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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세화

임세화 林世華

1984년 대전 출생. 2007년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중. farewell_i@hanmail.net

 

 

 

헬로 강시

 

 

1

 

콩콩콩. 엄마가 왔다.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아주 오랜 옛날의 사진 속에서 그대로 툭 튀어나온 것처럼 엄마는 낡아 있었다.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 엄마가 콩콩 뛰어오를 때마다 매큼한 먼지가 파도처럼 일었다. 순한 짐승처럼 웅크려 앉은 채 나는 긴 대롱으로 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내 숨이 뿜어져 나가는 대롱 끝을 향해 다시 콩콩 뛰어올랐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검은 강시복이 펄럭거릴 때마다 집 안 가득 파도소리가 울려퍼졌다. 콩-쏴아. 콩-쏴아. 규칙적인 파도소리에 맞춰 나는 노를 젓듯 대롱 끝을 잡아당겼다.

플라스틱 눈알이 끼워진 인형처럼 엄마는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직 호흡만으로 사람을 식별하는데도 까닭 없이 커다랗게 뜬 눈 때문에 엄마의 얼굴은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이미 오래전에 정지된 표정. 거뭇거뭇한 부패의 흔적이 엿보이는 얼굴 위에 오직 눈만이 과장되게 뜨여 있었다. 입술이 썩어 사라진 까닭에 고스란히 드러난 검붉은 잇몸과 날카로운 잇새를 나는 찬찬히 바라보았다. 온전히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얼굴. 섬뜩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엄마의 얼굴은 끊임없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콩-쏴아. 콩-쏴아. 집 안 가득 일렁이는 어둠의 파도 속에서 엄마는 경쾌하게 뛰어올랐다. 엄마가 일으키는 먼지에 코가 간질거렸다. 재채기가 날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입과 코를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찔끔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정돈하지 않은 듯 엄마의 머리카락은 파뿌리처럼 힘없이 마구 얽혀 있었다. 창밖에서는 한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 숨을 쫓아 줄기차게 뛰어올랐다. 엄마가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오를 때마다 엄마의 양 볼과 입술에 찍힌 연지가 화인(火印)처럼 뜨겁게 빛났다.

엄마가 콩 디뎠던 자리마다 진흙 냄새가 끄느름히 피어올랐다. 그것은 오랫동안 환기하지 않은 집 안 공기와 섞여 는개처럼 끈적끈적하게 온몸을 감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엄마의 손끝을 노려보았다. 날카롭고 시퍼렇게 굳은 강시의 손.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것은 끈질기게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죽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긴 대롱을 깊숙이 물고 부엌을 향해 빠르게 호흡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오래된 곰팡이 포자가 혀에 축축하게 들러붙는 게 느껴졌다.

강시 냄새는 코를 자르고 싶을 만큼 지독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취가 아니었다. 퀴퀴한 어둠이 걷히고 엄마가 흐릿해지고 난 이후에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종일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려도 소용없었다. 강시 냄새는 마치 형체를 지닌 것처럼 축축하게 집 안을 적시며 떠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시간의 냄새였다. 나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희미하지만 그것에는 엄마의 체취도 섞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 냄새도 품지 않은 듯 흐릿한 공기의 입자들이 도리어 이물스러웠다. 그러나 문제는 냄새가 아니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소음이었다.

강시답게 엄마는 점프력이 좋았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도 천장까지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완충 작용을 해주는 강시 모자가 없었더라면 윗집에서도 나를 고소했을 것이다. 때때로 나는 아랫집 여자가 천장을 두드리는 듯한 환청을 느꼈다. 그리고 환청 속에서 나는 천장에 대고 미친 듯이 망치를 두드리는 어떤 여자를 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환청이 아닐지도 몰랐다. 여자는 때때로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눌렀고, 대꾸하지 않자 현관문 앞에 갖은 음식물 쓰레기를 부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것뿐이었다.

이명처럼 망치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형광등을 켰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형광등이 깜박이는 동안 엄마는 포말처럼 희미하게 사라졌다. 엄마의 빛바랜 강시복은 날렵한 물고기처럼 순식간에 지느러미를 감추었다. 나는 빛 속에서 반짝 짙어졌다 흐릿해지는 엄마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로 맹렬하게 달려드는 망치질 소리를 향해 물끄러미 서 있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난 이후에도 망치질 소리는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귀가 아니라 몸으로 소리가 전해져왔다. 아파트의 얇은 벽과 벽, 바닥과 천장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집 안을 헤집고 다니던 어두운 조각들이 순식간에 불쾌한 진동으로 몸을 바꾼 듯했다. 검은색 물감을 한꺼번에 삼킨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진동은 소리보다 먼저 울렸다. 환하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침대에 몸을 눕히자 부르르 떨고 있는 녹슨 철근이 보였다. 지은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 그 기간 동안 엄마와 나는 아파트와 함께 차근차근 낡아가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팝콘처럼 타닥타닥 튀어오르는 듯한 진동 속에서 나는 낡은 철근과 그 위에 부지런히 피어난 녹꽃 따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머리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모든 신경과 세포가 마비될 듯한 고통스러운 멀미가 찾아왔다.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느 벽에 침대를 붙여놓는지, 어느 방에 책상을 두는지, 거실 어느 쪽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지, 언제 잠들고 언제 밥을 먹고 언제 화장실에 가는지…… 여자는 내 사소한 습관과 동선들에 맞춰 끈질기게 망치를 두드려댔다. 희고 가느다란 팔로 망치질을 하고 있을 여자의 절망적인 눈빛이 떠올랐다.

