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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지아 鄭智我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행복』 『봄빛』 등이 있음. jiajeong@hanmail.net
즐거운 나의 집
비라도 한줄금 퍼붓기를 바랐건만 햇볕은 쨍쨍, 바람은 살랑, 일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 며칠 황씨가 새벽 댓바람부터 일을 시작했다. 허구한 날 방구들 지고 누웠던 황씨가 일에 맛을 들였으니 황씨 모친, 그러니까 함안댁이 살아 있었더라면 싱글벙글, 이 다 빠진 합죽한 입매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겠지만, 그는 제발이지 황씨가 어두침침한 안방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기를 며칠째 기도하는 중이다. 그는 예전 담이 있었던 자리 부근에 우두커니 서서 등줄기에 척 달라붙은 황씨의 누런 러닝셔츠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또 뭘 만드는지 그의 집 벽에까지 긴 목재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자기 일감이 남의 집을 침범했다는 미안함 따위 황씨가 느낄 리 만무하다. 음량 좀 줄여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해보나 어쩌나, 한참 망설이던 그는 쓴 입맛을 다시며 돌아선다. 뭐라고 한들 쇠귀에 경 읽기다. 엊그제 주문한 엠피쓰리나 도착하길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몇년 묵은 낯익은 뽕짝 가락이 돌아서는 그의 등을 쓰나미처럼 강타한다.
써야 할 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건만 그는 서재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뒷집을 담도 없이 마주한 서재는 뽕짝 소리로 벽이 다 흔들릴 지경이다. 혹 시골에 가면 써질까 싶어 이리로 내려온 게 실수다. 원고 마감이 다음주 월요일, 겨우 닷새 남았다. 작년 가을걷이가 끝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술판에 지쳐 도망치듯 이곳을 떠난 이래, 그는 며칠 전까지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다. 여기만 생각하면 골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귀를 틀어막은 채 시멘트로 뒤덮인 마당을 초조하게 서성인다.
봄 내내 돌보지 않은 화단엔 잡초가 무성하다. 몇해 전 봄, 집을 짓자마자 꿈에 부푼 그와 아내가 자외선차단제를 듬뿍 바른 채 휘파람을 불며 뿌려놓은 십여종의 꽃이 섞여 있을 테지만 서울서 나고 자란 그는 그것들을 잡초와 구별해낼 재간이 없다. 벌써 어른 팔뚝 높이로 자란 풀잎들이 뽕짝 리듬을 타듯 야속하게 나풀거린다. 결국 잡초밭이 되고 말 화단을 만드느라 건축업자와 언성까지 높인 걸 생각하니 울화가 치민다.
공사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그는 오는 길에 화원에 들렀다. 아내가 좋아하는 봄꽃들을 이사 오기 전 심어놓을 작정이었다. 아내는 수수한 들꽃보다 화려한 열대성 꽃을 더 좋아했다. 폭스글로브와 가자니아, 헬리오트로프를 한아름 사들고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낮은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부신 눈을 질끈 감았다. 시멘트 마당이 오월의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특별히 써비스 해드렸습니다. 보통 삼쎈티 정도 바르는데 특별히 십쎈티나 덮었으니까 어지간해서는 깨지는 일도 없을 겁니다.”
이장에게 소개받은 읍내 건축업자는 인심썼다는 듯 공치사를 해댔다. 고운 황토를 바르고 다져 햇살이 팝콘처럼 톡톡 튀는 마당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늦가을이면 맨들맨들 잘 다져진 마당에 참깨도 말리고 고추도 말려 양념거리는 다 자체 조달하겠노라 아내에게 큰소리친 바도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전원생활의 별미는 집 안의 텃밭과 눈길만 주어도 온갖 꽃들이 시샘하듯 앞다투어 피어나는 화단 아닌가.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턱하니 흙 한줌 보이지 않게 시멘트로 덮어버린 건축업자의 처사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멘트로 도배를 할 거면 서울서 살지 뭣하러 시골로 내려왔겠어요? 번거롭겠지만 원상복구합시다.”
건축업자는 울상을 지은 채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이장을 바라보았다.
“작가 선생이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먼. 마당은 시멘트로 확 덮어야 하는겨. 서울 사람이라 시골장마를 안 겪어봐서 모르는 모양인데, 흙 묻힐 일도 없고 시멘트 마당이 최고라니까!”
