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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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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음. brokenname@empas.com

 

 

 

장편연재 2

두근두근 내 인생

 

 

‘누구세요’라고 적은 뒤 ‘누구세요’라고 읽어본다. 어머니를 모르는 듯. 아버지를 처음 본 듯. ‘안녕하세요’ 하지 않고 ‘누구세요’ 불러본다. 어머니가 어머니인 것을 알아서, 아버지가 아버지인 줄 알아서,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이 기쁘다. 나는 이 이야기 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몇번이고 제 이름을 부르며 노래할 수 있게, 몇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질 생각이다. 그리고 훗날 한사람에게 시작도 끝도 없는 노래를 흥얼대게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한대수

—그 이름 아름답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최미라

—그 이름 아름답군요

 

온종일. 그리고 멍하니. 일단 시작하면 부르는 이가 그만두고 싶어질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는 긴 긴 돌림노래를.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하고. 아름답군요, 아름답군요 하고. 아랫배를 떨며. 높은 소리로. 높은 소리로…… 웅덩이 속, 한 청춘은 다른 청춘에게 자꾸만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야 이어서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컴퓨터 커서는 ‘누구세요’라는 물음 뒤에서 연신 깜빡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침묵의 맥박처럼 느껴져 덩달아 숨을 고른다.

‘그런데 너무 옛날이야기 같은가……?’

나는 물속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노트북 액정 위로, 웅덩이에 비친 하느님의 얼굴처럼, 반투명한 그림자처럼, 언뜻언뜻 내 얼굴이 얼비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인걸!’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판에 손을 얹는다. 그러고는 17년 전, 나와 동갑이었을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알은체를 한다.

‘대수씨!’

쏴아아— 바람이 불자, 아버지의 이름이 골짜기를 타고 무수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대수씨— 대수씨— 대수씨— 하고 세상 모든 풀들을 넘어뜨린다. 네 이름의 메아리가 내 이름인 것을 알아, 내 이름의 어딘가에 네가 살고 있는 것을 알아, 멀리멀리 퍼졌다가 되돌아온다. 순간 화들짝 놀란 아버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반응한다.

‘네?’

나는 그 모습이 친근해 큰 소리로 아버지 이름을 한번 더 불러본다.

‘대수씨이이!’

아버지에게만 말해, 내 음성이 들릴 리 없는 어머니는 정지화면마냥 붙박여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며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네에?’

공손히 대답하고 있지만 경계하듯 주먹을 쥔 게, 여차하면 곧장 발차기라도 날릴 태세다. 그리고 그 품새엔, 아무리 급작스런 상황에서라도 자연스레 몸에 배어나오는, 도 대표 식 동작미가 있다. 나는 낮은 숨을 내쉰다. 그런 뒤 상체를 기울여, 다감하되 환하지 않고 쓸쓸하되 어둡지 않은 목소리로 아버지께 속삭인다.

‘행운을 빌어요.’

‘………’

잠시 침묵.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풀며 답한다.

‘아, 네.’

그러곤 뭔가 고민하는가 싶더니 ‘근데……’ 하고 덧붙인다.

‘누구세요?’

 

“아름아.”

“네?”

정신이 번뜩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방문 앞에 비스듬히 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어둑한 거실을 등진 채 물기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

서른네살. 살이 오른 얼굴엔 씻어도 씻어도 지워질 것 같지 않은 피로가 매연처럼 깔려 있다.

“아, 그냥, 인터넷 좀 하느라고요.”

나는 서둘러 문서 창을 내린 뒤, 화면에 포털 싸이트를 띄웠다.

“일찍 자야 내일 병원 가지.”

“응. 조금만 있다가요.”

“혈압약은 먹었니?”

“네.”

“진통제도 먹고?”

“그럼요.”

“관절약도?”

“그렇다니까요.”

“위장약은? 그것도 먹었어?”

“아이 참. 엄마. 한두번도 아니고.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요.”

어머니는 사춘기 아들의 영역을 존중하듯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앞에서 미적거렸다. 언젠가 내가 ‘앞으로는 노크를 해달라’ 부탁한 바 있어서다.

“엄마.”

“응?”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와봤어.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피곤해 보여요.”

“그러게. 이상하게 쉬는 날이 더 힘드네.”

“무슨 꿈 꿨는데요?”

어머니는 머뭇거리다 답했다.

“물 꿈. 만날 꾸는 거.”

“에이 또 뭐라고.”

“내가 너를 건지고 깼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쩐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엄마.”

“응?”

“저도 오늘 꿈 하나 꿀 생각인데. 제가 수영선수로 나오는 걸 꿔보려고 해요. 괜찮다면 엄마 꿈까지 헤엄쳐 가서 우아하게 수중발레 하는 모습도 보여드릴게요.”

“안 떠내려가고?”

“안 떠내려가고.”

어머니는 웃으며 말을 흐렸다.

“너 같은 애는……”

“………”

“아프면 안되는데.”

나는 눈썹 없이 퀭한 눈으로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곤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마 있죠. 나 같은 애는……”

“응.”

“나같이 정말 괜찮은 애는 말이에요.”

“그래.”

“나 같은 부모밖에 못 만들어요.”

“………”

짧은 사이, 어머니는 그게 뭔 말인가 고민하다, 이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인터넷 그만하고 얼른 자. 자꾸 이럼 컴퓨터 못하게 할 거야.”

 

*

 

내가 세상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겐 얼굴이 없었다. 눈이 없어 어둡단 걸 모르고 귀가 없어 어디란 걸 몰랐다. 내겐 없는 것이 많았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입도 없고, 이름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뭔가 되어보려고 웅크려 있는 하나의 반점에 지나지 않았다. 뭔가 되고 싶고, 잘하면 될 것 같은…… 뭔지 몰라도 무언가 돼야 하지 않을까 의문에 사로잡혀 있는 덩어리…… 말하자면 ‘사람’ 같은 것 말이다.

 

내겐 없는 것이 많았지만 ‘마음’이 있어 어머니가 불안한 걸 알았다. 내겐 없는 것이 많은 탓에 육감이 발(發)해 아버지가 초조한 걸 알았다. 아마 처음 얼마간은 두 사람이 나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눈치챘을 거다. 하지만 또 오래 지나지 않아, 식구들이 나를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느꼈을 거다.

 

나는 입이 없어 말을 갖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몸을 빌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사는 동안, 어머니의 심장이 단 한번도 쉬지 않고 펄떡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그것은 맨살에 바로 닿는 햇빛처럼 화끈하고 얼얼하게 다가왔다. 때론 가쁘게, 어느 때는 느긋하게. 리듬과 강약을 조절하며, 진짜 부지런하게…… 나는 하루종일 내 주위를 감싸는 그 ‘떨림’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지하 벙커에서 모스부호 해독에 열중하는 병사처럼 어깨를 구부린 채 자주 그랬다. 그리고 그 암호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쿵쿵— 혹은 둥둥—이라도 좋았다. 먼 북소리 같기도 하고, 큰 발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던 무엇. 마치 거대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한 울림이었다.

“음. 그게 발소리가 맞기는 하지.”

언젠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장씨 할아버지는 그렇게 맞장구쳤다.

“진짜요?”

“그럼.”

그런 뒤 의뭉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녀석의 크기는 어마어마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데만 평생이 걸리며, 결코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법이 없다고.

“그래서 그게 누군데요?”

장씨 할아버지는 담뱃진에 찌든 이를 드러내며 살며시 웃었다.

“그러게 그놈 이름이 말이지?”

“네. 할아버지.”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네.”

“그놈을 좀 아는 치라면 술 안 먹곤 절대 댈 수 없는 이름이지.”

그러곤 끝내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자리에 뻗어버렸다. ‘새끼줄 백 발은 쓸 데가 많아도, 사람 백발은 쓸모가 없네’ 하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대면서. 자기보다 나이가 세 배는 어린 소년에게 막걸리를 다섯 통이나 얻어먹고 말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내내, 나는 그 ‘술 안 먹곤 댈 수 없는’ 존재의 기척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때는 새삼 놀라, 여진(餘震)에 민감한 순록처럼 긴장해 도망칠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더러 춤추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어머니의 심박과 내 것이 겹쳐 종종 음악처럼 들려왔던 까닭이다.

 

‘쿵 짝짝…… 쿵 짝짝…… 쿵쿵 짝짝…… 쿵쿵 짝……’

 

쿵은 어머니 것, 짝은 내 것이었다. 쿵은 센 소리, 짝은 여린 소리였다. 내 심장이 크고 단단해질수록 리듬은 선명해졌다. 나는 여전히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때조차 왈츠라도 추는 양 저절로 움직이는 두 발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긴 탯줄에 매달려 그 소리에 집중했다. 어머니의 심장은 오동통한 달처럼 머리 위에 떠, 나무가 초록을 퍼뜨리듯 사방에 비트를 퍼뜨렸다. 그것은 정보량의 기본단위를 말하는 비트(bit)이기도 하고, 가수들이 음악을 만들 때 쓰는 비트(beat)이기도 했다. 나는 온갖 정보들이 폭죽처럼 터지는 암흑 속에서, 내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박자를 터득하며 우물쭈물 자랐다. 한달, 그리고 또 한달…… 그렇게 살 붙고 귀 밝아지는 사이, 바깥에선 얼마나 많은 색(色)들이 세상 위로 번졌다 쓰러지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말이다.