“당신 미쳤어?”

“보시다시피. 이 집엔 저 혼자 살아요. 묶어놓을 애 따윈 없다구요.”

여자는 코를 움켜쥔 채 날카롭게 집 안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나는 일부러 더 환하게 집 안 곳곳에 불을 켜놓았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소리가 아니라 냄새뿐이었다. 여자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른 혼자 사는 집. 그것도 자주 집을 비우는 취업준비생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여자가 부러 끊어다 놓은 정신과 진료 기록은 순식간에 이상한 증거로 바뀌었다. 미칠 듯한 소음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내가 그 소음을 증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쿵쿵거리는 그 발소리는 내가 낸 것도 아니었다. 경찰은 빨리 냄새나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아랫집 여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어 나를 노려보았다.

“층간 소음은요, 바로 윗집에서 나는 게 아닐 수도 있대요. 아파트도 철골 구조물이니까요. 멀리 어딘가에서 쿵 뛰면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쿵 울릴 수도 있다네요. 원체 낡은 아파트가 돼놔서.”

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알았어요”라고 중얼거리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였다. 엄마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닌데.

다만 엄마는 아무 때나 찾아왔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한번, 어떤 때는 보름 동안 매일, 어떤 때는 한달을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면접날 아침 형광등을 켜려는 순간 반짝반짝 나타났다가 반짝반짝 사라지기도 했고, 캄캄한 공원에서 B와 입을 맞추려는데 멀리서부터 콩콩 뛰어와서 다음날 아침까지 내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오늘은 오지 않으려니 하고 불을 끄고 잠이 들면 순식간에 나타나 내 목을 죄기도 했다.

콩콩. 콩콩. 엄마는 늘 소리로 먼저 찾아왔다. 소리가 휩쓸고 난 자리에는 밀물처럼 강시 냄새가 훅 끼쳐왔다. 형체를 지닌 소리. 형체를 지닌 냄새. 집 안을 온통 헤집으며 흐물흐물하고 축축한 포말을 일으키는 냄새 속에서 온몸의 세포들은 감각에 예민해졌다. 보는 것보다 더 정직한 방식. 나는 예의바른 아이처럼 얌전하게 대롱을 문 채 엄마를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 엄마는 선명했다. 엄마는 소리와 냄새로 자신을 증명할 줄 알았다.

경찰과 함께 다녀간 이후에 여자는 천장에 대고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래층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절박해졌다. 여자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쩡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지독한 진동과 울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낡은 아파트는 작은 충격에도 격렬히 몸을 떨었다. 여자가 천장에 대고 망치질을 할 때마다 내 몸과 내 방과 내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네모들이 무너질 듯 진동했다. 여자는 집요했다.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 날에도 끈질기게 망치질을 했다. 나를 둘러싼 커다란 네모들이 진동할 때면 내 몸속의 작은 실핏줄과 세포와 창자와 핏방울들도 함께 진동했다. 숨을 꾹 참고 있어도 멀미가 났다.

매일 변기를 끌어안고 토악질을 하면서도 나는 무감해지려고 노력했다. 엄마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강시였다. 그 차고 딱딱한 손아귀에 잡혀서 질식사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일이었다. 시퍼런 얼굴에 붉은 연지를 찍고 빨간 색실뭉치가 달린 관모를 쓴 엄마. 엄마가 오지 않는 밤에도 나는 망치질 소리인지 엄마의 발소리인지 알 수 없는 진동과 소음에 몸을 떨었다. 그 수많은 떨림들 속에서 나는 때때로 환영처럼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강시가 되어 돌아오는 길, 그 멀고 험한 길을 콩콩 뛰어다녔을 엄마의 모습을.

 

 

2

 

B는 내 귀가 커진 것 같다며 부러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야 유인원인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B는 이상한 과학에 골몰하고 있었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지구나 인류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는 집회에 나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집회의 내용은 너무 허무맹랑했고, 그래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그 요지조차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B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내 몸의 작은 변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B는 살아 있는 나에게서 진화를 관찰하고 싶어했다. B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옆머리를 내려 귀를 완전히 가렸다. B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전시실 문을 열었다. 머리카락 속에서인지 전시실 안에서인지 희미하게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전시실은 커다란 지하실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시실 문을 열자 파란 조명과 함께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파란 조명이 폐 속으로 함께 딸려 들어왔다. 전시실은 커다란 동굴 같았다. 발을 내딛자 이명처럼 공룡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새와 코끼리, 이리와 호랑이 등 적어도 다섯 짐승 이상의 울음소리를 합성해서 만들어낸 소리였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는 꽤나 그럴듯했다. 정말 공룡이 살아 있다면 꼭 그렇게, 그러니까 새와 코끼리, 이리와 호랑이 등의 울음소리를 합한 것처럼 울 것만 같았다. B는 공룡 울음을 흉내 내며 전시실로 들어섰다. 낮은 조도의 파란 조명 아래 인공나무와 인공바위, 인공공룡들이 보였다. 나는 공룡이 딛고 선 편평한 인공바위에 걸터앉았다. 쎈서가 작동했는지 공룡이 울음소리를 내며 팔과 목을 뻣뻣하게 흔들어댔다.

