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5001

백가흠 白佳欽

1974년 전북 익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가 있음. gahuim@nate.com

 

 

 

(痛)

 

 

1

 

원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날은 올해 들어 가장 추웠다. 그가 죽기 사흘 전이었고, 화요일이었다. 도심의 수은주가 영하 17도까지 내려가 온 세상이 바짝 얼어붙었다.

그는 때때로 의식이 돌아왔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현실과 몽환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떤 게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온기가 없는 방 안은 바깥 한파의 날씨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낡은 집의 무수한 틈으로 칼바람이 넘나들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환영에 빠져 있었다. 노란 빛깔의 손톱만한 작은 꽃잎이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간혹 서늘한 바람과 잿빛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얼굴에 닿아도 차갑지 않았다. 눈앞으로 노란 빛깔의 꽃잎과 잿빛의 함박눈이 어지럽게 몰려들었다. 원덕씨는 침침한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연신 깜박였다. 무수히 쏟아져내리며 흩어지는 움직임을 그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약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얼굴로 쏟아지는 빛깔과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간간히 약기운에 너무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그럼에도 간지럽게 얼굴을 때리는 노란 빛깔과, 닿자마자 가벼운 촉감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잿빛이 그런 마음을 떨쳐버리게 만들었다.

때때로 의식이 돌아올 때면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누렇게 뜬 벽지와 우묵하게 내려앉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눈을 껌벅이며 오래도록 비루한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도 시선을 한곳에 오래 두지 못하고, 눈은 뒤집어졌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며 점점 허공 속으로 멀어져갔다. 그의 의식도 따라서 소용돌이치며 천장이 사라지고 생긴 무한의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움직임을 좇느라 반쯤 감긴 눈을 쉴 새 없이 껌벅였다. 그러면서도 노랑 꽃잎과 잿빛 눈이 쏟아지는 무한한 공간의 끝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 어떤 한곳을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중심에 그의 시선이 가닿았다.

 

2

그 전날, 그가 죽기 나흘 전 월요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마당의 앙상한 매화나무 위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그는 오후 내 멍하니 바라보았다.

날이 저물 무렵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눈이 차올랐다. 폭설로 거리는 한산했다. 아주 간혹, 차들이 도로 위를 느리게 지나갔고,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위태로웠다. 병원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두배는 멀게 느껴졌다. 웬만해선 외출을 하지 않는 그였지만, 엄청나게 내리는 눈발을 무릅쓰고 병원에 갔다.

할아버지 약 그렇게 한번에 드시면 더 못 드려요. 거기 수면제랑 진통제랑 같이 들어 있어서, 많이 드시면 환각 와요.

젊은 의사가 진료실로 들어선 그를 외면한 채 말했다. 그는 평소에 진료를 받던 의사가 아니어서 조금 당황했다.

그분은 오늘, 쉬시는가?

그는 의자에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워서 문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다른 병원으로 가셨어요. 할아버지, 저는 그분처럼 정량 이상 약 못 드려요. 아셨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원덕씨는 진료실을 두리번거렸다. 몇년을 보았던 의사가 갑자기 약 처방을 바꾼 것을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도무지 약발이랑 거시 들어먹어야지.

원덕씨가 눈을 연신 깜박이며 느릿하게 말했다.

약은 얼마나 남으셨어요?

젊은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무심히 말했다.

뭐 좀, 개얀을 땐 두봉도 먹고, 심헐 땐 다섯봉도 먹고. ……인자 얼매 안 남었지.

그러다 약물 중독돼요. 더 못 드리니까 정해진 날에 다시 오셔요. 아셨죠?

의사가 여전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선 짐짓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원덕씨가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가 뭔가를 얻고자 할 때 익숙한 방식이었다. 점퍼를 벗고, 목까지 올라오는 얇은 티셔츠를 벗었다. 그제야 젊은 의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점퍼 안에 달랑 얇은 티셔츠 한장과 바지만 입고 있어서, 그것을 벗어버리자 금세 알몸이 되었다. 헐렁한 바지 안에도 속옷 같은 것을 입고 있지 않아서, 혁대를 풀자마자 바지가 훌러덩 발목으로 내려갔다. 쪼그라든 성기가 순식간에 드러났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의 몸에는 온통 붉은 반점, 새끼손톱만한 돌기와 수포로 가득했다. 젊은 의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몸은 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가려움이 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한겨울에도 거시기를 하나도 못 걸친당게.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난 집에서 이러고 있소. 이 개라움을 누가 알겄소잉. 그래도 겨울이 젤 살만 함시도, 갑작스럽게 피는 열꽃 땜시 개라서 좀체로 정신을 못 차리것다 이말이요잉. 어제는 칼을 들고 내 살거죽을 모두 벗겨내려고 했는디. ……개란 것보다 그게 훨 낫지 않겄소잉.

