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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경란 趙京蘭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등이 있음.
성냥의 시대
그가 J읍으로 돌아온 것은 삼년 만이었다. 떠날 때와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무를 만지게 된 건 다른 이유였지만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손바닥에 마주 대고 있는 나무피는 이태리 포플러였다. 롤러에 넣고 돌린 나무는 매끄럽지도 까슬거리지도 않았다. 손바닥을 대고 있자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미했다 점차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원래 은빛을 띤 나무는 껍질을 벗기면 미색에 가까워진다. 그런 미색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는 두루마리처럼 얇게 만들어낸 나무피 한장을 앞에 두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 때가 있지만 이제 그것은 버릇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는 겉껍질이 벗겨진 나무에 대해 계속 생각하려고 했다. 적절한 말은 적절할 때 떠오르지 않았다. 집중하기도 어려워졌다. 지금 누가 자신을 본다면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무는 바닥에 기왓장처럼 쌓여 있었다. 절단기 속으로 나무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고 스위치를 다 올려도 공장 안은 크게 밝아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마지막에 관해 말해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궁금하긴 하냐.
최사장은 물었다. 셔츠 주머니 속에서 성냥갑을 꺼냈다. 성냥개비 하나를 마찰판에 대고 슬쩍 밀었다. 불꽃이 피었다. 최사장의 얼굴이 일순 환한 주황색으로 빛났다. 누구든 성냥을 하나 켜고 있을 때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짧은 순간이다.
아저씨.
사장이라고 불러라.
틈을 주지 않아도 좋았다. 아버지의 마지막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최사장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상사인. 언젠가 아버지는 자신이 최사장을 처음 좋아하게 된 게 귀 때문이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최사장의 귀는 큰 데다가 당나귀 귀처럼 앞쪽으로 쏠려 있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면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주고 끄덕이듯 귀를 살짝 움직여 그 이야기를 영원히 덮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그런 사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채 스무살이 되기 전의 아버지는. 그 말을 하는 아버지는 예의 그 모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최사장의 귀 안쪽에서 흰털이 삐져나와 보였다. 아버지의 귀는 어땠는지, 담배를 쥔 아버지 손가락은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그것은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몰랐다.
아버지와 통화를 한 것은 부음을 듣기 한달 전이었다. 어쩌면 한계절 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언제나 자신할 수 없었다. 한밤중이었고 그는 다리 사이에 이불을 끼고 누워 있다가 벨소리 때문에 급작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어떠냐.
아버지가 물었다.
좋아요, 다 좋아요.
그는 말했다. 목청을 높였을 수도 있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보다 더. 뭐든지 다 좋다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라고 여기던 때였다. 아버지가 전화를 해온 시기는 좋지 않았다. 전화는 언제나 그럴 때만 오긴 했다.
다 좋다고? 그래, 그래.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러 다니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필요한 물건을 전해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지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 먼저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도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이 필요한 말을 하고 싶어했다.
나도 늙었다.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소리가 너무 컸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한 전화 같았다. 그래도 전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는 그 속엣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부음을 들었을 때 맨 먼저 그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의 부음은 자, 이래도 안 내려올 거냐?라고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건 한달이나 한계절 뒤의 일이다. 그 마지막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자신이 물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요한’이 아니라 ‘기다리는’이라고 말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날은 정말 괜찮은 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한 후회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발견된 장소는 목재를 쌓아놓는 공장 뒷마당이었다고 한다. 정문 쪽에서 보자면 자물쇠가 달린 낮은 철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공터였다. 형식적인 문이기는 했지만 공터는 동네 골목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태리 포플러에 관심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단속을 하지 않아도 쌓아놓은 목재가 없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한때 J읍을 대표하다시피 했던 성냥공장이 언제 문을 닫을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사만에서 오만 사이(才, さい) 분량의 나무를 사들이곤 했다. 한 사이를 열두 자라고 치면 대충 셈해도 열 트럭 분량이 넘는다. 사들이는 나무의 양이 해마다 줄어들기는 했다.
