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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

 

사회적경제를 강화해야 할 세가지 이유

‘생활세계의 위기’를 넘어

 

 

노대명 魯大明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저서로 『자활정책론』 『민주화·세계화‘이후’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체제 모형을 찾아서』 『한국사회의 신빈곤』 등이 있음. dmno@kihasa.re.kr

 

 

1. 문제제기

 

한국사회는 지금 세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첫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내실화하지 못하고, 둘째, 건강한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며, 셋째, 생활세계 전반에서 박탈과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라는 점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대립할 뿐 좀처럼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개별사안마다 반복적으로 정치·사회적 갈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우리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의 약화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소통공간을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고 확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소통공간을 확대하는 방안의 하나로‘사회적경제’(Social Economy)1의 강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최근 우리사회가 경험하는‘생활세계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생활세계의 위기라 함은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선 빈곤층, 외환위기 이전보다 크게 심화된 소득불평등, 점차 증가하는 고용불안,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부담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에‘교육→노동→소득→소비’의 악순환 고리가 굳어져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학벌이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결정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임금과 고용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고,‘실업·저임금(저소득)·고용불안’이 소득격차를 확대시키고, 가구소득이 교육·주거 등 필수적 소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사회구조가 현세대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다음세대의 계층이동을 가로막고 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과 가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사교육비와 주거비 마련을 위해 과도한 노동을 감수해야 하고, 그래도 감당할 수 없다면 다른 지출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눔과 연대의 가치란 요원한 일이다. 대안교육을 생각하고, 새로운 주거개념을 정립하고, 나눔과 연대를 꿈꿀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기존 대책에서 벗어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나눔과 연대의 삶에 대한 체험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토대로 성장해왔던 사회적경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가진 일자리를 창출하고 써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생활세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소통공간을 확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

 

사회적경제의 개념 정의

우리에게 사회적경제는 다소 낯선 개념이다. 그리고 유사한 의미의 다른 말과 혼동하기도 쉽다. 예를 들면, 연대경제(Économie Solidaire), 제3쎅터(The Third Sector), 제3체계(The Third System)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다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사회적경제는 이미 우리사회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정무역(Fair Trade), 지역화폐(LETS), 생활협동조합 등의 활동영역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란 인간을 모든 관심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 자본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자본의 수익보다 일자리를 중시하고, 일자리를 통해 창출하는 사회적 연계를 중시한다.”3 물론 영리기업도 노동자를 존중하고 이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수익을 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자본에 따른 수익배분을 제한하는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들의 활동영역’을 지칭하며, 활동주체와 관련해서는‘협동조합(Co-operative), 공제조합(Mutuals), 시민단체(Association)의 활동영역’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4 그리고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 또한 이러한 조직에 포함된다.

사회적경제 조직에는 시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나 자원봉사단체 등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비영리민간단체(NPO) 등도 포함된다.5 하지만 사회적경제의 특징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조직에 있다 할 것이다. 이 조직들은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자리잡지 못한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영리기업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비영리민간단체는 세제상의 혜택을 받는 대신 수익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수익활동에 참여하면 영리기업과 동일한 세제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대안적 경제활동방식을 통해 연대의 가치를 실천하는 조직들을 영리기업과 다른 범주로 분류하고 독립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6

 

새로운 사회적경제의 출현

사회적경제가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들, 특히 협동조합은 침체일로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크게 세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회원제에 기초한 협동조합 등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은 투자규모 경쟁에서 영리기업과 대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산업화에 따른 노동수요 증가로 사회적경제 조직의 고용규모 및 회원규모가 빠르게 감소했다. 셋째,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구적 기능 또한 복지국가의 빠른 성장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복지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각 개인들은 사회적경제 조직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복지국가의 후퇴는 각국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했다. 탈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용위기, 복지국가 후퇴에 따른 공공써비스 민영화 등으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써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역주민의 고용과 삶의 질을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써비스로 무장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유기농식품, 환경친화적 산업, 공정무역 등의 가치가 급속히 상품화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쇄신을 앞당긴 측면이 있다.

