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신동엽창작상 발표
신동엽(申東曄)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고 역량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신동엽 시인의 유족과 창비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상 제26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8년 11월 26일(수) 오후 6시 30분 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창비장편소설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6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오수연 소설집 『황금 지붕』
심사위원
손택수 전성태 한기욱
2008년 7월
신동엽창작상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2008년 5월 28일 신동엽창작상 운영위원회는 손택수, 전성태, 한기욱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제26회 신동엽창작상 심사를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은 한달여 동안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작가의 최근 3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성취들을 검토하고, 1차 모임(7월 4일)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해당 작가의 최근 문학상 수상내역 등을 참조해 시집 세권, 소설집 세권으로 심사대상을 압축했다.
김행숙 시집 『이별의 능력』, 임성용 시집 『하늘 공장』, 최금진 시집 『새들의 역사』(이상 시), 백가흠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손홍규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 오수연 소설집 『황금 지붕』(이상 소설). 여섯권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끝에, 2차 모임(7월 18일)에서 오수연의 『황금 지붕』을 올해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심사평
손택수(孫宅洙) 시인
“어느 것 하나 건드리면 아픈 우리의 살 아닌 것이 없다.” 검토대상이 정리된 작품목록을 보면서 신동엽의 말이 떠올랐다. 저마다의 다기로운 개성으로 탈피를 거듭하고 있는 정신들과의 만남을 우선은 축복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최종심 대상작을 가려야 하는 지점에 이르러 곧 고통이 되고 말았다. 신동엽은 모든 작품들에 공명할 줄 아는 폭넓은 감수성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미학을 개진하는 순간에 이르면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때의 기준이 바로‘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다. 그렇다. 일그러진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는 언어들의 아픔을 기준으로 나는 시집들을 힘겹게 골라냈다.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 임성용의 『하늘 공장』,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가 그들이다. 여기에 소설부문에서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 손홍규의 『봉섭이 가라사대』, 오수연의 『황금 지붕』이 추가되었다.
여섯권을 놓고 집중적으로 논의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우선 시집들의 성과가 만만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별의 능력』에 실린 시들은 재래적인 서정시 문법으로부터의‘이별 능력’이 공감을 샀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별 의지가 충분히 근본적인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또한 그 이별 의지가 자신이 공들여 쌓은 문법과도 이별한 뒤 소통 의지 쪽으로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늘 공장』은 리얼리즘 미학과 노동시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 흠이긴 하나, 「발」 「그라인더는 나의 손」 같은 시는 노동시가 환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현실에 복무하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새들의 역사』는 단연 돋보이는 시집이었다. 세계와 불화하는 시인의 냉소적인 시선이 잘 연마된 렌즈를 통과할 때 그 시선은 근래에 보기 드문 강렬한 매혹을 뿜어낸다. 생의 변경으로 내몰린 풍경들에 대한 이 집요한 시선은 궁극적으로 은폐된 세계의 비참을 핍진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계통이 훌륭한 웃음일수록,/말없이 고개숙이고 달그락달그락 숟가락질만 해야 하는/깨진 알전구의 저녁식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그러므로 아무리 참고 견디려 해도/웃음엔 민주주의가 없다”(「웃는 사람들」)는 구절이 보여주듯 웃음의 영역까지 소외시키는 세계 속에서 최금진의 시는 또다른‘찡그림 속의 살 아픈 언어’가 되고 있다.
시집 쪽의 성과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몇년 연속 시인들이 수상자가 되었음을 감안해 최종적으로는 최금진 시집과 세권의 소설집을 놓고 논의를 진행해나갔다. 오수연의 『황금 지붕』은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이 소설집은 난해한 형식이 끝까지 문제적으로 다가왔으나 한국소설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신동엽의 「수운이 말하기를」 한 구절을 여기에 덧붙인다. “비 개인 오후 미도파 앞 지나는/쓰레기 줍는 소년/아프리카 매 맞으며/노동하는 검둥이 아이,/오늘의 논밭 속에 심궈진/그대들의 눈동자여, 높고 높은/하눌님이어라.”
전성태(全成太) 소설가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서른 됫박 바닷물을 말려 얻어낸 한줌 소금과 같이 정제된 시집이었다. 곡절 많은 이야기로 빚은 시편들이었는데 감탄사 한마디 없이 담담했다. 시의 문체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게 했다. 특히 어린 날에 마주친 낯선 공포와 이미지를 전하는 시편들이 첫시집답고 애틋했다. 소설 쪽으로 논의가 기울었을 때에도 쉬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소설집은 최종적으로 세권이 검토되었다.
