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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김기원 金基元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로 『경제학 포털』 『재벌개혁은 끝났는가』 『미군정기의 경제구조』 등이 있음. kwkim@knou.ac.kr
1. 세계 금융위기의 전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격랑에 휩싸여 있다. 써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비롯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7년부터 표면화되어 2008년 가을에 접어들어서는 마침내 유럽 전역에까지 파급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위기로 발전했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도 속출했는데, 선진국 아이슬란드와 개발도상국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초고속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인도 같은 신흥경제는 위기 초기에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비연동(de-coupling)론이 유행했으나, 이제는 그들도 성장둔화를 피할 수 없다는 재연동(re-coupling)론이 부상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각국 정부는 본격적인 개입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7천억달러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조성키로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구제금융을 부실자산 매입에 충당하기로 했으나,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라는 금융사회주의(?) 수단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업 등에서 CP(단기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를 직접 매입하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써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매입한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대두되면서 비슷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란 프라임 모기지나 알트-A모기지(Alt-A mortgage)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의 주택소유를 증가시키기 위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이다.1 이는 1980년대말 이후 중산층의 주택소유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개발된 일종의 신흥시장인 셈인데, 초저금리 기조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과 증권화(securitization)를 통한 위험회피 수단의 발전에 의거해 무분별한 대출이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or Assets, 수입이나 직업, 자산이 없는) 계층에까지 대출이 제공되었다.
초저금리 기조는 2000년말 IT거품이 꺼지면서 이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6.5%에서 1%까지 떨어뜨린 것을 말한다. 그 결과 돈이 주택시장으로 몰리고 써브프라임 모기지가 보급되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에서는 부실대출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투기적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며, 2006년을 고비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위기로의 질주에는 자산유동화와 파생상품이라는 금융혁신, 즉 금융씨스템의 변용도 작용했다. 자산유동화란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을 근거로 새로운 금융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전매하는 증권화 과정을 지칭한다. 이를 통해 원래 대출해준 은행에서 대출에 따른 위험이 분리되고, 은행은 대출자금을 묶어두지 않고(유동화)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증권화가 주택대출뿐 아니라 신용카드대출 등 갖가지 대출에 대해 여러 단계로 진행되고, 여기에 채권부도의 위험을 보장해주는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의 발전이 병행했다.
이러한 금융혁신은 기존의 은행중개 금융씨스템 대신 증권화된 금융씨스템의 비중을 높여왔고, 미국에선 그 주체가 리먼브러더스나 골드만싹스 같은 투자은행이었다. 전통적 금융씨스템의 외부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그림자금융의 활약 속에 신용(유동성)이 팽창하고 저소득층도 내 집을 소유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자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으로 바뀌고, 부실을 안고 있던 금융기관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증권화나 파생상품은 원래 위험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개발되었으나 무분별하게 발전하면서 도리어 위험을 확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신용을 팽창시킨 메커니즘이 위기상황에선 신용을 급격히 위축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역회전했다. 왜냐하면 투자의 귀재 조지 쏘로스(G. Soros)조차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한 증권화와 파생상품에 일단 불신이 깃들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써 돈이 돌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신용팽창 과정에서 자기자본에 비해 빚을 크게 늘린(leveraging)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처하자 빚을 갚으려 하면서(deleveraging) 신용위축이 초래되었다.
한편 좀더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시장만능주의도 이번의 위기 발발에 한몫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글로벌화와 정보화가 급진전된 데 반해 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것이다. 예컨대 미국 금융을 주무르던 그린스펀(A. Greenspan)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시장의 자율규제보다 연방정부의 규제가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파생상품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일축한 바 있었다. 이로 인해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와 시장의 불안정을 조절하는 민주주의적 규제 사이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그 결과 세계적 위기가 발발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의 밑바닥에는 세계화폐라는 달러의 특권적 지위에 입각해 진행된 미국인의 과소비도 깔려 있다. 1990년대 전반에 8% 수준이던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2006년 이후엔 1% 이하까지 떨어졌고, 이런 과소비는 매년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다른 나라라면 이미 파산했을 적자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화폐가 동시에 세계화폐이기에 자국화폐로 경상수지 적자를 메웠다. 이리하여 미국민의 소비거품이 주택거품과 맞물리면서 이번 금융위기로 나아간 것이다.
