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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성용 吳成龍
1984년 광주 출생. 2007년 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foooooo@naver.com
집에 가, 어린 왕자
1
이백칠십팔번 양(羊)을 울타리 안쪽으로 들여보낸 나는 소매를 들어 이마를 쓸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운지, 땀이 쉬지도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수차례 땀을 닦는 용도로 쓰인 소매는 완전히 젖어 검게 변한 지 오래였다. 더운 날씨 탓인지 별달리 격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몸이 점점 늘어졌다. 내가 관리하는 양들도 나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평상시엔 이리저리 기세 좋게 내달리던 놈들도, 별 수 없이 나란히 줄을 서서 혀를 길게 빼고 할딱이고 있었다. 풀이 죽어 한결 다루기 쉬워진 양들의 모습이 달갑기도 했지만, 안 그래도 더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보여주는 그 몸부림은 안쓰러움도 불러일으켰다. 털이라도 깎아주며 기운 차리라고 격려해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며, 나 또한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나의 일을 하기 위해 울타리의 경계에 몸을 놓고, 땀에 전 소매를 기운 없이 움직여 이백칠십구번 양을 이끌었다.
이백칠십구번 이백팔십번 이백팔십일번, 끊임없이 오물거리는 나의 입은 쉬지 않고 숫자를 발음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처음으로 이 일을 접했을 때 나는 도중에 숫자를 까먹거나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 실수가 벌어지면, 울타리 안쪽에 들어가 있는 양이 몇마리인지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기껏 울타리 안으로 넣었던 양들을 다시 바깥으로 내보낸 후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았던 초기에는 그 과정을 열두번이나 반복하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다음날의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일을 마치곤 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들을 토대로 나의 입은 좀더 신중하고 계산적으로 변해왔다. 삼백번 양에 가까워질수록 실수가 잦아지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의 입은, 그래서 지금 특히나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양들도 나의 몰입된 모습에 감응했는지, 아무렇게나 내뻗는 손길에도 순순히 박자를 맞춰 울타리 안쪽에 차곡차곡 들어가 쌓이고 있다. 나는 이 유순한 양들을 다루며, 그들의 성품에 찬사를 보내곤 한다. 어쩌면 종이상자로 포장한 다음 보관해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순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양이 아니라 개나 코끼리였다면, 지금처럼 단순하게 손을 놀리지도, 이렇게 수월하게 한마리 한마리 울타리 안쪽에 넣지도 못할 것이다. 조금만 소홀했다가는 손이 씹히거나 으스러져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간신히 울타리에 넣어본들 그것을 뛰어넘어버리거나 아예 부숴버려, 울타리의 의미와 나의 노력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나 코끼리와는 대조적인 얌전한 양과 함께라는 것은, 내게 다행이며 충분히 고마운 일인 셈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일의 속도를 높여갔다. 양들은 착실히 나의 요구에 응했다. 삼백번, 양이 쏜살같이 울타리 안쪽으로 스며들어갔다.
나는 양을 번호로 부르지만, 그것은 양(量)의 개념의 양(羊)이다. 양들에게는 별도로 번호가 부여된 상태가 아니다. 지금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간 삼백번으로 불린 양도, 전날에는 이백몇번 또 그전에는 칠십몇번이었다. 한번은 이런 양들에게 번호가 아닌, 고유한 이름을 지어주려 한 적이 있었다. 순한 양들을 향한 나름의 애정표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시도는 완벽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유난히 덩치가 크거나, 혹은 마르고 볼품없지 않은 이상 모든 양들의 생김새가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었다. 쌤이라 이름 붙였던 양을 애써 기억해내서 쌤을 불러 세우면 진짜 쌤이 저 멀리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톰이라 기억되는 양을 붙잡아 톰이라고 부르면 진짜 톰이 등 뒤에서 대답하고, 짐이라고 생각되는 양에게 안부를 물으면 나는 쌤인데요라고 화답하고, 톰에게 짐은 어디 있냐 물어보면 아마 톰이랑 있을걸요 아까 말했지만 저는 쌤이라니깐요라는 질책 따위만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질책을 계기로 양들을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 그저 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제 그냥 순서대로 양을 칭하기에 이르렀다.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각자의 이름을 지어줄 수 없었던 것이지만, 양들을 그냥 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고, 되레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다. 비슷한 생김새의 영향인지 성격 또한 비슷비슷, 온순한 양들도 자신들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에 띄게 특별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수많은 양들을,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렇게, 삼백칠십번까지 양을 세던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더운 날씨에, 좀더 협조적이 된 양들 덕분에 평상시보다 진척이 빨랐고, 무엇보다 내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삼백칠십이라는 숫자를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계속 굴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2
나는 내가, 그리고 그녀가‘그리하여 그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약속된 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라 부를 수 있는 긴 시간 동안 행복함의 정서를 향유하며, 모든 것에 우선해서 우리 둘은 함께일 것이라 믿었다. 나와 그녀가 동화에 등장하는 왕자나 공주, 혹은 거지였던 왕자나 하녀였던 공주가 아닌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근접한 뭔가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과 믿음과 예상들이 모두 보기좋게 엇나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나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떤 모양새로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이 안됐다. 이런 상황이 온 것 자체가 의문이었기 때문에, 그저 동그랗게 치켜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대로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가 생각했던 약속된 엔딩은 더이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져버리고 만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 나는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고 내 생각과 믿음과 예상을 다시 온전한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궁리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부터 파악해야 뭐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되짚어보는 일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일에 동원될 줄은 몰랐던, 준비되지 못한 나의 머리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천천히 뱉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근래의 일부터 훑어내려가며 기억을 더듬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살폈다. 