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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베너딕트 앤더슨이 놓친 것과 얻은 것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

 

 

라디카 데싸이

Radhika Desai 캐나다 마니토바대학 정치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Slouching Towards Ayodhya, Intellectuals and Socialism 등이 있으며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New Left Review 등에 정당, 문화, 정치경제, 민족주의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기고하고 편서를 기획했다. 현재 미국 전략의 기원과 종말, 인도 자본가계급의 탄생에 관한 주제 등을 연구중이다.

 

  • 이 글은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2009.3.16)의 기고문으로, 원제는 “The Inadvertence of Benedict Anderson: Engaging Imagined Communities”이다. 지면 사정과 독자의 편의를 위해 필자의 확인을 거쳐 약간의 분량을 축약했다. 원문은 창비 영문판 홈페이지(www.changbi.com/english)에서 확인할 수 있다. ⓒ Radhika Desai/한국어판 ⓒ (주)창비 2009

 

 

소개가 필요 없는 유명인사처럼 베너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는 서평이 필요 없는 책이다.1 그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고 또 누구나 거론하는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평이 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사실 민족주의에 관한 문헌에서‘상상의 공동체’만큼 자주, 또 널리 거론되어온 용어도 없을 것이다.‘상상의 공동체’가 이 용어의 창시자와 늘 같이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이 용어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채택되는 현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상상의 공동체』에 오랫동안 어떤 불편함을 느껴온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느껴온 불편함은 이미 많은 이들이 비판해온 개별 논점에 대한 것이라기보다2 『상상의 공동체』가 적시한 목표들과 그 개념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사이의 뭔가 맞지 않고 어긋나는 부분과 관련된 것이다. 이 불편함은 최근 더욱 심해졌는데, 마침 나는 지난 몇세기간 이루어진 민족주의의 진화를 좀더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그러한 진화를 고찰하는 시도들에 대한 지적·역사적 조망 안에서, 『상상의 공동체』가 민족과 민족주의 발전에 어떻게 개입하고 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자리매김하려던 참이었다. 여러 나라에 번역되고 두차례 개정된 이 책의 인상적인 역사가 상술된 후기가 실린 새 개정판 『상상의 공동체』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후 25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간 내가 느꼈던 그 모호한 불편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좀더 선명하게 정리되었다.

이런 나름의 평가가 가능해지는 이면에는 『상상의 공동체』가 목표했던 연구과제들, 가령 nationality(민족 내지 민족적 소속, 국적), nation-ness(민족 또는 국민집단으로 성립되는 상태), nationalism(민족주의, 국민주의) 등의 개념(4면)이 이 책의 출판 후 겪어온 운명의 급격한 변화, 앤더슨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에 의해‘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도 포함되는 변화들에 기댄 바가 크다. 1983년에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나 1991년에 1차개정판이 나왔을 때 앤더슨은 “그토록 오랫동안 예언된‘민족주의시대의 종언’은 여전히 요원하며 실제로 민족됨(nation-ness)은 우리시대 정치생활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가치”(3면)임을 주장했다. 그후 세계사적으로 복잡한 변화의 국면이 발생했으니, 쏘비에뜨연방이 여러개의 공화국으로 쪼개진 것과 지구화가 유행어가 된 것이다. (쏘비에뜨연방의 해체와 지구화 과정은 사실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지구화에 내포된 가장 분명한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체제가 공산권으로까지 확장되리라는 것, 러시아혁명으로 달성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체제의 전지구적인 확산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현실을 어느정도 예견했던 사람들조차3 이 과정이 사실상 쏘비에뜨연방이 무너지기 십수년 전, 미국이 중국과 외교를 재개했던 시점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던 듯하다.) 서로 긴밀히 맞물려 돌아간 이 두 변화는 민족 및 민족주의에 대해 대립되는 함의를 갖는 것으로 보였다. 공산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지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국가들로 유엔은 외형상 더 커진 듯했지만, 주지하다시피 국가조직과 국가간 경계를 지우는 상업화와 상품화를 내세운 지구화는 민족국가(국민국가)와 민족주의를 침식하면서 민족국가를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앤더슨은 적어도 1991년까지 민족과 민족주의의 중차대한 의미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무렵 앤더슨은 입장을 바꾸었는데, 문제는 그 입장변화란 것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그간 자신이 몰두해온 분석과 연구에 기댄 것이 아니라 (외국이주, 사회주의 몰락, 기술혁신, 수송 및 통신수단의 발전, 초국가적 투자 등의4 ‘지구화’로 인해 민족국가와 민족주의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일반의 통속적인 이해를 따른 결과라는 점이다. 지구화를 둘러싼 논쟁들, 지구화가 과연 민족국가를 무력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는데도5 앤더슨은 지구화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쏘비에뜨연방의 해체는 “경제적으로 허약한 군소 국민국가들만 낳았을 뿐이다. 어떤 국가는 신생국의 형태를 띠었고 또 어떤 국가는 1918년 구소련이 탄생하기 이전의 국가체제를 이어받았는데 어느 경우든 이런 소규모의 국민국가들이 탄생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25년 정도 뒤늦은 일이었다.” 이들 국민국가의 탄생이 “200년 동안 민족과 국가를 묶어온 단단한 하이픈(영어의 nation-state를 구성하는 하이픈-옮긴이)의 연결고리에 임박한 위기”를 뜻하는 “지구화의 흐름을 바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국가의 지위에 대한 민족주의자들의 열망과, 국민들의 충성과 복종을 원하는 국가의 요구 사이의 연결이 더이상 과거처럼 확실하지 않게 되고 전지구적으로 이동이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장으로 자리잡으면서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휴대용 민족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Introduction,” 8면). 더 오래되고 더 확립된 국가들 또한 그들 나름의 문제를 지녔을 법하다. 특히나 기술혁신이 가속화되고 군비가 증가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말이다.

