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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시백 李施帛
경기 여주 출생. 1988년 『동양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종을 훔치다』, 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 등이 있음. seeback@paran.com
잔설(殘雪)
아무리 하늘에 계신 양반이라지만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니냔 말이다. 무슨 놈의 눈을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니 견딜 수가 있겠는가. 뿌리려면 한번에 퍼붓든가, 꼭두새벽부터 넉가래를 붙들고 손이 부르트도록 치우고 나면 구름 사이로 빠끔히 내다보고는 내처 붓기를 벌써 사나흘째다. 하늘님도 넉가래를 배에 대고 밀다가 덜커덕 돌부리에 걸려 ‘악!’ 소리도 못 내고 눈물이 핑 돌아보셔야 땅바닥에 엎드려 지내는 인간들 사정을 헤아리려나.
모르기는 제 몸에서 내어놓은 자식도 마찬가지였다. 눈발이 펄펄 내리는 아침부터 밥상도 받기 전에 차를 끌고나가는 아들 진철에게 ‘너는 노상 생기는 것두 웂이 워째 그리 바쁘냐’고 한마디했더니, 아버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고 두덜거리던 것이다. 알지 못하는 건 너라고, 네까짓 게 알기는 뭘 안다고 나대느냐고 한마디 더하려던 김영감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느덧 입에서 내어놓으면 잔소리요, 걱정해서 해주는 말도 싫은 소리로만 들릴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날이 어지간히 눅으면서 전나무 우듬지에 얹혔던 눈이 지나가는 바람도 없이 길바닥에 툭툭 내려앉는 걸 김영감은 언 발로 일삼아 걷어찼다. 그 통에 몇 남지 않은 잎을 매달고 겨우내 가랑거리던 졸참나무에 얹혀 젖은 깃을 털어대던 박새 한마리가 오두방정을 떨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짓까불며 날아다녔다. 웬만큼 쏟아냈는지 두텁던 구름이 멀게지며 꼭 아침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으로 가르마 빗어넘기는 퇴기 이마빡 같기도 하고, 반쯤 얼어서 물크러진 달걀노른자 닮은 겨울 해가 때꾼한 얼굴을 오랜만에 내밀었다. 밤낮으로 서걱거리던 억새들을 지지르고 허옇게 쌓였던 눈들이 설핏한 햇귀에 마지못해 숨통을 거뭇거뭇 내어놓았다. 예전 같으면 보리밭을 푸근히 덮어 농사에 도움이 된다고나 하지만, 이제 보리는커녕 멀쩡한 논을 메워 소나무나 길러먹는 시절에는 그야말로 객쩍게 내려 부질없이 녹아버리는 눈이었다. 삯 없는 땀만 흘려댄 탓인지 목이 말라 김영감은 노간주나무 울에 얹힌 눈 한줌을 쥐어 입에 넣었다. 삼동에도 강 파헤치기 바쁜 굴삭기들이 뿜어댄 매연 탓인지 눈에서도 기름내가 은근히 배어나는 듯했다. 김영감은 강에서 퍼낸 토사들이 허옇게 눈에 덮여 난데없는 설산을 이룬 강 언저리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리고 무슨 급한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 텔레비전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방송마다 손녀딸 같은 것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와 혀 짧은 소리로 갓난쟁이 시늉을 내는 통에 공연히 곁에서 넋놓고 들여다보는 마누라만 퉁바리를 주고 말았다. 한쪽에선 서로 포를 쏴가며 사람이 죽네, 집이 부서지네 하는 판에 단추 하나만 누르면 단박에 지붕을 뚫고 대포알이 떨어질 방 안에선 천하태평이다.
“아, 산사람은 살어야지.”
기껏 한다는 소리가 약 대신 욕 먹을 말토막만 골라 하는 마누라를 흘겨보며 한마디 퍼부으려는데, 방문이 기척도 없이 벌컥 열린다.
“초저녁부텀 문 걸어잠그구 뭘 허신댜?”
이세(里稅) 걷을 때나 친히 찾아다니는 이장이 툇마루를 깔고앉은 채 겨우내 구레나룻 농사만 무성히 지은 얼굴을 불쑥 들이민다.
“공연히 마나님 귀찮게 허지 마시구 회관으루 막갈리나 자시러 나오셔유.”
가뜩이나 출출하던 판에 귀가 솔깃해 용무도 묻지 않고 그 길로 이장을 따라나선다.
겨우내 돈 안되는 안노인들 몇몇이 돈 안 드는 이야기나 늘어놓으며 공동으로 돌리는 보일러 방에서 엉덩이나 지지는 마을회관 문 앞에 모처럼 신발들이 수북하다. 그 가운데 낯익은 구두 하나를 발견한 김영감은 목을 디밀어 방 안 윗자리에 일찌감치 와 앉은 아들 진철을 걸터듬는다. 마당 그득하니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져도 손 하나 까딱 않더니 이런 자리에는 어김없이 일등이다. 무슨 회의라면 빠지지 않고 끼어앉아 돈 한푼 안 생기는 입품만 팔러 다니는 아들이 김영감은 영 마뜩찮았다.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언변 좋고 똑똑하다지만 자고로 가진 것 없이 입만 바른 것들이 갈 데라고는 포도청밖에 더 있던가. 남의 자식들처럼 구순하니 머리 숙이고 있다가 공것으로 굴러다니는 눈먼 돈이나 두꺼비처럼 더끔더끔 집어삼키는 것이야말로 똑똑한 짓이 아니겠는가. 쉰을 바라보는 자식이건만 늙은 애비가 보기에 그런 헛똑똑이가 없었다.