그때 나의 입에서 나온 세속적인 언어가 혹시나 그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때 예절에 어긋난 나의 몸짓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때 나의 어처구니없는 등장이 바람직하지 못해 그녀가 감당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때마다 양치질은 했었는데 하는 조심스런 접근들이, 각기 다른 그때들 위로 덧씌워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감아봐도, 이렇다 할 수확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변할 만한 계기를 내가 제공한 것이라면 뭔가 하나쯤은 걸리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게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머리는 목적을 잊고 순간순간의 그녀를 지나쳐가며 감탄과 기쁨에 휩싸일 뿐이었다. 그녀를 좋아한다는 방향으로 치우칠 대로 치우친 머리가, 그때마다 모자란 나의 모습을 감내하고 웃어주는 그녀를 향해 무조건적인 투항상태에 돌입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최악이고 상황대처도 최악이었지만, 자꾸 나의 입가엔 웃음이 머금어졌다. 이상하게도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급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들 때문이었다. 기억 속에서 나에 비할 바 없이 특별한 그녀, 나와 비교하면 더욱 특별한 그녀, 내게 정말 특별한 그녀와 함께이던 내가 비춰졌고, 그 안쪽에서 보잘것없는 내가 그녀가 뿜어내는 특별함에 힘입어 특별한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친구라는 작위를 수여받기 위해 그녀가 겨누는 칼끝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나, 그 과정에 이르기 위해 동년배의 스승을 여럿 모셨던 나, 처음 그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바동거렸던 나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나들이 특별한 것처럼 그녀 앞에 미소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 마주쳐, 내 모든 것들이 특별해진 것은 모두 특별한 그녀 덕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실감은 나를 한바퀴 휘감고 돌더니,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으로 금세 이름을 바꿨다. 아직까지 왜 그녀가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준다면 그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결의가 생겨났다. 최악의 상황에서, 뭐가 어떻게 되든 내겐 그녀가 필요하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만 건진 나는, 비장해진 채 머릿속에서 가장 최근의 그녀를 다시 불러냈다.
3
이게 뭔지 알아?라고 물으며, 그녀는 자신의 노트를 펼쳐 내게 건넸다. 종이. 나는 그녀의 노트를 받아들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간결함은 그녀의 기대에서 벗어난 것이었는지, 그녀는 그게 아니잖아 이 바보야!라고 외치며 펼쳐진 노트의 어느 지점을 자신의 검지로 가리켰다. 종이를 보고 종이라고 말해서 바보 소리를 들은 나는, 그녀의 검지 끝이 짚고 있는 어떤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엔 연필로 지저분하게 그린 모자가 있었다. 이건 모자네. 그림을 본 나는 답을 정정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차례 까르르 웃더니,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우월감에 휩싸인 태도였고,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시선이었으며, 대단히 재미있다는 투의 웃음소리였다. 상대적으로 나는 열등해진 것 같았고, 그녀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며, 대단히 재미없는 일에 휘말려버렸다는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검지로 자신이 그려놓은 모자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이건 모자가 아니라 보아뱀이야, 그것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눈앞에서 까르르 웃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 나는 잠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정보이긴 했지만, 그녀가 그린 모자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모자가 보아뱀이라고?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그녀는 연필을 꺼내 모자의 중앙에 무언가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보아뱀이고, 이런 식으로 뱃속에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거지. 다시 건네주는 그녀의 노트를 받아보니, 모자 안쪽에 개 한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이건 코끼리가 아니라 개잖아. 나는 솔직한 감상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언성을 높여, 그것은 개가 아니라 코끼리라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개같이 생겼는데 그림을 그린 사람은 개가 아니라 코끼리라고 주장하며, 멀쩡한 개를 코끼리 취급했다. 보아뱀의 뱃속에 들어간 코끼리는 개 같은 몰골이 되는 거야라고 설명이라도 해준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녀는 결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개는 코끼리였고, 모자는 보아뱀이었다. 그녀의 이유 없는 불친절에 불편해진 나는, 그림 더럽게 못 그리네,라는 핀잔을 그녀에게 건네고 말았다.
애초에 그녀가 그림을 똑바로 그렸다면 이게 모자인지 뱀인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코끼리인지 아니면 개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나의 의사를 그녀에게 피력했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하더니 노트를 접었다. 모자처럼 그려진 뱀도, 개 같은 코끼리도 그 지점에서 사라졌다. 그것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메운 것은 뜬금없는 나와 그녀의 침묵이었다. 그녀의 자발적인 침묵과 그녀의 침묵에 어쩔 수 없이 부응하는 나의 침묵의 조합으로 그녀와 나 사이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들어보니 입을 꾹 다문 채,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역시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핀잔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그 코끼리, 인도코끼리야 아니면 아프리카코끼리야? 딴에는 최대한도로 발휘한 화해의 몸짓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개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4
비장하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나는 사과 한알을 집어들어 한입 거칠게 베어물었다. 사과 껍질과 속살은 물론 씨와 꼭지까지 씹혀 들어왔다. 쌉싸름한 맛과 까끌한 질감이 입 안을 채우자, 더욱 비장한 기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요 며칠간 계속해서 이런 상태로 나 자신을 몰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비장함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그리하여 그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에서,‘그리하여’에 해당하는 중요한 대목이 지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지가 왕자로 거듭나고 하녀가 공주로 변모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왕자도 아닌 내가 평상시처럼 흐리멍텅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 고행의 순간들은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고, 눈앞에 보이는 그녀라는 뚜렷한 목표를 놓친다면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의 비장함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었다.
