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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음. brokenname@empas.com
장편연재 1
두근두근 내 인생
프롤로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 수 있을지 알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내겐 누군가의 한시간이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달이 일년쯤 된다.
나는 이제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대꾸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
바람이 불면, 내 속에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言〕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 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에 나무. 밭 밑엔 땅. 당신은 당신…… 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어렸을 땐 온종일 말을 줍고 다녔다.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종알대며 주위를 어지럽혔다. 각각의 이름은 맑고 가벼워 사물에 달싹 붙지 않았다. 나는 어제도 듣고 그제도 배운 것을 처음인 양 물어댔다.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 가리키면, 식구들의 입에서 낯선 소리를 가진 활자가 툭툭 떨어졌다.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건 뭐야?’라는 말이 좋았다. 그들이 일러주는 사물의 이름보다 좋았다.
비는 비. 낮은 낮. 여름은 여름. 살면서 많은 말을 배웠다. 자주 쓰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가볍게 퍼져가는 말이 있었다. 여름을 여름이라 할 때,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다 믿어 자꾸 물었다. 땅이라니, 나무라니, 게다가 당신이라니…… 입속 바람을 따라 겹치고 흔들리는 이것. 저것. 그것. 내가 ‘그것’하고 발음하면 ‘그것……’하고 퍼지는 동심원의 넓이. 가끔은 그게 내 세계의 크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은 거의 다 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바람이라 칭할 때, 네개의 방위가 아닌 천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보는 것. 당신이라 부를 때, 눈 덮인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은닉한 평평함을 헤아려보는 것. 그러나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바람은 자꾸 불고, 태어난 이래 나는 한번도 젊은 적이 없었으니까. 말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내가 세상과 최초로 말을 섞은 곳은 물 맑고 나무 많은 시골마을이었다. 강줄기가 여러개로 나뉘고, 휘돌아, 다시 감기는 그곳에서 나는 내 이름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었다. 옹알이에서 단순한 문장을 만들 때까지 3년. 부모님이 외가에 신세를 진 기간만큼이다. 피부가 약한 아기였으니 대부분 그늘에서였을 거다. 필요한 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쓰는 집안이었으니 생활과 가깝고 선명한 말들이었을 거다. 만날 티브이만 보고 자란 내 사촌은 태어나 처음 한 말이 ‘엘지(LG)’였다는데…… 나는 말이 더뎌 한동안 부모 속을 태웠다. 어머니는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근심하며 친척 언니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버지는 애들은 말 못할 때가 가장 예쁜 거라며 묵묵히 일터에 나갔다. 인근에 들어선다는 대호(大湖)관광단지가 막 부지를 다지고 있었고, 아버지도 거기서 막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셈 밝은 외할아버지는 타지에서 밀려올 노동자를 위해 텃밭 앞에 일자형 건물을 지었다. 콘크리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외풍 심한 집이었다. 그 안에는 모두 네 가구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 가족의 방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십대 부부와 갓난아기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엌도 시원찮은데다 세 사람이 지내기에 터무니없이 좁은 방이었지만, 월세도 생활비도 내지 않는 터라 찍소리 않고 얌전히 지냈다. 아무 때고 크게 울던 나만 빼고, 조용조용, 모두 그랬다 한다.
외할머니는 슬하에 자식을 많이 두셨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 도합 여섯명이다. 언젠가 ‘엄마,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랑 평생 사이가 안 좋았다면서 왜 그렇게 자식이 많아?’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어…… 그게 가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덜컥덜컥 애가 들어섰다더라’고 민망해하며 답해주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중 여섯째로 어릴 때 별명이 ‘시발공주’였다고 한다. 입이 건 사내들 틈에서 나고 자라,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툭하면 상말을 내뱉었던 까닭이다.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깜찍하게 욕을 하고 다녔을 상상을 하면 지금도 친근하니 만만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드센 성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 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시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부터인 듯하다. 일찌감치 애를 배어 퇴학을 당했을 때라든가, 우리 아빠가 다섯명의 외삼촌들에게 맞아죽을 뻔했을 때, 빚을 이고 몇번이나 이삿짐을 싸야 했을 때와 같은 경우 말이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사위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가장 큰 이유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새끼’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진짜 새끼’를 안고 들어왔다는 거였다. 두번째 이유는 가장인 주제에 생활력이 없다는 건데, 열일곱 학생에게 돈 벌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 외할아버지는 다짜고짜 퉁명스레 물었다.
“그래, 너는 뭘 잘하니?”
어머니의 임신으로 말미암아 집안에 몰아닥친 온갖 울음과 실랑이의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간 후였다. 아버지는 무릎 꿇은 자세로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아버님, 저는 태권도를 잘합니다.”
외할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끙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태권도 특기생으로 도에서 제일 큰 체육고등학교에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그런 재주는 살아가는 데 별 쓸모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외할아버지의 침묵이 초조해 이렇게 말했다.
“보여드릴까요?”
주먹을 불끈 쥔 게 누가 보면 장인을 때리려 한다고 오해할 만한 풍경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움찔하여 더욱 권위적으로 말했다.
“네 주먹에서는 쌀이 나오나보지?”
“그게, 졸업하면 작은 도장에라도……”
졸업할 가망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는 덧붙였다.
“그리고 또 뭘 잘하나?”
아버지의 머리 위로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스트리트파이터>를 잘하는데……’
하지만 그런 걸 입 밖에 냈다간 장인에게 귀싸대기를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선생한테 대드는 걸 잘하는데……’
그렇지만 그것도 장인이 바라는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럼, 정말 나는 뭘 잘하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자기를 빤히 노려보는 장인 앞에서 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포기를 잘하는구나!’
사위가 물러간 자리에서, 외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빈정댔다.
“잘하는 거라곤 일찍부터 새끼 치는 거밖에 없는 놈이더구나.”
나이 들어 지아비 어려운 줄 모르게 된 외할머니가 조그맣게 구시렁거렸다.
“그것도 재주는 재주지요.”
어머니는 깻잎머리를 한 채 아무 말도 않고 새치름히 앉아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딸의 행실보다 안목에 실망한 듯 먼 데를 보며 탄식했다.
“남자가 돈이 없으면 허세라도 있어야지. 이건 뭐 너무 숙맥 같아서……”
하지만 그건 외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단단히 잘못 본 거였다. 아버지는 숙맥이 맞았지만 무모하고 모험심 강한 숙맥,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숙맥이었다. 그러니까 결혼식 날 주례하고 멱살 잡고 싸우고, 친구들과 노느라 자기 아내를 ‘질마재 신화’의 신부처럼 내버려뒀을 거다. 그러니까 친구 말만 믿고 여러 일에 손댔다 실패한 뒤, ‘우리 집 가훈’이란 숙제를 들고 온 내게 태연히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일러줬을 거다.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표구까지 해 걸어놓은 문구였다. 친구들과 서울로 월드컵 경기를 보러 갔다가, 시청역 근처 글씨 쓰는 노인에게서 만들어온 거였다. 나는 가훈 전시회 때 교내에 ‘붕우유신’이 다섯개나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게 다 아버지 친구들 거였다. 일찍부터 운동을 같이 해온 사내들의 우정이란 실로 엄청나게 끈끈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액자 속 네 글자를 두 자로 줄여 범박하게 빈정거렸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부자(富者) 친구와는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쯤으로 알고 있는 여자의 반응으론 당연한 거였다.
외할아버지는 사위에게 학업을 마저 마치라고 했다. 체고는 잘릴 것이 빤하니 근처 어디 정원 미달의 고등학교에라도 들어가 졸업장을 따라는 거였다. 교장한테는 자기가 잘 말해보겠다고. 하지만 소문 빠른 동네에서 아버지를 받아주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학생을 허락했다가는 학교의 기강과 품위가 흐려진다는 거였다. 배운 것 없어도 나름 동네유지라 자부해온 외할아버지의 긍지는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외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사위를 건설현장에 밀어넣었다. 남자는 모름지기 출근을 해야 한다면서.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는 훈수도 잊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아버지는 장인의 뜻에 따라 처가살이를 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됨에 따라 군에서는 ‘놀기 좋은 도시, 대호’라는 구호 아래, 전 고장의 유원지화를 꾀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업의 하나가 물길을 크게 터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있는 천연놀이공원 같은 걸 만드는 거였다. 장기적으론 부모님의 고향을 포함한 몇개의 리(里)가 없어질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옆방 뜨내기 사내들과 함께 공사장에 나갔다. 그러고는 공사판에서 ‘한서방’이라 불리며 놀림과 귀염을 한몸에 받았다. ‘그걸’한 서방이라는 게 아니라 실제 성이 한가여서였다. 공사장 인부들은 아버지의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어, 괜찮어, 이 고장선 장가가면 다 으른이여’ 다독였고 ‘최가네는 공짜로 사위 생겼네’하며 낄낄거렸다. 아버지는 처음에 공사일에 만족했다. 구성지고 펄떡이는 아저씨들의 입담도 신선했고, 처가에 체면도 서고, 몸 속 끓는 에너지가 해소되는 게 개운해서였다. 운동 같은 거, 만날 매만 맞고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기도 했다. 거친 벌판에 나가 어른들과 대등한 일을 하니, 야산에 올라 가슴팍을 풀어헤치며 ‘이것이 진짜 세계다!’ 포효하고픈 심정도 들었다.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에 지쳐 얼마 안 가 감쪽같이 사라질 긍지였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내 존재를 알았을 때, 내 몸은 이미 많이 자란 상태였다. 어머니는 학교 화장실에서 처음 그 사실을 알았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슬쩍 빠져나와, 제품 설명서를 몇번이나 읽어본 뒤 확인한 사실이었다. 암기력과 숫자 감각이 약한 어머니는 플라스틱 임신테스트기에 나오는 띠가 한 줄이 맞는지, 두 줄인 게 좋은지 몰라 한참 헷갈려 했다. 임신 여부보다 하나냐 둘이냐는 산수문제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공부는 못해도 본인이 늘 똑똑하다고 자부해온 어머니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평소 생리가 불규칙한 편이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던 거다. 어머니는 꾸물꾸물 한 손으로 팬티를 올린 뒤, 밖에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어머니는 오줌 묻은 손에 비누를 묻혀 꼼꼼하게 씻었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살펴보다, 이마에 난 여드름을 두 손으로 짰다.
