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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
 

‘열린 질문’ 중국의 부상

 

 

박민희 朴敏熙

한겨레신문 뻬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떠 있다.” 소설가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가 이렇지 않을까?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어느새 두개의 태양처럼 버티고 있고, 세계가 어디로 향하는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된.

2011119(한국시각 120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끝났다. 세계질서를 새로 짜는 이 ‘세기의 회담’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고, 미국의 압력과 양국의 국내 사정 탓에 중국이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발 떨어져 보면, 양국이 세계의 주요 이슈들을 전례 없이 포괄적으로 논의했고, 이전보다 훨씬 깊고 구체적인 논의 끝에 세계질서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등하게平起平坐 세계를 논의하는 양극체제의 시대가 온 것이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난 뒤, ‘역사의 종말’이 왔고 미국의 일극지배체제가 영원할 것으로 떠들썩했던 서구의 기대는 20년도 안돼 허물어졌다.

중국의 부상 또는 부흥이라는 역사의 흐름이 세계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미・중의 충돌로 이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부에선 중국이 현재의 세계화와 무역구조에서 큰 이익을 얻는 수혜자이므로 질서에 도전할 필요가 없고, 다만 서구 주도의 기존 국제씨스템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는 식으로 적응해갈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다른 편에선 이런 장밋빛 전망을 반박한다. 현재로선 양국의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고 서로 극단적인 충돌은 원치 않지만, 앞으로 중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어쩔 수 없이 기존 최강대국과 도전자 사이에 패권을 둘러싼 일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독일은 영국의 두번째 수출시장이었고 영국은 독일의 최대 시장으로, 양국이 현재의 미중관계처럼 긴밀히 의존하고 있었지만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는 역사도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10~20년 뒤 미중관계가 어떤 모습일지, 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는 수많은 답이 가능한 ‘열린 질문’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관련된 국가와 사람들이 어떤 전략과 태도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비극적 결말이 나올 수도 있고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변화를 진지하게 보고,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고 대안을 찾는 작업이다. 한반도가 지구 반대편으로 옮아가지 않는 한, 중국 굴기(起)의 가장 강력한 영향권에 위치한 한국에 이 질문은 절실한 과제다.

 

 

예상보다 빨라진 중국의 부상

 

20111월 후 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은 32년 전 떵 샤오핑(鄧小平)이 사실상의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당시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197812월 중국 공산당 113중전회(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반대파를 제압하고 개혁개방노선을 확정한 떵 샤오핑은 19791월 미국을 방문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죽의 장막’을 넘어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나선 중국 지도자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 본사와 보잉 공장을 방문했고, 텍사스의 로데오경기장을 찾아 카우보이 모자를 흔들며 미국인의 환영을 받았다. 떵 샤오핑은 미중 화해를 통해 중국의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안정적 미중관계라는 수확을 챙겼다. 군사안보 면에서 양국은 소련에 맞서는 냉전의 동지로 끈끈한 관계를 다졌다.

