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과 현장
물리적 도시재개발에서 도시권으로
김용창 金容倉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지역정책론, 토지주택론. 저서로 『한국의 토지 주택정책』 『공간의 정치경제학』(공저), 논문으로 「신자유주의시대 토지공개념의 재정립 필요성」 등이 있음. kimyc@snu.ac.kr
1. ‘살’ 권리의 두가지 뜻
몇달도 지나지 않아 세인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지만 지난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사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에 야수적인 나라인지,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천박한 체제인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 5만 3441m2를 재개발하는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의 충돌로 농성자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여론과 검찰수사는 화재의 직접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공방으로만 몰아갔을 뿐, 잘살자고 한다는 도시개발 과정이 왜 이토록 야만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떠한 물음도 대답도 구하지 못한 채 서둘러 종결됐다.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 산다. 수많은 이들이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기에 도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살’권리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도시화는 자연의 산물인 토지를 상품으로 만들고, 토지이용의 산물로서 수많은 건물을 생산·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도시화는 사고팔고를 반복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일 뿐이다.
용산참사는 도시공간에서 이러한‘살’권리의 두 뜻이 충돌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용산 철거민들은 서울시장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다른 국민들과 똑같이 한표의 투표권을 가진 주권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이들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은 없지만 이 땅에서 꿈을 품고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가려 한 것 뿐”이라고 외친다.1 그러나 동시에 다른 쪽에는 폭력조직, 삼성물산 등 재벌계열 건설사, 지방자치단체, 지역토건세력이 한데 뒤엉켜 있다. 이들에게 도시는 가능한 빨리 새로운 이윤창출적 거래가 성립하는 공간으로 바꿔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구청, 폭력조직, 재벌건설사, 재개발조합 사이에 이른바‘용산의 사각동맹’이 필요했던 것이다.2
지식정보화의 첨병이고 민주공화국이라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도시(재)개발과정이 어째서 이토록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도시를 총체적으로 신상품화하는 도시재생
기존 도시공간을 변형하고 재편성하는 것을 가리켜 최근에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국가의 도시정책 역사와 지향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시장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 도시쇠퇴지역의 경제·사회·물리적 여건을 회생시키려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재개발·재정비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으나 쇠퇴지역의 종합적인 재활성화라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도시재생정책은 민영화, 규제완화, 기업주의적 도시정치, 민간부동산 주도 개발전략이라는 정책수단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계층적·인종적 갈등을 유발하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적 이익을 위한 강제수용, 거대자본과 금융자본 중심의 개발방식, 사회적 약자의 배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용어가 무엇이든 실무적으로는 재개발, 재건축, 주거환경개선, 재정비촉진지구 등 매우 다양한 용어와 법제가 관련되어 있다. 일반인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체계와 절차 및 기준을 구성해놓고, 현대 도시공간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매일같이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표 참조)
2006년 정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의한 주택재개발, 주택재건축, 도시환경정비, 주거환경개선, 「도시개발법」에 의한 도시개발, 「재래시장 육성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시장정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도시계획시설 등을 한데 묶어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도시재정비를 더욱 총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특별법을 근거로 과거 서울시 자체 조례로 시행하던 이른바 뉴타운사업을 포함해 재정비촉진지구를 새로이 지정하고, 기존 도시공간을 도시재생이라는 일반적인 범주 속에서 완전히 바꿔내는 제도적 토대를 구축했다.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얽어매놓은 법제와 각종 지구 지정으로 도시는 이제 새로운 공간상품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 과정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1973년부터 2003년까지 30년간 완료된 재개발구역 면적이 1007ha(305만평)인데 비해 2004년 기본계획에서 2010년을 목표로 확정한 재개발 예정구역은 1187ha(360만평)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2002년 도입해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뉴타운사업지구는 30년간 이루어진 재개발구역 면적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사실상 서울시 전역에 걸쳐 각종 도시정비사업이 벌어지는 셈이다.3
도심이나 낙후주거지, 저소득층 밀집지, 도시외곽을 가리지 않고 시행되는 이러한 광범위한 도시공간의 재생 또는 재정비는 곧 고도의 상품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에서는 이익의 수취 또는 전유 여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며, 특히 상대적 소득하락이나 박탈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불로소득의 수취라는 욕망의 전차에 올라타라고 사람들을 강요하고 있다. 때문에 이른바‘자본주의적’투자위험 개념마저 사라진 채 화려하고 매혹적인‘조감도’가 시선을 사로잡을 뿐 그 사회적·실체적 과정은 등한시되고 있다. 뒷날은 생각지도 않은 채 뉴타운 선거공약을 내거는 후보에게‘묻지 마’투표를 하고, 자기 집이 건축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곧 무너지게 되었다고‘경축’플래카드를 내걸며 만세를 부르는 기현상이 만연하는 것이다.