 

어쨌든 쿵!

그리고 짝짝.

한번 더 쿵!

그리고 짝짝.

 

내 염통은 어머니의 심장이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했다. 어머니가 나를 만들듯, 나도 열심히 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비트(bit)와 이 비트(beat)는 몸 곳곳에 중요한 메씨지를 보내며 삐라처럼 흩날렸다. 걸핏하면 뭔가 ‘되고 싶어지는’ 게, 누가 들어도 참으로 선동적인 리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령어를 전달받은 세포들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얼마 안 가 내 몸에선 간이 부풀고 콩팥이 여물고 우둑우둑 뼈가 돋아났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트를 맞고, 기관들이 움트며 기지개를 편 거였다. 나는 잘 자랐다. 나 자신도 어리둥절할 만큼 진지하게 무럭무럭.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내가 사람 비슷한 꼴을 갖추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아……!’

그것은 온힘을 다해 지상으로 떡잎을 키워올린 대지의 전율과 비슷한 거였다. 나는 내 몸 안에 퍼진 수천 갈래의 잎맥을 상상하며, 귀가 아플 만큼 생생한 핏소리를 경청했다. 내가 나의 절벽이 되어, 내가 나의 폭포 소릴 꽉 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아, 가까워서 먼 소리란 이런 거로구나’ 깨달았다.

 

태아 시절, 내가 주로 하는 일이란 잠을 자는 거였다. 그때 나는 눈을 못 떠, 내가 캄캄하게 생긴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어둠의 몸뚱이는 다 나처럼 생겼을 거라 추측했다. 아마 눈꺼풀을 열 수 있었어도, 빛이 없어서 마찬가지였을 거다. 어느 때는 모든 게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 생시와 분간 못했지만…… 설사 그게 꿈이라도, 한번 꿔볼 만한 꿈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이따금 어머니와 나는 각자의 꿈속에서 만나, 누구의 꿈자리에서 하는 것인지 모를 두서없는 대화를 나눴다.

‘엄마……’

‘응?’

‘엄마……’

‘그래.’

‘나 자꾸 가슴이 떨려요…… 가슴이 아프도록 뛰어요……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이러다 죽을 것만 같은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요.’

‘아가야,’

‘네?’

‘나도. 나도 그래. 가슴이 자꾸 뛰어. 가슴이 저리도록 뛰는데, 멈출 수가 없어……’

 

어머니와 나의 합주는 8개월간 지속됐다. 쿵쾅쿵쾅.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우리가 놓아줄 리 없는 기척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어머니의 배에 귀를 댄 채 그 소리를 엿들었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발로 찼다. 딴에는 태아의 안녕을 전한답시고 신호를 보낸 건데, 아버지는 뒤로 자빠지는 척하며 ‘어이쿠’ 엄살을 부렸다. 그런 뒤 짐짓 꾸민 투로 말했다.

“이 자식이 벌써 태권도를 하네? 으응?”

그러고 어머니의 배를 쓰다듬으며 음흉하게 덧붙였다.

“그래 태어나면, 어디 정식으로 한번 붙어보자.”

 

그리고 훗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 아버지는 나와 제대로 붙어보는 대신, 사람이 두 팔로 할 수 있는 일엔 주먹질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넌지시 알려주었다. 활달하고 싱거운 우리 아버지도 3년에 한번은 꽤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아마 그날이었지 싶다.

“아버지, 나는.”

“어.”

나는 땅바닥을 보며 미적미적 말을 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그렇게 누군가와 온전히 합쳐지는 기분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버지는 내가 뭣 때문에 그러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잠자코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러곤 좋은 답을 주려는 듯 고민하다 한참 뒤에 입을 떼었다.

“그래. 다신 그럴 수 없지.”

나는 실망하여 대꾸했다.

“그죠? 그렇겠죠?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 하느님은 그런 기회를 자주 주지 않으니까.”

“………”

“하지만 그거랑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아 있긴 해.”

나는 아버지가 또 허튼소리를 하려나보다 싶어 심드렁히 대꾸했다.

“그게 뭔데요?”

아버지는 잠자코 내 눈을 바라봤다. 그러곤 온갖 노동으로 다져진 팔로 나를 들어올렸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아버지는 나를 안았다. 그런 뒤 깃털처럼 가벼운 자식 앞에서 잠시 휘청댔다. 마치 세상 모든 것 중, 병든 아이만큼 무거운 존재는 없다는 듯. 힘에 부쳐 바들바들 손을 떨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펄떡이는 아버지의 심장박동이 내 가슴께로 전해오는 기척이 났다.

 

‘쿵…… 쾅…… 쿵…… 쾅……’

 

약하고 희미했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릴 오목하게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말한 방법이란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누구하고라도요?”

“그럼. 누구하고라도.”

그런 뒤 마치 아픈 아이를 다독이듯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아버지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렇게, 이렇게.”

그러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메아리를 돌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산(山)인 양, 내 앞을 커다랗게 가로막은 채, 내 앞을 든든하게 둘러싼 채, 조금 전, 당신이 하고, 내가 한 말을, 나지막이 중얼댔다.

“이렇게.”

 

*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은 항상 비슷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검사를 하고, 정해진 실망을 하는 것. ‘더 나빠졌군요’라든가 ‘계속 지켜봅시다’라든가 ‘장담할 순 없지만……’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 호기심과 혐오, 연민과 탄식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가는 것.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고 내비치는 안도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과 나누는 사소한 대화, 그리고 웃음에 귀 기울이는 것. 내 몸이 내게 거는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것. 내 몸이 나의 주인처럼 구는 것에 굴복하는 것.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줄줄이 적힌 처방전을 연애편지 읽듯 응시하는 것…… 그런 게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검사 항목은 여러가지였다. 방사선 검사, 임상 평가, 심장 초음파, 골밀도 측정, 시력, 악력, 소변, 심전도 검사…… 그밖에도 안하는 게 없었다. 나는 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상담했다. 하지만 정형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및 구강외과 등에서도 진료를 받았다. 경우에 따라 한꺼번에 하기도, 두세곳만 들러 집중적으로 검사받기도 했다. 나는 빨리 늙는 병에 걸렸지만, 세상 어디에도 ‘늙음’ 자체를 치료해줄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걸 알았다. 노화도 병이라면, 그건 사람이 절대 고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그건 마치 ‘죽음’을 치료한단 말과 같은 거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노화’ 뒤로 줄줄이 따라붙는 증상들을 밝혀내고, 장기가 상해가는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뿐이었다. 고작 열일곱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아보니,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히 독자적인 것도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마음이 아프려면, 적어도 살아 있어야 하니까.

 

나는 내게 몸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혓바늘이 돋은 순간만큼 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때도 없는 것처럼. 각 기관들을 아주 세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남들이 뼈를 뼈라 부를 때에도 나는 그걸 그냥 뼈로 부를 수 없었다. 남들이 폐를 폐라 말할 때에도 나는 그걸 단순히 폐라 생각할 수 없었다. 의대생들이 밤을 새우며 달달 외는 수백개의 이름처럼. 내가 가진 단어에는, 그것이 몸에 붙기까지 견뎌온 시간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내게 피부가 있다는 걸, 심장이나 간 또는 근육이 있다는 걸 고통스럽게 매번 상기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육체와 정신이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가끔은 반드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연인들처럼, 혹은 사이좋은 부부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접고 병원에 다닌 지는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삶이 끝장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아프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러니까 진료실 한귀퉁이에서, 오늘도 어머니와 내가 무릎을 모은 채 겸손하게 앉아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황반변성이 있네요?”

어머니와 나는 그게 무슨 얘긴가 싶어 눈빛을 교환했다. 의사들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말할 때면 왠지 모르게 항상 긴장됐다.

“여기. 오른쪽에.”

담당의는 컴퓨터 모니터와 진료카드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러면 머리가 많이 아팠을 텐데. 못 느꼈니?”

나는 손톱을 매만지며 소심하게 답했다.

“예? 전 잘 몰랐는데요. 글자가 가끔 번져 보이긴 했는데, 제가 요즘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어머니는 초조한 듯 불쑥 끼어들었다.

“그게 뭔가요. 선생님?”

“노인분들께 많이 생기는 건데, 망막에 노화 퇴적물이 생겨서 시세포가 파괴되는 겁니다.”

“녹내장 같은 건가요?”

“음. 비슷하지만 녹내장은 안압 때문에 생기는 거고요…… 황반변성은 두 종류가 있는데, 습성일 경우 레이저로 어느정도 막을 수 있지만 건성은 치료가 어렵습니다.”