 

군사적으로 자국 시민을 보호할 수 없는 국가들, 자국민의 취업과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여력도 없는 국가들이 여성의 몸과 학교의 교과과정에 대한 정책을 세우느라 골몰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권에 따르는 엄청난 요구를 감당하기에 충분한가?(같은 글 9면)

 

앤더슨의 새로운 입장은 쏘비에뜨 민족주의에 대해 복합적인 역사적 판단을 내린 홉스봄(E. Hobsbawm)의 태도와 겉보기에만 흡사하다. 1990년에 이미 홉스봄은 민족주의는 역사적으로 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분명 그 이듬해에 앤더슨이 민족과 민족주의가 여전히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선언할 때 그가 의식한 발언이었다. 홉스봄에게는 1990년의 시점에서 이미 민족주의가 “19세기나 20세기에 통하던 의미로 더이상 전지구적인 정치체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6 자신의 저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홉스봄은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민족’과‘민족주의’는 더이상 이 말들로 묘사되는 정치적 집합체나 심지어 한때 이 말들이 담아내던 정서를 분석하거나 설명하기에 적합한 용어가 될 수 없다. 국민국가(nation-state)의 쇠퇴와 함께 민족주의도 쇠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국가가 없다면 결국 영국인, 아일랜드인, 유대인 혹은 이 모든 면모가 합해진 존재로 자신을 묘사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때그때 자신의 정체성을 묘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벌써 가까워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을 적어도 그려볼 수는 있다.(192면)

 

이러한 판단은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민족과 민족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더욱 분명해졌을 뿐이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쩌면 “1차대전이 낳은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어 돌아온” 꼴이며, 공산주의의 발흥으로 얼어붙었다가 공산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풀려난 과거와의 대면이라는 것이다.7 이것이 민족과 민족주의가 내포하는 주장에 시종 회의적이었고 이 개념들이 특수화하는 추동력에 불편해마지 않았던 한 역사가가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서 내린 최종 판단이었다. 그 내용은 민족과 민족주의는 이 세계를 재편하는 데 더는 기여할 수 없고 사실상 민족국가 체제는 대체로 이미 완결되었다는 데 불과했다. 그가 보기에 민족과 민족주의는 비록 쇠퇴하고 있긴 하지만 그 쇠퇴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앤더슨의 입장과 다른 것은, 홉스봄은 적어도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 주장한 바를 일관되게 밀고 나갔고‘지구화’라는 유행담론에 편승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상상의 공동체』의 중요한 모순점과 모호한 부분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나의 비판이 겨냥할 부분은 앤더슨 스스로 자신의 저술 계기를 제공한 정치적 사건들과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앤더슨이 제시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애매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이 1983년에 처음으로 천명했던, 그리고 새 개정판(2006)의 후기에 다시 언급한 목표들을 얼마만큼 달성하고 있는지도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의 비판적 성격을 『상상의 공동체』가 새로운 지평을 열지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이 글에서 나는 두가지 큰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첫번째 성과의 경우 앤더슨 스스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이 갖는 진정한 의의를 분명히 알지 못한 것 같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의 경우 그것이 다분히 의도하지 않은 성과여서 그것을 전적으로 앤더슨의 공로로 돌리기 힘든 점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은 앤더슨의 저서에서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성취는 무엇이며 실패는 또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것으로 끝맺을 것이다.

 

 

정치적인 기만

 

『상상의 공동체』 서두에서 앤더슨은 자신의 저작이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인도차이나에서의 전쟁들에서 촉발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앤더슨에게는 인도차이나의 무력 갈등이야말로 민족주의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1969년 중국과 소련의 국경분쟁이나 독일(1953), 헝가리(1956), 체코슬로바키아(1968), 아프가니스탄(1980)에서의 소련의 군사개입은 취향에 따라서‘사회제국주의’혹은‘사회주의의 방어’등으로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용어들이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난 사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1면)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급정치나 이념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 반면,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난 사태를 그렇게 보는 것이 왜 불가능한가 하는 이유는 여기서 설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앤더슨도 서구의 문제에는 계급의 범주를 적용하고 다른 세계권에는 민족의 범주를 적용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8 어쨌든 그 때문에 앤더슨은 맑스주의자나 적어도 맑스주의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편협한 민족주의 세력이 맑스주의에서 주창하는 사회주의 형제애나 국제주의를 배반했음을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으로 은연중에 규정된다. 그러고는 사태의 설명을 찾아 앤더슨은 “민족주의가 현대세계에서 발휘해온 지대한 영향과는 대조적으로 민족주의에 관한 이론은 눈에 띄게 빈약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3면). 그래서 나온 것이 『상상의 공동체』다. 좌파가 과거에 되풀이해온 실수와 잘못을 짚어낼 바로 그 시점에 등장하여 좌파에 깊이 공감하는 인물의 저작으로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맞지 않는 사실이다. 인도차이나 전쟁들이 많은 맑스주의자에게 환멸을 가져다준 점은 분명하지만, 이는 이 전쟁들이 그때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민족주의를 드러냈다거나, 유럽 공산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맑스주의적 개념 안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아시아 공산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스딸린주의자들이‘일국사회주의’를 옹호한 것이 맑스주의자들 눈에는 공산주의의 전지구적 열망을 훼손한 것으로 비쳐진 건 사실이지만, 맑스주의자들에게 민족현실은 계급현실과 단순히 배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쏘비에뜨 체제는 처음부터 내부적으로는 민족문제와 씨름해야 했으며 외부적으로는 민족해방을 지지했다.

