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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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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이 있음.

 

 

 

옥천 가는 날

 

 

강변북로는 극심한 정체였다. 토요일 오후인 데다 모레가 현충일로, 모처럼의 연휴였다. 명절 대이동까지는 아니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는 차들이 쏟아져나왔다. 마포대교부터 반포대교까지 속도가 20킬로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남대교를 넘어가야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빠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들은 이제 겨우 강변북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바짝 붙어앉아 어깨가 겹치듯 맞닿았지만 그녀들은 떨어질 줄 몰랐다. 강변북로를 벗어난대도, 고속도로는 또 얼마나 막힐지 몰랐다. 오늘 하루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43만대에 이르리라는 뉴스를 듣지 않았나. 행주로 식탁을 훔치면서였나, 아니면 보온밥솥 코드를 빼고 수족관을 향해 돌아서던 순간이었나. 정숙의 눈꺼풀이 젖은 이파리처럼 처지면서, 머릿속에 수족관 속 풍경이 펼쳐졌다.

그녀의 집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아둔 수족관은 새끼 금붕어 수십 마리로 바글거렸다. 아직 온전한 빛깔을 갖추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변화무쌍한 빛깔을 띠는 새끼 금붕어들은 흡사 자디잘게 자른 비닐조각 같았다. 보름 전 수족관 바닥에 깔아둔 바위들 틈에서 앞을 다투어 부화해 떠올랐을 때만 해도, 새끼 금붕어는 쉰마리 가까이 되었다. 응결하듯 모였다 흩어졌다, 떠다닌다기보다 나불나불 날아다니는 듯한 새끼 금붕어들로 인해 수족관은 그야말로 천변만화하는 만화경 같았다. 그런데 새끼 금붕어가 한두마리씩 줄어드는 것 같더니만 어느 날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녀로서는 뭔 까닭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수족관 속 물이 흐르기라도 해 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면 모를까…… 어미 금붕어가 무심히 주둥이를 벌리고 제 새끼를 삼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서야, 그녀는 그 까닭을 확실히 알았다.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녀는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해주었다.

“배가 고픈가……?”

옹알이하듯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입에는 흰 빨대가 촉수처럼 물려 있었다. 그즈음 어머니는 삼시세끼 쌀뜨물 같은 죽을 빨대로 빨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버티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제 새끼를 잡아먹어요?”

“천지에 새끼밖에 잡아묵을 게 었나 보구만.”

“엄마도 참, 아무리 그래도…… 어미 뱃속이 무덤이 될 줄 새끼들이 알았겠어요?”

“어미 뱃속만헌 무덤이 어데 있을까.”

그후로 새끼 금붕어는 눈에 띄게 줄어 서른마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배가 터져 죽으면 어쩌나 싶게 사료를 넉넉히 주는데도, 어미 금붕어는 여전히 새끼들을 집어삼켰다. 터진 주머니처럼 주둥이를 벌리고 지느러미를 한가로이 흔들면서…… 불어터진 사료들이 부유하면서 수족관 물만 탁해졌다.

“마포대교는 지났나?”

정숙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애숙은 대꾸가 없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어머니만 멀거니 바라봤다. 막내딸이 자신을 그렇게나 바라보는 걸 모르는 듯, 어머니는 기척조차 없었다. 미역 같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그녀들은 차창 밖 풍경을 보지 못했다. 강변북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대충 넘겨짚을 뿐이었다.

“언니, 이제야 엄마를 모시고 옥천에 가네……”

애숙이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쥐더니, 어깨가 들리도록 숨을 토했다.

“엄마가 옥천에 얼마나 가보고 싶어했어.”

“그러게 말이다, 옥천에 꼭 한번 모시고 내려가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옥천 갈 날을 기다리더니만……”

애숙의 눈 밑, 미더덕처럼 우글쭈글 부어오른 살이 오그라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얘.”

조곤조곤 말을 나누면서도 그녀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느라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숙이 문득 등진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커튼 자락을 조금 들추었다. 커튼으로 애써 차단하고 있던 빛이 쏟아져들었다. 빛은 그녀의 두 눈동자 초점을 흩뜨리고, 애숙의 목덜미에 파스처럼 들러붙었다.

“몇시였더라?”

애숙이 고개를 외로 떨어뜨리고 자신의 발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앞뒤가 트인 쌘들을 신고 있었다.

“두시 조금 넘어서였지……”

정숙이 그때까지 움켜쥐고 있던 커튼 자락을 놓았다.

“내가 언니한테 전화한 게……”

“열한시쯤이었지.”

“시계를 볼 정신도 없었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몸이 아래로 축축 처지는 게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애숙은 어머니를 일으켜 앉히느라 자신이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떠올렸다. 4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어머니의 몸은 자꾸만 땅거미처럼 까라졌다.

“어떻게 너 혼자 했냐?”

정숙이 애숙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옥천에 내려갈 채비를 마치고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애숙 혼자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힌 것이었다.

“언니가 언제 올 줄 알고.”

“택시 타면 이십분 안짝인걸.”

“어제도 다녀가겠다더니만……”

“어제는 네 형부가…… 아니다……”

정숙은 어머니 쪽으로 손을 뻗다 거두어들였다.

“깜박했네, 그렇잖아도 오늘 당숙모가 다녀간다고 했는데.”

“여태 안 다녀가셨다냐?”

“누가 모시고 와야 오지 혼자는 못 오시겠나봐.”

“만우는 들어왔나?”

만우는 당숙모의 큰아들이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은 게 벌써 대여섯해 전이었다. 나이가 정숙보다는 아래였고, 애숙보다는 위였다.