공장 사람이라면 뒷마당에서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 모르고 자식은 부모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한 관계라고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른이 된 것을 느꼈고 기다렸다는 듯 집을 떠났다. 부모라고 해봐야 처음부터 아버지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나 베어진 포플러들이 쌓여 있는 공장 뒷마당의 아버지에 관해서라면, 조금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아버지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일지도 몰랐기 때문에 잊을 수도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성냥통을 들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묶어놓은 목재 더미에 앉아 하나씩 하나씩 성냥을 켜곤 했다. 고민 한가지를 성냥 하나가 켜졌다 꺼지는 순간만큼, 결정할 일도 성냥 하나가 켜졌다 꺼지는 찰나만큼만 생각했다 결정짓는 게 아버지 버릇이었다. 저물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신성한 의식처럼 보였다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하는 등의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좋았을까. 그러나 말없이, 혼자, 목재에 걸터앉아 골똘히 성냥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은 J읍에서 가장 멍청하고 바보 같아 보였다. 뭐든 너무 오래 생각하면 병든다고 아버지는 말했지만 때로는 앉은자리에서 성냥 한통을 다 써버릴 때도 있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었고 아버지는 도시락을 꺼내놓는 동료들 사이를 지나 뒷마당으로 나가는 철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모두들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그 한참 후에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재 더미에 가슴팍을 댄 채 쓰러져 있었다. 오른 발치에 떨어져 있던 성냥통은 대략 650개쯤의 성냥개비가 들어 있는 제품이었다. 사각 성냥통엔 두 면에만 적린(赤燐)을 바른다. 나머지 두 면에는 아버지가 매달 골라 새기는 그 달의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인간은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세상을 편안히 지낼 수 있다.’ 아우어바흐라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다음 문구를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편안을 누릴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이었다. 아버지는 일부러 목재 더미 위에 엎드려 잠이라도 자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잎이 다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벌목한 가을 나무들이었다. 속이 비어 있는 나무. 이태리 포플러는 잎이 나 있을 땐 힘이 없어 쓰지 못한다. 불이 가장 잘 붙을 때도 가을 나무일 때다. 아버지는 한손에 성냥통을 들고 있었을 거였고 적린이 없어도 서로 부딪치면 마찰을 일으켜 불을 낼 수 있는 게 성냥개비다.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죽음이었다. 불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 공장 사람들은 그런 말로 아버지의 죽음을 지나쳐가고 싶어했다. 불이 안 난 건 천만다행이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여길 게 틀림없었다. 불을 만들어야 하는 공장은 그 자체가 언제나 화재 위험을 안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쨌거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아버지 말이 맞을 때도 있었다. 뭐든 한가지를 너무 오래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정말 그렇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무리짓고 싶어하느라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만약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들이 650개나 되는 성냥을 다 그어대야 할 만큼 있었다면 심장이 마비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하천이 많은 곳이었다. 둘러싼 산맥들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여름에 가장 덥고 겨울에 가장 추운 데였다. 흐린 날과 강수량이 적어 사과나 자두 재배에 적합했다. 겨울은 말할 수 없이 길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면 J읍을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겨울이었을지 모른다. 인근에 댐들이 축조되면서 안개일수도 늘어났다. 자연은 이해할 수 없는 고리로 촘촘히 연결돼 있는 듯 싶었다. 안개일수가 많아지자 겨울이 더 춥게 느껴졌고 여름에는 우박도 자주 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국지적이었고 그 말처럼 자신의 영역과 한계를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그는 집을 떠난 이유가 단지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여기고 싶어했다.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그는 공장 마당, 낡은 의자로 가 앉았다. 그가 대여섯살 적에도 그 자리에 있던 나무의자였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벽에 걸린 아버지의 낡고 오래된 작업복처럼 말이다.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괴괴한 공장은 낯설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볼 때마다 달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그 일은 싫증나지 않았다. 그는 달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 떠올려보려고 했다. 누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먼 데서 본다면 사람이 아니라 도마뱀이나 악어 같은 변온동물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많은 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내는 동물들 말이다. 실제로 그 동물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는 마당을 가로질러 칠이 벗겨진 붉은 철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며 어둠이 뒤로 밀려났다. 공장 밖으로 나가 그는 아버지가 보았던 것들을 보았다. 쌓여 있는 목재 더미, 건조실 외부를 뒤덮은 담쟁이덩굴, 간격이 잘 맞지 않는 오선지 같은 전깃줄들. 그는 경사진 골목 아래 기숙사로 내려갔다. 공장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구내식당으로 쓰였던 곳이고 아직도 그 간판이 걸려 있었다. 성냥공장이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십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떠났고 구내식당도 쓸모가 없어졌다. 