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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서재정 徐載晶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통일외교분과 위원 역임. 주요 저서로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한반도의 선택』 등이 있음.
이승헌 李承憲
버지니아대학 물리학과 교수. 미국 국립표준연구소 물리학자 역임. 미국 중성자산란협회 과학상 외 수상. 5편의 네이처(Nature) 자매지 논문을 포함, 100여편의 SCI 논문 출판.
*이 글의 원본은 지난 7월 30일에 출간된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창비 2010)에 수록되었으며, 그후의 사태전개를 반영하여 필자들이 최근 시점에서 보완했다.
결정적 증거, 결정적 의문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보고에 부쳐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후 정부는 4월 11일 윤덕용(尹德龍) 전 한국과학기술원장을 천안함 침몰사고 민간조사단장에 임명하여 본격적인 원인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미군 해양사고 전문가들도 같은날 입국해 활동을 시작했고 영국 및 호주와 스웨덴도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지원활동을 했다.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은 이후 한달 이상 천안함 사고원인을 조사해, 그 결과를 5월 20일 발표했다. 그러나 합조단의 보고서는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입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합조단은 세가지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①천안함은 외부폭발로 파괴되었다, ②그 외부폭발은 ‘1번 어뢰’의 폭발이었다, ③‘1번 어뢰’는 북한 어뢰였다. 이 세가지 과학적 증거를 종합하면 북한 어뢰가 천안함 외부에서 폭발해서 천안함이 파괴, 침몰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매우 논리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주장이며, 이 세가지 증거가 모두 확실하다면 북한이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결론도 확실할 것이다. 반면 합조단은 이 세가지 증거 모두를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 가운데 한가지라도 입증되지 않으면 북한이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합조단의 세가지 과학적 증거들을 과학적으로 엄밀히 분석했고, 이를 위해 실험실에서 실험과 씨뮬레이션을 시행했다. 또한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사례와 기존 과학이론을 참고했다. 우리의 결론은 합조단의 세가지 과학적 증거들은 모두 ①입증되지 않았으며, ②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고, ③일부 데이터는 조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조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파괴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근거가 전혀 없다.
1. ‘외부폭발’의 과학적 증거
어뢰가 선체를 직접적으로 가격하지 않고 외부폭발하는 경우 다음의 세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첫째, 어뢰의 겉을 싸고 있던 금속외피와 어뢰의 내부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파괴되면서 파편과 파손부품들이 생긴다. 둘째, 어뢰의 폭약이 폭발하면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고온의 기체가 급속히 팽창하며 버블을 형성한다. 셋째, 폭약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한다. 그러나 천안함에서는 이 세가지 중 어느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합조단은 ‘어뢰추진체’는 발견했으면서도 그외의 파편과 부품들은 수거하지 못한 상태고, 버블효과를 보여준다는 씨뮬레이션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5월 20일에도 완료되지 않았으며(이 글을 마무리하는 2010년 8월 초까지도 완료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충격파 효과는 전혀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1.1 파편과 부품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뢰 폭발시 파편의 이동거리는 폭발에서 발생되는 운동에너지에 비례한다. 강력한 폭발일수록 파편은 멀리 분산됐을 것이고, 폭발이 강하지 않았다면 파편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천안함과 접촉할 수 있는 파편의 수는 어뢰와 천안함 사이 거리의 제곱의 역에 비례한다. 합조단의 발표대로 강력한 외부폭발이 있었고 폭발위치가 천안함에서 멀지 않았다면 많은 수의 금속조각들이 천안함과 충돌, 선체에 박혔거나 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에서는 파편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모순이다. 어뢰 폭발설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현상이다.
합조단은 파편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가 파편이 조류에 휩쓸려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1 그러나 이 설명의 전제는 비과학적이다. 이러한 설명은 파편이 6m도 밀려나가지 않아 천안함과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합조단의 주장대로 250kg의 폭발물이 천안함과 약 6m 떨어진 거리에서 폭발했다면 충격파가 천안함과 접촉하는 순간의 압력은 5000psi가 넘었을 것이고,2 이 정도의 압력이라면 가벼운 파편들은 선체에 깊숙이 박히거나 선체를 뚫고 지나갔어야 정상이기 때문에 합조단의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전제에 기초한 합조단의 설명은 틀린 것이다.
합조단과 국방부는 그밖에도 파편의 위치에 관해 두가지 모순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첫째, 무거운 어뢰추진체는 30m 이상 밀려났지만 그보다 작고 가벼운 파편은 6m도 이동하지 않았다. 둘째, 폭발시 파편은 6m도 밀려나지 않았지만 어뢰추진체 근처에서 발견된 파편은 없다. 두가지 모두 과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모순된 주장이다.
