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 제24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2000만원이며, 시상식은 2009년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프레스쎈터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공선옥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
심사위원
도종환 백낙청 염무웅 윤영수
2009년 7월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09년 6월 11일 회의를 갖고 올해부터 상금을 2000만원으로 인상하여 뛰어난 작가와 작품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데 더 힘을 기울이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백낙청, 염무웅, 윤영수, 도종환을 제24회 만해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심사위원회는 지난 3년 동안 출간된 문학서 가운데 등단 10년 이상 된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만해문학상의 규정에 따라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추천하고 심사위원이 추가한 아래의 11권의 저서를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공선옥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이승우 『오래된 일기』, 전성태 『늑대』(소설),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 김기택 『껌』, 나희덕 『야생사과』,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의 위해』(시),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인문), 정홍수 『소설의 고독』(기타).
7월 14일의 첫번째 모임에서는 시부문의 『껌』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등 3권과 소설부문의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 그리고 『늑대』를 최종후보로 압축하고 좀더 충분히 검토한 끝에 다시 모이기로 하였다.
두번째 모임은 7월 22일에 열렸다. 심사위원 각자가 여섯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활발한 논의를 벌이던 중 점차 소설 분야로 화제가 집중되었고, 결국 공선옥이 잇달아 내놓은 뛰어난 두 작품집 『나는 죽지 않겠다』와 『명랑한 밤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심사평
도종환(都鍾煥) 시인
김기택 시집 『껌』에는 먹는 행위에 내재된 살의와 적의, 잔혹성의 다양한 실체를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삼겹살」이라는 명편에서 이야기하는 비린내와‘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 냄새의 거푸집’은 우리의 일상 속에 배어 있는 살육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불편한 속도’와 그 속도의 식욕이 음미하는‘쫄깃쫄깃한 맛’이 스쳐간 자리에 놓인 야생동물들의‘부드럽게 터진 죽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솜씨 역시 김기택 시의 장점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무례한 문명의 속도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 묻는 질문도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시집 뒷부분으로 가면서 지금까지 본 김기택의 장점 이상의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갈망을 채워주는 작품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올해 상반기에 나온 시집 중 가장 주목받는 시집의 하나가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일 것이다. 그의 시를 끌고 가는 상상력, 특히 동화적 상상력은 다른 사람이 뛰어넘을 수 없는 영역에까지 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달곰이 사는 법」 「토란잎」 「오동나무」 같은 시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상상의 동네를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만년필」이나 「가을」 같은 작품들은 아름다운 상상력과 문학적 완성도가 잘 결합된 수작이다. 다만‘시간의 악어’가 다 뜯어먹고 돌아가‘노숙의 구름’들이 몰려오는 「빈집」처럼 폐허가 된 현실을 아프게 그리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폐허가 된 삶의 모습에서는 비켜서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전성태 소설집 『늑대』는 사회주의의 경계를 넘어 자본주의를 선택하는 일은 구원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타락과 야만과 부패의 길로 들어서는 일임을 몽골사회의 현실을 통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늑대」 「코리언 쏠저」 「중국산 폭죽」 등이 그런 작품이다. 「중국산 폭죽」에 등장하는 부랑아들의 가난하고 버림받은 야생의 삶 속에 남아 있는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시각이야말로 전성태의 장점이라 하겠다.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역시 전성태의 구수한 충청도 입담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재미있게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작품집을 한번 더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가난하고 각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건강하다. 「울엄마 딸」의 승애와 울면서 그를 찾는 건용이에게는 풋풋한 힘이 있다. 또다른 소설집 『명랑한 밤길』과 최근 장편 『내가 가장 예뻤을 때』까지 공선옥의 작품에는 악다구니도 있고 전라도 사투리로 빚어내는 징한 눈물과 억척이 있다. 아프고 아린 삶의 여정과 기구한 운명을 헤쳐가는 박복한 생애들이 있다. 그러나 욕설을 쏟아내며 그 절박한 운명을 하나씩 짚어가는 사이사이에 갈빗대 아래가 싸하게 저려오는 슬픔이 있고, 아련한 사랑의 흔적이 있고, 서정과 노래가 스며 있다. 단편 「일가」에서 보이는 스토리 전개의 어색함과 공선옥표 소설의 반복이 주는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이게 바로 삶이 아니냐고 말하는 소설의 생생함과 역동성에 점수를 주자는 데 심사위원들은 동의하였다.
