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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타이완 현대소설선 『흰 코 너구리』 『목어 소리』 한걸음더 2009
타이완문학, 혹은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고뇌
전형준 全炯俊
서울대 중문과 교수 janaura@snu.ac.kr
타이완문학에 대한 한국 출판계의 무관심은 최근 들어 현저해진 중국문학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저간의 사정은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바이지만, 이 현상을 우리는 문제적인 것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근대 진입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 전개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타이완이고, 그렇기 때문에 타이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 자체로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 될 수 있다. 타이완문학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의 자기반성에 대한 무관심 내지 심지어 기피와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타이완문학이 한국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에 출판된 황 춘밍(黃春明) 소설선 『사요나라 짜이지엔』(여기에 실린 단편소설 「두 페인트공」으로부터 연우무대의 연극 「칠수와 만수」, 장선우 감독의 영화 「칠수와 만수」가 태어났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 나온 중국현대문학전집 중 자오 쯔판(趙滋蕃)의 장편소설 『반하류사회』와 바이 시엔융(白先勇)의 장편소설 『타이베이 사람들』, 천 잉전(陳映眞) 외 10명의 중단편소설선 들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이로부터 진일보한 소개는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것들조차 절판된 후 더이상 재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두권의 타이완 현대소설선 『흰 코 너구리』와 『목어 소리』가 출간된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이완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현존하는 답은 다음 세가지다. ① 중국문학의 일부로서 변방문학 내지 지방문학이다(중국의 입장). ② 중국문학과 구별되되 중국문학과 더불어‘중국문학’을 이루는 분단문학이다(타이완 통일파의 입장). ③ 중국문학과 구별되는 별개의 민족문학 내지 국민문학이다(타이완 독립파의 입장). 왜 이러한지를 알려면 타이완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원래 타이완에는 한족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원주민이 살고 있었고, 명말 청초에 와서 한족의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진 뒤 청나라에 편입되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일본에 할양함으로써 타이완은 1945년까지 50년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정부가 타이완으로 건너왔고 이때 대륙으로부터 대규모의 인구이동이 이루어졌다. 전부터 타이완에 살고 있던 한족을 본성인(本省人)이라 부르고 새로 타이완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 부르는데, 국민당정부는 1949년부터 장장 38년간 계엄통치를 펼쳤다. 그러니 국민당정부의 독재는 본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외성인에 의한 식민지배로 보일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타이완의 역사가 위와 같은 세가지 답을 가능하게 해준 배경이다.
타이완문학은 식민지시대에는 대부분 일본어로 씌어졌다. 중국어로 씌어진 경우는 적었고, 원래 일본어로 쓴 것을 해방후에 중국어로 번역하여 다시 발표하기도 했다. 1949년 이후의 타이완문학은 50년대의 반공문학, 60년대의 모더니즘문학, 70년대의 향토문학이라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른바 타이완의‘본토성(本土性)’의 탐구는 이 향토문학에서 시작되었다. 『흰 코 너구리』의 서문을 쓴 타이완 작가 정 칭원(鄭淸文)의 설명처럼, 초기에는 국민당정부가 향토문학을 억압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향토문학이 강대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80년대에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당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변작가들이 들고 일어나 향토문학을 공격함으로써‘향토문학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논쟁은 오히려 향토문학을 더욱 융성하게 해주었으며, 타이완 본토의식의 사회적 성장과 더불어 타이완문학은 본토성의 탐구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한층 폭넓고 다양한 문학적 지평을 향해 나아갔다.
김상호 교수가 편역한 『목어 소리』는 라이 허(賴和)의 1925년작 「저울 한개」부터 종 자오정(鍾肇政)의 1978년작 「백로의 노래」까지 8편을 수록했고, 김양수 교수가 편역한 『흰 코 너구리』는 정 칭원의 1979년작 「흰 코 너구리」부터 차이 이쥔(蔡逸君)의 2001년작 「푸른 말」까지 7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15편의 소설은 20세기 타이완문학의 대표적 성과로 꼽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들임이 분명하지만, 그 분포가 타이완문학의 스펙트럼을 고르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작가 선정을 대체로 본성인 위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바이 시엔융이나 천 잉전 같은 작가들이 제외된 것이다(천 잉전은 대표적인 통일파 작가다). 그렇다면 편역자들은 타이완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세가지 답 중 세번째에 동의하는 입장에 서 있거나, 아니면 여기서 제외된 작가들을 근간 예정인 이 씨리즈의 다음 두권에서 다루려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예컨대 황 춘밍이 제외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황 춘밍은 향토문학의 대표적 작가이기 때문이다. 편역자들이 작가 선정의 기준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본성인 작가 위주로 구성했다고 해서 선정된 작품이 죄다 본토성을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보자면, 「내 친구 손목시계」 「푸른 말」 「나를 지휘하라」 등의 경우, 근대적 제도의 비인간성 내지 반인간성 비판, 현대사회 개인들의 정체성 위기 비판, 진실을 왜곡하는 권력관계와 그것의 일상화에 대한 비판이 주제이다. 본토성 문제가 핵심이 되고 있는 리 앙(李昻)의 2000년작 「정조대를 찬 마귀」의 경우도, 1979년의 반국민당 민주항쟁인‘미려도(美麗島) 사건’의 후일담 소설이지만 성적 억압의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인 것 너머의 실존적 고뇌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한편, 정 칭원의 1979년작 「흰 코 너구리」는 친일 협력자의 참회하는 삶을 서술하고 있는데(어느 면에서 한국 작가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를 연상시킨다), 그 서술은 동시에 민중 내부의 차별과 억압이라는 한층 근본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그러고 보면, 본성인/외성인이나 통일/독립의 문제는 타이완의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 특수성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삶의 보편적 차원을 보지 못하게 할 염려가 있지 않을까. 본토성의 문제와 이를테면 계급모순의 문제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가령 향토문학의 경우, 그것은 본토성의 탐구라는 한 측면을 지니면서 동시에 민중성의 탐구라는 다른 측면도 갖는다. 특수성의 지나친 강조는 혹시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정치성에 봉사하는 것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본성인의 원주민에 대한 관계는 외성인의 본성인에 대한 관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오히려 더 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본성인이든 외성인이든 원주민이든, 그들 중 대다수는 지금 현재 똑같은 타이완 민중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타이완문학은 바로 그 타이완 민중의 삶으로부터 생성되는 문학일 것이다. 그것이 지방문학이든 분단문학이든 민족문학이든 간에. 이런 의미의 타이완문학을 편역자들의 후속작업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