앤더슨의 입장은 꽤나 대담무쌍하고, 맑스주의의 이론적 전통에 무지한 이들에게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며 상투화되기 알맞은 성격의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는 일관되게 맑스주의가 민족과 계급,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단순하게 대립시킨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비록 민족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이해는 양자간의 긴장관계와 인식의 공백이나 비약을 늘상 지니고 있었지만, 양자의 이분법적 대립은 사실상 맑스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냉전시대 반공주의의 산물이었다. 맑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지적·정치적 전통은 민족과 계급,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두 원리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런저런 사상가들이 결과야 어떠했든 그동안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공산주의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각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자국의 부르주아지와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인도의 독립이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점에 관한 맑스의 명백한 입장, 역사가 있는 민족과 역사가 없는 민족을 구분하는 엥겔스의 인식, 폴란드 문제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논쟁적 개입, 그리고 레닌과 볼셰비끼의 민족자결권 옹호와 제국주의의 이론화, 또‘민족-민중적’(national-popular)인 것에 대한 그람씨의 사상, 제국의 맥락에서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상호관계를 천착한 오스트리아 맑스주의자들의 통찰 등을 통해 드러나는 고전적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민족과 계급의 상호작용을 이론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앤더슨은 자신의 저작 어디서도 이런 사례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앤더슨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민족과 계급의 단순한 대립항에만 의존하여 자신의 논거를 펼쳐나간다. “맑스주의자들은 본래 민족주의자가 아니다”“민족주의는 현대의 발전론적 역사의 병리”라는 등의 낭설을 원용함으로써(161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적·정치적으로 억압했다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앤더슨은 이러한 치명적인 허구적 전제에 대해 아무런 전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비록 앤더슨이 민족주의 주제에 대하여 권위자로 인정받고 싶어했고 (사실 또 인정을 받고 있기도 하고) 특히 민족주의 주제를 다루는 좌파 학문에 정통한 학자로 대접받고 싶어했음에도 막상 그 자신은 쏘비에뜨연방에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복잡하게 주고받은 상호작용을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쏘비에뜨연방이 해체된 이후에 나온 민족주의에 관해 매우 통찰력있는 저작에서 다루어진 주제이기도 한데 말이다.9

실제로 『상상의 공동체』와 민족주의에 관한 다른 학문적 전통과의 관계는 저자의 이런 만족스럽고 심지어 생산적이기도 한 독특함의 포즈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앤더슨이 민족주의 문제에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지적인 파산을 선고했을 때 그는 두개의 매우 간결한 인용문에 의존했다. 첫번째는 민족에 대한 과학적 정의를 내릴 방도가 없다는 휴 씨튼왓슨(Hugh Seton-Watson)의 결론이고, 두번째는 민족주의가 맑스주의의 역사적 대실패라는 톰 네언(Tom Nairn)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앤더슨이 부과하는 하중을 지탱할 수 없다. 씨튼왓슨이 민족에 대해 “과학적” 정의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현상에 주관성의 요인이 실질적으로 깃들었기 때문인데,10 이들 요인은 앤더슨 스스로 『상상의 공동체』의 주된 주제 중 하나라고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씨튼왓슨을 언급하면서 앤더슨은 이 방면의 학문적 성과들을 더 섭렵했어야 한다. 이 계통의 연구성과를 간단히 제쳐놓을 게 아니라 여기서 성취한 바를 인정하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앤더슨은 그러지 못했다. 네언을 인용한 부분으로 말하면, 맑스주의의‘실패’에 대한 네언의 설명은 앤더슨이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차원이었음이 조금만 더 연구해도 드러난다. 네언은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에 대한 적잖은 이론과 고찰을 맑스주의가 수행해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11 뿐만 아니라 네언 스스로도 선행 맑스주의자들의 실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그 실패는

 

단순히 개념적 혹은 주관적인 실패가 아니었다. 아무리 치장을 해도 그 실패를 상쇄하기란 힘들다. 사실인즉, 이전의 맑스주의자들이 민족주의에 관해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고 해도, 그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거나 적어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까지는 역사의 발전이 그러한‘이론’에 필요한 일정한 조건들을 만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론 또는 이론가들을 위해 때가 무르익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1914년 이후 60년 가까운 상처투성이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는 물론 신(神)의 눈이라는 의미에서의‘맑스주의’에는 당연히 치명적인 사실이지만 역사적 유물론 자체에 등을 돌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12

 

“신(神)의 눈이라는 의미에서의‘맑스주의’”는 물론 스딸린주의였다. 이와 대조되는 것으로 네언은 다른 맑스주의들이나 역사적 유물론자들의 사유와 이론 및 실천의 전통들, 특히 볼셰비끼의‘불균등결합발전론’을 숙고해볼 것을 호소했으며, 이들 전통을 바탕으로 네언 자신이 민족주의의 이론에 적지 않은 맑스주의적 공헌을 했던 것이다. 네언의 이런 주장이 맑스주의 전통에 대한 학문적 지식의 대용물로 앤더슨이 시종일관 의지하는 계급과 민족,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항대립의 남용을 정당화하지 않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앤더슨의 실패한 의제

 

『상상의 공동체』의 목표는 겸손하면서도 거창했다. 한편으로 앤더슨은 “민족주의에 대해 좀더 만족스러운 해석을 내리기 위해서 몇가지 잠정적인 제안” 정도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보편주의 이념들, 즉 맑스주의와 자유주의를 파산위기에서 저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의지처로서 구해내겠다고 공언한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라는 현상을 구하기 위해 그 옛날의 프톨레마이오스식 노력으로 기력이 다한”(4면) 자유주의와 맑스주의 이론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정신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맑스주의와 자유주의 진영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문화’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정신”을 찾음으로써 이러한 지적인 구출작전을 감행하고자 한다.

 

민족주의뿐 아니라 민족, 민족됨 등은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조성물이다. 이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그 의미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어떻게 변해왔는지, 왜 오늘날 그처럼 심오한 정서적 정당성을 누리고 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4면, 인용자 강조)

 

2006년의 후기에서 앤더슨은 처음 명시된 이런 목표 외에 세가지 다른 목표들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 영국(United Kingdom)이 “민족주의와 공화주의 이전 시대의 노쇠한 유물로 운이 다했”다는 네언의 주장, 또 “고전적 맑스주의가 민족주의의 역사적·정치적 중요성을 피상적으로 다루거나 외면했다”는 네언의 비난을 “물론 비판적으로지만” 지지하려는 것. 둘째, “고전적 자유주의와, 가능하다면 고전적 보수주의까지도” 포함하도록 네언의 이론적 비판의 폭을 확대하는 것. 셋째,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탈유럽화”하는 것이었다. 그중 세번째 목표는 “당시엔 아득히 먼 세계였던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사회, 문화, 언어들에 오랫동안 몰두해온”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바라는 것이다(208~209면).