아버지도 그때 떠났어야 했다. 그건 그의 생각이었다. 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만 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쓸모가 없어진 구내식당의 의자와 테이블을 치우고 구들을 올리고 거기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자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니라 성냥만도 못한 놈이라는 짐작이 그때 처음 든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 감정들이 J읍을 떠날 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 휑한 방을 아버지는 기숙사라고 불렀다. 최사장은 아버지 숙소에 소형 텔레비전 한대를 들여놓아주었다. 그리고 한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공장 열쇠들도. 아버지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그 열쇠들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그는 도시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그런 것들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이불과 베개에서는 아버지 냄새가 났다. 톱밥과 담배를 섞은 듯한 냄새였다. 아버지는 시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공장 안에 ‘시간 엄수’나 ‘불 불 불, 불조심’이라는 주의 표시를 달아놓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는 잠을 자야 했다. 출근시간은 오전 여덟시. 걸어서 칠십보밖에 안돼도 늦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다시 J읍으로 돌아오다니, 그것도 이 성냥공장으로. 도시의 좁은 방에는 아직 내 이불과 읽지 못한 책들이 남아 있겠지. 울려도, 울리지 않아도 불안했던 전화벨 소리는. 집주인 할머니는 아직도 비 오는 날 새벽이면 공원에 가는 대신 맨발로 컴컴한 마루를 돌고 또 돌고 있을까. 마루에 간이벽을 치고 만든 쪽방이었고 장판도 그대로 연결돼 있었다. 방바닥에 모로 누워 있으면 그 장판을 통해서 발소리가 더 과장되게 들려왔다. 처음엔 벽돌 같은 데 대고 슥슥, 무딘 칼을 가는 소리같이 들렸고 그것이 굳은살 박인 발바닥이 장판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난 후에도 그가 느끼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비 내리는 새벽이면 거구의 할머니가 맨발로 마루를 쓸어대듯 천천히 걸어다녔고 그는 귀를 틀어막으며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 소리를 막아주는 망또를 정말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또 오토바이는? 신호도 무시해가며 아파트로, 골목의 집집으로 배달했던 납작한 봉투와 상자 속에 든 물건들은 뭐였을까?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던 물컹거리는 건 뭐였지? 그는 끙 하고 돌아누웠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차를 타고 겨우 오분 거리였다. 걸어서 가면 십오분. 매표소 옆은 할인마트, 매표소 이층에는 병원과 택시회사, 매표소 여자 이름은 신마리아. 홑겹에 눈이 가느스름한 여자. 그는 잠꼬대를 하듯 어둠속에서 이렇게 웅얼거렸다. 걸어서 십오분.
아침이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는 이불을 개고 공장으로 갔다. 다시 떠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나무를 자르고 벗겨내고 말리고 두약(頭藥)을 바르고 상자에 넣는다. ……성냥 한통을 만드는 일이 그게 다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버지가 성냥 만드는 일에 평생 매달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1공장에서 그는 펄펄 끓는 물통 옆에서 성냥 머리에 묻힐 황을 개고 있는 박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하던 일이었다. 그가 J읍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박씨는 주로 나무를 말리고 자르고 각을 만들어주는 전조기와 미각기 같은 기계를 다뤘다. 황 배합은 아버지 같은 사람, 그러니까 최사장이 가장 신뢰하는 직원이 아니고는 맡기지 않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질 좋은 성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황 배합 비율을 알려준 사람도 최사장이었다. 황 배합이 잘된 성냥은 발화력이 좋았고 무엇보다 습기에 강했다. 아버지가 만든 성냥은 염분이 많은 해풍 속에서 일하는 뱃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주원료인 염소산가리 때문인지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벽에 걸린 환풍기의 세기를 강으로 맞추고 회전시켰다. 옆에 걸린 때에 전 수건 한장이 펄럭거렸다.
한때는 백오십명이 넘게 일해도 손이 부족하던 공장이었다. 70년대 농한기에는 J읍 사람치고 공장 부업을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대지가 팔천 제곱미터도 넘었다. 지금은 일곱명이 일하고 있었다. 못 보던 사람도 있지만 일곱명 중 세명은 공장에서 근무한 지 족히 이십년은 되었다. 그래도 예전처럼 그에게 야, 야, 태오야, 같이 점심 먹자,라거나 퇴근 후에 뭘 할 거냐고 말을 붙여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곧 다시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공장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평생 키워준 홀아버지를 두고 어느날 온다간다 말도 없이 도시로 떠나버린 자식이었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혼자 해성식당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두번 사랑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머리를 자른 사람은 J읍에서 해성식당 양아주머니밖에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나흘 뒤부터 그는 매일 아침 공장으로 출근했다. 누구도 먼저 그에게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공장 안의 축열실과 철공부, 목곽부를 오가며 할 만한 일을 찾아다녔다. 최사장은 보고도 모른 척했다. 그는 화목용이나 버섯재배용으로 재활용될 못 쓰는 나무나 톱밥을 쓸어 한데 모아놓고 두명의 중국인 아주머니 틈에 끼어 대갑부나 소갑부에서 갑에 성냥알을 넣는 수작업을 도왔다. 오십년 전 열일곱살의 아버지가 공장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이었고 그는 자신이 이미 서른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다섯시가 된 모양이었다. 까만색 구형 그랜저가 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마스크와 면장갑을 벗었다. 둘째아들인 최상무에게 공장을 맡긴 후에도 칠십이 넘은 최사장은 자동차를 몰고 퇴근 시간쯤 공장으로 왔다. 아버지와 아저씨, 아니 최사장은 한가지 일을 오십년 넘게 해왔다는 데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공장 책임자가 되기까지 오십여년이 걸린 것을 두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성냥의 전성기가 지난 것도 벌써 오래전이다.