‘새로운 사회적경제’(Nouvelle Économie Sociale)7는 그전의 전통적인 사회적경제와 몇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갖는다. 기존의 사회적경제가 민주적 의사결정과 수익배분 제한이라는 운영방식을 근간으로 한다면, 새로운 사회적경제는 고용창출과 사회연대라는 목적을 중시하고 있다.8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회원 중심의 폐쇄적 구조라면,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변화된 경제사회환경에서 정부나 다른 시민사회 주체들과 협력하는 개방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변화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 규모를 키우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취약계층을 위한 고용창출과 사회써비스 공급을 담당하는 각종 조직들이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 각국이 2005년경 사회적기업을 법제화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전까지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협동조합의 다른 이름처럼 간주되거나, 사회적 협동조합과 시민단체를 포함하는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일련의 법제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기업은 협동조합과 다른 법적 위상을 갖는 조직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9

미국에서 사회적기업이 성장하고 있는 배경은 유럽과는 상이하다. 미국의 사회적기업은 유럽처럼 사회적경제의 전통 위에서 쇄신된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영국처럼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1990년대 중반 정부의 보조금 중단으로 비영리민간단체가 고유목적사업을 수행하기 위해‘불가피하게’수익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었던 것이다.10

 

왜 지금 사회적경제인가

최근 서구 각국에서는 사회적경제를 표방한 다양한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시도들 또한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 협동조합과 시민단체의 한계를 넘어‘개방된 형태로’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경제 조직 또한 이처럼 경제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개입하는 조직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들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광의의 사회적경제 조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사회적경제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일찍이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리지 못해왔으며, 지금과 같이 극심한 불평등 또한 경험하지 못했다. 현재 유럽에는 수천만명의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과 소득에 의존적인 현재의 사회권을 그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는 연대경제라는 목표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11 이는 사회적경제가 고용위기 시대에 대안적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에서 보다 공고한 사회적 지지망을 형성하며, 위기에 처한 사회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책결정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목표로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3. 한국 사회적경제의 규모와 특성

 

사회적경제의 성장 환경

지금 우리사회의 경제사회 패러다임은‘선성장 후복지’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에 자원을 집중함에 따라 복지정책이 취약한‘복지 없는 성장모델’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취약계층 보호를 강화하는 부분적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패러다임으로는 개방된 경제환경하에서 심화되는 고용위기와 분배위기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고용불안의 증가, 소득격차의 확대, 기초소비영역에서의 박탈 심화 등의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분명하다.‘노동·소득·소비영역’에서 발생하는 박탈과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넘어 강력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현재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경쟁의 가치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의 탄생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상태를 지탱하며 위태로운 성장을 계속할지, 연대와 나눔의 정신에 기반한 새로운 발전모델을 구축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마련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것은 신뢰할 만한 대안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다 새로운 대안을 생성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의 부족 때문이다. 정당정치의 후진성은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고 정책화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시장세력 또한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양보의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 관료집단은 개발독재시기의 성장모델에 대한 경로의존성과 경직된 조직문화로 인해 시민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데 한계적이다.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또한 시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생각해볼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은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이것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현실화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정집단이 주도하는 씨나리오나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소통공간을 확산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이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경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의 강력한 견제기능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고용규모

한 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시민사회의 역량과 밀접히 관련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량은 그것이 전체 사회에서 차지하는 경제규모 또는 고용규모를 토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 내의 소통공간이 양적으로 얼마나 확대되어 있는가를 통해 그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 부문의 피고용자 및 자원봉사자 집단이 클수록, 이들이 다른 사회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사회적경제의 경제규모 및 고용규모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시민단체나 협동조합 등 특정 조직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있지만,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영향력을 확인할 종합적인 연구결과는 없다. 현상황에서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국민계정 자료를 토대로 경제규모를 추정하고, 별도의 고용자료를 활용하여 고용규모를 추정한 연구결과이다.