“못 들어온 지 꽤 되나봐. 사업이 어려운지 전화도 통 없는 것 같더라…… 만우오빠 때문에 당숙모가 속 많이 썩었지. 만우오빠…… 그 언니는 여태 보험 하지?”

“나도 보험 하나 들어줬지 뭐냐.”

“언니는 그래도 들어줬나 보네, 나는……”

애숙은 눈을 바늘처럼 가늘게 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보험 들어달라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더라. 그 여편네,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니까 장례식장서도 보험 팔고 다니더라.”

“큰어머니 돌아가신 게 삼년 전이지?”

“그렇지…… 그 양반이 돌아가신 게. 아무리 그래도 장례식장에서까지 보험을 팔고 다닐까. 그런 사람은 생전 처음 봤네.”

“누굴 붙들고 그렇게 보험을 팔았을까?”

“죽치고 앉아 명우 처를 붙들고 한참을 떠들기에, 뭔 얘기를 그렇게 하나 했더니 보험 얘기더라.”

“그 언니가 명우 처를 언제 그렇게 봤다고?”

“그러게 말이다. 결혼식 때나 겨우 봤겠지…… 얘, 명우 처가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했냐?”

“정식 선생이 아니라 특별활동 선생이라던걸. 특별활동 시간에 가르치는 사람 말이야. 독서지도사라고 했던가……?”

“선생 며느리를 다 얻는다고 작은어머니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더니만. 명우가 직장이 반듯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물이 훤칠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교사 며느리를 다 얻나 했지 뭐냐?”

“엄마가 그래서 작은어머니를 별로 안 좋아했잖아, 쓸데없이 허세가 있다고.”

운전기사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는 모르지만 옥천 어쩌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옥천으로 내려가는 중이지…… 애숙은 휴대전화로 시간을 살피면서 새삼스레 중얼거렸다. 옥천서는 지금 한창 장례식장이 꾸며지고 있을 터였다. 영정사진을 가져다 놓고, 국화로 그 주변을 하얗게 장식하고, 조문객에게 낼 음식을 주문하고…… 고속도로가 아무리 막혀도 그녀들과 어머니는 네다섯시간 뒤면 옥천에 도착할 것이다. 해가 길어졌다지만 그새 세시가 넘었으니 옥천에 들어설 즈음에는 날이 어둑어둑할 것이었다.

“애숙아, 나는 꼭 오년 만이다.”

“언니, 오년이 뭐야? 나는 칠팔년은 된 것 같아…… 옥천이 저 어디 동떨어진 섬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못 가봤을까?”

그녀들은 마지막으로 옥천에 내려갔던 날을 떠올리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옥천도 변했겠지?”

“변하면 얼마나 변했을까.”

“안 변하는 게 없는 세상인데 옥천이라고 그대로이려고.”

딸들이 옥천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애숙아, 엄마가 누굴 찾지는 않으셨냐?”

“누굴?”

“누굴……”

“누굴 찾고 말고 할 정신이나 있으셨나?”

“아버지는 성우를 그렇게나 찾으셨지 않았냐?”

성우는 애숙 바로 아래 남동생이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

“성우가 군대에 가 있을 때라 한참을 못 봐서 그런가? 성우만 찾으시더라……”

정숙이 원피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폴더를 열고 액정화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전원을 눌렀지만 검게 꺼진 화면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모르지 또, 엄마가 누굴 찾으셨는지도……”

애숙이 졸린 듯 눈을 감았다 떴다.

“언니, 내가 그랬어…… 엄마한테 그만 가시라고……”

애숙이 중얼거린 것은,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구간을 지날 때였다. 원효대교 쪽으로 내려갈수록 차가 더 밀렸다. 20킬로를 간신히 유지하던 속도가 어느 순간 0으로 떨어졌지만 그녀들은 느끼지 못했다.

“어디 너만 그랬냐?”

“어제도 내가 엄마 손을 붙들고, 미련 두지 말고 그만 가시라고……”

그 순간 다투듯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다 못해 무표정에 가깝던 애숙의 얼굴에 파문 같은 경련이 일면서 짜증이 섞여들었다.

“백육십만원 나왔다고 했냐?”

“백팔십오만 사천원이던가? 영수증을 어디에 뒀더라……”

애숙이 쥐고 있던 지갑 지퍼를 열더니 뒤적뒤적했다. 천원짜리와 만원짜리 지폐, 신용카드 영수증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무심히 지갑 속을 들여다보던 정숙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건 언제 쓴 거야?”

애숙이 영수증을 한장 꺼내 펼쳤다. 접힌 틈새에 껴 있던 백원짜리 동전이 정숙의 발치로 떨어졌다. 정숙이 몸을 수그리고 동전을 집어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인 양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 애숙의 지갑 속에 떨어뜨렸다.

“칠천오백원? 쓴 기억이 없는데……”

애숙은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다 영수증으로 다시 눈길을 주었다. 영수증에 찍힌 날짜를 살폈다.

527일이면……?”

“엄마 말이 맞는지 모르지……”

정숙이 수족관을 떠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삼부마트? 기저귀를 산 영수증인가?”

“잡아먹을 게 자식밖에 없어서인지도……”

어미 금붕어가 새끼 금붕어를 집어삼키는 장면이 정숙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닌데, 기저귀는?”

“천지에 자식밖에……”

서로의 말이 동상이몽처럼 겉돌았지만 그녀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에어컨을 켰는지 냉기가 감돌았다. 정숙은 자신도 모르게 두손으로 어깨를 감쌌다.

“진작 좀 틀어주지.”

애숙이 운전석 쪽을 흘끗거렸다.

“난 더운 줄도 모르겠다.”

“우리보다 엄마가……”

그녀들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어머니를 향했다. 정숙은 어깨가 부르르 떨리도록 숨을 내쉬고 어머니의 발로 손을 뻗었다. 발등과 발목을 어루만지다 발가락을 감싸듯 움켜잡았다.