80년대 후반쯤 일회용 라이터가 등장했고 집집마다 가스레인지가 보급되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곤로 같은 것을 쓰지 않게 되었고 통통배의 수동 엔진도 자동식으로 교체되었다. 문 닫을 처지에 놓인 전국의 성냥공장들은 기계를 처분하고 값싼 중국산 성냥을 수입해오기 바빴다. 다방이나 모텔, 술집, 식당같이 판촉을 필요로 하는 데가 아니면 납품할 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느 모로 보나 성냥의 시대는 끝났지만 아버지도 최사장도 그같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신념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성냥을 만드는 일, 최고로 질 좋은 성냥을 만들겠다는 꿈이란 거기에 가장 먼저 속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관을 두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최사장은 울었다. 김반장이 만든 성냥이 최고였다, 니 성냥이 최고였다,라며 흐느꼈다. 관을 들어올리려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성냥개비처럼 마른 아버지의 생이 담긴 관은 뜻밖에도 너무나 무거웠다.
여름 오후 다섯시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도시에서는 한번도 그 시간에 일을 마쳐본 적이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러 다니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손을 씻고 나무의자에 앉아 퇴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럴 마음은 없었다. 최사장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바람이 불었고 옷과 머리카락, 그리고 콧구멍에까지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 먼지와 황 냄새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황 배합의 비율과 질 좋은 성냥을 만드는 방법이 꼼꼼히 적혀 있던 아버지 노트를 자꾸만 떠올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앞장에 김소봉이라는 이름 대신 K라는 이니셜로 써놓은. 바람도 더이상 불어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래는 닫힌 채 7월에 고여 있는 것 같았다.
사거리, 우체국 쪽으로 내려갔다. 퇴근 후에 아버지는 무엇을 했는지, 밤이 오기까지의 그 긴 시간을 혼자 어떻게 보냈는지 처음 생각했다. 이대로 내려가면 J읍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이 나오고 시장 안에는 해성식당을 비롯해 아버지와 매일 다니다시피 한 식당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다섯가지를 넘지 않았고 두사람이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시장에 가는 걸 뜻했다. 그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아버지를 자주 떠올리는 것,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가 지나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아버지는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아버지였고, 아버지가 원한 아들은 그가 될 수 없었던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이런 관계다. 그는 침울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배고픔 때문일 거였다.
어둠속에서 그는 성냥을 하나 슷 그었다. 불꽃이 일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성냥을 쥐고 있는 엄지와 검지가 뜨거워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채 열셋을 세기도 전에 소리 없이 불이 꺼져버렸다. 망할 아버지. 그는 중얼거리곤 도로 자리에 털썩 누웠다. 성냥 한개비에 불이 붙어 있는 시간은 뭔가를 결정하기에 역시 터무니없이 짧기만 했다.
장마를 앞둔 날씨는 뜨겁고 습했다. 공장의 낮은 담 밑으로 고양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누워 있었고 개들은 뼈가 든 음경을 세우고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그는 그 개들과 날개가 찢어진 채 포장도로에서 퍼덕거리고 있는 여름 나비들과 비키니 수영복의 하의만 입은 채 무람없이 강가로 뛰어가는, 아직 가슴 발육이 안된 어린 여자애들을 피해 걸어다녔다. 젊은 사람은 대부분 떠나버리고 노인만 남은 동네에서 어린 여자애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표적처럼 금방 눈에 띄었다. 볕에 그을린 여자애들의 상체엔 희미하게 수영복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타지 사람처럼 J읍을 걸어다녔다. 어디를 가든 활기차게 걷기는 어려웠지만 더 먼 데까지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공장이 쉬는 주말에는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연(蓮) 농사를 짓는다는 아버지의 사촌 집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연초록 커다란 연잎 위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가 이따금 정적을 깨듯 또르르 잎 가장자리로 떨어져내리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그는 연잎은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다 J읍으로 돌아오는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에도 밝은 초신성 하나가 차창 밖을 따라오다 사라져버렸다.
버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그는 도시에서 보낸 날들이 그리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기 전날, 물건을 배달하러 간 마지막 집에서였다. 벨을 누르자 예닐곱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문을 열었다. 요즘은 그만한 아이들도 낯선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곤 했다. 어른은 안 계시니? 부모님은 밤에만 돌아오세요. 그럼 집에 너 혼자뿐이냐? 매일 그런걸요, 뭐. 사내아이는 낯선 사람한텐 거짓말을 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그는 현관 바닥에 무거운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물 한잔 줄 수 있니, 목이 너무 마르구나. 아이는 안쪽으로 뛰어들어갔고 현관에는 그 혼자 서 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는 것 같았다. 그는 모자를 눈썹 아래로 눌러 썼다. 아이가 물잔을 내밀었다. 심심했는데 뜻밖의 즐거운 놀이를 하게 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터무니없이 넓어 보이는 집 안쪽과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아저씨? 물 말고 주스도 있어요. 아니, 아니다. 그는 돌아서려고 했다. 아저씨. 아이가 그를 불러 세웠다. 왜? 귀밑으로 땀이 흘렀다. 이거, 아저씨한테 선물로 드릴게요. 아이는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냐? 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행성이에요. 행성이라고? 얼결에 아이가 내민 것을 낚아채듯 받아쥐었다. 색칠한 야구공만한 크기의 스티로폼 공에 나무젓가락 하나가 손잡이처럼 끼워져 있었다. 차, 착하구나,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그는 손에 행성 하나를 든 채 아이의 집을 나왔다. 행성은 화성인지 금성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제법 알록달록하고 한쪽이 오목한 게 화성을 닮은 것 같아 보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최사장의 전화를 받고 짐을 꾸리다가 그는 두루마리 화장지 가운데 홈에 세워둔 그 스티로폼 행성을 얼마간 바라보았다.