“아름이는 어느 쪽인데요?”

“건성입니다.”

“………”

나는 여느때처럼, 의사가 하는 말을 통해, 의사가 하지 않은 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제 눈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사는 보호자의 의견을 묻듯 어머니를 바라봤다. 나 역시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눈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질 겁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사물이 흐릿하게 보일 거예요. 그 때문에 쉽게 어지럽거나 구토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왼쪽 눈도 위험할 수 있으니 항산화비타민 복용하시고, 외출시 자외선에 주의하세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최선일 것 같네요.”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속에선 묻지 못한 한마디가 뱅뱅 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간이 상하고 위가 아픈 건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눈이 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하느님이 내게 진짜 외로움을 주시려나보다 싶어 가슴이 먹먹했다. 마치 누군가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내게 ‘수고했으니 이젠 독방으로 가라’고 독려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왼쪽 눈은 아직 괜찮은 건가요?”

“좀더 지켜보자꾸나.”

하지만 나는 그게 괜찮다는 건지, 괜찮아질 거라는 말인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흉부외과에서 접한 얘기도 좋은 것은 없었다. 정형외과에서도 구강외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우리가 새로 알게 된 것이라곤 나쁜 소식은 아무리 반복돼도 적응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소아청소년과의 여의사는 ‘아름이의 신체나이가 80세로 측정됐으니, 더이상 통원치료는 무리’라고 했다. 한번도 면도한 걸 본 적 없는, 산적 같은 인상의 흉부외과 의사는 ‘지금 얘 심장이 어떤지 아느냐’ ‘당장 입원시켜야 한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사람이 다리가 없어도, 눈이 없어도 살지만, 심장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고. 얘는 지금 가슴에 시한폭탄을 달고 있다고. 언제 터질지 모르니 빨리 입원하라는 식의 터프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늘어놓았다. 근육질에 그을린 피부를 갖고 있어 의사치고는 뜻밖이라고 생각했는데, 진단 역시 퍽 박력있게 하는 양반이었다. 내과에서는 ‘약을 많이 먹여 식도와 위가 많이 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형외과에서는 내 키가 130쎈티미터에서 ‘2쎈티가량 더 줄었고, 골밀도가 낮아졌으니 팔다리를 수시로 주물러주라’고 충고했다. 어머니는 여기저기서 치이고 야단을 맞느라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자신있게 “당장 입원시키겠습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진 데다,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어서였다. 어머니는 밤마다 ‘24시 감자탕’집에 나갔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트럭을 몰고 있었다. 하루 중 우리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가 깨어 있을 땐 아버지가 자고, 아버지가 깨어 있을 땐 어머니가 곯아떨어지는 식이었다. 사실 어머니가 오늘 병원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루치 잠을 자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

병원 밖을 나오며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응?”

“사람들이 우릴 봐요.”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내가 너무 예쁜가 보지.”

기미낀 얼굴에 거만한 미소를 띠고서였다. 눈가에는 두껍게 칠한 파운데이션이 주름을 따라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오래 일해 남자처럼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내 작은 손을 꼭 감싸쥐었다. 그러고는 ‘이거 왜 이래? 나 열일곱에 애 낳은 여자야!’라는 태도로 꼿꼿이 걸었다. 남의 이목 따위 진작부터 신경 쓰지 않았다는 듯. 잘못한 게 없으니 도망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머니는 나랑 외출할 때 어디서든 서둘러 걷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을 텐데. 지하철이든 재래시장에서든 당신 보폭을 지키며 자연스레 걸었다. 오히려 재촉을 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곤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어, 걸핏하면 치맛자락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날도 나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으니 빨리 좀 가자’고 어머니를 채근했다. 하지만 그게 좀 부자연스러웠는지, 어머니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상체를 숙여,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름아.”

“네?”

“너 언제부터 아팠지?”

“세살이요…… 엄마가 그렇다고 했잖아요.”

“그럼 얼마 동안 아팠던 거지?”

“음, 십오년이요.”

“그래. 십오년.”

“………”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오년.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는 호흡을 고르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

 

*

 

나를 낳고 부모님이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자기들도 웬만한 건 다 알고 있다고, 사춘기 특유의 건방과 자부에 꽉 차 있던 두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일단 그들은 아기를 어떻게 안는지부터 몰랐다. 살면서 그렇게 작고 무력한 존재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였다.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안을 때마다 수전증 환자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직감적으로 아기 목을 받쳐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혹 실수로라도 애를 떨어뜨리면 어쩌나 싶어 숨도 쉬지 못했다. 시합에서라면, 아무리 덩치 큰 상대라도 기죽지 않았을 아버지는 고작 2킬로그램도 안되는 신생아 앞에서 쩔쩔맸다. 그리고 뭔가 대단한 거라도 깨달은 듯,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난 있잖아. 살면서 내가 사람 안는 걸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 정말이지 그런 게 궁금한 적조차 없었어……”

 

서툴기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책을 보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참견과 조언을 귀담아왔건만, 실전과 이론은 엄연히 달랐다. 까닭 없이 애가 자지러지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구르다, 결국 나보다 더 크게 울어버리곤 했다.

“아름아. 울지 마. 응? 울지 마. 엉엉……”

식구들 중 나를 가장 노련하게 다룬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내가 무얼 필요로 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엄만 이런 걸 어떻게 다 알아?’ 살랑대며 외할머니의 비위를 맞췄다. 외할머니는 딸의 애교 따위 별로 고맙지도 않다는 듯 뚝뚝하게 대꾸했다.

“원래 사람 기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여.”

 

그밖에도 두 사람은 배워야 할 게 많았다. 한 존재를 먹이는 법, 재우는 법, 씻기는 법, 그리고 이해하는 법까지…… 마치 내가 아닌 자기들이 태어난 양.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나하나 깨우쳐가야 했다. 나를 만나기 전, 두 사람은 유모차가 그렇게 비싼지도 몰랐고, 기저귀가 그렇게 헤플지도 몰랐다. 예방접종 이름이 DDT인지 DPT인지 분간 못했고, 아기가 ‘뒤집기’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가 필요한지도 알지 못했다. 고작 ‘뒤집기’ 따위로 세 사람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될지, 그걸 성공한 아기의 표정이 얼마나 득의양양할지, 그런 것도 말이다. 이따금 아버지는 만성 수면부족으로 눈이 퀭해진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미라야, 자?”

“아니.”

“아름이 말이야.”

“응.”

“인간이라면 마땅히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거, 그런 걸 하나도 못하는 게 완전 신기하지 않니?”

어머니는 졸음에 겨운 말투로 성심껏 대꾸했다.

“응.”

“그러니까 그걸, 나도 못했었다는 거 아니야. 예전엔.”

“그러게.”

“그걸, 어떻게 하게 됐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야.”

“그러게.”

아버지는 신이 나 계속 지껄였다.

“야. 그리고 사람 나이가 어떻게 하루, 보름, 한달 그럴 수 있냐? 계란도 아니고. 하하. 말이 되냐?”

어머니는 맥없이 대꾸했다.

“안되지……”

콘크리트 벽 너머로 옆방 사내가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왔다. 나 때문에 자주 깨 그도 퍽 피곤했을 터였다.

“미라야, 자?”

“아니.”

“아름이 말이야.”

“응.”

“우리 보며 입술 오물거릴 때, 되게 할 말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 같지 않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첨단 통역 기계 같은 거 있으면 들어보고 싶어. 뭐라 그러나. 죄다.”

“………”

“그리고 왜 자면서 혼자 웃을까? 애기들도 꿈꾸나? 영감처럼 웃던데. 그것도 녹화해서 다 틀어보고 싶어. 무슨 꿈 꾸나. 애들 꿈도 칼라로 나오려나……?”

“………”

“아. 진짜 궁금하다. 넌 안 그러니?”

“대수야.”

“응?”

“나도 그래. 궁금해서 죽어버릴 것 같아. 그러니까……”

“응.”

“잠 좀 자자.”

 

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집안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색의 변화였다. 간박한 신혼살림에 밋밋하기 짝이 없던 단칸방은 원색의 유아용품들로 가득 찼다. 봄이 오듯 차근차근, 그러나 또 순식간에 바뀐 풍경이었다. 누가 봐도 알록달록 유치한 색의 현현이었지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방에 없을 색이기도 했다. 신생아용품 중엔 아기들의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소리, 색깔, 감촉, 냄새 등 많은 것이 그랬다. 그것은 아기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감각’이란 걸 다시 경험하게 해주었다. 한번은 자신의 눈으로, 또 한번은 아기의 눈으로…… 그렇게 두번 살게끔 말이다. 딸랑이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 그걸 보고 웃는 부모. 그 미소 속에는 사람에 대한 경이와 겸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정말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간. 어머님도 아버님도, 장모님도 장인어른도, 모두 거기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부모님을 자꾸 놀라게 했다.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 할수록 부모님은 성숙해졌다. 어딘지 원인과 결과가 바뀐 것 같지만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어리게 사고할수록 가장 지혜로워지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으니 말이다.