“그새 많이도 부었네……”

“언니는 아무렇지 않나봐?”

“엄마 아니냐……”

어느 결에 정숙의 손은 어머니의 무릎을 쓰다듬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출발할 때부터 내내 무관심하던 운전기사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워낙에 경황이 없어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지만, 운전기사는 환갑 진갑 다 지났을 성싶은 남자였다.

“아흔둘요……”

정숙이 손을 거두어들이면서 마지못한 듯 중얼거렸다.

“아흔 넘으셨으면 뭐…… 엊그제는 새벽 세시에 목포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서른아홉밖에 안 먹었다든가? 목포 도착하니까 날이 환하게 밝아 있지 뭐예요. 그때는 나 혼자 태우고 내려갔는걸요.”

“아저씨 혼자요?”

듣는 것만으로 오싹 소름이 끼치는지 애숙이 어깨를 움츠렸다.

“어떤 땐 그게 오히려 편해요.”

“무섭지도 않으신가 봐요.”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이 무서워요? 강도짓을 해도 산 사람이 하지, 죽은 사람이 하는 거 봤어요?”

운전기사가 코웃음을 쳤다.

“아저씨는 이 일을 오래 하셨나 봐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정숙이 물었다.

“이십년 가까이 골프장 사장 차를 몰았는데 나이 드니까 냄새난다고 싫어합디다. 개인택시를 사려고 했는데 넘버 가격이 올라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 한 일년 영업용택시 몰다, 조카가 겨우 넣어줘서 십년 넘게 하고 있네요.”

“조카를 잘 두셨나 봐요.”

“잘 둔 건지……”

운전기사는 말끝을 흐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팬티를 산 영수증인가 보네.”

정숙은 그제야 생각난 듯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애숙을 샐쭉이 쳐다봤다.

“면 팬티 석장을 만원에 팔더라고. 분홍색 두장에 흰색 한장…… 새 팬티로 갈아입혀드리려고…… 새 팬티인 줄 알고 엄마가 죽어도 싫다지 뭐야. 뒀다가 나나 입으라고……”

“엄마도 어지간하다. 그깟 팬티 한장에 얼마나 한다구…… 하긴 요즘이야 팬티가 흔해터졌지만, 어디 우리가 클 때만 해도 그랬냐? 해질 때까지 입다가 것도 아까워 걸레로 썼잖냐.”

동작대교 못 미쳐 속도가 또다시 0으로 떨어졌다.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어머니가 뒤척이듯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몸의 중심을 잡느라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반포대교를 지나서야 정체가 조금 풀리면서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워낙에 차가 많아 40킬로를 넘지 못했다. 한남대교로 접어들면서 속도가 조금 더 붙었다. 톨게이트는 빠져나왔나? 겨우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는 걸 모르고 정숙은 중얼거렸다. 커튼을 들추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평일이었으면 진즉에 톨게이트를 빠져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천안 지나고 대전 지나면 금방 옥천이 아니던가. 줄지어 선 차들 너머 한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차들은 거의 꼼짝하지 않았다.

“애숙아, 아직 서울이다.”

“고속도로 아니었어?”

졸음에 겨워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애숙이 중얼거렸다.

“웬일이라니…… 뭔 차가 저렇게 많다니?”

“몽땅 옥천 가는 차인가 보지……”

눈꺼풀이 감겨오는 눈을 애숙은 억지로 떴다.

“옥천……?”

“옥천……”

애숙은 발을 쌘들에서 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렴, 얘……”

정숙은 커튼을 조금 더 들추고 차창에 한쪽 이마와 뺨을 댔다.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그녀는 원래보다 늙고 초라해 보였다.

“하기야, 다는 아니겠지만 저 중에 옥천 가는 차도 있겠지?”

“있기야 있겠지……”

애숙의 눈은 박음질로 봉합해놓은 주머니처럼 꼭 감겨 있었다.

“차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옥천 가는 차가 있긴 있겠지? 한두대는…… 옥천 가는 차가……”

“그러게……”

애숙의 다리가 풀어지면서 두 발이 어머니 쪽으로 미끄러졌다.

“애숙아, 저 차도 옥천 가는 차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숙은 손으로 그 어떤 차도 가리켜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저 차 말이야…… 저 차……”

“으응……”

“아무래도 옥천 가는 차가 맞는 듯하다, 얘. 어쩐지 옥천 가는 차가…… 애숙아, 저 차는 옥천에 뭔 일로 가는 걸까?”

커튼 자락을 움켜쥔 손가락들을 풀면서 차창에서 고개를 거두는 정숙의 발에 애숙의 쌘들이 걸렸다. 그녀는 자신의 발에 걸려 뒤집힌 쌘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3쎈티쯤 되는 굽은 징이 드러나도록 닳아 있었다. 그녀는 쌘들로 손을 뻗었다. 꾸벅꾸벅 조는 애숙의 발 옆에 쌘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속도가 났다. 여기저기서 클랙슨 소리가 아우성처럼 들려왔다. 정숙은 정신이 사납다 못해 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애숙의 머리가 정숙의 허벅지에 쑤셔박히듯 떨어졌다.

“아이고, 아저씨. 천천히요, 천천히……”

애원에 가까운 정숙의 목소리가 새되게 갈라졌다.

“어느 세월에 옥천에 가려고요?”

운전기사가 퉁명스럽게 맞받아쳤다.

“그냥 천천히 가세요…… 제발요, 아저씨……”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싸이렌 소리가 잦아들었다. 졸음이 깬 애숙이 발딱 머리를 쳐들었다.

“언니…… 옥천이야?”