“이번엔 또 뭐야?”

“기대해. 진짜 대단한 게 들어왔어.”

“또 이상한 뼈다귀 같은 건 아니겠지?”

“뼈다귀라니.”

“그럼 돌멩이구나?”

잔뜩 상기된 얼굴로 B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끊임없이 귓가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와 공룡 울음소리와 삐거덕거리는 공룡 모형들의 마찰음에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소리가 너무 많아서 그 소리들에 머리가 압착되는 것 같았다. B는 고운 모래 위에 조각조각 펼쳐져 있는 거대한 공룡 화석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역시 뼈다귀였구나?”

“십일억원이래.”

B와 나는 알베르토싸우루스의 뼈 앞에서 화석처럼 정지한 채 사진을 찍었다. 전시실은 조도가 낮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사진이 흔들렸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여러번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며 B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알베르토싸우루스의 진골 화석의 표면은 잘 마른 장작 같았다. 군데군데 소보로빵처럼 갈라져 있었지만, 마치 그것을 감싸고 있던 혈관이나 가죽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화석은 그 자체로 완벽한 조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알베르토싸우루스의 척추 위로 몸을 굽혔다. 알베르토싸우루스는 앞발을 쳐들고 아직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거친 호흡과 죽을 듯한 포효, 그 커다란 발에 짓이겨진 비릿한 풀냄새가 한꺼번에 내 몸을 짓눌러왔다. 눈과 귀를 막은 채 나는 미세하게 갈라진 뼈 화석의 틈새에 코를 박았다. 이물스러우면서도 익숙한 냄새. 아주 오래된 시간의 그것. 공룡의 뼈 화석에서는 공룡의 냄새가 났다.

엄마를 찾은 아기공룡처럼 B는 화석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B의 음성들 또한 사라지지 않고 동굴 속에서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공룡 앞에서 B는 매우 달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개골을 짓누르는 듯한 이명 때문에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콩콩 뛰어오는 엄마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B는 아직도 호기심이 많았다. 우리가 빳빳하게 다림질한 우주소년단원복을 입고 다녔을 때만 해도 그런 호기심과 과학은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B는 아직도 우리가 꿈꾸었던 과학 속에서 살고 있었다. B의 부모님은 이제 B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장래희망란에‘과학자’라고 적을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삼성의 연구원이나 카이스트의 공학박사가 아니라면 과학은 우스꽝스러운 것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때 우리는 위대한 지구수호자와 그를 보조하는 과학박사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니었을까. B는 삼각형 모양의 공룡 머리뼈와 날렵하게 뻗은 꼬리뼈 사이에서 숨 쉬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그때 그런 영웅들이 나오는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만약 우리가……

B와 나는 공룡모형과 조악한 플라스틱 바위로 만들어진 정글에서 한참을 헤맸다. 전시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다소 음산하고 괴기스러웠다. 그곳에는 새로 들여온 화석들과 살아 있는 파충류, 방부 처리된 인체 따위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동굴 여기저기에서 공룡이 울어댈 때마다 방부액 속에 든 손가락이나 발가락 따위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죽음에 전염된 또다른 화석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파충류였다. 갖가지 종류의 뱀들은 아무렇게나 몸을 부려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울긋불긋한 문양의 뱀들은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이명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죽어 있는 것들 사이에서 부지런히 뛰는 심장소리. 미세하지만 끊이지 않는 박동. 언제 정지할지 모르는 여린 진동. 콩. 콩콩. 콩콩.

“엄마가 온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전시실 구석에 장식된 인공 풀숲에서 날렵하게 점프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꼿꼿하게 뻗은 두 팔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꾹 참은 채 B의 팔을 낚아채듯 잡았다.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영장류의 두개골을 보고 있던 B는 소스라치게 놀라 카펫에 주저앉았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숨 쉬지 마!”

수풀 속에서 빠져나온 엄마는 조악한 모형공룡과 함께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있었다. B와 나는 숨을 멈춘 채 밤고양이처럼 조용히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전시실 밖에는 날카로운 햇살이 바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한꺼번에 숨을 토해내자 폐가 바늘에 뚫린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햇빛 속에서 B와 나는 한참을 컥컥거렸다. 호흡이 안정되면서, 희미해졌던 이명이 다시 들려왔다. 이명을 견디기 위해 나는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이명은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근데 말이야. 그 옷 아무리 봐도 나이롱 같다.”

“바보. 이거 면이야.”

“네 옷 말고. 어머니 옷 말이야.”

“엄마?”

엄마가 입은 검은 강시복은 한눈에 봐도 나일론이었다. 그것은 화려한 색실로 수놓아진 청나라 때의 비단 관복이 아니었다. 엄마의 옷은 누가 봐도 90년대 강시 영화에나 등장하던 싸구려 강시복이었다. 순간 나는 엄마가 입은 옷이 비단이 아니라 낡아빠진 나일론이라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명 속에서 귀를 꽉 틀어막은 채로 나는 대꾸했다.

“야. 요즘엔 강시들도 다 나이롱 입어.”

 

 

3

 

집회는 과학공원 안의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정부로부터 철거명령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이렇게 텅 비었기 때문에 철거명령을 받은 것인지 광장의 풍경은 스산했다. 철거에 항의하는 피켓 두어개와 첨단과학을 상징하는 노란색 외계인 조형물만이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십여명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심각했다.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 사람들은 뜨악한 주제를 가지고서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중 가장 열성적인 사람은 B였다.