 

두번째 변화는 냄새였다. 수유기의 젊은 산모에게서 나는 몸 냄새서부터 시큰한 아기 똥냄새, 숨 냄새, 땀 냄새, 침 냄새, 잘 빨아 말린 면과 거기 스민 햇빛 냄새 등이 그것이었다. 좁은 셋방에 조금만 앉아 있어도 끈끈하니 몸에 착 엉겨붙는 게, 아늑한 듯 갑갑한, 그래서 어느 때는 죽도록 혼자 있고 싶어지게 만드는 무엇. 이른 바 가정의 냄새였다. 아버지는 내 머리통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 것을 좋아했다. 부위별로 조금씩 다른 냄새가 난단 얘기도 즐겨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나보다 어머니를 더 좋아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출산시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자들의 끈끈한 우정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나 때문에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표했다. 그리고 그건 나를 낳은 뒤 얻은 세번째 변화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나를 안고 젖을 물리면, 아버지는 아이처럼 칭얼댔다. 어머니의 양 날갯죽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서였다. 한뼘도 안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었다.

“미라야, 자?”

“응.”

“진짜 자?”

“아이 씨. 그렇다니까!”

아버지는 그래도 어머니가 반응해주는 게 좋아, 이참에 확 깨워 안아볼 요량으로, 말꼬리를 잡았다.

“야! 자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냐?”

어머니는 성가신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수야.”

아버지가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대답했다.

“왜?”

“엄마들은 원래 못하는 게 없어.”

 

*

 

“우와! 엄만 정말 못하는 게 없네?”

식구들이 둥글게 모여 앉은 식탁에서,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치? 내가 쫌 그렇지?”

어머니가 숟가락을 쥐고 호들갑을 떨었다.

“뭐, 이까짓 거 갖고.”

아버지가 언짢은 듯 투덜댔다. 나는 팥빙수를 한가득 떠 입에 넣고 말했다.

“아빠, 남자가 여자한테 사랑받고 싶으면요.”

그러곤 우물우물 말을 이었다.

“거짓말을 잘해야 돼요.”

어머니가 멈칫하는 찰나, 아버지가 발끈하며 말을 이었다.

“야, 가족끼린 정치하지 말자. 것도 같은 남자끼리.”

“치.”

“그리고 니네 엄만 내가 진솔해서 좋았다더라.”

나는 눈을 내리깔고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팔자 망쳤죠.”

“뭐야? 이 자식이!”

아버지는 탁자를 뒤엎으려는 자세로 벌떡 일어났다가, 아무도 말리지 않자 겸연쩍게 다시 앉았다.

“이 안 시려?”

어머니가 빙글거리며 물었다.

“숟가락 오래 물고 있음 괜찮아요.”

“일부러 과일이랑 젤리 뺐는데. 괜찮지?”

“응. 나도 이제 신 거 싫어요.”

“빙수는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 팥이랑 우유만 넣어서.”

아버지가 으쓱하며 끼어들었다.

“네가 이 맛을 알려나 모르겠다.”

“나도 알아요.”

아버지가 못 믿겠단 투로 물었다.

“그래?”

“응. 근데 내가 세살만 젊었어도 이게 왜 맛있는지 몰랐을 거예요.”

어머니는 눈을 깜빡이며 뭔가 가늠하더니 진지하게 맞장구쳤다.

“맞아. 나도 서른 넘어 안 거 같아.”

 

한쪽에선 고물 선풍기가 고개를 틀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활짝 열어둔 창문 사이론 축구 중계방송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옆집 혹은 윗집에서 텔레비전을 켜둔 모양이었다. 나는 먹다 남은 얼음을 휘저으며 아이처럼 장난을 쳤다. 그러곤 투명한 조각끼리 반짝이며 부딪히는 모양이 근사해, 내 오른쪽 눈에게 속으로 ‘잘 봐두라’ 말했다.

“근데 아닌 밤중에 웬 빙수야?”

“얘가 종일 조르더라고. 늙으면 자꾸 맛있는 게 먹고 싶어진다나 어쩐다나.”

아버지가 혀를 찼다.

“우리가 자식이 아니라 상전을 키우는구나.”

“사실 그 얘긴 장씨 할아버지가 해준 거예요. 히. 근데 완전 공감.”

어머니가 뿌루퉁히 말했다.

“난 그 아저씨 싫던데. 아름이도 그 장씨 할아버진가 하는 사람이랑 말 섞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 왜요?”

“그냥. 좀 이상하잖아. 푼수 같고. 사람들 말 들어보니 머리가 약간 이상하다던데? 젊었을 때 무슨 사고로 다쳤다나봐.”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래서 자식이 없는 거구나. 난 두 양반이 왜 같이 사나 했어.”

어머니가 덧붙였다.

“난 그 아버지란 사람도 싫더라. 만날 인상 쓰고 다니고. 아무나 꾸짖고.”

“근데 장씨 할아버지 별로 모자라지 않아요. 나랑 말도 얼마나 잘 통하는데.”

“그래? 그래도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 알았지?”

나는 한숨을 쉬며 항의했다.

“어휴.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래요.”

“………”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는데, 분위기는 일순 어색해졌다.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빠, 지금 있는 데는 사람들 좀 괜찮아요?”

직장을 자주 옮긴 아버지의 이력을 떠올려 엉겁결에 운을 뗀 거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 전 대화는 까맣게 잊고,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양 흥분하며 소리쳤다.

“몰라. 안되면 때려치울 거야.”

 

*

 

막상 손자를 보고 흥분한 외할아버지는 사위에게 당장 가게를 차려주었다. 읍내 어디 목 좋은 자리에 스포츠용품점을 내준 거였다. 그때만 해도 외할아버지에겐 돈이 좀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혹은 그후로도 외가의 정확한 경제규모를 아는 사람은 외할아버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호관광산업 유치 때 받은 보상금이 제법 있다는 건 가족들도 알았다. 외삼촌들은 눈치껏 외할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다. 실제로 몇몇은 사업자금을 받아 장사를 하기도 했다. 동네마다 한두개는 꼭 있는 치킨집이나 과일가게, 팬씨용품을 파는 문구점 등이었다. 외할아버지 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협상이 이뤄지는지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둘째 삼촌은 형이 더 받았다 생각하고, 첫째 삼촌은 셋째가 더 챙겼다고 짐작하는 식이었다. 식구들 중 보상금에 욕심을 내지 않은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다. 천성이 착해서라기보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였다. 어느날 외할아버지는 일년 새 ‘한대수’에서 ‘한서방’을 거쳐 ‘아름아비’가 된 사위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대수, 너, 뭘 해보고 싶으냐?”

“네?”

아버지는 당황했다. 장인이 이번에는 또 무슨 시험을 치나 싶어서였다.

“지레 꺼불진 말고. 거저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니까.”

외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돈 얘기를 먼저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더구나 그게 ‘빌려주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미성년자 사위 앞에서 도도하게 운을 뗐다. 이제 너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가계를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언제까지 공사판 일로 먹고살 거냐. 좀더 안정되고 미래지향적인 일을 고민해봐라. 외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한 데는, 손자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대호관광단지를 둘러싼 안 좋은 소문도 한몫했다. 그 즈음 공사장 인부들이 다치거나 화를 입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 깔리고 차에 치이고 물에 빠지는 등 불길한 사례는 다양했다. 타지에서 온 누군가 죽었고, 건설회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일을 처리했다는 풍문도 돌았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현장에서 ‘죽을 뻔’한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외가의 일자형 콘크리트 셋방에 살던 총각 하나는 이사온 지 얼마 안돼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다녔다. 허공에서 떨어진 철근을 피하려다 그리 됐다는데, 정통으로 맞았으면 그 자리서 곤죽이 됐을 거라고들 했다. 우리 옆방에 살던 그는 내가 큰 소리로 울 때마다 느닷없이 텔레비전 소리를 높여 시위하곤 했다. 내가 흐느끼듯 칭얼대면 5 정도로, 악을 쓰고 자지러지면 20까지 볼륨을 올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예민해져 더 크게 울었고, 그 역시 지지 않고 리모컨을 눌러 대응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건넛방 아저씨는 벽을 발로 쿵쿵 찼고, 그 건너 건넛방 아저씨는 ‘거 잠 좀 잡시다!’ 고함쳤다. 그나마 우리가 주인댁 자손들이라 그쯤에서 그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고는 아버지의 사기를 꺾어놓았다. 내색은 안했지만 외할아버지도 책임감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아버지를 공사장에 밀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 저더러 장사를 하란 말씀이신가요?”

“아님. 뭐. 도장 할래?”

“아니요. 그건 좀……”

“왜?”

