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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개번 머코맥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이카루스미디어 2006

북한을 비난하기 전에 생각할 것들

 

 

김준형 金峻亨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jhk@handong.edu

 

 

범죄국가

북한정권은 역사상 둘도 없는 비정상적인 ‘괴물’이며 ‘공공의 적’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전세계가 이렇게 한목소리로 비난을 퍼부은 나라가 또 존재했던가 싶을 정도다. 냉전이 끝나기 전에는 그래도 같은 편이 있었지만, 이제는 고립무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국립대 교수 개번 머코맥(Gavan McCormack)은 저서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박성준 옮김)을 통해 북한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북한이 지난 수십년간 테러, 마약밀매, 화폐위조, 인권탄압, 납치 등을 저질러온 범죄정권이며, 오늘날 아무도 변호하려 들지 않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 지나온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지난 백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으며, 북한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생존 위협에 직면해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북한이 ‘침략을 물리치는 숲속의 고슴도치’일 뿐, 적어도 ‘닥치는 대로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밀림의 호랑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슴도치가 외부의 위협이 커질수록 바늘깃털을 빳빳이 세우고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49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북한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주변국에 큰 위협이라고 볼 수 없다. 핵을 비롯한 무기사용은 물론이고 영토확장이나 이념 확산의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협상은 거부한 채,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막강한 힘만 내세우는 오만한 미국이야말로 밀림의 습격자라고 규정한다. ‘Target North Korea’라는 원제목을 한국어판에서 다르게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즉 북한이 범죄국가라면, 미국도 범죄국가라는 말이다. 이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최근 저서 『실패한 국가』(Failed States)에서 미국이 규정하는 탈냉전기의 비정상국가 범주에 미국 자신을 제일 먼저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머코맥은 곳곳에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북한을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안내한다. 물론 그의 이러한 객관성이 최근의 편향된 여론의 눈으로 보면 ‘북한 편들기’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일본은 국익의 잣대로 평가하면서, 북한에는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선악의 맥락에서 평가한다면 한·미·일 역시 나을 게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은 북한의 악함을 입증하는 사례로 널리 인용되지만, 미군이나 한국군도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범죄행위에 개입했던 명백한 증거들은 의도적으로 숨긴다고 비판한다. 특히 수십만을 학살하고, 위안부와 강제노역의 패악을 저지른 일본이 겨우(?) 13명을 납치한 북한에게 보상 운운하며 악마화하는 것은 “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가 찰 정도의 넌쎈스”(222면)라고 갈파한다.

저자는 핵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북한이 핵도박으로 동북아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북한이 지난 수십년간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직면했던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94년 클린턴정부가 비핵국가를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근 40년 동안 핵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이 선언은 부시행정부 출범과 9·11 이후 뒤집혔다. 게다가 악한 행위에는 결코 보상이 없다면서 협상을 거부하는 미국이 다른 한편 6자회담 복귀를 종용하는 것은 곧 이를 타협보다 응징의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북한에 선택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속셈일 뿐이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북한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자는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만 갈 때, 역자의 표현처럼 저자의 ‘바른말 정신’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소중하다. 영어판은 2004년에 나왔으나 올해 출간된 한국어판에서는 최근 상황까지 다루었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 외에도 책의 전반에 흐르는 저자의 시각은 분명 진보적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세계적으로 진보주의가 사라지는 때, 더욱이 미국과 일본의 보수우경화, 중국의 신민족주의, 러시아의 권위주의 복귀로 진보주의가 궤멸하고 있는 동북아 상황에서는 이러한 저작이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국제정치를 제로썸게임처럼 극단적인 선악 또는 흑백논리로만 해석하는 미국식 사고를 극복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국제사회이론(International Society Theory)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은 작고한 옥스퍼드대학의 헤들리 불(Hedley Bull)을 비롯해 영국과 호주의 학자들이 중심을 이루며 이른바 영국학파라고도 불린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북한에 대한 진단과 해법 사이에서 극단적 접근을 지양하고 절충적 해법을 찾도록 당부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즉 북한이 전체주의를 넘어 병영국가화하고 있으며, 공산당마저 설자리를 잃은 채 획일화된 군국주의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은 체제붕괴의 징조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주변국가들의 압박으로 이러한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그의 충고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