 

문화를 통한 구출?

우선 원래 명시했던 목표를 짚어보자.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파산에 대한 앤더슨의 진단이 실은 근거가 부실함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는데, 만약 이들 이념이 그의 말처럼 파산상태가 아니라면 구출작전도 분명히 필요 없는 일이었다. 파산을 선포한 것은 앤더슨 스스로 맑스주의와 자유주의를 다뤄야 할 부담을 떨치기 위한 잘못된 시도였다. 민족주의가 단순히‘문화적인’개념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앤더슨은 민족주의가 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개념이 아닌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분명히 네루(Nehru)나 은크루마(Nkrumah), 수까르노(Sukarno), 호찌민(胡志明), 제퍼슨(Jefferson), 볼리바르(Bolivar), 마찌니(Mazzini) 같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민족주의 투쟁을 이끌면서 민족주의가 정치적·경제적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발전이라는 과제는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에 놓여 있었고, 기성 국가의 공인된 민족주의로 자리잡은 뒤에도 그랬다. 민족주의는 문화정치만이 아니라 전형적으로 그 나라 고유의 국가발전 모델에 해당하는 독자적인 정치경제적 기획을 내포하고 있었다.13 각각의 발전기획은 모두 이를 이끄는 계급들의 특정한 이해관계를 반영했지만, 이들의 이해관계는 공평성의 원칙이나 여타 대중의 관심사들에 양보하는 타협을 감수하면서 달성되었다. 그들의 성공이 어느정도는 대중의 동원 여하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두 그러했고, 20세기 들어 식민상태를 벗어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민족주의의 문화적 내용은 해당 민족주의의 경제적·정치적 과제들이 요구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14

 

맑스주의 및 네언과의 허수아비 싸움

이제 2006년에 앤더슨이 추가로 명시한 목표들로 넘어가보자. 그중 두가지는 네언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민족주의에 관한 맑스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상의 공동체』에서 그나마 얼마 안되는 이론적 비판은 맑스주의, 특히 맑스주의자인 네언을 향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로 상대를 삼은 씨튼왓슨에 대한 모든 언급은 해석적인 작업으로, 중요한 논점에 대해 앤더슨은 씨튼왓슨에 반대하기보다 오히려 동의하는 쪽으로 그의 저술을 원용하고 있다.

네언을 향한 앤더슨의 이론적 예봉은 과녁을 빗나간다. 네언이 민족주의를 두고‘병리’라든가‘신경증’‘치매증’등의 표현을 사용한 점을 통렬히 비판할 때, 앤더슨은 네언이 민족주의를‘근대적 야누스’로 포착함으로써 앞을 보는 동시에 뒤를 보고, 억압하는 동시에 해방하며, 근대적인 동시에 (적어도 스스로 주장하기로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민족주의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간과한다. 인종주의가 계급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네언이 몰랐다는 앤더슨의 비판은(148~49면), 인종주의가 민족주의와 별 관계가 없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계급적 불평등이 국내에서 인종주의를 낳은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간 불평등이 인종주의를 국제적으로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앤더슨은 민족주의가 “하층계급들의 정치적 세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네언의 주장15을 비판하지만, 이 비판은 매우 일관성이 없다. 일례로 스페인령 아메리카대륙의 경우, 앤더슨은 민족주의자들이 흑인 노동자들을 두려워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몇줄 뒤에 그들이 흑인 노동자들을 국민과 시민으로 만들려 했다고 상반된 논리를 편다(49면).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이‘크리올(Creole) 민족주의들’이 앤더슨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주장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가 미국의 독립선언,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이은 프랑스혁명 이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훗날의 민족주의자들이

 

먼 고장의 선례들, 물론 프랑스혁명 발발 후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선례들이 제공한 눈에 보이는 모형들을 기반으로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민족’(nation, 국민)은 천천히 윤곽을 잡아가는 비전의 틀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열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사실‘민족’은 특허를 낼 수 없는 발명품임이 증명되었다. 민족은 너무도 다양한, 때로는 예기치 않은 사람들이 표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67면)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하층계급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의‘모형적’특징, 그리고 이후에 등장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주의 고유의‘크리올’모형을‘표절’함으로써 퍼져나갈 수 있었다.

앤더슨은 또한 민족주의에서 민중의 동원이 핵심적이라는 네언의 통찰을 다른 방식으로 뒤집고자 했다. “민족주의의 새로운 중산계급 지식인들은 민중을 역사 속으로 초대해야 했고 그 초청장은 민중이 이해하는 언어로 씌어져야 했다”16라는 네언의 발랄한 은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러한 초대가 왜 그처럼 매력적으로 보였는지, 어째서 다른 동맹세력들이 그 초대장을 유포할 수 있었는지는 결국 우리가 표절에 주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80면) 앤더슨은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우선, 중산계급의 지식층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민족주의자들의 투쟁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것들을 자신의 상황에 적용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 각자가 수레바퀴를 새로 발명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자기들이 처한 독특한 역사적 상황에 직면하여 역사가 제공한 독특한 일단의 자원을 동원해 민족주의를 만들어냈다. 민족주의의 광범위한 유사성은 어떤 모형의 적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운동이 직면했던 과제들이 구조적으로 유사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이라는 매개변수의 범위 내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창의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크고작은 차이를 보였고 자신의 과업에 각기 다른 정도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대중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이득, 가령 부나 평등, 토지나 전기, 직업이나 위엄, 평화나 복수 등에 따라서 그러한 초대장에 응답한 것이지 어떤 다른 민족의 이미지에 따라서 민족이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여 그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네언에 대한 앤더슨의 비판이 모두 실패했다면, 네언의 이론을‘비판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앤더슨의 약속에서 무엇이 남는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즉 민족과 계급의 발전을‘함께’진지하게 다룬 네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유물론자의 입장이었다. 민족주의의 기원은

