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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이게 사는 건가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질문
엄기호 嚴奇鎬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저서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닥쳐라, 세계화!』 등이 있음.
uhmkiho@gmail.com
청춘이 화제다. 불황이라는 출판시장에서도 청춘과 관련된 책은 잘 팔리는 아이템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 이후 계속 전 분야에 걸쳐 1위를 놓치지 않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레알 청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처럼 20대의 현실을 그들 자신이 솔직하게 고발하는 책에서부터 『스무살, 절대 지지 않기를』 같은 변형된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청춘을 화두로 삼은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청춘은 취직이 되지 않아 자본주의 시장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반대로 청춘에 대한 화두는 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가장 매혹적인 아이템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청춘은 왜 화두가 되었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이들이 처한 총체적 난국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specification)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한 세상이다. 구인시장만 봐도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한다. 신입을 데려다 가르치고 숙련시키는 비용을 지불하기 싫은 것이다. 자연히 노동시장의 초기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다들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스펙 경쟁이다. 학점과 영어는 기본, 제2외국어니 자격증이니 인턴 경력이니 하며 자기소개서를 한줄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제 청춘은 지쳤다.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더라도 결국 사회에서 필요없는 존재, ‘잉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시시각각 침투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한다. ‘아니야. 너희는 괜찮아. 지금 지쳤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 너희는 청춘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힘내.’ 세상에 이보다 더 달짝지근한 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청춘을 위로하는 책이 범람할 수밖에 없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청춘이 패기있게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개인적인 차원의 위로만 구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 등록금 촛불문화제가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대학생들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불씨는 기대와는 달리 들불로 번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권의 동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잦아들어버렸다. ‘486’들이 보기에 이런 일이 1980년대에 벌어졌더라면 전국의 대학생들이 대동단결하여 나라를 한번 뒤집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청춘은 자기 문제인데도 걱정만 하거나 남이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스스로 힘을 모아서 해결하려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불만이 높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현재 한국의 청춘,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의 문화적 특징을 해석하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전과 비교해 대학생들의 사회적・경제적 위치가 얼마나 추락했고, 이런 조건의 변화가 사회와 타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해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적 특징을 ‘세대론’으로 해석하는 문화비평적 작업이 아니다. 세대론이란 당대의 특징을 한 세대의 특징으로 전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대를 통해 당대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대는 당대를 드러내는 창(窓)인 것이지, 당대에 대한 동시대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알리바이일 수는 없다. 이 글은 문화이론에 입각하여 현재 대학생들의 문화적 특징으로부터 역으로 우리 시대의 당대성(contemporaneity)을 드러내고 동시대인을 형성하는 정치적 작업이 될 것이다.
갑자기 가난해지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가난을 대학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의외로 많이 접한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예전에는 결식하는 몇몇 친구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던 빈곤이 자기 문제로 확 다가왔다고 증언한다. 은폐되어 있던 빈곤이 삶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 중심에 등록금이 있다. 대학생활에서 부각되는 가난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등록금 투쟁에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가 몰렸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다음 두 학생의 사례를 들어보자.
세현(가명)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꿈같은 새내기 첫 학기를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가자마자 아버지는 그에게 장학금을 받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오랜만에 본 자식에게 성적 이야기부터 하는 게 야속해서 발칵 화를 냈더니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는 장남이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무리를 해서 서울로 보낸 거라고, 집안형편상 네 동생들은 서울로 보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니 어떻게 해서든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고. 순간 세현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동생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동생들은 희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듣던 순간 세현에게 대학의 낭만이란 끝났다. 다음 학기 서울로 올라와서는 대학생활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공부였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부모님에 대한 죄악이고, 동생들에 대한 범죄행위였다.