“동네에 아는 형이 이미 하고 있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게……”

외할아버지는 ‘미안’이란 대목에서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남들한테 곧잘 미안해하는 놈치고, 가족한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치를 본 적이 없어서였다. 외할아버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번 더 물어봤다.

“대수, 너, 그럼 뭘 해볼 테냐.”

열여덟. 모르는 게 많지만 뜻밖에 아는 것도 많은 나이. 아버지는 이것이 기회란 걸 알았다. 하지만 좀 두렵기도 했다. 생전 장사란 걸 해본 적 없고, 자신도 없는 데다, 이번에야말로 장인이 자기에게 진짜 어른이 되길 요구하는 것 같아서였다. 진짜 어른. 그런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어도, 심지어는 오랫동안 그런 대우를 받고 싶었으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원한 적이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왠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그럴 거라 판단했지만, 막상 그 입구에 서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그때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말만 들어도 단어 주위에 어두운 기운이 이는 게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장인의 저 미소와 후원은 앞으로 나더러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라는 요구가 아닌가? 그런데 열여덟 소년이 벌써부터 똑바로 살아도 되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거야? 그래?’ 아버지는 갈등했다. 그렇다고 겸손한 척 거절하자니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은 못해도 지긋지긋해져가던 공사일과 하루가 무섭게 커가는 아기도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과로 탓에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지려 충격을 받은 터였다. 미라에게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소문나면 가출한 뒤 오년 뒤에나 돌아올 거라고 협박해둔 상태였는데, 혹시 그 사이에 장인에게 귀띔이라도 한 것이었을까? 그나저나 뭘 하고 싶으냐니. 뭘 해야 좋을까. 아버지는 지난번처럼 ‘잘 모르겠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오락실이나 만화방을 차리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그 따위 진심을 누설해선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버지는 믿음직한 사위로 보이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내가 만일 소비자라면…… 지금 제일 갖고 싶은 게 뭘까? 그리고 이 동네에 없는 게 뭘까……?’

잠시 후, 놀랍게도 아버지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건 방금 전에 고민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거였다.

“아버님.”

“그래, 대수야.”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했다.

“요샌 나이키가 대셉니다.”

“응? 뭔 키?”

아버지는 흥분하여 덧붙였다.

“스포츠용품점입니다, 아버님. 요즘 제 또래 애들이 다 갖고 싶어하는 거예요. 터미널 근처면 통학생도 많아 딱입니다.”

 

그해, 나는 제법 사람다운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살이 오르고 피가 차며 인물이 살아났다. 걸레처럼 구겨져 나왔던 나는 꽃처럼 피어났다. 태열이 가라앉고, 명털이 빠지면서 복스러워졌던 거다. 어머니는 만날 보는 나를 번번이 새로 만난 양 신기해했다. 몇달 새, 누굴 많이 사랑해 깊어진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 시기 내 모습은 정말 변화무쌍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었다. 나비가 일생에 한번 하는 날개돋이를 며칠에 한번 꼴로 반복하는 셈이었다. 나는 점점 예뻐졌다. 대부분의 아기들이 그렇듯.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듯. 마치 ‘아기들에게는 사랑받는 일만큼 쉬운 일은 없을걸?’이란 아버지의 예언을 증명하듯 해사해졌다. 제 자식 안 예쁜 부모가 있으련만, 나를 얻기까지 이런저런 ‘포기’가 많았던 부모님은 그야말로 내게 홀딱 빠져버렸다. 특히 우리 엄마, 최미라씨의 경우 정도가 심했다. 출산 전후 호르몬의 영향도 한몫했겠지만. 어머니는 나를 무슨 진창과 바닥을 같이 경험한 전우처럼 대했다. 말은 못해도 눈빛을 보면 다 알 수 있었다.

“엄마? 엄마도 큰오빠 낳고 이렇게 예뻤어?”

어머니는 강보에 싼 나를 어르며 외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럼. 낳아서 세살까진 오줌 질질 싸도록 예뻤지.”

“세살? 왜 세살이야?”

“그 뒤로는 말 안 듣거든.”

물론 그때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말을 체감하지 못했다. 말 안 듣는다, 그게 얼마나 부모를 미치고 펄쩍 뛰게 하는지. 천사 같던 아이들이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몇 안되는 어휘로 종알종알 대들 때는 얼마나 얄밉도록 논리적인지. 기억력은 왜 그리 좋고, 눈치는 또 어찌 그리 빠른지. 그런 것들을 말이다. 어머니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과 고래고래 악을 쓰며 다투는 건, 그들이 처음부터 나쁜 성격을 타고나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말이다.

 

돌이 지나도록 ‘엄마’ 소리를 않던 내가 입이 터진 건 반년 뒤의 일이었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과정 중 하나지만 어머니를 펄쩍 뛰게 할 만큼 고무적이 사건이었다 한다. 긴 침묵을 깨고 건넨 첫마디였으니, 마음 같아선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얼마나 심려가 많으셨습니까?’ 같은 온전한 문장으로 운을 떼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건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할 정도로 종알거리고 다녔다. 집안일로 피곤했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되는 ‘엄마 이건 뭐야?’라는 말 속에서 핼쑥해져갔다. 한번은 잠든 외할아버지를 가리켜 ‘엄마 이건 뭐야?’라고 묻는 내게 성가신 듯 ‘응. 암것도 아녀’라고 대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반복하게 될 ‘왜?’라는 질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잘 자랐다. 몽글몽글 아주 예쁜 똥을 누고. 적당히 넘어지고 다치면서. 대가족의 무심하고 동물적인 배려 속에서. 백일에는 수수떡을 주물럭대고, 돌날에는 명주실을 붙잡으며 무탈하게. 시골 사람들의 관계에는 애정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애정, 관심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관심 같은 게 건강하게 스며 있었다. 삼촌들은 나를 아기가 아닌 하나의 작은 인간 정도로 대했다. 자식을 여섯이나 낳아, 아기가 대수롭지 않은 외할머니의 태도 역시 그랬다. 축축하고 짧은 혀를 가진 나는 가장 오래된 말부터 배워나갔다. 그 어떤 출신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외조부도 하고, 아버지도 하고, 외숙모도 했을 맨 처음 말들을. 마치 저 끝에서 조상들이 넘긴 배구공을, 아버지의 아버지가 한번도 떨어뜨리지 않고 전달한 그 공을, 비로소 내가 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했을 때 모두가 박수친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다.

 

사실 그 시기에 안 말이 무엇인지 또렷이 기억나진 않는다. 언어의 한정된 어떤 부분, 그러니까 동심원의 가장 안쪽과 접촉한 경험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아니, 그건 너무 일찍 도착한 맨 가장자리 원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람이 언어와 조우한 첫 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신의 섭리가 궁금할 따름이다. 만나되 만나지 않게 하신 것. 먼저 배우고, 잊어버리게 한 뒤, 다시 배우게 하신 것. 그런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데가 아닌 외가에서 말을 깨쳤다는 사실은 퍽 마음에 든다. 바깥 외(外)에 집 가(家)자. 바깥 집이라니. 왠지 근사한 느낌이다.

 

*

 

방바닥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한손으로 눈을 가린 채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그러곤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어디선가 비릿하고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아마 골목 앞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인 듯했다. 여름은 부패의 계절이니까. 뭐든 빨리 자라고, 빨리 썩는 계절이니까. 밤공기는 무덥고 후텁지근했다. 나는 몸에 털이 거의 없어 여름이면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쳤다. 몇번이나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잠자기를 포기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을 켠 뒤, 문서함을 뒤적이다 ‘출생’이란 이름의 파일을 열었다.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 이야기’ 뒷부분에 붙여볼 요량으로 적어둔 거였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거란 걸, 어머니는 진작부터 알고 계셨다. 아무렴. 벌써부터 시골서 자랐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어머니가 본 꽃들은, 짐승은, 곤충은 대부분 제 몸보다 작은 껍질을 찢고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그동안 많이 참아왔다는 듯. 도저히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처럼. 야유처럼. 박수처럼, 펑! 펑! 벗어놓은 허물을 봄, 그 큰 날개와 다리가 어떻게 다 들어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몸뚱일 갖고서였다.

 

그리고 그 아래는 뜬금없이 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바람이 분다. 어머니에게로, 아버지에게로, 나무에게로— 오랫동안 지속돼온 현상이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풍경이다

 

다른 폴더에는 여러 종류의 다른 문서가 ‘이야기’가 되길 기다리며 목을 길게 뺀 채 늘어서 있었다. 문득 시야가 흐려져, 한손으로 눈을 비빈 뒤 ‘단상’ 파일을 열었다. 그러곤 앞으로 써야 할 대목에 필요한 문장들을 골라,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그중에는 ‘나무들은 왜 죽어가면서도 좋은 냄새를 풍길까?’라는 글귀도 있고, ‘연애의 시작은 밀어의 발명에 있다’라는 메모도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준 ‘그래도 이게 물속에서 가장 오래 있을 수 있는 영법이야’라는 말도 있고, ‘누가 시골 아이들을 순수하다고 했던가’ 같은 문장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남겨진 퍼즐조각들을 보자, 새삼 쓰던 것을 빨리 완성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적어도 올여름이 가기 전에, 혹은 겨울이 오기 전에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나는 ‘바람이 분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곤 몇문장을 넣었다 뺐다 고치며 다듬길 반복했다.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몸에 금세 열이 올랐다. 가슴팍 사이론 벌써 땀이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되겠다. 찬물이라도 먹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음은 ‘벌떡’이었지만 몇차례 끙—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순서를 밟고서였다. 나는 컴컴한 거실을 가로질러 살금살금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씽크대 옆 냉장고 앞에 섰다. 문득 건넛방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아마 날이 더워 부모님도 문을 열어둔 듯했다. 문틈 사이로 들릴 듯 말 듯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내 매형은? 거기도?”