 

토속민중(folk)이나, 전체성 또는 정체성을 향한 개인의 억압된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적 작동에 있다. 그렇다고 경제발전 자체의 과정, 즉 단순히 산업화와 도시화의 필연적인 부수물로서의 경제발전과정 속이 아니라 (…) 18세기 이래 역사의 불균등한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불균등성은 엄연한 물적 현실이며, 심지어 현대사에서 가장 제어할 수 없는 물적 현실이라고 주장함직도 하다. 이에 따른 결론은 한편으로는 만족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역설적인데, 민족주의라는 가장 악명높게 주관적이고‘이상주의적인’역사현상이 실은 지난 200년의 역사가 낳은 가장 야만적이고 절망적으로 물질적인 측면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17

 

네언의 핵심요지는 자본주의가 한가지가 아니라 두가지 종류의 불평등, 즉 사회적인 불평등과 지역적 내지 공간적인 불평등을 낳았으며 이것들은 계급과 민족의 산물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계급과 마찬가지로 민족 또한 엄연한 물질적 현실이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물질적인가 하는 점은, 민족 내부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이 무척 오래되었고 거대하며 최근 몇십년간 더 커져왔지만 민족들간의 경제적 불평등과 비교하면 그나마 격차가 적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도 알 수 있다.18 민족들이 얼마나 물질적인가 하는 점은‘개발국가’의 중심성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 독일, 일본이든 아니면 최근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무엇보다 중국의 경우가 그런데, 앞시대의 개발국가들은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했고 뒤의 국가들도 최소한 그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19 물론 최근 시장중심주의 정책하에서 대다수 국가들의 계급적·지역적 불평등의 폭이 커진 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물질성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개발적·문화적 민족주의에 대한 최근 저서에서 내가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증명해보였듯,20 이러한 새로운 정치경제체제와 함께 민족들 내부에서 문화정치학의 새로운 형태가 뚜렷이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혹 누군가가 민족은 단순히 문화적 가공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네언과 논쟁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앤더슨의 주장은, 자신의 민족주의 이론이

 

서반구에서 가령 1760년부터 1830년 사이에 벌어진 중심부에 반대하는(anti-metropolitan) 저항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설명하기보다는 왜 그 저항이 다른 형태가 아니라 복수의‘민족적인’형태로 태동했는가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었다. 걸려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또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도 특히 제국주의와 구체제들(anciensrégimes)을 비판할 수 있는 이념적 무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경제적 이해도, 자유주의도, 혹은 계몽주의도 그 자체로는 구체제의 약탈로부터 방어해야 할 바로 그런 종류나 형태의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없었고 만들어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자유주의, 계몽주의, 경제적 이해 그 어느 것도 찬탄이나 혐오를 받은 핵심부의 대상에 대항하는 새로운 의식의 틀, 시야에 잘 잡히지 않는 그 비전의 주변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65면)

 

하지만 앤더슨은 네언이 본 바로 그 불균등발전의 지리적·사회적 윤곽이 상상의 공동체의 종류와 형태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방식으로만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다. 네언은 나무가 아니라 숲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유주의나 계몽주의가 요구한 다소 모호한 공통된 인간성이나 계급에 토대를 둔 단 하나의 보편적인 저항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러개의 민족적 저항 형태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뚜렷하게 부각시킨 점을 앤더슨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마지막으로, 앤더슨은 어떤 방식으로 민족주의 연구를‘탈유럽화’(de-Europeanize)했는가? 간단한 답은 앤더슨이 민족주의 연구를 아메리카화하는 방식으로, 더 나쁘게는 전체로서의 아메리카가 아닌 미국(USA)이라는 의미에서 아메리카화함으로써 민족주의 연구를 탈유럽화했다는 것이다. 앤더슨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최초의 민족국가이며, 민족주의의 모형성(modularity)에 대한 그의 주장이 필요로 하는 바, 이후의 다른 모든 민족국가가 따라야 했던 첫번째 모형을 세운 국가이다. (다른 두 모델은 유럽의 것이다.) 하지만 앤더슨은 민족주의의 기원에 대한 사회학적 방법론에서 유럽 및 미국 바깥의 세계가 모방해야 했던 이 세가지 모형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대한 앤더슨의 지식이 이런 결론을 도출하는 데 과연 얼마나 작용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앤더슨에 따르면, 이러한 모형이 생겨난 나라들에서 민족주의의 기원은 세속화의 과정에 있었다. 앤더슨이 그리고 있듯이, 민족주의는 몇가지 방식으로 종교를 대체했다.

 

민족을 상상하는 일은 아주 오래된 세가지 근본적인 문화적 개념들이 인간의 사고에 미쳤던 자명한 지배력을 잃어버린 때와 장소에서만 역사적으로 가능해졌다. (…) (세가지 개념들이란) 특정한 문자언어가 존재론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한다는 생각, (…) 사회에는 높은 중심부가 있고 그 주변과 아래가 있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믿음, (…) 그리고 우주론과 역사가 구별되지 않고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시간성 개념이었다.(36면)

 