2008년 10월 현재 미국과 유럽 정부가 은행의 부분국유화 등 특단의 대책을 취함으로써 세계적 공황 상황은 다소 진정되었다. 대형 금융기관의 줄초상도 멎었고, 은행간 자금융통도 조금씩 원활해지고 있다. 다만 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주택가격이 앞으로 10~20% 정도 더 하락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고, 그리되면 처리해야 할 부실이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앞으로 금융기관과 가계가 빚을 정리해가면서 실물부문에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미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 전체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 주가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세계경제는 2008년에는 2.7%, 2009년엔 1.9%로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거품이 꺼진 데 따른 손실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 부담 배분이 일단락되고, 각 경제주체의 자산과 부채가 재정비되면서 새로운 금융씨스템이 자리잡을 때 비로소 세계경제가 회복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2. 위기 속의 한국경제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 한국경제도 출렁이고 있다. 제2의 IMF사태가 도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1997년 IMF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며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물론 1997년과 다른 점도 있다. 우선 2008년 10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약 2,100억달러로 그때의 10배 정도다. 그리고 IMF사태는 재벌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의 형태로 전개되었지만, 지금 재벌의 재무상태는 양호하다. 경상수지 적자도 당시와는 달리 유가폭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다. 2008년 8월말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126억달러인데 유가상승에 따른 수입증대가 약 160억달러인 것이다.
그런데도 환율의 불안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다가 10월말 한미 통화맞교환협정으로 비로소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사실 세계 10대 외환보유국 중 한국만큼 환율이 급등한 경우가 없다. 이는 우선 금년 들어 외환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달러 유출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외국 투자자들이 자체 자금수요를 충당해야 하는데, 한국의 주식시장이 돈을 빼가기 좋은 편에 속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여기다 은행의 단기외채 문제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2005년에 660억달러이던 한국의 단기외채는 2008년 9월 현재 1,760억달러로 급증했고, 그 대부분이 은행의 단기외채다. 이는 주로 한국인의 해외 증권투자에 대한 환헤지(hedge)와 조선업의 선물환 거래로 초래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 금융위기로 예전에는 순조롭던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이 힘들어져버렸다. 그러니 은행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하게 되고, 이것이 환율폭등을 야기했다. IMF사태 때에 비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이 대폭 개방됨으로써 국제상황의 변동에 따른 국내경제의 충격이 훨씬 커진 것이다.
원래 환율의 효과는 모순적이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업자나 해외자산 보유자가 이득을 보는 한편, 수입업자나 유학생이 힘들어진다. 따라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환율상승의 효과를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일본은 환율이 너무 내려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면 경제 전체가 여기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또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및 내수업체)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달러를 많이 빌린 한국의 금융기관은 상환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환율을 낮추려고 함부로 달러를 풀면 정작 달러가 절실한 은행의 외채결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은행부도와 국가부도로 이어지는 제2의 IMF사태가 된다. 기업에 비유할 때 IMF사태가 적자부도였다면 요즘은 자칫 흑자부도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즉 대외채권이 대외채무를 상회하는 흑자상태에서도 부적절한 외환관리로 부도위기에 몰릴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환율 이외에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떠한가. 경제성장률을 보면 2008년 상반기는 5.3%로서 나쁘지 않다. 다만 하반기에는 3%대로 떨어져 금년 전체로는 4%대로 예상되고 있다. 2007년의 5% 성장보다 낮아진 수치다. 일자리 증가도 다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리 경제는 이미 1960~70년대의 고성장단계를 지났다. 자본의 성숙으로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기 힘들며, 급속한 고령화 같은 노동의 성숙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은 선진국의 저성장단계로 나아가는 중성장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4~5%의 성장률을 무조건 낮다고 탓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 경제는 중장기적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 지식정보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든가,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는 사회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든가, 자영업의 과잉을 해소해야 한다든가 하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만약 2009년에 2~3%의 저성장률을 기록하면 이는 분명한 경기침체를 의미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는 그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GDP의 40% 정도로 높은 한국경제는 미국의 소비가 위축되면 대미수출 감소라는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원·부자재 수출도 중국의 대미수출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결국 우리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유럽경제의 침체 역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가계부채는 근래 크게 증가했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주택담보대출이다. 이미 지난 정권하에서 가계부채에 따른 수백만 신용불량자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이는 주로 하층서민에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근래 가계부채 급증에는 주택가격 폭등에 편승한 중산층의 차입증가가 새로운 요인으로 추가되었다.
