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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평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영진 만화 『평양프로젝트』, 창비 2006

 

 

박인규 朴仁奎

인터넷신문『프레시안』대표 inkyu@pressian.com

 

 

135-331

지난해 4월부터 약 6개월간 『프레시안』(www.pressian.com)은 ‘2006년 북한은 어디로’라는 북한관련 씨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 6·15정상회담 이후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우리 눈으로 들여다본다는 취지 아래 30명 가까운 전문가들이 북한의 경제와 정치·외교·군사, 그리고 사회·문화 등의 변화상을 추적하는 기획물이었다. 당시 연재를 시작하면서 기획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 한해 동안 남북을 오간 인원은 7986명이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05년의 남북왕래 인원은 8만 8341명으로 11배 이상 늘어났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방 이후 2004년까지 60년간의 남북왕래 인원 8만 5400명보다 많은 인원이 2005년 한해 동안 남북을 오갔다는 점이다. (…) 한마디로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교류와 협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양에서, 개성에서, 그리고 금강산에서 북한주민을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며 함께 생활해본 남한주민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이 처한 실상과 고민은 무엇이고,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바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른바 ‘6·15시대’의 도래 이후 북한방문 횟수가 수십번이나 되는 활동가들이 속출하는 이때 그들의 관찰과 경험을 남한의 일반시민들과 공유하고, 나아가 남북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각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획을 맡았던 나는 연재를 진행하면서 뭔가 미진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 미진함의 정체를 만화가 오영진(吳榮鎭)의 『평양프로젝트-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을 보면서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남과 북의 작가 한명이 각기 상대방 지역을 일년간 방문해 서로가 사는 모습을 취재·보도한다는 이 유쾌한 가상 프로젝트를 통해 저자는 요즘 북한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라는 시각매체가 갖는 친근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또 한전(韓電) 직원으로 신포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일년 반가량 북한주민들과 직접 대면해본 작가의 경험도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북한사람들의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통일’이나 ‘평화’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고(백낙청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깨에서 힘을 빼고’) 보통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울 강남에 부유층만이 사는 타워팰리스가 있다면 평양에는 신흥 부유층의 주거지인 ‘딸라 아빠트’가 있고(65~66면), 남측 학교의 싸움대장 ‘짱’을 북한에서는 ‘코’라 하며, 남측의 ‘왕따’ 같은 ‘몰아주기’가 북한에도 있다는 부분(33~37면)을 읽다 보면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장경제의 확대가 북측 주민들의 생활에 가져온 변화상도 흥미롭다. 북에서 일등 신랑감의 순위가 군·당·대·기·실(군인, 당경력자, 대졸자,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소유자, 실력)에서 현·장·대·기·실(현금, 장사능력…)로 바뀌었다든가(20~21면), 소속 기업에 일정액을 납부하고 장마당 매대 장사꾼으로 나선 8·3로동자가 늘고 있으며(94~96면), 머리 염색물감이나 가루비누, 증기식 나무난로 등 과학자나 기술자가 개인적으로 개발한 아이디어상품이 장마당의 인기품목이 되고 있다(107~108면)는 대목을 보면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자리잡아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 고교 졸업반 학생이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엘 갈 것인지(‘직통생’이라 불리며 전체 졸업생의 10%를 차지한다), 아니면 군대나 직장을 거친 후 대학 진학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대목(47~48면)이나, 군복무 10년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가 평양이 아닌 함경도 오지의 발전소에 배치된 것에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152면)에는 북한 젊은이들이 지닌 고민의 일면이 드러나 있다.

한편 남한에 파견된 북측 작가 배중호가 “고거이 지금 남조선 인민들이 총력투쟁하고 있는 것들입네다” 하며 ‘10억 만들기’‘부자아빠 되기’ 등의 책을 내놓는 대목이나(128면) 남한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북측 인사들의 대화에서는 남한사회에 대한 북의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200면이 안되는 만화 한권으로 북한주민 생활의 전모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북한을 방문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북한당국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하기 때문에 평양 이외 지방 주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기란 매우 어렵다. 이 책에서도 평양의 초·중등학생들에게는 좋은 상급학교 진학이 최대 고민인 데 반해 지방 학생들에게는 부모를 도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관심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평양프로젝트’란 제목 그대로 북한주민 전체의 삶보다는 평양주민들의 삶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지난 2003년 신포에서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보통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길찾기 2004)란 논픽션 만화를 내놓은 바 있다. 나는 얼마전 작가와 방송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남한에서 북한을 다룬 만화는 모두 반공만화였으며 이념의 색안경을 끼지 않고 북한을 다룬 것은 아마도 자신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양시내 모습을 만화에 그대로 옮기는 것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아직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쪼록 이런 규제들이 모두 사라져 남북이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