아버지는 읍내 커피숍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 주 고객층이 중고등학생인,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한 까페에서였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몇번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미팅에서 만난 농업고등학교의 폭주족이 여고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와, 운동장을 몇번이나 돌고 가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 녀석은 오토바이 앞바퀴를 번쩍 든 채 “최미라! 사랑한다!”를 세번 외친 뒤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르릉- 사라졌다. 그 뒤, 전교의 ‘최미라’가 교무실로 불려가 차례로 문책을 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팅 코스는 보통 찻집에서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게 정석이었다. 남학생들은 어머니의 얼굴에 처음 반하고, 노랫소리에 두번 반했다. 어머니가 볼 때, 농·공고 남자들은 인문계 애들보다 활달하고 돈을 잘 썼다. 하지만 인문계 아이들의 반듯함과 자존감은 그것대로 매력이 있었다. 어머니가 체고생을 만난 것은 아버지가 처음이었다. 부러 약속을 잡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뭐랄까, 앞서 말한 두 학교의 특징을 반반씩 섞어놓은 구석이 있었다. 작은 재능이나마 한번이라도 인정을 받아본 사람의 자긍심. 그리고 그 재능이 ‘운동’이었던 이가 갖고 있는 미묘한 열등감과 순박함이 그것이었다.
까페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사복 차림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왜 아까부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번처럼 또 헤어지자고 하는 건 아닌지 초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아까부터 찻집이 영 불편했다. 여자들이 왜 까페 같은 데를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최미라’는 부쩍 성숙해져 있었다. 어머니가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입술에 침을 바를 때마다, 아버지도 덩달아 마른 입술을 핥아댔다. 잠시 후, 어머니는 결심한 듯 입을 뗐다.
“대수야 이리 와봐.”
“왜?”
“오라면 와봐.”
아버지는 상체를 바싹 기울였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아버지의 귀에 대고 뭐라 뭐라 속삭였다. 귓바퀴를 덮은 솜털이 바싹 서는 게 감미롭고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그걸 왜 인제서 말해?”
까페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아버지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신경 쓰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대응했다.
“왜 화내? 씨이. 나는 세상에서 화내는 사람이 제일 싫어.”
최근 적성카드에 취미-타협, 특기-타협이라 적었다 교무실서 호되게 맞은 바 있는 아버지는 이번에도 여자친구에게 급 사과했다.
“어. 미안.”
그리고 두 사람은 17년 된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대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애초에 대책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주위에선 몇몇 청소년들이 거만하고 자족적인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밀크셰이크가 담긴 길쭉한 유리잔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깔고 주절댔다.
“미라야, 나는……”
그러고는 뜬금없이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가 하는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절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둥, 너무 가난하다는 둥,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렵다는 둥, 생각해보니 집안에 암 병력도 있는 것 같다는 둥 논리도 두서도 없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잠자코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어 부드럽게 대꾸했다.
“대수야.”
“응?”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새똥으로 위장하는 곤충이 있대.”
“근데?”
“그게 꼭 너 같다.”
마을의 경기는 비싼 영양제를 맞은 환자처럼 일시적인 활기를 띠고 있었다. 답답하리만치 조용하던 시골 마을엔 굴삭기와 사다리차, 레미콘 트럭 따위가 흙먼지를 날리며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그 즈음, 어머니가 다니는 학교에서 각 반에 학용품 쎄트를 돌렸다. 비닐봉투에 든 문구쎄트로, 전교생에게 공짜로 나눠준 거였다. 볼펜이며 수정액, 색색의 포스트잇과 샤프심의 몸통에는 H건설업체의 로고가 산뜻하게 새겨져 있었다. 부모님의 고향을 중심으로 관광단지가 영향을 끼칠 만한 모든 학교에 배포된 모양이었다. 마을 어른들에게도 세제며 주방용품 따위가 전달됐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공짜가 그렇듯 그 거래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어느날 청소시간, 한 아이가 와 물었다.
“미라야 무슨 일 있니?”
이름은 한수미로 반장에다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였다.
“왜? 표 나?”
“응. 야자시간에 통 안 떠들길래. 나 사실 그것 땜에 좀 힘들었거든.”
어머니가 비질을 하다 말고 말했다.
“이런 솔직한 년.”
“이름 적기도 뭣하고 안 적기도 난처하다고.”
“수미야.”
“응?”
“이래서 너랑 나랑 안되는 거야.”
“뭐가?”
“담임을 버려. 너 담임이 너랑 끝까지 갈 것 같아? 남는 건 친구라고.”
한수미(지금은 아줌마지만 그냥 한수미로 부르겠다)가 얕은 조끼 주머니에 양 손을 집어넣으며 은근하게 말했다.
“야, 담임은 버리는 게 아니야.”
“그럼?”
“담임은 활용하는 거야.”
어머니가 주춤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런 무서운 년.”
한수미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고민이 뭔데?”
“됐어. 비밀이야.”
“나한테도?”
“그래, 이년아.”
“야, 나는 너한테 고민 다 얘기하잖아.”
“1등 하다 3등 해서 서럽다는 게 무슨 큰 비밀이냐?”
한수미가 정색하며 외쳤다.
“야, 네가 3등의 고독을 알아?”
어머니는 예의 비꼬는 말을 할 때, 그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했다.
“수미야.”
“응?”
“꺼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어떤 벗들보다 ‘붕우유신’하는 사이였다. 초중고를 같이 다녔을 뿐 아니라, 도시락도 함께 먹고 미팅도 자주 나가는 단짝이었다. 사실 첫 경험 후 어머니는 한수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려 했었다. 하룻밤 새, 발끝이 1쎈티쯤 뜬 게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머니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책상머리에 고개를 박은 채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들을 굽어보며 생각했다.
‘쟤들은 내가 남자랑 잤다는 걸 알까?’
물에 뜬 물감처럼 죄책감과 우월감이 엉기고 섞여 이상한 무늬를 만들어낼 즈음의 일이었다. 며칠 뒤, 어머니는 쓰레기장 앞으로 한수미를 불러냈다. 하지만 자기가 말도 꺼내기 전에, 한수미가 성적 얘기를 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 바람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몇해 전부터 H건설업체 직원의 자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학급 분위기에도 변화가 일었다. 그중 가장 뚜렷한 게 갑작스런 석차 변동이었다. 전입생이 늘어나면서, 시골 1등은 갑자기 3등이 됐고, 시골 10등은 15등이 됐다. 시골 꼴찌는 여전히 꼴찌였지만 기분이 나쁘긴 매한가지였다. 45명 중 꼴찌와 50명 중 꼴찌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번도 1등을 놓친 적 없는 한수미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대처에 나간 영재의 비극은 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온 일이었다. 하지만 고향에 얌전히 앉아 있다 봉변을 당한 수재의 불운은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그들이 도시에 나간 게 아니라, 도시가 그들에게 스민 거였으니까…… 어머니는 단짝의 우울과 좌절에 마음이 쓰였다. 말은 안해도 한수미를 늘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한수미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점수는 올라도 등수는 그대로인 이상한 현상이 반복됐다. 그리고 그 현상은 한수미가 대학에 갈 때까지 지속됐다. 여고 입학식 날, 전체수석의 ‘학생선언’이 있었다. 무수한 ‘보통’ 학생들 무리에 섞여 있던 한수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쪽 발로 땅바닥을 비비고 있었다. 그러곤 자세가 불량해 보인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선생님께 지적을 당했다. 어른들 말로 타지에서 온 학생이 대표 선언을 한 건 개교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미라야.”
“뭐?”
“굳이 말해주기 싫으면.”
“………”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을 알려줄게.”
어머니가 험상궂게 말했다.
“저번처럼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면 죽는다. 엉?”
“야, 내가 해보니까, 최선, 그거 할 거 못 되더라. 핑계도 변명도 안 통하는 허허벌판, 광야에서 쪽팔리는 기분이라고.”
어머니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계속 그럴 거잖아. 넌.”
“응…… 아마. 것도 습관이라 고치기 힘들어.”
한수미가 입술을 달싹였다.
“어쨌든 나는 고민이 있을 때, 노트를 반으로 갈라 표를 만들어. 그런 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 그럼 이상하게 한눈에 답이 보일 때가 있더라고. 답답하면 너도 그렇게 해봐.”
아버지는 아직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한 상태였다. 낳자고 할 자신도, 지우자 할 용기도 없어서였다. 앞으로 자기 삶은 어떻게 될지,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아버지는 어머니가 모든 걸 결정해주길 바랐다. 그러면 자기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다정하게 눈을 맞춘 뒤 고개 끄덕일 수 있을 텐데…… 더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조만간 돈이 필요하게 될 터였다. 아버지는 뒤척이며 돈 벌 방법을 궁리했다.
‘신문을 돌려볼까? 아님 중국집 배달일은 어떨까?’