결론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어떤 주장들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거나 반박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의사(意思)가 있다는 점이 문득 신기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광장 구석에 앉아 머리 위에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설치된 자기부상열차를 바라보았다. B와 내가 아이였을 때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각광받던 자기부상열차는 운행이 중지된 상태였다. 우리를 그토록 달뜨게 했던 차세대 이동수단은 태생적인 결함을 여태 숨기고 있었다. 운행은 사고가 난 이후에야 중지되었다. 처음부터 결함을 알 수 있었더라면, 선로를 놓기 위해 땀이나 애정 따위를 쏟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높은 곳에 정지해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눈알 뒤편이 아려왔다. 나는 손을 둥글게 말아 눈 위를 가렸다. 견고한 철골 구조물 위를 왕복했을 수백개의 바퀴 자국. 그것이 발산했을 요란한 마찰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곳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엄마가 콩콩 뛰어다녀도 아랫집 사람이 망치질을 해도 이미 남김없이 낡아버린 철근이 모든 소음과 진동을 꾸역꾸역 견뎌주지 않을까.

“그렇다고 애를 묶어놓고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왜 못 묶어? 왜?”

“그럼 어쩌라구요?”

“짐승처럼 뛰어다니면 묶어놔야지. 그걸 그럼 가만둬?”

한창 강시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B와 P그리고 나는 엄마가 아랫집 할머니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아랫집 할머니는 한번만 더 뛰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엄마를 윽박질렀다. 할머니가 애비 없는 자식 운운하기 시작하자 엄마는 신고할 테면 해보라며 지지 않고 대거리했다. 우리는 이불을 머리까지 푹 뒤집어쓴 채 숨을 죽였다.

“저딴 할망구 죽어버렸음 좋겠다.”

이불 안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조용히 있던 B와 P는 맞장구치며 킬킬거렸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 순간 미묘한 두려움과 공포로 흔들리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가끔 강시놀이를 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꼬마 강시가 되어 할머니를 죽이고 또 죽였다. 잔혹한 상상 속에서 놀이는 늘 즐거웠다. 그리고 우리가 더이상 강시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할머니는 정말로 죽어버렸다.

아파트 주차장에 커다랗고 하얀 천막이 세워졌고, 거기서 풍겨나오는 매콤한 육개장 냄새와 술 비린내가 내 방 창문까지 올라왔다. 창밖을 내다보던 엄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호상이군” 중얼거렸다. 죽을 때가 되어 죽었으니 호상이라는 것이었다. 죽을 때가 되어 죽는 사람이라니. 나는 그것을 믿기 어려웠다.

그후로 우리는 강시놀이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술래가 될 강시는 한 사람이면 충분했는데 우린 모두 강시가 되고 싶어했고, 어렵게 강시가 되더라도 다른 애들이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명확히 가려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놀이는 금세 시시해졌다. 우리는 강시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 간직한 채로 이차방정식의 근을 알아내는 방법이나 불규칙동사의 활용 따위를 외기 시작했다.

가장 높게 뛰어오르는 법을 알던 훌륭한 강시 P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갔다. 그곳에서 공부하면 금방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B와 나는 그 말을 반은 믿었고 반은 믿지 않았다. 공무원이 된 강시는 어딘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B와 나는 온 마음을 다해 P를 응원했다. 그것이 꿈이라면 이루어지는 게 옳았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정의(正義)였다. 처음 강시가 되었던 날 이후로 우린 항상 반쯤은 스스로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관성처럼 자연스럽게 다음 집회의 주제를 정했다. 기후변화의 위협과 지구의 미래, 지구평화 유지활동과 개혁 방안, 인간 보호의 책임, 재난위험을 감소시키는 빈곤구제의 방법…… B는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으로 집회의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애는 전에 없이 진지했고 어쩌면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집회에 모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오히려 그것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슬퍼 보였다.

인류가 겨우 마지막 간빙기를 살고 있을 뿐이라니. 집에 오는 내내 나는 집회에서 쏟아져 나왔던 말들을 곱씹었다. 터무니없이 커다란 빙하를 상상할 때마다 가슴팍 깊은 곳이 서서히 얼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말은 분명, 간빙기가 끝나기 전에 넓고 깨끗한 집을 분양받아 사랑하는 가족들과 매달 적당한 소비를 하며 살고 싶다는 얘기쯤은 아니었다. 그들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입을 열 때마다, 몸속 어딘가가 아리도록 시려왔고 내 속에서 서걱서걱 얼음이 얼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은 뜨거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아랫집 여자의 망치질 소리와 엄마의 발소리와 할머니의 고함소리와 내 속의 무언가가 쩡 깨져버리는 소리가 공룡 울음소리처럼 섞여 귓가에 진동했다.