그로부터 32년 뒤 중국과 미국은 ‘적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라이벌이 됐다. 1978년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 격차는 17배였는데 이제 약 2.5(2010GDP 미국 약 146천억달러, 중국 약 59천억달러)로 줄었다. 최근 중국은 젠(殲)-20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과 항공모함, 대함 탄도미사일 뚱펑(東風)-21D의 개발 등 급속한 군사현대화를 통해 2차대전 후 어느 국가도 넘보지 못한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도 도전장을 던지는 모양새다. 중국의 부상이 뚜렷해진 지난 한해 중국과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위상을 둘러싸고 ‘신냉전’으로 불릴 정도로 치열한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굴기의 상당부분은 미국의 쇠퇴, 서구의 쇠퇴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중국은 대략 2040~50년께 미국을 추월하고 강대국으로서 목소리를 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힘을 쌓고 있었다. 2020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小康社會)1 건설, 2040년까지 공동부유(共同富裕) 실현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때까지 빈부격차와 정치씨스템, 부정부패, 인권 등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국내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하고 미국에 버금가는 부를 쌓으면 미국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세계 주도국가로 나설 수 있으리라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부시 행정부의 무리한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경제력의 급속한 쇠퇴를 겪기 시작하면서 중국 역시 준비되지 않은 채 세계무대에서 급부상하게 되었다. 미국식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식 세계질서는 나타나지 않는, 국제질서의 아노미상태가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서구세계에서는 중국사회 내부의 심각한 문제와 불만이 중국의 부상을 좌초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중국의 변화를 살펴보는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션전(深)과 꽝저우(廣州) 등 주강(珠江) 삼각주 일대와 난징(南京)과 우시(無錫) 등 창강(長江) 삼각주, 충칭(重慶) 등을 다니며 취재했다. 정부 관계자부터 농민공, 노동운동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중국이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78년 이후 30년 동안 추진된 선부론(先富論) 위주의 개발은 중국 전역에서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해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빈부격차와 부의 집중, 토지개발에 의존하는 성장과 강제철거를 둘러싼 분노, 부정부패, 환경파괴, 농민공과 도농격차 같은 문제를 방치할 경우 더는 체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지도부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젊은 농민공들은 이제 더이상 2등국민 대우를 참지 않으려 하며, 농민도 도시인도 될 수 없는 처지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해묵은 문제들이 아무 변화도 없이 중국을 짓누르고만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오산이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올해 성장에서 분배로, 수출에서 내수로의 전환을 내걸고 ‘125경제규획(規劃)’을 시작했는데, 이는 지난 30년 고속성장의 심각한 부작용인 빈부격차와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의 수출 위주 성장모델, 도농간・지역간 발전격차 등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정부 주도의 계획으로 이런 심각한 모순들을 몇년 안에 해결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중국은 문제를 진단하고 움직이고 있고, 변화의 물결들은 곳곳에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이 현재의 체제를 어떻게 보느냐인데, 필자가 취재중에 느낀 개인적이고 잠정적인 결론은 그들이 공산당 관료기구의 부정부패나 사회의 불공정을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현재의 비교적 안정된 체제와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공산당 통치에 대해서는 ‘제한된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체제 개선을 원하면서도, 현체제를 뒤엎으려는 시도가 사회의 다수 목소리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 학계에서 오랫동안 유행한, 중국이 고속성장의 부작용인 사회모순 때문에 폭발하고 중도에 강대국으로의 부상이 좌절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의 실현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적 불만이 체제타파 요구로 번지기 전에 당면한 문제들을 어느정도 해결하고 완화시켜야 할 ‘시간과의 경쟁’을 벌여야겠지만, 이에 완전히 실패하지 않는 한 중국의 부상은 일회적 현상이 아닌 역사의 조류로 유지될 것이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의 지은이 마틴 자크(Martin Jacques)는 “나는 앞으로 중국공산당이 더 개방될 것이고, 공산당 체제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공산당은 매우 성공적으로 통치해온 정치체제이며, 앞으로 50년 안에 이를 대체할 정치체제가 등장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현재 체제가 점점 더 개방돼가는 쪽이며, 근본적인 (체제)변화가 나타나는 쪽은 아닐 것이다.”2

하지만 한편으로 중국공산당은 이런 불안한 상황이 현체제의 판을 깨지 않도록 부강한 국가로서의 자신감과 민족주의를 통해 통치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고, 민중들 사이에서는 이런 정부 선전의 효과에 더해 달라진 중국의 위상에 대한 자부심,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뒤섞여 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적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국 외교가 공세적으로 바뀌는 데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공세적 외교의 내부 요인

 