이장이 뭐라든 그가 시골생활을 꿈꾼 건 흙을 밟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였다. 결국 인부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해머드릴을 집어들었다. 어지간해서 깨지는 일 없을 거라던 건축업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나 두껍게 처발랐는지 인부들 댓이 미친 듯 온몸을 흔들며 시멘트를 깼지만 반나절이 지나도록 드러난 땅은 고작 댓평 남짓이었다. 그는 건축업자를 설득하고 윽박질러 기어이 굴착기를 불렀다. 그러나 굴착기는 좁은 골목으로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건축업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는 좌절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해머드릴로 화단만 확보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열평짜리 작은 화단이었다. 고난은 화단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 집 한칸 짓는 게 가나안을 향한 모세의 행군 그 이상이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났을 즈음에는 직장 다닐 때도 생기지 않았던 원형탈모로 정수리가 힁허케 비었다. 모름지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경이 따르는 법이라고,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집의 완성이 곧 꿈의 완성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언제부터 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로라는 일간지에 입사한 무렵은 분명 아니었다. 일간지가 아닌 여성지로 발령이 났을 때만 해도 언젠가는 일간지로 옮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2년 만에 전보발령이 났다. 이번에는 주간지였다. 그뒤 시사월간지로, 단행본팀으로, 과학월간지로, 끊임없이 옮겨다녔다. 그사이 일간지 기자라는 희망마저 사라졌다. 일간지로 갈 수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갈 수 없기도 했지만 일간지가 자기 인생의 희망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게 먼저였다. 여성지와 월간지, 단행본을 오가는 동안 그는 한번도 특종을 내지 못했다. 데스크들은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판단컨대 가치관의 차이였다. 연예인의 兒스 동영상이나 재벌가로 시집간 여배우의 일상 따위가 어떻게 특종일 수 있단 말인가. 시사월간지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권력의 의도였다. 언젠가 시사월간지에 있을 때 독하게 마음먹고 한 국회의원의 뇌물수수 사건을 파헤친 적이 있었다. 곧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터라 세상을 뒤집어놓을 게 분명한 사건이었다. 원고를 넘긴 후 데스크가 그를 불렀다.
“자네, 이걸 왜 썼어?”
그 국회의원은 여당의 실세였다.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면 신문사에서 그 정도의 모험은 할 줄 알았다. 게다가 대선의 흐름도 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의 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스크는 그의 원고를 집어던졌다. 발품을 팔고 밤잠을 설쳐가며 석달 만에 완성한 원고가 나풀거리며 한점 꽃잎인 양 그의 발등 위로 사뿐 내려앉았다.
“국민의 알 권리? 놀고 있네. 재벌이야? 때려칠 생각 없으면 깝죽거리지 말고 국으로 엎어져 있어. 니가 철딱서니 없는 이팔청춘이냐? 사회정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기자를 꿈꾼 것은 괜찮은 밥벌이의 수단이라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었겠지만 사회정의든 뭐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일조할 수 있을 거라는 나름 거국적인 고민의 결과이기도 했다. 데스크는 그의 삶 자체를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양심조차 팽개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썩지 않은 데 없는 이땅의 인간들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일간지 기자의 꿈 대신 봄이 되면 봄비 머금어 촉촉한 땅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장마와 가뭄과 태풍 속에서도 옹골차게 자란 곡식을 수확하고, 메마른 땅이 다시 생명을 품을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는 무욕의 삶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당장 때려치우지 못하고 기다린 것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뼈아픈,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진리 때문이었다.
외환위기와 동시에 사표를 내던지고 위로조의 두둑한 퇴직금을 손에 쥔 그는 몇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땅한 집터를 찾았다. 서울 근교는 너무 비쌌고, 먼 데도 경치가 수려하다 싶으면 이미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뒤였다. 십수년 전 용인에 땅을 사두자던 동생의 권유를 너마저 생명의 대상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기로 작정했느냐고 비아냥거리며 야멸차게 내쳤던 게 못내 후회스러웠다. 포기할 즈음 이 집터가 나섰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이백평, 다소 좁긴 했지만 정사각형의 터인데다 다 무너져가는 기와집이라 철거도 손쉽고 안성맞춤이었다. 마을을 감싸안은 나지막한 산자락도 마음에 들었다. 경관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오십여호 남짓한 마을은 안정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한시간 거리에 그 가격이면 괜찮은 편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그는 이틀이 멀다 하고 마을에 들러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몇년 전 귀농한 친구에 의하면 귀농의 성공 여부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서울 근교라 별장들이 많아서인지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시골에 정착한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농사 지을 생각은 없었다. 집에서 먹을 정도의 텃밭이나 가꾸면서 예전 동료들에게 부탁받은 인터뷰 원고나 쓰고, 할 수 있으면 소설을 써볼 생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르익어갈 봄의 정취, 서재 통유리 너머 하루하루 스러지고 차오를 달의 변신, 장엄하게 천지를 두드릴 빗줄기 등이 인간인 이상 그의 마음 깊은 곳에도 내재해 있을 문학적 감성을 일깨워줄 것이라는 은밀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놓자 동네 사람들은 작가 선생이 우리 마을에 왔으니 마을의 경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제야 그는 결심을 굳히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집을 완성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었으나 이제야 비로소 자연의 순리에 따른 아름다운 삶이 시작되리라는 희망만은 밤바다의 등대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희망은 이사 온 첫날, 날벌레에 의해 박살이 났다. 벌레의 종류가 많은 것은 둘째 치고, 그 어마어마한 수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방충망을 했는데도 벌레들은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침입했다. 술잔에도 반찬에도 국그릇에도 고작 하루를 산 목숨의 잔해가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아침이면 마당과 현관은 물론이고 방방마다 날벌레의 시체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상재(霜災)였다. 하루를 산, 수만 목숨을 치우는 것으로 전원생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시멘트 마당에 내널린 가볍디가벼운 날벌레의 시신은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솟구쳐 그의 입과 코가 무덤인 양 날아들었다. 다시 밤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는 이장네로 달려갔다. 평생 날벌레와 함께 살아온 시골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묘책이 있을 터였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어디서 본 것인지 분명치 않은 영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이장네는 자욱한 연기에 감싸인 채 평상에 앉아 새참인지 점심인지를 먹고 있었다.