내년에 쓸 부산물 비료 신청을 받고나서 이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전한다.
“그리구 뭔 일 있으믄 저기 노인요양원으루 피하래유.”
“뭔 일?”
“아, 연평도 거시기유.”
“아니, 창운리서는 꽃다방으루 가랜대는데.”
“옘비, 누구는 지린내 나는 노인네들 기저귀 갈구, 팔자 좋은 것들은 분냄새 풍기는 미쓰 박이 타다주는 커피 마시믄서 데레비루 중계방송 귀경허것네.”
“용인인가 워디서는 고인돌 밑으루 기들어간대는디, 거보담은 훨 낫지, 뭘.”
“아주 게서 나올 것두 웂이 폭 파묻히믄 되것네.”
일년 내내 들여다보는 것이라곤 그저 텔레비전뿐이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안방 차고앉은 노인들이 더 빠삭했다.
“그나저나 그것들은 강도나 다름웂지. 쌀 안 준다구 포를 쏴대?”
“아, 시상에 배고픈 것덜 이길 장사 있어? 어채피 굶어죽을 판에 이판사판으루 한판해보자는 데야……”
“까짓것들이 한판헐 심이나 있것어? 땅크건 뭐건 지름이 웂어 죄 세워놨다는디.”
“땅크보담 더 무선 것이 그지여. 멫천만이 깡통 뚜딜기구 내려와봐. 여나 그나 단체할인으루 싸그리 거덜나구 말지.”
“내려오긴 워딜 내려와. 여두 길바닥에 신문지 깔구 자빠진 것들이 수두룩헌디.”
“모르믄 가만들이나 기셔. 재주는 뭐가 부리구 시방 재미는 뙤놈이 볼 판이여.”
“뙤놈이구 양키구 간에 즌쟁 나믄 봄에 가기루 헌 동니 관광은 워뜨케 되는겨?”
한바탕 연평도에 대포 쏘아댄 이야기를 콩 주워먹듯 삼켜대는 중에 누군가 안쪽에서 새된 소리를 내지른다. 돌아보니 진철이다.
“이장 선거는 은제 허나유?”
이장 자리라는 것이 제발로 못해먹겠다고 걷어치우기 전에는 몇해고 우려먹기 마련인데, 지난가을에 이장이 집을 아랫말로 옮기면서 구시렁거리는 소리들이 돌아다녔다. 이장은 서울로 떠난 제 형네 집에 눌러살았는데, 느닷없이 사업자금에 몰린 형이 집을 팔겠다는 바람에 부랴부랴 아랫말에 있는 고추밭에다 조립식으로 집을 지어 나간 것이다. 원래 한동네로 지내다가 1리, 2리로 쪼개져 이장을 따로 세운 지가 벌써 십년이 넘었으니 말을 삼자면 삼을 만도 한 일이었다.
“그러잖어두 허긴 허야 허는디.”
“지난봄에 혔는디, 또 뭔 선거려?”
눈 어두운 정미네 할머니가 물색없이 귀밝은 체하며 끼어든다.
“그건 군수 뽑는 선거구유, 이장 말유.”
“아, 이장은 여그 즘잖게 앉아 있는디.”
그 말에 이장이 비 맞은 개 시늉으로 어깨를 늘어뜨리며 입속으로 웅얼거린다.
“이사 갔다구 안된대유.”
“맨날 얼굴 마주허는디 무슨……”
여기저기 혀를 차며 이장을 동정하는 분위기인데 아니나 다를까, 언청이 아가리에 토란 비어지듯 진철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가까이 앉았으면 눌러앉히고 싶은 심정에 김영감은 안절부절 못한다.
“그기 아니쥬. 엄연히 구역이 다른디유. 거긴 1리구, 여기는……”
“워디 무서워서 살겄냐. 은제부텀 번지수 짚어가매 슨거를 혔다구.”
“그건 당숙 으른이 모르구 허는 말씀이유. 이런 일일수룩 깔끔허니 해놔야……”
따지고 보면 사십호 가운데 타성바지 서넛을 빼면 거의가 한집안 푸네기끼리인 원씨 집성촌이었다. 탈탈 털어봐야 한줌도 안되는 마을에서 사사건건 티격태격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타성들끼리 모여사는 동네보다 인심이 더 사납고 그악스럽다고 호가 날 지경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었다.
