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이승헌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창비 2010
수많은 사실과 하나의 진실
우희종 禹希宗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hjwoo@snu.ac.kr
작년 우리 사회를 분열시킨 여러 사건 중 대표적인 것으로 천안함사건을 꼽기를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특정 사안을 놓고 사회적 혼란이 생겼을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사실(fact)이냐 하는 공방이다. 그런데 정부측 합동조사단 보고서에 언급된 사실이 있고, 이에 반론을 펼치는 측의 사실도 있다. 게다가 그와 별개로 활동한 러시아측 조사단의 사실도 있을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느냐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것은 실은 ‘사실이 문제’라는 점이다.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는 바로 이 ‘사실과 진실의 틈새’에서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권력구조를 엿보게 하는 책이다.
그 규모나 의미 면에서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던 천안함사건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내린 정부측 입장과, 이와 달리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몇몇 과학자와 이와 연대된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버지니아대학 물리학 교수 이승헌(李承憲)의 입장은 후자에 속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이미 많은 이들은 천안함사건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비판적으로 또는 우호적으로 읽을 것이다. 책 내용에 대한 선호와는 별도로 분명한 것은 저자가 물리학계에서 왕성히 활약중인 학자로서 연구분야도 천안함사건과 밀접히 관련돼 있어 제시된 증거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라는 점이다.
정부측 합동조사단의 결론을 전면 부정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를 가득 제시하는 이 책은 일지 형식인데다 내용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놓아 읽기 쉽다. 또 사건에 대한 서술이 시간 경과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자는 상황전개를 저자와 함께 지켜보는 듯한 긴박감도 들 것이다. 또한 과학적 증거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정부권력 및 그와 연관된 기득권 전문가들과 대립해야 했던 과학자 개인의 심리적 갈등도 드러나 있어 인간적인 공감도 느끼게 한다.
물론 천안함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의 내용을 수용하건 부정하건 독자가 결정할 일이다. 그동안 국익 논란으로 점철된 배아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나 촛불사태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사태처럼 과학이 개입되어 발생한 큰 혼란을 종종 겪어온 우리 사회는 진위를 떠나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 안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사건의 논란 속에서 사건의 중심에 선 저자가 진행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곳곳에 남긴 개인적 성찰은 ‘과학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과학자집단 내의 소통과 갈등’ ‘과학과 사회의 관계’는 물론 ‘언론의 바람직한 자세’ 등 여러가지 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돌이켜보면 배아줄기세포 논란과 광우병 촛불사태, 그리고 이 책에서 다뤄지는 천안함사건은 모두 과학과 깊이 연관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성격에 있어서는 조금씩 다르다. 배아줄기세포와 천안함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확인’만으로 충분히 논란이 종식될 수 있었던 사안인 데 반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문제였다. 한편, 배아줄기세포에서는 논란의 주체가 개인 연구자였지만, 미국산 쇠고기와 천안함에서는 국가권력이 주체였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모든 관련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해당 학계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 정부에 유리하게 사실과 해석을 이끌어가려고 한 것이 촛불사태와 천암함사건의 공통된 특징이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천안함사건은 공정한 과학적 사실 확인만으로 원인 논란을 끝낼 수 있었던 사안인데도 정부측 보고서에 대한 공개토론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천안함사건은 배아줄기세포 소동처럼 과학적 사실의 공개 검토만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음에도 미국산 쇠고기 논란 식으로 혼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이 책은 잘 지적하고 있다.
개인 혹은 소수의 과학자가 국가권력 및 그것에 뒷받침되는 과학자집단에 맞서 의견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과학계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고려할 때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연구비 수주 등 여러 면에서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학문적인 옳고 그름보다는 집단의 안정을 깨는 데 대한 거부감에 대항해야 한다. 저자는 미국 대학의 교수로서 이런 면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웠기에 그나마 정부의 일방적 몰아가기에 거슬러 의견을 내놓을 수 있었음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가 국내 학계가 아닌 외국 학계 동료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적 양심을 지킬 수 있었음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논란에서 해당 학계가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해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은 국내 과학문화의 미숙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편, 정부측 보고서를 반박하는 책 내용의 타당성은 이 분야의 학자에게는 매우 명백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사실이란 아무리 포장하거나 현란한 문장으로 그 진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더라도 결코 왜곡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입장과 이 책에 개진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이 점에서 노벨상 수상작가인 아꾸따가와 류우노스께(芥川龍之介)가 쓴 『라쇼오몽(羅生門)』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사건의 진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그 사건은 전혀 다르게 재현되어 전달된다. 과학자는 과학적 사실을 말하지만, 정부는 진위를 떠나 사회가 분열된 상황에 대한 책임을 과학자에게 떠넘기고 국익 운운하며 비난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실이란 무엇일까. 잘 생각해보면 사실이란 각자의 믿음에 불과하다. 과학적 사실이나 사법적 사실이란 것도 그 집단이나 문화권에서 합의된 믿음 구조일 뿐이다. 과거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기에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실이었으며, 또 군사정권 시절 조작된 증거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젊은이들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 혐의가 사실이었다. 그들 중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몇십년이 지나 진실이 밝혀진다 한들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사실은 세상을 구성한다. 그런 면에서 사실은 힘이자 권력이다. 그리고 근대사회에서 주로 그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 바로 과학이다.
하지만 과학시대에 사실을 만들어내는 집단이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권력과 (이들과 연계된) 언론권력이다. 이런 언론은 사안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하거나 노골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여 거짓 사실/믿음을 창출해낸다. 진실은 하나임에도 자신의 불순한 의도를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다양한 사실을 만들어내 정확한 내용을 알기 힘들게끔 대중의 혼란을 유도한다.
불행히도 이런 상황이 천안함사건을 비롯해 국내의 과학과 연관된 여러 논란에 깔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단지 천안함사건에 대한 정부 입장의 반대 차원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층위에서 읽는다면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과학적 사실이, 오히려 그것이 사실이기에 더욱 문제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