국방부는 “씨뮬레이션 결과 어뢰 폭발시 추진체는 30m 이상 밀려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 추진체 정도의 무게를 가진 부품이 30m 이상 밀려났다면 그보다 가벼운 파편들은 훨씬 멀리까지 밀려났을 것이므로 천안함 쪽으로 밀려난 파편들은 당연히 함체와 충돌하여 함체를 뚫어 구멍을 내거나, 박혀 있거나, 충돌의 흔적을 남기고 튕겨나갔을 것이다. 파편이 추진체와 같이 30m만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폭발 위치와 가장 가까운 가스터빈실 좌우로 30m씩 파편의 흔적이 남았어야 정상일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파편은 추진체의 무게보다 적어도 100분의 1 이상 가벼울 것이고, 물체의 이동거리는 그 질량에 반비례하므로 파편 대부분은 최소한 3000m는 이동했을 것이다. 게다가 물체가 작고 가벼울수록 물속에서의 저항이 작으므로, 그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파편의 이동거리는 3000m를 훌쩍 넘었을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에는 뱃머리에서부터 함미까지 파편이 무수히 박혀 있거나 파편과의 충돌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천안함의 선체에서는 이러한 파편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국방부의 주장대로 어뢰추진체를 30m 이상 밀어낼 정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자연히 뒤따라야 했을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편 천안함 함체에서 파편이 대량으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어뢰의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파편이 6m 이상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조단은 주장한다. 이 주장은 비과학적이지만, 합조단의 주장이 맞다고 가정하면 어뢰의 거의 모든 부품과 파편, 외피 조각은 폭발장소로부터 6m를 넘기지 못한 위치에서 관성을 잃고 가라앉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 모든 부품과 파편은 이후 해류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해저에 도착했을 것이고, 따라서 어뢰추진체 발견지점 주위에서 어뢰의 모든 부품과 파편, 외피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합조단은 쌍끌이어선을 5월 10일부터 운용하여 5월 15일 어뢰추진체를 인양하고, 증거물 추가 인양을 위해 5월 20일까지 지속 운용했음에도 다른 부품과 파편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뢰가 폭발했다면 파편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 파편의 위치는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들이 폭발에 의해 강하게 밀려나갔다면 천안함 함체에 다수가 박혀 있을 것이고, 폭발이 강하지 않아 천안함을 타격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해저에 모두 가라앉았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어뢰추진체가 발견된 지점의 주위에서 무거운 부품들이 발견되기 시작해서 해류의 흐름에 따라 거리가 멀어지며 점차 가벼운 파편들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파편과 부품이 천안함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해저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뢰가 폭발했다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파편과 부품 및 외피 조각 대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뢰에 의한 외부폭발설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1.2 버블효과는 있었는가
어뢰나 기뢰 같은 수중폭발물은 폭발시 파편 이외에도 버블효과를 생산한다. 폭발하는 순간 발생하는 고열가스가 고속으로 팽창하며 일종의 풍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버블은 내부의 가스압력과 외부의 수압이 평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팽창을 중단해야 하지만, 일종의 팽창관성 때문에 이 지점을 넘어 과도팽창한다. 이후 최대팽창점에 도달한 버블은 수압이 내부 가스압력보다 높기 때문에 수축하기 시작하고, 이때 과대수축되면 다시 팽창하는 싸이클을 반복한다. 함정이 최대팽창점 안에 있다면 함정은 버블의 팽창과 수축에 요동되고, 충격파까지 추가되면 함체가 절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합조단은 어뢰의 외부폭발로 생성된 버블이 천안함을 절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합조단의 버블효과 씨뮬레이션 결과는 천안함의 피해상태와 현격히 차이가 난다. 또 필자의 분석으로는 폭발물 250kg의 외부폭발로 생성된 버블이 천안함을 절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씨뮬레이션이 천안함의 절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합조단의 버블효과 주장에는 심각한 버블이 끼어 있다고 하겠다.
