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독자의 목소리

 

동아시아론과 사회인문학에 거는 기대

 

봄호 특집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는 창비 동아시아론의 주요 논자인 백낙청과 백영서의 글과 더불어 중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담고 있어서 현재 동아시아 담론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창비의 담론이 동아시아 민중연대를 추구하는 본연의 의도를 잘 꾸려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실 개입과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는 무엇보다 국가-시민사회의 대립을 강조하기보다는, 국가간 관계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면서 오히려 국가를 ‘문명화’시키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냉전구도가 엄존하고 자본주의체제의 규정력이 작동하는 우리네 생활세계를 변화시키는 시도는, 일례로 국경을 ‘민주화’하려는 노력과 보편적인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각국의 운동에서 발견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은 자연스레 각국의 다양한 (이주)노동자와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경험을 나누는 동시에 동아시아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재생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창비가 제안하는 ‘사회인문학’ 기획이 동아시아 민중이 공유하는 경험을 발굴하고 축적하는 그 막중한 소임을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웅기 pophil13histo@gmail.com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살려 보편성으로 나아가려면

 

지난호 대화 ‘세계문학, 동아시아문학, 한국문학’은 세계문학 전체에서 동아시아문학이라는 지형도, 이어 동아시아(물론 한중일 삼국만을 다루긴 했으나)에서 한국문학의 특수성 혹은 보편성에 대해 생각하게끔 도와주었다. 쟁점이 흐트러지지 않고 심도깊게 진행된 것으로 보아 족히 4~5시간은 걸린 듯한 대담으로, 참석한 네분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근자에 외국에서 김영하의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이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베스트쎌러 순위권에 진입한 것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하루끼나 꼬엘류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들의 위치와 평가에 대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세계는 동시간대에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한국문학도 국지적인 문화의 특수성을 담보로 창작되는 데 한계가 있다. 동시에 무국적인 서사와 묘사로만 일관해서는 작품의 근간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창훈 marcusk@naver.com

 

에너지정책에 대한 다각적인 문제제기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접한 이후 다시 「저탄소 정책의 좌절과 에너지계획의 전망」을 주의깊게 읽었다. 필자 이필렬 교수가 지적하듯이 정부는 원자력을 한국 에너지원의 미래로 꾸준히 선전해왔으며, 자연스레 많은 국민들도 원자력이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적이고 효율 높은 에너지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웃 일본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이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자 원자력에 덧씌워진 ‘무한에너지’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필자의 말처럼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정책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할 수 없다. 더구나 한번 만들어진 핵폐기물은 결국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원전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할뿐더러 이제까지 허울에 불과했던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정책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과 각성이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개념이나 현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창비에서 환경문제와 에너지정책에 대해 다각도의 분석과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일러준 교훈을 직시해야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행호 sadalee@hanmail.net

 

인문학 위기 극복은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으로부터

 

혹자는 위기를 ‘위험한 기회’라고 부른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내게 드는 생각도 이와 같다. 인문학을 부활시킬 수 있는 위험한 기회가 온 것이라고 말이다. 사회인문학 연속기획의 첫회 「전통적 인문 개념과 문심혜두」는 위기에 놓인 인문학을 살리는 길로 다산 정약용의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산의 ‘문심혜두’는 문심(인문)을 통해 슬기구멍(학문적 호기심)을 활짝 열어주는 공부법의 핵심이다. 경학(이론)을 가지고 경세학(사회적 실천)을 자극하는 공부법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이 주장한 총체적 공부법은 문학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인문학으로,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명을 인간적인 문명으로 변화시키는 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문학의 위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인문학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짚어볼 점은 인문학의 위기가 단순히 그것의 위상이 하락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식물이 되어버린 인문학에 새 숨결을 불어넣자라는 실천적 의미로서의 위기 극복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올해 창비에서 시도하는 ‘사회인문학’ 운동의 일환인 창비사회인문학평론상에 관심이 가는 이유도 역동적인 인문학의 새로운 탄생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수희 jiwonlove99@hanmail.net

 

작가 박민규의 앞날을 응원한다

 

지난호에서는 ‘작가조명’이라는 새 꼭지가 눈에 띄었다. 생생하게 전달된 박민규의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박민규의 소설이 힘을 갖는 이유는 그저 독특하게 씌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변화무쌍하기도 하거니와 저마다 깊은 사유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자연스레 작가의 내면을 궁금해하게 되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그 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특히 세계문학에 대한 박민규의 발언은 통쾌했다. 우리 문학이 널리 읽히는 것은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진정성있는 글이란 작가가 뿌리내린 현실에서 씌어지는 것이다. 세계문학이 어떤 것이든 개인의 작업을 한다는 것,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작품 스스로 세계적 역량을 갖추는 길이 아닐까. 박민규가 꾸준히 쓰고 싶은 글만 쓰기를, 그리하여 함께 각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길 응원한다. 아울러 몇가지 제안을 하자면, 인터뷰가 다소 짧게 실려 아쉬웠다. 이왕 평론가와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면 더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으면 좋겠고, 그 현장을 생생히 엿듣고 싶다는 것이 독자의 바람이다. 작가 인터뷰에 뒤이은 ‘작품론’에서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골고루 논하기보다는 제한된 작품 안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윤정원 superpink@naver.com

 

경쾌함 속에 깊은 사색과 시적 표현이

 

김애란 장편연재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소통하며 사는 인생 중에 닫혀진(한정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주인공 아름이의 조로증을 통해 그리고 죽음을 앞둔 한 아이를 통해 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들과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생명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풍조 속에서,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며 삶을 정리하는 주인공을 볼 때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애란의 소설을 처음 대하는 나는 작가의 시적 표현들에 빠졌다. 특히 짧은 문장들의 강한 임팩트가 글의 집중도를 높였다. ‘내가 아버지를 낳아드릴게요, 어머니를 배어드릴게요’라는 문장은 그녀의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할 것 같다. 책방 한 모퉁이에서 그녀의 또다른 작품 앞에 서 있을 나를 상상해본다.

김혜지 hyeji0823@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