선불을 당기지 않는 한, 그 돈도 한달 뒤에나 만져볼 수 있을 거였다. 더군다나 아버지에겐 오토바이 면허도 없었다. 당장 현실적인 방법은 누군가에게 돈을 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 중 그만한 현금이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체육관에서 유일하게 캘빈클라인 팬티를 입는 동기가 있었지만, 녀석은 교내 짠돌이로 유명했다. 아버지는 우울했다. 무엇 하나 또렷한 게 없는 상황이, 그 와중에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불끈 솟는 아랫도리에 짜증이 났다. 주말이면 어머니가 기숙사 근처로 찾아올 예정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타지 병원에서 확실한 진단을 받아보려는 거였다. 적어도 그때까진 아버지도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아버지는 밤새 한숨을 내쉬며 누군가 천장에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같은 시간, 어머니는 연습장을 펴놓은 채 볼펜을 입에 물고 있었다. 한수미가 일러준 방법을 한번 해볼 요량에서였다. 어머니는 연습장 가운데 긴 선을 그었다. 그런 뒤 왼쪽에는 출산의 나쁜 점을, 오른쪽에는 좋은 점을 적어나갈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우선 왼쪽 칸부터 채워나갔다.
1. 부모님께 혼난다
2. 학교에서 잘린다
3. 사람들이 욕한다
4. 친구들도 욕한다
5. 돈이 없다
6. 돈 벌 방법도 없다
7. 살찐다
8. 죽을 수도 있다
9. 몇년간 아무것도 못한다
10. 대수 맘을 모른다
11. 대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른다
12.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13. 내가 뚱뚱해져 대수가 바람을 피운다……
목록은 자꾸 늘어갔다. 그것도 점점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어머니의 머릿속엔 어느새 가난하고 피폐한 집안의 풍경과 폭력을 일삼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반항적인 아들, 울다 지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와 있었다. 얼핏 보면 벌써 결론이 난 모양새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속단하지 않고, 침착하게 오른쪽 칸을 채워보기로 했다.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는데, 아무렴, 그렇지 하고.
1. ……
2. ……
어머니는 당황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실감이 안 나고 진짜 같지 않아 적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노트에 자기가 아는 말, 자기가 믿는 말을 쓰고 싶었다. 남들이 하는 말, 남들이 믿으라는 얘기가 아무리 아름답고 옳다 해도 말이다. 어머니는 무서웠다. 1번 혹은, 4번 때문에. 5번 또는 12번 때문에. 하지만 진짜 두려움의 근원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한 존재를 향한 사랑의 예감, 그 거대한 불안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걸 몰랐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내친김에 한대수에 관한 노트도 작성했다. 그건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장점: 착하다
단점: 지나치게 착하다
그리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 연습장의 여백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해답은 예상 외로 쉬운 곳에 있었다.
“소변에 단백질이 있네요?”
“네?”
“원래 혈압이 있었나?”
“아버지는 고혈압이 있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란히 앉아 의사 말을 경청했다. 의사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경우 산모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최미라씨의 장기가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경우 태아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아버지가 절박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의사는 사무적인 태도로 답했다.
“치료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어머니가 조급하게 끼어들었다.
“그게 뭔데요?”
의사는 두 미성년자의 얼굴을 흘깃 쳐다봤다.
“말씀해주세요. 선생님. 네?”
“그러니까 유일한 치료법은……”
“네.”
의사가 차트를 넘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분만입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건 열여덟 봄부터였다. 뭔가 선택을 하는 게 어려웠을 뿐이지, 막상 출산을 결정하고 나니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처가살이에 적응해나갔다. 어머니는 마음놓고 나에 대한 애정을 퍼부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노래하듯 흥얼거렸다.
“아가야, 아가야, 너는 어디서 왔니. 하늘에서 떨어졌니. 땅에서 솟았니.”
그러곤 내게 온갖 연예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봐봐. 강타 오빠야. 잘생겼지? 응? 몰라? 그럼, 여기 희선 언니. 어디 보자. 또……”
아버지와 달리,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던 어머니는, 태아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라는 얘기를 그렇게 엉뚱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태교에 힘썼다. 몸이 약해, 좋다는 건 다 구해 먹었고, 아름다운 풍경만 보고, 건전한 생각만 하려 애썼다. 미혼모의 수치나 자괴 따윈 안 가져도 좋았다. 어머니는 이런 때일수록 뻔뻔해져야 한다고, 위축되면 사람들이 더 깔본다며 당당하게 굴었다. 어머니는 딸기나 사과도 모양새가 온전한 것만 골라 먹었다. 임부복도 디자인을 따졌고, 책은…… 읽으려다가 이내 때려치웠다. 무슨 이유에서건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아선 안된다는 거였다.
두 사람은 이따금, 옆방에 말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대수야, 자?”
“아니.”
“돈 버는 거 힘들지?”
“응.”
“부모님 안 보고 싶어?”
“산 넘으면 바로인데 뭘. 기숙사에도 있었고……”
“우리, 돈 모아서 얼른 독립하자.”
“응.”
“남들 공부할 때 애 키우고, 남들 일할 땐 효도 받으면서 놀자.”
“아싸.”
“대수야, 자?”
“아니.”
“넌 얘가 어떤 애였으면 좋겠어?”
“음…… 남자아이?”
“아니, 그런 거 말고. 성격이나 장래희망 같은 거 말이야.”
아버지는 오래 고민하다 답했다.
“어…… 나는, 얘가 꿈이 있는 아이였음 좋겠어. 너는?”
“음…… 나는 얘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야, 그거 쉬운 일 아니다.”
“왜? 아기들한테는 그것만큼 쉬운 일이 없을걸?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면 되잖아.”
“얘가 우릴 좋아할까?”
“글쎄……”
“얘가 원하는 걸 우리가 다 해줄 수 있을까?”
“그러게……”
두 사람은 한동안 컴컴한 허공을 바라봤다. 얇은 벽 너머로 어렴풋이 옆방 사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응.”
“뭘 잘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이야.”
“응.”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곤 새삼 어른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
동네사람들은 내가 아주 튼튼할 거라고 했다. 산모가 어리면 애 머리가 좋다던데. 하나 낳고 또 낳으라며 실없게들 웃었다. 예전에는 그 나이 때 다 애를 낳았다고. 지나가는 노인들이 한마디씩 말참견을 했다. 한날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육아용품을 사들고 소란스럽게 왔다 갔다. 어머니의 단짝 한수미가 주도해서 데려온 거였다. 친구들은 배불뚝이 최미라를 보자마자 힘껏 안으며 “꺄아아, 미쳤어, 미쳤어”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싸구려 과자를 먹으며 한껏 수다를 떨었다. 여느 때처럼 선생 뒷담화나 연예인 얘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화제의 중심은 단연 어머니였다.
“남자야 여자야?”
“몰라. 병원에선 파란 옷 준비하라고 하더라.”
“어머, 어머. 아들이네. 아들.”
“대수 닮았음 훤칠하겠다.”
“맞아, 걔가 얼굴은 그냥 그래도 몸 하나는 괜찮잖아?”
“그러니까 애도 낳지.”
“꺄아아!”
누군가 비밀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여자들 애 낳을 때 거기 찢는대.”
“거기? 거기 어디?”
“거기. 거기 아래.”
“헉, 정말?”
“응. 칼로 살짝 찢는데 다른 데가 하도 아파 그건 느끼지도 못한다더라. 얘.”
“어우, 무서워.”
“나는 아기 안 낳을래. 아아.”
“시집이나 가라. 이것아.”
“야, 너 가슴 커졌다?”
“응. 임신해서 좋은 건 이거밖에 없어.”
“뱃살 트면 어떡해?”
“그래서 열심히 로션 발라주고 있어. 나 올챙이 같지?”
얼마 있다 한수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만져봐도 돼?”
어머니는 그런 일은 여러차례 겪어봤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어머니의 둥근 배 위로 총 다섯개의 손이 올려졌다. 모두 희고 고운 게 불가사리처럼 앙증맞은 손들이었다. 여러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나 역시 내 머리 위에 얹어진 다섯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꼼짝 않고 있었다. 아주 짧은 고요가 그들과 나 사이를 지나갔다. 어머니의 친구들은 신기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동시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해질 무렵, 어머니는 안 그래도 된다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뒤뚱뒤뚱 친구들을 끝까지 배웅했다. 그러곤 그녀들이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오래도록 응시했다.
물론 아버지의 체고 동기나 후배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우락부락한 체구에 조직폭력배처럼 생겨가지고선,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총각들이었다. 넉살 좋은 누군가는 어머니에게 ‘형수님, 형수님’하며 애교를 부렸다.
“선배님, 선배님이 없으니까 체육관이 아주 썰렁합니다.”
“뻥 까지마, 새꺄.”
신랑이 욕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남자들은 저희들끼리 있을 때 유난히 말이 거칠어진다는 걸 몰라서였다. 어머니는 한두살도 차이 안 나는 것들이 서로 존대를 하는 것이 우스웠다. 가끔 예고에서도 그런다는데. 체육과 예술의 공통점은 과연 ‘합쇼체’란 말인가 궁리하며 사과를 깎았다.
“진짭니다. 선배님.”
“맞습니다. 선배님, 그래도 선배님이 우리한테 제일 잘해주셨는데…… 보고 싶었습니다. 선배님.”
그러고는 저희들끼리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하하하’ 웃었다. 형수님이 미인이십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아, 그리고 작년에 부정 판정한 심판 있지 않습니까. 선배님.”
“어……”
“비리로 잡혀갔답니다. 선배님.”
돌아가기 전, 그들은 아버지에게 슬쩍 돈봉투를 내밀었다. 얼마 안되지만 자기들끼리 모은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걸 받고 조금 울컥했다. 그러곤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몇달 새 조숙해진 얼굴로 후배들에게 차비를 건네줬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손차양을 만들어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난 후에도, 그 자리에 붙박여, 그렇게 하염없이 서 있었다.