양 한마리만 그려줘.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나의 물음에,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그녀의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집 앞에서 잠복까지 해가며 간신히 만난 그녀를 위해 생각해왔던 일은 그런 게 아니었지만 그녀에게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노트와 연필을 꺼내들어야 했다. 우습게도 나는 양을 그릴 수밖에 없었고, 우선 이것부터 간단히 끝내고, 그녀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성한 양의 몸통을 그리고 사족 보행에 적합한 다리와 균형감을 좌우하는 꼬리에 이어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처진 귀, 튀어나온 주둥이까지 그려가는 동안 나의 미간은 조금씩 구겨져만 갔다. 분명히 양을 상정하고 그리는데, 그 자리에 엉뚱한 염소 한마리가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이게 아닌데 하는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물끄러미 나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보였다. 맙소사. 나는 다급히 염소가 그려진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다시 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더 심혈을 기울이고서 양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을 곁들였다. 폭신폭신한 양털로 수북한 몸통, 푸른 대지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앞발과 뒷발 그리고 흙투성이 발굽, 삐— 하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만드는 목울대와 거기에 이어진 뾰족한 턱관절, 풀을 씹기 편하게 돌출된 주둥이와 물에 젖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그 속눈썹까지, 정성껏 그려나갔다. 그랬더니 노트엔 놀랍게도 돼지가 그려졌다.
염소에 이어 돼지도 찢어발긴 나는, 분주히 새로운 페이지에 양을 그려나갔지만, 분주히 엉뚱한 것들만 등장했다. 그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런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림 더럽게 못 그린다는 핀잔이라도 해주면 고마울 텐데, 아무 반응도 없이 내가 하는 짓을 팔짱 끼고 구경할 뿐이었다. 혹시 저번에 내가 너한테 그림 못 그린다고 면박준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나는 소같이 생긴 양을 그리다가 잠시 연필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럼 왜 이러는데? 나는 절박하게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무심했다. 우선 양부터 그려줘. 답답한 심정에 나는 솔직히 그림 실력이 보잘것없기도 하고 태어나서 양을 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도저히 양을 못 그리겠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그래도 양을 그려줘라고 말했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다. 따라서 서로의 의사나 심정이 교환되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은 심정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대화를 거부하는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양을 그리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미치지도 팔딱 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연필을 들어올렸다.
날카롭던 연필촉이 무뎌지고, 수십장 그러니까 수십마리의 이름 없는 동물들이 찢기고 구겨져서 발아래 나뒹굴 때쯤, 나는 간신히 양같이 생긴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얼핏 보면 양이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양이라고 생각하면 양같이 보이는 미묘한 그림이었다. 하도 미묘해서 나는 그 그림 밑에,‘양’이라고 썼다. 이름이‘양’이 되자 양 같던 그림은 진짜 양 그림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희망이 기록된 노트가 그녀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나의 그림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양은 너무 말라서 볼품없어, 제대로 된 양을 그려줘.
5
일단 비장해지기는 했지만, 양을 그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무턱대고 잔뜩 힘이 들어간 연필을 긁적여봐도, 그림 실력이 젬병인 내 손에서는 여전히 양도 뭣도 아닌 것들만 나올 뿐이었다. 수차례, 말인지 양인지 분간되지 않는 그림을 그려 휴지통에 처박은 나는, 잠시 연필을 내려놓고, 의도대로 그려지지 않는 양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머릿속에 떠오른 양을 그렸는데, 왜 그려지는 것은 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은 양이 아닌 것만 그려대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불거졌다. 그 결과 나는, 내 손에서 양이 그려지지 않았던 이유를 밝혀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그리려 했던 나의 무식함에 놀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근처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양이라는 동물을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막연한 형상은, 양의 극히 일부 모습일 뿐이었다. 양을 알아야 양을 그릴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 때문에 펼친, 동물도감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양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무수히 많은 양들 중 제대로 된 양이 어떤 것인지 판별할 수 없어서 제대로 된 양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나의 임무는 수행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버렸다. 나는 면양, 무플런양, 빅혼, 우리알, 바바리양, 싸이가 산양, 아르갈리양, 큰뿔야생양, 사막큰뿔양 등의 해괴망측한 양들 사이에서 오가며, 과연 그중 어떤 양이 제대로 된 양인지 알아보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끝내 답을 낼 수 없었다. 각각의 양마다 고유한 특색이 있었고, 각별한 능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미묘한 외양의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기 있던 모든 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모했지만, 비장해져 있던 나는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해나갔다. 그림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작업은 무척이나 더뎠다. 나는 간혹 기름종이와 먹지를 동원해 본을 따기도 했고, 때때로 도서관 한켠에 있는 복사기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그것도 모자랄 때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특징을 포착해 기록하면서 오로지 그림에 매진했다. 