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진단은 적절했지만 과제는 여전히 막연
● 뚜렷한 성과 없이 사그라지는 촛불에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배달된 창비 특집이 반가웠다.‘이명박정부,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라는 주제 아래 묶인 글들은 내 갈증을 풀어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뒤 든 느낌은 여전히 답답함 그 자체였다. 물론 현정국에 대한 진단과 분석은 모두 공감할 만했다. 특히 운동세력과 시민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지적하며 “운동세력으로선 이 장벽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한홍구의 주장은 나 역시 절실히 느껴오던 것이다.
문제는 글에서 제시된 전망과 과제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 스스로 촛불을 들 수 있어야”(한홍구), “87년체제의 보수적 재편에 제동을 거는 데서 더 나아가, 87년체제를 민주적으로 재편해야”(김종엽),“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이 뚜렷한 역할을 해야”(이일영),“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구성해야”(하승수) 등의 주장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촛불 이전에도 있어왔고, 촛불이 없었더라도 계속 나올 법한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장기전이 되면 분열하는 것은 바리케이드 안쪽”(한홍구)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고 기다리기에 현실은 너무 구체적이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kjw1732@hanmail.net
훈령조작사건에 대한 납득하기 힘든 평가
● 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관한 조성렬의 서평을 읽었다. 그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의 훈령조작사건은 임동원의 증언이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인 이동복 전 안기부장 특보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명백히 확인된 사건을 달리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1992년말 국회 국정감사와 언론을 통해 폭로된 그 사건은 1993년 11월 국회에서 관련문건이 공개되면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자 감사원은 특별감사를 실시했고, 같은해 12월 이동복 특보가 훈령조작을 했음을 확인했다. 특히 안기부는 감사가 시작되기 전 이동복 특보를 해임함으로써 그에게 잘못이 있음을 몸으로 보여줬다.
훈령조작사건은 한국의 냉전세력들이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어떻게 역행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한반도의 시계(視界)를 냉전시대에 묶어놓은 역사의 오점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1992년 당시 이 사건 그리고 그것을 모의한 세력들이 없었다면, 그리하여 남북고위급회담이 진전됐다면 한반도의 오늘은 크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임동원 회고록 행간에는 그에 대한 탄식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훈령조작사건을 다룬 부분은 『피스메이커』의 백미다. 그렇게 중차대한 의미가 담긴 이 사건에 대한 서평자의 애매한 평가는 납득하기 어렵다.
익명의 독자 ○○○@gmail.com
내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해준 소설
● 가을호를 받아들고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엄마를 부탁해」가 완결되었다는 사실이었다.‘80년대 독자’인 나에게 요즘 소설은 잘 읽히지 않는다. 이게 소설인가 싶은 경박단소한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그렇지 않으리라 기대했고, 행복하게도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 시대 어머니의 모습을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회마다 각기 다른 인물의 시각과 체험 안에 엄마의 모습이 아프게 담겨 있다. 1회는‘너’라고 지칭된 딸과 관련된 엄마의 모습, 2회는 큰아들과 얽힌 엄마의 삶, 3회는 아내로서의 엄마의 삶, 4회는 엄마의 삶에 들어 있는 딸, 남편, 시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엄마가 큰아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필요한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들고 서울까지 가서 아들과 나란히 동사무소 숙직실에 누워 나누는 긴 대화이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가 아니냐”로 시작하는…… 자식을 출산한 어머니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눈물이 맺힌 채로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내 아내가 이런 엄마가 되길 빌었다. 내 삶과 어머니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작가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김응석 kes1964@naver.com
‘고은 문학 50년 기념 대담’을 읽고
● 가을호 중 고은-이장욱 시인의 대화가 눈에 띄어 관심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문학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지면에 전해지는 것 같아 읽기에 참 좋았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고은 시인의 작품세계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과 시적 모험을 찾아나서는 강한 에너지의 분출로 점철되어 있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백두산』 같은 장시로 유명하다. 오늘날 우리 문학담론들이 보편성을 강조하는 데 비해 고은 시인은 민족적 서사로서의 특수성과 주체성을 역설한다. 이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의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며, 그 특수성이 널리 전파되다 보면 그게 보편성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렇듯 창비가 작품과 시론뿐 아니라 대담기획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이정훈 que-sais-je@hanmail.net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한 환경운동
● 지난 여름호에 실린 「기후변화의 지정학과 한국사회」에 이어 이번호에 실린 좀더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제목의 「인류는 녹아내리고 있다」를 유심히 읽었다. 가을호 글은 논제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끝까지 흥미를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내겐 좀 벅찼지만, 두 글을 읽고 나서는 그동안 내가 너무 무지하게 살아왔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오늘날 인류가 처한 환경문제, 피부로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이 상황을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어 아주 유익했다. 소리없이 다가오는 파멸을 예언하며 이를 막기 위해 인류가 계속해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뒤 곰곰 생각해보니, 오늘날 인류를 존재하게 한 바로 그 에너지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이젠 어제의 인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만 하다. 이제부터라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후변화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이에 대한 실천방안을 하나씩 이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환경운동이 아니고 생존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주제를 끊임없이 다루어주길 바란다.
장영관 blacker2@naver.com
블로거가 읽는 창비
● 이번 가을호에서는‘이명박,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라는 특집으로, 현정부의 문제점을 전제로 정부의 정책에 어떤 대안으로 대항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일단 내용도 좋지만, 마음에 든 것은 바로 인터넷 누리꾼의 글도 실었다는 점이다. 『창작과비평』은 주류적인 문학 계간지로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받고 있는 인터넷 글은 거의 배제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창비 가을호에는 인터넷문화까지 포용하는 관대함이 묻어났다. 상당히 의외이기도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할까. 앞으로도 창비가 전문성이 있는 주류비평가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글까지도 찾아내 싣는 수고를 해줬으면 한다. 창비한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케찹군(ketchupkun)님의 블로그에서
● 환경문제 또는 생태문제는 그것이 문제인 한 분명히 전지구적인 문제다. 하지만 막연한 전인류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위험/고통의 사회적·지정학적 불평등을 관철시키는, 먹고 싸는 일 같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우주공간으로의 진출 같은 거시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차별의 벽이 차곡차곡 쌓여가는,‘전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계급적인’문제의 복합체다. 계급문제를 가리고 있지만 가장 계급적으로 현실화되는, 그래서 장차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의 장이 되어야 할, 그렇지만 위험/고통이 발생하고 관철되는 방식이나 현인류 대부분의 영혼의 수준까지 감안하면 그 특성상 투쟁이 불가능해질 공산이 큰 영역, 그래서 그 앞에 서면 가장 절망적이 되는 영역이 환경문제이다.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린 마이크 데이비스의 글 「인류는 녹아내리고 있다」에는 암울한 미래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구체적 가능성으로 언급되어 있다. 먼저‘문제를 직시하기’를 권하는 글이다.
urichorong님의 블로그에서
● 조남익의 시 「대밭이 바람에 흔들릴 때」를 읽고 나니, 소쇄원 대나무밭에서의 바람 불던 날이 생각난다. 허리 세우며 뱉는 그 소리는 날카로우면서도 감싸 안는 소리.‘흩어지고 뭉치는 바람속이 터지면’나는 어느새‘바다로 간다.’
함박구름(rodeo007)님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