버블효과는 천안함을 절단시킨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되었으나, 합조단이 발표한 것 같은 버블효과는 그만큼 위력적이지 못하다. 폭발물 250kg 정도가 수심 6~9m에서 폭발할 때 물속에서 생성되는 풍선의 최대 반지름이 3m 정도이므로 천안함에 충격을 줄 수는 있었겠지만, 그 충격의 크기는 30~80bar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4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의 압력이 15bar인 것에 비교하면 군함이 그 2~5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절반으로 절단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버블효과를 보여준다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며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듯이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 버블효과만으로 선박을 절단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이 정도의 버블압력으로 천안함이 절단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합조단은 그 가능성조차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합조단이 결과보고서를 발표하던 5월 20일 기자회견장에서 버블효과를 보여주는 씨뮬레이션 동영상이 상영되었지만, 정작 씨뮬레이션은 그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 이 씨뮬레이션은 어뢰폭발 후 첫 0.5초간 천안함이 부분적으로 파손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천안함이 절단되는 것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천안함이 버블효과로 절단될 수 있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서재정의 글이 발표된 직후 『동아일보』는 합조단의 씨뮬레이션이 더 진전되었다며 폭발 후 1초간의 버블효과를 보도했지만 이 역시 천안함이 절단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그림 3).5 그렇다면 합조단은 어떠한 근거로 버블효과가 천안함을 절단했다고 주장하는가? 합조단은 아직까지도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합조단과 『동아일보』가 공개한 씨뮬레이션은 천안함이 과연 버블효과로 손상을 입었는지에 의문을 품게 한다. 버블은 기본적으로 구형(球形)이므로 버블이 천안함과 충돌하여 손상을 입혔다면 천안함의 선저(船底)를 거의 구형과 유사하게 변형시켰을 것이다. 씨뮬레이션도 예상되는 변형의 모습이 크게 보아 구형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안함 선저의 피해양상은 구형이라기보다는 날카로운 물체에 밀려서 올라간 듯한 각이 진 모습을 하고 있다. 또 씨뮬레이션은 선저가 버블로 밀려올라가면서 가장 윗부분의 인장이 선체의 인장강도를 넘어서 일부분 찢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부분은 흘수선(吃水線)을 훨씬 넘어서 갑판에 가까울 정도로 밀려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천안함은 가장 많이 밀려올라간 함수부분도 4,107mm만이 밀려올라갔고, 절단면도 역W의 모습을 하고 있어 ‘一자’모양의 씨뮬레이션 파열 모습과 현격히 불일치한다.
씨뮬레이션은 함저가 밀려올라간 최고점에서 두 부분이 다소 파열되지만, 실제로 천안함이 절단된 함미 FR.85와 함수 FR.67 부분에서는 절단은커녕 파열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천안함이 FR.85와 FR.67에서 一자로 깨끗하게 통째로 절단된 것과 아예 다른 양상이다(그림 2). 즉 합조단의 씨뮬레이션은 역설적이게도 천안함이 버블로 절단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합조단은 외부폭발을 전제로 한 씨뮬레이션으로도 천안함의 절단 가능성조차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씨뮬레이션이 보여주는 천안함의 파손형태는 실제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버블효과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없을 뿐더러, 근거로 제시한 씨뮬레이션은 오히려 버블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버블효과 주장은 오히려 외부폭발설에 의심을 품게 만든다.
1.3 충격파는 있었는가
어뢰의 외부폭발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충격파도 생겼을 것이다. 충격파가 생기지 않는 폭발은 없고, 어뢰의 경우 통상 폭발에너지의 대부분은 충격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6 그리고 이 충격파는 천안함에 직・간접적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에서는 충격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외부폭발설과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다.
통상적으로 어뢰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의 압력은 버블효과의 최고압력보다 6~10배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격파는 폭약이 폭발하는 순간 주변의 매체(어뢰의 경우는 물)를 강하게 밀어내 생기는 파동으로, 음속보다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천안함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호주 국방부 국방과학기술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제시된 공식에 따라, 250kg 상당의 폭약이 폭발할 때 생기는 충격의 크기를 계산하면 34.4~55.5MPa(메가파스칼), 이를 psi로 환산하면 4989~8050psi가 나온다. 이 정도 충격이 주는 파괴력을 이해하기 쉽게 5psi의 파괴력과 비교해보자. 제시한 사진은 5psi가 가옥에 미치는 파괴력을 보여준다(그림 4).
합조단의 주장대로 폭발량 250kg 규모의 외부폭발이 있었다면 여기서 발생한 충격파가 천안함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최소한 5000psi의 압력을 가했을 것이며, 5psi로 집이 무너질 정도라면 이의 1천배가 넘는 충격파는 무쇠로 만든 선박이라도 만신창이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미 절단면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뢰의 충격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았을 선미의 절단면은 너무나도 깨끗하다(그림 5). 천안함 선저의 상태 또한 어뢰의 충격파 효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조사단이 발표한 것과 같은 어뢰의 폭발이 있었다면 천안함의 다른 부분도 충격파의 2차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던 선원들, 특히 견시병같이 갑판이나 외부에 노출된 병사들은 총알같이 허공으로 튕겨나갔을 것이고, 충격의 여파로 선체 부품들의 이음매, 부착물, 무기체계 들도 원위치에서 이탈하거나 파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단의 발표는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고만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합조단이 공개한 디젤기관실에서도 이러한 충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모든 이음매들이 깨끗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확성기까지도 붙어 있다(그림 6).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탄약고의 사진 두장이다(그림 7). 합조단이 공개한 선체 내부 탄약고 사진에서 탄약들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이 사진들은 일각에서 제기된 내부폭발설을 불식시키는 결정적 증거로 보인다. 즉 탄약이 폭발하지 않고 원상태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는 물적 증거이므로 탄약이 내부에서 폭발한 것 아니냐는 내부폭발설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이 ‘증거’는 충격파와 일치하지 않는다. 5000psi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면 탄약들은 마구 흐트러지고 외부 손상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두세개의 탄약을 제외하고는 모두 멀쩡하고, 찌그러진 것도 중간 부분이다.