그녀는 손으로 입을 훔치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옥천은 무슨…… 아직 멀었다.”

“난 또…… 옥천에 다 왔나 했네.”

애숙은 맨허리가 드러나도록 올라간 블라우스를 끌어내리고 쌘들에 발을 꿰었다.

“옥천이 수원이나 평택도 아니고…… 벌써 다 왔을까……”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몸이 까라지네…… 피곤해 죽겠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오더라구. 겨우 잠드니까 엄마가 글쎄…… 언니, 엄마도 아시겠지? 저리 아무 말씀 없으셔도…… 우리가 옥천에 모시고 내려가는 중이라는 걸 아시겠지?”

“그러게, 아실지도 모르지……”

정숙은 묻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만 하루 시간 냈어도 진즉에 엄마 모시고 옥천에 다녀왔을 텐데…… 자고 오자는 것도 아니고 그날 갔다 그날 오자는 거였는데……”

“얘, 남 애 봐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지 아냐? 남 애 하나 보느니, 내 애 열 보는 게 낫지…… 애 엄마가 연초라 하루도 휴가를 낼 수 없다는데 어쩌냐? 어찌나 까다로운지 애가 열이 조금만 올라도 난리다. 세상에 저만 애를 낳았나…… 저번에는 애 이마에 멍이 조금 들었는데 나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하드라…… 나 듣는 데서 친정엄마한테 전화하더니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치사하고 서러워서 계약이고 뭐고 때려치우려다 애하고 든 정이 있어서 참았지 뭐냐?”

“내가 얘기했나? 엄마가 글쎄, 몰래 꼬불쳐둔 돈까지 내놓더라. 옥천 내려갈 차비 하라면서…… 차비가 없어서 우리가 못 모시고 내려가는 줄 아셨나? 옥천이 어디 일본이나 미국도 아니고, 설마 모시고 내려갈 차비가 없을까봐…… 옥천까지 차비가 얼마나 한다고……”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듯 애숙은 손사래를 쳤다. 정체가 심해 답답한지 운전기사가 연거푸 한숨을 토했다. 정숙은 괜히 운전기사의 눈치가 보여, 옥천까지 모로 가든 기어가든 알아서 가게 놔둘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위태한 중환자가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애숙아, 옥천까지 버스비가 돼지고기 한근 값은 될까?”

“돼지고기 한근이 요새 얼마나 올랐는데…… 목살 한근에 만사천원 달라더라. 삼겹살은 만육천원이라던가?”

“돼지고기 한근 값도 안된단 말이냐?”

“한근 값은 될까?”

“아무리 차비가 헐해도 한근 값은 충분히 되겠지.”

정숙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들었다.

“언니, 구정 지나고 우리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엄마를 옥천에 모시고 내려갔어야 했어……”

애숙의 낯이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어떻게 억지로 하루 짬을 낸다고 해도 고속버스 타고 내려간다는 게 말이 되냐? 일어나 앉는 것도 간신히 하는 엄마를 모시고…… 차로 움직이면 모를까…… 너든 나든 운전을 할 줄 알아야 차로 모시고 내려가지. 그렇다고 사위들이 살가워서 모시고 내려가줄 것도 아니고…… 우리 속이나 안 썩이면 다행이지……”

“계약이 언제까지라고 했더라?”

“계약?”

“애 보는 거.”

“이년 계약했는데, 구월이면 끝난다. 애 엄마가 일년 더 연장하자고 할지 말지 모르겠다……”

“또 다른 애 알아봐야겠네?”

“별 수 있냐?”

“언니, 엄마는 옥천이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나 가고 싶어했을까?”

애숙은 스스로에게 묻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엄마가 옥천 말고 갈 데가 있냐? 옥천 말고……”

“엄마…… 옥천 가니까 좋아요?”

애숙이 보채듯 물었지만 어머니는 역시나 아무 말이 없었다.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구요?”

“엄마, 애숙이 묻잖아요……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고…… 애숙이……”

정숙과 애숙의 고개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차들이 밀물처럼 몰리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그녀들은 그렇게 우연히 옆에 앉은 낯선 승객처럼 서로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나보다야 네가 더 서운하겠지.”

정숙이 애숙의 손을 그러잡았다 놓았다.

“내가 나쁜 년이지, 멀쩡한 엄마를 치매노인으로 만들었으니……”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 사정이 그런 걸 어쩌냐.”

“아무리 사정이 그랬어도……”

“그렇게라도 네가 엄마를 모셨으니 다행이지……”

“다들 아는 눈치던걸, 뭐.”

애숙이 괜히 지갑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왜? 누가 뭐라든?”

“순자언니가……”

순자는 큰이모의 딸로 정숙과는 동갑이었다.

“순자가 뭐랬는데?”

“한달 전인가 큰이모 모시고 다녀갔었잖아…… 나보고 다달이 요양급여가 얼마나 나오느냐고 묻더라구.”

“걔는 하여간 오지랖도 넓다. 죽 한그릇 사들고 와서 얼마나 받는지 물어보든? 나는 그래도 단돈 오만원이라도 엄마 손에 들려주고 갈 줄 알았다…… 엄마가 순자 걔한테는 얼마나 잘했냐? 지 남편 중동 갈 때 엄마가 아버지한테까지 부탁해서 신원보증도 서주고 했는데……”

“아버지가 순자언니 남편 신원보증을 다 섰었어?”

“순자 남편 큰아버지 되는 양반인가가 월북을 해서 신원보증이 필요했잖아…… 집이 두채라고 그렇게 위세를 떨더니 두채 다 홀딱 팔아먹었나 보더라. 순자 걔가 남편 중동 보내놓고 나서부터 시댁하고는 아예 등지고 살았다더라. 순자 남편도 젊어서는 인물이 그렇게 좋더니만 중동 가서 생고생을 해서인지 늙으니까 아주 볼품이 없더라……”

“틀린 말도 아니지 뭐. 다달이 나오는 돈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머니 모실 엄두나 냈겠어?”

