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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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1976년 서울 출생.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freewill0408@hanmail.net

 

 

 

강박 2

 

 

물컵 속, 아기 주먹만한 감자

태아처럼 둥글게 담겨 있다

온몸에 숨은 입술

젖꼭지 문 듯 물을 빤다

물과 감자의 경계

포근한 잠에 젖어 물은 감자가 된다

 

감자는 쑥쑥 자란다

몸에서 밀알만한 눈을 튼다

팽팽한 햇살 속

감자는 손바닥만한 이파리를 피워 올린다

 

이파리는 매끄러운 유리 위의 달팽이처럼 기어오른다

제가 살 곳은 컵 속이 아니라는 듯

집을 떠메고 공중으로 뻗어나간다

끊임없는 뒤척임,

 

점차 시드는 이파리

실핏줄 같은 잎맥마저 까맣게 탄다

역류하듯 흐르는 피

흘러들어온 꿈은 흘러나간다

 

쪼글쪼글 늙는, 주먹감자

물은 진흙탕처럼 썩고

 

컵 속의 감자

푹 꺼지는 가임의 구덩이

내부엔 흰머리처럼 곰팡이가 엉켜 있다

 

 

 

먼지 더듬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읽다가

책의 묵은 먼지를 떤다

향은 어디서 전해오는가

코를 찌르는 미모사의

이파리가 울렁이는 듯한 여름

 

나는 방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생각했다

 

다리 저린

삶이란 뜨거운 구들장을 지고

사는 것이다

이모들이 모여 수다한 일에 대해 떠들 때

나는 동네의 철문이 덜그덕거리는

소리에 온통 마음을 쏟는다

 

유리는 가장자리부터 금이 간다

 

희망을 몰고 건장히

걸어가는 서울 사람들 한

틈으로 바람이 꽉 들어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