원덕씨가 몸 구석구석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금세 피부는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여기저기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터졌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손톱으로 피부를 벗겨내기라도 할 듯 인정사정없었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세요. 일단 한달치 드릴 테니, ……그래도 약 줄이려고 노력하셔야 돼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덕씨는 바지를 추켜올렸다.

 

3

원덕씨는 죽기 사흘 전 황홀한 환영에 휩싸였다. 일찍이 그는 인생에서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약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생경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본 무아경은 가진 것 모두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한부분이 가감없이 펼쳐지기도 했고, 망각 속에 묻혀버린 어느 한때가 재현되기도 했다. 생전 본 적 없는 오묘한 풍경과 이미지들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게 새로 처방받은 약 때문인 줄 몰랐고,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효과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의사가 일러준 대로 정량만 복용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죽기 보름쯤 전이었다. 그저 푹 잤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주일치 약을 한번에 먹은 것뿐이었다. 현실 너머에 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는 가려움 때문에 반평생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햇빛을 쬐지도 못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누렇게 떠 있었다. 햇빛을 받으면 수만마리 구더기가 온몸에서 구물거리는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햇빛을 받으면 극심한 가려움증이 일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온종일 파리채를 들고 앉아 자신의 알몸을 지체없이 가격하는 일이었다. 긁는 것보다 때리는 편이 나았다. 가려움증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철썩, 철썩 파리채로 몸 이곳저곳을 세차게 때리는 방법뿐이었다. 다른 어떠한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이긴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언제나 벌겋게 살이 달아올랐지만 자신에게 가하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겨울은 완숙하게 제 갈길을 가고 있었고, 날씨는 점점 더 나빠졌다. 몸의 상태도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려움증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고통이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자신의 몸을 향한 매질도 나날이 세졌다. 가려움이 심해지면 가끔 자신의 혁대를 풀었다. 가죽의 민첩함은 살에 쩍 붙었다가 살점을 들고 일어서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살이 터지고 상처가 남았지만 그때만은 가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4

그가 약봉지 한달치를 입에 털어넣은 것은 죽기 사흘 전이었다. 예순여덟번째 생일을 넉달쯤 남겨놓은 어느 겨울, 일주일치 약을 한번에 먹었다가 하루 만에 깨어난 후였다.

겨우 의식이 돌아온 그는 뭔지 모를 공허함과 허탈함에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했다. 약발이 떨어지자 더이상 환각은 재생되지 않았다. 그는 절실하게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고, 고통 없는 그곳에서 나오기 싫었다. 문제는 약기운이 가시자 극심한 가려움증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었으나, 긁을 수도 때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 이전보다 몇배 더 고통스러웠다.

어찌된 영문인지 몸에 마비가 와 누운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꼬박 한나절을 눈만 끔뻑이며 천장만 바라보았다. 신기한 일은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약에 취해 보았던 환영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었다.

그는 약 생각이 간절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낭패감은 크기만 했다. 약봉지는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의식이 또렷해질수록 온몸이 가려워 죽을 것만 같았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시멘트 바닥에 등짝을 대고 갈고 싶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며 마비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누운 채로 찬찬히 방을 둘러보았다. 사람 손이 타지 못한 집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살림하던 부인이 집을 나간 지도 이십여년이 흘렀으니, 집은 폐가나 다름없었다. 그는 땀을 흘리면 안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았다. 땀이 나면 가려움증은 극에 달했다. 약으로도 파리채로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가급적 움직이지도 않았다. 집을 손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의 오래된 집도 그의 몸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서른다섯에 늦장가를 들었다. 늦게 본 두 아이는 모두 얼마 살지 못했다. 모두 선천적인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그때만 해도 자신 때문에 아이들이 그렇게 됐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의사 말로 사지장애는 둘째 치고 뇌가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며칠을 살았다.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눈을 뜨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젖을 먹고 변을 보는 것이 신기했지만, 며칠을 가지 못했다.