“이장님, 뭘로 모깃불을 피우나요? 아무 풀이나 태우면 되나요?”
“아무 걸로나 되나. 쑥대에다 보릿대를 섞으면 더 좋은데 보릿대는 구하기 어려우니 그냥 쑥대만 태우게. 서울 양반이 쑥이나 아는지 모르겠네. 임자, 남은 쑥대 있거든 좀 드리지.”
잠깐 서 있었을 뿐인데도 매캐한 쑥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이고, 서울 사람이라 모기가 알아보는구먼.”
이장이 손마디 하나 크기로 큼직하게 부푼 그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작가 선생, 시골에서 살자면 그것들하고 먼저 친해져야 돼. 자꾸 물리다보면 면역이 생겨서 부풀지도 않고 별로 가렵지도 않거든.”
이장이 발가락을 북북 긁으며 말했다. 가만 보니 이장의 다리도 모기 물린 자국이 즐비했다. 그는 이장 마누라가 한아름 들려준 쑥대를 집에 돌아와 화단에 내던졌다. 모기나 날벌레와 평생 씨름해온 시골 사람들에게도 묘책 따위는 없었다. 친해져야 한다는 이장의 조언이 묘책이라면 묘책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장의 친절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들과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다. 벌레들과 전쟁을 치르며 그는 전원생활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막연히 예감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펼쳐질 황씨네와의 전쟁에 비하면 가벼운 몸풀기에 지나지 않았다.
탈탈거리는 경운기가 그의 집 앞에서 멈춰 선다. 옆옆집 사는 이장이 나지막한 장미 울타리 사이로 쑥 고개를 내민다. 오전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모양이다. 곧 환갑을 맞는 이장은 마을 부녀회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다. 애당초 눈이 맞은 것은 아니고 부녀회장이 처녀 시절 이장에게 겁간을 당한 모양인데 부끄러워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몇번 반복되는 사이 육정이 들었는지 자포자기했는지 어쨌든 지금은 공공연한 연인이다. 부녀회장은 이장 마누라 동생, 그러니까 처제다. 부녀회장 역시 어엿한 유부녀고, 자식까지 둘이나 있다. 뿐이랴. 부녀회장 부부의 중신애비가 바로 이장이다. 부녀회장 맏이는 툭 불거진 광대뼈에 메기를 닮은 두툼한 입술하며 둥글납작한 코까지 이장을 쏙 빼닮았다. 눈 달린 자라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이 판박이다. 이장 마누라도 부녀회장 남편도 배우자의 외도를 모르지 않는다. 이장 마누라의 속은 짐작할 길이 없으나, 부녀회장 남편은 걸핏하면 이장을 쫓아와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끝에 용돈을 받아내는 것으로 오쟁이 진 설움을 달래고 있다. 바람 피운 아내가 제 발 저려 설설 기며 알아 모시고, 오쟁이 진 설움을 무기 삼아 한평생 손에 흙 묻히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았으니 따져보면 제일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마을 사내들은 술 몇잔 들어가면 못내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술자리마다 안줏감으로 빠지지 않는 이장과 부녀회장의 러브 스토리를 듣고도 그는 한동안 믿지 않았다. 뒷산으로 산책 갔다가 우연히 등에 마른 풀을 묻힌 채 바삐 걸어가는 두 사람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소문의 주인공들뿐 아니라 호기심과 부러움을 담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은밀히 주고받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흙이나 만지며 사는 시골 사람들은 그 땅과 하늘을 닮아 맑디맑고 순하디순할 줄 알았다. 시골 출신 친구들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고향의 풍경 어디에도‘야동’에나 나올 법한 이장의 러브 스토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른봄 낙숫물 듣는 소리, 한여름 여인네들의 미역 감는 소리, 긴긴 겨울밤 싸그락싸그락 눈 쌓이는 소리 따위로 시골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은 친구 녀석들이나 작가 나부랭이들에게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가 선생, 이따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밥이나 잡숫지.”
쿵쾅거리는 뽕짝 소리와 낡은 경운기 엔진음 사이로 이장은 바락바락 고함을 지른다. 부디 그놈의 라디오 좀 끄라는 이장다운 참견을 기대했으나 자못 신이 난 듯 어깨를 들썩이는 꼴을 보니 견딜 수 없는 이 소음이 흥겹기만 한 모양이다. 무한반복되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발이라도 몇번 굴렀다가는 곧장 아래층에서 쪼르르 달려오는, 한때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의 그 세련된 이기심마저 그리워진다.
“할 일이 있는데요.”
그 역시 목청을 키운다.
“할 일은 할 일이고 아무튼지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녀. 저녁에 오라고.”