불균등결합발전의 정치경제가 아니라,‘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와 새롭게 출현한 중앙집중적 절대국가와 식민국가 관리들의 세속적 순례가 새로운 의식과 공동체의‘종류’와‘형태’를 결정짓고 이를 민족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쇄자본주의는 “특정한 생산체계와 생산관계(즉 자본주의), 상호소통의 기술(즉 인쇄술), 그리고 인간적 다양성과 언어적 다양성에 내재된 숙명성 등 사이의-다소는 우연적이지만 폭발적인-상호작용”(43면)이었다. 특정 지방의 새로운 인쇄언어들은 “라틴어보다는 아래이며 고장의 입말보다는 위에 교환과 소통의 통일된 언어의 장을 만듦”으로써 언어적 공동체를 확장하면서 민족의식의 초석을 놓았다.(44면) 또 이들은 “언어에 새로운 고정성”을 부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그 언어가 유구한 것이라는 주장을 가능케 했다. 또한 인쇄언어들은 인쇄언어에 더 가까운 방언들을 가지고 “권력의 언어들”(languages of power)을 만들어냈으며(44~45면) 더 먼 지방의 방언들을 주변화했고 때로는 “하위 민족주의들”(sub-nationalisms)을 낳았다. 다른 한편, 현대의 중앙집권국가와 식민국가의 발생과 더불어 민족적이라고 생각되어온 단위들의 범위와 한계를 규정하는 “도정들”(journeys)이 생겨났다. 과거의 순례자들이 멀리 떨어진 성지의 중심으로 순례를 감행함으로써 종교의 세속적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경계를 그었다면, 이제 국가관료들이 지방의 중심지로 오가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민족적 공동체의 범위와 한계가 상상될 수 있는 경험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인쇄자본주의와 관료들의 순례에 대한 논의가 풍부하고 세속화와 신교, 자국어의 확산, 문자해독력 등 유럽의 민족주의에 기여한 많은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앤더슨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긴 하지만, 이 또한 그리 놀랍지는 않다.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든 민족주의의 발흥과 동시대에 일어난 문화현상들이 민족문화의 형성과 관계맺어온 점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종교운동이 발흥한 1920, 30년대 인도 국민회의에 많은 지역공동체가 가담했던 사실21이나 라디오가 1930년대 들어서 민족주의자들의 메씨지를 전파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태국과 인도, 구소련의 후예 공화국들에서 보듯이 오늘날 텔레비전이 민족주의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앤더슨은 이 현상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무의식적인 과정”이었으나, 민족주의는 곧 “모방되어야 할 공식모델로 굳어지고, 필요하다면 마끼아벨리적으로 의식적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45면)고 주장한다. 미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늦어도 1820년대 이전에 모방하고 표절할 수 있는 모형을 이미 만들어냈다. 뒤이어 민족주의는 먼곳의 선례들, 프랑스혁명 이후엔 아주 멀다고 할 수 없는 곳의 선례들이 제공한 가시적 모형들을 따라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주의 이론을‘탈유럽화’하려는 어떤 기획에도 무척 중요했을 민족해방의‘마지막 물결’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해온 일련의 모형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 신생 민족국가에서 유럽 국어를 계속 사용한 것은 미국 모형을 닮았고, 그들의 대중주의와 유럽지향적 또는 “러시아화” 정책노선은 예의 공식 모형을 따른 것이었다(113면). 이들 국가의 엘리뜨 계층은 2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이들이 “유럽의 국어를 통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현대 서구문화를, 더 구체적으로는 19세기의 다른 지역에서 발달한 민족주의, 민족됨, 그리고 민족국가의 모형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걸 의미”(116면)했다. 비유럽적 민족주의가 서구모델을 따랐다는 발상은 말할 나위도 없고, 대체로 유럽중심적인 앤더슨의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민족주의 연구를‘탈유럽화’하는 데 기여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민족주의 연구를‘탈유럽화’하기는커녕 묵직한 또 한겹의 유럽중심주의를 보탠 꼴이 아닐 수 없다.

앤더슨 주장의 함의는, 유럽에 관해서는 민족주의의 사회학이 있지만 제3세계 민족주의를 위한 사회학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이미 만들어진 모형들을 단순히 모방, 아니‘표절’했기 때문이다. 앤더슨의 주장은 제3세계 사회들이 백지처럼 새로 시작하는 것이어서 그 위에 서구의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서구 민족주의의 이야기를 새로 써넣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에만, 또 그렇게 써넣는 시도에 저항하고 그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그들 자신의 사회학이 없는 경우에만 유효할 수 있다.

『상상의 공동체』 제2판에서 앤더슨은 자기가 내세운 민족주의의 모형 모방론, 표절론을 철회한 것으로 보였다. 이는 태국 출신의 젊은 역사가 통차이 위니차꿀(Thongchai Winichakul)의 뛰어난 박사학위논문이 공간과 지도 그리기, 민족국가의 역할 등에 대해 앤더슨에게 생각의 물꼬를 터준 덕분이라고 했다.‘인구조사, 지도,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장을 넣음으로써 앤더슨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세계의 공식적 민족주의가 19세기 유럽 왕조국가의 공식적 민족주의를 그대로 본떴다”는 자신의 “단견”을 바로잡았다. 이제 “직접적인 계보는 식민국가들의 상상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163면). 앤더슨은 식민국가들이 “전형적으로‘반민족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놀랍게”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163면) 이는 분명 시치미를 떼는 발언이다. 제3세계의 민족주의가 그들의 식민지배자들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주장은 정말이지 너무 광범위하다. 어쨌든 이를테면‘내지(內地)의’유럽인에게서 민족주의를 빌려오는 것과 멀리 식민지의 유럽인에게서 민족주의를 빌려오는 것은 구별이 쉽지 않다.‘마지막 물결’의 민족주의가 취한 형태에 대한 그의 설명은 모방작업을 수행한 이중언어사용 엘리뜨 계층의 역할마저 없애고 그것을 식민종주국의 현지 엘리뜨들의 역할로 완전히 대치한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탈유럽화요 대단한 민족주의 아닌가!