이처럼 합조단의 주장대로 어뢰의 외부폭발이 있었다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파편과 버블효과 및 충격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천안함 외부에서 폭약 250kg이 폭발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2. ‘1번 어뢰’와 천안함의 인과관계
합조단은 천안함의 외부에서 폭발해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그 인근에서 발견된 어뢰, ‘1번’이라고 씌어져 있는 어뢰의 폭발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두가지 과학적 분석결과를 제시했다. 첫째,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하얀 ‘흡착물’이 같은 원자구성을 보이고 있고, 둘째, 흡착물은 어뢰가 폭발할 때 발생하는 것과 동일한 화합물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합조단은 첫째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로 에너지분광기(EDS) 분석결과를 제시했고, 둘째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로 엑스선회절기(XRD) 분석결과를 제시했다.7 언뜻 매우 과학적으로 보이는 분석과 주장이다. 그러나 합조단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객관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고, 근거로 제시된 데이터는 적어도 일부가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합조단의 주장은 두가지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다. 첫째는 앞서 입증한 것같이 외부폭발의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부폭발체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외부폭발이 없었다면 외부폭발체도 없는 것이 합리적이고, 외부폭발체가 있다면 외부폭발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천안함을 절단한 외부폭발의 흔적이 없는데도 합조단은 ‘1번 어뢰’라는 외부폭발체를 발견했다. 합조단의 주장대로라면 외부폭발의 흔적은 없지만 외부폭발체는 있다는 논리적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러한 논리적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 즉 외부폭발이 합조단의 주장과 같이 천안함을 절단한 강력한 폭발이 아니라, 흡착물만을 함체 표면에 남겨놓고 다른 파손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였다면 외부폭발의 흔적이 없어도 외부폭발체는 존재할 수 있다. 즉 천안함과 ‘1번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동일한 폭발에서 생성된 것이 입증된다면, 적어도 ‘외부폭발’=‘1번 어뢰의 폭발’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물론 이 등식이 입증되더라도 합조단은 이 ‘1번 어뢰’의 폭발이 천안함을 절단・침몰시켰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제한적 외부폭발’=‘1번 어뢰의 폭발’이라는 등식을 입증하기 위해 합조단은 위에서 말한 두가지 과학적 분석결과를 제시했다. 합조단은 천안함 표면과 ‘1번 어뢰’에서 하얀 흡착물을 채취했으며 두 물질은 동일한 원자구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화합물구조도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둘 다 산소와 알루미늄이 주 구성원자이고, 산소와 알루미늄은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의 형태로 화합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은 폭약과 알루미늄 가루가 섞인 어뢰가 폭발하면서 생성되는 물질이므로, 천안함과 ‘1번 어뢰’에서 발견된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은 ‘1번 어뢰’가 폭발하면서 생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흡착물이 ‘외부폭발’=‘1번 어뢰의 폭발’이라는 등식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필요조건을 충분조건과 동일시하는 논리적 오류다. 합조단의 주장대로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하얀 흡착물이 같은 원자구성과 화합물 결정구조를 갖고 있다면, 이것은 ‘1번 어뢰’가 천안함의 흡착물을 생성했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이 동일한 원자구성과 화합물구조를 갖고 있다고 입증하더라도, 이것이 곧 두 물질이 동일한 기원에서 생성됐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와 나이지리아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가 동일한 원자구성과 화합물구조를 갖지만 전혀 다른 기원에서 생겨난 별개의 다이아몬드인 것과 같다. 즉 합조단은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폭발에서 형성된 것임을 입증해도 ‘천안함 흡착물’=‘1번 어뢰 흡착물’이라는 등식을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논리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합조단도 이러한 논리적 한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합조단은 천안함과 ‘1번 어뢰’의 흡착물이 비결정질의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며, 이러한 산화물이 폭발로 형성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알루미늄이 포함된 폭약의 폭발현상은 3000℃ 이상의 고온과 20만 기압 이상의 고압에서 수만~수십만분의 1초 내에 이루어지므로, 알루미늄은 이러한 극한상태에서 화약내 산소성분과 급격히 반응하여 대부분 비결정질의 알루미늄 산화물이 〔된다〕”는 것이다.8 즉 굳이 ‘1번 어뢰’가 아니더라도 알루미늄이 포함된 폭약의 폭발이 있었다면 흡착물과 같은 물질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1번 어뢰’의 폭발로 형성된 것인지, 다른 폭발물로 형성된 것인지 합조단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합조단이 제시한 흡착물 분석은 설령 그것이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천안함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1번 어뢰’의 폭발로 생성되었음을 입증하지 못할뿐더러, ‘1번 어뢰’의 폭발이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증거는 더더욱 되지 못한다는 논리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논리적 문제를 무시하더라도 합조단의 데이터는 ‘외부폭발’=‘1번 어뢰의 폭발’이라는 등식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합조단은 천안함이 인양된 어뢰의 외부폭발로 파괴되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두가지 과학적 분석, EDS와 XRD를 세가지 흡착물에 대해 실시했다. 