이곳에서는 도무지 거절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돼지를 잡았으니 술이나 한잔하자든가, 제사 음식을 나눠먹자든가 하는 말을 의례적인 초대로 생각해서 두어번 참석하지 않았다가 그는 이장에게 점잖은 훈계를 들었다. 사람이 그렇게 모나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점심은 이장 집에서 먹어야 할 모양이다. 혼자 사는 처지에 한끼 해결하게 된 것은 고마우나 몇시간 붙잡혀 되지도 않는 이런저런 얘기에 맞장구칠 생각을 하니 골머리가 지끈거린다. 한창 바쁜 철이니 식사만으로 끝나길 기도할 밖에. 그러나 굳이 밥 먹자고 부르는 걸 보니 무슨 날일 테고, 아무래도 일찍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낮에는 저놈의 뽕짝 소리에 원고 쓰기 글렀고 밤에는 이장 덕에 원고 쓰기 글렀고 이래저래 일하기는 그른 날이다. 하기야 이사 온 이래 맘 편히 일에 몰두해본 적이 없다. 고작 오십여호 남짓한 마을에 무슨 일은 그리 많고 사람들은 왜 또 그리 오지랖이 넓은지, 이장이 새 김치 담갔다며 들고 와 그걸 안주 삼아 막걸리 몇잔 먹고 돌아가면 옆집 김씨가 애호박이 벌써 컸다며 호박전을 들고 찾아왔고, 고추모종이 남았으니 가져가라 고구마가 잘됐으니 가져가라, 가져가라는 것도 많았으며, 이장에게 얻은 작은 텃밭에 들깨가 너무 배게 심어졌네, 오이 지줏대를 세워야 하네, 가지가 세었으니 빨리 따야 하네, 참견도 가지가지로 많았다. 마구잡이로 침입하는 것은 날벌레만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이 행해지는 그놈의 친절 때문에 오늘 밤도 일을 접어야 할 모양이다.
하늘 아래 인간들이 걱정과 시름으로 머리를 쥐어뜯든 가슴을 쥐어뜯든 태양은 점점 높이 솟는다. 오월 초인데도 볕이 뜨겁다. 일분 일초도 쉬지 않는 황씨의 라디오 정보에 따르면 오늘 대구는 이십구도까지 치솟았다. 사람만 도리를 잃은 게 아니다. 하늘도 도리를 잃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당장은 제발 저놈의 뽕짝 소리만 사라져도 한숨 돌릴 것 같다.
그는 하릴없이 짜증스러운 걸음으로 마당을 서성인다. 세상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만큼 속 터지는 일도 없다. 황씨를 대면할 때마다 그는 자기를 향해 원고를 날렸던, 파도타기 하듯 잘도 시류를 타던 데스크가 그리울 지경이다. 이사한 직후, 집들이 삼아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판인데 새 집을 눈에 주워담을 듯 샅샅이 훑어보던 황씨 아버지가 슬몃 입을 연 게 황씨 부자와의 악연의 시작이었다.
“제대로 하자면 여기까지가 우리 땅인데……”
황씨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은 그의 집 장미 울타리를 한참 넘어 서재 벽까지였다. 노친네의 주장이 맞다면 그의 집이 스무평은 족히 황씨네 땅을 침범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가 다음날 굳이 측량사를 부른 것은 남에게 땡전 한푼 빚지고 살지 못하는, 마누라의 표현에 따르자면 사람 되다 만 쫌팽이 기질 때문이었다. 황씨 아버지의 주장과 달리 땅을 침범한 것은 외려 황씨네였다.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그는 몇날며칠 골머리를 앓았다. 강산도 수차례 변할 세월이 흘렀건만 주변머리 없고 속 좁기로는 땅에 떨어진 오원짜리를 차마 줍지는 못하고 혹 남이 주워가면 어쩌나 싶어 흙으로 살짝 묻어놓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결국 폭우가 내린 다음날, 동전은 비에 쓸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일곱살이었던가 여덟살이었던가, 그는 제 것도 아니었던 오원이 안타까워 끝내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사내자식이 이렇게 심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거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한숨이 떠오른 순간 그는 씩씩하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장 황씨네로 향할 배짱은 없었다. 그는 부엌에 들러 막걸리로 할까 소주로 할까 맥주로 할까 몇번이나 이 병 저 병 옮겨 잡았다가 결국 맥주 두병을 집어들었다. 안주가 없을까봐 오징어와 땅콩도 잊지 않았다. 그보다 맥주를 더 반기는 황씨 아버지와 술을 다 비운 후에야 그는 쭈뼛쭈뼛 용건을 꺼냈다.
“저, 어르신. 며칠 전에 측량기사 부른 거 보셨지요? 측량해보니, 여기까지가 저희 땅이랍니다.”
그는 사람 사는 집보다 으리으리한 개집 문을 가리켰다. 장미 울타리로부터 여남은 뼘 떨어진 자리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씨 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여! 살다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구먼! 우리 아버지 때부텀 당신네 벽까지가 우리 땅이여! 측량? 아나 측량.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거지! 요씨, 한번 해보드라고! 우리 아들이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아?”