양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은 간이 점점 짜졌다. 배추전과 부추전까지. 그는 크게 잘라 한입에 넣은 배추전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서너살쯤 아래인 양아주머니도 이제는 어머니뻘이 아니라 할머니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시장도 활기를 잃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을 꿀꺽 삼키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한병을 꺼냈다. 카운터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양아주머니가 그를 흘긋 보더니 어쩐 일이냐? 하는 표정으로 주방 쪽으로 갔다. 저녁마다 소주 한병씩 마셨던 아버지와 달리 그는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았고 그래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식당 벽 한쪽엔 소주병 뚜껑들로 뒤덮인 커다란 발이 하나 걸려 있었다. 양아주머니는 손님들이 시킨 술병 뚜껑들을 그 발에 끼워두었다. 수천개쯤 되는 초록색 병뚜껑이 걸린 발은 담쟁이덩굴 같았다. 형광등 아래 생긴 그늘 때문에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식당 안으로 바람이 불어올라치면 서로 부딪쳐 진짜 담쟁이덩굴처럼 스스스 소리를 내고는 했다. 그는 두손으로 병뚜껑을 비틀었다. 금속 뚜껑 끝을 잡아 늘리면 발에 끼우기 적당했고 고리처럼 단단하게 걸렸다. 그는 에어컨을 끄고 시장 골목으로 난 출입구 문을 열어두었다. 그러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병뚜껑을 발의 가장 아래쪽에 걸어두었다. 매번 아버지가 그랬듯. 천개, 혹은 이천개도 넘는 이 병뚜껑들 중 아버지가 마신 것은 얼마나 될까. 그는 소주 한잔을 목으로 넘겼다.
절반 안 넘겠나.
양아주머니가 길쭉하게 썬 오이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는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이든 다 잘하다가 한가지 실수로 갑자기 총애를 잃어버린 소년같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에게 못마땅하게 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최사장과 양아주머니, 공장 사람들, 시장 사람들 모두. 그는 새로 술을 따랐다. 최사장과 양아주머니. 이 둘은 아버지가 한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라는 여자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양아주머니는 딱 한번 어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눈이 길쯤한 여자였다고 했다.
양아주머니가 갖고 있는 아버지의 흔적은 저 병뚜껑들이 다일까? 그가 이 식당에 다니던 다섯살 때부터 봐왔던 양아주머니 머리는 언제나 단정히 빗어 뒷머리를 단단히 틀어올려 고정시킨 모습이었다. 평생 한번도 그 머리를 풀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은. 짧게 잘라 파마를 한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사람은 조금씩 늙지 않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서너개씩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듯 급격히, 갑자기 늙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최사장이나 양아주머니, 그리고 아버지.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장례식 이후 양아주머니는 한순간에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양아주머니의 빗장 같아 보이던 머리를 풀어보고 냄새를 맡아본 남자는 아버지였을까. 그 머리카락에서도 기름내와 족발, 수육, 칼국수 냄새가 났을까. 못 이기는 척 그런 냄새로 가득한 저녁의 집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서로. 사랑 직전의 것들은 있었을 거라고 그는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그랬을 거라고. 수영을 할 줄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저물어도 아직 날은 뜨거웠고 강이나 호수라면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벽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는 보고 싶었다. 남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가 보는 그의 모습을.
아줌마.
텔레비전에서 눈을 뗀 양아주머니가 무덤덤한 눈으로 그를 봤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전 식으면 말해라, 다시 지져줄 테니까.
양아주머니는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성냥을 칙 그었다.
목구멍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어디든 쓰러져 자고 싶었다. 집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그는 술 취해 집 안 아무 데서나 쓰러져 웅크리고 잠든 아버지 몸을 발로 넘어다니곤 했다. 시시한 장애물처럼, 주둥이가 풀어진 허룩한 자루처럼.
잠든 아버지는 꼭 그렇게 보였다.