이 상이 공선옥의 신산한 삶과 소설에 용기와 힘이 되길 바라며, 심사에 올라온 다른 작품들도 충분히 상을 받을 만한 수작들이므로 올해 안에 더 큰 문학상을 받게 되길 바란다.
윤영수(尹英秀) 소설가
최종 검토대상에 오른 3권의 소설집과 3권의 시집이 다 만만치 않았다.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는 청소년소설집이다. 표제작 「나는 죽지 않겠다」와 「라면은 멋있다」 「울엄마 딸」 등은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천진한 입심으로 주위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풋풋한 삶을 시원시원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성태 소설집 『늑대』에서는 표제작뿐 아니라 「중국산 폭죽」 「누가 내 구두 못 봤소?」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등을 좋게 보았다. 몽골 초원을 채운 허수한 바람, 우리나라 시골에서 자연스레 익은 향토적 입담, 또 어느새 생사를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의 극한 상황을 그려내는 작가의 스케일이 크고 담대함을 확인했다. 소설집 후기에 밝힌 대로 그는 소설가로서‘아주 오래’그리고‘잘’쓸 작가가 분명하다.
김기택 시집 『껌』은 시각·청각뿐 아니라 촉각·미각적이다. 밥상에 오른 「산낙지 먹기」 「삼겹살」, 심심풀이로 씹는 「껌」을 보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고 씹고 씹힌다. 「계단 오르는 노인」이나 「긴 나무의자」도,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사람도 일면 과장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냉혹한 현실이다. 평론가 김진석의 말대로‘시적 고행으로 얻어진 힘으로 그는 이 악다구니를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다.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작은 들꽃이 깔린 여름 벌판처럼 들여다볼수록 한편 한편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나비」 「찔레꽃」 「만년필」 「복사꽃」 등의 시들은 당장 외워서 지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시의 본질이 인간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료해주는 것이라면 그의 시집은 더도 덜도 아니게 그 책무를 다 하고 있다.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는 중후하다. 나이 들어도 젊은날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치기어린 작가나 또는 나이 들었다 하여 스스로 노인의 잔소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노회한 작가들에 비해 그가 던지는 화두는 어른스러우면서도 겸손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학이 있다면 어른의 의연한 문학이 있어야 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실하게 떼어놓는 그의 발걸음이 우리 문학의 귀한 열매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훌륭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대하게 되어 며칠이나마 행복했는데 수상을 위해 한 작가의 작품을 뽑아야 하는 고충이 또한 컸다. 시에서는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 고른 완성도 면에서, 소설 쪽에서는 소설집 2권에 이어 최근에도 장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발표하는 등 누구보다도 열심히 쓰는 작가인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가 집중적으로 토의되었다.
결국 만해상의 근본 취지를 생각하여, 아깝지만 송찬호의 동화적 아름다움을 접고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와 『명랑한 밤길』을 수상작으로 합의했다. 합의를 보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공선옥 소설의 대부분의 결말은 절망적인 가난 속에서도 이유를 불문하고 경쾌하고 건강하다. 그런 그의 특기가 수상작 중 하나인 청소년소설 장르에서 더욱 장점으로 드러난다. 사실, 우리 기성세대가 2세들에게 줄 수 있는 전언이 용기와 낙관 외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들의 삶 역시 그것이 정도(正道)인지 모른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공선옥 소설은 우리에게 그 힘을 준다.