현정(가명)의 집은 1997년 IMF사태 때 크게 망했다. 얼마전에야 그때 진 빚을 겨우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모님은 육체노동을 하며 살림을 꾸린다. 학비며 생활비며 당연히 그녀가 다 책임질 수밖에 없다. 남들은 스펙 쌓는 데 우선 신경을 쓴다지만 현정에게 최우선은 부모에게 되도록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안팎에서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그래도 불행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이 빨려들어가 뼈가 으스러졌다. 학업이고 알바고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이면 아버지 출근과 동생들 등교 뒤치다꺼리를 하고 집안일을 마치고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 병간호를 했다. 가난하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울 줄은 몰랐다고 한다. 현정이 집에 머무는 동안 가장 걱정한 것은 쌀값이었다. 식구들이 다 집에 있다보니 쌀독이 비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쌀값 걱정이라니.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 저 먼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일로만 생각될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6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대를 다니는 한 학생은 매달 20일이 되면 돈이 다 떨어지기 때문에 자취방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라면을 하나 사서 반으로 쪼개 점심에 하나 먹고 저녁에 하나 먹으면서 겨우 버틴다. 이 학생의 집도 IMF사태 때 가세가 기울었다. 당시의 경제위기는 15년이 넘도록 길고도 길게 우리의 삶에 드리워져 있다. 이들뿐만 아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 부담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가난과 굶주림과 노동착취, 그리고 장남 하나를 위해 나머지 가족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저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사연이 무한반복된다.
다른 한편, 대학은 상대적 빈곤을 절감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학생식당이 값싼 식당의 대명사이던 시절은 갔다. 여전히 다수의 학생이 이용하는 곳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지만, 동시에 고급 레스또랑이 대학 안까지 들어와 있다. 한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이런 곳을 학생들은 ‘부르주아 식당’이라고 부른다. 그전까지 학생편의시설을 운영하던 생활협동조합은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되고 그 자리를 스타벅스 같은 대자본이 잠식했다. 몇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학자금을 다 갚은 한 친구는 학창시절 자기가 가장 부러웠고 해보고 싶었던 것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비싸기에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은 부모 잘 만나 여유롭게 생활하는 대학생과 자기 힘으로 대학을 다녀야 하는 고학생 사이를 갈라놓는 상징이었다. 그녀는 학자금 대출을 다 갚던 날, 이렇게 갚을 줄 알았다면 그때 한번 해볼걸 하며 후회했다고 한다. 졸업 후 취직이 될지 안될지 모르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던’ 때였다.
‘공부’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가난하면 공부를 할 수 없고, 공부를 할수록 가난해지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년 전 한 방송프로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법조인을 지망하는 ‘강남 부잣집’ 학생이 자신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다 챙겨주고 지금도 큰 걱정 없이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친구를 볼 때면 안쓰럽다고 인터뷰했다. 반면 한 고학생은 자기 손으로 학비를 마련해 대학에 다니는 처지에 로스쿨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부모 잘 만나 등록금 부담 없이 다니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도저히 경쟁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들 간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학생과 그 시간에 일해야 하는 학생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바로 요즘 대학들 간의 경쟁이다. 대학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기업 측에서 대학이 제대로 훈련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자, 대학은 학생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학서열에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모두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각 대학들은 자기 학교를 나온 학생이야말로 준비된 일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예컨대 졸업인증제를 만들어 토익이나 토플 같은 영어시험에서 몇점 이상 받거나 IT분야의 자격증을 따야 졸업 자격을 부여한다. 또한 이중전공, 복수전공, 부전공 같은 제도를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처럼 권장한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의 양이 엄청나다. 하루 종일 알바를 해서 등록금을 겨우 모으는 학생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대학도 불안하고 대학생도 불안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붙잡아야 한다. 쓸모있는 인간, 쓸모있는 기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업과 시장을 향해 추파를 던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옥상옥(屋上屋)이 되어간다. ‘우리 학생들은 열정과 패기, 도전정신과 리더십에 경험까지 갖추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고전적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온갖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기업 측에서 졸업생들의 학점 인플레가 심하다고 불평하자 많은 대학이 바로 상대평가를 도입했다.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인재를 골라내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점 2.5 밑으로 성적을 받으면 다음 학기에 신청할 수 있는 학점을 제한하는 수강학점제한이라는 제도도 생겼다. 여기서 죽어나가는 것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 B학점 이상이 나올 때까지 수강을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계절학기는 필수처럼 되었다. 학점을 ‘세탁’하기 위해 일부러 졸업을 늦추는 경우도 흔해졌다. 몇몇 학교에서는 학점을 지워주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면 졸업하기 전에 두 과목에 한해 F학점을 받은 기록을 성적표 자체에서 삭제해준다. 수강신청을 잘못하여 억지로 이수한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지난 학기에는 줄곧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취업하는 바람에 강의 후반부를 듣지 못해 C학점을 받게 되자 필자에게 전화해서 차라리 F학점을 달라고 부탁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을 좋아했던 학생이지만 자기 성적표에 찍힌 C학점이 앞으로의 진로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자기 공부의 역사를 지워달라고 자청한 셈이다.