“응. 나도 더 말 못했어. 우리 오년 전에 빌린 것도 아직 못 갚았잖아.”

“………”

“너는?”

“후배들도 내 전화 이제 안 받는다.”

“그럼 어쩌지?”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귀를 쫑긋 세웠다.

“보증금도 다 까먹었는데…… 어쩌냐. 정말.”

“아까 그거, 한번 알아볼까?”

“어휴, 둘째 매형 그거 땜에 죽을 뻔했잖아. 상혁이 학교까지 찾아가고. 형님네 개 귀에 ‘호치키스’까지 박아놨대.”

“아니, 난 그냥 상담만 해봄 어떨까 했지.”

“그 새끼들, 얼마나 무서운 새끼들인데.”

“그래도 아침마다 문자 오면 갈등하게 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부모님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한참 얘기했다.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얼마 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새어나왔다.

“대수야. 우리, 전화해볼까?”

“전화? 어따?”

“수미한테.”

“안돼.”

“그래도 내가 부탁하면,”

“됐어, 시끄러.”

“그럼 어떡해.”

“그거 없던 걸로 하기로 했잖아. 것도 우리 쪽에서, 두번이나. 지금 와서 된단 보장도 없는데. 괜히 아름이만 상처받을 거야.”

나는 차가운 물병을 손에 쥔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유리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대수 네가 상처 받는 게 겁나는 건 아니고?”

두 사람은 얼마간 말이 없었다. 나는 어느 타이밍에 일어서야 할지 몰라 계속 주춤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지금 같아선…… 애 약만 아니라 밥도 못 먹이게 생겼어.”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입원시켜야 하잖아. 그 의사가 시한폭탄이라고 했단 말야.”

잠시 후, 아버지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한 통화에 얼마라는데?”

궁금해서 그러는지, 빈정거리려고 묻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어머니는 얼마간 수치심을 느끼는 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원.”

 

나는 부엌에 계속 있을 수도, 방으로 갈 수도 없어 쩔쩔맸다. 불쑥 새벽 요의가 밀려오는 게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때 어머니가 잘 쓰지 않는 말, 그러니까 ‘잘못’이란 단어가 들려오는 바람에 나는 다시 안테나를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 잘못인 거 같아.”

“왜 또 그래.”

“요새 다시 그 생각이 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다독였다.

“그 얘긴 안하기로 해놓곤. 그만 자자 미라야.”

두 사람은 오래전에도 아마 같은 얘길 반복한 모양이었다.

“그럼 누구 잘못인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러자, 아버지에게도 3년에 한번 진지해지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이유 같은 건…… 없어…… 미라야. 우리가 십년 내내 찾은 게 이유잖아. 아름이는…… 그냥 그렇게 된 거야. 의사들도 그랬잖아. 유전이 아니라고.”

어머니는 울적하게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약을 먹어 그런 거 같아. 약국에서 삼일 안엔 괜찮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막 운동장 뛰었어. 열 바퀴, 스무 바퀴, 심장이 터질 때까지 죽어라고. 뛰고 또 뛰고……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만 요즘 자꾸 그 생각이 나.”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꼭 닫고, 벽에 기대섰다. 어둠속, 컴퓨터 대기화면이 푸른 빛을 내며 어슴푸레 일렁이고 있었다. 저 혼자 막 움직이는 게 신기루 같기도 하고, 혼불처럼도 보이는 영상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린 채 그것을 바라봤다.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눈썹이 없어 이마의 땀이 그대로 눈 속으로 흘러내렸다. 가슴 한쪽이 쿡쿡거렸지만, 마음이 그런 건지, 심장이 그런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나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곤 메모 창을 띄워 조금 전 열어보았던 문서를 골똘히 응시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거란 걸’이란 말이 운석처럼 날아와 왼쪽 눈에 박혔다.

 

*

 

다음날, 어머니가 내게 콩나물을 사오라고 했다. 집 앞 구멍가게에 가서 아침거리를 사오란 거였다. 바쁘지 않아도 내게 부러 잔심부름을 시키는 건 어머니의 오랜 원칙이자 습관 중 하나였다. 나는 ‘아이고, 아이고’ 팔다리를 두드려가며 힘겹게 장을 보러 갔다. 그러고 돌아오는 길엔, 식전부터 집 앞에 나와 있는 장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여이! 오랜만이다!”

할아버지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예, 안녕하세요.”

옆에는 어디서 주워 온 건지 한쪽 팔걸이가 없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장씨 할아버지는 여느때처럼 담벼락 아래 쭈그려 앉아 있었다.

“병원 잘 다녀왔니?”

“예, 며칠 됐어요.”

“의사놈들이 뭐라 하디?”

“예,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대요!”

“허, 거, 명의일세.”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혼자 킬킬거렸다.

 

밥상 앞에 아버지와 나, 그리고 어머니가 둘러앉았다. 콩나물국 위론 뜨겁고 기분 좋은 김이 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밥을 몇 술 뜨자마자 다짐하듯 말했다.

“나 그거, 수미 아줌마가 하는 프로에 나가려고요.”

부모님은 밥을 먹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얘가 그걸 어떻게 아나, 알면 어디까지 아나 혼란스런 표정을 하고서였다. 나는 예전에 엄마가 친구랑 통화하는 걸 듣게 됐다고, 지난 얘기지만 줄곧 그 생각이 났다고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 아줌마 어릴 때 엄마 단짝친구였던 그분 맞죠? 방송국 피디랑 결혼하셨다는 분.”

어머니는 간밤 일이 떠올랐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먼저 입을 뗀 건 아버지였다.

“한아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왜요?”

“왜요는 무슨 왜요야? 우리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런 거지.”

“왜 나한테 들어온 거를 왜 엄마 아빠가 결정해요. 저 그거 해볼래요.”

“이게 진짜?”

“방송하는 거 재밌을 거 같아요.”

어머니가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재밌는 거 아니야. 아름아. 힘든 거야.”

“에이, 엄마.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만큼 힘들라고요. 그거 해서 나 맛있는 거 좀 사줘요.”

“안돼.”

“할래요.”

“안돼.”

“한다니까요!”

“야 인마. 안되면 안되는 줄 알아. 닥치고. 어서 밥 먹어.”

“어? 그럼 나 입원 안 시켜줄 거예요? 진짜? 에이 부모가 그럼 안되지. 엄마 아빠는 자식 키우는 게 진짜 쉬운 줄 알았나봐?”

 

나는 너스레를 떨며 김치보시기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순간 손아귀에 힘이 풀려 젓가락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젓가락이 식탁에 부딪혀 짤그락 소리를 내며 튕겨져나갔다. 우린 모두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쇠젓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것은 날카로운 단도처럼 차갑고 고요하게 빛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리고 나는, 나뭇가지같이 강마른 내 손이 허공을 향해 파르르 떨리는 걸 한동안 꼼짝 않고 지켜보았다.

 

*

 

아버지의 가게는 외가에서 버스로 40분 남짓 떨어진 읍내에 세워졌다. 농투성이 아니면 어부들이 태반인 군 안에서 나름 입성 좋고 언변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슨 무슨 읍이라 않고 그냥 시장이라 불렀다. 그곳 사람들더러 ‘시장 사람들’이라 하고, 볼일이 있을 때도 ‘시장 간다’고 했다. 그래 봤자 몇개의 관공서와 다방, 양조장, 피아노 학원, 목욕탕 등이 모인 소읍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은 나름 지역사회 내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내색은 안해도 사실 그랬다. 개구리가 올챙이 깔보듯 촌사람이 벽촌 사람에게 갖는 알량한 우쭐함이었다.