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2008년말부터 집중적으로 닥쳐오고 있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출로 구입한 주택을 처분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가계부채는 생계압박과 소비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다 주가폭락도 소비위축을 가중시킨다. 주택가격과 주가의 하락은 일단 중산층에게 보유자산 가치저하라는 면에서 타격을 주고, 나아가 내수관련 종사자들에게 매출감소라는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사실 우리 주택담보대출은 미국의 써브프라임 사태처럼 당장 은행의 줄초상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다. 노무현정부가 LTV(주택가격에 대한 담보인정비율)와 DTI(부채의 연간원리금 상환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규제를 마련해놓았기 때문이다. 대출자의 연체가 발생하면 은행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담보주택을 처분하더라도 은행의 손해가 LTV가 높았던 미국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처럼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해 금융상품의 복잡한 연쇄사슬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16~25만채에 이르러 건설사의 경영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상호저축은행과 일반은행 등이 부동산 PF(기획금융)에 물린 금액이 수십조원에 이르러 은행권의 자금압박을 초래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졌다. 내수침체 및 키코(KIKO)2와 아울러 중소기업들에겐 이중삼중의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출둔화, 소비위축, 건설사 위기, 은행 자금사정 악화 등은 한국경제의 침체를 야기하고 있다. 사실 경기가 침체하더라도 그 고통분담이 공평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고성장단계에서 중성장단계로 접어들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하다. 게다가 IMF사태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노동자 및 비정규직의 삶이 고단해졌다. 앞으로의 경기침체에서 이들 서민의 고통이 더욱더 극심해질 터이므로 문제인 것이다.
IMF사태는 대내적으로 재벌과 금융기관의 부실, 대외적으로 무분별한 개방정책과 태국 등으로부터의 외환위기 전염이 원인이었다. 이에 반해 지금의 경제위기는 대내적으로 가계부채 증가, 주가 및 부동산값 하락, 대외적으로 세계적 금융위기와 국내은행의 단기외채가 원인이다. 그런데 IMF사태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재벌과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함으로써 비교적 단기간에 극복되었다. 반면에 지금은 재정이 그때만큼 양호하지 않고, 가계나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 구조조정 대상이 엄청나게 많으며, 도덕적 해이를 피하는 구조조정이 용이하지 않고, 세계경기가 나쁘다. 따라서 IMF사태처럼 실업자가 쏟아져나오는 상황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3.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권력을 획득하려는 선거에서는 어떤 정치세력이든 만병통치약을 갖고 있는 듯 선전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갖가지 제약조건하에서 운신의 폭은 생각보다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자본가계급, 노동자계급, 시민사회가 미성숙했던 박정희시대 같은 개발독재체제에서는 정권의 재량권이 상당히 컸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물론 우리보다 더 짜여진 선진사회와 비교해보면 아직 국가권력의 영향력이 크지만 그것도 예전에 비할 바 아니다. 그리고 이는 사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고, 비록 이명박정부가 신공안정국을 조성해 시대를 역주행하는 경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체제적 제약조건에 더해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집행에는 세계적·역사적 제약이 추가적으로 작용한다. 세계적으로는 유가 및 원자재값 폭등이 2008년 상반기에 한국경제를 엄습했고, 하반기에는 금융위기가 밀려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지난 정권 10년 동안 전개된 경제상황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유산으로 주어져 있다. 남북경제협력의 진전, 구조조정과 양극화, 주택가격 폭등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이명박정부가 수세에 몰리자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이나 지난 정권 탓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이긴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셈이다.