어머니의 배는 점점 부풀어갔다.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야위어갔다. 먼 곳에선 이따금 쩌억쩌억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부들이 산을 깎고 길을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어머니는 병원에 실려갔다. 싸이렌 소리가 워낙 요란했기 때문에, 그날 밤, 내가 태어날 거란 사실을 온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그중 몇몇 섬세한 이웃들은 ‘아직 낳을 때가 안됐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팔삭둥이 조산아답지 않게,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는 엄청난 산고 끝에 나를 낳았다. 너무 아파 이러다 정말 죽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고 한다. 대기실에 있던 가족들은 초조해 몸을 떨었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해 평소 몸관리를 꾸준하게 받아온 사정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불안은 더욱 증폭됐다. 더군다나 조산이라니, 어쩌면 산모와 아이 둘 다 죽을 수도 있다는 예감에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니 간호사가 출산 소식을 알렸을 때, 다들 눈물을 펑펑 쏟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도 스킨십을 해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엉겁결에 얼싸안기까지 했다. 식구들 중 가장 크게 운 건 아버지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처음 나를 안아본 뒤, 그동안 남몰래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게 미안해, 남들보다 두배는 더 크게, 세배는 더 오래 울어 간호사들의 빈축을 샀다.
*
나는 올해 열일곱살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 열일곱을 넘긴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어온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었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몇해 전, 이웃의 한 여자가 우리 집에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면서요?”
“네.”
“그런 건 병(病)이 아닙니다.”
“네?”
“그런 건 메씨지지요.”
그녀 옆에는 낡은 성경책과 묵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
아버지가 말했다.
“쟤는 메씨지가 아니라 아름입니다. 한아름이라고요.”
순간, 나는 꼬마들에게나 어울리는 순하고 둥근 한글이름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아버지도 이제 다 컸구나……’하는 대견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속이 상했는지 그날 진탕 술을 먹고 들어왔다. 한 손에는 식어빠진 통닭 한 꾸러미를 들고서였다. 한두번 겪은 일도 아닌데,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몰랐다. 아버지는 내 방으로 와, 힘도 없는 내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러고는 양 볼을 부풀리며 헤에 웃었다.
“아름아, 아름아, 너는 어떤 노래를 좋아하니?”
나는 기력이 달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그냥, 우리 아들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해서.”
나는 안경 너머, 침침한 눈으로 젊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곤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우스갯소리를 했다.
“예쁜 여자가 부르는 노래면 다 좋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빼액 지르며 맞장구를 쳤다.
“나도오오오오오오오!!”
곧이어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효리 짱!”
덩달아 나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쳐댔다. 생각만큼 박력있는 목소리가 나와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있는 힘껏 소리쳤다.
“박지윤 짱!”
아버지는 폴짝폴짝 뛰었다.
“엄정화 짱!”
“성유리 짱! 짱!”
“유진이 최고!”
아버지는 갑자기 또 정신 나간 사람답게 차분해졌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니.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버지.”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아버지.”
“엉?”
“지금 슬퍼요?”
“그래.”
“나 때문인가요?”
“응.”
“전 어떡하면 좋죠?”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버지.”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버지?”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열일곱 생일선물은 노트북이었다. 내가 누워서도 글을 쓸 수 있게 부모님이 특별히 알아봐주신 거였다. 무겁고 투박한 중고 노트북이었지만, 진작부터 개인용 컴퓨터가 갖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 앞에서 한껏 부드럽고 자글자글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혼자 있는 시간엔 줄곧 책을 읽어왔다. 내가 새끼노릇 하느라고 그동안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막상 내 어휘가 얼마나 풍부하고 내 문장이 얼마나 유려한지 알면 부모님은 깜짝 놀랄 터였다. 처음에는 학교를 그만둔 뒤 또래 아이들을 따라가려고 책을 펼쳤다. 그러다 나중에는 심심해서 저절로 찾게 됐다. 내겐 노인들과 같은 지혜나 경험이 없었다. 내가 먹는 시간 속엔 겹겹의 풍부한 주름과 부피가 없었다. 나의 늙음은 텅 빈 노화였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오래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혹은 나만큼 늙지 않은 이들의 생활이나 근심도 알고 싶었다. 책 속엔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장르와 두께를 가리지 않고 책이라면 다 좋아했다. 모험담이나 환상소설도, 곤충도감이나 식물도감도, 어쩌다 가슴을 쿵쿵 내리치는 시집과 귀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해지는 사회과학도서도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개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생각’만을 적어놓은 흥미로운 책들도 있었다. 이 사람은 팔다리도 튼튼한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만 할 수 있었을까? 이력을 살피게 되는 책들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물어왔다.
“아름아, 뭐 읽어?”
나는 푹 꺼진 입술로 새처럼 종알댔다.
“그냥 에쎄이예요. 엄마, 이 사람은 눈이 멀었는데, 열몇살 때 갑자기 눈이 떠졌대요.”
“소설이야?”
“아니요, 수기라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또 언제 눈이 멀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 즉시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달려갔대요. 그러곤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이 『백치』였대요.”
“왜? 유명한 책이야?”
“어릴 때 하도 아버지가 자기한테 이 백치 같은 놈, 백치 같은 자식, 그래서 그랬다나 봐요. 재밌죠?”
어머니가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엄마도 욕, 잘하는데.”
또 한날은 아버지가 물었다.
“아름아 뭘 보니?”
나는 숭숭 빠진 이 사이로 새된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소설이요. 아빠, 이 아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호랑이 한마리랑 남겨졌는데, 어느 순간 절망이 호랑이보다 무서웠대요. 그러고는 나중에 자기가 그렇게 경계했던 호랑이가 떠나가자 엉엉 울어요.”
“에이, 말도 안돼.”
“아녜요. 진짜예요. 제가 짧게 말해 그렇지 여기 보면 다 그럴 만한 사정이 나와요.”
“그래?”
“그렇다니까요.”
나는 하얗게 센 속눈썹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버지.”
“엉?”
“언젠가 아버지가 너무너무 외로울 때, 이 세상이 막막한 태평양처럼 느껴질 때 말이에요.”
“응.”
“그때 제가 아버지의 호랑이가 되어드릴게요.”
아버지는 잠시 말을 않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구나?”
그리고 어느날은 장씨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게 뭐니?”
장씨 할아버지는 올해 예순으로, 아흔 먹은 자기 아버지에게 만날 야단을 맞는 노인이었다.
“어른들은 절대 알면 안되는 질 나쁜 책이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쁘게 살아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나쁜 짓도 많이 했어. 그러니까 이리 내.”
그러고는 침을 발라 몇장을 넘겨보더니, 곧장 중국 금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색적인 내용이 가득한 옛날 책이었다. 장씨 할아버지는 결국 그날 그 책을 빌려갔다. 그러고 며칠 뒤…… 작은 소란과 함께 그 집에서 아흔 먹은 할아버지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너는 도대체 언제 철들려고 그러니?”
며칠 전, 가족 앨범에서 오래된 사진 한장을 빼왔다. 그러곤 노트북 옆에 두고 한참을 바라봤다. 배가 부푼 어머니를 아버지가 뒤에서 감싸안은 스냅사진이었다. 날짜를 보니, 나를 가진 열일곱 겨울인 듯했다.
‘손이 어리다……’
사진을 보고 처음 그런 생각이 났다. 그 시대 특유의 분위기나 배경이 들어온 게 아니었다. 내 눈을 한번에 사로잡은 건 두 사람의 손이었다. 뜻밖에 너무 작고 보드라워, 그 손에 나를 맡긴다는 게 미안해질 지경의 여린 손이. 나는 일기 폴더를 열어, 빈 문서를 펼친 뒤 깜빡이는 커서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그러곤 이어서 나머지 문장을 적어나갔다.
-아이는 왜 아무리 늙어도 아이의 얼굴을 가질까?
얼마 전, 티브이에 나온 십대 부부를 보고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갓난아기와 단칸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숫된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말투도, 옷차림도, 좋아하는 가수나 패스트푸드 메뉴도 딱 열일곱살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눈빛. 눈 속 기운이 어딘가 달랐다. 피로와 슬픔과 자부가 묘하게 엉겨 있는 표정. 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일러주는 말이 없어, 나는 그냥 부모의 얼굴이라 부른다. 나는 일기장에 몇마디 더 적었다. 부모는 부모라서 어른이지, 어른이라 부모가 되는 건 아닌가보다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종종 나와 말을 섞는 장씨 할아버지가 그랬다. 집에서 야단 맞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아흔살의 아버지를 피해 대문 밖에 나온 그는 영락없이 일곱살 난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시멘트 담장 아래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 나란히 해바라기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 또 혼났어요?”
“응.”
“왜 혼났어요?”
“이번엔 나도 몰라. 그냥 혼내니까 혼났어.”
“할아버지 억울해요?”
“응. 사실 집에선 괜찮은데. 제발 후배들 앞에서만은 그러지 않았음 좋겠어.”
그가 일컫는 후배들이란 자기보다 어린 경로당 노인들을 말했다. 그는 내게 자주 부친 흉을 봤지만, 그러면서도 세상에 아직 자기를 아이처럼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얼마 후 나는 그가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바뀐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타박타박 자판을 만졌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이었다. 나는 금세 피곤해져 노트북을 닫았다. 요즘 들어선 작은 일에도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나는 부모님의 사진을 한번 더 공들여 바라봤다. 혀도 어리고, 목도 어리고, 머리카락도 어린 내 부모. 그들은 어딘가 불량해 보이고 가슴이 시리도록 젊었다.