 

‘시장’에 관해서라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는 바가 있었다. 어머니가 다니다 만 여자고등학교가 거기 있었고, 아버지가 처음 ‘임신’사실을 접한 까페도 근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미성년자였지만 법적으로 사업자등록이 가능했다. 외할아버지는 제대 후 빈둥거리고 있던 넷째아들을 사위에게 붙여줬다. 넷째 외삼촌은 가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아버질 돕기로 했다. 겸사겸사 자기도 사업에 필요한 요령을 익히고 경험을 쌓으려는 계산에서였다. 개업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이미 읍내서 자리를 잡은 외삼촌들이 견적을 뽑아주고, 거래처를 소개해주는 등 여러모로 힘써준 덕이었다. 가게는 시장의 ‘로데오거리’라 불리는 작은 번화가에 들어섰다. 시장에서도 멋 좀 낸다 하고, 돈 좀 버는 이들이 모여드는 사거리였다. 아버지는 나이키 매장이 무엇보다도 ‘깨끗하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본사의 요구와 기준에 의한 거였지만, 시골에서 그만큼 쾌적하고 산뜻한 가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갑자기 사모님이 된 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물건들이 자기 주위에 그렇게 많이, 아무렇지 않게 깔려 있는 게 신기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게를 둘러본단 핑계로 종종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긴 채 시장으로 놀러 나갔다. 그러곤 단짝 한수미를 만나 까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화제라고 해봐야 육아와 살림에 관한 것이 전부였지만. 한수미는 지루해하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었다. 사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못된 인생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한수미에게 자랑스레 선물했다. 한수미는 웃으면서 껄렁하게 답했다.

“야, 너 호르몬 때문에 우리 우정을 좀 과대평가하게 된 거 같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기름종이를 꺼내 콧잔등과 이마 주위를 찍어내며 물었다.

“아름인 잘 커?”

“응. 좀 예민한 편인데 잘 커. 야, 너 근데 그거 아냐? 애기들은 자기 팔이 자기 거라는 거 잘 모른다?”

“정말?”

“응. 좀 지나야 알아. 아름이도 그랬어. 누워 있을 때 자기 팔을 신기하게 뚫어져라 쳐다봐. 막 꼬무락거려보고. 재밌지? 자기가 자기란 걸 믿기 위해 자꾸 막 그러더라고.”

“와. 되게 신기하다. 우리 가정시간에도 그런 거 알려주면 좋은데.”

“내가 가르쳐볼까?”

“제발 그래라. 나 내신도 좀 잘 주고.”

한수미는 어머니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살갑게 물었다.

“그래서, 말은 잘 해?”

“아직 단순한 거밖에 못해.”

“그래도 다행이네. 너 걱정했었잖아.”

“응. 근데 얘가 아무 남자한테 다 아빠라 그래. 지 삼촌한테도 그러고. 할아버지한테도 그러고.”

“진짜?”

“응. 근데 아름이 또래 애들은 다 그런다나봐. 대수도 접때 어디 배달 갔다가, 어린이집 아기들이 개떼같이 몰려들어 자기더러 일제히 아빠, 아빠 부르는데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대.”

“으하. 재밌다.”

잠시 후, 한수미는 기름종이를 동그랗게 말며 입을 뗐다.

“미라야.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뭐?”

“넌 대수가 왜 좋았어?”

“어? 갑자기 얘가 왜 이래?”

“남자애들한테 아무리 대시받아도 꿈쩍 안했잖아. 그때 오토바이 몰고 온 애가 약 먹었을 때도 가만있었고. 그런데 대수랑은……”

어머니는 쑥스러운 듯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게…… 그냥 서로 얘기하다가.”

“얘기?”

“나도 걔 첨엔 별로였거든. 어쩌다 같이 말을 많이 하게 됐어. 운동 얘기도 하고, 집안 얘기도 하고…… 근데 어느날 걔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왜?”

“하도 맞아서. 선생이 패고, 선배가 때리고. 늦으면 늦는다고 맞고, 진지하면 인상 쓴다 맞고, 쾌활하면 까분다고 맞고, 잘하면 건방지다 맞고, 못하면 형편없다 맞고, 그냥 그렇게 많이 맞았대. 그러다 어느날, 시합 끝나고 선배들한테 엄청 맞았다나봐. 체고에서도 원래 얼굴은 잘 안 때리잖아? 근데 그날 대수 얼굴이 멍들고 피나고 장난 아니었던 거지.”

“어머.”

“뭐 그래서 그런 얼굴로 절뚝이며 기숙사에 돌아왔대. 근데 거기 동기 녀석 하나가 바지를 벗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더래. 머리가 좀 모자란 애였는데. 달리기를 진짜 잘해서 전국대회에서 메달도 따고 그랬다나봐. 왜 티브이에도 가끔 그런 애들 나오잖아? 근데 얘네 엄마가 좀 특이해서 얘를 굳이 체고에 집어넣은 거야. 중학교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보냈다 하고.”

“그래서?”

“얘가 대수를 무지 따랐대. 대수야, 대수야 따라다니고. 숨겨놨던 과자도 주고. 너도 알다시피 대수가 착하니까 잘 받아줬나봐. 그러니까 방도 같이 썼지. 근데 그날 대수가 그러고 방에 오니까, 걔가 몸을 웅크린 채 딸딸이를 치고 있더래. 문도 안 잠그고. 방 한구석에서. 병신같이 끙끙대면서. 근데 대수 말이,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더래. 그래서 걔를 사정없이 팼다더라.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르게. 미친놈처럼 펄펄 날뛰면서 발길질하고 주먹 날리고 한참을 그랬나봐. 걔는 바지도 못 올린 채 대책 없이 맞기만 했고……”

한수미는 조그맣게 ‘헉’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학교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대. 아마 누군가에게 처음 하는 얘기였나 봐. 목소리는 밋밋한데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응? 그래서 뭐?”

“어떻게 했냐고.”

어머니가 망설이다 말했다.

“…… 그래서 잤지.”

“아……”

사실 한수미가 우리 아버지 얘길 꺼낸 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길 하려면 쿠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수미는 어머니와 줄기차게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헤어지기 바로 직전에서야, 주저하듯 입을 열었다.

“미라야, 있잖아.”

“응.”

한수미는 가까스로 운을 뗐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와! 진짜? 진짜? 누군데?”

“어. 네가 아는 애야.”

“어? 누구?”

“승찬이.”

“승찬이?”

“어. 채승찬.”

어머니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자기가 유부녀란 사실도 잊고서였다. 승찬은 어머니가 태어나 진심으로 좋아했던 이성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누구보다도 한수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

 

채승찬이란 사람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키가 작고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어 어딘가 예민해 보였다. 삼십대 중반답게 아랫배가 살짝 나왔지만, 몸에 붙는 셔츠에 감각적인 벨트를 차고 있었다. 어머니 말로 그는 어머니와 중학교 동기로, 대호관광단지 설립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서 전학온 친구라 했다. 바야흐로 이십년 전, 대처에서 밀려온 아이들로 인해 시골 1등은 갑자기 3등이 되고, 15등은 20등이 되던 시절에 말이다. 어머니는 그가 전교생 중 ‘나이키’를 신고 다니는 몇 안되는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글씨도 잘 쓰는 아이였다고 했다.

“글씨요?”

“어. 글씨.”

 

우리는 대문 앞에 나란히 선 채 촬영팀을 맞았다. 카메라 감독이 없어 정확히는 ‘사전조사팀’이었지만 어차피 한 팀이니 상관없었다. 승찬 아저씨는 젊은 아가씨 한명을 대동했다. 며칠 전 어머니와 통화한 구성작가였다. 순서상 어머니가 수미 아줌마에게 연락을 하고,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귀띔한 게, 다시 작가 누나를 통해 돌아온 거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수미 아줌마의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순 없었지만, 어머니가 쩔쩔매고 있다는 건 알았다. 어머니는 유난히 더듬었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말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끼리 서로 유난히 상냥하게 대하는 때는, 일단 두 사람이 친하지 않다고 보는 편이 맞는 거였다.

 

“네가 아름이구나?”

승찬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잠시 멈칫거린 뒤 이내 반갑다는 듯이 인사했다. 내가 너무 왜소해 어린아이처럼 대하려다 순간 열일곱살이란 걸 의식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초등학생처럼 긴장한 채 내 옆에 서 있었다.

“잘 지냈니? 오랜만이다.”

승찬 아저씨가 주머니서 명함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어색함을 숨기려 조그맣게 말했다.

“응. 바쁠 텐데 어려운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고맙기는. 나는 이게 직업인데.”

 

나는 곰돌이가 그려진 노란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좀 점잖은 걸 찾아보려 했지만, 내 치수에 맞는 것 중 나를 제 나이로 보이게 할 만한 옷은 드물었다. 그 위에다는 챙 넓은 모자에 썬글라스를 썼다. 실외에 오래 있을 경우, 햇빛을 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나보다 옷에 더 신경 쓴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이 옷 저 옷 걸쳐본 뒤 우울해했다. 그러곤 혹여 자기 몸에서 돼지 노린내가 나지 않을까 킁킁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여름인데도 칠부 남방을 골라 입었다. 그나마 그게 팔뚝 살을 가려줘서였다. 아버지는 촬영 당일에만 오기로 하고 일찍 일을 나간 뒤였다.