또한 정치적 지지기반 여부도 경제정책의 추진동력에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정부도 지지세력이 갈라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른바‘강부자·고소영’인사, 친박세력과의 갈등, 민심과 괴리된 쇠고기협상 등의 결과다. 한국은 개발독재체제에서 선진국체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데, 그 과도기는 낡은 것은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시기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불안해하며, 그에 따라 선거 때의 압도적 지지가 정권의 몇가지 과오 속에 금방 실망의 폭발로 뒤바뀐다. 이렇게 지지기반이 취약해지면 정책이 어정쩡해지기 쉽다. 큰 변화를 이끌어갈 추진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제약조건하에서 아직 정권통치의 전반부이기는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구체적인 경제정책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첫째로 성장정책을 검토해보자. 대선과정에서 제시했던 이명박정부의 성장정책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747’공약이었다. 매년 7%씩 성장해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큰 후유증 없이 매년 7%씩 성장하는 것도 무리지만, 매년 우리가 7%씩 성장하고 현재 경제규모 7위인 이딸리아가 성장을 중단하더라도 10년 내에 우리가 이딸리아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사실은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렇게 초보적인 계산조차 소홀히한 공약인데다 정권도 더이상 스스로를 기만할 수 없었던지 747 정책은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또 하나 이명박정부의 성장정책을 대표한 것이‘대운하’였다. 그러나 물류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제기된 대운하사업은 건설업자에게는 이득이 되겠으나 환경을 파괴하고 물류개선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747 정책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졌다. 그러자 장기 비전을 잃어버린 대통령은 생뚱맞게‘녹색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의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대대적으로 키우겠다는 것인데 이 자체는 나쁠 게 없다. 다만 현재 태양광, 풍력발전 분야의 수입의존도가 각각 77%, 97%인 상황에서 참여기업들이 원천기술 개발이나 해외시장 개척의 전망을 갖추지 못한 채 정부의 발전차액지원금을 겨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세계 금융위기가 닥쳐온데다 유가의 급락세로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의문시되면서 애당초 진정성이 부족했던 녹색성장에 대한 정권의 열의는 식어가는 것 같다.
한편 이명박정부는 각국의 보수정권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성장정책인 감세정책을 제기했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를 인하해 소비와 투자를 진작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혜택이 주로 부자와 대기업에 돌아가는 감세정책의 성장촉진 효과는 미미하다.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의 가처분소득이 증대된들 내수는 별로 커지지 않을 것이며, 이미 유보금을 잔뜩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에 법인세를 인하한들 투자가 크게 늘 리 없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와 국내경제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세금이 줄더라도 오히려 지출을 줄여 위험에 대비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다.
둘째로 분배정책은 어떠한가. 지난 정권이 좌파 분배주의 정책을 취했다고 비난하고 집권했으므로 당연히 분배정책에 대한 현정권의 관심은 희박하다. 성장만 되면 자동적으로 분배문제는 해결된다는‘성장만능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예산편성에서 복지부문의 지출은 현상유지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부자와 대기업에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를 통해 사실상 분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주택가격 및 주가 폭락이나 내수위축으로 타격받는 중산층 및 하층서민에 대한 복지지출을 희생시키고라도 자신의 확실한 지지기반에 봉사하겠다는 뜻이리라.
이명박정부는 IMF사태 이후 진행된 양극화의 현실, 즉 이제는 성장과 분배의 연결고리가 약화되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분배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분배개선을 위한 국가의 시장개입을 기피하므로 이들의 성장만능주의는 시장만능주의이기도 하다. 또한 현정권이 내건 선진화는 그냥 1인당소득의 증대일 뿐이지, OECD최하위권인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수준을 높여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지향하겠다는 목표의식은 없는 셈이다.
다만 유가환급금을 지급한다든가, 이동통신사에 요금인하를 요구한다든가, 은행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한다든가, 공공요금을 동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권이 서민생활에 관심을 갖는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전시행정에는 적극적이다. 제도개혁을 통해 서민들의 삶과 분배문제를 개선하는 쪽은 소홀히하면서 일회성 관치를 자주 동원하는 것이다. 이런 관치는‘대불공단의 전봇대 뽑기’처럼 실제론 쇼 이상의 의미가 별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리해서 이명박정권의 경제정책은 묘하게도 관치라는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가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다.
셋째로 위기 및 경기대책을 살펴보자. 먼저 정권 초반기에 유가와 원자재값 급등으로 국내물가 불안이 우려되고 있었다. 2007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였는데 현정권 들어서는 5% 정도로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환율을 부추기는 발언을 해서 물가불안을 심화시켰다. 또한 물가불안이 큰 이슈가 되자 1960~70년대 개발독재식으로 물가단속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시장을 불안케 하고 윽박지르는 행태는 환율이 폭등하고 제2의 IMF사태 운운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환딜러를 단속하겠다고 하고 기업들을 질타해 보유 달러를 풀게 했다. 기껏해야 반짝 효과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조치들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다른 나라들의 금융위기 대책을 보고서야 뒤늦게 정부의 은행외채 지급보증이라는 특단의 방안을 내놓았고, 간신히 한미 통화맞교환협정을 맺었다. 시장과 소통하고 시장을 조절하는 능력의 결핍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경기대책과 관련해서는 금융 면에서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려 한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은행 등의 채권을 사주기로 했다. 이런 유동성 확대조치는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장차 거품과 격심한 물가상승을 초래하지 않고 외환사정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잘 조절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는 재정 면에서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지지층 결속을 위한 부유층 감세를 경기대책으로 내세우는 건 억지며,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면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된다. 특히 일단 취한 감세조치는 나중에 되돌리기가 힘들다.