경찰 나부랭이겠지, 어디 공권력을 행사하기만 해봐라, 빈정이 상하다 말고 그는 이어진 황씨 아버지 말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 아들이 읍내서 전기 기술자야 이 사람아!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알아? 우리 아들이 오기만 해보라지!”
황씨 아버지는 문살 비틀어진 문을 부서져라 쾅 닫고 들어갔다. 낡은 흙벽에서 흙이 부스스 한줌이나 떨어져 흩날렸다. 전기 기술자가 떼돈 번다는 말도 금시초문이요, 경찰도 아닌 전기 기술자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하자는 것일 뿐 땅을 돌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난데없는 선전포고라니, 그로서는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어르신 말대로 우리 벽까지가 어르신네 땅일 수도 있고 해서 측량을 해본 겁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사실을 알려드린 것뿐이지 뭘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살던 대로 살면 됩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듣게 몇번이나 설명했지만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좀이 슬어 구멍 숭숭 뚫린 마루 기둥에나 기대 앉았다가 별 수 없이 돌아서야 했다.
다음날 그는 난데없는 망치 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이 푸르스름한 걸 보니 막 여명이 밝아오는 참이었다. 시골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하다지만 꼭두새벽부터 웬 경우 없는 짓인가 짜증이 치밀었으나 몸을 움직일 염도 나지 않고 망치 소리가 댓번 만에 그쳤으므로 그는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서재 외벽 땅에 박힌 나무 기둥을 발견한 건 점심나절이었다. 보나마나 황씨 아버지 소행이 분명했다. 기둥을 박은 것보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침입했다는 사실이 그의 화를 돋웠다. 꼭지가 돈 그는 며칠 전 아는 이가 사온 케이크 상자에 묶여 있던 빨간 리본을 집어들고 황씨네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집은 비어 있었다. 꼬리를 흔들어대는 개를 본 체 만 체 그는 개집 위에 빨간 리본을 묶었다. 영역 표시하는 개새끼도 아니고 살 만큼 산 인간이 대체 뭐하는 짓인가 일순간 뜨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밀리기 시작하면 이 마을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자고로 돼먹지 않은 종자들은 말없이 받아줄수록 더 그악을 부리는 법이었다. 게다가 제 땅도 아닌 것을 제 땅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는, 저 양심의 실종을 그는 도무지 참아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낯선 사내가 노크도 없이 보무당당하게 그의 서재로 침입했다. 원고에 집중하느라 노크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난데없이 벌컥 문이 열리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원도 밝히지 않은 채 제 집인 듯 턱 하니 아랫목에 자리잡은 사내는 대낮부터 한잔 걸쳤는지 불콰한 얼굴로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말은 없었으나 누르튀튀한 눈자위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적의였다. 누구냐, 무슨 일로 왔느냐, 거듭 물어도 가타부타 말이 없던 사내는 한참 만에야 뜬금없는 말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개 봤지? 그게 도베르만 순종이야.”
시골로 이사 가면 개를 키워볼까 싶어 한동안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름도 촌스런 옆집 검둥이가 제법 족보 있는 도베르만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사내가 읍내서 전기 기술자로 떼돈 벌고 있다는 황씨임을 알아차렸다. 순종 도베르만이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와 똥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인지, 그는 하마터면 해묵은 호기심을 불쑥 드러낼 뻔했다. 희번덕거리는 황씨의 눈자위가 주책없는 그의 호기심을 겨우 가라앉혔다.
“도베르만 순종이라 내가 휘파람만 불면 달려올걸. 그놈이 일단 물었다 하면 절대 놓는 법이 없거든.”
그냥 웃어넘겼으면 될 걸, 무시당하고는 못 사는 좁쌀만한 자존심이 그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의 아랫도리처럼 불끈, 일어서고야 말았다. 코미디에 가까운 협박 때문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그만의 공간을 침입한 데 대한, 그만큼이나 자신을 우습게 본 데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씨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날따라 경운기 한대 지나가지 않아 한낮의 적요가 마을을 감돌고 있었다. 일분, 이분, 삼분, 참새만 날아와도 사납게 짖던 검둥이가 그날따라 조용했다. 오분이 지났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황씨가 처음보다 더 크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드디어 컹컹, 검둥이가 짖었다. 순간 그는 당황했다. 정말로 검둥이가 다리라도 물고 늘어지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부디 광견병 예방주사나 맞혔기를 그는 기도했다. 황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찰나, 짹짹 참새가 우짖었다. 다시 마을은 정적에 휩싸였다. 검둥이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황씨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씨발놈의 개새끼!”
잠시 후 숨이 넘어갈 듯한 검둥이의 비명이 한낮의 적요를 깨뜨렸다. 아무 죄 없는 검둥이의 처절한 비명을 그는 속수무책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족보 있는 도베르만이 저녁 밥상 위의 탕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네시, 그는 요란한 경운기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경운기 소음은 삼십분이 지나도록 멀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잠옷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경운기가 멈춰서 있었다. 시동이 켜진 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 보니 황씨네 경운기였다. 잠옷 바람으로 황씨네로 달려갔다. 몇번 문을 두드렸지만 전날 죽도록 두드려 맞은 검둥이만 낑낑거릴 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황씨가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에 솟은 뒤였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마당을 서성거리던 그가 황씨를 불러 세웠다.