윤전부를 돌리는 날이었다. 다듬은 나뭇개비 머리에 파라핀을 먹이는 작업부터 한다. 최초로 성냥을 만든 사람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지만 인을 묻히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황을 묻히기 전에 나뭇개비 머리에 먼저 파라핀을 먹이지 않으면 나무에 황이 잘 흡수되지 않았다. 이태리 포플러를 써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나무가 너무 무르거나 강하면 파라핀을 흡수하지 못한다. 이 나무의 장점은 무르면서도 질기고 완전히 건조된 후에는 잘 부러진다는 것이다. 제때 잘 부러지는 것도 중요했다. 무르면서도 단단한 목질. 공장이 성시를 이루던 때, 그가 유년이었던 시절만 해도 이태리 포플러는 신작로나 논둑 밭둑 어디든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나무심기를 장려하던 시절에 첫번째로 꼽히는 나무였다. 그때만 해도 삼사십년 후 그 나무가 고갈될 처지에 놓일 거라고 짐작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도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파라핀 솥에 불을 붙였다. 우물처럼 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사각형 솥이었다. 우물과 다른 게 있다면 그 안엔 차가운 물이 아니라 부글부글 끓는 파라핀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그에게 가장 주의를 준 데가 파라핀 솥이 있는 2공장이었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추기에 바빴던 그 시절에는 날마다 솥에 불을 때야 했고 파라핀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실수가 통하지 않는 위험물질이었다. 그가 보기에 성냥공장이 화약품 취급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폭탄을 만들 때도 필요한 염소산가리나 유황 때문이 아니라 바로 파라핀 때문인 것 같았다. 시멘트처럼 포대에 담긴 파라핀이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것은 얼마든지 있었고, 원한다면 누구라도 솥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솥 안쪽에서 천천히, 몰아붙이듯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는 간밤에 수첩에 적어둔 몇개의 문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성냥갑 옆면에 들어갈 문구를 찾아내는 것이 공장 업무 중에 그가 가장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성냥이나 나무에 대해 알려준 사실은 많아도 정작 성냥을 만드는 공정에 대해서는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솥이 달아오르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는 윗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사장실 쪽으로 갔다.
언젠가 아버지가 불의 종류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그는 불이란 그냥 확 타오르는 붉고 뜨거운 것, 그리고 꺼지는 거라고만 여겼다. 아버지는 소리 없이 웃었고, 역시 뜻을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불이 있다.
어떤 불이요?
좋은 불과 나쁜 불.
그걸 어떻게 구별하는데요?
나쁜 불은 너울거린다. 사납고 공격적으로 보이지.
좋은 불은요?
고요해. 침착하고, 부드럽지.
그런 불이 정말 있어요?
좋은 불은 뜨겁고 나쁜 불은 차갑다.
세상에, 차가운 불이 어디 있어요.
거기서 아버지는 입을 다물어버렸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는’ 같은 표현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짐작이 든 건 그후였다. 아버지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가 되고 떠나버리고 싶은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말했던 것은 불이 아니라 불꽃에 관한 것이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성냥은 더이상 성냥이 아닌 것 같았다. 불은 이제 누구나 다,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어낼 수 있다. 아버지의 삶이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차가운 불이 아니라 고요한 꽃, 침착하고 바라볼수록 위로를 받게 되는 불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버리지 못해서일 거라고 그는 단정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최사장과 최상무가 문 앞에서 주춤거리는 그를 동시에 돌아봤다. 최사장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최상무는 장식장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최상무가 쏘파에 앉아 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는 들려오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성냥공장에 이제 비밀은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아버지의 오래된 노트처럼. 최사장이 아버지에게만 알려준 황 배합의 황금비율도 더이상 소용없었다. 그걸 빼돌릴 데도, 옮겨갈 더 좋은 자리도 없었다. 아버지의 노트에 담긴 성냥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최사장 부자가 나누는 대화가 자신이 듣고 싶어했던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했다. 최상무 말이 옳았다. 틀린 데가 없었다. 월급도 제때 못 주는 달이 많은 데다 더이상의 적자를 감수하고 공장을 운영하긴 어렵다는. 사장은 딴 데를 바라보고 있었고 최상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성냥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늙은 아저씨의 말은 누가 듣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었다.
아버지는 성냥왕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황과 인을 섞어 화학성냥을 만들어낸 사람은 17세기 프랑스 화학자였고 그후에 영국의 약사가 마찰성냥을 만들었지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인정하는 사람은 안전성과 발화성이 높은 ‘안전성냥’을 고안해낸 스웨덴의 룬드스트룀이었다. 그러나 그 스웨덴사람이 고안해낸 성냥은 빠리에서 발명된 딱성냥이라고 불리던 ‘화성성냥’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딱성냥은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 문제로 여러 나라에서 제조가 금지되었다.
그러니까 룬드스트룀이 성냥의 왕인 거지.