세가지 흡착물은 각각 천안함과 ‘1번 어뢰’와 시험폭발에서 채취된 것으로, 편의상 이 글에서는 천안 흡착물, 어뢰 흡착물, 시험 흡착물로 부르기로 한다. 천안함과 어뢰에서 채취된 흡착물이 폭발에서 형성된 것임을 입증하려면 이 세 흡착물이 동일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동일한 화합물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야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합조단은 세가지 흡착물이 동일한 원자구성임을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고, 천안 흡착물 및 어뢰 흡착물의 화합물구조가 시험 흡착물과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다. 필요조건 두가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선 합조단이 제시한 데이터는 천안 흡착물과 어뢰 흡착물의 원자구성이 시험 흡착물의 원자구성과 동일함을 보여준다. 합조단의 EDS 분석 그래프(그림 8)는 세개 모두 강한 알루미늄과 산소 씨그널을 보이는 등 상당히 유사한 패턴이다. 천안 흡착물과 어뢰 흡착물 및 시험 흡착물이 모두 유사한 원자구성을 갖고 있다는 강력한 과학적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합조단은 천안 흡착물과 어뢰 흡착물이 폭발로 생성된 것임을 입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알루미늄(Al) 대 산소(O)의 비율이 폭발로 생성된다는 산화알루미늄에서의 비율과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것과 같이 합조단은 어뢰의 폭발로 산화알루미늄이 생성되며, 흡착물은 이러한 산화알루미늄(Al2O3)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판석이 입증한 것 같이 산화알루미늄이면 EDS 분석에서 알루미늄과 산소 씨그널의 비율이 1:0.23이 되어야 하는데, 합조단의 EDS에서는 그 비율이 1:0.9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오히려 이 비율은 수산화알루미늄(Al(OH)3)의 비율과 일치한다.9 수산화알루미늄은 자연에서 풍화작용으로 생성되거나 알루미늄이 부식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고, 폭발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따라서 합조단의 EDS 데이터가 보여주는 알루미늄과 산소 씨그널의 1:0.9 비율은 천안함과 어뢰에서 나온 흡착물질이 폭발 결과물인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폭발과 상관없는 수산화알루미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합조단의 EDS 데이터는 어뢰가 천안함의 침몰과 상관이 없음을 증명한다.
합조단의 XRD 데이터도 천안 흡착물과 어뢰 흡착물이 폭발과는 상관없는 물질임을 입증한다. 그림 9에서 천안 흡착물 및 어뢰 흡착물의 분석결과는 세번째 그래프, 즉 시험 흡착물 분석결과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불일치는 천안함과 어뢰에서 나온 흡착물이 적어도 시험폭발과 유사한 조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시험 흡착물에서는 결정질 알루미늄에 해당하는 피크가 강하게 나타나는데 비해 천안 흡착물과 어뢰 흡착물에서는 이러한 피크가 아예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합조단은 이러한 불일치를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이것이 어뢰가 폭발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강변하고 있다. 어뢰 폭발시에는 시험폭발보다 높은 고열로 알루미늄이 용융되었다가 바닷물로 급랭되기 때문에, 시험폭발과는 달리 모든 알루미늄이 비결정질(amorphous) 알루미늄 산화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XRD 분석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합조단의 주장이 맞다면, XRD 분석에 나타나지 않는 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인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XRD 분석을 하는 이유가 흡착물이 어떤 화합물인지를 파악하자는 것이고, XRD 분석에서 보이지 않는 물질의 성분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XRD 분석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합조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쌤플에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존재하면 XRD 데이터에 높이는 낮지만 넓은 피크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며,11 우리가 행한 씨뮬레이션과 실험도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승헌의 실험결과는 합조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다시 입증한다. 이승헌은 실험실에서 알루미늄의 용융점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알루미늄을 가열한 뒤 이를 급랭시켜 생성한 화합물을 XRD와 EDS로 분석했다. 합조단의 주장이 맞다면 어뢰의 폭발보다 더 확실히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생성될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알루미늄은 부분적으로만 산화되며, 실험 후 생성된 알루미늄과 산화알루미늄은 비결정질이 아닌 결정질임을 확인했다. 합조단의 주장은 물리적 현실과 정반대되는 거짓임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실험결과는 합조단의 시험폭발 결과와 일치하고, 학술저널에 보고된 결과와도 부합한다. 즉 시험폭발이었건 어뢰의 폭발이었건 간에 수중폭발이 있었다면 그후에 나오는 알루미늄에 관련된 물질은 결정질 알루미늄, 결정질 산화알루미늄,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의 혼합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합조단의 천안함과 어뢰에서 나온 XRD 분석데이터에는 그러한 물질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합조단은 천안함 ‘외부폭발’과 ‘1번 어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천안함 및 어뢰의 흡착물이 같은 폭발에서 생성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는 반면, 이 흡착물이 폭발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적어도 세개의 독립적인 증거(합조단의 시험폭발, 이승헌의 실험, 양판석의 씨뮬레이션)가 입증한다.