젊은 축들끼리는 벌써 입을 맞춘 듯, 진철의 편을 들고 나서자 늙수그레한 노인들이 언성을 높이며 다 제 집의 자식이며 조카인 젊은 사람들을 닦아세웠다. 내전보살 시늉을 하고 앉았던 이장이 불뚱가지를 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켜줘두 안헐 테니께, 그만들 혀.”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이장을 곁에 있던 사람들이 간신히 끌어앉히고 선거가 시작되었다. 욕 먹을 자리만 골라 나서는 진철이 누가 불러세우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일어나, 먼저 선거위원회를 꾸릴 것이며, 자진 사퇴한 이장에게는 투표권도 부득이 줄 수 없다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저 애가 왜 저러는가 싶어 덜컥 겁이 나 김영감은 역정도 내지 못한 채 아들의 하는 양만 지켜보았다.
눈이 어두워져 그 좋아하는 성경책도 못 들여다보게 된 뒤로 손바닥만한 텃밭에 엎드려 화초농사만 열심히 짓는 최목사를 선거위원장으로 앉히고는, 이장에 나설 이들을 찾더니 진철이 그 흔한 남의 추천도 없이 제 입으로 해보겠노라고 번쩍 손을 든다. 막상 진철이 나서자 가만히 눈치만 살피던 옥근이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나서고, 이어서 너도나도 자천 반 타천 반으로 몰려나와 이장 후보로 나선 이가 무려 여섯이나 되었다. 거동 못하는 노인들 빼고, 일이 있어 읍내 나간 이들을 제외하고 모인 스물일곱 중에 여섯이 후보로 나섰으니 집마다 한명씩은 인물을 내놓은 셈이었다.
“읍내 군의원 선거보다 쎄어.”
선거 때마다 막걸리 통이나 팔아먹어온 공판장 주인 재성이 즐거워죽겠다는 얼굴로 야기죽거린다. 가만히 면면을 살피자니, 욱하는 마음에 나서거나 너는 못하겠느냐며 엉겁결에 등떠밀려 나선 이들을 제하면 결국은 유기농 작목반 진철이와 자율방범대 옥근이가 호각인 셈이었다. 제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물로 치자면 진철이 단연 윗물이지만, 여기저기 개 삶아가며 두루 어울리고 관청 주변을 얼쩡거리며 넓힌 옥근의 마당발도 무시 못할 재주이긴 했다. 반반씩 섞었으면 좋으련만 둘은 마주하면 생채기에 소금 끼얹듯 펄펄 뛰기 일쑤이며, 물에 두른 기름처럼 빙빙 겉돌았다.
진철이 입후보 순대로 번호를 매기자니, 옥근이 사다리를 타자고 버티어 여섯이 방바닥에 엎드려 달력 뒤에다 그어놓은 사다리를 고르게 되었다. 쓰다 남은 비료 신청서를 오려 투표용지를 만들고, 거기다가 최목사가 볼펜으로 지렁이 꿈틀대듯 싸인이라는 걸 끼적거리니 가히 면사무소에 모여 하던 군의원 선거보다 더 실감이 나는 판이었다. 빨리 가서 여자가 대통령 되는 연속극 봐야 한다고 두덜거리는 안노인들을 눌러앉혀놓고 정견발표까지 듣게 됐으니 마을이 생긴 이래 이런 선거가 처음이었다. 뽑아만 주면 성심성의껏 한몸 바쳐 동네일에 헌신하겠다는 말을 미리 짜기라도 하듯 입을 모아 둘러대던 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진철의 차례가 되었다.
“4대강이건 대통령이건 동네분들 허락 웂이는 흙 한삽도 못 퍼담게 할 터이니 염려들 놓으시구유. 뭣보담두 멫이서 꼬꼬치킨 뒷방에 모여앉아 쑤군거리는 게 아니라, 대소사를 하나하나 처녀 배꼽보담두 더 말끔허니 털어놓고 소통허것시유.”
4대강이라는 말에 김영감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진철과 옥근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벌어지게 된 것도 다 4대강 살리기인지, 죽이기인지 하는 것 때문이었다. 진철이 유기농인가 뭔가를 한다며 멀쩡한 배추밭에 여치들이 잔치를 벌여도 약 한번 치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 무슨 생협인가 조합인가 툭하면 교육에 회의를 놀이 삼는 패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제가 언제부터 강바닥에 맥없이 웅크린 모래무지를 걱정하고, 강가에 철없이 우거지는 쑥부쟁이를 챙겼다고 친환경이니 생명이니 읊어가며 제 농사도 폐한 채 남의 강 걱정만 하고 다닌단 말인가.
졸지에 참관인 노릇을 하게 된 이장이 온종일 땅콩을 까먹고 껍질만 수북하니 담아놓은 바구니를 털어내고는 거기에 투표용지를 걷었다. 스물 남짓한 투표용지가 까발려지며 제 자식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김영감은 자신도 모르게 땀이 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옥근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던 진철은 끝내 한표 차로 앞섰다. 진철이 아홉표, 옥근이 여덟표, 나머지 사람들이 두세표씩 나눠가졌다. 이왕 나선 선거이니 지는 것보다는 이긴 것이 낫다 싶으면서도 김영감은 옥근의 안색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어코 결선꺼정 가야 허나.”
옥근과 오리발로 붙어다니는 개울집 수동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눈이 어두워지고부터 얼이 반쯤은 나간 최목사가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수동이는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며 설레발을 쳤다.