요일이 바뀌어가는 것도 모르고, 양들의 눈매 하나 시선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팔십마리에 가까운 양들의 그림이 들어찬 노트로 승화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제대로 된 양 그림을 그려왔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군말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쉽게 볼 수 있었던 얼굴을 이렇게 힘들게 봐야 하는 현실이 슬펐지만, 여전히 예쁜 그녀의 얼굴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나는 그 얼굴 앞에, 공들여 완성한 양들의 그림을 건넸다. 유난히 차가운 표정을 한 그녀는 노트를 받아들고, 내가 그려낸 양들을 한마리 한마리 세심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노트를 넘겨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읊조렸다. 이 양은 눈매가 너무 매서워, 이 양은 너무 뚱뚱해, 이 양은 치열이 보기 흉해, 이 양은 들창코야, 이 양은 하체가 너무 부실해, 이 양은 너무 영악해 보여, 이 양은 기관지가 약한 것 같아. 노트를 점차 빠른 속도로 넘겨가는 그녀는 계속해서‘이 양은’이라는 말로 시작해, 갖가지 이유로 나의 양들에 불합격 도장을 찍어나갔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지만, 그녀는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진 양까지 제대로 된 양이 아니라며, 다시 제대로 된 양을 그려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도서관에 가봤자 더이상 베껴 그릴 양도 없었고,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양을 그려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답답함에 자꾸 가라앉는 어깨를 애써 추켜세운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양을 그려보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동물원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그동안 실물이 아닌 것들을 본따 그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도착한 나는 용건이 없는 다른 동물들을 지나쳐 양 우리로 직진했다. 그곳에는 쌍쌍이 놀러 나온 커플들과 양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특유의 역겨운 냄새를 풍겨댔지만, 나는 그 악취들을 참아가면서 용무를 보기 시작했다. 손으로 코를 감싸 쥔 채, 크게 뜬 눈으로 양들의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뭘 먹는지, 성격은 어떤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양들이 양같이 생겼고, 양같이 움직이고, 양이 먹을 법한 음식들을 씹어먹고, 양 같은 마음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 외에도 양들에게서 인상 깊은 장면이 포착될 때마다, 그때그때 노트를 펼쳐 메모하고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그러자 제대로 된 양이 어떤 양인지 슬슬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에 더 분발해, 인터넷으로 양에 대해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보온에 탁월하다는 양털재킷까지 주문해서 입어보았으며, 주말에 짬을 내 양고기를 파는 음식점에 가서 양을 맛보고, 두번 다시 돈 내고 먹기 싫은 인상 깊은 맛이라고 노트에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나날을 거치면서 나의 노트는 점점 더 내용이 알차졌다. 어느덧 그림 실력도 늘어 이제는 생각대로 연필이 나가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전과 달리 연필을 쥐는 손에 강약조절이 가능했고, 어느 때 어떤 움직임이 필요한지 감이 왔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양을 그려나갔다. 누워 있는 양, 뛰는 양, 풀을 뜯는 양, 자는 양, 공부하는 양, 산 양, 죽은 양, 죽은 체하는 산 양. 새끼양, 늙은 양, 새끼양 같은 늙은 양을 가리지 않고 때론 실감나게, 때론 만화처럼 그려나갔다. 여백이 없어진 노트에 이어 새로운 노트를 마련해야 할 정도로, 생각보다 괜찮은 양들이 계속해서 손끝에서 생겨났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다 끝났다는 확신과 함께 완성된 노트를 껴안았다. 양과 질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는 전보다 자신만만하게 그녀를 찾아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 역시 내가 그려온 양들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경건하게 나의 노트를 받아들었고, 부릅뜬 눈으로 나의 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얀 손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갔다.
6
비장함의 지속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두자루의 연필이 닳아 버려지고, 한권 반의 노트가 채워지자 나의 비장함은 종적을 감춰버렸다. 비장함이 어려 있던 곳에 남은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그동안 그렸던 양들의 그림을 쓸어 넘겼다. 각양각색의 양들이 노트 위에서 달음박질했다. 크고 작은 양들의 분주한 움직임에는 어딘지 모를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진풍경이었지만, 매일 그것을 봐온 나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하아 하는 한숨을 내뱉은 나는 노트를 덮고, 이마를 감싸 쥔 채 침대에 몸을 뉘였다.
기껏 침대에 누웠지만, 그녀를 생각한 나머지 격앙된 나의 몸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아직까지 생생한 그녀의 마지막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렸고, 나의 심정도 그때 그 순간을 재생했다. 복잡 미묘했지만, 굳이 따진다면 울컥함에 가까운 상태로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번 더 바라봤다. 나는 절규하듯,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양이 제대로 된 양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그건 말해줄 수 없다며 등을 돌렸다. 양이라면 그 어떤 것도 그릴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양이 무슨 품종이고 어느 정도 크기이며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영원히 제대로 된 양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이 간단한 공식은, 그건 말해줄 수 없다 말하고 등 돌려 가는 그녀와 맞물려, 새로운 사실을 내게 일깨웠다. 이건 방식일 뿐이구나. 나는 그제야, 내가 멋대로 생각하고 믿고 예상했던 약속이 산산이 부스러져버린 것을 깨달았다. 드러누운 내 얼굴 위로 약간의 원망이 눈물처럼 찔끔거렸다. 그동안 꿈꿔왔던 동화 속 왕자 같은 행복은커녕, 거지 같은 세월만이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들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의사를 꼭 그런 방식으로 표출해야만 했는지, 지금 속이 후련한지 이제라도 달려가 물어보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유별난 이별방식을 곱씹자, 까닭 없이 예전의 그녀가 생각났다. 워낙 특별한 그녀이기에 이별에서도 그 특별함이 묻어나는 것인지 모른다는 자기위안에 가까운 가정이 뒤따랐다.