3. 어뢰추진체는 북한산인가
합조단은 5월 20일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부 등을 수거해 제시했다. 특히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씌어진 ‘1번’이라는 표기, ‘무기소개책자’에 실린 설계도와의 일치 등의 증거는 수거한 어뢰부품이 북한산이라는 것을 확인해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합조단은 ‘1번’을 북한에서 쓴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1번’이란 글씨의 존재와 어뢰추진체 사이에는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결정적 불일치 현상이 있어서 증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무기소개책자’는 아직까지도 출처는커녕 그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고, 합조단은 그 책자가 북한산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합조단은 ‘1번’이 북한에서 쓴 것임을 입증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합조단은 조사보고서에서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또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며 이 일치가 ‘1번’을 북에서 썼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의 오류다.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과 일치할 뿐 아니라 한국의 무수한 다른 표기방법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합조단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어뢰에서 발견된 ‘1번’과 대한민국 국방부 문건에서 발견된 ‘1번’ 표기방법이 일치하므로 어뢰추진체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번’이 북에서 쓴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1번’ 잉크를 분석하여 그 성분이 북에서 생산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조단은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 당시까지도 잉크의 성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합조단은 그후 한달 이상 지난 6월 29일에서야 잉크의 성분이 ‘솔벤트 블루 5’임을 밝히면서도, 정작 그 성분이 북한산임을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합조단은 “솔벤트 계열은 잉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분”이라고 시인하면서도 “북한에서 잉크시료를 수입해서 사용할 가능성이 있어 북한산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1번’과 어뢰추진체 사이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 불일치가 있다. 우선 합조단이 공개한 후부 추진체와 방향키를 보면 외부가 심하게 부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뢰의 외부가 심하게 부식된 것은 폭발의 결과와 일치한다. 부식을 막기 위해 칠해놓은 페인트가 폭발시 발생하는 고열 때문에 타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발 후 남은 잔해는 바닷물에 노출되고 그 결과 부식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합조단이 공개한 어뢰부품의 부식현상은 폭발의 결과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면 어뢰 외부에 칠해놓은 페인트는 몇도가 되어야 타버릴까? 문제의 어뢰에 사용된 페인트의 성분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현재 가장 높은 열에 견딜 수 있는 씰리콘 쎄라믹 계열의 페인트는 비등점이 760℃이고 보통 유성 페인트의 비등점은 325℃에서 500℃ 정도이다. 따라서 수거된 어뢰 뒷부분에는 적어도 325℃의 열이 가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250kg의 폭약량에서 발산될 에너지량에 근거해 계산해보면, 폭발 직후 어뢰의 후부 추진체 온도는 적어도 350℃, 높게 잡으면 1000℃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합당한 추정이다.
어뢰 몸체 중에서 가장 뒷부분이고 가장 외부에 있는 방향키도 부식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 부분의 온도 역시 최소한 페인트를 태울 정도인 325℃ 이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므로 어뢰의 내부는 이보다 높은 고열상태였을 것이다. ‘1번’이라고 씌어진 후부 추진체 내부도 당연히 325~1000℃의 열을 받았을 것이다. ‘1번’은 유성잉크로 씌어져 있는데, 유성잉크는 통상 150℃ 정도에서 탄다. 따라서 후부 추진체에 300℃의 열만 가해졌더라도 잉크는 완전히 타서 없어졌을 것이다.