손홍규의 『봉섭이 가라사대』는 작가의 입담이 주는 재미와 활력이 남달랐다. 환상까지 동원해 펼쳐 보이는 인생담들이 유장했고, 낯익은 인물들이 낡지 않고 새로웠다. 손홍규의 소설은 우리 소설문학의 전통에 다가서 있으면서 갱신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역사를 활용하지 않고 탐구하는 점은 큰 미덕이었다. 그런 점에서 「도플갱어」를 비롯한 「푸른 괄호」 「최후의 테러리스트」 등 작품집 후반부의 단편들은 울림이 컸다. 그가 힘써 창조해가는 환상들이 소설에 더욱 뿌리를 내리면 아마도 우리는 팔뚝이 굵은 이야기꾼을 얻을 듯싶다.
백가흠의 감각만이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대응은 새로운 작가군 중에서도 전위에 해당한다.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에서부터 고유한 영역을 확보한 그는 두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에서도 여전히 충격적이고 첨예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첫 소설집의 단편들이 미학주의자다운 완고함을 보이면서 작가의 손길이 두드러졌다면, 『조대리의 트렁크』에서는 그 조밀함에 여유가 생기고 작가의 얼굴과 육성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작품세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변화와 진전으로 읽혔다.
오수연의 『황금 지붕』은 진정성의 무게를 새삼 돌이켜보게 했다. 이라크 전장에 다녀와서 『아부 알리, 죽지 마』라는 값진 보고문을 제출한 바 있는 작가는 소설집 『황금 지붕』에 글쓰기의 고투를 아끼지 않았다. 체험의 강렬함을 이기고, 그곳의 전쟁과 폭력을 우리의 문제로 옮기기 위해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지우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다. 따라서 맥락을 이해해가며 따라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러나 애써 읽어낸 후에는 통증이 일었다. 작가가 이 소설집 전체를 통해 겨냥한 미학적 정서 혹은 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통증’이라는 공감대가 아니었을까. 그 문학적 도전이 값지게 여겨졌다.
신동엽창작상은 역량있는 작가를 찾아 앞으로의 활동을 격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문학적 연조가 짧은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아왔다. 오수연의 문학적 이력은 이미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오수연은 역작 『부엌』 이후 새로운 문학적 단계에 진입한 것 같다. 부디 이 상이 작가의 근년간 문학적 행보에 대한 경의(敬意)로 받아들여졌으면 싶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세편의 소설집과 한편의 시집을 놓고 논의를 거쳐 오수연의 『황금 지붕』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는 대도시의 허름한 골방이나 교외의 낡은 모텔에 의탁하는 밑바닥 뜨내기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의 소설은 이들의 뒤틀리고 비루한 속내와 기이한 관계를 보여주는 데 빼어난 반면, 이 밑바닥 삶을 균형있게 제시하고 그 귀추를 감당하는 데는 소홀한 면이 있다. 손홍규의 『봉섭이 가라사대』는 여러모로 기존의 소설형식에서 이탈한다. 특히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가르거나 뒤섞는 방식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한 사유의 일환인 점이 흥미롭다. 이런 형식실험이 기존 서사형식들이 지닌 소설적 자원에 대한 성찰과 결합될 때 그의 소설적 기획이 좀더 또렷해지리라고 본다.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는 천연스럽고 유려한 가락 속에 현실의 누추한 끝자락들을 섬뜩하리만치 적실하게 포착한다. 시인의 냉정하고 예리한 생태관찰이 여러 물상의 온갖 다채로운 표정을 선명하게 포착하는 원천인데, 이런 냉정함이 허허실실의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랄 때가 있다.
오수연의 『황금 지붕』에 실린 작품들은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 마치 소설서사 곳곳에 정체불명의 응어리 같은 것이 맺혀 있어 온전한 발화를 가로막는 듯하다. 작가의 체험이 어떤 원만한 문학적 양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성격인 탓일까. 체험의 메씨지 전달에 필요한 사실성조차 수시로 파열되면서, 감각과 지각의 밑바탕에서부터 균열과 혼란이 일어나며 종종 부조리한 상황과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수반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헝클어지는 가운데 특이한 감각의 응어리가 “폭죽이 터지듯 다투어 피어나고” 의미를 구성할 듯 말 듯한 소리-언어가 내뱉어진다. 가령 동굴 속에 있는 「소리」의 화자에게 바람소리는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었고, “그 소리를 보는 것은 눈꺼풀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눈이 아니라 뼈였다”고 할 때의 이 기이한 공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지극한 연대의 감수성 없이 이런 비유는 가능치도 않으리라.