옥천서 혼자 살던 어머니를 애숙이 서울로 모셔온 것은 이태 전 이맘때였다. 어머니가 밥도 근근이 해먹을 만큼 노쇠해 자식들 중 누군가는 모셔야 했다. 둘도 아니고 하나뿐인 며느리인 성우 처가 어머니 모시는 걸 대놓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막내딸인 애숙이 굳이 나서서 어머니를 모신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즈음 그녀는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땄는데, 친부모를 돌봐도 동거가족케어라고 해서 요양급여가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모셔오자마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인 신청을 했다. 담당직원이 조사를 나오던 날, 밥상을 앞에 두고 어머니에게 단단히 이르던 게 마치 엊그제 같았다.

“엄마, 무조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해야 해요.”

“말귈……?”

숟가락을 뚝배기로 가져가다 말고 어머니가 그녀를 쳐다봤다.

“치매 걸린 노인네처럼 말이에요.”

다 같은 노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요양인 신청이 되는 게 아니었다. 치매 걸린 노인의 경우 백 프로 요양비가 지급되는 까닭에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딸년이 어째 멀쩡한 어매를 천덕꾸러기 치매 노친네로 만들려구 허냐.”

“엄마, 그래야 나라에서 돈을 줘요.”

“돈을 다 준단 말이냐? 돈을 을마나 주는디 그르냐?”

“반찬 값하고, 이런저런 세금 낼 돈은 떨어져요.”

“그르냐……?”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콩나물도 다듬어주고 빨래도 개줄 만큼 기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구정 지나면서 기력이 급격히 쇠해지더니, 생신날 응급실에 실려갈 만큼 심한 토사곽란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저 어머니가 체한 줄로만 알았다. 먹성이 터졌나 싶게 노인네가 전이며 잡채를 그렇게 잡숫더라니……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이런저런 검사 결과 담낭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는 구순 넘은 노인네라 마취가 어려워 수술이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도 퇴원도 못하고 병원에서 꼬박 석달을 보냈다. 정숙이 애 보는 일을 해서 애숙은 혼자 어머니를 간병해야 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형제들은 주말에나 겨우 올라와 길어야 반나절 머물다 가버렸다. 그녀는 병원이라면 입에 문 밥도 뱉고 싶을 만큼 아주 넌덜머리가 났다.

애숙이 자신의 목덜미를 감싸던 손을 어머니 쪽으로 내뻗었다.

“언니…… 나는 어째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어머니의 얼굴 위에서 머뭇거리던 그녀의 손가락들이 바르르 떨렸다. 새가 막 날아간 나뭇가지들처럼.

“엄마가……”

 

“양말 한장 못 챙겨왔네.”

애숙이 새삼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옷 갈아입을 새 없이 출발한 탓에, 단단히 바람이 나 설거지하다 말고 뛰쳐나온 여자 같았다. 그녀는 손을 목 뒤로 가져가 머리를 질끈 묶은 고무줄을 풀었다. 입에 고무줄을 물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내렸다. 손가락에 감겨오는 것이 머리카락이 아니라 엉킨 털실타래 같았다.

“기호 아빠한테 좀 챙겨오라고 해라.”

기호는 애숙의 아들이다. 기호가 태어난 뒤로, 정숙은 제부를 기호 아빠라고 불렀다.

“자기 옷이나 제대로 챙겨 입으면 다행인 사람한테 뭘 바랄까.”

“애숙아, 그래도 기호 아빠가 한때나마 돈을 얼마나 잘 벌었냐?”

“페인트 기술자가 별로 없었던 데다 기술이 좋았으니까…… 그럼 뭐해 언니, 인간이 성실하지 않은데. 돈 쓰는 건 또 오죽 좋아해.”

그때 애숙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영 받기 싫은 전화를 억지로 받듯 그녀는 인상을 구기고 휴대전화를 귀로 가져갔다.

“아직 멀었다…… 차가 막히는 걸 어쩌니, 얘. 그래…… 그래…… 옥천 톨게이트로 빠지지 말고 판암? 판암 톨게이트로 빠지라구? 판암 톨게이트로 빠져서 우회전…… 옥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보면…… 포도나무 가든? 포도나무…… 그래…… 삼거리에서 우회전? 오분만 달려가면…… 그래……”

휴대전화 폴더를 소리 나게 닫는 그녀를 정숙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옥천 톨게이트로 빠지지 말고 판암 톨게이트로 빠지라네.”

“판암은 대전 아니냐?”

“그러게?”

애숙은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아저씨……”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운전기사는 대꾸가 없었다.

“기사아저씨가 잘 아시겠지…… 내비게이션이 오죽 잘 가르쳐줄까.”

“성우가 그러는데 옥천 톨게이트로 빠지기 십상이라네. 옥천 톨게이트로 빠지면 더 돌아가나봐.”

“돌아가면 얼마나 돌아간다구……”

정숙이 탄식에 가까운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긴, 돌아가면 엄마는 좋겠네…… 옥천 구경 실컷 하구……”

그때 애숙의 휴대전화가 또다시 울렸다. 그녀는 전화를 받아 짜증스럽게 알았다는 말만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큰언니는 벌써 왔다네……”

“큰언니야 청주니까 금방이지.”

“언니 휴대전화로 여러번 걸었나봐.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성우한테 짜증내고 있나봐.”

“큰언니는 하여간, 너한테 전화하면 되는 걸 가지구.”

정숙은 혀를 찼다.