둘째 아이는 삼년을 살았다. 의사 말로는 외적으로 보이는 기형보다 장기기형이 더 심각하다고 했다. 삼년이라도 산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그는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자신의 천형처럼 느껴졌다.

거뭇거뭇 곰팡이 피고 누렇게 뜬 벽지에 스며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5

그는 그저 자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일주일치 약을 한번에 먹은 것은 이주 쯤 전이었다. 새로이 처방받은 약에 환각효과가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환각은 꼭 늘어난 약 만큼의 효과가 있었다. 정량 이상의 약을 먹으면 가려움증도 사라졌고, 잠도 푹 잘 수 있었다. 더군다나 황홀한 환영에 그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것을 알지 못했는지, 겪었던 고통의 시간과 자신의 무지를 원망했다. 그러므로 그가 기억하는 행복은 죽기 전, 약에 취해 환영 속에 살았던 보름뿐이었다.

원덕씨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단지 진통제 때문이라고 믿었지 다른 후유의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신은 몽롱했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몸이 가려운 것보다야 그편이 나았다.

그는 죽기 보름 전, 간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다디단 깊은 잠에 빠져 꿈속에서 과거의 한때를 밤새 헤맸다. 그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44년 만이었다. 꿈이 아니라 약이 준 환영일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생전에 서로 악연이라고 믿었던 때문인지, 어머니는 죽은 후에도 꿈속에 단 한번도 찾아오는 법이 없었다.

어린시절이었고, 전쟁 전이었다. 모두 평온했던 시절, 그의 나이 다섯살이나 여섯살 무렵, 기억에서 이미 소멸되고 자취를 감춘 한때였다.

어린 그는 볕이 따뜻한 늦봄, 아카시아와 라일락 꽃잎과 향기가 천지를 뒤덮던 계절의 한자락을 보고 있었다. 툇마루에 한가로이 앉아서 어머니가 내올 점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엌을 오가며 분주하게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앳된 얼굴에 평온함이 넘쳐흘렀다. 그런 표정은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바람에 눈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을 바라보았다. 간혹 따뜻한 바람이 꽃향기를 싣고 와 코끝이 간지러웠다. 그는 햇빛에 실눈을 뜨고 이마에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물 묻은 손을 치마에 닦으며 수줍게 웃었다. 마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아버지는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렀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사랑이 가득했다.

같이 손 씻고 밥 먹자.

그는 한달음에 달려내려가 아버지와 함께 손을 씻었다. 달곰하게 풍겨오는 아버지의 땀냄새가 그를 감쌌다. 그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얼굴을 마주보았다. 기억에 없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낯설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싸리문을 돌아나갔다.

세 식구가 툇마루에 앉아 소박한 점심을 정겹게 먹고 있었다. 밭에서 막 딴 풋고추와 상추쌈, 된장국. 어렸을 적 맛보았던 미감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싸리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지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겁을 먹고 울먹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한동안 문가에 서 있었다.

 

6

아내하고는 십년 남짓 부부로 살았다.

다리에서 시작된 붉은 반점은 처음에는 좁쌀만하게 두드러기처럼 올라왔다. 문제는 가려움증이었는데, 무슨 약을 써도 가라앉지 않았다. 병원에 가도 병명을 알지 못했다. 작은 돌기와 반점은 점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새끼손톱만 했던 크기도 커지기 시작했다. 얼굴을 빼고 온몸을 뒤덮은 돌기, 그 가려움증 때문에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피가 배어나오도록 긁고, 고름이 잡힐 정도로 긁어도 가려움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살이 터지고 상처가 난 자리에서 다시 돌기가 올라왔다. 발병,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그 무렵 그는 같이 참전했던 동료들이 비슷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한 경우엔 이미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도 여럿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김중사가 그에게 병명을 일러주었다. 87년, 제대한 지 이십년 만이었다.

이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뭉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특히나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더욱 우리의 전투력이 발휘될 때지.