특별한 그녀는 나와 만나는 시간에서도 철저히 특별했었다. 꼭 오후 네시, 그 시각이 아니면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세시나 오전 열시의 만남 같은 것은 나와 그녀 사이에 단 한번도 없었다. 오후 네시에 한가한 입장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방식에 호응했다. 가장 어중간한 시간대에 만나는 것은 특별한 맛이 있었고, 거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별다른 반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언제나 오후 네시에 찾아오는 내가 좋으며, 덕분에 자신은 세시부터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그 행복이 얼마나 값진지, 이제 몇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그녀의 그런 특별한 말들은 내게 보람을 주었다. 처음과 달리 나와 그녀의 사이가 돈독해진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그녀는 굉장히 씨니컬했었다. 그녀는 나의 존재가 자신에게 아직은 수많은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 또한 내게 수많은 다른 여자와 똑같은 한명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수많은 다른 여자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내가 자신을 길들인다면 나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주겠다는 희망적인 단서를 제시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성공적으로 길들였다,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그녀는 그 화법도, 생활방식도, 생각도 항상 그런 식의 특별한 형태를 고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보폭에 맞추어 나란히 걷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와 달리 너무도 평범한 나는 그녀의 특별함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받아들일 수는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여야 할 그녀의 특별함이 무언지 이해할 수 없어 헤매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 생각은 수정돼야 했다. 고쳐진 사항에 걸맞게,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특별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겨났다. 언젠가, 그녀는 자신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는 내게 말했다. 나를 이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나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너는 그런 나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그녀가 했던 그 말에 동감한다. 시간을 소비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녀도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나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는 그녀가 새삼 원망스러워졌다.
7
우와. 오오. 이야. 와아. 모음만으로 구성된 감탄사를 지르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양을 그려나갔다. 친구들은 내가 그리는 양의 그 세밀함과 다양함에 놀라 일상적인 대화를 잊은 지 오래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녀가 결여되자, 나는 놀랍게도 할 일이 없었다. 항상 바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상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한가로웠고, 짧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는 무척이나 길었다. 요즘 들어 가벼운 불면증 증세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긴 하루를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거의 공백에 가까운 일상 속에서, 할 일마저 없는 나는, 그간 소홀히 대했던 친구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냥 혼자 삼키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시간들을 비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친구들을 규합해 술자리로 이끌었다. 술값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긴 하루를 혼자 빈방에서 마감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인 것은 분명했다. 친구들은 간만에 얼굴을 내민 나를 반가이 여겨줬다. 간혹 몇몇이 여자친구의 안부를 물어오는 것은 예상치 못한 타격이었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한동안, 친구들은 매일 오후 네시가 되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나를 보며 신기해했었다. 도대체 어디로 왜 사라지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규칙적인 실종사태에 의문을 품은 친구들은, 결국 어느날 오후 네시의 나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고, 나의 증발 원인이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줄곧 신기함의 대상이었던 나는, 그들의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 아래 순식간에 조롱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친구들은 내게 그럴싸한 별명을 붙여줬다. 오후 네시가 되면 주인에게 뛰어가는 충성스런 명견 래씨1. 무척이나 긴 별명이었는데도, 폐활량과 암기력이 좋은 친구들은, 누구 하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나를 그렇게 불러댔다. 처음엔 나를 개에 빗대는 짓궂은 친구들이 야속해 주먹으로 인중을 쳐보기도 하고, 명치를 발끝으로 차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그 별명으로 불리다 보니 어쩐지 나쁘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네시는 그녀와 나만의 각별한 시간이었고, 그녀가 나의 주인은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으며, 나는 걷기도 하지만 뛰기도 잘했고, 충성스럽다는 수식어는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다가, 명견 래씨라는 발음은 특유의 듬직한 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의 나는 그 어이없는 별명으로 나를 부르는 친구들에게도 웃으면서 대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더이상 오후 네시에 사라질 일이 없는 내가, 계속 이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사가 복잡해진 나는 친구가 건네는 술에 잔을 가져다댔다. 술을 따르며 친구가 물었다. 오후 네시가 되면 주인에게 뛰어가는 충성스런 명견 래씨, 무슨 안 좋은 일 있냐? 나는 대답했다. 응.
처음부터 시시콜콜하게 보고할 마음은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많고 겪은 것이 다양한 나의 속내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술기운에 논점이 자꾸 흐트러지긴 했지만, 나는 내가 맞이한 비참한 끝을 친구들에게 공표하는 데 성공했다. 망했다 망했어. 처연한 끝맺음도 나름 완벽했지만, 의외로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힘내라,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거다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뻥치시네 하는 의견으로 일치단결해서 방긋방긋 웃어댈 뿐이었다. 그 반응에 기가 막힌 나는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트와 연필을 꺼내들어야 했다. 잘 봐, 이게 서유럽권 해발 500미터 부근에서 서식하는 양이야. 연필이 노트 위에서 민활하게 움직였다. 친구들이 웃음을 멈추고 나의 손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통상적 개념의 양이야, 요즘은 주로 식용으로 쓰이지. 눈이 동그래진 친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어 몇마리의 양이 더 그려지자, 친구들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임을 깨닫고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분발해서 얻은 위로였기 때문에, 그다지 큰 위안은 되지 않았다.