2010년은 중국 외교사에서 독특한 문제적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급격하게 커진 경제력에 걸맞게 전략적 영향력 범위를 확대하고, 동아시아부터 남미, 아프리카까지 확장된 경제적 이권과 자원, 에너지 보급로 등을 스스로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강력한 ‘힘의 외교’를 시도했다. 특히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세력권을 좀더 밀어내고,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 시도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영유권(領有權)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를 핵심이익의 범위에 포함시켰다고 전해지는 한편, 이곳에서 중국의 해군 활동이 늘었다. 일본이 센까꾸열도(尖閣列島, 중국명 釣魚島오위따오) 해상에서 자국 해경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을 붙잡아 선장을 일본 국내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일본과의 고위급 대화 단절, 희토류(稀土類)의 일본 수출 중단 등 강력한 카드를 활용했다. 결국 일본은 선장 석방으로 ‘항복’했다. 중국 군부는 한미의 서해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 강하게 반발했고, 인민해방군의 훈련 장면을 잇따라 공개하기도 했다.

긴장한 주변국가들 사이에선 ‘중국 위협론’과 ‘힘의 외교’에 대한 반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미국은 그러한 불안과 반발을 이용해 빠르게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했다.

이러한 중국 외교는 지난 30년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면모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군사적・경제적으로 미국에 도전하기에 실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항상 평화를 내세우며 경제성장에 힘을 집중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을 감추고 힘을 기름) 전략을 구사했다. 물론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대국으로의 부상을 예상하고 준비해왔다. 2005~2006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들은 저명한 학자들의 강연과 수차례의 집단학습을 통해 15~20세기 강대국의 흥망사를 연구했다. 이 내용은 2006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12부작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起)」로 방송돼 중국인에게 강대국 부상을 미리 ‘예습’시켰다.

중국 외교는 후 진타오 주석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정책결정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전례 없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반영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외교정책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식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의 주장이 힘을 얻어 외교정책을 끌고 나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드 섐보우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중국 내부의 외교정책 논쟁에는 중화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민족주의부터 현실주의, 대국외교, 아시아 제1외교, 선택적 다자주의, 글로벌리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3 이 가운데 민족주의의 분출이 서방세계와 주변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족주의 진영은 내부적으로 다양한 세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미국 중심의 국제기구 등을 불신하고, 서구와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을 의심하는 여러 개인과 조직의 연합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가 부활함으로써 중국의 사회통합이 희생됐고, 중국의 주권에 대해 타협이 있었으며, 화평연변(和平演變, 서구가 공산당 통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의 평화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국내의 최대 위협이라고 본다. 이들은 국제적 공동기구와 씨스템은 불공평하며, 중국의 대미외교는 너무 나약하다고 지적하면서 미중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보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중국내 좌파 지식인의 근거지로 알려진 뻬이징 대학가의 서점 우여우즈샹(烏有之鄕, 유토피아라는 뜻)의 싸이트(www.wyzxsx.com)와 이 서점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강좌들이 이런 주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중국은 기분 나쁘다(中國不高興, 한국어판 제목은 ‘앵그리 차이나’)』 등으로 이어지는 베스트쎌러 평론서들도 이런 경향을 대변한다. 오위따오(센까꾸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 미 항공모함의 서해 진입과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반일・반미・반한 여론을 보면 이들의 목소리가 적어도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적지 않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민족주의적 여론의 영향력 강화와 함께 2010년 중국 외교에서 군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전면으로 부상한 것도 특징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한미가 서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하고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서해에 진입시키려 한 데 대해 중국군 고위 장성들이 앞장서 공식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례적으로 군이 외교의 전면에 나선 사례였다.

