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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조명 | 인터뷰

 

두근두근 내 인생, 무럭무럭 김애란

 

 

윤성호

 

 

ⓒ 송곳

ⓒ 송곳

 

 

어느날 문득 김애란. 라이프 스타일이니 상상력 만발 따위의 프레임에 현혹되지 않은 채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의 반지하, 또는 전세 5000만원에 가전제품 옵션이 하나 모자라는 신축 원룸 안, 적적한 밤에 미드를 쟁여놓고 아침 출근 때는 10분의 수면 연장과 택시비 5000원의 기회비용을 저울질하는 갓 어른이 된 우리의 존재방식에서 서사를 시작하는, 몇 안되는 작가. 그렇게 막연히 선망하던 상대와 일년에 한두번 술자리에서 얕게나마 교류한 지 몇해, 작가는 첫 장편을 냈고 나는 여전히 속절없는 꽁뜨만 전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양해야 마땅할 인터뷰를 어설프게 고사했다 다시 접수한 데는 김,애,란, 3음절의 역사에 적게나마 지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보다. 그리하여 딴엔 또 대화의 플롯을 위해 작가에게 ‘언탐(言貪)’의 혐의 따위를 소심하게 디밀어봤지만 괜한 수작이었다. ‘나 알아달라’는 수다를 내놓곤 그 좁은 메아리를 검색하는 데만 익숙한 고만고만한 영화감독은, 선량한 인물들의 발성을 풀어내는 조근조근한 문장가를 상대하기에 그리 내공있는 인터뷰어가 아니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

 

윤성호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실은 제가 끝까지 읽지 않고, 마지막 장을 남겨둔 채 나오려고 했어요.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이 이 인터뷰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끝까지 가버렸어요. 이 소설을 어떻게 쓰시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애란 지난 일년간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한 작품이에요. 그후에 서너달 정도 수정을 했고요.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나 구상을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중간에 도망치지 말고 한회 한회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썼어요.

 

윤성호 꾸준히 단편 작업을 해오셨는데, 장편을 연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김애란 그전에는 제가 많이 미뤘어요. 단편 청탁이 계속 있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두가지 작업을 동시에 잘 못해서요. 단편소설도 한번에 하나씩 쓰는 편이라 약속했던 일을 끝내고 쓰려 했어요. 그리고 체력을 기르고 싶었어요. 폐도 튼튼하게 하고, 근육도 좀 만들어서 마침표가 있는 곳까지 잘 달려가고 싶었어요.

 

윤성호 작품 제목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잖아요? 저도 ‘두근두근’이라는 단어와 인연이 있어요. 제가 만드는 꽁뜨 제목은 전부 이 말로 시작해요. <두근두근 영춘권> <두근두근 배창호>…… 최근에는 TV드라마 <최고의 사랑>에도 등장하던데요. 드라마 속 노래제목으로요. ‘두근두근’이라는 말을 빼앗겼다는 느낌은 없으세요?

 

김애란 그보다는 좀 머쓱해요. 작년에 연재를 시작하며 붙인 제목이고 필요해서 쓴 말인데 그 드라마의 분위기를 타고 붙인 것처럼 보일까봐. ‘두근두근’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책이나 캠페인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걸 가장 적절하고 어여쁘게 쓰신 분은 윤성호 감독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윤성호씨 작품에 친근함을 느끼고요.(웃음)

 

윤성호 TV 이야기와 나와서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소설에서 불치병을 앓는 주인공 아름이는 언제 더 살고 싶어지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죠. “오락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재치있는 애드리브를 던질 때, 동네 구멍가게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드라마를 보다가 우는 것을 봤을 때,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말도 안되는 성대모사를 하는 중년 남자를 볼 때……” 김애란씨는 대중매체가 주는 위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김애란 예, 좋아해요. 미국 드라마도 즐겨 보고요. 작품 안에서는, 둥둥 떠다니는 것보단 실제생활에 가까운 비유를 들고 싶었어요.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듯이 느껴지는 이미지들로요. 원래 목록이 훨씬 길었는데, 과한 것 같아서 좀 줄였어요. 아무래도 생활하고 가까운 소재를 고르다보니 TV와 관련된 표현이 많이 들어간 거 같아요.