다음주 집회는 별안간 해산됐다.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한 날이었다. B는 언젠가 인류는 멸종하고 그 화석만이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지금의 인류와는 다른 종일 것이라고 B는 믿고 있었다. 그러자 한 중년남자가 B의 말을 반박했다. 얼마 전 외동딸을 잃었다던 남자였다. 그는 진화를 신봉하고 있었다. 진화된 인류 역시 인류일 뿐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매주 간식을 준비해오던 김밥가게 아주머니가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죽고 있는 아이들이라며 끌끌 혀를 찼다. 그 말을 듣자마자 위암이 골수까지 번졌다는 남자가 먹던 김밥을 뱉어 집어던졌다. 그는 하루 빨리 빙하가 지구 전역을 덮치길 바라고 있었다. 그는 미래를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여러 패로 갈라졌다. 모두가 자신의 꿈과 다른 유토피아를 견딜 수 없어했던 것이다. 상상이나 논쟁 따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세계를 힐난하고 헐뜯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한때 서로에게 아름다웠던, 그들의 꿈이 얼음처럼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을 정도로 나 또한 모두가 함께 꿈꾸었던 세계 밖으로 추방당해 있었다. 그들…… 우리의 기원은 얼마나 사소한 생물이었을까. 단단한 설원에 갇혀버린 것처럼 몸이 시려왔다. 함부로 내뱉어진 욕설들이 얼어버린 몸을 송곳처럼 찔렀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진화해버린 종(種)이 되어 서로를 경원시하고 있었다. 십여명이 툭 내팽개치고 간 세계 십여개가 빈 광장 위에 쓸쓸히 나뒹굴었다.

그들이 매주 토론하던 주제는 모두 유엔에서 관할하는 사안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말뿐이었지만 지구와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명감은 마징가제트나 배트맨, 유엔 사무총장 못지않았다. 직업도 연령도 사는 동도 모두 다른, 그러니까 공통점이라고는 지구인이라는 점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인 까닭은 그런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막 튀어나와 어리둥절한 아기처럼 나는 망연히 주저앉았다.

금요일마다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던 사람들은 이미 없었다. 할 일 없는 고등학생으로만 보이던 아이는 매주 꼼꼼히 무언가를 적던 노트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교복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면서 아이는 조금 울먹거렸다. 아이가 멀어져간 이후에도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의 울음이 아닐지 몰랐다. 나는 눈이 빨개진 채로 광장을 떠나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바람 속에서 비린 눈물 냄새가 났다. 어쩌면 다시는 아이의 웃음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려왔다.

처음부터 집회는 진화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하나로 사람들이 함께 꿈꾸며 상상했던 미래가 사실은 모두 다른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세계는 순식간에 얇디얇은 유리창처럼 와장창 부서져 내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 부서진 모습이 세계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고 나는 자위했다. 광장에 가득 들어찼던 적의와 공포, 숨겨지지 않는 살의 따위가 인류의 미래와 뒤섞여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귓가에 쟁강쟁강 부딪치는 고요에 휩쓸려 이미 멸종돼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B와 나는 비린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애당초 B가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강시로 나타나자 B가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B는 이 집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B는 강시가 된 엄마의 모습에서 어떤 인류와 어떤 진화를 목격했던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엄마를 죽이지 않고, 나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엄마 때문에 나는 직장에 취직할 수도 없었다. 어두운 복도 구석이나 축축한 화장실 안쪽, 창고 따위에서 엄마는 콩콩 뛰어올랐다. 엄마가 뛰어오를 때마다 건물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 강시 냄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엄마가 쫓아오지 못할 밝은 곳으로 나가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것은 나의 체취가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나는 불길한 존재가 되었다. 부적을 붙여도 소용없었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B와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늘이나 십자가 따위를 온 집 안에 걸어놓기도 했지만 강시에겐 소용없었다. B가 허공에 말뚝을 박고 집 안 곳곳에 찹쌀을 뿌려놓아도 엄마는 끈질기게 나타났다. 결국 어둠 속에서라면 숨을 쉬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만 불을 환히 밝힌 곳에서라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빛을 피할 수는 있어도 어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림자가 뭉텅뭉텅 깔린 곳에서 엄마는 어김없이 콩콩 뛰어올랐다.

우리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B와 나는 집회가 해산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결국 엄마를 피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처럼 B는 먼저 일어나 씩씩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나는 덥석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B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B는 설사 간빙기가 끝나더라도 어디에선가 쓸모있게 활용될 수 있는 인재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B의 아이들 얼굴도 떠올랐다. 마징가제트나 배트맨이 아니더라도 B는 이 지구에 아직 유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소리들이 쟁쟁대는 귓구멍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하자. 엄마 때문에 너까지 강시로 만들 수는 없어.”

B는 조금 망설이는 듯 보였다. 아직 어떤 아쉬움이 남은 것일까. B의 어깨 너머로 김밥을 쌌던 은박지가 바람에 휩쓸리는 게 보였다. 어깨가 시렸다. 그래도 B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장난 같지만 그애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 설사 그것이 인류의 종말일지라도…… B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 좁은 귀와 귀 사이로 수많은 중얼거림이 뱀처럼 넘나들었다. 깊은 물속에 빠져버린 것처럼 양쪽 귀가 웅웅거렸다. 나는 B의 텅 비어버린 눈동자와 미칠 듯한 이명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귀를 막아버렸다. 그래서인지 B의 목소리가 왠지 잘 들리지 않았다. 늘 그랬듯 B는 단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럴까, 그럼?”

 

 

4

 

집회가 해산된 뒤 B는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회사원이 되려면 토익 점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할 생각을 않는 자식을 못마땅해하던 B의 부모님은 선뜻 학원비를 내주었다. 나는 직장인이 된 B의 모습을 상상하며 학원 앞에서 B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B는 조금씩 나를 피하고 있었다. 아마 고졸에 백수인 내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나는 B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B라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가끔 나는 B가 다니는 학원 강의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학원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어미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B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럴수록 B가 나를 더 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한심해?”