이 방식을 활용한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3년 현재 비영리민간부문이 총공급과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9%, 부가가치로는 1.3%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피고용자 수는 약 38만명으로, 전체 피고용자의 3.2%로 추정된다. 그러나 비영리민간부문의 경제규모 및 고용규모의 변화를 보면,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12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비영리민간부문에 미치는 영향력은 피고용자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13

한국 비영리민간부문의 피고용자 규모는 유럽 각국의 사회적경제 부문 피고용자 비중(6.4%)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14 물론 비영리민간부문과 사회적경제의 고용규모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사회적경제 규모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적경제의 특성과 잠재력

지난 수년간 한국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빠르게 성장해왔다. 유럽에 비해서는 여전히 작은 규모이나 잠재력 측면에서는 놀랄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발전과정을 보면, 현재 우리의 사회적경제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떻게 발전해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그 방향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의 약화와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의 빠른 성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장기간의 억압으로 규모가 축소되거나 성격이 변질되었다. 사회적경제의 대표조직이라 할 협동조합은 오랫동안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권위주의정권하에서는 정치적 억압을 받았으며, 민주화운동기에는 노동조합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것이다. 과거 협동조합은 지속적으로 탄압의 대상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영리화의 길을 걷도록 강제되었다. 그 결과, 현재 농협이나 신용협동조합은 고용규모나 자산규모 측면에서 매우 거대해졌지만, 그 성격을 보면 영리금융기관과 구별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어 1990년대에는 민주화에 힘입어 각종 비영리민간단체가 빠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외국에 비해 저발전상태에 머무르던 시민사회 영역이 확장되는 시기였음을 의미한다. 법적 위상으로는 재단법인과 사단법인, 복지법인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단체가 생겨났으며, 활동영역 또한 단순한 친목 수준을 넘어 교육, 보건, 복지, 문화, 환경 등으로 다변화되었다. 이들 비영리민간단체는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양을 제공했다.

끝으로 이러한 여건에서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의 생성과 발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의 자립 지원과 연대경제 구축에 주목하며 경제활동에 적극 개입했던 조직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조직들은 1998년 제정된 법률에 근거한 약 180개의 생활협동조합, 법적 근거 없이 여전히 10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협동조합, 2000년 이후 자활사업을 통해 설립된 약 350개의 자활공동체, 2006년 제정된‘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라 설립된 252개의 사회적기업15 등이다. 이러한 조직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단체의 성장이라는 토양 외에도 공적 복지지출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자활공동체나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제공사업 및 보건복지써비스 공급 확대를 통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16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사회적경제 조직이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결합하여 씨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여러가지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윤리적 가치와 나눔을 중시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친환경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강한 전파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지난 수십년간 잊고 살았던 나눔과 연대의 가치가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4. 사회적경제의 세가지 효용

 

사회적경제는 대안적 경제활동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노동윤리를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는다. 또한 취약계층에 일자리와 써비스를 공급함으로써 고용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고, 지역사회의 사회적 지지망을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고용의 위기 해결

우리사회는 이미 수년전부터 탈산업화 과정에 진입했다. 이는 새로운 산업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한, 노동수요 감소에 따른 충격을 해소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특정 써비스부문에서 저임금·고용불안계층이 증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세자영업자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우리사회의 가장 큰 정책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사회적경제는 매우 효과적인 고용창출 방안이다. 먼저 사회적경제 조직의 확대는 사회써비스부문의 고용증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향후 고용창출 잠재력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사회의 복지확장 전략이 현금급여보다 현물과 써비스 공급을 우선적으로 확대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경제 조직은 고용유발계수가 높다는 점에서 투입비용 대비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 제3쎅터의 고용유발계수는 2003년 현재 26.6명으로 정부부문의 20.1과 민간영리부문의 17.7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17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 끝으로 사회적경제의 일자리들은 비숙련 또는 저숙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용위기에 노출된 취약계층에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데 적절하다. 지금까지 자활사업이나 사회적 일자리사업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실업자 및 빈곤층 여성가장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해왔다는 점도 이를 말해준다.