위로의 타이밍을 놓친 친구들은 내게 미안했는지, 모두 고개를 처박고 그림에 집중했다. 진짜 이렇게 생동감 있는 양 그림은 처음 봐. 그림에서 양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아! 이 정도면 미대로 편입해도 되겠다. 이 그림 내가 가져도 돼? 친구들의 격렬한 호응에, 어쩐지 나의 마음이 들떠갔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양이냐? 그 질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나도 몰라. 친구는 나의 대답에 대단히 흡족해하며 다시 술잔을 들었다. 나와 한차례 술잔을 비운 친구는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것도 그릴 수 있냐? 나는 양 말고는 다른 것들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확답하지 못했다. 다른 거라면 어떤 거?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무거나. 뭐든 그려보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눈에서 기대가 흘러나왔고,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기가 민망해 연필을 집었다. 뭘 그릴까 생각하던 나의 머릿속에 갑자기 여우 한마리가 떠올랐다. 자주 찾았던 동물원 양 우리 바로 옆에 있던 여우 우리의 영향인 듯싶었다. 나는 양이 아닌 것을 그려보는 일이 처음이라, 자신감 없게 손을 놀렸다. 연필의 움직임 사이사이로 친구들의 감탄사가 다시 들려왔다. 노트에는 생각보다 그럴싸한 여우가 그려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계속해서 입을 오물거렸다.
한참을 주문제작에 열중한 덕분에, 노트는 금세 빽빽해졌다. 양과 여우와 코끼리에 이어, 주제가 너무 동물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그린 식물성 장미 한송이, 그리고 무기질 경비행기 한대를 비롯한 잡다한 그림들이 눈앞에 늘어서 있었다. 그동안 워낙 많은 그림을 그려서인지, 나의 보잘것없던 그림 실력은 훌쩍 늘어 있었다. 내가 그리면서도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나는 술에 취해 정신을 놓은 친구들에게 또 뭐 그려볼까!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자 집에 가자는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노트를 챙기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 안에 노트가 들어왔고, 나는 다시 한번 내가 그린 그림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잘 그려진 양, 여우, 코끼리, 장미, 경비행기 들이 나를 흡족하게 했다. 내가 그려서 그런지, 그림들이 이상하게 서로서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어쩐지 낯익은 조합이었다.
8
친구들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뛰어서 집에 들어온 나는, 해답지를 찾아 뒤늦은 오답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풀었던 문제는 내가 잘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직접 택했던 오답 역시 노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은 것은 해답이었다. 나는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먹고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어린 왕자. 재차 제목을 확인한 나는 그것을 펼쳤다. 해답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그 책에는 예상대로 해답이 있었다. 술이 확 깼다.
몇페이지 채 넘기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뒤늦게서야, 나는 그녀가 내게 요구했던 제대로 된 양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답은 양이 아니라, 상자였다. 내가 그녀에게 보여줬던 최선을 다한 노력은, 단지 오답일 뿐이었다. 나는 나의 노트에 다양한 종의 양이 아닌, 동그란 구멍이 세개 뚫린 허름한 상자를 그렸어야 했다. 상자를 그리고서, 그 안에 제대로 된 양이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틀려버렸으며, 문제를 틀린 댓가로 개고생과 허전한 옆구리를 획득했다. 아무리 열심히 풀었어도, 틀린 건 틀린 것이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그 교훈은, 뭔가 대단히 허탈하고, 왠지 억울한 기분을 내게 불어넣었다. 잘못은 나의 기억력과 무심함에 있었지만, 그런 기분 탓인지 모든 걸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이것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분명히 전에 한번 봤던 내용인데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리고 말다니, 아는 문제를 틀린 심정이 늘 그렇듯 나는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제대로 된 양이 어떤 것인지 깨닫자, 몸에 밴 근성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상자를 그려서 다시 그녀를 찾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멍하니 책에 나온 상자를 노트에 옮겨 그려보았다. 아주 손쉽게 상자가 그려졌다. 순간, 울컥하는 뭔가가 몸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상자는 양을 그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쉬웠고, 성의조차 담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열흘을 넘게 그려도 제대로 된 양 하나 못 그렸던 반면, 상자를 그리는 데는 채 10초도 소비되지 않았다. 허름한 이 상자 안에 제대로 된 양이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양을 생각하고 그 양을 그리던 나를 회상하니, 나도 모를 감정의 변화가 생겨났다. 그 감정에 복받쳐, 뜬금없이 나는 나의 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경지에 다다른 양 그림이, 상자 위에 포개졌다.
어쩌면, 내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그 모든 말과 행동들은 정말로 헤어지자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서, 이제 와 상자를 그려 가본들 그녀는 이 상자는 너무 볼품없어, 이 상자는 이상한 냄새가 나, 이 상자는 너무 찌그러져 있어,라고 말하며 다시 등을 돌려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양을 그려가고 또 그려가던 예전의 나와는 달리 그녀에 대해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아직까지 그녀가 제대로 된 양, 즉 상자 그림을 기다릴 거란 희망도 있었지만, 역시나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만큼이나 솟아났다. 계속해서 상자를 그려도, 양을 그려봐도, 그녀가 그리고 내가 무얼 바라고 있는 것인지 파악이 안됐다. 노트 속 상자의 각각의 면에 구멍이 한개, 두개, 세개, 네개, 다섯개, 여섯개가 더해져가더니 마치 주사위처럼 변해버렸다. 안쪽에 보이지 않는 양이 들어가 있는 그 주사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그녀 사이에 던져졌다. 이전의 모든 관계를 무너뜨리고, 출제자와 응시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그녀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것일까.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나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주사위가 멈춰서길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었다.