“거울을 봐봐. 언제까지 그렇게 엄마 타령만 하면서 살 거야?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아무튼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나는 B에게 어떤 좋은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B는 컴퓨터학원에 다녔다. 원하는 영어점수를 얻은 것 같았다. B는 컴퓨터학원을 그만두고 일본어학원에 다녔다. 원하는 자격증을 얻은 것 같았다. 내가 점점 외로워질수록 B는 점점 바빠졌다. 매일 나는 어둠 속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라도 와준다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아주 가끔만 왔고, 엄마가 오면 숨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대롱으로 숨을 쉬다 보면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나는 참지 못하고 형광등을 켜버리곤 했다. 내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아래층 여자뿐이었다. 여자는 내 발밑을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망치질을 했다.

이제 다시는 B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즈음 B의 부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조금 두려웠다. B의 실종은 엄마의 경우와 매우 흡사했다. 가방도 지갑도 신발도 심지어 속옷까지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B의 몸만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나는 B의 좁고 딱딱한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는 B가 걸치고 있었을 티셔츠와 바지와 양말이 공룡화석 표본처럼 질서정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B가 누워 있다 몸만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봉긋하게 부풀어 있는 바지춤을 들추자 파란 땡땡이 무늬의 사각팬티가 나타났다. 나는 그 팬티를 꺼내 몰래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경찰은 B가 실종된 것이 아닌 이유들을 세세히 알려주었다. 몸만 사라진 것이 기이하긴 했지만, 경찰에 따르면 B는 가출한 것이 분명했다. B에게는 가출할 이유들이 충분히 많았다. B의 부모님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청년을, 그것도 몸만 뿅 사라진 B를 찾아다닐 생각 따윈 없다며 경찰에게 못을 박았다. 나는 죄인처럼 서 있었다. B가 사라진 것이 모두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불길한 아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아래층 할머니도 아빠도 선생님도 친구도…… B의 말대로 그것은 우연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니까. 그러나 죽을 때가 되어 죽는 사람이라니. 나는 그것을 믿기 어려웠다. 내가 상상하는 죽음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다시는 그들과 농담을 나누거나 싸우거나 달릴 수 없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진실이었다.

나는 옷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B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죽어 있는 B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 뛰는 소리에 묻혀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뛰어오르는 소리…… 아랫집 여자의 망치질 소리…… 철근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몸을 떠는 소리…… 새처럼 코끼리처럼 이리처럼 호랑이처럼 우는 공룡의 울음소리…… 심장이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는 소리…… 그리고 이명.

사라지던 날, 엄마의 폐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여섯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서 온전히 잠든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의 몸을 뚫고 나온 두 줄의 호스는 수조에 잠겨 있었다. 한쪽 호스에서는 피고름이, 다른쪽 호스에서는 공기방울이 나왔다. 엄마의 폐에 공기가 가득 들어찰 때마다 수조 가득 담긴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병실의 다섯 환자는 끊임없이 몸을 뒤챘다. 밤에 병동에서 들으면 그것은 무식하게 커다란 기차의 엔진소리 같았다. 가장 괴로운 사람은 나였다. 공기방울이 거품처럼 끓어오르던 수조는 내가 눕는 간이침대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밤마다 나는 엄마 몰래 그것을 발치께로 밀어놓았다. 그럴 때면 호스로 뚫려 있는 옆구리가 당기는지 엄마가 끙끙거렸다. 발치에 있어도 수조의 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감전된 것처럼 발가락부터 명치끝까지 밤새 저릿저릿한 진동이 느껴졌다.

“밤에는 그것 좀 물에서 빼놓으면 안될까? 시끄러워서 원.”

옆 병상에 누워 있던 아주머니가 혀를 쩟쩟 차며 중얼거렸다. 잠이 든 것만 같았던 엄마는 벌떡 일어나 침대 사이를 막고 있던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사나운 육식공룡 같은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노려보았다.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채던 다른 환자들의 한숨과 하품 소리가 유령처럼 병실 안을 떠돌고 있었지만 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럼 죽으란 거예요?”

“밤에만 빼놓자는 거지. 다들 그 소리에 잠을 못 자니.”

“그러다 갑자기 폐 멈추면 아줌마가 책임질 거예요?”

엄마는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맹장수술을 하고 가스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보호자가 없었다. 엄마와 아주머니 사이의 정적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기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채웠다.

성공률이 낮은 수술이었다. 엄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얼마 전 수술에 실패했다는 의사는 수술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며 신중한 결정을 종용했다. 의사는 유일한 보호자인 나에게 먼저 뜻을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수술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려는 순간 엄마가 의사에게 퉁을 줬다.

“선생님도 참. 죽으면 내가 죽는 건데 그걸 왜 얘한테 묻나요?”

남편 없이 나를 홀로 키워낸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또 한 번 수술에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의사에게 몇마디 농담을 던졌다. 그것은 대개 죽음을 희화하거나 비아냥대는 내용이었다. 의사는 식겁한 표정으로 보호자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예의 바르게 입을 가리고 살짝 웃어주었다.