이런 식의 학점관리는 이들이 대학에 들어와 기대했던 공부와 거리가 멀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다수의 강의가 고등학교 수업보다 못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교양과목은 요식행위로 변한 지 오래되어 적게는 50명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명을 한 강의실에 몰아넣는다. 강사나 교수로부터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이런 강의는 교수나 강사 역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상당수 강의들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에 그치며, 그마저도 한 학기가 지나가고 나면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진다. 대학에 와서 교수와 열심히 토론하고 논쟁하는 낭만적인 환상은 한 학기만 지나면 싹 사라진다. 그래서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뭔가를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뭘 했는지 도통 모르겠고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공부를 경험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스펙이라는 ‘스펙터클’만 남고 경험으로서의 공부는 죽었다고 하겠다.
부모보다 잘나기 힘든 세대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갖췄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주눅든 세대라는 점이다. 개인으로 보면 이들만큼 훌륭한 능력과 자격의 소유자도 드물 것이다. 영어실력은 기본이고, 해외여행과 인턴 경험, 문화적 창의성 등 온갖 부분에서 이들은 단연 뛰어나다. 그런데도 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묘하게 자신에 대해 주눅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취업 불안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핵심에는 이들이 부모보다 잘나거나 특출난 존재가 되기 힘든 세대, 역사적 인정투쟁의 위기를 겪는 세대라는 점이 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대다수 학생들은 자신이 부모보다 나은 학벌이나 직업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다. 특히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부모와 자식의 학벌이 비슷하거나 혹은 자식이 부모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의대에서 강의하면서 이런 측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부모처럼 사는 것’이라는 대답이 꽤 있었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의사고 병원을 소유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자기는 그것을 물려받으면 된다고 했다. 의료시장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자력으로 시장에 진입해 개업해서는 실패할 확률이 꽤 높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가 의사가 아닌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대학병원에 남아야 하는데, 그 경우에도 부모가 의대 교수인 쪽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결국 이들 상위권 대학생도 아무리 잘나봤자 그 최대치가 부모인 셈이다.
이들에게 부모는 평생 후견인임을 자임한다. 아무리 잘되어봤자 부모보다 뛰어날 수는 없기에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친구관계에서부터 대학과 취업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부모의 기획과 관리 아래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강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식의 현재와 미래에 개입하는 부모의 방식은 대단히 헤게모니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부모가 자기보다 더 합리적이고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교제하는 상대가 ‘학교도 별로고 집안도 별로’라서 헤어지라는 엄마의 요구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정도다. 어느 국제회의를 조직하며 강남 출신의 상위권 대학생들과 일해본 한 학생은 그들이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일도 잘하고 똑똑하다’면서 그런데 결정적으로 뭔가 하나 빠져 있더라고 말했다. 그 뭔가가 자신도 늘 궁금했는데 어느날 문득 이들이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결정은 늘 누군가 대신 내려주고 이들은 그것을 착실히 수행만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스스로 삶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성장이 정지된 20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다.
약간 도식적이긴 하지만 가난하거나 하위권으로 갈수록 생존이 화두가 되고, 부모보다 잘나기 힘든 중산층 이상에서는 존재가치가 의문시되면서 이들은 역사적인 인정투쟁에서 실패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어버이연합’ 같은 극우파 노인들은 대단한 자부심으로 당대의 이슈에 개입한다. 이들은 자신이 대한민국을 세웠고 한국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국가를 수호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들 노인집단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를 번듯한 경제대국으로 키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다음 세대는 비서구국가 중에서 몇 되지 않는 시민사회와 민주적 정치질서를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압축적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역사의 단계마다 요구되던 도약과 발전을 감당하고 이룩했다는 자긍심과 역사적 인정투쟁이 우리 사회 세대론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들 눈에는 20대가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부모보다 잘나기 정말 힘든 세대인 것이다.