이미 말했듯이, 민족주의의 모형적 성격에 대한 앤더슨의 주장이 노정하는 진짜 문제는 민족주의들간의 유사점이 물질적 환경과 가능성에 기반한 구조적 유사성이 아니라‘모방’의 결과로 나타난 유사성이라는 함의에 있었다. 미국과 유럽식 모형을 베끼는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이라는 발상이 결국‘탈유럽화’에도 별로 기여하지 못했지만, 민족주의의 진정한 창조성이 발견될 수 있는 차원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즉 광범위한 구조적 유사성의 층위 아래, 민족주의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서로 다른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원을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민족국가 건설작업을 설정하고 성취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를 읽노라면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차원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할 수 있다. 그들이 식민지의 자원과 경제적 유출을 막으려고 애썼다는 점, 산업공동화를 막아보려 했으며 식량의 자급자족과 외국인 지배의 자원을 회복함으로써 경제의 우선순위를 제국의 관점에서 민족의 과제로 선회하려고 노력한 점도 간과하기 십상이다. 또한 제국이나 이슬람군주, 왕국 등으로 대표되는 구체제를 전복하거나 개혁했고 식민관료체제에서 벗어난 민족관료체제를 만들었다는 사실도,‘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대두되기 훨씬 전에 이미‘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이나‘판차 씰라’(pancha sila)22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인도의 판차야트 라지(Panchayati Raj)나 탄자니아의 우자마(Ujamaa)처럼 새로운 목적에 도움이 될 이용가능한 전통을 근대화하여 때이른 근대성을 꽃피운 예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없다. 이들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이 식민지적 분할통치에 대항해 민족을 단결시키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인도에서는‘세속주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공산주의’같은 용어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든가 때로는 유럽인들이 오히려 낭만화하는 억압적인 전통문화를 온당하게 비판하려고 했던 점도 모르게 마련이다. 이런 독창적인 시도들 가운데 많은 것이 실패하거나 불발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로 남는 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의 담론을 포함하여 서구적 담론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언급되지도 않는‘창조력’을 이들 제3세계 민족주의자들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앤더슨은 자신이 구상한‘크리올 선구자들’(Creole pioneers)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1991년판 서문에서 그는 이 대목이 『상상의 공동체』 제1판 독자들에 의해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을 불만스러워했다.‘크리올 선구자들’이라고 장 제목을 새로 단 것도 이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서문의 발언이나 새로 단 제목이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꾼 것은 없는데, 이는 앤더슨 스스로 자신의 논지에 내재된 의미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민족주의의 기원을 프랑스혁명에 두고 있는 데 비해 앤더슨은 이보다 앞서 1776년 영국령 식민지 미국에서 일어난 반란이 몰고온 아메리카대륙에서의‘첫번째 물결’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는 두가지 점에서 『상상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인 진전이며 민족주의 연구에 이 책이 가장 독창적으로 공헌한 성취이다.

첫째로, 앤더슨의 이러한 시각은 불균등결합발전과 이에 따른 민족국가의 확산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근대의 지정학적 의미를 민족주의와 연결하여 논의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지녔다. 16세기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및 17세기 영국의 내전과 혁명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근대의 지정학과 민족주의는 의문의 여지 없이,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불투명하게 얽혀 있다.23 그런데 앤더슨은 문화적인 문제들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 잠재적 가능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둘째로, 민족주의의 기원을 아메리카대륙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앤더슨은 지금까지의 민족주의 연구의 흐름, 즉 유럽에 초점을 맞췄을 뿐 아니라 19세기 중반의‘종족적 언어적 민족주의’에서 그 모형을 찾았던 연구흐름을 거스르는 주장을 폈다. 민족주의의‘크리올 선구자들’은 그들이 맞서며 자신의 민족성을 정의한 식민 모국으로부터 언어나 종족으로 구별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그간 민족주의를 단순히 언어나 종족 또는 다른‘원초적인’요인들에 의존해 설명함으로써 민족주의의 진정한 역사적·정치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막아온, 너무 오래 통용되던 민족주의 설명방식에 비해 한층 다양한 여러 민족주의들을 이론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시각이었다.

 

 

뜻밖의 성공

 

『상상의 공동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그 제목이었다. 앤더슨은 2006년 후기에서 “진부함이라는 뱀파이어가 이제 (그 제목에서) 거의 모든 피를 다 빨아먹었다”(207면 주)고 개탄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앤더슨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깊은 아이러니가 배어 있었다. 하나의 구호로서‘상상의 공동체’는 대체로 인문주의나 탈근대적 입장에서 엄청난 학문적 논의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런 저술 중 대부분은 주로 상상력과 창조성, 융합과 표절, 또는 (포스트모던과 인문주의 학문은 이론적인 천착이 거의 없고, 이론적이라고 칭송받는 특수성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기 때문에) 이런저런 특정 민족의 발명과정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들 주제는 앤더슨이 촉발하고자 의도한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상상의 공동체’라는 표현에서 앤더슨이 의미했던 바, 즉 민족은 경험되는 특질이 아니라 상상되는 것이라는 그의 입장 자체가 다소 진부했던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은 단 하나의 유일한 상상의 공동체는 아니었다. 민족이‘상상’된 것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속에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 사실상 얼굴을 서로 마주하며 사는 아주 옛날의 마을보다 더 큰 공동체는 모두 상상의 공동체이다. 어쩌면 그런 마을조차도 상상의 공동체일지 모른다.(6면)

 

민족과 민족주의가 발명되었다는 착상은 앤더슨이 매우 조심스럽게 그 현상을 다룬 태도와 맞지 않았을 것 같다. 민족이 발명되었다는 발상은 그 공식에 따르는 온갖 불경스러움과 더불어 홉스봄과 레인저(Terence Ranger)가 같은 해 출판한 책 『전통의 발명』24에 오히려 더 잘 표현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홉스봄과 레인저는 민족뿐 아니라 제국의 문화에서도 너무나 많은 것이 발명되었다는 주제를 천착한 바 있다.