아버지는 발음도 어려운 그 스웨덴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말했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지금 왜 그 성냥왕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지난밤부터 늦장마가 시작되었다. 빗방울은 간헐적으로 떨어졌다. 아주 강한 초대형 태풍이 북상할 거라는 예보도 있었다. 재해가 닥치기 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맡에 성냥과 양초를 챙겨놔야 할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빗줄기는 대단한 것이 못되었다. 예보는 빗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최사장은 어제 그에게 목재 더미에 친 포장을 좀더 단단히 단속하라고 말했다. 그는 문득 최사장의 귀를 가만히 잡아당기곤, 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를 피해 나무에 포장을 치는 것. 그가 공장에 와서 최사장에게 받은 첫번째 지시였다. 사장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공장을 세운 시절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 지독한 사람들이군. 아버지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장식장에는 원목 하치장에서 찍은 공장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놓여 있을 터였다. 소가 끄는 배달수레가 왼쪽에 있고 머리를 짧게 친 젊은 아버지는 쌓인 원목 위에 한 다리를 늘어뜨린 채 앉아 있었다. 1975년,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아버지 얼굴은 정말 낯선 사람 같았다. 즐겁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너무 더웠고 목이 탔다. 길이 4.2센티미터, 굵기는 채 2.5밀리미터도 안되는 보잘것없고 가느다란 나뭇개비. 세상에는 그런 일에 전생애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상무와 사장은 그를 흘깃 보고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검은 양초 물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솥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아는 사람은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성냥왕이라니. 그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사람들 앞에서 눈도 똑바로 못 뜨는 사람이 돼버린 건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파라핀 솥 앞에서, 성냥을 하나 탁 켰다. 밖으로 밀어서 켰다. 불꽃이 사납게 일렁거렸다. 황에 죽은 짐승이나 새의 뼈를 갈아 넣기도 했었다. 성냥을 켤 때 사람들은 성냥을 밖으로 밀었다. 아버지는 안쪽으로 당겼다. 안쪽으로 당기면 질 나쁜 성냥은 적린이 몸으로 튄다. 사람들은 불을 필요로 했지만 불을 두려워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성냥을 안쪽으로 당기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때에 성냥을 켜고 끄는 사소한 일만으로도 한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아버지였다. 장례만 치르고 돌아갈 작정이었는데. 그는 다시 고개를 내둘렀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J읍을 거의 떠나본 적이 없는 아버지에게는 타지가 고통이었다. 성냥 밖의 모든 세계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바로 여기가 그랬다. 지금 가자. 그는 혼자 말했다. 걸어서 가고 싶었고, 오후 다섯시가 되자 그렇게 했다. 성냥개비를 뚝뚝 부러뜨리며 걸었다.
여름이 가는 속도는 항상 동일하지도 일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시간에 속했다. 장맛비 속에서 그는 자신이 기다리는 것에 대해 떠올리려고 했다. 비가 그치지 않는 것이, J읍의 기상관측 이래로 강수일수가 기록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이 상태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는 규칙적으로 공장에 출근하고 해성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걷다가 지치면 시외버스 터미널 매표소 바로 앞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 한번은 매표소 유리창구 안쪽에서 표를 내주던 신마리아가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왜 타지도 않을 버스표를 자꾸 사가는 거냐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아래 지방에서는 폭염이 시작되었으며 아주 강한 초대형 태풍은 남동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몹시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 그래서는 안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뜻밖의 일,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두렵게 만들고 피난처를 찾아야 하는 그런 일. 폭우에 제방이 무너지거나 과수원에서 토사가 휩쓸려나가거나 수로가 막혀 물이 역류되거나 집들이 파손되고 누군가 매몰되거나 실종되는 일들. 그런 일을 지켜볼 때마다 여름의 절정을, 가장 위험한 순간을 무사히 지나간다고 위안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비가 내릴 뿐이었다. 거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나 쉬지 않고 몇날 며칠 비는 내렸다. 포플러 나무에도 톱밥에도 이불에도 아버지 노트에도 습기가 배었고 모든 것이 소리 없이 눅눅해지고 부풀었다. 그는 자주 성냥을 켰다. 불을 보면 생각이 많아졌다. 여느 때의 잡념과는 다른 데가 있기도 했다. 성냥을 켤 때마다 점화력이 좋지 않은 데 신경이 쓰였고 불의 밝기와 흔들림이 눈에 들어왔다. 성냥이 저절로 꺼지기도 전에 황급히 손을 흔들어 불을 꺼버리곤 했다. 그를 여기에 붙잡아두려는 것이 그 주황색 작은 불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많았으니까. 불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짐승의 골분이 아니라 지금은 규조토를 황에 배합하고 있으며, 규조토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노트에 적혀 있었다. 밤이면 그는 베개를 가슴에 댄 채 쥐며느리가 지나다니는 방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의 노트를 읽었다. 열하루 동안 눅눅해지지 않는 유일한 것은 아버지가 만든 성냥밖에 없었다.
열이틀째 되던 날, 동네 사과밭의 사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장맛비로 수분을 지나치게 흡수해 압력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사과들에 쩍쩍 금이 갈라졌다. 금이 간 사과는 불그죽죽한 작은 폭탄처럼 보였다. 그는 이것이 올 여름에 일어난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떨어진 사과 한알을 손바닥에 오래 올려두고 서 있었다.