그는 김중사를 보자 순식간에 이십년 전 몸서리쳐지는 한때로 돌아간 듯했다. 김중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복차림이었다. 코가 뾰족하고 번쩍번쩍 광을 낸 군화가 눈부셨다. 김중사는 그와 동향이고 동갑내기였다. 삼년을 내리 같이 지냈지만 김중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가 아는 전부는 김중사가 성질이 포악하고 사람 됨됨이가 저질이라는 것이었다. 김중사는 까닭없이 졸병들을 괴롭혔는데,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그것이 더욱 힘들었다. 더군다나 동향이라는 빌미로, 동갑내기라는 핑계로 김중사가 모의한 위악질에 그를 끌어들이곤 했다. 그는 진심으로 김중사를 싫어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

제대한 지 이십년이나 흘렀지만 천연덕스럽게 다시 선임의 자리로 들어오는 김중사를 밀어낼 수 없는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김중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들렀다. 그는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는 김중사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김중사는 아내에게 밥을 차려오게도 하고 안방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아내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는 이십년 전 그랬던 것처럼 옆에서 비위를 맞추었다.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 없었지만 거절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김중사는 주말을 내내 그의 집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와 아내는 김중사의 수발을 들고 심부름을 했다.

오늘은 장어를 구워볼까, 심상병.

김중사가 말하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는 시장에 가서 장어를 사오고 숯불을 피웠다. 불평을 늘어놓던 아내도 언젠가부터 잠잠해졌다. 술상을 차리고 김중사를 거들었다. 그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는데, 술이 한모금만 들어가도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죽을 만큼 심한 가려움증이 찾아왔다. 그가 술을 할 수 없으니, 아내가 김중사의 술시중을 들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시작했었다.

아내가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김중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짐작했지만, 드러내놓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갑자기 아내가 사라지고, 김중사의 발길도 몇년간 뜸해졌다.

 

7

원덕씨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편안한 잠을 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가 본 것이 꿈 같기도 하고 오래전 자신의 기억 같기도 했다.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안 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메마른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원덕씨는 실제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 남은 것이라곤 모두 남에게서 들은 얘기뿐이었다. 환영 속에서 보았던,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어머니는 일생동안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그도, 그의 여동생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서는 아버지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나기 한해 전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는 실체 없는 흉흉한 소문만 무성했다.

한해 뒤 소문으로 맴돌던 그 이야기들은 모두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전쟁과 아버지에 대한 소문 모두 그냥 떠돌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을은 혼란에 휩싸였다. 뭐가 옳고, 어떻게 되어야만 옳은 것인지를 놓고 사람들은 반으로 갈렸다. 전쟁의 상황은 때때로 변했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 사라졌고 이번엔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현재인 이야기였다.

원덕씨는 습기를 먹어 곰팡이가 핀 벽지와 배를 볼록하게 내민 천장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꿈이건 환각이건 자신이 본 것이 너무 생경해서, 정말로 육십여년 전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의 편린 같았다.

 

8

김중사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년이 지난 후였다. 그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김중사는 돌아왔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수씨는 집을 비운 모양이지?

김중사가 딴청을 피우며 슬쩍 말을 던졌다. 그는 못 들은 척 파리채로 허벅지를 세차게 때렸다.

파리 잡듯이,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짝. 김중사가 파리채를 뺏어들더니 잽싸게 그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살갗이 터지고 벌겋게 일어섰지만, 그는 아픈 줄도 몰랐다.

어떤가? 시원한가? 가려운 곳도 서로 긁어주는 것이 바로 전우애지. 안 그런가?

김중사는 인정 넘치게도 파리채로 그의 몸 구석구석을 쩍, 쩍 소리가 나게 때려주었다.

그무렵 김중사는 단체 결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다녔는데, 몇개의 단체에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후유의증을 앓는 참전군인에게 조금씩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의 몫을 모두 김중사가 좋은 일에 쓰겠다며 가져갔다.

이게 다 전우를 위해서 하는 일인 걸 심상병도 잘 알 것이다. 이렇게 모은 돈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공평하게 쓰일 것이다.

그는 입이 없는 사람처럼 생활비를 모두 빼앗기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중사가 말하는 일이 그가 생각해도 꼭 필요한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너뿐만이 아니다. 내가 받는 지원금도 하나도 남김없이 단체에 기부하고 있고, 다른 전우들 모두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심상병만 빠질 수 있겠는가.

그는 살아갈 방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김중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끔 김중사가 선심 쓰듯 들고 오는 쌀과 김치로 겨우 연명했다.

피부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진물이 흐르고 고름이 터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없이 고통을 참기만 했으니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그는 상처에 실없는 부채질이나 하고 있었다.

드디어 심상병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오래도록 기다려온 전투이니, 목숨을 걸고 진지를 사수하도록.

그가 멀뚱히 김중사를 쳐다보았다. 지원금 나오는 날에만 들르던 김중사가 느닷없이 찾아와 뜬금없는 말을 하는 통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경례해야지.

