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천안함의 진실은 갇히지 말아야 한다
●요즘 들어 그동안 무관심했던 ‘정치’며 ‘국방’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고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지난 연평도사건과 그후의 대처는 대북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인 것 같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실망스러웠던 것은 한국의 주류언론이다. 언론이라면 대북정책, 동북아 협력, 국가안보 같은 중대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난 연평도사건에서는 자극성 보도, 전쟁선동 기사는 기본이고, 심지어 공영방송조차 ‘9시 뉴스’에서 억지논리로 연평도사건과 천안함사건을 말도 안되게 연결시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호의 황준호 기자의 시평 「천안함, 시대의 화두가 되다」를 새삼 뜻깊게 읽었다. 모호한 주장이나 거짓선동 속에서도 이렇게 진실에 귀 기울이는 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논리와 전문성에 입각한 진실을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다. 글쓴이의 말대로 ‘진실은 갇혀 있지 않는다.’ 그리고 진실 속에서 올바른 정책과 방안이 만들어진다.
윤경선 ksysteph@gmail.com
진보개혁세력 연합을 위한 구체적 담론의 형성
●대화 ‘2012년을 어떻게 준비할까’를 흥미롭게 읽었다. 대화가 진행된 작년 10월 이후 ‘복지’가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의 열쇳말로 등극하고 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생활 속에서 국민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복지’를 내세우는 각 정당들의 진정성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국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초점을 둔 복지와 ‘어떻게 권력을 쥘 것인가’에 초점을 둔 복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012년을 준비하는 진보개혁세력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진보와 복지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재편’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진보개혁세력 연합을 향한 구체적 담론의 형성일 것이다. 지난호에 이 대화를 실은 창비의 의도도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정국의 흐름을 보건대 아직은 그 길이 막막하고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좁고 험한 길이지만 함께 깨끗이 쓸며 곱게 다듬어가야 할 것이다. 창비에서 연합을 위한 구체적 담론의 장을 꾸준히 이어가줬으면 한다.
김혜연 eastkyung@hanmail.net
한국문학, 낡음과 새로움의 이분법을 넘자
●지난호 특집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 중 김수이의 글을 눈여겨보았다. 위반과 전복의 피동형과 능동형, 구조의 반영과 생산, 이 두 층위를 어떻게 명민하게 구별하고 시적으로 형상화할 것인가에 새로운 시의 과제가 있다는 말에 간간이 동의했다. 필자는 ‘자체제작 소리’를 파열음, 신생음, 소음으로 나누어 2000년대 시의 중요한 출구전략을 정리한다. 또한 2010년대에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낡은 것(으로 간주한 것)들에도 가능성을 공평하게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해석하기에 이것은 수많은 ‘딴사람-되기’들을 제외하라는 게 아니다. 자체제작 소리를 내지 ‘않는’ 상자들 역시 새로워질 수 있다. 김수이는 그 예로 이기인 시인을 들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2010년대 시로 나아가기 위해 시인들은 더 많은, 더 복잡한, 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과 감각을 요구받아야 한다.
이영현 poetrism@naver.com
우리가 슬픔을 나누는 이유
●김애란의 장편연재를 감명깊게 읽는 중이다. 요즘엔 우리가 불행마저 사고파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방송프로그램이나 일간지 사회면에서 불우이웃의 모습을 중계하는 듯한 모습을 접하면 시청자나 독자가 이를 보고 상대적 위안을 얻으며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아닌지 느껴졌다. 소설의 주인공 아름이 또한 조로증이라는 고통을 세상에 전시해야 치료비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제작진의 ‘연출’을 묵묵히 감수한다. 사실 언론에서 자행하는 불행의 ‘부당거래’가 못마땅한 점이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까지 냉소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김애란의 소설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무뎌지지 않아야 함을 담담히 역설하고 있다.
민혜정 555hye@hanmail.net
젊은 소설에 바라는 바
●‘신예소설가 특집’으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소설가로서 첫발을 떼는 그들의 어색함과 진중함을 엿볼 수 있어 기뻤다. 작품들은 참신한 발상을 감각적인 유머와 간결한 설명으로 노련하게 착상시킨 점이 뛰어났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읽고 난 뒤의 담백함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소재의 비현실성이나 환상적인 묘사를 떠나,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와닿지 않았다. 메씨지의 부재라기보다는 그 메씨지에 대한 과감한 통찰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소설적 재미를 이끄는 데 매력적인 작품이었던만큼, 흐릿한 안개를 걷고 작품과 세계의 경계를 좀더 뚜렷이 밝히는 입장으로 그려주었으면 한다.
이유경 paintedmoon@naver.com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를 읽고
●봉산탈춤의 말뚝이는 양반을 우스꽝스러운 춤으로 조롱합니다. 하지만 탈을 벗은 말뚝이도 결국 양반 밑에서 끼니를 걱정하고, 처자식 생각에 한숨만 뿜었겠지요. 신인소설상 수상작인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를 읽으며 주인공 최씨의 모략이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했듯이, 최씨도 영웅적으로 긴 본명대로 돌격해보길 바랐던 것입니다. 주인공이 분노하는 현실은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우리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 밖 말뚝이처럼 주인공은 탈을 벗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따금 프로페셔널한 테러리스트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바닷바람을 맞는 주인공처럼 다음을 기약하며 주먹만 불끈 쥐곤 하죠. 가짜 총이면 어떻고, 직진만 할 줄 아는 운전 실력이면 뭐 어떻습니까. 테러 계획이 완벽한 성공으로 끝났다면 과연 이만큼 공감할 수 있었을까요? 이 소설은 특유의 위트와 속도감있는 전개로 제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이혜령 hrlee05@gmail.com
시에서 만나는 잔인하고 두려운 현실
●한겨울 폭설만큼이나 무섭게 밀려오는 구제역 때문에 방역작업을 하던 공무원이 과로사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구제역,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 이 땅에 사는 동물과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병증의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있다. 고성만 시인의 「구제역」은 그 위협을 실감나게 보여준 시였다. 소와 돼지가 인간을 생매장하는 시 속 세계, 그리고 인간이 동물들을 산 채로 파묻는 현실 중 어느 쪽이 더 무섭고 잔인한지 판단할 수 있을까? 지난호는 현실이 잔인한 탓인지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한 시들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을 창비아동문학과 함께 보내고, 중고생 시절엔 멍한 머리를 저릿저릿 깨우는 작품들을 읽어왔는데, 언제부터인지 문학을 통해 보는 세상도 너무 차갑고 어둡다. 사랑과 감사, 용서와 화해, 존중과 존경의 정서가 담긴 시를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것은 독자의 무리한 요구일까.
이주현 likesweet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