『상상의 공동체』는 그 자체 목표에 비춰서는‘실패’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개입하는 학문분야에서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다. 즉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 민족들의 독립이 그간 거둔 성과를 무효화하는 와중에 주로 학문을 탈정치화하고 민족주의를 가당치 않은 문화적 박식의 일부로 만듦으로써 학문의 우경화에 일조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시대에 한 세대에 걸친 학문연구에서 『상상의 공동체』는 역사적 유물론이 파산했다는 그릇된 보고를 함으로써 문화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역사에 관해 풍부한 이론작업을 해온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매끄럽게 닦아놓았다. 가장 얄궂은 부분은, 진보정치가 계급뿐 아니라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에 반격할 필요가 절실한 바로 그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민족주의 연구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유럽중심적인 것으로 만들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서구의 구성물로 규정해 그 정통성을 앗아간 점이다. 적어도 이 책이 거둔 인기의 일부는 바로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파생물들, 즉‘지구화’와 새로이 개념화된‘제국’-모두가 시장과 자본주의의 해악을 막으려는 민족적·사회적 시도들과 상반되는 것들-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이 최근 2~3년간 전세계를 휩쓴 경제위기 속에서 무너지고, 지난 수십년간 신자유주의·탈근대·탈식민주의의 이름으로 국가를 부정하는 담론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위기에의 대응들이 얼마나‘내셔널’(민족적, 국민국가적)한 성격이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때, 적어도 민족주의와 민족국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민족주의적 변화 및 혁명적 변화의 역학관계를 『상상의 공동체』보다 더 훌륭하게 조명해온 학문적 전통으로 눈을 돌리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번역: 정은귀│인하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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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London: Verso 2006, 2차개정판(초판 1983, 1차개정판 1991). 국역본 『상상의 공동체』, 윤형숙 옮김, 나남출판 2002. 원제를 직역하면‘상상된 공동체’인데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이 개념에 대한 과잉해석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겠다. 본문의 인용문은 이 글의 옮긴이가 번역했고 인용 면수는 원서 2차개정판의 것이다-옮긴이.
  2.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주된 비평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으로 Umut Özkirmli, Theories of Nationalism (London: Palgrave 2000) 참조.
  3. Justin Rosenberg, “Globalization Theory: A Post-Mortem,” International Politics 42 (2005), 2~74면.
  4. Benedict Anderson, “Introduction,” Gopal Balakrishnan (ed.) Mapping the Nation, London: Verso 1996, 8면.
  5. Paul Hirst and Graeme Thompon, Globalization in Question: The International Economy and the Possibilities of Governance, Cambridge: Polity, 2nd ed. 1999; Robert Wade, “Globalization and its Limits: Reports of the Death of the National Economy are Freatly Exaggerated,” Suzanne Berger and Ronald Dore (ed.) National Diversity and Global Capitalism,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6; Radhika Desai, When Was Globalization? Origin and End of a US Strategy, London: Pluto 2009 (근간).
  6. Eric Hobsbawm, Nations and Nationalism Since 1780,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191면. (국역본 에릭 홉스봄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주주의』, 강명세 옮김, 창비 1994).
  7. Eric Hobsbawm, “Ethnicity and Nationalism in Europe Today,” Gopal Balakrishnan (ed.) Mapping the Nation, 1996, 259면.
  8. Aijaz Ahmad, In Theory: Nations, Classes, Literatures, London: Verso 1992.
  9. Ronald Suny, The Revenge of the Past: Nationalism, Revolution a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Stanford: Stanford Univ. Press 1993; Terry Martin, The Affirmative Action Empire, Ithaca: Cornell Univ. Press 2001.
  10. Hugh Seton-Watson, Nations and States: An Inquiry into the Origins of Nations and the Politics of Nationalism, London: Methuen 1977, 4~5면.
  11. Arno Mayer, Wilsonvs. Lenin: Political Origins of the New Diplomacy 1917-1918, Cleveland: World PublishingCo. 1964.
  12. Tom Nairn, The Break-up of Britain, London: New Left Books and Verso, 2nd ed. 1981, 331면.
  13. Radhika Desai, “Conclusion: From Developmental to Cultural Nationalisms,” Desai (ed.) Developmental and Cultural Nationalisms, London: Routledge 2009. Originally published as a Special Issue of Third World Quarterly 29(3).
  14. Radhika Desai (ed.) 앞의 책.
  15. Tom Nairn, 앞의 책 41면.
  16. Tom Nairn, 같은 책 340면.
  17. Tom Nairn, 같은 책 335~36면.
  18. Branko Milanovic, Worlds Apart: Measuring International and Global Inequality,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2005; Alan Freeman, “The Inequality of Nations,” Alan Freeman and Boris Kagarlitsky (eds.) The Politics of Empire, London: Pluto 2004.
  19. Chang, Ha-Joon, Kicking Away the Ladder: Development Strategy in Historical Perspective, London: Anthem 2002; Bad Samaritans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 New York: Bloomsbury Press 2008; ErikS. Reinert, How Rich Countries Got Rich and Why Poor Countries Stay Poor, London: Constable 2007.
  20. Radhika Desai (ed.) 앞의 책.
  21. David Hardiman, “The Crisis of the Lesser Patidars,” D.A. Low (ed.) Congress and the Raj, London: Heinemann 1977.
  22. 인도네시아 정치인 수까르노(Sukarno)가 1945년 제국주의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의 자유독립을 위해 세운 다섯가지 원칙으로 민족주의, 국제주의, 대의제, 사회정의,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옮긴이.
  23. Radhika Desai (ed.) 앞의 책; Desai, “Imperialism and Nation-States in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Ronaldo Munck and G. Honor Fagan (eds.) Globalisation and Security?-An Encyclopaedia. Vol.1: Economic and Political Aspects, New York: Praeger 2009, 397~428면.
  24. Eric Hobsbawm and Terence Ranger (eds.) The Invention of Tra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국역본 『만들어진 전통』, 박지향 외 옮김, 휴머니스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