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학초점

 

‘비틀’거리면서 ‘꿈틀’거리는, 여기

한창훈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

 

 

정혜경 鄭惠瓊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2000년대 가족서사에 나타난 다문화주의의 딜레마」 「이 시대의 아이콘‘청소년’(을 위한)문학의 딜레마」 등이 있음. kornovel21@hanmail.net

 

 

인공낙원 뒷골목의 잿빛 일상을 살아가는 왜소한 인물들이 황사처럼 최근 소설을 뒤덮고 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간신히 이 시대를 증언할 때, 섬과 바다의 현장에서 벌이는 작가 한창훈(韓昌勳)의 문학적 존재증명은 분명 신선한 데가 있다.

최근 작가들이 주로 멀티미디어의 문화적 세례 속에서 도시적 세대감각을 펼치는 데 반해, 여수 출신 한창훈이 실감나는 생활감각으로 그려내는 섬사람, 뱃사람들의 삶은 쏠림현상을 보여주는 2000년대 문학의 빈 곳을 튼실하게 메워주고 있다. 독자에게 이번 소설집은 마치 세월이 가도 변함 없는 연인의 든든한 눈길을 느끼게 한다. 많은 이들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 바삐 떠나도 누군가는 고집스럽게 한 세계를 지키며 기다려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을 작가 한창훈이 기꺼이 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줄곧‘바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끝’으로 내몰린 자들의 삶을 질박한 남도 사투리에 실어 탐색해왔는데,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 2009) 역시 그의 뚝심을 잘 보여준다. 특징적인 점이라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를 인식하는‘태도’의 문제를 좀더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작가가 당당하게‘좋다’고 말하는‘여기’란 어떤 곳인가? 일단,‘여기’는 세상의‘끝’이다. 등단 이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던‘끝’의 이미지는 더이상 한 발을 내딛기 어려운 막다른 곳으로‘내몰린 자’들을 암시하며, 이것이 한창훈의 시대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생계를 의탁하던 배를 팔아버렸거나(「나는 여기가 좋다」) 낡을 대로 낡은 배 한척에 기대어 살아가고(「아버지와 아들」), 빚에 몰려 섬 다방으로 팔려가는가 하면(「올 라인 네코」),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실종된 남편(친구)을 찾지 못한 채 평생을 고생하다 죽음 가까이까지 왔다(「바람이 전하는 말」). 어디를 보아도 괴로움과 아픔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여기’에서 그들은 고통의 압력 때문에‘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각 작품마다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는 삶의 장면들을 예리하게 잡아 생생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나는 여기가 좋다’고 말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창훈의 인물들은 소설론에서 말하는 성격유형으로 보면 시종 변화가 없어 매우 평면적이다. 얼핏 보아 흥미를 끌지 않는, 답답해 보이는 인물들에서 그는 보기 드문 가치를 찾아낸다. 배 타는 것 말고는 해본 것이 없고, 세상 물정과 거리가 멀어 융통성이 없으며, 사람에 대한 정과 그리움 외에는 남은 것이 없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지금의 복잡하고‘멀티(multi)’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작가는 단순하고 촌스럽고 우직한 사람들의‘꿈틀’거리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적막한 시공간을 장면화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은 어장에서의 마지막 낚시(「나는 여기가 좋다」),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깊은 밤에 꺼내는 늙은 작부의 옛사랑 이야기(「밤눈」) 같은 장면은 소란스러운 세상을 정지시켜 극적인 서정성을 조성하면서‘비틀’거리는 그들을 살게 했던 그‘꿈틀’거림을 전경화(前景化)하고 있다.

“그때 입질이 왔고 그는 반사적으로 줄을 낚아챈다. 올라온 놈은 갈치. 다행히 물었다. 놈은 무지갯빛 몸뚱이를 거칠게 털다가 바닥에 눕는다. 등지느러미가 날렵하면서도 우아하게 물결을 탄다. 수정처럼 눈이 맑다. (…) 불빛 찬란하게 반사되는 놈을 보며 그는 잠깐 아득해진다. 이 맛에 어장을 해왔다. 이것으로 먹고살았고, 이것 때문에 빚을 졌다. 이것 때문에 즐거웠고 이것 때문에 불안했다.”(「나는 여기가 좋다」 19면) 한 생의 고통이 바다에서 나오지만 한창훈의 인물들은 이 바다의 살아 꿈틀거리는 힘을 결코 거부할 수 없다. 찬란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밤바다의 물고기만이 아니다. “노씹에서 정신없이 삐걱이던, 마치 불이라도 붙어 타오를 것 같던 놋좆, 하얗게 부서지며 치솟아오르던 파도, 짐승 아가리처럼 끝없이 밀려오던 너울,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노질을 하는 젊은 그, 낚시채비, 따로 젓노를 잡고 힘을 쓰던 친구, 청동의 파도 너머로 붉게 솟아오르던 아침해, 불뚝불뚝 불거지는 굵은 팔뚝, 격벽을 밟고 선, 부풀어오른 종아리.”(「바람이 전하는 말」 116면) 살아 있는 것에 매료된 자의 역동적인 육체, 그리고 그 광경에 대한 묘사 역시 살아 꿈틀거린다. 이렇게 바다와 하늘과 배와 어부가 한데 어울리는 장면의 신명나는 묘사는 이 작품집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동행’이 있다는 점이다. 서로 원망하면서도 곁을 지켜주는 부부 혹은 아버지와 아들, 보듬어두었던 옛사랑을 털어놓는 늙은 작부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남자, 먼저 간 사람을 그리며 손수 낚은 삼치를 나눠먹는 사람들은 모두 이 소설집의 핵심적 형상이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속내를 읽어 공감하며 함께한다. 이들의 동행은 무력한 개인이 자기 안에 유폐되는 것을 막아주며, 그 따뜻함의 감염력은 집단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뜨거움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 동행의 모띠프가 시끌벅적하게 유머를 동반하면서 낭만적으로 그려진 작품이 「올 라인 네코」다. 섬에 팔려온 다방아가씨 미정과 그녀를 따라다니며 구혼해온 순정파 섬 사내 용철이‘불타는 밤’을 보낸 일이 성매매가 아니라 사랑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데, 즉흥 입맞춤도 모자라 파출소에서 당장 고향집에 전화를 걸어 상견례를 하는 등 용철의 기발한 뚝심은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유발한다. 배가 출발할 때‘줄을 다 걷어내라’는 뜻의‘올 라인 네코’는‘옷을 다 벗으라’는 성적 욕망의 신호이며 또 온갖 족쇄를 다 걷어내고 함께하자는 뜻이 되는데, 이는 동행의 모띠프가 가장 발랄하게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틀거리는 삶을 아는 자가‘나는 여기가 좋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뱃심을 신뢰할 수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꿈틀거리는 자들의 동행은 번화한 도시의 삭막한 인간관계에 절망한 독자들을 가만히 일으켜 세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세계를 바다의 품으로 끌어안고 싶어하는 작가의 따뜻한 인간애이며, 이 낙천적 문학관은 최근 문단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태도가 동행의 서정적 순간을 포착하거나 신명나는 입담을 건져 올리는 대신, 자본주의적 씨스템에 둔감해지거나 인물간의 갈등을 축소하여 작품의 팽팽한 긴장감을 약화시키는 경향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작가에게 건배를 청한다. 더 치열한 산문정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