예컨대 2003년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지 5년 만에 계획안을 수립해 2009년 4월 주민공람을 실시한 용산구 한남 재정비촉진지구는 조감도식 공간상품화와 사회적 배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서울시는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낙후주거지가 한강, 남산과 어우러져 꿈의 주거지로 변모하며, 입체적 공간이용의 세계적 명소인 빠리 라데팡스가 서울의 중심 한남지구에서‘그라운드2.0’으로 재현된다!”고 선전하며 건축 및 경관계획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감도 마케팅을 놓고 우리는 정작 이 사업의 사회적·실체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지 않는다. 도시 전역에 걸쳐 전개되는 재정비 과정에서 설령 용산참사 같은 사태가 또다시 발생한다 해도 그건 남의 일이고 일과적 사건일 뿐이라고 외면할지 모른다.
3. 21세기 ‘원시적’ 자본축적과정인 도시재생
강탈에 의한 축적의 등장
과거 달동네로 대변되던 낙후지역의 재개발도 아니고 왜 현시점에서 이처럼 도시재정비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는가? 그 설명의 실마리를 맑스의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 성립기의 원시적 축적의 특징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지리 내에서 강력하게 존재한다. 다만 끊임없는 자본순환에 필요한 축적토대를 새로이 구축하기 위해 그 형태와 대상을 바꾸어왔을 뿐이다. 자본주의 성립기에는 토지의 상품화를 통해 토지에서 농민을 분리하고, 노동력의 상품화 조건을 창출하며, 다양한 전근대적 사회제도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부합하는 일반적 조건으로 전환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체제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축적조건을 지구적 규모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이러한 점에 주목해 현대 도시의 야만적인 변모과정을 설명한다. 자본축적 토대를 대대적으로 재구축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저평가된 지역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공간상품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초국적 자본주의시대에 전개되는 이러한 현상을 묘사하는 데‘원시적’이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다며‘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4
하비에 따르면 강탈에 의한 축적은 기본적으로 네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① 새로운 이윤창출 영역을 포섭하여 축적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민영화와 상품화, ② 인수합병, 파생금융상품, 주식상장 등 자산가치의 재분배와 잠식을 위한 금융화, ③ 경제적 부를 빈국에서 부국으로 이전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위기관리와 조작, ④ 복지국가 씨스템을 개혁하고 상위계급에서 하위계급으로의 부의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재분배가 그것이다. 하비는‘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이 이같은 강탈에 의한 축적체제의 정비라고 본다.5
그의 사고를 확장해보면 현재 한국뿐 아니라 주요 선진자본주의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되는 도시재정비 또는 도시재생은 이러한 강탈에 의한 축적체제를 구축하는 데 안성맞춤의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21세기의 도시화 과정에 걸맞지 않은, 또다른 의미에서 아주‘원시적’인 축적과정인 것이다.
자본의 강제에 의한 도시 생애주기 단축
자본주의와 도시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본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공간(생산)양식 없이는 존재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 현재 전개되는 도시재생은 도시의 생애주기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단계로서 일종의‘회춘기’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산업자본주의 단계에 부응하는 공간으로서 공업도시가 쇠퇴하고, 초국적 자본주의 단계에 부응하는 공간으로서 소비와 초국적 통제 및 네트워크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다.