“이장이믄 한 동니를 대표허는 얼굴이요, 으른 격이니 중허다면 그보다 중헌 자리가 촌에서 또 있것슈? 그런 중헌 자리를 한표 차이루 정헐 수는 웂는 일이쥬. 애덜 급장 선거두 과반수를 읃을 때꺼정 재투표럴 허구, 배드민턴 클럽 회장 뽑을 때두 다 그렇게 허는디.”
앞으로 이런저런 마을 일을 보자면 동네사람들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겨우 아홉표 가지고 사십호나 되는 마을을 어떻게 이끌 수 있겠느냐. 밤을 새우더라도 과반수를 얻도록 설득하여 지지자들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수동이나 옥근의 주장이었다.
“그기 워느 당나라 시절 선거법인지는 몰러두, 한표래두 최다득표자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해먹는 게 이 나라 법인 줄 모르구 허는 소리여?”
진철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버티며 옥신각신하는 중에 안노인 몇이 그예 견디지를 못하고 연속극 보러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장선거가 중동무이될 판이었다. 평생을 사랑만 찾던 최목사는 어떻게든 양쪽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일리니 원만이니 하는 소리를 걸터듬어가며 시간만 흘렸다. 김영감이 곁에서 보기에도 옥근이 하는 수작은 경우에 어긋나도 한참 지난 일이었다. 한표라도 앞서면 당선이 되는 것이지, 과반수니 뭐니 들춰가며 뒤늦게 딴죽을 거는 게 옳은 일인가. 대체로 그런 심정으로 한마디씩 얹는 중에 저와 제 처가 찍었을 두표를 달랑 건진 의용소방대 병기가 옥근과 눈을 끔벅이더니 목소리를 높여 수동의 역성을 들어준다.
“허긴 아무리 애덜 줄반장보덤 못헌 이장자리래지만 한표 채루 되어서야 워디 면목이 스겠나, 원.”
이어서 약빠른 공판장 재성이가 가파른 턱을 내밀고 돈 안 드는 뒵들이로 생색을 내니 눈 먹은 닭처럼 눈만 뒤룩거리던 패들이 우르르 그리 분위기를 몰아간다. 사정이 이러니 진철도 별 수 없이 양보하여 결선투표란 걸 하게 되었는데, 옥근이 깐죽거리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선거야 낼이래두 다시 하믄 되것지만서두. 앞으루 우리 마을에 즉잖은 변화가 밀어닥칠 텐디 워떤 이가 이장을 맡느냐에 따라 마을이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는 판이니,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말씀을 꼭 디리구 싶네유.”
옥근은 제가 면장이며 새로 군수가 된 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4대강 공사가 끝나면 강에 접한 땅들을 친수구역으로 정해 거기에다 유람선 선착장이며 고급 식당에 호텔을 짓게 되는데 지금 그 부지를 물색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서로 말이 잘 통할 만한 이장이 있는 동네가 일하기에 편하지 않겠느냐고 군수가 슬쩍 말을 흘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율방범대장이며 지역 유지들과 무람없이 지내는 제가 이장을 맡아야 이 동네도 발전이 될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소리였다.
진철이 질 수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대거리를 하고 나선다.
“친수가 될지 하수가 될지 두구 보믄 알 일이구. 그랴구 그 군수는 헐 일이 웂어서 남의 동네 이장선거꺼정 챙기구 있댜? 쌀밥 먹고 보리 방구 뀌는 소리 그만혀.”
“그러믄 워디 보리밥 먹구 쌀 방구 뀌는 소리 줌 들어보자구. 거기는 워째서 4대강이래믄 기를 쓰구 반대여? 워디 동니 으른들 기신 데서 의견이나 들어보자구.”
“그러는 거기는 워째서 저 살겠다구 멀쩡히 흐르는 강을 파헤치는 디 앞장서는겨? 거기서 금싸라기래두 떨어지는 게 있는가벼.”
“있구 말구. 아, 거기서 흙 파는 중기 운전사덜 사먹는 밥이며, 심심허니 피워대는 담배값만 혀두 워디루 떨어지간디.”
“그러믄 거기 엎드려 살던 모래무지는 죽어두 되구.”
“모래무지가 대수여? 사람부텀 살구 봐야지.”
“모래무지가 죽으믄 사람두 죽는 벱여, 알구나 떠들어.”
“돈이 있는디 워째 죽는댜?”
“강을 막으면 그 물이 썩어 암것두 살 수 없는 거 몰러? 암만 돈이 있으면 뭘 혀.”
“돈만 있음 죽은 이두 살려내는 시상여. 강 썩으믄 서울 가서 살면 되지?”
“거기두 썩으믄?”
“그럼 미국 가서 살지.”
말이라면 어디 가서도 꿀려본 적이 없는 진철이었지만 대책 없이 내놓는 옥근의 말에는 기가 막혀 헛웃음만 짓고 만다. 그에 기가 산 옥근이 못을 박듯 입을 놀려 한마디를 더 얹는다.