“큰언니가 생전 나한테 전화하는 줄 알아? 곧 죽어도 나한테는 절대 전화 안할걸.”

“큰언니는 왜 그런다냐?”

“다 알면서 뭘 그래…… 돈 때문이지 뭐……”

그녀는 그깟 돈 오백만원이 뭔가 싶었다. 십년 전 그녀는 큰언니로부터 오백만원을 얻어 쓴 적이 있었다. 사정사정을 해 큰형부 모르게 얻어 쓴 돈이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페인트칠뿐인 남편이 인테리어 사무실을 차린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통에, 사무실 차릴 돈이 필요했다. 일년 뒤 갚기로 한 오백만원은 갚지 못했다. 인테리어 사무실은 죽을 쑤다 못해 동네 실업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큰언니는 친동기간일수록 신용을 칼같이 지키고 살라면서 그녀를 몰아붙였다. 일부러 안 갚는 것도 아니고 사정이 안돼서 못 갚는 자신을 닦달하는 큰언니가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큰언니는 자매들 중 사는 게 가장 넉넉했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초등학교 선생을 남편으로 얻었다. 그녀는 하도 속이 상해 어머니에게 털어놓았고, 결국에는 그 돈을 어머니가 대신 갚아주었다. 그 돈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남은,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끼던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애숙은 큰언니와 대판 싸웠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기간 연을 끊자는 말을 했고, 그후로 피 한방울 안 섞인 남남처럼 지냈다.

“큰언니가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한 줄 알아?”

애숙은 새삼 십년 전 서운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복받쳐올랐다.

“내가 요양급여 타먹느라 억지로 어머니 모셨다고 생각하고 있을 걸.”

“큰형부가 오죽 자린고비냐? 꼬장꼬장해가지고, 그 비위 떠받들며 사느라 큰언니도 맘고생 어지간히 했을 거다.”

“순자언니도 큰언니가 말해서 알았겠지.”

“괜히 큰언니하고 얼굴 붉히지 마라. 우리가 앞으로 보면 얼마나 보고 살겠냐? 엄마 살아계실 때나…… 큰언니도 내일모레면 칠순 아니냐.”

자신들과 어머니가 지금 고속도로 갓길을 내달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고속도로 위에 바위처럼 서버린 차들과 구름을 저 뒤로 하고……

 

휴게소에 들렀다 가자고 애숙이 운전기사에게 부탁한 것은, 안성휴게소를 막 지나쳤을 때였다. 원래 말투가 그런지, 운전기사는 일찍 좀 말하지 그랬느냐고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십분을 더 달려가서야 그는 휴게소라면서 그녀들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망향휴게소 간판을 보고서야 애숙은 아직 천안에도 못 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을 떠나온 지 세시간 남짓, 속도가 나기에 천안쯤 왔겠지 싶었던 것이다. 망향휴게소는 차와 사람 들로 북적북적했다. 그녀가 내리려다 말고 주저한 것은, 비몽사몽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다색(茶色)이 감도는 햇빛과 무심한 손길처럼 불어오는 바람, 휴게소 지붕 위에서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풀어지는 구름, 지친 차들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이명처럼 들려오는 웅성거림…… 그 모든 게 그녀에게는 더없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가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 어머니가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 여기에 내가 있다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언니…… 언니는 안 가?”

“너나 다녀와라.”

“같이 가지…… 휴게소에 또 들를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니 혼자 두는 게 그래서 그래……”

“물이라도 사다줄까?”

“커피나 한잔 뽑아와라. 커피를 못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멍하다.”

휴게소 건물로 걸어가다 말고 그녀는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보았다. 구급차를 찾았다. 여태껏 함께 타고 왔으면서, 그녀는 어머니가 구급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믿기지 않았다. 남색 승합차가 구급차 옆으로 와서 섰다.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생뚱맞게 서 있는 구급차를 흘낏 쳐다보면서 그녀 쪽으로 몰려왔다. 저이들이 알 리가 없지…… 저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저이들이 어떻게 알까…… 그녀는 그들을 보내고 나서야 껌처럼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발을 떼었다.

물과 커피를 사들고 애숙이 돌아왔을 때 정숙은 구급차에 없었다. 운전기사도 아직 돌아오지 않아 시동이 꺼진 구급차를 어머니가 홀로 지키고 누워 있었다. 자식들이 떠나고 아버지가 죽은 뒤, 옥천 고향집을 스무해 넘게 지켰듯.

그녀는 구급차에 오르려다 말고 그 앞에 쪼그려앉았다. 정숙이 검정 비닐봉지를 흔들면서 걸어왔다. 애숙은 그녀를 생판 모르는 사람인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휴게소를 빠져나가려는 고속버스가 정숙을 지우듯 지나갔다. 그녀는 물살 거스르듯 사람들을 헤치고 애숙 곁으로 와 섰다.

“저 차를 여기서 또 보네?”

부유하듯 흔들리는 정숙의 그림자가 애숙의 쌘들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저 차……?”

애숙이 고개를 들었다.

“아까 서울 톨게이트 빠지기 전에 만났던…… 옥천 가는…… 애숙아, 저 차도 옥천 가는 차 같지 않냐?”

“옥천……?”

애숙은 옥천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옥천 차……인가? 번호판에 충북이라고 써 있네……”

정숙이 신기해하면서 서울을 떠나온 뒤 처음으로 웃었다. 하지만 공허함과 피곤이 감도는 웃음이었다.

“옥천 차……인가?”

“언니도 참, 충북이 다 옥천인가? 청주, 제천 다 충북이잖아. 음성하고 충주도…… 영동도…… 진천도 충북이지?”

“아니야, 얘…… 어째 옥천 차 같아.”

“어떤 차 말이야?”