소설서사를 파편화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이르러 근대 합리성의 환상이 극에 달했다는 직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듯하다. 소설 곳곳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제국, 민족,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은 그런 개념들이 뒷받침하는 근대성에 대한 게릴라식 비판처럼 느껴진다. 「재칼과 바다의 장」은 현실과 우화를 겹쳐놓고 장벽으로 나뉜‘서쪽 문인’과‘동쪽 친구’의 이메일 교신을 섞어 넣으면서 극에 달한 근대세계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그 너머를 상상하는 대안적 사유를 모색한다. 이런 대안적 사유 역시 원만하고 합리적인 추론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의 강렬한 체험이 통상적인 문학양식에 안착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내파하듯 작가의 세계인식도 수월한 합리성을 거부하며 비의적인 직관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이 난해한 소설들은 마치 응어리진 꽃봉오리가 “폭죽이 터지듯 다투어 피어나” 꽃비를 하늘 가득 뿌릴 것 같은 예감을 문득 선사하기도 한다. 손쉬운 표현양식을 마다하고 소설화의 새 길을 찾아나서는 작가의 투지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분투가 곧 더 나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수상소감
천만에요! 해보면 재미있어요
오수연 吳受姸
1964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장편공모에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빈집』 『부엌』 『황금 지붕』, 산문집 『아부 알리, 죽지 마』 등이 있다. 2001년 제34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입니다. 『황금 지붕』에 실린 단편들 중 하나에 나오는 새. 저자에게서 “몹시 기쁘고 감사드린다”는 수상 소감을 전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직접 말하기가 쑥스럽나 봅니다. 원래 그이가 그렇습니다. 저를 비롯해 이 책의 등장인물 일동도 감사드린다는 말씀, 더불어 전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동전이 남았거든요.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물으면, 솔직히 몇명 안됩니다만, 그이가 답변을 안합니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합니다. 때 낀 손톱이나 물어뜯습니다. 저로서는 속 터집니다. “왜 그 새는 날개도 펴지 않고, 게다가 뒤집힌 채로 날고 있느냐?” 같은 질문에 답을 못하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 새가 바로 전데 말입니다.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에요. 여기로 한번 들어와보셔요. 참 정신없어요. 우린 아무 짓 안했다니까요. 우리야 살아지는 대로 살았죠. 저자가 아무리 용을 쓴들, 등장인물의 사고방식이나 술 먹고 주사 부리는 버릇 같은 게 바뀌나요? 턱도 없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책 한권 때문에, 첫 장을 펼치고부터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의 동안에 확 달라집니까? 말도 안되죠. 그런데 우린 그냥 있건만 상하, 좌우, 앞뒤가 뒤틀리고 이지러지더니, 급기야 어디가 어디고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어요.
우리도 물어본 적 있지요. 왜 이렇게 됐느냐고요. 그이, 역시 손톱 물어뜯더군요. 자기가 안 그랬다는 거예요. 자기는 펜촉을 대지도 않은, 아니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자를 찍지도 않은 부분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거예요. 글자를 찍지도 않은 부분이라면,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 단편과 단편 사이 여백이잖아요. 거기에서 어떤 장력 같은 것이 뿜어져나와, 점입가경으로 얽히고설켜, 이 모양이 됐다는 넋두리예요. 그럼 그 장력은 어디서 왔느냐? 쯧, 그이는 더이상 거론하지도 말자구요.
아마 책을 읽는 사람들로서는 별로 신경 안 쓰일, 어쩌면 느끼지조차 못할 이 장력에 우린 엄청 신경 쓰여요. 저자마저 책임 못 지는 이 장력에 우리는 책임감을 느껴요. 왜냐하면 이 장력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뒤틀리고 펼쳐진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 현실인 한, 그 장력은 당신들의 현실에서 왔을 거예요. 아무렴요. 우리의 현실을 지킬 자, 우리밖에 더 있나요?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이 책은 우리에게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들의 현실만큼이나 복잡하고 한 귀퉁이라도 빠지면 안될, 유행하는 말로,‘네트’(net)예요. 그러니까 제가 날개를 펴지도 않고 뒤집힌 채로 날고 있는 건, 유행 지난 말로 리얼리즘이라 이 말지요. 자꾸 나더러 그렇게 날기 얼마나 고생스럽냐고들 하는데, 천만에요! 해보면 재미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동전이, 아니 수상소감이 더 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