그가 한참을 쳐다보다가 어정쩡하게 ‘필승’ 하며 경례를 올렸다.

그런데 군복은 있나? ……예전에 입던 군복은 맞지 않겠군. 군인이 군복이 있어야지, 지금까지 무얼 한 건가.

근디, 통체 무신 말씀을 하시넌지……

그가 보기에 김중사는 정신이 나가서 전쟁놀이라도 하려는 사람 같았다. 김중사의 옷차림은 현란했다. 베레모에 라이방 썬글라스, 군복은 어느 나라 것인지 얼룩무늬가 너무 요란해서 눈이 어지러웠다.

이제 출정이다. 단단히 마음먹고 있도록. ……경례.

김중사가 작은 소리로 채근해서 그는 또 어정쩡하게 ‘필승’ 했다.

며칠이 지나 김중사가 돌아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야전상의와 예비군 모자를 그 앞에 던져놓았다.

군화는 조금 기다리도록. 요즘 보급이 원활하지가 못하다.

전쟁놀이에 푹 빠진 김중사가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그는 멀뚱히 김중사가 부려놓은 것을 쳐다보았다.

오월의 어느 한낮, 제법 더운 바람과 햇볕이 자연스러운 날이었다. 김중사는 그에게 야전상의와 낡은 군복바지를 입게 하고, 끈도 없는 군화를 신게 했다. 예비군 모자도 머리에 얹었다. 김중사는 그를 데리고 시내로 향했다.

야전상의를 걸치자 집을 나서기도 전에 온몸이 벌겋게 일어섰다. 걸을 때마다 참기 힘든 가려움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걸으면서 야전상의 위로 긁적긁적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근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몸이 너매 개라와서.

그가 김중사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선 뒤따르며 중얼거렸다.

심상병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니 걱정 말고.

 

9

그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월남으로 떠나던 해였다.

파병되기 전 그는 짧은 마지막 휴가를 받아 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 집을 지켰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대로 그와 여동생은 어렸을 적 집을 나와 외지를 떠돌았다. 언제나 아버지의 전력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청년의 그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십오년이 흘렀지만, 그의 집에는 아직도 전쟁이 남긴 상처들이 진행중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그냥 돌아갈까 망설였다.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었다. 꽃잎과 햇살과 바람은 여전했으나,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았다. 그는 툇마루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느릿하게 흘러갔고, 하늘은 낮았다.

너, 왔냐?

밭일을 나갔던 어머니가 마당에 들어서며 몇년 만에 보는 아들에게 무심히 말했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웬 군복이여잉. 그새 군대에 갔었냐?

느닷없이 나타난 아들도, 그를 맞는 어머니도 몇년 동안 떨어져 있던 모자지간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건네는 말에 정이 없었다.

아주 나온 것은 아니고, 아직도 있소. 배고게, 얼릉 나, 밥 좀 주소잉.

요즘 군대는 밥도 안 멕이고 총질 시킨다냐. 몇년 만에 집 찾아와 보자마자 거렁뱅이마냥 밥 타령이라냐?

어머니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옷을 털며 불퉁거렸다.

나, 뻘갱이 잡으러 월남 간다 않소. 그래서 왔당게.

어머니가 멈칫했다.

……뻘갱이는 사람 아니대냐. 말을 험하게 함시롱 전장 나간다는 아가. ……올 거믄 기별이라도 넣지 그랬냐. 대충 먹던 밥이라, 찬이 변변치 않을 틴디.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피했다. 그녀는 살짝 눈물이 맺히려는 것을 스스로 모른 체했다. 맥없이 옷의 먼지만 털었다.

됐소, 상추에 된장이면. ……글고 엄니, 말을 좀 ……그렁게 사람덜이 우리보고 거시기하다 근거요.

머가 거시기하다냐. 사람 목숨 귀한 건 옳은 거제.

어머니가 아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천천히 군화 끈을 풀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엄니, 계숙이 소석은 없당가?