그리고 돌아온 병실에서 나는 파르르 떨리는 엄마의 입술을 보았다. 엄마는 분명 떨고 있었다. 엄마는 선택을 앞두고 있었고, 스스로의 선택에 목숨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편과 저편. 수술하는 편이 나을 수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엄마는 기적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 그때 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희망이 많은 쪽을 선택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삶 속에서만 그러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해보였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오만한 것은 그런 착각 때문이라는 것을, 엄마와 B가 사라진 후에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너무 낡아서 쓸 수 없는 것. 그러나 버릴 수도 없는 것. 지은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아파트는 그러나 재건축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싱싱했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함께 입주해서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이사가버렸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이 아니더라도 이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B의 집에서 나온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처럼 싹 밀고 새로 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온갖 사람들에 대한 기억 또한 싹 밀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죽는 순간부터 그들이 나를 잊었듯이, 나도 그들을 온전히 잊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시간의 기억들을 온전히 잊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 들어서자 바닥이 가볍게 진동하며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습관처럼 나는 엘리베이터 양쪽 벽면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그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다시 그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도미노처럼 이어져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수많은 얼굴 위에 커다랗게 씌어진 글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죽여버리겠다

급하게 휘갈겨 쓴 듯 글귀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빨간 글자 위로 아랫집 여자의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글자를 문질렀다. 그러나 매직으로 씌어진 글자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손끝에 잔뜩 힘을 주어 글자를 문질렀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며 모음 한 부분이 희미하게 지워졌다. 손톱이 빠질 것처럼 아려왔다. 손끝을 많이 쓰면 손끝만 커다란 인간으로 진화하게 될 거라는 B의 말이 떠올랐다. 손끝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면 이런 낙서를 지우는 데 유용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빨간 안료가 묻은 손끝과 글귀를 번갈아 보았다.

죽어버리겠다

아랫집 여자는 지금도 천장에 대고 망치질을 하고 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한쪽 팔이 망치처럼 길어진 여자의 몸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여자의 희망이라면…… 나는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부러 쿵쿵 발을 디디며 집에 들어갔다. 이윽고 이명처럼 여자의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5

 

B는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는 몇번 더 과학공원에 찾아갔다. 그곳에 가면 B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B도 엄마도 찾을 수 없었다. 수천만년 된 공룡의 뼛조각들 속에서 그들은 화석으로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점점 외로워졌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나는 졸업앨범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낯익은 이름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나를 기억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기억이 날 듯도 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그애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었으므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나는 희미한 입김처럼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훌쩍거렸다. 홀로 멸망 이후의 지구를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집에서 가까운 마트에서 점원 일을 시작했다. 물과 라면을 사러 갔다가 모집 공고를 본 덕분이었다. 일을 하니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약간의 저축도 할 만큼 돈도 벌 수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서 같은 시간에 일어났고, 하루 두 끼의 밥을 먹었다. 게다가 손도 매우 빨라져서 지폐 100장을 25초 안에 셀 수도 있었고, 물건만 보고도 바코드 번호를 외울 수 있었다. 달이 지날 때마다 100원씩 시급이 올랐다. 이명이 심해질 때면 이비인후과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먹었다. 이명은 조금씩 울리지 않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에는 공중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다. 체취 같던 역한 냄새는 조금씩 옅어졌다. 나는 마트의 점원으로 훌륭히 진화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삶이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간단할 수 있는 걸 나와 B그리고 P는 왜 그 먼 길을 돌아왔던 것일까. 희망이란 정말 기묘한 것이었다. P의 병문안을 가며 나는 P에게 희망이란 걸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자 다시 기묘하게도 나는 그 희망을 잘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니 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P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실에 누운 P는 이미 시체 같았다. 그애가 정말 시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곧이 믿었을 것이다. 왜 죽으려고 했니. 나는 묻지 않았다. P는 배시시 웃었다. 매일 두꺼운 책과 씨름했을 P의 손은 책처럼 하얗고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애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행복이 가능할 거란 상상 말이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그런……”

P는 무생물처럼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애는 덜 진화되어 있었다. 아님 너무 많이 진화해버렸든가. P의 입은 아주 오래된 동굴 같았다. 그 동굴 속에서 나는 비늘과 이빨과 사지동물의 어깨를 보았다. 뭍짐승들의 손가락은 육지에 나와 생긴 것이 아니다. 짐승들은 이미 물속에서 손발이 생겨 나왔던 것이다. B가 물방울처럼 사라진 것은, P가 시체처럼 눕게 된 것은 예전 우리가 강시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우리는 철없이 두 팔을 뻗고 콩콩 뛰어다니지 않았겠지.

P의 부모님은 기다란 간이병상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병실 가득 참담한 냄새가 떠돌았다. 그것은 강시가 되어 찾아온 엄마의 냄새이기도 했다. 희망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 끝이 자명할 수 있다면 누구도 그것을 위해 죽을 듯이 덤벼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 든 B의 사각팬티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다시 강시놀이를 하자는 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 돌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갈래갈래 찢긴 듯한 눈동자로 P는 병실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P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P의 목소리가, 그 동굴 같은 입에서 내뱉어지는 P의 목소리가 이명이 되어 메아리처럼 끈질기게 울렸다. 쿵쿵. 쿵쿵.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소리가 머리끝까지 울려 퍼졌다. 쿵쿵. 쿵쿵. 집에 돌아와서도 이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명에 묻혀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뛰어오르는 소리…… 아랫집 여자의 망치질 소리…… 철근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몸을 떠는 소리…… 새처럼 코끼리처럼 이리처럼 호랑이처럼 우는 공룡의 울음소리…… 심장이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는 소리…… 몸 안에 있던 모든 피톨들이 한꺼번에 귀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시끄러웠다. 너무 시끄러웠다. 내 좁고 마른 생애의 온갖 소리들이 뒤섞여 공룡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간이병상에 누워 엄마의 폐가 시끄럽게 호흡하는 소리를 듣던 날들의 참담함에 잠겨 있었다. 시끄러웠다. 너무 시끄러웠다.