염무웅(廉武雄) 문학평론가
날마다 좋은 시와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에 넘치는 행복이지만, 문학상 심사를 위해 한꺼번에 많이 읽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알다시피 작품이란 각자 나름대로 내적 필연성의 소산이어서, 진지한 작품일수록 서로 비교되기를 거절하는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상이한 장르들 속에서 수상작을 고르는 것은 더욱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 쪽에서 거론된 김기택과 송찬호는 근년에 다른 문학상의 수상으로 이미 역량이 공인된 중견들인데, 그들의 시집 『껌』과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과연 명불허전이란 실감을 안겨주었다. 김기택의 경우, 가령 「미아 재개발지구」 「고속도로」 「60년대 동화」 같은 작품들에서 보듯이 예리한 관찰력과 든든한 비판정신에 근거하면서도 이 시인 특유의 절묘한 비유법을 통해 시 읽는 재미를 한껏 맛보게 했다. 송찬호는 나에게는 낯선 시인이지만, 이번 심사를 통해 그의 시세계를 접한 것은 큰 기쁨이다. 놀랍게도 그의 상상력은 물질적 탐욕이나 심리적 압박 같은 이 시대의 지배적 경향이 맥을 못 추는 그만의 동화적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는 말하자면 그가 건설한 동화나라의 일상에 관한 슬프고도 화사한 생태적 보고서인 것이다.
소설 쪽에서 논의된 전성태의 경우, 농촌공동체 내부의 풍경을 따스하면서도 풍자적으로 묘사하던 초기작의 세계에서 점차 시야를 넓혀나가고 있고 구성이나 문장에 있어서도 밀도를 더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늑대』는 전성태 문학의 중간결산과도 같은 의의를 가진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품들간의 수준이 고르지 않아 보이고, 특히 표제작의 경우 뛰어난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빈번한 시점 변화 때문에 독자로서는 얼마간 혼선을 겪게 된다. 공선옥의 경우, 작년 심사에서 거론된 『명랑한 밤길』 이후에도 『나는 죽지 않겠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을 잇달아 발표하는 생산성을 과시하고 있다. 다들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 작가는 등단 이래 지금까지 어떤 일관된 문학세계를 견지해왔다. 아마 그것을 민중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터인데, 그의 소설은 이제 입에 올리는 것도 쑥스러워진 이 용어의 재충전 가능성을 시험하는 흔치 않은 성공사례일 것이다. 더 철저하게 파고들든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면 하는 부분들이 더러 눈에 뜨이지만, 작품 전체를 밀고나가는 힘찬 낙관적 에너지가 그런 사소한 험을 간과하게 만든다.
이상 네분은 누구나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다만,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이 상이 다름아닌 만해문학상이라는 점일 것이고, 또한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에 수여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작품을 낳기까지 투입된 작가의 문학적 이력 전반을 평가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문학상 수상자의 결정은 그런 점에서 언제나 문학사적 사건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공선옥이야말로 이 시점에 그같은 사건의 의미를 감당할 만한 작가라 믿고, 그에 대한 수상 결정에 기꺼이 동의한다.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본심에 오른 11권 중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와 『소설의 고독』은 분명한 문학적 성과지만 창작품에 비중을 더 주는 만해문학상의 관행으로 인해 끝까지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시집 5권은 모두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고통을 달래는 순서』는 “늘 죽어 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겹」)이 도처에 감지되는 시집이고, 『야생사과』는 이 시인 본래의 단아함을 간직한 시와 스스로 변모를 선언한 대로 새로운 활달함이 돋보이는 「분홍신을 신고」 「삼킬 수 없는 것들」 같은 시가 어우러져 풍성했다. 다만 새로운 경지로 가는 과정에서 다소 흐트러진 경우도 눈에 띄었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에는 「어른 곰」 「풀꾼」 「도란도란」 등 빛나는 시들이 눈을 끌지만, 더러 시적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도 있다.‘가공되지 않은 진실’에서 시인 자신이 느낀 감동이 독자한테 어김없이 전달되려면 아무래도 일정한 시적 가공(加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빼어난 작품을 고르게 꾸준히 써내고 있는 시인이 김기택이다. 『껌』에도 특유의 미덕이 생생한데, 다만 새로운 세계로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심사과정의 큰 수확은 송찬호 시인을 집중적으로 읽을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의 시세계가‘동화적’인 것은 동화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풀과 나무에 대한 진술과 동물이나 사람에 대한 진술을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그의 시적 언어가 동화 또는 신화를 낳는 인간능력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반면에 실생활의 누추함과 시끌벅적함에서 다소 떠나 있다는 의미로‘동화적’인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오래된 일기』는 이야기 솜씨와 은밀한 심리의 탐색이 돋보인다. 