뜬금없이 여동생의 안부를 물었지만, 부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충 주소. 밥만 묵고 얼렁 가불팅게.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았던 그날, 어머니와 마주앉아 밥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는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도 애써 그를 잡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 담 안쪽에서 까치발을 하고, 멀어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는 동네를 빠져나오면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10

그는 어느 시위현장에 도착했다. 한 신문사 앞거리를 막고 과격한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주변에서는 막아서는 경찰과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간혹 LPG가스통들이 허공에 불길을 내뿜으며 경찰과 행인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연신 두리번거리며 김중사의 뒤를 좇았다. 모인 사람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군복을 입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연사의 입에서 ‘빨갱이’ 소리가 나올 때마다 그는 자기를 탓하는 것 같아 오금이 저리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김중사에게 떠밀려 맨 앞줄까지 가게 되었다. 스피커의 울림이 너무 커서 그는 연사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참전 군인들이 모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처음으로 베트공과 교전을 벌이던 때와 비슷한 기분에 휩싸였다. 두렵지만 흥분되고, 뭐가 뭔지 모르게 정신이 하나도 없고, 떠밀리고 떠밀려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느낌, 강렬한 의지와 체념이 뒤섞인 어떤 감정의 폭발 직전이었다.

얼른 올라가라니까, 야, 뭐 하는 거야?

김중사가 그에게 고함치고 있었다.

얼른 올라가서 옷 벗으라고. 전우들에게 보여주라고.

그는 떠밀려서 연단 위로 올라갔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이 어디 소속이냐고 물었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지 않고 자신의 부대와 이름, 관등성명을 댔다.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군복을 입은 노병들이 얼룩무늬 점으로 흩어졌다.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의 손은 쉬지 않고 야전상의 위를 긁적거렸다.

뭐 하는 건가?

짙은 라이방 썬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이 물었다. 그는 움찔했다. 쓰고 있는 모자의 계급이 대령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오금이 저려왔다. 김중사가 연단 위로 뛰어올라와 그의 옷을 강제로 벗기기 시작한 것은 동시였다.

겨우 팬티만 남긴 채 그는 벌거벗겨졌다. 김중사는 그의 몸이 잘 보이게 빙그르르 돌게 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각종 욕설과 구호가 뒤섞여 함성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보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 또 한사람이 올려졌다. 곧 그 사람도 발가벗겨졌다. 그 사람은 양쪽다리가 없었다. 온몸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살이 썩어들어가는 병이라고 했다. 마이크를 쥔 대령은 흥분했다. 대령이 말할 때마다 노병들은 다시 총이라도 들고 싸울 태세였다.

그는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멍하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옆사람의 몸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엔 체념이 서려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 상황에 동요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

자, 모두 진격하라, 빨갱이 신문사를 다 때려부수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은 대령의 명령이 떨어진 후였다. 여기저기서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고, 한무리는 정말로 신문사를 향해 돌격했다.

 

11

마지막으로 그가 고향을 찾은 것은 월남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꼭 삼년 만이었다. 그간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보니 원망 많았던 어머니가 너무 그리웠다. 그는 강가 억새밭에 누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길 기다렸다가 집을 향해 지친 군화를 끌었다. 그의 집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싸리문 앞에 멍하니 서서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수풀 우거진 마당에 아무렇게나 낙서한 듯 보이는 팻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빨갱이 심원수의 집.’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팻말을 걷어차버렸다.

이런, 어떤 놈이건…… 뻘갱이라 하기만 혀. 나보다 뻘갱이 더 많이 죽인 넘 있음 나와보라 햐.

혼잣말처럼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목울대 안으로 소리를 삼켰다. 울분이 치밀었지만, 그러면서도 혹 자기를 보는 이가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머니는 죽었다. 그가 전쟁에 나가던 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사촌 집에 들러 소식을 들었다.

성님, 볼 면목이 없음시, 사는 꼴이 그랴서 큰엄니 장례도 변변찮었소잉.

사촌은 그의 눈을 피했다. 그도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전장 끝난 지가 이십년이 다 돼가넌디, 우리 꼴은 아적도 이렁게…… 막막함시롱.

동상, 그런 말 말당가.

그가 마지막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 꽁초를 발로 비벼 껐다.

장가는 갔등가?

장가는 무신, 꿈도 못 꾼디…… 자석 나면 줄줄이…… 몹쓸 짓 아니겄소잉. 그냥 대충 살다 죽을라요. 내막 모르는 디 가서 적당히 살다 죽고 싶소잉.

서른도 안된 사람이 말이, 심허고잉.

사촌은 어머니를 남의 땅에 몰래 묻느라 봉분을 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묘를 찾아가봐도 어머니를 묻었다는 곳을 알 수 없었다.

실은 큰엄니 묻고 처음 오는 거시라…… 성님이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소잉.