물론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것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해당 부문의 임금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조직은 영리기업에 비해 한가지 큰 장점을 갖는다. 발생한 수익 중 더 많은 몫을 고용주나 투자자가 아닌 노동자에게 인건비로 지급한다는 점으로, 이는 영리부문과 동일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개별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보건복지부문의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18

 

지역사회 연대가치의 확산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우애의 원칙에 기초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일상적 소비에 기초한 소통공간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적경제 조직을 통한 소비공간의 확대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것은 소통공간을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회써비스의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리사회에서 사회써비스를 공급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저변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일상적 소비공간을 토대로 저변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대안적 생산과 소비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생활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하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진작시킨다. 문화부문의 사회적기업은 낙후된 지역의 취약계층에 더 나은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자활공동체나 사회적기업은 지불능력이 없어 소비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 무상 또는 염가로 재화와 써비스를 공급한다. 더불어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과정에서 기존의 자영업자와 실업자를 흡수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은 지역사회의 평범한 소비자들에게 나눔문화를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시민의식의 변화는 더이상 계몽주의적 관점에 의존할 수 없다. 시민단체가 시민들을 교육함으로써 어떤 가치를 공유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가 경험한 것은 시민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문제를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각종 사회단체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들이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소통공간을 확대함으로써 각종 생활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노동문제, 교육문제, 주거문제 등 각종 정책현안에 대한 지배적 가치를 생성하는 일이 된다.

한가지 예를 들어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대형할인점으로 인해 지역 소상인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이해관계의 갈등 이상의 문제이다.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이 교차하는 소통공간의 해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을 생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정치의 문제이다. 이제 우리도 유럽의 많은 자치단체들이 왜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마을 구석에 작은 빵집을 유지하려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19

 

풀뿌리정치의 토대 강화

사회적경제는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위한 풀뿌리정치의 토대 강화라는 점에서도 필요하다. 시민과 그 조직된 형태인 시민단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이다. 물론 시민단체는 정치적·이념적 성격을 띨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한 정치집단과 일체화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민단체는 정치집단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비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시민단체들이 정치와의 관계에서 자율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는 그러한 관계를 통해 세를 확대하려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이 점에서는 좌와 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결과, 시민단체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세를 확대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토대가 급격히 붕괴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시민단체들이 지역적 토대 또는 생활세계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 지지기반 구축을 게을리했다는 점과 밀접히 관련된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정책정당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치집단과 자본가 그리고 시민단체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그 궁극적인 책임은 민주주의하에서 비판적 견제기능을 담당해야 할 시민단체에 있는 것이다.

우리 시민단체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급성장했으나, 지역사회를 토대로 시민들에게 써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정치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들어 생활세계에 밀착한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또한 지명도 높은 소수의 인사가 운동을 이끄는 관행이나 재정조달방식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기부가 아니라 정부나 특정 기업의 대규모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구조 역시 시민단체의 비판적 역할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외국의 정책정당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시민사회를 고민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소규모 지역단위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철저하게 생활세계에 밀착해 있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정치집단에 대한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새정치인이나 보스에게 굴종하는 정치인은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시민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매우 취약하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에 기반을 두고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해서 써비스제공과 옹호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시민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5. 사회적경제 구축의 조건

 

현재 우리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구축은 장·단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것은 몇가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한 몇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개방형 연대

사회적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새로운 사회적경제’또는‘연대경제’의 개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을 포괄해야 한다. 과거 우리 시민단체들은 이념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해왔으며, 전략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는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조직들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회적경제의 범위를 특정한 조직형태에 국한하고 나머지 조직들을 배제하려는 경향 같은 것이다.