애당초 도시는 잉여생산물의 지리적·사회적 집중을 통해 출현했다. 일군의 장소와 사람으로부터 잉여를 추출하여 이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도시화는 늘 계급적 현상이자 공간적 현상이었으며, 이는 자본주의체제 성립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체제는 잉여가치의 생산과 시장에서의 실현이라는 과정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해야 존속할 수 있다. 그 순환이 원활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아파트 미분양 같은 상품재고의 누적, 다음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유휴 화폐자본의 누적(과잉유동성), 노동력의 부족이나 실업의 만연 등 다양한 현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자본주의 위기국면에서 잉여자본을 흡수하여 투자처를 마련하는 동시에 다음 단계의 원활한 축적토대를 만들게 하는 것이 새로운 공간의 건설이다. 이같은 과정을 가리켜 위기의 공간적 조정(spatial fix) 또는 시공간적 조정(spatio-temporal fixes)이라고 한다.6
맑스가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말한 것처럼 “자본은 한걸음에 거래와 교환에 대한 모든 공간적 장벽을 없애고 전지구를 자신의 시장으로 정복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또다른 측면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시간으로 극복하려 노력한다. 즉 서로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는 데 소모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7 자본은 본성상 시간에 의한 공간 극복으로 모든 공간적 장벽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듦으로써만 가능하기에 결국 또다른 장벽과 차별의 생산으로 귀결될 뿐이다.
이처럼 공간의 생산과 극복은 자본의 숙명이다. 그런데 그 토대가 되는 토지소유는 본시 자본과는 앙숙의 관계였다. 토지소유자는 아무 노력도 없이 지대(地代)의 형태로 잉여가치의 일부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일찍이 지대소득계층을 사회의 기생충 같은 존재로 여겼고, 대다수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뿐 아니라 현대 주류경제학의 시조 발라(M.E. Wallas)도 토지국유화를 주창했다. 자본과 토지소유의 이러한 모순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은 스스로 토지소유자가 되고자, 즉 지대, 이윤, 이자의 구별이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오늘날 거대자본은 독자적으로 도시공간을 생산하여 이윤과 더불어 독점지대를 전유하려고 하며, 경쟁적으로 거대 개발사업(mega-project)에 뛰어들고 있다.8
이러한 경향은 그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개발금융의 증권화라는 혁신적인 금융기법을 도입하고 자본시장과 공간시장을 통합함으로써 심화되고 있다.9 생산자본에 더해 금융자본까지 가세하면서 부동산 부문으로 자본유입이 한층 증가하고 있다. 투기적 금융자본과 각종 펀드는 속성상 생산적 필요와 무관하게 모든 장소를 대상으로 단기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도시개발에 집중되는 금융자본은 개발이윤이 가능한 모든 장소를 철저히 탐색하여 새로운 공간상품 생산을 강제하고, 도시의 생애주기를 더욱 단축시킨다. 지역주민이나 영세사업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쓸 만한 건물이고 사회 전체로 보아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공간이라도, 금융자본 및 이와 결합한 거대 개발자본에는 한시가 급한 새로운 이윤추구 대상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1991년 이래 부동산펀드로의 자본유입은 2250억 달러에 이르며, 지난 몇년 동안 다른 투자수단과 비교했을 때 부동산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의 수익률도 성과가 좋았다. 2005~2006년 조성된 펀드의 평균규모는 8억 4400만 달러로서 2001~2004년보다 79.5% 증가했다.10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관련제도를 도입한 이래 중도 상환된 펀드를 포함하여 2007년 기준으로 부동산펀드는 396개, 금액으로는 13조 8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 9월말 현재 전체금융권(저축은행 포함)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은 2443개 사업장, 총 81조 7000억원 규모이다.11
이처럼 막대한 금융자본의 이윤을 충족하려면 도시공간을 끊임없이 재정비·재개발함으로써 도시 생애주기를 강제로 단축하고 부동산거래 차익을 더욱 크게 발생시키는 바벨탑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그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미국 주택금융에서 발발한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보여주듯 부동산 부문의 과도한 금융화는 엄청난 파국을 불러오며 그 피해는 대처능력이 약한 사회적·공간적 변방으로 급속히 파급된다. IMF가 1970년부터 최근까지 OECD 15개국의 자산가격 변동을 조사한 결과, 주식시장은 24번의 호황 가운데 4번의 가격폭락이 발생하여 경험적 버블붕괴 확률이 17%인 데 반해, 부동산시장은 20번의 호황 가운데 11번의 붕괴가 발생하여 경험적 확률은 55%에 달한다. 우리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자원낭비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4. 강탈적 도시재생의 저항이념으로서 ‘도시권’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와 도시화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를 겪었다. 하비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잉여자본과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세적 도시를 근대성의 도시로 전환시킨 오스망(G. Haussmann)의 빠리, 거대도시의 총체적 재충전(reengineering)을 통해 잉여자본을 흡수하려 했던 모지스(R. Moses)의 뉴욕에 이어 1990년대 이후 전개되는 금융혁신 기반의 지구적 부동산 경기순환 등을 들고 있다.12