“새벽부터 남의 집 앞에 경운기 시동을 켜놓으면 어떡합니까?”
“집에 두고 온 게 있어서 들렀다 깜빡 잠이 든 걸 어쩌라고?”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되레 큰소리였다. 빈정 좀 상했다고 잠을 못 잤는지 혹은 난생처음 부지런을 떨며 일어났는지, 아무튼 새벽 댓바람에 몸을 일으켜 남의 집 앞에 경운기 시동을 걸어두는 황씨의 심리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묘한 공포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는 황씨의 말을 받아치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네시, 경운기 소리가 또다시 그의 잠을 깨웠다. 신새벽의 신경전은 일주일이나 계속되었다. 견디다 못한 그가 일주일 만에 짐을 꾸려 떠나지 않았다면 몇달이고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원생활은 그만의 꿈이 아니었다. 천생 여자인 아내는 반질반질한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장독대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땅을 계약한 날 아내는 자기가 손수 가꾼 무농약 콩으로 메주를 쑤고, 그 메주로 고추장 된장을 담가 친구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몇시간 뒤에는 그걸 돈벌이 삼아도 쏠쏠하겠다, 가당찮은 사업계획까지 완성했었다. 막내만 대학에 입학하면 자기도 아예 시골로 옮기겠다던 아내는 이장이 빌려준 텃밭을 일구던 첫날, 한시간 만에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비명을 선보인 후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생명을 품은 땅’이라는 표현은 상징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지렁이 외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평생 본 적도 없는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나왔다. 땅이 품은 것은 추상의 생명이 아니라 실체의 생명이었다. 이름 모를 생명들의 습격 앞에서 아내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걸 몇차례 비아냥거린 바 있었다.
“왜? 자기도 역시 나약한 도시사람인 걸 이제야 확인했나 보지?”
아내는 그의 짐을 받아들며 그렇게 복수의 화살을 날렸다. 그 역시 자기처럼 항복했다고 생각한 아내는 집 팔 생각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그는 일년 가까이 원형탈모를 앓아가며 완성한 집을 쉽사리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고작 황씨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묘한 자존심도 한몫했다.
한달 만에 그가 돌아왔을 때, 장미 울타리가 뿌리째 뽑혀 아무데나 던져져 있었다. 말없이 참고 지나기에는 분이 삭여지질 않았다. 그는 또다시 맥주 몇병을 들고 황씨네를 찾아갔다. 황씨 부자는 보이지 않았고, 함안댁이 마루에 앉아 눈물을 찍고 있었다. 함안댁은 그를 보자 눈물을 뚝 그치더니 다짜고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작가 선생. 우리 아들 좀 살려줘. 작가 선생은 대학도 나왔으니 판검사도 잘 알 것 아녀. 한마을 사람이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어서야 쓰겠는가.”
시시비비를 가리러 왔던 그는 난데없는 청탁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가만 듣고 보니 청탁도 아니었다. 이건 숫제 도와주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라는 협박이었다. 내 울타리나 돌려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그는 함안댁의 나이와 상황을 고려해 겨우 삼켰다. 어찌됐든 급한 상황이기는 한 듯했다. 황씨가 동네 뒷산에서 허가도 받지 않은 엽총으로 사냥을 하다가 경찰을 쏘고 입건된 모양이었다. 울타리는 울타리요, 애끊는 모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는 변호사를 꼬여 무료변론을 맡긴 뒤, 동네 사람들과 함께 탄원서를 작성했다. 경찰과 실랑이를 하던 끝에 조준해서 쏜 터라 평소 품행이 방정했다든가 하는 따위의 말은 통할 리 없었다. 변호사의 충고대로 그는 황씨가 평소 감정조절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늙은 부모와 어린 딸 둘을 부양하고 있으니 정상을 참작해달라는 내용으로 탄원서를 작성했다. 덕분에 교도소에 수감되는 대신 보호치료를 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황씨의 교도소 수감을 막기 위해 그는 한달 가까이 할 일도 제쳐둔 채 동분서주했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담장을 없앤 인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울화가 치밀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선행이 황씨네와의 불화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쥐꼬리보다는 굵직한 희망도 없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황씨가 집으로 돌아온 바로 그날 막을 내렸다. 술에 만취한 황씨가 찾아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자기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느냐며 한바탕 소동을 피웠던 것이다. 물에 빠진 놈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는 옛말도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했다. 전원생활이고 뭐고 오만 정이 떨어졌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집을 떠났다. 집을 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도록 집은 팔리지 않았다. 두엇 보러 온 사람이 있었지만 황씨 부자가 이 집 사려거든 자기네 땅을 도로 물려야 하고, 그러려면 집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전원생활의 꿈은 팔아치울 수도 살아낼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꼴이 되고 말았다.