죽지 않은 채로 엄마는 다시 소음이 되어 나타났다. 강시가 되었지만 온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소음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명은 항상 시끄러운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호스를 몸에 달지도 않고 한쪽 폐를 잘라내지도 않고 엄마는 강시가 되어 나타났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무엇. 삶도 죽음도 아닌 그 무엇. 어떤 화석 같은 가능성들을 품고.

열쇠업자와 경찰은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왠지 쓸쓸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 집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던, 여자가 그 집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던, 망치질 소리는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왜 여자가 죽었다고 생각했을까. 여자는 왜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사가버린 것일까. 여자가 떠난 빈집에 들어서자 천장에 박힌 못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내가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곳, 침대, 책상, 식탁이 놓인 곳마다 별자리처럼 못이 박혀 있었다. 나는 목을 길게 빼고 그 별들을 바라보았다.

쿠웅. 쿠웅. 촘촘히 박힌 별들 아래로 지진처럼 집이 진동했다. 천장 가득 박혀 있던 별들이 알사탕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왔다! 나는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어가는 아이처럼 깡충깡충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벌컥 문을 열자 엄마의 냄새가 났다. 아주 오래된 시간의 냄새. 화석의 냄새. 나는 엄마,라고 발음하며 집 안 이곳저곳을 헤맸다. 그러나 냄새와 소리만 있을 뿐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먼지처럼 집안을 떠돌고 있는 빛 때문일까. 아니면 어둠 때문일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쿠우웅. 쿠우웅. 공룡처럼 거대한 발자국을 찍으며 엄마와 B가 뛰어오르고 있었다. 죽어서도 높게 들려 있는 공룡 앞발 화석처럼 그들의 손은 허공에 들려 있었다. 엄마와 B가 뛰어오를 때마다 나일론 강시복에서 풀썩풀썩 파도소리가 났다. 포말처럼 소리는 이명 속으로 하얗게 묻혀갔다. 나는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어느 순간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들에 대해서. 엄마와 B의 손끝은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시체의 머리카락과 손톱은 죽어서도 조금씩 자란다. 엄마와 B의 손톱은 길고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그들은 어느 화석 속에서 머물다 다시 나에게 오게 된 것일까. 두려웠지만 또한 반가운 마음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 나이롱 옷. 백년도 넘게 입을 수 있겠네.”

그렇다는 듯 엄마와 B가 신나게 폴짝폴짝 뛰었다. 그들의 손은 점점 내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와 B는 나를 죽이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훌륭한 점원으로 진화한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과거보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낫지 않을지라도. 오늘보다 내일이 결코 낫지 않을지라도…… 나는 화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늘 과거를 사는 불길한 사람인 나로 인해 그들이 강시가 되었을지라도, 화석처럼 죽지 않고 굳어버렸을지라도, 나는 화석이 되고 싶지 않았다. 화석 또한 영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죽음 또한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므로, 결코 나는 화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B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더이상 피톨이 돌지 않는 손등에서 시퍼런 살기가 느껴졌다. 내가 살기 위해선 그들을 죽여야 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엄마와 B는 죽음이 주는 가벼움만큼 높이 솟아올랐고, 지구가 당기는 중력만큼 무겁게 땅에 부딪혔다.

그들의 몸이 한번 뛰어오를 때마다 수백년의 시간들이 함께 뛰어올랐다. 백년. 다시 백년. 그리고 다시 백년. 순식간에 나는 지구보다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인류(人類)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종(種)이었다. 강시 영화는 왜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 강시를 죽이는 일을 정의롭게 그려놓았던 걸까. 그리고 그런데도 왜 우린 모두 강시가 되고 싶어했던 걸까. 강시 영화의 주인공은 강시를 없애는 도사와 아이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직도 나는 선악이 어지럽게 뒤섞여버린 시간을 살고 있었다. 엄마와 B는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그때 그렇게 강시가 되길 원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다른 희망 속에서 살 수 있었을까. 엄마와 B의 손끝에서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뇌가 저릿저릿한 공포 속에서 그러나 정신은 한없이 안온해졌다. 죽음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죽음을 향한 존재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강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이미 강시였을지 몰랐다.

“아아…… 싫어. 싫어. 그리고 B, 너 노팬티잖아?”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B의 볼에 찍힌 연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먹먹한 어둠 속에서 B는 꼬마 강시처럼 통통 뛰어올랐다. B는 마지막 간빙기를 살아낼 무덤 같은 희망을 발견한 것일까. 인류가 지층 속으로 사라진 어느 때 누군가 지층 속의 퇴적물을 발견하기를 나는 바라지 않았다. 낡은 아파트를 감싸고 있던 네모가 관 속처럼 축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는 순식간에 덜컹덜컹 낡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