최근 들어 나는 부모님의 청춘 이야기를 자주 물었다. 나는 그들이 만난 이야기를 묻고 또 묻고, 한번 더 듣자 졸라댔다. 그걸로 뭔가 만들어볼 요량에서였다. 물론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 모르게. 아름다움이 아름다워질 수 있게. 사람 손을 타, 태어나자마자 죽는 새끼 강아지의 운명이 되지 않게. 아름다움이 잘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아! 그러니까 아버지는 태권도선수가 되고 싶었던 거구나?”
“아니.”
“어? 그러려고 체육고등학교에 간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뭐가 되고 싶었는데요?”
“몰랐어, 잘. 그래서 간 거야. 체고.”
“잘했잖아요. 운동.”
“응, 그랬지. 하지만 내가 태권도를 하며 마음에 들어한 건 사실 도복밖에 없었어.”
“뭘 잘하면서 동시에 싫어할 수 있어요?”
“그럼. 그런 애들 많아. 내 친구는 전교에서 수학을 제일 잘했는데 자기는 한번도 수학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대.”
“아.”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좀 뭣한데, 세상엔 자기 부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효도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러니까 너는 절대.”
“네.”
“나한테 잘하려고 하지 마라. 알았지?”
“아버지.”
“응?”
“그게 뭔 소리예요.”
“응?”
“지혜로운 말씀 좀 해주세요. 제발.”
“아름아.”
“네?”
“네가 나보다 늙었다고 해서 부모를 무시하면 안된다. 더군다나 체고 나온 부모를. 그런 사람들은 그런 거에 아주 예민하거든.”
“네.”
“그리고 너, 체고 나온 부모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
“아니요.”
“체고 잘린 부모야……”
“아……”
어머니의 경우엔 조금 나았다. 어머니는 말이 고팠던 사람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어머니의 이야기 속엔 부사와 형용사와 감탄사가 많았다. 어머니는 그 어떤 작은 것도 지나치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시대의 옷, 유행가에서부터 자기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 대한 품평까지 잔뜩 늘어놓았다. 다섯명이나 되는 외삼촌들의 인생역정을 다 듣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였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장황했지만 그래서 더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나는 필요한 걸 먼저 적극적으로 물어봤다.
“그러니까 엄마.”
“응?”
“어, 그래서, 아버지랑은 어떻게……?”
“만났냐고?”
“아니요. 그 얘긴 아까 했고, 어떻게……?”
“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빙빙 돌려 물어봤다.
“저를 만들 생각을 다 하셨어요?”
그때껏 쉴 새 없이 얘기하던 어머니는 멈칫하며 물었다.
“으응?”
그러곤 잠시 망설이더니 ‘까짓 것’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이렇게 얘기해줄게. 내 배가 이만큼 부풀어올랐을 때, 네 외삼촌 중 한명이 외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했어. 어머니, 쟤는, 어쩜 가르쳐주지도 않은 것을 해가지고 왔대요?”
“진짜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네 외할머니가 대뜸 하는 말이, 그런 건 누가 안 가르쳐줘도, 병신도 다 한다, 그러는 거야.”
“으하하.”
나는 쑥스러워 과장되게 웃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내 흰머리를 마구 쓰다듬은 뒤, 일어섰다.
“됐지? 엄마, 이제 밥 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귀가 잘 안 맞았다. 기억하는 것도 조금씩 어긋났고, 해석하는 것도 종종 달랐다. 어머니는 한대수가 자길 쫓아다녔다고 하고, 아버지는 최미라가 먼저 꼬리를 쳤다고 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내 입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어머니의 편도 아버지의 편도 아니었다. 나는 이야기의 편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진짜 필요한 순간에 부모님의 편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뭐가?”
“신발이요. 찾았어요?”
“못 찾았지.”
“그럼 엄마는 집에 어떻게 돌아갔어요?”
“음, 그건 말이야……”
“아, 잠깐만요!”
“왜?”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면 안돼요? 눈도 뻑뻑하고, 몸이 너무 무거워요.”
“왜 인마, 한창 클라이막스인데.”
나는 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에휴, 아버지도 나이 먹어봐요.”
뭔가 물으면 아버지는 사건 위주로 짧게 대답하고, 어머니는 자기가 뭘 느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겹치고 어긋나고 어그러져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폭발 직전의 우주가스처럼 아스라이 출렁였다. 나는 부모님의 추억담을 들으며, 어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고, 그러면서도 그게 정말 끝날까봐 조바심쳤다. 나는 그래서요? 진짜요? 그게 뭔데요? 왜요? 우와! 지저귀며 흥을 돋았다. 늙으면 듣는 것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던데. 이렇듯 부모님을 채근하는 걸 보니, 나는 분명 소년인 게 틀림없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끝난 것도, 마음의 준비가 다된 것도 아니었지만 가슴 속에 뭔가 쓰고 싶은 기운이 일어서였다. 나는 노트북 위에 양 손을 올려놨다. 나무뿌리처럼 강말라 혈관이 튀어나오고 검버섯이 핀 손이었다. 바로 첫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 괜히 지난 일기장 파일을 들춰봤다. 그러자 최근 내가 풀지 못한 문제가 화면에 그대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사실 나는 며칠 동안 그 문제에 매달렸었다. 뭔가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준 뒤 그걸 해결하는 건 나의 오랜 습관 중 하나였다. 누구도 나에게 숙제를 내주진 않으니까. 나 혼자 선생이 되고 학생이 돼 하루를 보내는 거였다. 그중에는 별자리 이름 외우기, 전국 지하철 노선도 그리기, 세계의 나무 조사하기 같은 쓸데없는 것들이 많았다. 일기쓰기는 그중 최고로 쓸데없는 일에 속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아무도 어린 시절을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니까. 더욱이 서너살 미만의 경험이라면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것이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저렇게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었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우리 집 풍경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부모는. 세살 무렵부터 늙기 시작한 아이를 가진 내 부모는. 나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그러자 이내 다른 궁금증이 일었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불행히 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자판을 누르기 전,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첫 문장은 ‘바람이 분다’로 써야겠다고…… 그러니까 이것은 지난 몇달간 내가 하루 한 문단씩, 어느 때는 한줄씩 띄엄띄엄 쉬어가며 적은 이야기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 열여섯 생일 때부터. 열다섯 파티 때부터.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먼- 열하나, 열둘 생일 때부터 말이다. 물론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은 없다.
*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로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날에 짝짓기를 해야 한다는 건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 뼈와 살이 자라는 열기를 어쩌지 못해, 아무 때고 풍덩풍덩 물속에 몸을 던진 소년시절부터, 아버지가 간절하게 바라온 건 오직 하나, 여자를 안는 것이었다. 때는 열일곱. 아버지는 한번도 품어보지 못한 남의 살이 그리워 미치기 직전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사내 비슷한 게 돼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사내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사내가 되고 싶은 사내. 여름이 되고 싶은 여름이었다. 바야흐로 7월. 아버지는 초록에 포위돼 있었다. 여름의 식성, 여름의 정력에 눌려 있었다. 사방의 초목은 자라고 뻗치는 데 온힘을 기울이며 관능적으로 엉겨 있었다. 매미들은 덩달아 악을 쓰고 울어댔다. 그때껏 시골에서 자란 아버지는 그것들이 모두 수컷인 걸 알았다. 교미할 짝을 찾아 구애경쟁을 하는 거였다. 놈들은 자기 존재를 알리려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밤마다 얕은 숨을 토하던 아버지의 귀에 그것은 온통 ‘나랑 해!’ ‘나랑 해!’라는 애원처럼 들렸다. 아버지의 몸은 자주 뜨거워졌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허둥지둥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달뜬 몸을 물에 담그면, 샛강에선 한여름에도 치이익- 소리가 났다. 매미들은 줄기차게 울어댔다. 여름을 꽉 채우며. 여름을 팽팽하게 만들며. 나랑 해. 나랑 해 하고. 나도 잘해. 나도 잘해 하고. 높은 소리로. 높은 소리로. 그 울음 한가운데서, 먼 곳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결국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인 뒤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게 남 일이 아니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날에 가출을 해야 한다는 건 어머니가 제일 잘 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논밭이 지겨워, 무턱대고 먼 산만 바라보던 소녀시절부터 어머니가 간절하게 원해온 건 오직 하나, 고향을 뜨는 것이었다. 때는 열일곱. 한번도 넘어보지 못한 고개 밖이 궁금해 한숨이 절로 나던 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날도 집 나갈 궁리를 하며 강가에서 발장구를 치고 있었다. 다리를 벌린 채 식식대며, 내〔川〕에 비친 초록을 깨뜨리고 있었다. 같은 시간, 아버지와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몸을 식힌 계곡물이 흘러흘러 어머니가 발을 담근 개천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잔잔했다. 수면 위론 잠자리 수십마리가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에 끓는 빛과 허공에 도는 빛이 만나고 부딪쳐 소란했다. 어머니는 둘레둘레 겹겹이 포개진 산 아래 부루퉁히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예술고등학교 진학이 좌절된 후 줄곧 지어온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자기(自己)가 되고 싶은 자기. 여름을 간섭하는 여름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안다 해도 모두가 무시하고 꺼릴 것이 빤했다. 자기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는 어머니는 그래서 더 답답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한번 더 먼 산을 바라봤다. 문득 산이 부푸는 느낌이 났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탄식 때문이란 건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숫총각의 비명, ‘아버지! 다음 생애엔 반드시 금수(禽獸)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는 울음을 듣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방의 초목은 싱싱하게 출렁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초록에 무심했다. 초록이 지겨웠다. 그런 마음 역시 초록의 영향 아래 일어난 일이란 건 모르고서였다. 어디선가 잠자리 한마리가 날아와 바위 위에 앉았다. 곧이어 꼬리를 치켜든 채 열을 식히는가 싶더니, 사뿐 비상하여 어머니 주변을 집요하게 맴돌았다. 동구 밖, 길 떠나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 잠자리의 날갯짓은 왠지 ‘나랑 가’ ‘나랑 가’하는 신호처럼 보였다. ‘가봄 알아’ ‘가봄 알아’하는 채근처럼 들렸다. 어려서부터 오빠들의 잘난체를 듣고 자란 어머니는 그것이 지구 최초로 하늘을 난 생물이라는 걸 알았다. 물에 살던 곤충 하나가 어느날 ‘날아볼까’ 마음 먹은 뒤 그냥 그렇게 된 거였다. ‘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어머니는 놀라웠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고, 어떻게 솟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신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했다. 잠자리는 쉬지 않고 선회했다. 나랑 가. 나랑 가 하고. 가봄 알아. 가봄 알아 하고. 여름을 흩뜨리며. 여름을 어지럽게 만들며. 얇은 날개로. 얇은 날개로.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물풀 위에 앉아 교접에만 몰두하는 몇몇 쌍도 보였다. 상대방의 생식기를 자기 머리 쪽으로 오게 한 뒤 둥그런 자세를 취한 거였다. 어머니는 양 꼬리가 만들어낸 찌그러진 하트 모양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러곤 세차게 고개를 저은 뒤, 골이 난 듯 웅얼댔다.