“생명을 살려? 머리에 띠 두르구 악쓴다구 생명이 산댜? 요즘은 돈이 생명여.”
대책 없이 길기만 한 겨울밤이 심심하던 사람들은 모처럼 구경거리가 생겨 반가운 얼굴로 둘이 벌이는 입싸움을 지켜보건만 김영감은 그리 편하니 바라볼 계제가 아니었다.
지난봄에 강에서 퍼낸 흙들을 논에다 객토(客土)를 해준다며 옥근이가 트럭 수십대를 끌고 왔을 때, 진철이와 드잡이를 벌인 일이 생각났다. 내 돈 들이지 않고 거저 객토를 해준다니 김영감부터 횡재다 싶어 반겼는데,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진철이 결사적으로 막아나섰다. 강바닥에 가라앉았던 썩은 흙들을 논에다 퍼담는 바람에 재 너머 운천리에선 벼는커녕 콩 한 졸가리 길러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장이 동의한 일이라며 옥근이 막무가내로 트럭을 들이밀려 하자, 진철은 길 위에 벌렁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앙숙이던 둘이 마주치니 결국은 멱살을 잡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옥근이 ‘나라에서 하는 일마다 반대부터 하는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둘러치자, 진철이 옥근의 멱살을 바짝 잡아채고는 ‘제 호주머니에 공돈 얻자고 동니 사람들 등쳐먹는 것은 빨갱이보다 더한 사기꾼’이라고 을러댔다.
“나라가 안정되랴믄 바닥 빨갱이부텀 말깜히 쓸어베려야 한대니께.”
옥근의 험한 말에 진철도 한마디 지지 않고 덤벼들었다.
“뻘건 거 찾기 전에 즤 마누라나 잘 찾아댕기라구 그려.”
자율방범대라고 면사무소 부근 개울가에 컨테이너 하나 얹어놓고 노상 화투판으로 밤을 새워 눈이 붉지 않은 적이 없는 옥근을 엇먹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이 없었다. 이태 전에 도박판에 선산까지 잡혀먹고 마누라가 달포나 넘게 뛰쳐나갔던 옥근은 아픈 데를 찔리자 당장 코에 더운 김을 내쉬며 진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이 날랜 진철이 이를 피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져 전신주에 이마를 깬 옥근은 면상이 낭자하니 피에 젖은 뒤에도 한참을 발정난 소처럼 나댔다. 이장이 불러들인 119 소방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기고서야 마무리가 되었지만, 진철은 경찰서에 불려가 경위를 설명하느라 한동안 제 기름 써가며 읍내를 드나들어야 했다. 제 잘못으로 넘어져 이마를 찢긴 것임은 마을 사람들이 다 본 일이었으나, 복날마다 순경들을 불러다 다리 밑에서 개를 삶아댄 연분으로 어떻게 엮어댔는지 경찰은 바쁜 사람 붙들어 앉히고는 원만히 합의하라는 소리만 되풀이하더라는 것이다.
“시국이 하수상하니 돌아가는디, 뭣보다두 마을의 공공안녕을 최우선적으루다 지켜내어, 사상적으루다가 거시기헌 것들을 싸그리 뿌리째 뽑아내는 디 미력을 다허겠구먼유. 새로 온 스장이며 면장님을 뫼시구 우리 동니가 안보적으루나 경제적으루나 면내 젤 가는 마을루 맨들겠싀유.”
제가 보기에도 아까 했던 정견발표가 미진하였던지 옥근이 기어코 한마디를 더 얹었다. 사상적이라는 말에 김영감은 새삼 옥근의 이마에 남은 흉터를 곁눈으로 슬며시 훔쳐보았다.
결국 삼베바지에 방구 새듯, 안노인 몇이 슬며시 빠져나가고 이어서 기다리다 못한 패들이 막걸리 통을 꺼내 잔을 돌리다 보니, 선거는 자연 다음의 적당한 날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기 보기처럼 쉬운 기 아니래니께.”
그것 보라는 얼굴로 이장이 모처럼 웃음을 찾아 잔 돌리기에 바쁘다.
“근디 그 4대강인가 뭔가는 돈이 을매나 들어간댜?”
한참 재미나던 말싸움이 중동무이된 것이 여간 아쉽지 않은 듯, 이장이 다시 4대강을 안주 삼아 입에 끄집어올린다. 강바닥을 한 걸음 파는 데 백만원은 족히 들 것이라는 이장의 말에 입빠른 재성이 끼어들어 면박을 준다.
“생각을 혀봐. 개들두 잠을 자느라 짖지 않는 새벽까장 쉼 없이 돌려대는 저 기계값이며, 거기 들어가는 기름값에 달마다 따박따박 나눠주는 기사덜 봉급까지 치믄 천만원이 뭐여 억은 되구두 남지.”
“아무리 제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돈이라구 그리 가벼이 입에 올릴 일이 아녀. 억이 무슨 장난인 줄 알어. 천원짜리루 쌓아올리믄 거그 키를 넘기구두 한참 남을 돈이여. 억, 억 하다가 탁 치면 억 하구 죽는 수가 있는 줄이나 알어.”