7월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는 세수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신 후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출근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덮개 속의 목재들은 속까지 젖어 있을 거였다. 다시 나무를 말리고 자르고 건조실로 보내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공장 뒷문을 열었다. 마당으로 들어가 십미터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대갑부, 소갑부가 속한 3공장이었다. 그는 마당에 선 채로 3공장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컴컴한 출입구 위에 오래된, 이제는 희미해져 아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주의 표시가 걸려 있었다. 귀마개 착용, 주의 요망. 그리고 느낌표가 두개나 붙어 있었다. 아버지 필체였다.
성냥공장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하루 종일 공장의 모든 기계를 가동시켜야 했다. 성냥이 많이 팔려나갈수록, 주문이 많이 들어올수록 아버지가 공장에서 해야 할 일도 쏟아졌다. 학교가 파하면 그는 공장으로 와 놀았다. 마당은 넓었고 그때는 친구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늘 아버지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귀를 찢어대는 듯한 소음 때문에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아버지가 이토록 시끄러운 데서 일을 해야 하다니. 그는 아버지와 소리치면서 이야기하곤 했다. 아버지, 이러다가 귀먹겠어요! 괜찮다, 괜찮아. 누런 작업복을 입은 젊은 아버지가 성냥을 만들면서 껄껄 웃었다. 아버지, 내가 어른이 되면 요술망또를 만들어드릴게요. 소년은 호기롭게 말했다. 뭐에 쓰려고?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쓰는 망또요, 옆의 소리가 안 들리는 망또요. 아홉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던 아버지, 한번도 소년의 시절이 없었던 아버지가 또 크게 웃었다. 우리 아들이 최고다. 진짜예요, 제가 이런 소리를 막을 수 있는 망또를 발명할게요. 그래, 그래. 기다리세요, 네? 아버지. 소년은 벽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수건 한장을 껑충 뛰어 낚아챘다. 그러곤 그걸 망또처럼 어깨에 휙 둘렀다. 이렇게요. 그래, 그래. 귀마개 같은 걸로는 어림도 없어요, 제가 커다랗고 투명한 망또를 만들어드릴게요. 그걸 정적망또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정적, 정적망또라, 우리 아들은 커서 시인이 되도 좋겠다. 시인이 뭐예요 아버지, 저는 저 시끄러운 소음을 막을 수 있는 망또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니까요. 그래, 우리 아들, 어디, 어디 한번 안아보자! 땀냄새가 풍기는 아버지가 토시 낀 두팔을 벌린 채 소년을 향해 다가왔고 소년은 나 잡아보세요, 하면서 후다닥 공장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저놈 잡아라. 아버지는 두손으로 어흥, 호랑이 흉내를 내며 소년을 향해 큰 걸음으로 달려왔고 성냥공장 창립 15주년 기념 타월을 보자기처럼 어깨에 두른 소년은 캥거루같이 마당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나 잡아보세요,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그 젊은 아버지와 소년 사이에 다른 것은 없었다. 서로 더 많이 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앞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고 불편해하고 경계하다 서서히, 서로 비슷한 힘으로 서로를 밀어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소년은 공장 마당이 울리도록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작은 돛처럼 수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행복의 순간도 슬픔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게 이상했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천장의 얼룩처럼 차츰 번지며 짙어져갔다.
비가 그쳤고 구름 뒤에서 곧 해가 떠오를 것 같았다. 부지런한 공장 사람들도 하나둘씩 출근할 시간이 가까웠다. 소음을 차단해줄 수 있는 정적망또. 그는 그것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선가 실제로 그걸 만들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도. 망또의 원리는 개울물이 바위 주변을 돌아가는 것과 흡사하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그 원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잊을 수 없었다. 네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네 시를 성냥통에 새겨넣어주마. 젊은 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와!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자신의 시가 새겨진 사각 성냥통이 전국 각지의 다방과 숙박업소와 식당과 부둣가로 팔려나가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그 성냥을 실은 배가 먼바다로 항해하는 것도.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가 읽는 건 아버지의 노트였고 어젯밤 그가 외운 것은 황 배합을 위한 황금비율이었다. 성냥머리가 쉽게 부서지지 않는, 불꽃이 너울거리지 않는, 습기에도 강한 그런 최고의 성냥을 위한. 다 외우고 나서 그는 노트를 덮었다. 별은 동심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돌고 개울물은 바위 주변을 돌며 흐르고 연잎은 표면에 빗물을 밀어내는 미세돌기를 스스로 만들며 커간다. 세상에는 여전히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질서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성냥왕 K. 아버지는 성냥왕이었다. 햇살이 번져들고 있었다. 공장 안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귀마개가 필요할 만큼 많이 만들어내야 할 성냥도 없었지만 그는 그쪽으로 걸어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햇빛을 받으면 눈이 아플지도 몰랐다. 어둠이 아니라 그늘 속으로 그는 똑바로 걸어갔다. 그가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