봉고차 한대가 대문 앞에서 멈춘다. 드디어 엠피쓰리가 도착한 것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는 상자를 열어 꼼꼼히 사용방법을 숙지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더니 꼭 그짝이다. 그는 뇌물을 들고 뒤안으로 간다. 에라 모르겠다 질끈 눈을 감고 라디오를 끈다. 황씨의 사나운 눈매가 그를 향한다. 황씨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지기 전에 그는 얼른 엠피쓰리를 내민다.
“이게 뭐요?”
“혼자서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최신형 기계예요. 누가 선물로 줬는데 나는 이미 있어서 혹 황선생이 쓸까 하고……”
솔깃한 눈치다. 그는 행여 황씨 마음이 바뀔세라 재빨리 사용법을 알려주고 이어폰을 황씨 귀에 꽂는다.
“쥑이는데!”
이어폰을 꽂은 황씨는 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버럭 고함을 지른다. 황씨가 그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다. 삼년 만에 처음 보는 웃음과 함께 비로소 시골마을은 시골다운 고요에 잠긴다.
나흘 만에 그는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 화면 위로 어른거리는 황씨의 검붉은 웃음을 지우고 그는 일에 몰두한다. 황씨의 웃음은 쉽게 잊힌다. 차츰 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이 속도대로라면 기한 안에 원고를 넘길 수 있다. 석장쯤 끝낸 원고를 다시 읽기 시작한 순간, 사랑밖엔 난 몰라, 간드러진 목소리가 벽을 울린다. 장미 울타리가 뽑혀나간 이후 한번도 열린 적 없는 두꺼운 커튼이 진동하듯 부르르 몸을 떤다. 달빛을 보기 위해 뚫어놓은 통유리창으로 달빛은커녕 햇빛조차 투과시킨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이어지는 뽕짝의 리듬 사이사이 오만가지 추측이 머리를 스친다. 결론은 배터리다.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지 않은 게 실수다. 충전기까지 구입했어야 하는데 생각이 짧았다. 충전기를 사려면 차로 삼십분 거리의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도 오후 내내 저 소음을 견디는 것보다는 낫다. 집을 뒤흔드는 노랫가락 사이로 그는 귀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엠피쓰리는 어쩌구요?”
“씨발 귓구멍이 아파서 못 듣겠어!”
황씨의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하다. 말문이 막힌다. 차라리 배터리 문제였다면 해결할 방법이라도 있으련만 귓구멍이 아파서 못 듣겠다는 데는 답도 없다. 그러면서도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눈치다. 칠만원만 날린 셈이다. 구만 오천원짜리로 할까 칠만원짜리로 할까 세시간이나 고민한 끝에 싼 걸로 결정하기를 천만다행이다.
두시간째 커서는 사 페이지 첫줄에 멈춰 있다. 흘러간 트로트 프로그램인지 이번에는 배호에 이미자에 은방울자매가 이어진다. 어머니는 일할 때마다 배호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노래도 최대 볼륨으로 들으면 소음이 된다. 술이라도 하지 않고는 도무지 분을 삭일 수가 없다. 맥주병을 따던 그는 쟁반에 술과 안주를 담는다. 저놈의 소음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시원하게 한잔하시죠?”
핏대까지 세우며 외친 후에야 황씨는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끄기를 바랐으나 귓청을 울리는 소리가 줄어든 것만으로도 벌렁거리던 심장이 제 박동을 찾는다. 황씨는 기다렸다는 듯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목울대가 요란하게 오르내린다. 뒤안 빼곡히 쌓여 있는 사람 키만한 목재를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뭘 만드는데요?”
“아, 개를 키워볼까 해서.”
황씨는 나이도 어린 게 여차하면 말끝을 잘라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반말이 문제가 아니다. 마을에서 서너 사람 개를 키워본 모양이지만 돈 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것도 몇년 전 얘기다. 갈수록 시골서도 보신탕을 덜 먹는다. 개 사육이 사양업종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건 번번이 돈 까먹는 짓만 골라하는 황씨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불길한 예감 탓이다.
“개를요?”
최대한 조심스레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황씨 기분을 건드렸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개 키울 만한 땅이 어디 있나보죠?”
“내가 땅이 어딨어? 집에서 키우는 거지.”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황씨 집을 그는 곁눈질로 살펴본다. 개장을 둘 곳이라고는, 황씨에게는 이미 자기 집일지도 모르는 그의 집 뒤안뿐이다. 서재 통유리창 바로 앞에 개장이 들어선다는 얘기다. 소음을 막을 길 없듯 개 사육 또한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이건 소음 이상이다. 시도 때도 없는 소음에 악취를 동반할 게 분명하다.
“몇마리나 키울 생각인데요?”
댓마리라면 어떻게든 참아보리라, 그는 벌써부터 각오를 다진다.
“대량생산을 해야 돈도 대량으로 들어올 것 아뇨?”
기껏 다잡은 굳은 각오가 와르르 무너진다.
“대량생산이라면……”
“한 백마리는 키워야 수지타산이 맞지.”
백마리 개가 무시로 짖어댄다? 눈앞이 노래진다. 내 몸 괴로운 것도 괴로운 것이지만 집 팔 길도 더욱 요원하다. 뒷집에서 개를 키우면 황씨가 굳이 어깃장을 놓지 않아도 이 집을 살 작자가 나설 리 없다.