“그랴믄 내가 백만원 줄 테니 한 걸음씩 파볼 텨?”
“가져만 와봐. 우선 읍내 장미집에 가서 퍼마시구 난 뒤에 팔 테니께.”
4대강에 드는 돈이 한 걸음에 백만원이니 천만원이니 제 돈도 아닌 것을 붙들고 핏대를 올리는 꼴이 김영감은 우습기만 했다. 제 주머니에 백만원은커녕 만지면 파릇한 소리 나는 만원 한장 담지 못한 주제에 평생 굶고 모아도 그 언저리도 가지 못할 천억이니 몇조니 하는 돈들을 턱턱 입에 올려가며 생기는 것 없이 입안의 침만 마르게 하는 꼴들을 지켜보자니 객쩍게 헛힘 쓰는 데는 제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오십소백(五十笑百)이었다.
막걸리 몇잔 얻어마시고 집에 돌아와서도 김영감은 속이 편치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당장 전쟁이라도 날 듯 이리저리 지도까지 그려가며 대포 쏘는 장면을 무슨 좋은 구경이라고 온종일 되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이며 러시아며 큰 나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지 말라는데도 울고 싶어 누가 때려주길 기다리는 북쪽 것들 코앞에다 기어코 대포 쏘는 연습을 하겠다는 속내도 모르겠고, 막상 포를 쏴야 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뒤늦게 쏘고 말겠다고 아우성치는 연유도 알 수가 없었다.
연속극 보겠다는 마누라에게서 억지로 빼앗은 리모컨을 허벅지 밑에 깔고앉은 김영감은 나라의 높은 이들이 죄 군복차림으로 모여서 웅성거리는 모습이며, 대구에서 떠서 한방에 적진을 어쩐다는 비행기가 하늘 째지게 날아다니는 장면을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나 마루로 달려나갔다. 미닫이 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발이 어는 것도 잊은 채 김영감은 뒤주를 열고 거기에 머리를 디밀고는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뒤주에는 얼마 전에 빻은 아끼바리 쌀이 허여멀거니 채워져 있었다. 일단 배는 주리지 않을 것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옥근의 이마 가운데 벌겋게 찢긴 흉터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많은 사람들 있는 데서 험한 소리를 인사처럼 주고받고 지내니 진철과 옥근의 사이는 장항선 선로처럼 영영 마주 닿을 수가 없게 된 것은 돌릴 수 없는 사실이요, 나라에서 하는 일을 대놓고 까댔으니 제 자식은 여차하면 무어라 둘러댈 말도 없게 된 처지였다. 아무리 되작거려봐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온 듯 시퍼렇게 얼어서 들어온 아들을 불러앉히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알아듣게 타일렀다.
“얘, 한살이래두 더 먹은 이가 허는 말을 들어라. 이장이 문제가 아니다. 여차허믄 아주 우스운 말 한매디 갲구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허는 기 전쟁이다.”
“아부지두 참, 전쟁이 무신 애덜 병정놀인 중 아셔유?”
“차라리 놀이래믄 낫겄다.”
“전쟁이란 것이 쉽게 나지두 않겄지만, 시방 큰일난 것은 강바닥 파헤쳐 즤 배덜 불리는 것들이유.”
“너, 그렇게 입바른 소리를 취미루 삼다가는 큰일난다.”
“입만 벙긋허면 죄 빨갱이루 모니 그저 나 죽었소 하고 엎드려 즤 말이나 받들라는 소리 아니유.”
“그보다 더헌 일두 일어나는 게 세상이구 전쟁여. 너는 겪지 않아서 몰러 그러는디, 그저 세상은 저 공판장 재성이츠럼 살아야 혀. 그이가 배우질 못혀서 그러는 줄 아니?”
“아부지 자식이 간신 소리를 들으면 퍽두 좋으시것슈.”
재성이는 간신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치 약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세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김영감은 몸으로 겪어 배운 사람이었다. 곧은 나무는 쉬 베어지고, 가지 넓게 벌린 나무는 눈바람에 부러지는 법이었다. 그저 휘어질 때 휘고, 적당히 허리 펼 때 펴는 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 이치였다.
강가에서 담배며 과자 부스러기를 파는 공판장이란 걸 벌여놓고 있는 재성은 혹 환경운동 하는 이들이 몰려와 라면이라도 사러 들르면 이렇게 둘러댔다.
“글씨, 멀쩡한 강을 뭐 허러 파헤치구 저 야단인지 알다 모를 일여. 그럴 돈이 있으믄 우리 겉은 서민덜 댐배값이래두 나눠주든지…… 아무리 임자 웂는 나랏돈이래구 저리 강바닥에다 쏟아버려두 낭중에 벌 안 받을까 모르것네.”
그러다가도 준설작업으로 드나드는 덤프트럭 운전사나 중기 기사들이 담배며 음료수를 찾으러 오면 같은 입으로 또 이렇게 둘러댔다.