그의 말대로 초국적 자본주의 도시화는 점차 지리적 규모를 확대하면서 잉여자본을 흡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의 도시는 쇼핑몰, 멀티플렉스, 박스스토어, 폐쇄적 고급주거단지(gated community), 소비주의, 투어리즘, 개인소유 중심의 윤리, 부동산가치 방어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동맹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도시의 실상과 이미지를 광범위하게 창출하고 있다.13
이처럼 도시변혁을 통한 잉여흡수는 공간 재구조화라는 거대한 한판 승부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자본축적을 위한 창조적 파괴는 공용수용권 같은 법치에 근거하든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든 간에 무자비하게 전개된다.14 결국 우리는‘갈등친화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도시화(도시재생)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고통받는 쪽은 빈민, 사회적 약자, 정치권력으로부터 주변화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도시화는 정치적 계급투쟁의 핵심무대이자 강탈에 의한 축적과 그에 저항하는 흐름이 맞붙는 거대한 충돌지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금융을 포함한 거대자본, 기업가주의적 지방정부, 부동산 개발업자가 구상하는 것과 다른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비는 또 하나의 인권범주로서‘도시권’(right to the city)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지구적 규모의 연대투쟁을 전개하자고 제안한다. 자본주의적 잉여가치 생산과 활용의 주요 통로가 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민주적 관리와 통제를 확립하는 것이 바로‘도시권’을 정초하는 길이라고 본다.
우리가 어떠한 도시를 바라고 있는가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적 관계, 자연관, 생활양식, 기술 및 미학적 가치가 무엇인지와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전체 도시화 과정을 통제하는 권리로서의 도시권은 도시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개별적인 자유를 넘어 우리 자신의 변혁에 대한 권리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변혁 여부는 자본주의적 도시화 과정의 틀을 바꾸기 위한 집단적 권력(collective power)의 행사에 달려 있는 까닭에 개인의 권리를 벗어난 공유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도시화를 제도화하고 이제껏 간과되어온 도시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도시화 과정의 민주화와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5. 도시화 과정의 민주적 통제전략
우리는 인권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명목상으로나마 이상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권신념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사적소유와 이윤추구가 다른 모든 가치에 으뜸패로 작용하고 있다.15
이러한 시대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개념으로서 하비의 도시권은 아직 선언적 차원이며 구체적인 실천수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변증법적 대립쌍을 이룰 수 없는 자본축적 논리와 영토(공간)의 논리에 근거하여‘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의사(擬似) 독립이론 범주를 추구하는 이론 구성상의 문제 때문에 개량주의적 전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받는다.16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 역시 축적위기 국면에서 경제적 공익이라는 미명하에‘조세에 굶주린 관료’와‘토지에 굶주린 개발업자’가 부정한 동맹(unholy alliances)을 형성하면서 전면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공목적이 아닌 사익을 위한 공용수용을 공공연히 시행하며, 앞서 살펴본 도시재생 관련 제도와 절차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인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통치기술적 합리성(governmentality)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시화 과정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구체적인 개념과 수단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은 개량주의라고 치부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하고 급박한 문제이다. 전면적인 도시재생사업이 일상화되는 와중에 죽음마저 부르는 도시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17