소유의 문 앞에서 멈추다
20대가 한 세대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문화산업 분야다. 스포츠에서부터 IT 혹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도약을 이루었다. 이들이 올림픽에서 받는 금메달은 과거에는 선진국이나 잘한다고 생각했던 수영 또는 피겨스케이팅 같은 고급 스포츠 종목에서 나온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술집이나 식당뿐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한국가요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문화산업의 질적 도약이야말로 이들이 역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그래서 한국의 10대들 절반 이상이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고 있으며, 대학생들도 창의적이고 자아를 실현하는 진로로 영화감독이나 방송작가 같은 직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상은 이 문화산업이야말로 열정을 착취하는 가장 가혹한 임금과 노동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주 소수의 ‘스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밑바닥에서 삼시 세끼 라면을 먹으며 결혼은 엄두도 못내고 열정을 착취당해야 한다. ‘도토리’(싸이버머니)가 아니라 고기를 먹고 싶다고 노래한 요절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나, 보도과정에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빈곤에 시달리다 숨진 고(故) 최고은 작가의 예는 사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문화산업 바닥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들 모두가 ‘뜨기만 하면’을 되뇌며 버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뿐 아니라 아이디어나 작업의 결과물 전체를 착취당하는 경우도 많다. 교수가 대학원생의 연구성과를 가로챈다거나 작가가 문하생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이제 열정과 자아실현이란 자본이 20대에게 깔아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 되었다. 이들의 노동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임금노동이라기보다 인신 전체가 팔려나간 노예노동에 가깝다.
또한 문화산업의 문제는 그 특성상 몇몇 스타들만 부각되지 집단적인 노력으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를 세우고,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달성했던 이전 세대들의 성과는 그 자체로 ‘집단적’ 노력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김연아나 박태환, 혹은 뽀로로(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몇몇 개인의 천재성과 노력의 결과지, 결코 세대 전체의 집단적 참여와 협력의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즉 나라를 먹여살리는 몇몇 천재와, 소비나 일삼는 생각없는 ‘된장녀’나 ‘잉여’로 양극화되는 것이다. 문화산업이 20대 사이에서 각광받을수록 다수는 역사적 인정투쟁에서 탈락해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형국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프라이버시란 문화산업시대에 와서 종말을 고했다. 근대적 의미에서 시민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개인적 공간으로서의 방과, 자신을 공적인 존재로 드러내는 참여의 공간으로서의 광장으로 이중화되어 있다. 근대적 인간의 핵심 가치인 진정성은 바로 이 성찰과 참여의 변증법적 결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자동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20대가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에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성찰과 물러남의 공간인 사생활마저 붕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대신 자신의 사생활을 상품가치가 있는 구경거리로 재현해서 끊임없이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광장에 나와 집단적 참여를 통해 자신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역사적 의식보다는 사적 소유로서의 사생활에 대한 감각이 더 발달할 수밖에 없다.
‘내 것’에 대한 소유의식이 ‘공통의 것’에 대한 감각을 훨씬 앞지른다. 공통의 것을 만들고 거기에 참여하기보다 내 것을 지키는 편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 나의 것을 착취하거나 도용할지 모르며 그럴 경우 피곤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쉽다. 그래서 이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대학에서 많은 강사와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읽히는 것이 없다고 호소한다. 강의실에서도 아무 반응이 없이 문자 그대로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강의를 잘 듣고 있다. 다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참여와 소통을 거부하는 행위다.
