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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IMF세대 워킹 맘 분투기
직장과 가정을 누비는 김여사들
황혜숙 黃惠琡
편집자, 창비 인문사회팀장 coldfrog@hanmail.net
운전을 하다보면 같은 여성운전자가 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무법질주를 하며 거리를 누비는 엉뚱한 김여사들이 있다. 그녀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집에 가서 솥뚜껑운전이나 하라는 남성운전자도 있고 간혹은 같은 여성들이 그러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여사들이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아마 그럴 수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거리의 김여사들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직장과 가정을 누비는 김여사들도 있다. 이른바 ‘워킹 맘’이라는 엄마부대다. 특히 미취학자녀를 두었다면 출산부터, 아니 어쩌면 임신기간부터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고학력사회가 된데다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형편이니 타의든 자의든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김여사들이다. 남녀평등과 고용평등 시대를 맞아 희망찬 문구들로 포장된 제도와 갖가지 시설 덕분에 그들은 홀몸으로 혹은 여자의 몸으로도 버텨내기 힘든 생존경쟁의 전장(戰場)인 직장과, 시대가 바뀌어 남성의 가사참여가 늘었다고는 하나 절대적으로 엄마의 몫일 수밖에 없는 육아를 병행하니 더이상 강조할 필요 없을 만큼 고단한 하루하루를 외줄타기하듯 보내야 한다(아이가 크는 것만 봐도 모든 시름을 잊는다든지, 집에 가서 아이만 봐도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든지 하는 감상은 도무지 공감할 수 없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얼마전 비영리 아동보호단체 쎄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각 국가별 ‘엄마’의 생활여건을 나타낸 ‘엄마지수’(Mothers Index)를 산출해 분석한 결과 한국은 164개국 중 바베이도스와 공동 48위를 기록했단다. 이 통계에서 말하는 생활여건이란 주로 출산과 육아 시의 순수한 모자보건에 관한 것이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의 경우가 그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그 흔한 말을 워킹 맘의 경우에 대입해보면 ‘직장생활이 행복해야 육아도 행복하다’는 간단하지만 고단한 명제가 성립할 테고,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한때 나도 이른바 ‘슈퍼 맘’이 되려고 헛된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가방끈이 길어서가 아니라 단위시간당 노동생산성이나 부가가치 창출의 양으로 고급인력이냐 아니냐가 정해지듯이, 그저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한다고 슈퍼 맘이 되지는 않는다. 고급한 베이비씨터와 가사도우미를 모시고(!) 출산 전과 다름없는 조건을 갖춘 채 자유로운 직장생활과 우아한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슈퍼 맘일 터이다. 이도저도 아닌데 굳이 아등바등하면서 슈퍼 맘을 꿈꿀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어떻게 엄마가 육아를 포기할 수 있으며 직장인이 직장생활을 대충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늘 무언가에 쫓기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정확히 IMF 구제금융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세대다. IMF세대는 바로 직전 세대들에 비해서도 사회진출부터 녹록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결혼과 출산이 늦어졌다. 그리고 대개 아직도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거나 자신의 전세대처럼 또 손자 육아에 희생되기를 꺼리는 부모님을 두었다. 그러니 육아노동이든 육아고민이든 고스란히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세대다. 바로 10년 앞선 여자선배들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해봐도 이해받기 힘들다. 그녀들과는 직장생활의 출발선부터 달랐던 탓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다음세대에서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는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합쳐 6개월씩 그것도 두번이나 다녀와도 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아래위로 안팎으로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가정보육교사가 집으로 와서 두 애들을 살뜰히 봐주시고(예산심의 기간과 선거철만 되면 마음을 졸여야 하는데다 웬만한 보육시설보다 훨씬 고가의 보육비를 지출한다), 비교적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해주는 자상한 남편이 있고(TV를 보면서 건성으로 놀아줄지언정 잠시나마 아이들을 맡아준다), 퇴직 후에는 아이를 봐주실 의사가 있는 시부모님이 계시니(상황이 불확실할뿐더러 나의 욕심이다) 이 정도면 아주 만족할 만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모든 상황을 남 탓으로만 돌리려는 듯한 인상을 주려나. 사실 모두 내 탓인데 말이다. 왜 애를 낳아서 이 고생일까, 모두 내 죄다. 그래서 나는 벌써부터 두 딸에게 속으로 주문을 걸곤 한다. “얘들아 결혼을 아주 일찍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결혼을 하더라도 애는 절대 낳지 마라. 그러나 혹시 낳게 되더라도 엄마는 모르는 일이다.”
거리를 누비는 김여사들의 작은 실수로 교통체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주차장에서 크고작은 접촉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운전을 하다보면 누구라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직장과 가정을 누비는 김여사들 때문에도 간혹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거리의 김여사들에게처럼 똑같이 말한다면 곤란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각을 해도 “애엄마라서 그래”, 누구나 가는 병원을 가도 “애엄마라서 그래”, 누구나 하기 싫은 야근특근을 피하려고 해도 “애엄마라서 그래, 그럼 그렇지”, 그런 색안경을 쓰고 보지는 말아달라는 말이다.
나를 포함해 직장과 가정을 누비는 김여사들 스스로도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자책보다는 엄마로서의 존재감을 뛰어넘는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자존감을 부디 지켜주기를 바란다. 유치원 다닐 나이만 되어도 “왜 엄마는 돈 안 벌고 집에서 놀아?”라는 깜찍한 발언을 쏟아낸다는 요즘 아이들이다. 빛의 속도로 지나갈, 엄마를 필요로 하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또 그 희생만큼의 보상을 마음으로나마 요구한다면 우리 엄마 세대의 한많은 넋두리를 반복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정말 바람은, 나도 정말 집에서 애 봐주는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