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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경주 金經株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가 있음. singi990@hanmail.net
구운몽(九雲夢)
1
도공이 헛간에서 톡톡톡 돌을 깎는 소리 들려옵니다 정이 돌 속에서 하나의 눈을 파내다가 다른 하나의 눈으로 정을 옮깁니다 정이 돌 속에서 눈 하나를 꺼내는 소리 달까지 열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꿈꾸는 소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꿈꾸는 사람이 돌에 누워 자다가, 저도 몰래 돌 위에 흘린 눈물이라고도 부릅니다 길에 누운 돌로, 길이 스미는 사이라고 저 혼자 부르기도 합니다
물속에 어두운 체온을 흩뿌려놓고 가는 둥근 고기들의 저녁입니다 도공이 돌을 깎아낼 때마다 돌에서 눈보라가 흘러나옵니다
도공이 만들다 만 그녀의 무릎으로 초가의 빗물이 떨어집니다 무릎은 둥글어서 오래 걸렸습니다 바람이 땅밑에서 새소리보다 엷어지고 한기를 모은 나무들이
가...... .....아.....아......같...이...이..
사......아......아......알......자......
정을 내려놓고 도공은 붉은 술을 끓이며 젖은 볏짚에 숨긴 새들의 심장을 뜯어먹습니다
2
밤비가 가장 늦게 사람의 눈을 만나면 그것은 가장 이른 눈[雪]이 됩니다
가장 늦게 공기로 돌아가시는 비가 가장 희미한 그늘로 땅에 스밉니다 가장 낮은 산에서 가장 늦게 알을 낳는 새들은 세월이었습니다
돌이 된 그녀의 무릎에 도공은 머리를 베고 잠이 듭니다 문밖은 세월이고 문안은 저토록 눈보라인데 삶은 꿈이 날아가 달아나지 않게 돌 하나 꿈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잠든 도공의 입 밖으로 돌가루가 조금씩 흘러나옵니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여백이어서 돌망치가 손에서 지금 툭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녁의 동화
구멍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도 저녁은 찾아온다
그 저녁에 닿기 위해
나는 나무의 구멍을 빚어 만든
당신의 오래된 기타를 생각한다
당신의 기타 속엔 오래된 강물이 고여 있고
활어떼가 흘러다닌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는 노래 안에 살고 있는 활어들의
아슬아슬한 수면(水面)
사랑이여
나는 그 아슬아슬한 수면을 향해서
내게 있는 투명을 조금 흔들었을 뿐이다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 살고 있는 저녁은
하늘에서 내려온
가장 늦은 그늘이 들어가는 자리다
그 저녁으로 들어온 그늘에 빗물이 묻으면
나무는 밤보다 어두워진다
어떤 짐승도 구멍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며
어떤 아이도 짐승처럼 구멍 안에 낮게 엎드려 울지 못한다
어둠은 저녁이 천천히 빚어내는 꿈이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서 검은 물이 흘러나온다
꿈을 꾸던 맨발의 아이들이 다가와
그 물을 손으로 받아 마시며 조금씩 늙어 돌아간다
당신이 지느러미를 흘리며 물속으로 돌아갈 때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무의 구멍에 입을 대고
목젖을 보였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