“아, 즈이 돈 내래는 것두 아니구 나라서 다 생각이 있어 허는 일에 저리 쌍지팽이럴 짚구 나서는 걸 보믄 암만 혀두 사상적으루다 거시기헌 건 사실여. 솔직히 일년 내내 왜가리나 피라지 집어내구 갈대나 하염웂이 썩어가는 강인디, 거기다 꽃낭구두 심구 자전거길을 맨들믄 거 서울서 맨들었다는 청계천마냥 보기두 줌 좋것냔 말여.”
간신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목숨과 못 바꿀 게 어디 있으랴.
“너는 몰라서 그려. 내가 시키는 대루만 혀라. 지발.”
진철이 대답 대신 탁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제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김영감은 자리에 눕지를 못했다. 일이십도 아니고, 쉰을 바라보는 다 큰 자식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느냐는 마누라의 말에 모르면 눈 감고 잠이나 자라고 한마디 퉁 질러먹이고는 김영감은 벽에 걸어두었던 바지를 내려 주섬주섬 꿰었다.
장마가 길어 호박은 몇개 먹어보지도 못한 채 여름내 잎만 따다가 소여물 씹듯 쪄먹던 호박넌출이 바람이 불 때마다 와삭거리는 밤길을 김영감은 볼이 얼도록 걸어 옥근의 집으로 향했다.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냐며 마지못해 문을 열어준 옥근의 처는 문틈에 찧기라도 한 듯 시커먼 칠을 한 손가락으로 공판장 쪽을 되는 대로 짚어주었다.
공판장에는 과연 옥근이 측근 격인 수동을 비롯하여 몇몇을 거느리고 오징어를 구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가을바람에 매미울음 끊기듯 일거에 숙연해진다. 보나마나 어떻게 하면 한표라도 더 긁어낼 것인가 궁리하는 자리겠지만 김영감은 처음 보는 얼굴 주인들이 눈에 거슬렸다. 눈썹도 안 뵈게 깊이 눌러쓴 모자 밑으로 저만 내다볼 양으로 겨우 내어놓은 눈빛이며, 사람을 간 보듯 이리저리 걸터듬는 꼴이 한눈에도 오랏줄이나 매만지던 출신으로 보였다. 군복인지 경찰복인지 한쪽 어깨에 호루라기 줄까지 늘어뜨린 사내 둘을 구석으로 데려가 목소리를 한결 낮추어 수군거리느라 옥근은 안하는 게 나을 인사조차 시늉을 거른다. 얼핏 군복차림이 ‘말로는 안된다’며 두덜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김영감은 한마디라도 더 얻어들으려고 눈치 없는 태를 내며 그이들 쪽으로 슬며시 다가가자니, 옥근이 하던 이야기를 뚝 잘라먹고 사내들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몬다.
“날 어두운데 워쩐 일이래요?”
“이잉, 긴히 줌 헐 야그가 있어놔서……”
떨떠름해하는 옥근을 마당으로 끌어내 담배 두어대를 태워가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돌아가신 선친과는 형제처럼 지낸 사이였으며, 사변중에 저 지리산 자락에서 빨치산들을 토벌하느라 생사를 함께했던 처지라고. 어떻게든 진철이를 이장 선거에 나서지 않게 할 터이며, 그게 안되면 자신이 아는 동네 노인들 표도 모아줄 것이고, 당장 양주(兩主) 두 표는 자명하게 옥근에게 보탤 테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말끔히 잊고 선대처럼 본을 받아 진철과 형제처럼 자별하니 지내라고 당부 아닌 사정을 한 것이었다.
추워서 죽겠던지 옥근은 대강 알아들었으니 염려 말라고는 제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 잃은 사냥개처럼 우두커니 공판장에 남아 있던 수동의 패들이 슬며시 빠져나간 뒤에도 김영감은 선뜻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복들이 마음에 걸렸다. 말로는 안된다던 말도 체증처럼 가슴에 무지근하니 얹혀 내려가질 않는다.
옥근네 패들이 남긴 소주 반병을 땅콩 부스러기로 비우며 김영감은 문을 닫아걸 눈치만 살피는 재성을 불러앉혔다.
“바루 말허자면 운동허는 것이쥬, 뭐.”
“운됭?”
“이장두 선거는 선거니께 운동이 워째 웂겟시유.”
“그려. 헐 건 다 혀야것지.”
“진철이네두 니열부터는 본격적으루다 뛰것지유?”
이래저래 때 아닌 대목을 만나 입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얼굴로 재성이 벙긋거린다. 평소 같으면 벌써 혀를 차고 한마디 쏘아주었겠지만 김영감은 그저 맥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근디 낯선 이들은 뉘여?”
“뉘요? 아, 그이들유? 읍내 자율방범대잖유.”
“자율방범대? 근디 워째 그이들이 왔댜?”
“아무래두 옥근이가 대장이니께 한몫 거들 양으루 왔것지유, 뭐.”
“뭘 거드는디, 말루는 안되것다구 허는겨?”
“말루유?”
잠시 생각을 더듬던 재성이 탈탈 털면 한잔은 아직 남았을 소주병을 슬그머니 집어가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린다.