“사료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무기력한 반격이나마 시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료 먹여서 뭐 남는 게 있나? 읍내 식당에 미리 다 말해놨지.”
짬밥을 먹이겠다는 건 음식 악취까지 덤으로 따라온다는 뜻이다. 장마철의 개 냄새, 한여름의 음식 썩는 냄새가 벌써부터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붙여온 혹부리 영감 신세다.
저녁 시간도 되기 전에 그는 일찌감치 이장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침 이장은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있다.
“술이나 한잔 주십시오.”
“할 일이 있다더니 왜? 황가놈 때문에 일이 안되나?”
교활한 늙은이.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자기들이라고 그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를 밤낮 흥겹게 들었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모른 척한 것에 또 화가 치민다. 그러나 지금은 이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라디오 소음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장 마누라가 서둘러 내온 소주를 맹물인 양 들이켠다.
“마을 한가운데서 개를 키워도 됩니까?”
“왜? 황가놈이 개를 키우겠대?”
그는 다시 소주를 들이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수돗가에서 상추를 씻던 이장 마누라가 냉큼 끼어든다.
“아유, 동네 한복판에서 개를 키우면 어떡해.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거지만 여름이면 파리가 득시글거릴 텐데……”
파리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첩첩산중이다. 이장 마누라라도 그의 편이 되어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시끄러! 그 집 사정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빨리 밥이나 차려.”
그 집 사정이야 그도 안다. 황씨가 보호치료를 받고 돌아온 직후 쌍둥이 딸 중 하나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른 딸 하나는 갈비뼈가 부러져 간을 찌르는 중상을 입고 다섯달이나 병원신세를 졌다. 그 와중에 손녀 잃은 함안댁이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떴고, 졸지에 마누라 잃고 손녀 잃은 황씨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술에 젖어 살았다. 돌볼 이 없는 손녀는 퇴원한 후 시설로 보내졌다. 그가 이사 온 삼년 사이 황씨집을 찾아온 운명은 가혹하다 해도 이토록 가혹할까 싶을 정도였다. 측은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혹한 운명에 한풀이라도 하듯 그를 향해 쏟아지는 행패를 감당하다 보면 측은지심은 어느새 분노로 변하곤 했다.
“작가 선생이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술집 색시긴 해도 황가놈이 새장가 들어 이제 겨우 살아보겠다는데 그걸 어찌 막겠나. 생각하면 안됐잖아. 황가놈, 가진 것이라곤 달랑 붕알 두쪽뿐이야.”
“집 있잖아요?”
황씨네 집은 삼백평 남짓 되었다. 그가 이사 온 후 땅값이 제법 뛰었으니 적어도 일억 오천은 넘게 받을 터였다. 집을 팔아 읍내에 작은 방이라도 전세 얻고 남은 돈으로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싶었다. 황씨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 집 팔린 게 언젠데.”
체면이고 뭐고 땅바닥에 내던진 삼년간의 전쟁이, 있지도 않은 것에 목숨을 건 헛짓이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신기루로 비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사막의 표류자라도 된 느낌이다. 남의 땅에 목숨 건 그 속내를 그는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다.
“이 동네,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 몇 안돼. 땅값 뛰기 전에 서울 사람들이 우 몰려와 몇푼 더 얹어주니까 죄 팔아치웠지. 자기 집 팔아먹고 지금 다 공짜로 사는 거야. 이 동네만 그런 것도 아니야. 서울 근교 다 그럴걸.”
그는 안주도 없이 연거푸 술잔을 비운다. 남의 땅 지키려고 자기를 원수 삼은 황씨도, 그걸 알면서 지금까지 입 꾹 다문 동네사람들도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연한 불륜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수십년 이어온 당사자들이나 동네사람들 또한 이해되지 않기로는 마찬가지다.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자들이다.
“서로 사정 봐주며 살아야지. 안 그래, 작가 선생?”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오지랖 넓은 것 또한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 땅을 닮아 넉넉한 품성을 가졌거든 없는 설움을 애먼 남에게 풀지 말든가, 마누라 동생을 건드리지 말든가. 기본적인 예의도 윤리도 없으면서 웬 돼먹지 않은 훈계란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뭔가 억울하다. 내 사정은 누가 봐주나.
선명한 초승달이 밤길을 밝힌다. 어둡지만 눈여겨보면 보일 건 다 보인다. 그는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걷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쉬일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어쩐지 풀죽은 어린아이의 노랫가락이 자박자박 골목길을 적신다.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에 노랫가락이 뚝 그친다. 야 이 개 같은 년아. 술 갖고 와! 보나마나 황씨다. 개집이 다 지어지면 술 대신 개에게라도 마음을 붙일 수 있을까? 비 젖은 개 냄새와 짬밥 썩는 악취와 들끓는 파리떼가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습격한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눈치를 보듯 속삭이는 노랫가락이 다시 이어진다. 초승달이 말간 눈으로 마을을 굽어본다. 마을은 꿈인 듯 달빛에 젖어 있다. 전원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