또한 건설경기 부양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정도로 OECD국가 중 최상위권인 우리나라에서 건설경기 부양은 손쉬운 경기대책이다. 특히 건설업에선 정부가 직접 발주할 수 있는 물량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의 과도한 건설업 비중은 축소해가야 한다. 또 한국에는 부동산투기라는 특수한 고려사항이 있다. 김대중정부기에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규제를 완화한 것이 이후 부동산 가격폭등의 요인이 되었던 쓰라린 체험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현정권은 야금야금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경기 활성화라는 이름하에 부동산투기에 다시 불을 붙이려 한다. 그리하여 부동산관련 세금규제 완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노무현정부하에서 간신히 주택가격 폭등을 멈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LTV와 DTI규제마저 허물고 있다. 이런 규제완화는 당장의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 없으면서 그 부작용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덧붙이자면 규제완화의 물결 속에 투자촉진이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수도권 규제완화도 지역불균형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크다.
나아가 정부는 일부 미분양 아파트를 직접 인수함으로써 건설업에 대출해준 저축은행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건설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며, 건설업 구조조정을 늦추고, 부동산가격의 거품해소를 지연시킨다. 1990년대 일본에서 보듯이 거품해소가 지연될수록 경기회복도 지연된다. 정부는 건설업 구조조정도 병행한다고 했지만, 은행이나 정권이나 부실을 표면화하고 싶지 않은 판에 과연 그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게다가 국민세금을 동원한 건설업 지원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의 공평한 고통분담 원칙에도 어긋날 수 있다. 2009년 예산에 반영된 사회간접자본의 대폭적 확충도 경제성을 무시한 낭비사업이 되지 않을지 의문이다. 물적 유형물 대신에 인적 투자와 사회보장지출을 늘리는 게 지식정보화시대에 어울리는 경기대책일 텐데, 토건업 문화에 물든 대통령과 장관이 사고를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올바른 위기대책은 경제구조의 선진화로 연결된다. 보통 때라면 상상하기 힘든 제도변화가 위기에서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부자에 대한 증세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면, 그게 바로 소비지출을 늘리는 경기대책이며 동시에 복지국가를 구축하는 길이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문제 역시 경기침체기에 더욱 두드러지고, 그 해결을 위한 사회적 압력도 커질 것이다. 이는 유연안정성(고용의 유연성과 생활의 안정성)이라는 덴마크식 선진모델이 도입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이명박정부에게는 기대난망이리라.
넷째로 재벌 및 금융정책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친기업(business-friendly)을 외치며 재벌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지주회사와 하도급 관련규제를 허물어뜨려 전경련의 오랜 요구를 수용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의 명분은 투자활성화다.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것들은 재벌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게 아니라 재벌총수의 황제경영과 선단문어발경영을 제약하는 규제다. 그리고 실제로 투자부진은 재벌보다 중소기업에서 심각하다. 그런데도 총수의 부패와 무능을 견제하고 대기업-중소기업간 공정거래를 요구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허구적 명분으로 깔아뭉개려는 것이다. 시장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시장의 발전에 배치되는 개발독재의 재벌체제로 역주행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중소기업에 일시적으로 자금지원을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구조적인 중소기업 발전책을 무시하는 것이다.
금융정책에서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금융지배를 강화하려 한다. 보험사나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은 이미 재벌이 거느리고 있으므로, 실제 쟁점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배 차단) 문제다. 이명박정부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높여주고 또한 산업자본이 투입된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의 은행소유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은행을 외국자본에 넘겨줘야 한다는 걸 명분으로 삼는다.