“옥근이가 동니에 떡을 해 돌린다는디, 시루떡 너이말에다 치아 션찮은 노인덜 드린다구 인절미를 따루 한말 허래니께 그이덜이 한말루는 안된다구, 두어말은 혀야 헌다구 허든 판이였슈. 말허자믄 것두 다 운동이지유, 뭐.”
자라 보고 놀란 이가 솥뚜껑 보고 밥상 엎는 격이라고 김영감은 맥없이 웃어 보였다. 그리 사정하는데도 옥근이 개천에 든 소처럼 배를 한껏 내밀며 데면데면하게 군 까닭이 따로 있었다.
“그이가 읍내서 방앗간 허잖유. 그러니 그이 눈대중이 틀림은 웂을 거유. 인절미 한말이래봐야 얼매나 되간? 동치미 국물에 맘 놓구 먹자믄 서넛이서두 훌떡 해치울 틴디.”
제 그림자를 밟으며, 왔던 길을 터덜터덜 되짚어오면서도 김영감은 여전히 마음이 개운하지를 않았다. 공연히 들쑤셔댄 가슴속의 이야기들이 선잠을 깬 듯 털고 일어나 부산하니 두런거렸다. 탄저병이 돌아 손 하나 대보지 못한 채 고스란히 밭에 세워놓고 얼린 고춧대들이 설핏 지나가는 바람에 와들거리는 소리가 김영감은 제게서 주절거리며 흘러나오는 이야기 소리로 들려 한참을 멈춰서서 어두운 귀를 기울여야 했다.
어디에다 그 징그러운 이야기들을 털어놓겠는가. 옥근의 아버지인 최영감과 쌀 말이라도 다달이 나눠준다는 말에 혹해 토벌대로 들어간 것이며, 거기서 물꼬 보러 갔다가 산사람들에게 붙들려 지름길을 일러준 농부를 물고 내고 상으로 좁쌀 닷되를 받았으며, 평소 손에 먹물깨나 묻혔다고 얼굴 희고 입바른 소리만 골라 하던 것들을 잡아다 빨치산 끄나풀로 몰아 한축은 족히 요절을 냈다는 일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김영감은 지금도 계에서건 동네에서건 단풍이며 사꾸라 구경을 간다 해도 지리산 자락이라면 얼씬도 않았다. 돌아보면 죄다 세상 험한 탓이라지만, 칼로 오려낸 듯 푸르무레한 얼굴들이 잠 안 오는 밤을 골라 장지문 밖에 어정거려 가위에 눌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난리중에 죽고 죽이는 일이야 다반사라지만 몇몇 얼굴은 수십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외려 날이 갈수록 생생하게 살아났다. 자반장수도 그랬다. 산을 넘어오다 토벌대에 붙들려온 그이는 철사에 손을 동이어 으슥한 골짜기로 끌려가면서도 그를 돌아보며 알은체를 했다. “나, 알잖유? 강경장에서두 멫번 봤잖유.” 그랬다. 보령인가 서천인가 어느 갯가가 집이라며 고등어자반을 엮어들고 장바닥을 돌아다니는 걸 몇번 보기만 했을까. 산 같은 덩치로 보자면 비린 것이나 들고 다니기 아까울 재목에 한창 피 뜨거울 나이였던 자반장수는 장터 젊은것들과 힘자랑 삼아 울근불근 주먹다짐을 적잖이 벌였다. 언젠가 쇠전 어름에서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자반장수가 치고받는 양을 구경하던 중에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칼침을 놓고 달아난 건달들과 한패로 오인한 자반장수가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우악스럽게 주먹질을 해댔지만, 그는 그저 파리처럼 두 손을 빌어야 했다. 분한 마음에 언제고 두고보자고 벼르기는 했지만 정작 외나무다리 같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덜커덕 마주칠 줄이야 피차 몰랐던 일이었다.
장사꾼으로 변장하여 보급에 나선 산사람으로 몰린 자반장수는 그를 보고는 관음보살을 만난 듯 눈물을 글썽이며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돌리고 알은척을 하지 않았다. 으슥한 골짜기로 끌려가면서도 연신 고개를 뒤로 꺾은 채 벌겋게 피가 배어나올 듯한 눈으로 돌아보며 울음인지 하소연인지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를 때도 그는 고개를 비틀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총소리가 나면 산에 있는 것들이 알아차린다며 대나무에 묶은 부엌칼로 돼지 잡듯 멱을 따는 순간에도 그는 알지 못하는 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전쟁 탓이라고 둘러대보지만, 정말 김영감은 왜 그랬는지 아무리 분한 일이래도 그때 왜 아는 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세상 탓이라고 둘러대기도 하고, 이 모든 게 빨갱이 탓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험한 말들을 앞서서 뱉어대었지만 그런다고 가슴에 서늘하니 쌓인 얼굴들이 눅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 알아주겠는가, 자식이 알겠는가. 그저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양지바른 산자락에 눕는 날에 구덩이 깊이 묻어둘 말들이었다.
밤이 되면서 얼어붙은 길 때문인지 김영감은 비척거리며 걷다가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옥근의 집 쪽을 자꾸 돌아보았다. 달빛이 내려앉은 산모롱이에는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서슬처럼 시퍼렇게 웅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