9
나는 동화 속 왕자가 아니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다른 남자들과 똑같은 또 하나의 남자일 뿐이다.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그녀였다. 지금 눈앞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주사위는, 그녀의 특별함과 나의 평범함이 맞부딪친 접점 한가운데에서 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경계가 확연한 윤곽을 드러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그 힘의 대결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강제로 힘을 쥐어짠다면 주사위는 그녀의 특별함 쪽으로 던져질 것이고, 약간이라도 물러선다면 나의 평범함 쪽으로 튕겨 날아올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그 어떤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던 내게, 단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의 선택으로 그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갈림길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 갈림길 앞에서, 항상 그녀의 특별함만을 생각해왔던 나는, 난생처음으로 나의 평범함을 돌아봤다. 평범한 어느날,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자라왔던 나의 모든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외모를 지닌 내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외모를 지닌 남들과 함께 어울려 웃고, 울고, 달리고, 걷고, 쉬고, 보고, 보여주고, 다투고, 화해하고, 말을 걸고, 들어주고, 인사하고, 헤어지고, 기억하고, 기억되며,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평범한 삶을 구성해온 그 모든 하루하루는, 눈에 띌 정도로 특별하거나 희귀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나날들이 거기서 거기였다. 아주 약간의 변화와 성장으로 조금씩 높낮이를 달리하며, 전체적으로 거의 균일한 과거, 현재, 또 미래를 살아가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했던 나를 보는, 나의 입가에 이유 없이 웃음이 그려졌다. 평범하다는 것이, 이렇게도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인지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나의 모습들은, 결코 오답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나의 평범함은 순차적으로 움직여, 어느새 특별한 그녀와 만났던 나를 비췄다. 특별한 그녀와 함께 평범한 내가 무대에 올라왔다. 그녀의 특별함이 화려한 빛을 사방에 뿌려대며 나의 평범한 일상을 포장하기 시작했고, 몸에 와닿아 부서지는 그 빛들에 둘러싸여 나는 점차 애매모호해져갔다. 특별함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함도 아닌, 특별해 보이는 평범함, 평범해 보이는 특별함으로 계속해서 변해가는 나의 상태는, 뭐라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이상한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애매모호한 내가 그녀를 위해 양을 그려갔다. 그리고 좌절했다. 그러다 상자를 그렸고, 다시 눈앞의 주사위로 돌아왔다. 금방이라도 어떤 면을 드러내며 멈춰설 것 같은 주사위 앞에서, 나의 생각은 멈춰섰다. 여기가 끝이었다. 시작과 끝을 관통해서 되돌아온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결단을 내린 나는 손을 뻗어, 그녀와 나의 경계를 더듬었다. 어느 쪽으로 던져질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주사위가, 손가락 끝에 만져졌다. 나는 있는 힘껏 바동거려 그것을 잡아챘다. 손바닥 안쪽에서 묵직한 양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결국, 주사위는 특별함과 평범함, 그 어느 쪽으로도 던져지지 못하고, 나의 손에 가로막혔다. 이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상자를 그려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그녀의 특별함에 발맞추어 살아갈지, 계속해서 제대로 된 양을 찾아 헤매며 평범한 나답게 살아갈지를 선택하기 위해 했던 고민은 모두 의미없는 일이었다. 낱낱과 전체를 전부 다 훑어본 내가 내린 최상의 선택은, 그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양측의 힘이 고스란히 얹혀 있던 주사위가 사라지자마자, 경계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평범함과 그녀의 특별함이 빠른 속도로 뒤엉켰다. 위로 아래로 때론 좌로 우로 오가며 두가지 색깔은 서로 섞여 또다른 하나의 색깔을 만들어나갔고, 그 색깔을 바탕으로 특별함을 좋아하는 그녀들과, 평범함에 익숙한 나들이 서로를 향해 두 팔을 뻗어 껴안아나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나와 그녀 들이 계속해서 뿜어져나왔다. 나는 떨어져내리는 그것들을 주워담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정성들여, 맨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가지런히 정리하며 뭉쳐나갔다. 그러자 거대한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면과, 면과, 면과, 면과, 면과, 면으로 구성된, 아주 평범한 상자였다.
요란하게 완성된, 평범한 상자는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상자를 이루고 있는 그녀의 특별함은, 단지 평범함에 지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때그때마다 그녀의 특별함이 보이긴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았을 땐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그녀가 보였다. 처음부터 그녀와 나의 경계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경계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특별함은 친숙한 평범함의 일부였고, 그런 평범함은 특별함과 한짝일 뿐이었다. 상자는 온몸으로 그 사실을 내게 전했다. 계속해서, 그녀의 특별함이 아무리 저항해도 상자의 평범함은 굳건했고, 그 속에서 그녀도 나도 모두 다 똑같이 평범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상자, 그러니까 나의 선택 아닌 선택을 계기로,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던 의문들이 풀렸고, 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보다 아는 것이 많아진 나는, 눈앞에 있는 상자의 이름도 알 수 있었다. 상자의 이름은‘일상’이었고, 그 이름은 상자 속,‘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와 내게 잘 어울렸다. 나는 상자와 그녀와 나의 이름을 잘 기억하기 위해, 입으로 되뇌었다.
