼭 러블록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현대문명이 지질학적으로 유의미한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핵에너지의 개발이 인류문명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그의 처방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기술이란 흔히 처음 소개되었을 때보다는 수십년 후에 변형되면서 훨씬 더 널리 그리고 유용하게 쓰인다. 19세기 중반, 기차는 일부 사람들의 삶을 급격히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기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은 흔히 뜻밖의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20세기 초반, 자동차는 말똥의 오염을 피할 수 있는 꿈의 청정기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러블록의 전망과는 달리 수많은 대체에너지원의 잠재력은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그리고 핵에너지의 약점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환경운동의 우선순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는 내용이 이 책의 강점이라면, 가이아의 복수에 대처할 방안은 지나치게 단선적이어서 이 책의 약점으로 남는다. 러블록의 처방이 아니더라도 일단 여러 지역에서 핵에너지의 안전성과 실용성이 강조되는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궁극적인 처방은 새로운 기술 또는 유일한 꿈의 기술보다는, 알려져 있는 다양한 기술들에 대한 개선과 재고 그리고 과거 삶의 방식들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