“이 고장 남자랑은 안해. 절대로 안해……”
*
아버지가 찾은 곳은 깊은 산속 계곡이었다. 그곳 산세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웬만해서 찾을 수 없는 골짜기. 굽이굽이 혈관처럼 퍼진 물의 지류 중 하나가, 한번 더 갈려 여러 줄기로 뻗어나가던 중, 산 중턱, 숨 돌릴 만한 평지를 만나 ‘어이쿠!’ 주저앉은 뒤 생긴 작은 못이었다. 물은 돌고 돌아 고인 듯해도 늘 새 물이었다. 물은 돌고 돌아 다시 온 거라 언제나 옛 물이었다. 그것도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물. 바람이 불 때마다 얼굴 위로 무수한 주름을 드러내는, 맑고, 늙은 물이었다. 웅덩이는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았다.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양만큼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이 있어 수위는 일정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적당한 수위가 만들어내는 적당한 부력이 마음에 들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안겨 있으면 아늑하니 좀 쓸쓸하기도 한 고향의 부력이었다. 봄 강 다르고 겨울 강 달랐지만, 그곳이 아버지를 맞이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물의 표정, 배척도 환대도 않는 투명한 모습이었다.
마을에선 오래전부터 그 산 물을 길어 마시면 좋은 꿈을 꾼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도. 물속에서 하늘을 볼 때마다, 아버지는 마치 산이 꾸는 꿈을 깔고 누운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한밤중, 어둠 속에서 눈을 끔벅이고 있으면, 바깥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났다. 실핏줄 같은 물길을 타고, 온 마을에 꿈이 방류되는 소리였다. 언 강이 터지거나, 물이 불어 시끄러울 때도 꿈은 쉬지 않고 새나갔다. 잠든 이들의 좁고 컴컴한 귓구멍을 타고, 잠 속으로 흘러갔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 잘 자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 발로 걸어, 직접 그 꿈 안으로 들어갔다. 복된 꿈과, 그 꿈들이 가리키는 길한 날들을 기대하며, 간밤 노루 혀가 닿고, 멧돼지 혀가 닿고, 구렁이 혀가 닿은 물가에 홀짝홀짝 입을 대었다. 그렇게 산에 다녀온 날이면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코를 골며 금방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번번이 자기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안 꾼 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건지 분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몇번이고 실망한 나머지, 나중에는 그 고장 전설을 마음대로 정리해버렸다. 아마 산은,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되, 기억은 못하게 만드는가보다고…… 그런 뒤 자기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머리가 굵어진 후, 아버지는 좀더 세속적인 이유로 산을 찾았다. 집에 필요한 것을 구하고, 사춘기의 어지러운 마음을 가누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동네 형들과 송사리나 가재를 잡으며 하류에서 놀기 좋아했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조금씩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날 온갖 수풀에 둘러싸인 웅덩이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그곳을 보자마자 반했다. 모양도 기운도 편안했지만 무엇보다 ‘숨기 좋은 곳’이란 게 마음에 들었다. 예고도 예의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욕정을 달래기에도, 가슴속 구멍을 키워,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지내기에도 그곳은 알맞은 곳이었다.
*
수영의 기본은 물속에 얼굴을 넣는 것이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하염없이 떠 있었다. 그러고 싶고, 그래야 해서였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헤엄치는 것보다 가만있는 것을 좋아했다. 물에 뜬 낙엽처럼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느긋하게 흔들리는 것을 즐겨왔다. 수면 위로 아버지의 시커먼 거웃이 수초처럼 출렁였다. 물밑에선 민물고기 몇마리가 멍청하고 의아한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홀딱 벗은 미성년의 육체는 볕을 받아 매끄럽게 빛났다. 머리 위론 딱 웅덩이만한 크기의 하늘이 오목하니 둥그렇게 트여 있었다.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모양을 바꾸는 멀고 좁은 하늘이었다. 쏴아아- 바람이 불자, 나무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초록을 퍼뜨렸다. 더불어 아버지의 마음도 싸하게 시려왔다. 주체 못할 욕구 때문인지, 까닭 모를 고독 때문인지 아버지도 몰랐다. 그것이 하나의 마음인지 전혀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혼란스러웠다. 때마침 태어난 이래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였다. 말하자면 ‘어떻게 살 것인가’. 아버지는 잡생각에 시달리는 자신이 못마땅해 혼잣말을 했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그래. 시간이……”
그 즈음, 아버지가 생각이 좀 많긴 했다. 어머니와 비슷하게 진로가 어그러지게 된 뒤, 시간이 남아돌아서였다. 어머니는 집안의 편견 때문이지만, 아버지는 성질 때문이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알 수 없지만. 둘 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골은 아침이 일러 하루가 길었다. 아버지는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다 써야 할지 몰랐다. 학생도 성인도 아닌지라 뭘 해도 불편하고 애매한 입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편히 쉬길 바라며 묵묵히 논밭을 살폈다. 아버지도 나무를 하고 꼴을 베며 집안일을 도왔다. 어쩌면 그냥 그렇게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 시절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는 태권도 특기생으로 도에서 알아주는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에 열린 전국청소년 태권도대회에서 부당 판정에 항의해 소란을 피우다, 급기야는 심판에게 이단옆차기를 해 정학을 맞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방학을 핑계삼아 집에 내려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직 아버지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학교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선배들의 연이은 구타와 기합도 싫었고, 자기가 정말 이 길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체고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가난 때문이었다. 운동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소년이 입신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러다……? 도에서 메달 몇개 따고, 졸업하고, 그러곤 뭐?’
아버지는 한번 선택한 직업이 평생 가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개천에서 함께 놀던 형들도 다 그런 식으로 떠나, 그런 식으로 늙어갔다. 들판에서, 시장에서, 공장에서. 가끔은 먼 나라의 사막이나 바다 위에서 말이다. 그해 여름은 아버지에게 유예기간이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기 전 뭔가 결정해야 하는. 사실 중요한 건 농사냐 복학이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아버지가 뭐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모든 게 그대로 끝나버릴 것 같아, 아무것도 안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아무 일도 안하는 거라 갑갑하기도 했다. 딱히 할 게 없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수음에만 몰두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날은 그게 하루에 몇번이나 가능한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하다 자기 성기를 꼭 쥐고 기절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구급차를 부르려는 걸 할아버지가 만류해, 찬물 한 양동이를 한껏 들이붓고 나서야 아버지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혼몽한 상태에서 크게 두가지를 깨달았다. ‘아, 성욕엔 찬물이 좋은 거구나’라는 것과 ‘아! 인간이 하루 다섯번 하면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것이었다. 제 앞날이 막막해 숨이 막힐 때마다, 남의 살이 그리워 숨이 가쁠 때마다, 아버지가 텀벙텀벙 물속으로 뛰어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쉽게 감당할 수 없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열일곱은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시절엔 과거도 보고 장가도 가고 어른대접을 받던 나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른이란,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걸 뜻했다. 아버지는 막막했다. 어쩌다 한 선택이 쭉 이어지는 삶. 인생 참 간단하네. 내뱉고 나서는 그 간단이란 단어에 철렁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쉬운 말들에 늘 무서움을 느꼈다. 좋아한다는 말, 아프다는 말, 늙는다는 말, 하고 싶다는 말과 같이 납작한 질감의 것들일수록 그랬다. 그나저나 하고 싶다니. 생각난 김에 한번 할까. 갈등하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이 몹시 싫어졌다. 예전에는 몸이 고플 때만 했는데, 이제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바지를 벗으려 했다. 아버지는 한탄하며 한마디했다.