 

어머니는 인터뷰를 집에서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작가 누나에게는 ‘좁고 불편하실 텐데’라고 둘러댔지만, 승찬 아저씨에게 속살이라도 보이는 양 심란했던 거다. 우리는 거실 겸 부엌으로 쓰는 공간에 오밀조밀 둘러앉았다. 어머니는 손님들을 위해 방석 네개를 장롱에서 내왔다. 그러곤 집안 곳곳을 둘러보는 승찬 아저씨를 불안하게 힐끔거렸다. 탁자 위엔 작가 누나의 수첩과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아름이가 아픈 건 언제 알게 되셨나요?”

작가 누나가 차분하게 물었다.

“세살 때요. 애가 자꾸 열이 나고 설사를 했어요. 병원에선 그냥 감기라 하고, 배탈이라 하고. 그러다 나중에는 안되겠는지 한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네에……”

“그래도 원인을 못 찾았어요. 애는 자꾸 자지러지는데 얼마나 속이 타던지.”

“그래서 서울로 오신 건가요?”

“예. 병원 때문에 아름 아빠나 저나 아무 연고 없이 올라왔어요.”

“여기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아름이가 네살 때 올라왔으니까 십년 넘었죠. 집을 계속 좁혀가면서 여기저기 옮겨 다녔어요.”

“혹시 지금 두 분 하시는 일이 어떤 건가요?”

“아름 아빠는 여러가지를 하다 잘 안돼서. 지금은 현장에서 1톤 트럭을 몰고 있어요.”

“어머님은요?”

“저는……”

어머니는 뭔가 메모중인 승찬 아저씨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곤 눈을 내리깐 뒤 대답했다.

“아름이 돌보는 일만 하고 있어요.”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어머니가 민망할까봐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생활이며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드시겠어요.”

“네.”

“아름이가 학교에 다닌 적은 있나요?”

“초등학교에 반년 정도 다녔어요. 아름이는 학교를 무척 좋아했는데, 수업중에 몇번 발작을 해서……”

“다른 분들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나 보호자를 찾아 모임을 만들던데. 그러면서 서로 의지하고 정보도 나누는 것 같더라고요. 어머님은 어떠셨어요?”

“그게, 저희도 찾아보려 했지만 없더라고요. 아름이 같은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도 무척 드물다 하고. 공부할 만한 책도 없어 저희도 참 답답했어요.”

“지금 아름이 상태는 어떤가요?”

“다른 데도 안 좋지만 한쪽 시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심장이……”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승찬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경청하다 몇번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차례는 나였다. 승찬 아저씨가 부드럽게 물었다.

 

“시작할까?”

“네.”

승찬 아저씨가 눈짓을 주자 작가 누나가 가벼운 말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아까 어머님이 그러는데, 아름이 책 좋아한다며?”

“네.”

“무슨 책 좋아해?”

“그냥 책이면 다 좋아요.”

“그래?”

“네. 저는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마음도 빨리빨리 키워놓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승찬 아저씨와 작가 누나가 방긋 웃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 작은 안도와 자부가 스치는 걸 보았다.

“그럼 하나 소개해줘볼래?”

“어…… 뭐가 있더라? 얼마 전에 본 시집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한번에 한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

“그리고?”

“음, 또 ‘한꺼번에 한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란 문장도요.”

승찬 아저씨가 짓궂게 질문했다.

“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나는 속으로 ‘너는 그럼 아냐?’라고 핀잔주려다가 예의바르게 대꾸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좋았어요. 수면 위로 낙엽 떨어질 때 이는 파문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게 내 가슴에 생겼어요. ‘눈 이야기’라는 제목의 시인데, 읽다 좋아서 몰래 찢어놨어요. 원래 도서관에서 빌린 책엔 잘 안 그러는데. 저, 근데 이런 얘기 방송에 다 나가나요?”

승찬 아저씨가 말했다.

“아니. 몇몇 말들만 방송으로 나갈 거야. 그중에 좋은 것을 추리려고 이렇게 미리 인터뷰 하는 거고.”

“그래도 책 찢은 얘기는 쓰지 말아주세요.”

승찬 아저씨는 걱정 말라며 피식 웃었다.

“대신 촬영할 땐 지금 한 말을 다시 해달라고 할 수도 있어. 그때 잘 도와줄 수 있지?”

“뭐, 생각해보고요.”

작가 누나가 질문지를 보며 다음 말을 건넸다.

“학교에 다녔었다던데?”

“네. 지금도 가고 싶어요. 왠지 거기 친구들은 제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걸 배우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도 않아.”

“그 말은 꼭,”

“네?”

“유부남이 다른 총각들한테 결혼하지 말라며 부리는 엄살 같은데요?”

작가 누나가 머쓱해하자, 승찬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허허, 이거 못 당하겠네.”

“농담이에요.”

작가 누나가 콧잔등에 땀을 한번 닦아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음…… 오랫동안 치료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니?”

“그게…… 혼자라는 생각이요.”

“그래?”

“아니, 아니. 부모님이 저를 외롭게 두셨단 뜻이 아니고. 아플 땐 그냥 철저하게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얘길 한 거예요.”

“그리고 또 뭐가 힘들었어?”

나는 잠시 머뭇대다 대답했다.

“친구가 없는 거요.”

어머니가 난생처음 듣는 얘기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리고?”

“에? 또요? 그렇게 많아야 돼요?”

“아니.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

어머니는 작가 누나를 빤히 쳐다봤다. 심지어 승찬 아저씨까지 움찔하는 눈치였다. 아마 내가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묻는다는 게 잘못된 방식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그럼, 젊다는 건 어떤 기분인데요?”

“어?”

작가 누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아니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저는 제가 젊었을 적 기억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음, 저도 그래요. 너무 어렸을 때라. ……하지만 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어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을 볼 때 제가 자꾸 흘끔거리게 된다는 거요. 피부랑 머릿결이랑 손톱이랑 동공이랑 그런 데서 나는 윤기 같은 걸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바라보게 돼요. 그러고 그걸 사람들이 모른다는 사실까지 함께 흘끔거려요. 그럴 땐 나도 저랬는데 혹은 저랬겠지 하고 생각해요. 어쩌면 늙는다는 건 몸에서 빛이 빠져나가는 과정들인지도 모르겠다고.”

승찬 아저씨가 조금 전의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말했다.

“아름인 정말 어른스럽구나.”

“아까 제가 그랬잖아요. 마음을 빨리빨리 키워놔야 했다고.”

작가 누나가 덧붙였다.

“책을 많이 봐서 그런가보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저 박식하고 멍청한 사람 되게 많이 알아요. 뉴스 보면 만날 나오잖아요.”

“하하. 그래?”

“아,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우릴 피하는 느낌 같은 것.”

작가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네. 장씨 할아버지나 김씨 할아버지나 최씨 할아버지나 저나 뭐 그런 사람들을요.”

“노인분들 말이구나?”

“네. 대놓고 그러진 않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끔 그걸 느껴요. 옆에 굳이 안 오려고 하는 거. 와도 좋아하진 않는 거. 마치 늙음이 자기들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더라고요.”

작가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뭔가 메모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쾌활한 척 한마디 덧붙였다.

“음, 그리고 제가 누나보단 아마 오래 살았을 걸요?”

“응? 그게 무슨 뜻이니?”

나는 이미 오래전 빛이 빠져나가 누르스름해진 손톱을 매만지며 웅얼거렸다.

“너무 아플 때는요. 우리 엄만 그걸 ‘지랄발광’이라 하는데. 그럴 때면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져요. 일분이 한시간 같고. 어느 때는 영원 같고. 그런 하루를 계속 살아왔잖아요. 저. 그러니까 주관적인 시간으로만 따지면 내가 아저씨나 누나보다 더 산 거예요.”

그렇게 말해놓고 왠지 머쓱해 나는 ‘하아’ 하고 웃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하나도 웃지 않았다. 승찬 아저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니?”

“저희 집은 교회 안 다니는데요?”

“그럼, 그 비슷한 누군가에게라도 말이야.”

“음…… 잊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분이 나를.”

“………”

“하느님은 너무 바쁘시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하느님이 아니라서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요. 세상에 하느님만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따로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거꾸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따로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게 결코 하느님을 능가할 만한 일은 못 되더라도, 하느님도 부러워할 만한 몸짓들이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왜 그런 생각을 했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했다. 어리고 철없고 어여쁜 내 부모. 몇십년 후, 결국 나와 같은 얼굴을 가지게 될 내 부모에 대해. 만일 그 자리에 아버지가 있었대도 똑같이 했을 터였다. 어머니의 눈망울이 잠시 흔들렸다. 작가 누나는 그후 몇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러곤 수첩을 덮으며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름이는 꼭 해보고 싶은 게 뭐야?”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생각난 듯 대답했다.

“아……! 부모님이 처음 만난 장소에 가보는 거요.”

“그래? 그게 어딘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물에 잠겨서.”

그러자 그 방에 있던 같은 고장 출신 두명이 자기들도 모르게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