“저기 저 차……”

“차가 어디 한두대여야지……”

“번호판에 충북이라고 써 있잖아.”

그러나 애숙의 눈에는 주차된 차들이 낱낱이 아니라 한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녀들 앞쪽에 서 있는 흰색 승용차에서 매캐하고 뜨거운 열기가 불어왔다. 생니가 빠지듯, 주차된 차들 사이를 허무하게 빠져나갔다.

“그게 뭐야?”

애숙이 몸을 일으켰다.

“양말…… 너 신으라구……”

 

“애숙아, 옥천은 왜 옥천일까?”

구급차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고, 양말을 싼 비닐포장을 벗겨내다 말고 정숙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애숙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묻는 것만 같았다.

“옥천이……?”

“옥천이 언제부터 옥천이었을까?”

“언니도 참, 별 이상한 걸 다 묻네.”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곳을 옥천이라고 불렀을까?”

그녀는 포장을 마저 벗겨내고 양말에 붙은 상표를 떼어냈다.

“그러게……?”

“사람들이 언제부터 옥천에 모여 살았을까?”

“………”

“엄마는 어쩌다 옥천사람이 되었나……”

그녀는 애숙에게 양말을 건넸다.

“옥천에 살다보니 옥천사람이 되었겠지.”

애숙은 양말을 발로 가져갔다. 살갗이 보풀처럼 인 발가락들을 손으로 한번 꾹 감싸쥔 뒤 양말을 신었다.

“그렇겠지…… 살다보니 저절로…… 엄마가 서울서 살았으면 서울사람이 되었겠지……”

“언니, 이왕이면 검정색이나 흰색 양말로 사오지 그랬어. 연두색이 너무 튄다.”

애숙은 투덜거리면서 남은 한짝도 마저 신었다.

“연두색이 튀냐?”

“봐, 튀잖아.”

애숙이 양말을 신은 두 발을 모아 들어 보였다. 양말을 신은 그녀의 발은 맨발일 때보다 커 보였다.

“정말 그러네……? 연두색이 튈 때도 있네.”

정숙이 그 양말을 고른 것은 연두색이어서가 아니었다. 별 생각 없이 골라든 양말이 하필이면 연두색이었던 것이다.

“외할아버지 고향은 파주라고 하지 않았냐.”

“외할아버지 고향이 파주였대?”

“그렇게 들은 것 같다…… 애숙아, 그럼 우리는 옥천사람이냐?”

“열일곱에 서울에 올라가 여태 살았으니 서울사람 다 되었지 뭐……”

애숙이 말을 하다 말고 휴대전화를 받았다. 마지못해 몇마디 중얼거리다 끊었다.

“성우냐?”

정숙이 물었다.

“어머니만 오시면 된다네…… 작은집 식구들도 왔나봐. 국을 육개장으로 낼지 다슬기국으로 낼지 묻네.”

“다슬기국을 내놓는 장례식장도 다 있냐?”

“옥천이라 그런가?”

“육개장보다야 낫겠다. 애숙아,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육개장이 그렇게 먹기 싫더라. 벌건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게, 억지로 몇숟갈 떠먹기는 해도……”

옥천에 장례식장을 예약해둔 것은 한달도 더 전이었다. 옥천을 평생 떠난 적 없는 작은아버지가 알아봐준 곳이었다. 두어번 문상을 갔는데, 널찍하니 한갓져 차분히 장례를 치르기에 좋다고 했다.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갈 때, 그녀들은 어머니가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일주일 가까이 물 한방울 못 넘기더니 혼수(昏睡)가 와 애숙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이 전부 어머니 곁에 모여 밤을 지새우기까지 했다. 당장 돌아가실 것 같던 어머니는 그러나 조금씩 나아져 죽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평소처럼 딸들과 이런저런 말도 나누었다. 뜬금없이 장떡에 나박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정숙이 집에서 만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애숙 혼자 지키고 있을 때 그만 그렇게 되었다. 상주인 성우는 직장 때문에 부산에 내려가 있었는데, 어머니의 고향인 옥천에서 장례를 치르고 싶어했다. 서울 애숙의 집에 올라오기 전까지 어머니 혼자 지키고 살던 고향집이 옥천에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 장지인 선산 또한 옥천이었다. 친인척 대부분이 청주나 옥천, 아니면 대전에 살았다. 그녀들은 내심 어머니가 입원했던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으면 했지만 상주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내 정신머리 좀 봐. 엄마 옷 보따리를 병원에 놓고 왔네……”

정숙과 성우에게 전화를 넣고, 애숙은 혼자 곡을 하듯 질질 짜면서 어머니의 옷을 갈아입혔다. 그렇게나 새것으로 갈아입히려 했던 속옷을 벗겨내고, 진즉에 사둔 삼베 속옷을 입혔다. 벗겨낸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뭣해 장지에서 태우려고 챙겨두었는데, 깜박하고 병원에 두고 온 것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옥천 톨게이트 말고 판암 톨게이트로 나가는 게 낫다고 하네요.”

애숙이 갑자기 생각난 듯 운전석에 대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그러려고 했어요.”

“옥천을 잘 아시나 봐요.”

정숙이 물었다.

“잘 알긴요, 옥천은 처음이지 뭐예요. 영동은 두번이나 가봤는데.”

“처음이시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귀가 멋으로 달렸나요? 한개도 아니고 두개씩이나. 아까 두분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들었으니까 알지 어떻게 알겠어요.”