자활공동체와 사회적 기업 그리고 협동조합은 상당부분 동일한 조직형태와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연대하여 공동의 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때 각 조직의 배타적 자세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사회적경제의 조직들은 좀더 개방된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어떠한 형태의 조직이라도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민주적 의사결정, 노동자 중심의 수익배분, 취약계층 고용확대, 지역사회와의 연대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경제 활동영역의 확대

지난 수년간 우리사회에서 사회적경제를 성장으로 이끌었던 것은 사회써비스였다. 이는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제공과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에서 사회적경제 조직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부문이었다. 하지만 사회써비스가 사회적경제의 유일무이한 활동영역은 아니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제조업과 농업, 도소매업과 음식점업, 써비스업과 오락문화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활공동체나 사회적기업의 면면을 보면, 이러한 조직들이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영역마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음악활동을 예로 든다면 낙후된 지역에 문화써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 조직이 필요하다. 커피를 판매하더라도 그것이 공정무역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담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려면 사회적경제 조직이 적절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컴퓨터 재활용사업을 하더라도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환경친화적 공정을 통해 수익 감소를 무릅쓰는 것은 사회적경제 조직일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로 수익실현이 힘들어 영리기업이 외면하는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영리기업과의 경쟁을 피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는 조직들은 영리기업과의 경쟁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건비 지원을 받음으로써 시장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재화나 써비스를 공급하여 영세자영업자를 공격하는 사회적 덤핑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나 특혜가 없다면 시장경쟁을 피할 이유는 없다. 달리 보면,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경쟁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으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들은 단순히 상품이나 써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영리기업이 갖추지 못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0

 

사회적경제의 재정적 기반 마련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적경제 조직은 정부재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21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보이는 의존도는 좀더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일자리를 창출하고 써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사업은 대규모 재원을 필요로 하며, 개별조직이 모든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정부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지역단위의 자율적인 사업을 통해 주민들에게 기여하고, 이를 토대로 재원을 확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정부 위탁사업을 단체의 고유목적사업에 필요한 인건비를 조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율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영세민의 자활을 돕는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인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설립초기 정부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기금을 조성하여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정부로 하여금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육성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비영리민간단체가 먼저 사회적경제의 성공적 시범을 보인 셈이다. 최근 정부가 기금과 운영비 지원을 확대하면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체구는 커졌으나 기초체력은 떨어지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정부재정에 의존하면 할수록,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의 자율성이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정권교체에 따른 변동이 심한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조직은 이러한 위험성에 더욱 크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최소한의 재정적 자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가지 차원에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나는 지역사회에서 최소한의 운영경비를 조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육성하는 것이다. 끝으로는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자체적으로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6. 맺으며

 