왜 이들은 소통을 거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실패에 대한 강박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사소통이 실패로 귀결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서 타인에게 말하고 표정을 드러낸다. 사실 의사소통은 즉각적인 이해가 아니라 오해와 갈등의 연속이기에 인간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이유는 바로 의사소통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거기에 고려와 숙고가 들어서고 책임이 뒤따른다. 그런데 표정을 감추는 것은 실패하고 싶지 않으며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소통이란 타자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다. 이들의 삶에서 이 ‘타자에 대한 요구’를 대체한 것이 바로 ‘정당한 댓가’다. 댓가로 환원될 수 없는, 즉 교환 불가능한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댓가를 받아 소유하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이고 ‘공통의 것’을 향해서도 나아가지 않는다. 등록금 문제에서도 이런 양상이 나타난다. 길거리에서 다른 친구들이 절규하고 있지만 상위권 대학의 여유있는 학생들뿐 아니라 등록금 때문에 힘들긴 마찬가지인 학생들도 지금의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그만큼 효용만 있으면 자기는 괜찮다면서 대학이 ‘돈값’을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확하게 정당한 댓가를 바라고 교환가치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가혹하게 말한다면 이들의 인정투쟁과 권리투쟁은 ‘소유’ 앞에 멈춰서 있다.
공유된 질문, 이게 사는 건가?
지금까지 왜 20대가 자신의 절망을 집단적인 참여가 아니라 개인적인 위로를 소비하는 형태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이들의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다. 근대인이 꿈꿔온 위대한 이상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기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 예측과 기획의 가능성을 무너뜨렸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불안뿐이다. 가난과 탈락의 불안이 영혼을 지배한다. 필사적으로 노력해 스펙을 쌓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딜 향해 가는지 끊임없이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니 누군가 격려하고 위로해주면서 잘 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그 길이 아니다’가 아니라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것이 이 불안을 잠시마나 안정시킬 수 있는 진정제다.
그럼 왜 집단적인 참여가 아닌 개인적인 위로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인정투쟁과 권리의식의 존재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이들에게는 생존뿐 아니라 존재 자체의 의미가 의문시되고 있다. 중산층의 경우에는 부모보다 잘나거나 부모와 다른 존재가 되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부모의 후견과 계획 아래서 살아가도록 길들여져 있다. 스스로의 역사적 가치를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정체성을 형성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대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천재적인 창의성 같은 것을 발휘하라는 문화산업의 논리에 포획되어 그것을 자아실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통의 것’을 만들어가는 광장뿐 아니라 물러섬의 공간인 프라이버시 역시 무너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정당한 댓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개인적 보상과 소유의 방식, 즉 사적 소유권에 대한 강박이다. 여기에 정확하게 조응하는 것이 바로 ‘위로의 소비’다.
그런데 이것은 한 세대의 문화적 특징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당대의 문제인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감수성과 아비뛰스(habitus)는 소유권에 기초한 개인적 권리의식의 신장으로, 집단성이 아닌 개인적 창의성의 가치를 과장하며 생산의 사회성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형성돼왔다. 이 세대는 그런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방향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지 원인이 아닌 셈이다. 때문에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세대를 통해 당대로 나아가는 것이지 당대를 세대의 문제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화적 특징에서 우리는 어떤 당대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개인의 권리의식 발전이 ‘공통의 것’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보다 배타적 소유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보수세력이 ‘권리’라는 말을 남용하여 정의나 인권 같은 공동선의 문제를 ‘권리 상호간의 충돌’로 바꿔치기하려는 시도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이 시도는 확실히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회적 갈등을 권리의 충돌로 재현하는 지식-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그것이 공론의 장에 등장하자마자 그렇다면 교권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여기서도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으로 재현되고 인식된다. 철도나 버스 파업에서도 노동자들의 파업할 권리와 시민의 이동할 권리 사이의 충돌이 빚어진다. 2010년 서울광장 조례개정안에 대한 논쟁도 서울광장의 사용권한이 서울시에 있는지 아니면 시민에게 있는지를 두고 벌어졌다. 곧 광장이 누구의 소유인가가 핵심적인 질문이다. 소유권을 둘러싼 이 권리의 대충돌 앞에서 누구의 것도 아닌 ‘공통의 것’에 대한 감각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연대가 형성되거나 정치적 공간이 출현할 가능성은 없는가? 아니다. 요즘 필자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묘하게 세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공통의 질문’이 떠오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바로 ‘이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이게 사는 것인가?’라고 회의하며 삶 자체에 대해 묻고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이야말로 사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수록 사람들은 삶 자체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지금이 제대로 된 삶인지, 과연 삶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묻고 답하고자 한다. 이것이 너무 거대한 질문이고, 그 자체가 불안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정면으로 응시하기보다 따뜻한 위로에 기대기도 하지만 우리가 긍정해야 하는 것은 이 질문 자체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근본을 다시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징조다. 그리고 이 질문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바로 동시대인이다. 자본은 우리의 삶에서 ‘공통의 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삶에서 공통의 것이 제거되면 될수록 오히려 삶 자체에 대한 ‘공통의 질문’이 세대와 장소를 가로질러 제기되는 것이다.