아울러 지난 111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중에 쓰촨성(四川省) 청뚜(成都)에서 중국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젠-20의 시험비행이 처음으로 실시됐고, 이는 중국의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공개됐다. 시험비행 몇시간 뒤 뻬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 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난 게이츠 국방장관은 후 주석이 이 시험비행에 대해 아직 보고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게이츠 장관이 외교 의전(儀典)을 어기면서까지 민감한 면담 내용 일부를 공개한 셈이다. 미국식의 해석을 따르자면, 중국의 문민 지도부가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미중화해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이런 분위기를 불쾌하게 여기는 군부가 후 주석에게 보고하지 않고 시험비행을 강행했다는 것이며, 이는 중국내 강경파와 문민 지도부 사이에 외교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맥락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은 당이 군을 지배하는 체제에서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인 후 진타오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으며, 미국이 이런 갈등설을 유포함으로써 중국 군부에 대한 불만과 견제를 표하려 한 것으로 본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군사분야의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광양회 외교에 대한 군부 강경파의 불만이 높아지는 흐름은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민족주의 여론의 강력한 지원도 받고 있다. 2012년 후 진타오에서 시 진핑(習近平)으로의 권력승계를 앞두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 집단지도체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경쟁이 사실상 이미 시작됐고, 여론의 동향에 민감해진 지도부가 외교분야에서 강경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2010년 ‘힘의 외교’로 공들여 쌓아온 도광양회의 성과가 흔들렸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따이 삥꿔(戴秉國) 국무원 국무위원은 2010126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이례적으로 ‘평화적 발전노선을 견지하자’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따이 국무위원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패권을 주도할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신화”라며 “우리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 지역(동아시아) 내에서 여타 국가와 패권을 다투지 않으며, 공동패권이든 ‘먼로주의’든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전문가들은 비록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지도부 내에서 지난해 말 중국의 강경한 외교가 주변국가들에서 반감을 강화했고, 특히 미국이 이를 이용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고 중국 주변에서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등 역효과가 컸다는 논의가 벌어졌다고 말한다. 이후 중국은 후 진타오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하며 미중의 화해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중국 외교에서 민족주의와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중국 외교의 중심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 중국 외교정책의 중심그룹은 현실주의세력인데, 이들 내부도 공세적 현실주의, 방어적 현실주의, 강경 현실주의, 온건 현실주의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강경 현실주의는 종합국력 강화 특히 군사와 경제적 강화를 강조하고, 온건 현실주의는 외교와 문화적 역량을 강조한다.

중국의 부상과 역할에 대한 내부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스스로도 미래에 대해 단일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수많은 논쟁을 통해 중국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며, 이 점에서 중국의 부상에 어떻게 외부가 대응하느냐 또한 중요한 변수다.

지난 한해 중국의 ‘힘의 외교’가 미친 파장을 다시 살펴보면 중국 위협론을 강조하는 외부의 목소리가 중국 내에서 민족주의적 강경론에 힘을 실어주는 악순환을 목격할 수 있다. 중국 외교가 민족주의와 군사적 강경주의로 가게 될지, 아니면 기존의 현실주의 중심 노선을 유지할지는 중국 내부의 역학관계와 미국 및 주변국가들의 외교정책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결정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변국가들은 중국 위협론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미중관계 변화 속의 동북아와 한반도

 

20111월 오바마와 후 진타오의 정상회담은 2010년 최악의 갈등으로 치달았던 미중관계를 경쟁과 협력이 함께하는 이전의 궤도로 돌리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두 강대국 사이의 자욱한 전략적 불신이 정상회담 한번으로 사라질 수는 없다. 중국은 미국이 힘이 약화되면서 라이벌인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 나설 것이라 의심하고, 미국은 중국의 경제력 및 군사적 급성장과 민족주의가 어떻게 표출될지 걱정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미중관계 전문가 진 찬룽(金燦榮) 런민(人民)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미중관계가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정상회담 이후 2011년 상반기 미중관계는 비교적 안정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양국은 “공동의 이익 때문에 함께 살지만 매일매일 싸우는 부부처럼 힘든 관계가 될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그는 “과거 미중간의 문제는 3T로 불리는 대만(Taiwan), 티베트(Tibet), 무역(Trade)문제였지만,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중국의 군사 현대화를 둘러싼 갈등, 경제적 경쟁이 새로운 갈등 요소로 등장했다”고 경고한다.4

