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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서지우 『공황전야』, 지안 2008

아고라 경방 고수가 진단한 한국경제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쎈터장 bkkim21kr@naver.com

 

 

촌평_공황전야

2008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1997년 경제위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외환위기, 은행위기, 금융위기가 경제위기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결국은 마이너스 성장과 고용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마지막까지‘위기는 없다’며 상황을 호도했다는 점에서 11년의 역사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1년 전과 다른 점도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 국민들이 더이상 정부 당국자들의 말만 믿고 어이없이 닥쳐올 경제대란에 무방비로 노출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양한 무명의 인터넷 논객들이 닥쳐올 위기를 진단하고 정부의 경제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어디서부터 경제에 이상현상이 오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미네르바 현상’이 그것인데, 정부가 경제위기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더 큰 위기를 키우는 시점에서 그리고 대다수의 보수적 경제전문가들이 복잡한 이론을 들이대며 경제상황 호전을 전망하던 상황에서 몇몇 누리꾼들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경제위기의 숨겨진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번져가던 2008년 연말에 출간된 서지우(다음‘아고라’닉네임 SDE)의 『공황전야』가 바로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경제위기를 진단했던 수많은 인터넷 논객들 가운데 최초로 체계적인 공식 단행본으로 경제위기를 파헤친 책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지난해부터 확산일로를 걷기 시작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것이 한국경제로 전이된 과정은 물론, 11년 전에 발생했던 우리의 외환위기, 나아가 현재 위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과 향후 전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를 현시점과 연결시키려 한 대목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기아자동차 파산에 대해 저자는, 그 직전의 진로그룹 위기 파장을 최소화하려던 것과는 달리 “그와 정반대로‘기아 죽이기’방향으로 180도 방향을 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55면) 그 이유는 당시 강경식(姜慶植) 경제부총리가 부도위기에 몰린 기아자동차를 넘겨 받으려는 삼성의 계획에 동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기아차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해외자본들의 급격한 자금회수가 시작되어, 결국 외환위기(저자의 주장으로는 금융공황)까지 가게 되었다는 대목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바로‘하이퍼인플레이션’과‘고금리를 통한 외환확보, 은행 유동성 확보’부분이다. 우선 저자는 현상황이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 국면이라기보다는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인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금리인하로 인해 언제든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즉 1차대전 이후 전쟁배상금 마련을 위해 지폐를 무제한으로 찍어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독일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현재의 금융씨스템이 금본위제, 즉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만큼만 화폐를 찍어내는 씨스템이 아니라 보유한 금과 무관하게 신축적으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불태환 화폐’씨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8면) 그런데 중앙은행이 보유한 가치있는 재화들, 즉 금, 외화, 채권 등의 보유량보다 더 많은 돈을 찍어내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인플레이션보다 여전히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큰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이 재개될 가능성은 국제적으로 달러가치가 폭락할 때 현실화될 것이다. 물론 커져가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매년 1조달러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재정수지 적자가 결국은 달러가치 폭락과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경향과 실물경기의 심각한 위축이라는 고비를 먼저 넘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쟁점은 저자가 특히 한국의 저금리정책을 비판하면서 고금리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확보와 은행들의 예금 확보를 위해서 지금과 같은 저금리정책을 폐기하고 적어도 두달 동안 7.5% 이상의 고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64~68면) 그러나 환율안정과 은행 건전성 확보를 고금리정책으로 달성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금리정책이 그렇지 않아도 자금위기에 몰린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별개로 치더라도, 금리라는 정책수단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저금리이든 고금리이든 단순한 금리조작으로 멈춰버린 금융시장구조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금융씨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는 대로,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파생상품시장이 복잡하게 발전한 것도 아니고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같은 모험적인 금융조직이 과도한 신용팽창을 일으켜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다는 미명 아래 금융시장을 급격히 개방하고 자유화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주식소유제한이 철폐되어 2004년에 무려 42%까지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늘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외국인 주식매도가 급격히 늘면서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이 초래되었다. 또한 외환위기 후에 외국환거래법이 개정되고 외환거래가 자유화되면서 극심한 환율변동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사라져버린 탓에 외환시장이 마비되기도 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은행의 위기 역시,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되고 외국인 소유가 된 시중은행들이 과도한 규모경쟁을 벌이고 예대율 140%를 넘기면서 수익추구에 몰두한 결과, 금융위기로 인해 그 취약성이 일거에 드러난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11년 전 금융위기와 현재의 금융위기가 결정적으로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고, 이미 IMF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와 지금의 우리 금융위기가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때문에 문제해결의 방향도 금리조작이 아니라 자유화되고 개방된 우리의 외환시장, 주식시장, 대출시장을 구조적으로 전환하는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이미 금융위기 국면을 뛰어넘어 수출, 소비, 투자, 고용 등 실물경제 측면에서 역성장이 시작되고 있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뛰어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수출호조가 뒷받침되고 있었고, 정리해고가 되더라도 자영업 등으로 뛰어들 수 있었으며, 일정한 규제완화가 진행되면 외국자금이 몰려들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하자면 그같은 탈출구들이 모조리 봉쇄되어버린 심각한 상황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해져가고 있다.

여러 쟁점들에도 불구하고 『공황전야』는 기존의 안이하고 낙관적인 정부발표나 보수적인 연구자료에서 볼 수 없는 구체적 문제점들이 잘 해명되고 있고, 위기에 대한 적극적 인식들이 글 도처에 깔려 있다. 그것만으로도 경제위기와 고용대란에 불안해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