이 질문이 바로 새로운 연대, 새로운 ‘사회적인 것’의 가능성이다. 이미 우리는 그 하나의 싹을 두리반에 연대한 투쟁에서 볼 수 있었다. 두리반은 홍익대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칼국수집이었다. 두리반이 세들어 있는 건물이 어느날 갑자기 거대자본에 의해 재개발되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작가이기도 한 두리반 주인은 굴욕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자존을 건 싸움을 결심했다. 이 두리반의 싸움에 결합한 것은 전통적인 운동조직이 아니라, 홍익대 주변에 서식하던 젊은 문화창작자들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두리반 싸움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두리반을 활동거점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기서 생활했다. 이들은 철거 위기에 놓인 두리반에서 자본의 급속한 잠식에 의해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운명’을 보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홍익대 앞을 클럽과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공간이라고 여기지만 그런 자생적인 문화공간으로서의 ‘홍대 앞’은 이미 자본에 의해 삼켜지거나 고사 직전의 상태다. 그러기에 이들은 두리반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에서 자신의 운명을 공감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동시대인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투쟁은 연대가 아니라 동시대인의 투쟁이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너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 즉 당대의 운명을 ‘공통의 것’으로 받아들인 체험이 이들을 두리반에서 살게 만든 것이다. 어디 두리반뿐인가? 평택 대추리에서 제주도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지금 연대의 방식은 품앗이하러 오가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운명을 직시한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며 삶을 가꾸어가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에 대한 연대 역시 상징적이다. 학교와 용역업체의 계약 불발로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되자 이들은 고용승계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면 50여일간 농성을 벌였다. 그런데 처음 이 투쟁이 문제되었을 때 홍익대 총학생회가 보인 반응은 ‘외부세력’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홍익대는 홍대인들의 것이기 때문에 홍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제3자며 끼여들 자격이 없다고 했다. ‘소유’에 기초한 권리의식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곧 ‘외부세력 연대론’이 제기되었다. 청소노동자의 투쟁현장에는 ‘외부세력 단결했다, 내부세력 각성하라’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소유가 권리고, 권리가 곧 정치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구호였다.
두리반과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의 공통점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두리반과 홍익대가 돈을 버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생계수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나날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혹자는 학생들이 붙인 ‘청소부 어머니/아버지 힘내세요’라는 구호에 ‘노동자’가 빠져 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인식이 불충분하다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사태를 정반대로 보아야 한다. ‘아버지/어머니’라는 호칭은, 여기가 학생과 청소부 들이 얼굴을 마주 대하며 구체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삶의 터전’이며 이 터전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둘 다 ‘이것이 사는 것인가?’라며 삶 자체를 질문하고 삶을 방어하는 것이며, 세대를 넘어선 동시대인의 투쟁이다. 삶의 터전을 지킨다는 점에서, 소유로 환원되지 않는 ‘공통의 것’이 우리 삶에 존재하고 그런 공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둘은 같은 투쟁이다. 당대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연대의 출발점이다. 이 연대는 소유를 넘어선 ‘공통의 것’으로서 삶의 터전을 다시 닦는 과정이다. 이는 먼 미래에나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통의 것’을 만드는 일 자체가 ‘공통의 것’을 향유하는 과정이다. 이미 세대를 넘어 이 연대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