“커서 뭐 되려고 그러니……”
사실 그 정답은 내가 알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려고’ 그러는 거였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했다. 한 소년을 빼고 모든 것은 괜찮아 보였다. 아버지는 터질 듯한 머리를 안고 고요에 파묻혀 있었다. 아버지는 착잡했다. 몸 때문에. 마음 때문에. 미래 때문에. 왜 모든 고통은 한꺼번에 오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인정상 셋 중 하나만 오든가. 아니면 차례로 하나씩 와야 하는 게 아닌가? 인생 참 간단치 않네. 내뱉은 뒤, 아버지는 별안간 철퍼덕- 물속으로 잠수했다. 배영자세에서 그대로 몸을 말아 고꾸라진 거였다. 한여름이라지만 계곡물은 여전히 차고 깊었다. 놀란 물고기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저 위에선, 아버지가 감쪽같이 사라진 자리를, 아버지보다 나이가 열배 이상 많은 나무들이 장승처럼 굽어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옛날 여자들이 치성을 드리고 갔다는 ‘큰어른나무’도 있었다. 시커멓고, 덩치 큰데다, 온몸에 푸른 이끼가 끼어 영험해 보이는 고목. 조만간 아버지가 ‘제발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엉엉’하고 빌게 될 나무가 그 나무였다. 그때, 아버지는 모르는 게 많았지만, 기도란 그렇게 입이 없는 것들 앞에서 해야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더욱이 사람보다 나이가 갑절은 많은 나무라면, 믿을 만한 나무였다.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뭉게구름이 강물 위로 엷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갔다. 매미도 울고, 새도 울고, 정체를 숨긴 채 발자국만 드러내는 산짐승도 어디선가 가르랑거리고 있었다. 청춘. 그리고 여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 스스로 아름다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인 줄 모르는 한 소년이, 그렇게, 시리도록 찬물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여름, 여름이었다.
*
큰어른나무는 웅덩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둥은 크고 둥글었고. 수십개의 가지는 하늘을 떠받들며, 바람을 섬기고 있었다. 큰어른나무의 뿌리는 거대했다. 그것은 제 몸의 두배, 세배 되는 크기로 땅 곳곳에 퍼져 있었다. 바위 밑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몇몇 가닥은 물가에 직접 촉수를 내밀어 약수를 빨아먹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대고 있으면 나무에 피가 도는 소리가 들릴 만큼, 몹시 늙어, 사는 것의 황홀함을 아는 고목의 정력이었다. 계곡물이 도달한 하늘 끝에서 파랗게 너울대는 잎들이 그 사실을 말해줬다. 우리는 살아가는 중이라고. 우리는 죽어가는 중이라고. 끊임없이, 하루하루, 살고 죽는 중이라고. 얼굴에 주름 많은 물위로 제 모습을 비춰봐, 저도 늙은 것을 안 나무가 쏴아아- 쏴아아- 흔들리는 한낮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만난 곳은 숲속이었다. 그것도 그 골짜기, 그 웅덩이 안에서였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큰어른나무 아래 옷가지를 벗어두고서였다. 오래 있음 체온이 떨어졌기 때문에, 바위에 있다 다시 들어가길 반복했다. 아버지가 아는 한 지금껏 그 골짜기에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래전 나무에 기도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 지금도 여전히 산 어려워할 줄 아는 노인들이 살고 있지만. 그렇게 외진 곳에, 그토록 잘생긴 나무가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더군다나 주위에 모실 만한 신은 아주 많았다. 신은 자꾸 늘어갔고, 노인들은 변덕이 심했다. 빵 때문에, 무료함 때문에, 혹은 신보다 사람이 좋아 종교공동체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큰어른나무를 보자마자 보통 나무가 아니란 걸 알았다. 누구든 500년 이상을 살면 보통 이상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하고 당연하게 여겼다. 더욱이 그 나무에겐 그럴 만한 증표가 있었다. 낡고 해져 형태를 알아보긴 어렵지만, 나뭇가지에 색색의 천조각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끈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그 나무에게 영혼이 있다는 걸 뜻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큰어른나무를 어려워한 건 아니었다. 천조각을 보고, 친한 친구의 어깨를 툭 치듯 ‘제법인데?’하고 말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얼룩덜룩한 나뭇잎 그림자 아래 누워 몸을 말리고, 하늘을 보고, 낮잠을 잤다. 어느 때는 기막히게 좋은 꿈을 꿔, 자는 내내 방싯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꿈 어느 언저리에선가 한번쯤 나를 만나기도 했다. 만나고도 나인지 몰라 어색하게 인사했다. 명산도 절경도 아닌데다 사는 이가 극히 적은 산촌의 골짜기에 관심을 가질 이는 별로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기만의 비밀기지를 갖고 싶었던 아버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람들이 그곳을 모르길 바랐다. 그 안에서 아버지는 짐승의 몸을 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놀았다. 자연과 몸을 섞고, 자연인 척 구는 것을 좋아했다. 위장술은 아주 쉬웠는데,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그저 옷만 벗으면 되는 거였다.
물론 그곳에도 가끔은 지루함이 밀려왔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불행이나 질병처럼 적막함과 쓸쓸함 역시 그 깊은 골짜기에 기어코 당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혼자인 게 좋고, 혼자이길 원했으면서도, 어느 때는 혼자란 게 사무치게 외로웠다. 당시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읍내로 나가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모와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소나 돼지를 벗 삼기도 난처한 일이었다. 코흘리개 동생들의 경우, 아버지가 볼 때 아직 ‘인간’이 아니었다. 물론 친구와 이성을 그리는 마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성의 경우, 그리움이 어서 채워지길 바라면서도, 정말 그게 해소될까 조바심치는 해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진심으로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여자인데다 친구라니, 이 얼마나 완벽하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가난한걸. 게다가 아직 꿈도 없어……’
생각은 그리 했지만, 그렇게 웅얼댈 때조차, 아버지는 연애를 원하고 있었다. 몸과 맘이 그러라 일러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다, 신작로를 걸어가는 예쁜 아가씨를 돌아보는 바람에 차에 치여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매미들은 큰 소리로 맴맴맴맴 울어댔다. 이 계절이 끝나면 곧 죽을 것을 알고 그러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볼 때 세상 모든 성충들은 자기만 빼고 다 번식중인 것 같았다. 사마귀도, 풍뎅이도, 하늘소도 하고, 심지어 하루살이조차 생애 마지막날 교미를 위한 광란의 비행을 했다. 고작 육일을 산 주제에. 십칠년을 산 자기는 한번도 못해봤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여유롭게 발장구를 치며 웅덩이에 떠 있었다. 그러곤 지금 이 순간, 전래동화에서처럼 하늘에서 색시가 뚝 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먼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곧 큰어른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개구리헤엄을 쳐 그쪽으로 다가갔다. 신심(信心)이 동했다기보단 심심하니 뭔가 시험해보고 싶은 맘이 들어서였다. 아버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고목 앞에 섰다. 그러고는 넙죽 나무 앞에 절했다. 한번 하고 허전해 두번을 더 엎드렸다. 허리를 숙일 때마다, 시커먼 엉덩이 골 사이로 성기가 덜렁거리는 걸 새들이 다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온몸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버지는 칭얼대듯 껄렁하게 기도했다.
“여자친구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네? 여자친구 하나만. 응?”
그렇게 빌다보니 또 눈물이 나오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 벌어지길 기다리며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럼 그렇지’하고 물속으로 기어갔다. 영(靈)발이 다된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도 찾지 않지……’ 단정하며 투덜댔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골짜기에 첨벙- 소리가 울려퍼졌다. 거짓말처럼, 정말,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진 거였다.
*
어머니는 심부름을 가던 중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여동생,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는 고모되는 사람에게 볼일이 있어서였다. 며칠 후 고모 댁에 혼사가 있어 식전 인사를 드리러 가는 참이었다. 어머니가 할 일은 고모에게 의례적인 안부를 여쭌 뒤, 돈봉투를 건네드리는 것이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해온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돈은 그렇게 직접 주는 게 예의였다. 액수는 일반 축의금보다 열배 이상 많았다. 고모는 아마 그 돈으로 미리 필요한 혼수를 사고, 사돈댁에 성의를 표할 터였다. 어머니는 가슴팍에 돈봉투를 꾹꾹 쟁여놓고 고갯길에 올랐다. 걸어서 한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였다. 고모댁에 가는 길은 쉬운 편이었다. 좁다란 비포장도로를 따라 쭉 걷다, 산소 몇개를 지나, 샛길로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가슴이 쿵쾅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 안에 거금이 쥐어진 순간, 어쩌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돈을 모아야 해. 돈을……’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빤한 살림에 어린 처자가 부모 몰래 뭉칫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외가댁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집에 사치품을 들여놓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덟 식구가 밥은 굶지 않는 걸로 봐서 먹고살 만한 형편인 듯했다. 재산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외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동네서 알아주는 아들부자였다. 자식 여섯에 아들이 다섯명이나 되니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니는 그중에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훗날, 어머니의 배가 산만해졌을 때, 아버지는 다섯명의 외삼촌들에게 맞아죽을 뻔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의 음악공부를 반대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그 집안의 모든 자식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삼촌들은 십오세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외할아버지의 독방으로 불려갔다. 그런 뒤 외할아버지와 일종의 담판 혹은 거래를 해야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지, 농고에 갈지, 공고에 갈지 말이다. 삼촌들은 대부분 원하는 걸 선택했고, 결과에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열다섯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당연히 외할아버지가 자기를 불러앉힐 줄 알았다. ‘아버지 저는 노래공부가 하고 싶어요’라는 대답도 미리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특별활동 시간에 우연히 성악부에 들었는데, 대처에서 온 담당선생이 어머니의 재능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도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시선을 피하고, 딴길로만 다니는 것 같았다. 몇번 말을 붙여볼라치면 역정을 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어느날 대문 앞을 두 팔로 막아선 어머니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집에 예술은 없다!”