국방부도 “알루미늄이 포함된 폭약의 폭발현상은 3000℃ 이상의 고온”을 발생시킨다며 고열현상을 인정한 바 있다. 물론 국방부는 폭발당시 추진체가 30m가량 뒤로 밀려나서 이러한 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합조단의 발표대로 프로펠러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폭발에 의해서 형성된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면 어뢰추진체 뒷부분, 특히 ‘1번’의 전후좌우에는 660~2000℃의 고열이 가해졌어야 한다. 흡착물이 합조단의 주장대로 폭발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알루미늄 파우더가 프로펠러와 접촉하는 순간 액체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알루미늄의 용융점은 660℃이고 산화알루미늄의 용융점이 2000℃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열이 발생했다면 페인트와 잉크가 모두 타버렸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외부 페인트는 타버렸고, 150℃에도 타야 하는 잉크는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12 이러한 중대한 불일치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결정적인 증거물’에는 결정적인 불일치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증거물’이 북한산이라는 또다른 증거에도 심각한 혼돈상황이 존재한다. 합조단은 조사보고서에서 ‘결정적인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상충된 설명을 해왔다.13 합조단은 보고서에서는 이 소개자료가 ‘무기소개책자’라고 명시했고, 6월 9일 국방부 정보본부는 “카탈로그 책자 형태다, CD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이후 6월 11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국회 천안함특위에서 “책자가 아니고 (…) CD에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6월 29일 합조단은 다시 말을 바꿔서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와 CD 두 종류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29일의 주장에 따르면 어뢰의 자세한 설계도면은 카탈로그가 아니라 CD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리적으로 보아 합조단은 어뢰가 북한산이라고 직접 주장을 하는 대신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이고 여기에 있는 정보와 설계도면이 ‘어뢰추진체’와 일치하므로 어뢰가 북한산이라는 간접증명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카탈로그와 CD가 모두 북한산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1번 어뢰’가 북한산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고, 국방부는 보안을 이유로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임을 입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4. 결론
합조단의 보고서는 일견 매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듯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무수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가장 큰 문제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의 폭발로 야기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합조단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로 피격되었다고 직접 주장하는 대신, 이를 입증할 다른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간접적 논리구조를 이용하고 있다. 즉 합조단은 ①천안함이 외부폭발로 파괴되었다, ②그 외부폭발은 ‘1번 어뢰’의 폭발이었다, ③‘1번 어뢰’는 북한 어뢰였다는 세가지 간접증거가 있고, 따라서 북한 어뢰가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합조단은 이 세가지 증거 중 어느 하나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세가지 증거가 모두 입증되어야 합조단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논리구조에 비춰보아, 합조단은 자신의 결론을 입증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두번째로 중요한 사실은 합조단이 결론을 입증하려는 과정에서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현상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합조단의 분석 데이터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일치가 존재하며, 그런 탓에 조작의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물론 우리 분석의 목적은 합조단 보고서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데 국한되지,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분석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분석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입증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합조단이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보고서가 핵심적인 결론을 입증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이런 부실 보고서에 근거해서 정부가 단호한 대북조치를 취하고,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상정하여 북한을 규탄하려 했다는 것은 남북관계와 국제정치에도 크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새로운 조사단을 구성하여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조사에서는 천안함의 침몰 전 항적, 파손의 시점 및 위치, 절단의 시점 및 위치 등 기본적인 사실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 천안함의 스크루 및 함저, 함수 절단면 등에서 나타나는 좌초의 흔적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함수와 함미 사이에서 떨어져나간 가스터빈실 부분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합조단의 설명에 따르면 이 부분은 폭약 250kg의 폭발에 의한 가장 강한 타격을 받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부분의 선체 및 내부의 피해상황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몇몇 사진만 봐도 이 부분의 파손양태는 어뢰의 외부폭발 또는 단순 좌초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이 눈에 띈다. 