그러므로 도시화 과정에서는 사회경제적 삶의 열망을 촉진하고 구성원의 잠재력을 충분하게 발휘할 수 있는 재생씨스템 구축 담론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빈곤이 집중돼 있거나 발전이 정체된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개인과 지역사회 모두 종속에서 독립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쇠퇴지역에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고, 지역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과정에 권한을 갖게 하며, 도시재생이 창출하는 경제적 기회의 잇점을 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삶의 열망과 잠재력의 실현은 공·사적 이해당사자 사이에서 변혁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사명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__
- 조혜원 외 『여기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삶이 보이는 창 2009. 이 책은 용산지역을 비롯한 철거민들의 구술집으로, 도시재개발의 참담함을 잘 보여준다.↩
- 「용산커넥션: 용산의 사각동맹」, 『한겨레 21』 2009.2.23, 14~19면.↩
- 홍인옥 「우리나라 도시재개발사업의 성격과 문제점」,‘용산 철거민 참사를 계기로 본 도시재개발 사업의 문제점과 대안’토론회(2009.2.4) 자료집 4면.↩
- David Harvey, The New Imperialism, Oxford Univ. Press 2003, 144면. (국역본은 최병두 옮김, 『신제국주의』, 한울 2005.)↩
- 최병두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종말?: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를 중심으로」, 중앙대 콜로키움 발제문, 2009, 5~7면. 이 논문은 현대자본주의의 변화를 공간유물론적으로 해석하려는 하비의 이론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
- David Harvey, “The Urban Process under Capitalism: a Framework for 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2 (1), 1978, 101~31면; Bob Jessop, State Power: A Strategic-Relational Approach, Polity 2008, 178~97면.↩
- Karl Marx,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intage Books 1973, 522~24, 533~34면.↩
- 졸고 「토지지대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 『감정평가논집』 제8집, 한국감정평가업협회 1998, 115~40면.↩
-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졸고 「공간-자본시장의 통합과 도시개발금융의 다양화 방법」, 『지리학논총』 제45호,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2005, 239~58면.↩
- Ernst & Young, Market Outlook: Trends in the Real Estate Private Equity Industry, 2007.↩
- 제로인 펀드평가팀 「부동산 펀드 현황과 전망」, 2007;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금융권 PF대출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 및 대응방안」, 2009.↩
- 맑스의 프랑스혁명 3부작을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하비의 빠리에 대한 분석으로 David Harvey, Paris, Capital of Modernity, Routledge 2003 (국역본은 김병화 옮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2005). 뉴욕의 도시계획 과정에 대해서는 Robert Caro, 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Vintage 1973.↩
- David Harvey, “The Right to the City”, New Left Review 2008년 9-10월호, 23~40면. 본고에서 이하의 서술은 이 논문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그가 오랫동안 진행해온 자본론 강독 및 강연자료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davidharvey.org) 참조.↩
- 야만적 도시화 과정의 한 사례로 하비는 1990년대의 서울을 들고 있다. 건설회사와 개발업자들이 달동네의 근린지역을 침탈하고자 스모형의 레슬러를 닮은 폭력단(goon squad)을 고용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 David Harvey, 앞의 글 23면.↩
- 김공회 「데이비드 하비의 제국주의론 비판」, 『마르크스주의연구』 2006년 상반기호 137~62면.↩
- 졸고 「사적이익을 위한 공용수용제도 확대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학술단체협의회 창립 20주년 기념 연합심포지엄 자료집 2008; Nikolas Rose, Pat O’Malley and Mariana Valverde, “Governmentality”,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vol. 2, 2006, 83~104면. 보수주의적 시각에서 사익을 위한 도시재생사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는 Dana Berliner, Government Theft: The Top 10 Abuses of Eminent Domain, 1998-2002, The Castle Coalition 2002. The Castle Coalition, Redevelopment Wrecks: 20 Failed Projects Involving Eminent Domain Abuse, Arlington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