하지만 표범을 피하려고 호랑이를 찾아서는 곤란하다. 은행을 재벌에 넘기면 은행이 사금고화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았듯이 은행경영이 잘못되면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씨스템 리스크가 발생한다. 더구나 한국의 재벌은 아직도 경영구조에서 전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적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게 정도(正道)다. 그게 당장 힘들다면 현재 국유인 은행들의 소유구조는 일단 그대로 두고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섯째로 기타 정책들을 검토해보자. 노동정책과 관련해선 한국노총과 협의관계를 유지하면서 민주노총에 적대적 자세를 취한다. 민주노총 고위간부를 구속하고 전교조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와 노동계의 한판 큰 싸움은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 노사관계의 뚜렷한 제도적 변화방향도 드러나지 않았다. 기껏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계약직 허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한다든가 하는 미봉조치만 선보이고 있다. 근래 노동쟁의의 주된 공간이 대규모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관련 사업장으로 바뀌었고, 정권의 지지율 저하와 금융위기 발발로 결전의 시기를 정권이 미루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방정책에서는 지난 정권의 한미FTA체결정책을 이어받는 데서 더 나아가 쇠고기협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그리하여 검역주권까지 포기한 그 졸속성과 굴욕성으로 인해 정권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반면에 남북한 사이의 개방정책에서는 실용주의를 내걸었지만 수구파의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남북경제협력을 침체시키고 있다. 개성공단 같은 대북사업이 중소기업의 탈출구로 작용하고 있는 판에, 이를 막아선 이명박정부는 반실용적·반기업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과 관련해서는 통폐합, 기능조정,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방안을 3차에 걸쳐 내놓았다. 한때는 물도 민영화한다는 등 과격한 민영화방안까지 떠돌았으나 촛불시위와 정권의 지지율 저하로 인해 위험스런 방안들은 일단 자제하고 있는 듯싶다. 때문에 보수세력들에게는 어정쩡하다고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인천공항공사 민영화 등 조금씩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공공기관의 비효율도 바로잡아야 하고 민영화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지만, 재벌이나 외국자본에 넘기게 되면 국가적으로 별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공공기관 대표의 법적 임기를 무시하고 전리품 나누듯이 갈아치웠으므로 지배구조가 개악될 위험성도 증대된 형편이다. 공공기관의 정권 눈치 살피기가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맺음말
시장경제는 효율성과 불안정성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한쪽만 취할 수 없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도 주택거래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가운데 불안정성이 심화되어 폭발한 것이다. 이런 모순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지만 조절할 수는 있는 게 자본주의 국가다. 그래서 각국은 위기수습에 나서 은행의 부분국유화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동원했으며 초유의 국제적 공조체제를 갖추기까지 했다. 다만 금융위기를 일단 진정시키더라도 실물경제의 침체가 뒤따를 것이므로 세계경제가 언제 회복궤도에 올라설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금융자본의 폭주를 조장한 씨스템이나 시장만능주의 사조에 부분적 손질이 가해질 것이다. 미국식 투자은행 모델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규제체계도 재정비될 수밖에 없으며, 가계의 과잉부채도 조정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참에 새로운 뉴딜(a new New Deal)로 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통해 미국식 자본주의가 변모할 조짐도 보인다. 그리고 장차 미국 달러의 세계화폐 지위가 흔들리면서 글로벌 금융체제가 바뀌어갈지도 모르겠다.
한국경제는 한편으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에 휩쓸리고 다른 한편으로 부동산 등 내부적 문제점이 터져나오면서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IMF사태 이후 전개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층서민은 물론 중산층에도 심대한 타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그런데‘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정부는 갈팡질팡하면서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성장정책, 분배정책, 위기 및 경기대책, 재벌 및 금융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위기상황에서는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공평하게 고통을 분담하는가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경제구조를 선진화하는가이다. 개발독재체제에서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처한 우리 상황에서는 개발독재, 구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복지주의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에 일방적으로 경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위기극복이라는 당면의 과제도, 선진화라는 구조적 과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우리 사회에서 한편으로 관료통치의 타성이 작용하면서 재벌기업 및 재벌총수가 독점적 지위 유지에 집착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적 주류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경시하고 성장과 기업에 대한 우상숭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고 구자유주의와 복지주의를 강화함으로써‘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고도화’할 세력이 존재하느냐가 위기극복과 바람직한 선진화가 가능할지 가름하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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