재조사에서는 이러한 점들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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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군합동조사단 「한국기자협회가 제기한 ‘천안함’ 의문점에 대해 답변을 드립니다」, 2010.6.7; 「Q: 11.8초 만에 물기둥을 볼 수 있나?」, 국방뉴스 2010.6.8.↩
- psi는 압력을 나타내는 국제단위로, 1psi는 1평방인치의 사각형 위에 1파운드의 무게로 누르는 힘을 뜻한다. 천안함에 가해졌을 충격파의 크기는 1절의 후반부에서 더 자세히 기술한다.↩
- 국방부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국방부 입장입니다」, 2010.6.25.↩
- 버블의 반지름은 폭약의 무게와 폭발 해심(海深)에 따라 다음 공식으로 결정된다. Rmax=3.50.(W⅓/Z0)⅓. 이 수식은 버블효과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공식으로 여기서 Rmax는 버블의 최대팽창 반지름을, W는 폭발물 무게(kg)를, Z0는 폭발 깊이(m)+9.8을 말한다. 버블의 압력은 충격파의 10~15%로 추산한 것이다. Reid, Warren D. “The Response of Surface Ships to Underwater Explosions,” Melbourne, Victoria, Australia: Defence Science and Technology Organisation, Department of Defence 1996.↩
- 「폭발 후 1초까지… 천안함 배밑 이렇게 찌그러졌다」, 동아일보 2010.5.28.↩
- 국방부도 충격파가 버블효과보다 큰 파괴력을 갖는다고 인정하고 있다. “첫번째 충격파는 경우에 따라 폭발에너지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위력이 매우 강하다. 비록 충격이 지속되는 시간이 짧고 도달 범위도 좁지만 폭발 거리가 가까울 경우 선체 구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어뢰·기뢰, 수중폭발의 위력」, 국방뉴스 2010.4.28, http://www.mnd.go.kr/mndMedia/mndNew/mndPlanManage/20100428/1_-12168.jsp?topMenuNo=1&leftNum=5↩
- EDS는 Energy Dispersive Spectroscopy라는 원소분석기를 이용한 실험을 말한다. 전자빔을 쌤플에 쪼이면 엑스레이가 쌤플에서 나오는데 엑스레이의 에너지를 분석함으로써 물질 안에 있는 원자들을 찾아내는 실험방법이다. 원소가 다르면 나오는 엑스레이의 에너지가 다르다. 어느 에너지의 엑스레이가 나오느냐를 봄으로써 어떤 원소인지를 알 수 있다. XRD는 X-Ray Diffraction의 약자로, 쌤플에 X선을 쪼인 후 X선이 회절되는 패턴으로부터 쌤플 안의 물질이 어떤 화학물질을 어떤 결정구조로 이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실험이다.↩
- 「천안함 합조단 뒤늦은 ‘반박’… 핵심쟁점 ‘제자리 걸음’」, 프레시안 2010.6.22.↩
- EDS 전문가 양판석은 합조단의 EDS 데이터를 씨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했다. 씨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산화알루미늄의 경우 산소/알루미늄 비율은 0.23~0.25로 나타나며, 수산화알루미늄의 경우는 0.85 정도로 나타난다. 즉 합조단의 EDS 데이터는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며, 따라서 폭발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천안함 데이터 치명적 오류… 알루미늄은 거짓말 안해」, 『프레시안』 2010.6.24; 「이상한 나라의 ‘천안함’… “알루미늄 산화물은 없었다”」, 『프레시안』 2010.6.30.↩
- L. Huang, C. Z. Wang, S. G. Hao, M. J. Kramer & K. M. Ho, Phys. Rev. B 81, 094118 (2010); and H. W. Sheng, W. K. Luo, F. M. Alamgir, J. M. Bai & E. Ma, Nature 439, 419 (2006). 본문에서 말하는 피크(peak)는 아주 작은 영역(X선 데이터에서는 산란각도)에서 뾰족하게 나오는 씨그널을 의미한다.↩
- 최근 KAIST 기계공학과 송태호 교수는 우리와는 정반대로 어뢰추진체에서 ‘1번’ 부분은 섭씨 0.1도의 온도상승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렇다면 외부의 페인트는 왜 탔느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가역적 단열팽창’이라는 비현실적 전제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의 전제가 맞는다면 어뢰 폭발 인근은 영하의 온도로 냉각이 되고 버블이 터지는 순간 바닷물은 버블 안으로 역류하는 비현실적 현상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와 달리 폭발이란 기체가 진공으로 팽창하는 비가역적 과정이다. 폭발 직후 버블 안의 압력은 2만~20만 기압인데 비해, 버블 밖의 대기압은 1기압이므로 진공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이 비가역적 과정에서는 버블이 팽창할 때 굳이 추가의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팽창 전과 후의 온도가 똑같다. 따라서 버블이 프로펠러에 닿을 때의 온도는 최소한 1000℃에 가까운 고온이 될 것이다. 송태호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부위 온도 계산」, 2010.7.26, http://htl.kaist.ac.kr/bbs/board.php?bo_table=bbs04&wr_id=16. 그에 대한 반박은 이승헌 「천안함 진실은 상식인들의 집단이성이 풀 수 있다」, 한겨레hook 2010.8.3; 「어뢰가 폭발했는데 사람이 얼어죽는다?」, 미디어오늘 2010.8.5; 서재정 「송태호 교수 결론 맞다면 천안함 합조단 보고서 폐기해야」, 『프레시안』 2010.8.6 참조.↩
- 민군합동조사단 발표문, 2010.5.20,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