사회적경제는 앞서 언급했던 세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한번에 우리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킬 극적인 거대담론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경험한 사회적경제의 실험은 지역을 토대로 시민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고용영역을 창출하고, 변화된 소비문화를 구축하고, 민주주의의 일상적 토대를 강화할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와 그에 준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시민들에게 정해진 가치와 이념을 주입하기에 앞서, 이들이 어떤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며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단편적인 욕구를 넘어 새로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를 천착해야 한다. 그것은‘노동→소득→지출’의 악순환 고리를 해체하는 방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성장해왔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시민들의 생활세계로 좀더 가까이 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지역사회를 토대로 생산과 소비를 연계하고, 그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사회적경제의 취지에 동의하는 다양한 조직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비영리민간재단, 시민단체, 마이크로크레디트, 생활협동조합, 자활공동체,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조직들이 소비영역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의 확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민간단체들은 지금 이대로가 편안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원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는 사업지침의 제약이 크고, 사업에 참여하는 빈곤층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기 힘들다. 왜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지 반문해볼 일이다. 생활협동조합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친환경 경영을 주장하는 영리기업과의 경쟁에서 수세에 처해 있다. 물론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좋은 상황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영리기업처럼 투자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서구에서 협동조합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사회적경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 비영리민간재단들 또한 기부금 모금을 위해서라면 단기적으로 홍보에 도움되는 사업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민간재단들이 담당하는 주요한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각 재단의 설립취지에 맞는 사업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복지사업이 모금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선택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는 실험이 필요하다.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 또한 정부지원이 확대되는 현상황에 만족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창업지원이 갖는 한계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을 받는 창업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중장기적으로 대안적 금융씨스템을 구축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부의 기부금으로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만으로는 그러한 씨스템을 확보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내는 작은 돈이 모여 거대한 기금을 형성하고, 그것이 다시 시민사회에 투입되게 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각자가 처한 이해관계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생활세계가 침몰하고 시민사회의 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새로운 사회적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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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 연구자들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적인 의미의‘사회적 경제’와 구별하기 위해‘사회적경제’로 붙여 쓰기로 한다.
  2. 노동시장에서 보다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교육경쟁은 모든 부모에게 가장 큰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교육비 지출경쟁은 부모의 소득지위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즉 교육비 지출금액은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크며, 그것이 가구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크다. 그리고 교육에서의 성취도는 부모의 소득지위 및 사교육비 투자규모에 비례한다. 이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Patrick Loquet, “Économie Sociale: De l’Insertion à la Solidarité,” Espace social européen, n.516, 2000.6.23~29.
  4. Jean Delespesse, “L’Économie Sociale: un Troisième Secteur,” décembre 1997; Mike Campbell, The Third System, Employment and Local Development, 3 vols., European Commission 1999.
  5. 사회적경제는 유럽적 기원, 특히 라틴계 유럽에서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비영리민간부문은 미국에서, 자원봉사부문은 영국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수익을 창출하는 특정한 경제활동조직에 기초한 개념이라면, 후자들은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비경제적 활동에 기초한 개념이다. 그리고 사회적경제가 민주적 결정방식과 수익배분의 제한을 중시한다면, 비영리민간단체는 명시적으로 이러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6. Jacques Defourny et. al., Social Economy: North and South, Centre d’Économie Sociale 2000.
  7. 이 표현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의 쇄신된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연대경제에 국한된 것이기보다 최근의 다양한 경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 Jean-Louis Laville, l’Économie Solidaire, Desclée de Brouwer 1994; Jean-Louis Laville (sous la direction de), LInsertion et Nouvelle Économie Sociale, Desclée de Brouwer 1998.
  9. 노대명 「이태리 사회적 기업법의 정책적 함의」, 『국제사회보장동향』 2008년 여름호.
  10. Alain Lipietz, Pour le Tiers Secteur: L’Économie sociale et solidaire, La Decouverte 2001; Jacques Defourny (2006), “From Third Sector to Social Enterprise: a European Perspectiv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ocial Enterprise, Trento, 2001.12.12~14.
  11. Jean-Paul Marechal, “Demain l’économie solidaire,” Le Monde Diplomatique, Dossier: Imaginer une autre societe, avril 1998.
  12. 김혜원 외 『제3섹터 부문의 고용창출 실증연구』, 한국노동연구원 2008.
  13. 한국 비영리민간부문에서 자원봉사자가 투입한 시간을 피고용자 평균근로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자원봉사자는 비영리민간부문 전체 피고용자 규모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대명 외 『보건복지부문 제3섹터에 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08 참조.
  14. Rafael Chaves & José Luis Monzón, The Social Economy in the European Union, CIRIEC & The European Economic and Social Committee (EESC) 2005.
  15. 이 수치는 2009년 7월 현재 인증 사회적기업에 한하며, 예비 사회적기업은 약 900개에 달한다.
  16. 장원봉 『사회적경제의 이론과 실제』, 나눔의집 2006; 한상진 『시장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적기업을 통한 자활의 전망』, 울산대출판부 2005.
  17. 김혜원 외, 앞의 책 80~83면.
  18. 노대명 외, 앞의 책 199~200면.
  19. 작은 동네에서 상점 같은 일상적 소비공간은 주민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동네에 상점이 없어 모두 주말에 대형할인점에 가서 상품을 구매한다면, 그곳은 단순히 거주지 또는 통행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20. Bob Allan, “Social Enterprise through the eyes of the consumer,” National Consumer Council 2004.
  21. 노대명 「한국 사회적경제의 현황과 과제」, 『시민사회와 NGO』, 2007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