그런데 시에서‘새로운 서정’을 주장하는 이들의 표현을 빌린다면‘고백 모드’에 너무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중에도 사람살이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데 성공한 「실종사례」나 「전기수 이야기」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늑대』에 실린 상당수 작품은 몽골을 무대로 삼고 있는데 그것이 단순히 작품소재의 확대가 아닌 작가의식의 확장을 보여주는 점이 뜻깊다. 표제작 자체는 새로운 실험이 온전한 성공을 거둔 예로 보기 어려우나, 「코리언 쏠저」와 「중국산 폭죽」은 분명한 성공작이며 각기 다른 소재와 기풍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이미테이션」도 모두 매력있는 작품들이다.
훌륭한 후보가 많지만 심사위원들의 최종 관심은 공선옥으로 모아졌다. 『명랑한 밤길』은 작년에도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집으로 나 자신 수상작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했었다. 그 뒤로 저자는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와 장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잇따라 간행했는데, 전자가‘청소년소설’로 분류되었다 해서 그 탁월성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두 소설집을 묶어서 상을 주는 데 나도 기꺼이 동의했고, 이번 수상을 계기로 공선옥이 자기 고유의 미덕을 간직한 채 소설가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장편도 써내기 바란다.
수상소감
거친 밤길을 명랑하게!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신동엽창작기금, 올해의 예술가상, 가톨릭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수상.
저에게 만해문학상을 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든 소감은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만해문학상이라니, 저로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상’이라는 방식의‘벌’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장차 이‘상벌’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제 인생에 준엄한 지침이 될 것이 예견되어 삼가 옷깃을 여밀 따름입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생각해봅니다. 80년 광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어느날, 나는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광주임을 알았습니다. 사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웠고 나는 그 고통의 근원을 알고 싶었습니다. 고통의 근원을 알아냈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을지라도, 우선 그 내력이라도 알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의 근원을 모른 채 고통받고 사는 것이 무서워서 글을 썼습니다.‘글 쓰며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한 자각이 없이 글 쓰며 사는 삶이 시작된 셈입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사는 동안에도 세상은 새로운 고통들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고통을 유발하는 수많은 이유들 가운데 이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것들 중의 하나가‘가난’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가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풀어가는 방식일 테지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도 좋을 기반 자체가 허물어져버린 참담하고 기막힌 시대가 도래한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작가인 나는 그만 이 세상을 향해서 무슨 말도, 무슨 글도 내보낼 수 없을 듯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내가 살아가는 최소한의 몸짓인 글쓰기로 다시 돌아오고 맙니다. 삶이 진창일수록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 또한 간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당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대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문제해결사가 아니라 응시자인지도 모릅니다. 최선을 다해서, 고통의 근원들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 또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고통을 바라보며 고통의 강을 건너는 것이‘글 쓰며 사는 사람’의 운명임을 저는 이제야 자각합니다.
만해선생이 그러하셨듯이, 저 또한 밤을 도와 부지런히 걸어간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어도 밤이 새도록,‘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뚜벅뚜벅, 명랑하게 거친 밤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