외할아버지의 강마른 얼굴엔 여름의 무성함을 숨기고 있는 겨울의 엄정함이 서려 있었다. 아무리 기가 센 사람이라도 그 앞에선 다들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좀 달랐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외할아버지에게 가장 말대꾸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외할머니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어머니를 사주해 정치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어릴 적 별명은 ‘시발공주’였다. 입이 거친 오빠들 틈에서 나고 자라,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걸핏하면 상말을 내뱉었던 까닭이다. 혀 짧은 계집애가 뒤뚱뒤뚱 동네를 누비며 깜찍하게 욕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외할아버지는 기가 막혀했다. 한번은 외동딸이 지껄이는 말보다 더 큰 상말로 어머니를 제압하려고도 했다. 연륜이 빚어낸 섬세하고 황홀한 육두문자, 말하자면 상말을 압도하는 쌍말로 기를 죽이려고 한 거였다. 물론 그런 외할아버지의 말도 안되는 노력은 별 효과가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하는 욕을 다 들은 어머니가 ‘헤애’하고 웃은 뒤 아장아장 다른 데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동네 오빠들이나 어른들이 웃어주는 게 좋아 자꾸 욕을 하고 다녔다. 물론 철이 든 후 그 버릇은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시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이를테면 아버지를 만난 이후, 혹은 나를 가진 뒤로 맞게 된 인생의 이런저런 어려움 앞에서 말이다. 어쨌든 그해, 어머니는 간신히 거친 말을 참고 있었다. 욕 끊은 지 어언 십여년. 참으로 오랜만에 밀려오는 ‘욕충동’이었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험한 말을 할 순 없었다. 부모가 부모노릇을 안해줘도 그래서는 안되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고개 초입에 펼쳐진 길을 바라봤다. 오래 밟아 단단하니, 순하게 빛나는 황톳길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날이 뜨겁지는 않았다. 서두르면 고모댁에 갔다 와 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는 때였다. 산은 고요하게 나풀대며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은근한 듯 집요하게, 부드럽고 수상쩍게 출렁이고 있었다. 하나의 초록 안에는 여러개의 초록이 들어 있었다. 옅은 초록, 짙은 초록, 더 짙은 초록이 하나인 듯 수천개로 번져 있었다. 여름은 색(色)이 많아 좋은 계절이었다. 여름은 통(通)하라고 있는 계절이었다. 집집마다 온갖 문을 활짝 열어두는 데는, 어머니가 교복치마를 두번 접고, 아무 데서나 다리를 벌리고 앉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어렸을 때부터 산을 보고 자란 어머니는 산이 울룩불룩하다는 걸 알았다. 계절마다 산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도, 날에 따라 멀어졌다 가까워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산은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처럼 평평하지도 평화롭지만도 않았다. 어머니가 아는 숲은 언제나 ‘움직이는 숲’이었다. 그 속에선 온갖 생물들이 꿈틀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뒤집어 탈탈 털면 경악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들의 종류만큼 많은 그들의 드라마가 숲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나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본 사람이면 그것이 하루 종일 얼마나 쉴 새 없이, 그리고 풍부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고요하단 말만 해도 그랬다. 산만큼 온갖 소리들이 공존하는 곳이 없었다. 물소리만 해도 얼마나 시끄러운가. 듣고 있음 또 얼마나 잔잔하던가. 산은 그렇게 시끄러운 고요가 바글대는 곳이었다. 고요를 고요답게 환기시켜주는 소리가, 소리 아닌 듯 소리 나는 곳이었다. 그 속에 발을 딛자니, 어머니는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가면서 생각하자 결심했다. 하지만 발길은 어느새 산 중턱에 다다라 있었다. 오랫동안 원하고 그려봤던 일인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뭔가 되려 하는 참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그게 뭔지 몰랐다. 조금 더 노래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식구들은 어머니에게 무심했다. 그들은 어머니가 어머니인 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머니가 어머니인 걸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읍내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바이올린이며 토슈즈, 화구 따위를 들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원시잠자리가 지상에 드리우는 아름다운 그물 그림자를 최초로 목격했을 곤충의 마음으로, 고개 들어 멍하니 그들을 응시했다. 마음은 끊임없이 속삭였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움직이라고. 너도 너의 삶을 살라고. 어머니는 식구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밖에 없었다. 가출. 아니면 출가. 그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가출이었다. 혼인은 너무 먼 일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성품 좋은 짝을 만나 예술을 해볼 수도 있을 테지만 성품 좋은데다 돈까지 많은 남자가 어디 그리 흔하랴 싶었다. 예전부터 어머니는 혼인을 먼 지방 사람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서울 남자였으면 했다. 대처에서라면 왠지 다른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쨌든 어머니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발걸음이 고모 댁에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기회라고 여겼는데. 큰돈을 갖고 도망치는 게 왠지 범죄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갚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망설여졌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앞으로도 자기에게 예술학교는커녕 장사 밑천 같은 걸 줄 리도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원래 받아야 할 몫보다 훨씬 적은 돈을 가져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그쯤 미치자 어머니는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버스를 타기에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동네에 있는 정류소를 이용하기엔 부담이 컸다. 오고 가는 어른들이 하나둘 말참견을 할 게 뻔하고, 재수가 없으면 식구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다섯 삼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겨 혼동하기 쉬웠지만, 어머니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결국 이웃 동네의 버스정류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산을 좀더 올라 왼편 갈림길로 빠져나가야 했다. 언젠가 고모와 같이 걸은 길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날 고모가 시장에서 예쁜 핀을 사줬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었다. 시장까지 금방이고, 길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는 기억이 났다. 어머니는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진짜 가출은 아니고, 시위용 퍼포먼스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지만. 어머니는 모처럼 자기도 ‘선택’이란 걸 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갈림길에 들어서기 전, 그러니까 길을 잃고 몇시간 동안 산을 헤매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산이 원래 이렇게 복잡했던가. 어머니는 찌푸린 얼굴로 잡목을 헤쳐나갔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 아닌데. 가도 가도 그 길이 그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았다. 마치 누군가 이상한 술법을 부려 산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고민했다. 올라갈수록 길이 합쳐지니 능선을 타고 가볼까. 아니, 이런 때일수록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상책일 거야.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동경로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갈림길로 들어서보니 아까 봤던 출입구는 간 데 없고,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반대쪽 길로 몸을 돌렸다. 모든 길은 이어져 있으니 가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가고 보니 이번에는 무성한 가시덤불이 나왔다. 길은 급격하게 좁아져 꼬이고 엉키며 요상해졌다. 그리고 그쯤 되니, 어머니는 산이 무서워지려 하고 있었다. 버스를 놓치면 어떡하나, 대처에서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던 걱정은 어느새 이대로 밤이 되면 어쩌나, 들짐승과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어머니는 중심을 잃고 흐트러졌다. 호흡도 걸음도 거칠어져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 참엔 발을 헛디뎌 무릎이 까지기까지 했다. 집에서는 벌써 난리가 났을지 몰랐다. 어머니는 무작정 낯선 곳에 발을 들인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면서도 여기만 벗어나면 금방 새 삶이 펼쳐질 거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뜬 걸 보니 세 시간은 족히 넘은 듯했다. 허기와 피로,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못 견디게 오줌이 마려웠다. 어머니는 주위를 살피며 용변 볼 자리를 물색했다. 아무리 산속이라지만 희멀건 엉덩이를 드러낸 채 아무데서나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인적 없는 으슥한 자리로 들어가 치마를 올리고 쭈그려 앉았다. 그동안의 긴장을 대변하듯, 뜨거운 오줌이 한참 동안 콸콸콸콸 쏟아져나왔다. 흙 밑으로 스민 오줌이 김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며 어머니는 얕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짐승 한마리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굵기가 팔뚝만한 게 반질반질 아름답기도 해, 섬뜩하게 징그러운 구렁이였다. 구렁이와 어머니는 꼼짝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명색이 시발공주였던 어머니도 그 순간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사실 놀라기는 구렁이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사람을 처음 본 까닭이었다. 어머니는 구렁이와 기 싸움을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시선을 피하는 순간 얕보고 덤벼들 것 같아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잘못했다간 가출은 고사하고 야산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뱀 쫓는 덴 담배가 좋다는데. 아, 내겐 담배가 없고나. 뱀 쫓는 덴 백반이 좋다는데. 아, 내겐 백반도 없고나. 그럼, 어떡하지?
‘도망치자!’
어머니는 구렁이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팬티도 다 올리지 못하고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리가 확보되자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구렁이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것만 같아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썩은 나무둥치에 걸려 자빠졌고, 그 속에 든 벌집이 흔들렸고, 흥분한 벌떼들이 덤벼들었고, 어머니는 다시 뛰는 수밖에 없었고, 너무 달려서 토할 것 같았고, 시발 이젠 가출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고, 신 한짝은 어디로 날아가 없었고, 그런데 저 앞에 계곡이 보였고…… 마침내, 민첩하고 유려한 자세로 풍덩- 그곳으로 뛰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먼 곳에서 그 모든 걸 지켜본 구렁이는 ‘뭐 저런 게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린 뒤 스멀스멀 사라졌다.
*
어머니가 낙하한 순간, 계곡 안엔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새떼가 푸드덕 날아올랐고. 호젓하게 배영을 즐기고 있던 아버지도 놀라 자빠진 뒤 물을 먹고 어푸어푸했다. 기겁하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사람이 있으리라곤 상상 못한데다, 이미 여러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겪은 탓이었다. 어머니는 물속에서 허둥대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췌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수압에 치마가 연꽃처럼 부풀어오른 사실은 잊고서였다. 순간, 수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걸 깨달은 아버지도 호흡을 가누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한 삼초간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예쁜 얼굴이다’라고 아버지는 생각했고, ‘대체 뭐지?’라고 어머니는 경계했다. 아버지는 곧 자기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양손으로 황급히 아랫도리를 가렸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속에 쭈그려 앉았다. 어머니도 그제야 치마폭을 감쌌다. 조금 전, 큰어른나무에게 소원을 빈 바 있는 아버지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나무와, 어머니와, 다시 나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는 수면 위로 고개만 쫑긋 내민 채 가까스로 한마디 했다.
“누구세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