그 전략적 경쟁의 한가운데 한반도가 놓여 있다. 2010년 천안함사건과 ‘김정은 후계체제’의 등장,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를 거치면서 한반도 문제는 냉전구도의 부활을 넘어서 북한 붕괴, 열전(熱戰)의 가능성까지 포함한 미중간의 핵심이슈로 등장했다. 미국은 북한이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며 강력 대응할 태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핑계로 한국 및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의혹을 쌓아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가 가장 격렬한 전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후 진타오 주석의 미국 방문 첫날인 11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의 사적 만찬 테이블에서 후 주석을 향해 경고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즈』의 보도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후 주석에게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주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미군 재배치와 방어적 자세의 변화, 동북아에서의 군사훈련 강화 등 장기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5 이후 중국은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등 이전보다 미국과 한국의 주장을 좀더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은 동아시아를 둘러싼 양대 강국의 전략적 재조정이라는 더 큰 그림의 일부다. 중국이 경제성장에 맞게 전략적 영향력의 범위를 확장하려 하면서 지난 3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유지되어온 미국과 중국의 현상유지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중국의 해상 전략방어선은 대만 근처에서 머물렀으나, 무역로와 에너지 수송로 등 이익범위가 확대되면서 최근 중국은 해상 영향력의 범위를 서태평양과 남중국해 쪽으로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 항공모함의 서해훈련 참가를 둘러싼 신경전은 동아시아・서태평양 세력범위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구조를 보여준다.

중국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냉전시기의 산물인 ‘섬의 고리’(island chain)를 이용해 해상에서는 일본부터 인도까지, 육상에서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C자형 포위망’으로 중국을 가두려 한다고 주장한다. ‘섬의 고리’는 2차대전 이후 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주창한 전략으로 일본-오끼나와-대만-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로 이어지는 고리를 이용해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진영을 봉쇄하려는 계획이었다. 냉전 이후에는 이 전략이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제1고리부터 하와이군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3고리까지로 세분화돼 중국 억제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최근 미국은 중국 해군력을 제1고리 안에 가두려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전략적 영향권 확대 시도에 맞서, 미국은 2010년 한해 동안 매우 영리한 전술을 통해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에 떠맡기다시피 했던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단시일에 회복했다. 경제적으로 쇠퇴한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이용해 안보와 군사력으로 아시아 질서를 다시 주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게 된 상황에서 안보와 군사적 측면은 미국에 의존하는 전략적 분열상태에 빠져버렸다. 이런 분열상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의 10~2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지만,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추세를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각축전이 점점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구도는 이 지역국가들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연임을 위한 대선 재도전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중국에 할 말을 하는 대통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구상을 분명히하고 있다. 그는 특히 북한 문제를 주요한 쟁점으로 제기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아시아지역에서 한국 및 일본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더 많은 한미・미일 연합훈련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계속 이런 전략을 편다면, 중국은 미국의 포위전략에 대한 의혹을 더욱 키울 것이다. 특히 중국도 2012년이 권력교체기이므로 군부와 민족주의세력 등 내부의 강경한 목소리를 뿌리치기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국내정치적 요구 때문에 다시 갈등의 시기로 접어들 경우,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물론 일본과도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한국은 난국에 처하게 될 것이다.

최근 만난 중국 전문가들은 한미동맹 중심의 한국 외교정책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중국 외교부 산하 외교학원의 쑤 하오(蘇浩) 교수는 한국의 ‘한미동맹 절대화’와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특히 우려했다.6 그는 “중국은 한미일이 3국 군사동맹 체제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을 겨냥할 뜻이 없고 북한만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미국과 일본은 분명 중국을 겨냥하려는 의도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미일 동맹이 중국과 북한을 겨냥하는 상황인데, 이는 냉전구조의 부활이며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한국이 일본과 정말로 동맹관계를 맺는다면 한중간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기초는 무너지고 한중관계는 파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해야만 안보가 보장된다는 식으로 절대화한다면 전체 동북아에 이롭지 않은 상황이 된다”고 덧붙였다.