10
나는, 끝까지 읽은 책을 덮어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책은 빙글 돌며 바닥에 부딪혀 위로 솟구친 다음 벽을 들이받고서 멈춰섰다. 세로로 구겨진 어린 왕자의 얼굴이 천장을 향했다. 나는 발을 들어 그 얼굴을 밟은 후, 그 상태로 가만히 서서, 혼잣말로 그 책에 대한 감상을 표했다. 식상하군. 말끝과 동시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읽어나간 어린 왕자는 역시나, 읽는 내내 식상하기 짝이 없었다. 내 동심이 씨가 말라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이미 책의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외계인인 주인공이 행성과 행성들을 오가며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나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흥미를 사기에는 너무나 닳고 닳은 내용들이었고, 아무 보람 없는 케케묵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런 SF물이 특별하게 여겨진 때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책 중간중간에서 자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이었다. 장미, 어린 왕자 그리고 여우. 책에서 대사가 있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그 목소리는 몹시 진부하게, 내게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로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오후 네시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대답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개처럼 뛰어갔잖아. 마치 그녀처럼 장미가 말했다. 너의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건 네가 너의 장미에 투자한 시간 때문이야. 나는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나의 장미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지? 다시 그녀의 목소리로 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나에게 다른 소년과 다를 바 없어. 나는 여우의 말을 잘랐다. 그래, 나는 다른 소년과 다를 바 없어, 나는 평범한 소년이니까, 내가 소년이 아닐 수는 없잖아. 그녀의 표정으로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내게 제대로 된 양을 그려줘. 나는 그에게 나의 노트를 내밀었다. 이 정도 했으면 됐잖아. 나의 반응에, 그 목소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특별하다 생각했던 그녀는, 평범하다 못해 식상하고 진부했다. 어린 왕자 덕분에 그런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내가 쥐고 있던‘그리하여’가 끝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왕자는 동화 속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그리하여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엔딩을 맞이하지 못했다. 끝까지 특별한 척 유별나게 굴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증발해버렸을 뿐이다. 나는,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엔딩이었고, 어느 이야기에나 있는 아주 평범한 결말이었기에, 평범한 내게 어울리는 미래였다.
뜬금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동네 신발가게에서 알록달록한 운동화를 구입하면 덤으로 장난감이 딸려오곤 했다. 주가 신발이고 부가 장난감이었지만, 어린 나는 신발보다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고, 사흘 동안 새 신발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른 끝에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생 끝에 얻은 장난감은 보기와 달리 매우 연약해서, 하루 만에 박살나버렸다. 남은 것은 원하지 않았던 신발뿐이었고, 나는 맘에 들지 않는 그 신발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열심히 신고 돌아다녀야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특징이 없었던 평범한 신발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특별했던 장난감이 그려내는 구도가 어쩐지 익숙했다. 화려하지만 연약해서 부서지기 쉬우며 신발이 없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존재와 그 특별함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지금의 그녀와 나였다. 나의 평범한 기억력은 아직껏 그 신발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남여공용 어린 왕자.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착용감이 좋지 않은 어린 왕자는 내 발 아래에 있었다.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지만, 이런저런 어지러운 감상들이 흩날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비장함이나 허탈함과는 또다른 생소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나는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노트를 꺼내들었다. 옆으로 몸을 말아 누운 채로, 나는 나지막이 나의 양들을 불렀다. 양 한마리. 얼핏 보면 양 같지 않았지만, 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간신히 양처럼 보이는 양이 지나갔다. 양 두마리. 몹시 말라서 볼품없는 비루한 양이 지나갔다. 순서대로, 양 세마리, 네마리, 다섯마리를 입으로 되뇌었다. 그러자 다리가 절름발이고, 눈매가 너무 매섭고, 너무 뚱뚱한 양들이 나란히 줄지어 지나갔다. 양 여섯마리, 일곱마리, 여덟마리, 아홉마리, 열마리. 나는 계속해서 나의 세계로 양들을 불러들였다. 벽과, 벽과, 벽과, 벽과, 벽과, 벽이 둘러싼, 상자처럼 견고한 나의 방 안쪽으로, 순한 양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넘어왔다. 오늘따라 왜 이리 더운지, 땀이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11
나는 나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일 리 없는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푸른 풀들이 돋아나 있는 들판이었다. 들판 한 중앙에는 네모난 종이상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상자에서는 양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 상자 안쪽으로 마르고 볼품없는 양들이 다리를 절며 차례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후 네시 정도로 생각되는 햇살이 그런 광경을 비추며, 나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어쩐지 뻔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듯,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지금의 평화로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녀에게 손을 건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호응 없이 모르는 척 나의 손을 거절해버렸다. 나는 민망해진 손을 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만져졌다. 꺼내보니, 줄 없는 노트 한권과 한자루의 연필이었다. 내가 노트와 연필을 만지작거리자,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그녀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쥐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각거리는 종이와 흑연의 마찰음이 기분 좋게 새어나왔다. 손쉽게 그림을 완성한 나는 연필을 놓고서, 그녀를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 그녀가 나의 검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검지에 머무른 순간, 검지를 옮겨 노트의 한 부분에 가져다 대었다.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을 가리켰고, 나의 의도대로 그녀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알아? 나의 그림을 본 그녀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답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건, 모자일 뿐이야.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내가 그린 모자를 가리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믿어도 별 상관없어. 그러자 그런 말이 어디 있냐며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특별한 그녀의 평범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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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미국 TV드라마 씨리즈의 제목으로,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주인과 헤어지게 된 개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미국 전역을 헤매며 숱한 난관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에서‘달려라 래시’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