사촌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고개를 처뜨렸다. 어머니를 묻었던 겨울에는 땅이 평평하고 풀이 없었지만, 삼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사촌은 대충 언저리만을 짐작할 뿐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풀이 사람 키만큼 우거져서 어머니를 묻은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봉분이 있다 하더라도 헤맬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가운데 서서 동서남북 각 방위를 향해 절을 두번씩 여덟번을 하고는 후다닥 산을 내려왔다. 가져간 막걸리도 사방 원을 그리며 군데군데 뿌렸다. 서럽고, 불쌍했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12

그는 그날 옷을 잃어버렸다. 시위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김중사도, 입고 갔던 야전상의도 사라졌다. 그나마 바지는 찾은 게 다행이었다.

양손으로 몸을 감싼 채 터덜터덜 시위현장을 빠져나오는 그를 경찰이 불러세웠다.

저, 저는 뭐 하는지도 모르고잉, 고참이, 데불고 와가지고잉. 여, 와서 봉게……

아저씨, 그게 아니라, 뭐라도 입고 가시라고요…… 사람들이 놀래겠어요.

누군가 재빠르게 반소매 셔츠를 그에게 건넸다. 옷을 건네는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 그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시민들과 경찰들이 길을 터주었다. 군복바지에 경찰 상의를 입은 그가 고개를 수그린 채 터덜터덜 걸었다. 치욕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지독한 가려움증도 잠시 잊었다.

그는 자리에 누운 채로 거의 한나절 동안이나 꼼짝하지 못하고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가 죽기 사흘 전이었다. 과거의 여러 순간이 그의 머릿속에서 혼란스럽게 재구성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려움증은 지독하게 그의 몸을 잠식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가려워서, 긁고 싶은 충동에 모든 것을 새하얗게 잊어버리곤 했다. 아무리 체념한다고 해도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마비 증세가 조금 풀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하루가 저물 무렵이었다. 그는 힘겹게 벽을 짚고 일어나서 방에 불을 켰다. 냉골의 찬 습기가 그의 알몸을 감쌌다. 그는 파리채를 들고 몸 여기저기를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매질이 시원찮았다. 시원하게 긁어주던 아내의 손길이 새삼 생각났다.

반복된 매질에 금세 진물이 터지고 피고름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때리면 때릴수록 가려움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더욱더 세차게 파리채를 휘둘렀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피범벅이었다.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으나 그는 추운 줄도 몰랐다.

김중사는 그의 알몸이 필요할 때만 간혹 찾아왔다. 세상이 바뀌자 살 만해진 모양이었다. 몇년간 가로채던 지원금도 더이상 가져가지 않았다. 선심을 쓰듯 그의 몫으로 나온 정부의 지원금을 그 앞에 돌려주었다.

벌써 이십년째였다. 때마다 그는 벌거벗겨졌다. 치욕스러웠지만, 그래도 살 방도는 그것밖에 없었다. 지원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즉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목숨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전우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기가 보답할 길은 몸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면 알몸이라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회가 열릴 때면 동원되던 전우들은 거의 죽고 몇사람 남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아픈 과거와 고통을 거둬갔다.

김중사는 한 단체의 간부를 맡은 모양이었다. 병원 매점을 여러개 갖고 있는데, 돈을 엄청나게 번다고 했다. 집회에 같이 동원되던 사람이 부러운 듯 말하곤 했다. 매점 하나만 생기면 이런 데 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사람은 양쪽 다리가 없었고 식도암과 폐암 말기였다. 그래도 십여년 봐오던 터라 간혹 속말도 나누던 사이였는데, 요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죽은 모양이었다.

 

13

그가 한달치 약을 모두 입에 털어넣은 것은 죽기 사흘 전이었다. 겨울 최고의 한파가 몰아쳐서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던 날이었다. 그는 너무 가려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죽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려워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약을 먹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눈앞의 세상이 환해졌다.