냉전구도의 한축을 무너뜨린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중국의 전략적 계산과 이에 대한 한미간 암묵적 동의의 주요 내용은, 중국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주둔을 역사에서 비롯한 현실로 이해하고, 대신 중국은 한국이 일본과 적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장기적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 흐름을 거슬러 일방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한미동맹 위주의 외교정책과 함께 대중외교 예산 확대와 인력 증원 등의 조처로 한중관계도 강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중국은 동북아 전체의 전략적 재조정이라는 틀 속에서 현재의 한미・한중관계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미봉책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백하다.

 

 

중국 위협론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2010년을 지나며 한국과 중국의 심리적 거리는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웠을 만큼 멀어졌다. 중국이 강경한 외교를 시도한 것이 분명 한 요인이지만, 한미동맹 중심의 프리즘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와 보수언론의 태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정부는 중국의 한반도정책을 북한 편들기로만 몰아갔고, ‘우리 편’인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다지기를 정당화했다. 언론에서는 ‘힘 세졌다고 맘대로 하려는 악당 중국’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여기에는 미국과 이해관계가 깊이 얽혀 있는 국내의 여러 세력들이 중국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고 한국의 대응과 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더불어 과거 노무현정부가 지정학적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대응해 ‘균형자론’을 내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시도도 미국과의 관계를 망친 정책으로 낙인 찍혀 폐기처분됐다.

한국 보수세력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삼성(李三星) 교수는 “미국발 중국 위협론이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며 “2000년대 들어 한중간 무역규모가 미국, 일본과의 무역을 추월하면서 정치군사 차원의 한미동맹 체제의 내면적 붕괴에 대한 우려가 은연중에 증가하고 (…) 한미FTA 체결에 광범한 기득권을 가진 한국의 기업가층과 정치권, 그리고 정부 권력이 미국과의 더 긴밀한 경제적・정치군사적 일체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 위협론’을 조장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고 지적한다.7

이교수는 아울러 “중국이 부강해지면 팽창주의가 되어 한반도의 미래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한국의 운명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19세기의 역사적 사실과 명백히 모순되는 것”이며 중국의 명・청 교대기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조선에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눈물을 강요했던 것은 중화질서라는 기존 권력체계에 대한 맹목적 헌신, 그리고 새로운 세력의 등장에 대한 과도한 무관심과 타자화의 결과였다고 강조한다.

현실을 보면 한국경제는 이미 중국과 한배를 타고 있다. 20101~11월 한중 교역액은 1648억달러로 한국 전체 교역액(7837억달러)21%에 달했다. 대미(10.2%), 대일(10.4%)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도 24.9%에 달한다. 하지만 경제적 일면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빙산의 일각이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굴기라는 역사적 흐름은 훨씬 큰 과제다. 한국 정부와 보수세력은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전략공조 강화, 반중감정으로 이를 돌파하려 하지만 이 속에서 한중관계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중요한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고 대응할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다. 2차대전 후 60년 넘게 냉전구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채 미국과의 관계를 축으로 정치・경제・사회를 구성해온 한국이 중국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현상에 적응하려면 수많은 분야에서 심리적이고 실제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이를 오랫동안 회피해왔다.