“아저씨는 여기저기 많이 다니시겠어요.”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보는 곳 없이 다니기야 하지요. 그럼 뭐해요. 송장 내려주자마자 서울로 정신없이 올라가야 하는데……”

운전기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송장이라는 말에 애숙과 정숙의 고개가 저절로 어머니를 향했다. 정숙은 다 마신 커피캔을 어디에 내려놓지도 구겨버리지도 못하고, 마냥 손에 들고 있었다. 근질근질했는지 운전기사는 한번 말문이 터진 입을 좀처럼 다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벌써 십년도 더 전이던가? 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이니까…… 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된 게 2001년이든가 2002년이든가……? 아무튼 그해였는데, 진해에서 왜 해마다 군항제를 열잖아요. 송장 싣고 다섯시간을 달려 진해에 내려갔는데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벚꽃에 환장을 했는지 벚나무마다 사람들이 송사리떼처럼 모여 술판, 춤판을 벌여놓고 난리 블루스를 쳐대는데…… 송장 내려주자마자 서울로 올라오기가 뭣해 벚나무 아래다 구급차 세워놓고 파전 한장 사먹고 올라왔지 뭐예요. 대파를 길게 찢어 희멀건 밀가루반죽만 붓고 부쳐냈는데…… 벚꽃 아래서 먹어서 그런가, 집에서 마누라가 아무리 똑같이 부쳐내도 그 맛이 안 나더라구요.”

“애숙아, 나는 배추전을 아무리 부쳐도 엄마처럼 그렇게 얇고 보들보들하게는 못 부치겠더라.”

“언니, 나는 배추전을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양념장에 찍어먹는 맛으로나 먹을까. 엄마가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배추전 한장 못 부쳐드렸네.”

천안삼거리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정체는 조금씩 풀렸다. 정숙이 비스듬히 머리를 기대고 있는 차창이 흐느끼듯 떨리고 있었다. 조치원 조금 못 미쳐 정체가 완전히 풀려 마침내 제 속도를 냈지만, 정숙은 어쩐지 구급차가 고속도로 한복판에 마냥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찹쌀가루같이 희디흰 시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고 자신들 앞에 조용히 누워 있는 어머니처럼.

“여기가 어디야?”

정숙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커튼을 들추었다. 차창 밖으로 잊혀지듯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야는 구급차가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저 너머, 한줌의 푸성귀 같은 산까지 뻗어나갔다.

“뭘 그렇게 봐?”

“나무……”

“나무?”

“애숙아, 새들이 날아간다……”

“………”

“새들이 날아가……”

“………”

“새들이 울면서 날아가……”

하지만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녀들과 어머니가 타고 있는 구급차 안에까지 들려올 리 없었다.

“울면서 날아가……”

먼저 흐느끼기 시작한 쪽은 애숙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출발하기 전 병원에서 이미 한바탕 눈가가 짓무르도록 펑펑 울었던 탓에 눈물이 바닥난 줄 알았는데, 새우젓 국물처럼 짜고 걸쭉한 눈물이 넘치듯 흘렀다. 정숙도 울먹울먹하더니 명주실을 뽑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꼈다. 운전기사는 익히 보아온 장면인 듯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고속버스들 틈에 끼어 1차선을 내달리던 구급차는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구급차가 대전 진입로를 지나칠 때까지 그녀들은 따로, 또 같이 흐느껴 울었다.

“언니, 꼭 여섯살짜리 여자애가 누워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저 몸에서 사람이 일곱이나 났으니……”

정숙이 쭈뼛쭈뼛 몸을 일으키더니 시트로 손을 뻗었다. 시트를 끌어내리자 노란빛에 휩싸인 어머니의 고요한 얼굴이 드러났다.

“엄마, 옥천에 가니까 좋아요?”

“엄마, 언니가 묻잖아……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고.”

 

그녀들의 흐느낌이 잦아들 즈음, 구급차는 판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경로를 이탈했다는 내비게이션의 경고가 판암 톨게이트를 빠져나오기 전부터 구급차 안에 시끄럽게 울렸다. 운전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내비게이션 전원을 껐다. 곧장 삼십분쯤 달려갔을까? 포도나무 가든 앞 삼거리에서 구급차는 잠시 주춤하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다. 적신호가 켜져 있었지만, 구급차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듯 삼거리를 통과했다.

정숙은 전원이 나간 사실을 깜박하고 혹시나 걸려온 전화가 없나 휴대전화 폴더를 열었다.

“삼우제는 마치고 올라가야지? 아버지 때 준규가 고3이라 삼우제도 못 보고 올라간 게 나중에 그렇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때는 준규가 어느 대학을 갈지 밤낮 그 걱정만 하느라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지 뭐냐…… 그깟 자식이 뭐라고……”

그녀는 삼우제를 마치고 올라갔을 때 새끼 금붕어가 얼마나 살아남아 있을지 궁금했다. 어쩐지 어미 금붕어가 제 새끼를 죄다 삼켜버려 한마리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미 금붕어가 아무렇지 않게 새끼 금붕어를 집어삼키는 행동에 질색하면서도, 그물 벽을 쳐주지 않는 자신이 새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물 벽이 얼마나 한다고…… 그물 벽에 어미 금붕어를 가두어두면 새끼 금붕어들은 무사히 자랄 터였다.

“애숙아, 끔찍하지 않냐?”

“뭐가?”

구급차가 섰다. 운전기사가 시동을 켜둔 채 구급차에서 내렸다. 구급차 뒷문이 덜컥 열렸다. 옥천성심장례식장이라고 쓴 간판이 애숙의 눈에 들어왔다.

“뭐가, 언니……”

“고작해야 엄지손가락만한 금붕어가 새끼를 쉰마리 넘게 낳는다는 게……”

어머니에게 미처 묻지 못한 말을 그녀는 뒤늦게 애숙에게 묻고 있었다.

모처럼 옥천에 내려온 어머니와 그녀들을 맞으러,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어스름처럼 낮고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구급차 우회전 깜빡이에는 여전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