그는 황홀한 환영에 휩싸였다. 약의 늘어난 양만큼이나 강력한 환각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봤는지 이제는 알지 못했다. 그의 의식은 환영 안에서 영원히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의식과 육신이 모두 얼어붙고 있었다. 그는 군복을 입은 채 홀로 밀림에 서 있었다. 따뜻한 날씨였다. 수십년 전 그가 보았던 밀림 속 힌두사원 앞이었다. 사원의 입구는 서쪽으로 나 있었다. 죽음의 신을 모시는 사원 외곽은 사방이 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해자를 건너는 다리가 사원을 드나드는 유일한 문이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유일한 통로 같았다. 오래전 사원 안에서 그의 소대는 전멸했다. 여전히 억울한 혼들이 사원 안에 머물 터였다. 죽음의 사원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김중사와 그 둘뿐이었다. 그는 사원 앞에 서자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때와 달리 고요하고 평온한 사원 앞에 그는 서 있었다. 천천히 죽음의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원 한가운데에는 신당이 모셔져 있고, 사방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 위치한 신당에는 상은 없고,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혓바닥이 길게 나온 사신은 물소를 타고 있고, 손에는 올가미가 들려 있었다. 사신의 발밑으로 수많은 사람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죽음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 군데군데 이미 죽은 듯 보이는 혼들이 겁에 질려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림이었지만 그것을 보자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회랑을 따라 걸으며 조각된 벽화를 한가로이 바라보았다. 벽화에는 여러 신들의 모험담이 조각되어 있었다. 신의 모습은 무서운 괴물처럼 과장되게 그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정겹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혹 새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회랑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한참을 걷다 그는 우뚝 멈춰섰다. 신당의 뒤쪽 계단에 새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는 깊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상하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약을 먹고도 사흘 동안이나 그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 눈을 반쯤 뜬 가수면 상태에서 그는 환각 속에 숨겨진 많은 것을 보았다. 대부분이 전쟁 전의, 잠깐이나마 평화로웠던 한때였다. 때때로 잘록한 허리, 검은 생머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베트남 여인의 유혹을 즐겼다. 땅을 뚫을 것 같은 시원한 빗줄기를 알몸으로 맞기도 했다. 이제는 망각 속에 파묻힌 고향,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조우했다. 환영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 머리 위로 아름다운 빛깔이 어려 있었다.

고요하고 무한한 공간에서 퍼져나오는 노란 빛깔의 작은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는 눈을 찡그렸다. 간혹 서늘한 바람과 잿빛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그것들은 얼굴에 닿아도 차갑지 않고 움직임이 현란했다. 눈앞으로 몰려드는 꽃잎과 함박눈 때문에 원덕씨는 침침한 눈을 연신 깜박였다. 무수히 쏟아져내리는 그것들을 그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흡사 고요한 우주, 그곳은 한곳을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의식도 그 무한한 공간 속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마비된 사지가 한파 속에서 꽁꽁 얼기 시작했다.

그가 숨을 내려놓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하늘에서 낮게 날아오는 C-123기였다.

오렌지 온다!

누군가 외치자 참호를 파던 병사들이 환호했다. 긴 날개에서 하얀 액체가루가 뿜어져나오는 모습이 포근한 구름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팔을 활짝 벌리며 안아주려는 듯, 멀리서 백색의 수증기 같은 것을 뿜으며 다가오는 비행기를 그도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비행기가 보이자 궤적을 따라 몰려들었다.

비행기는 굉음과 함께 천지를 뒤흔들며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희뿌연 안개가 밀림을 뒤덮었다. 하얀 가랑비가 천지사방에 뿌려졌다. 병사들은 하늘에서 날리는 액체를 서로 더 받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비행기가 뿌려대는 하얀 비가 밀림의 고약한 모기들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구름이 내려앉은 자리에는 나무들이 말라죽으며 밀림이 사라졌다.

신이 나서 비행기가 날리고 간 하얀 비를 받아 몸에 바르는, 젊은날 자신의 모습을 그는 슬프게 바라보았다. 메마른 그의 눈에 마지막 눈물이 맺혔다.

 

14

죽은 원덕씨를 발견한 사람은 김중사였다.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부쩍 많아진 집회에 그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마당에서 불러도 기척이 없자 김중사는 군화를 신은 채 성큼성큼 마루를 가로질렀다.

어허, 동작 봐라.

방문을 열며 죽어 있는 그를 향해 김중사가 소리질렀다. 그의 몸은 이미 뻣뻣하게, 꽁꽁 얼어 있었다. 입은 벌어지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김중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대대장님, 보고 드립니다. 심상병이 전사한 것 같습니다. 집회에 데려가려고 들렀더니, 죽어 있었습니다. ……그럼 어디로 보고를 할까요? ……죄송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중사가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평생 자신의 진정한 졸병이었던 원덕씨를 썬글라스 너머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죽었지만 붉은 반점과 돋아난 돌기, 수포는 더욱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면 긁지 못하는 그를 위해 누구라도 대신 긁어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김중사가 조용히 방문을 닫더니 그대로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