특히 이명박정부는 ‘중국-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스스로 끊음으로써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중국이 좌우하도록 하는 구도를 스스로 만들었다. 북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모든 관계 단절, 미국 일변도의 정책, 중국과의 거리두기 정책은 한반도의 미래를 강대국들에 맡겨버리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이명박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김정은 후계체제의 불안정성, 심각한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조금만 더 압박하면 북한이 붕괴하고 한국 중심의 흡수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대북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구상이다. 중국은 적어도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야 국내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통치와 완전한 강대국화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그사이에 북한의 붕괴나 한반도에서의 충돌로 중국의 경제발전이 타격받는 상황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외교가 필요한 ‘한반도 비핵화’는 꾸준히 추진하되,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면서 ‘정상국가’로 만든다는 정책을 200910월 원 자빠오(溫家寶) 총리의 방북과 2010년 김정일 위원장의 두차례 방중을 통해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과 담을 쌓고 중국과 거리를 둔다면, 동북아에서 냉전적 대립은 공고해지고 평화체제의 정착은 더 멀어질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동아시아 다자안보의 틀 또는 다자협력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정하되 그것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거나 지역질서가 힘으로 무리하게 재편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현실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헬싱키 선언(1975)처럼 동아시아에서 국가간 관계를 정상화하고 역내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틀을 만들자는 요구는 2000년대 초부터 제기되었으나 계속 미뤄져왔다. 6자회담을 이런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회담 자체가 계속 공전하면서 실종됐다. 물론 이런 동북아의 다자안보틀이 구축되려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동맹구조도 재조정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이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미중간의 전략적 불신과 긴장을 크게 낮추고 동아시아가 중국의 부상에 적응하면서도 중국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틀이 될 것이다.

왕 지쓰(王緝思) 뻬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남북한을 배제한 강대국 협의체 구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동북아 안보구상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북한 등 6자회담 멤버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먼저 관련국 당사자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이러한 협약을 실행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레짐을 만들어 협약의 실행을 담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8

박번순(朴繁洵)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도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통해 중국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중국과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오만함과 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하책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는 싫든 좋든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중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잊어버린 공동체의 꿈을 되살려 동아시아가 협력을 확대하고 중국을 전체 속의 하나, 즉 ‘n분의 1’로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9

현재 상황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 모두 전쟁이나 극단적 충돌로 인한 공멸을 원치 않는다. 중국의 부상이 세계에 가져올 결과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 세계의 주요 관련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사회가 중국의 부상을 잠시 뒤 사라질 일시적 현상이 아닌 역사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미래를 숙고하고 균형잡힌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한 변수다.

지난해 한국의 기득권층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비난과 불만이 커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중국과 무조건 대립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리라는 자각,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성찰도 깊어졌다. 그러나 아직 정부가 이를 현명하게 수용하고 정책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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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강(小康)이란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서 유래한 말로, 평화롭고 지극히 부유한 이상사회인 ‘대동(大同)’보다 한 단계 낮은 상태를 가리킨다. 떵 샤오핑은 1979년 중일정상회담에서 ‘샤오캉사회’를 중국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후 2002년 16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2020년 전면적 샤오캉사회 건설’을 표방하면서, “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민주화는 더욱 완전해지고 과학과 교육은 더욱 진보하고 문화는 더욱 번영하고 사회는 더욱 조화롭고 인민의 생활은 더욱 부유해지는 사회”로 설명한 바 있다.
  2. 한겨레 인터뷰 「미・중 힘의 이동 돌이킬 수 없어… 서구잣대 고집 말라」, 2011.1.6.
  3. David Shambaugh, “Coping with a conflicted China,” The Washington Quaterly, Winter 2011.
  4. 한겨레 인터뷰 「미중관계 다소 안정되겠지만 매일 싸우는 부부처럼 힘들 것」 2011.1.17.
  5. “U.S. Warning to China Sends Ripples to the Koreas,” New York Times, 2011.1.20.
  6. 한겨레 인터뷰 「한반도 평화가 양국협력 기초… 중・미, 공통부분 합의 이룰 것」, 2011.1.19.
  7.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한길사 2009, 219~20면.
  8. 문정인 『중국의 내일을 묻다』, 삼성경제연구소 2010, 133면.
  9. 박번순 「이웃의 깡패 또는 선한 사마리안」,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1년 1월호, 6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