 

윤성호 이렇게 독자의 공감을 얻을 만한 문장을 쓰다보면,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너희들, 이 문장 보며 무릎을 치겠구나! 하고요.

 

김애란 너희라뇨? 제가 독자를 얼마나 어려워하는데요.(웃음)

 

윤성호 작품 쓰시는 중에 심사숙고하다가 딱 맞는 단어를 발견할 때도 있지만, 마구 써질 때도 있지 않나요? 영화로 치자면 좋은 대사가 신들린 듯 술술 나온다거나, 관객이 열광할 만한 컷이 죽죽 이어지는 경우죠. 예를 들어 소설 속 이런 문장릴레이, “매미들은 줄기차게 울어댔다. 여름을 꽉 채우며, 여름을 팽팽하게 만들며. 나랑 해, 나랑 해, 하고. 나도 잘해, 나도 잘해, 하고.”

 

김애란 문장들이 속도를 내면 신이 나요. 어느 때는 문장을 쓴다는 기분보다 발견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쁘고요. 왜 SF영화를 보면, 투명한 액체로 된 문 같은 게 있어서 그걸 통과하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예전에 머리로만 이해했던 단어나 문장, 이야기가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윤성호 이번 장편에서 새삼 느낀 거지만, 특별히 말에 민감하고 애착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에 ‘말을 줍고 다녔다’ ‘많은 말을 배웠다’ ‘말을 가졌다’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말에 대해서 ‘말말말’ 하세요?(웃음)

 

김애란 일단 소설의 기본 재료니까요. 그리고 아름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어느 책에서 봤는데, 먹이피라미드에서도 제일 아래 있는 생물들은 집중력으로 살아간다고들 해요. 어떤 동물은 이빨이 날카롭고 어떤 동물은 뿔이 나는데, 아름이에게는 말이 주어진 게 아닐까 해요.

 

윤성호 실은 김애란씨가 그런 캐릭터니까 아름이를 이렇게 만드신 거 아닌가요? 말에 민감하고, 말밖에 가진 게 없는 아이로요. 제 경우에는, 이를테면 어떤 영화를 의뢰받아 준비할 때 캐릭터가 살아 움직여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관찰했거나 저를 닮은 인물을 만들곤 하죠. 이 소설에서는 조로증에 걸리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의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소설가 김애란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스스로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려고 아름이가 만들어진 건지 궁금해요.

 

애란 그보다는 나중에 아름이가 이야기를 쓰는 아이로 나오니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겹으로 들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성호 의외의 답인데요? 저는 아름이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대입한 캐릭터인 줄 알았어요. 조숙한 데다 언어에 민감하고, 세상에 대처할 무기는 말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아이. 창작에 대한 일종의 메타소설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金愛爛 소설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출간.

金愛爛 소설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출간.

 

김애란 작정하고 메타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어요. 이건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고 성장 이야기이기도 해요. 패스트리처럼 겹이 많아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 겹의 하나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윤성호 그 말씀을 들으니 좀 뜨끔하네요.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정체성을 너무 의식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아름이가 김애란이고, 아름이의 부모는 김애란의 단편에 등장했던 칼국수 만드는 어머니와 허풍쟁이 아비다, 이런 식으로요.

 

김애란 아무래도 가족 이야기는 쭉 써왔던 거니까, 조금씩 연결되고 겹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근데 놀 수 있는 마당이 커지니까, 여러가지를 해보고 싶었어요. 아름이의 엄마 아빠가 제 또래잖아요. 예전에는 주로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그렸는데, 이번에는 부모의 입장에서 얘기를 꾸려보고 싶었어요.

 

尹晟鎬 영화감독. 주요 작품 「은하해방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도약선생」 등.

尹晟鎬 영화감독. 주요 작품 「은하해방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도약선생」 등.

 

윤성호 제 나이가 만으로 서른넷이니, 아름이 엄마 아빠와 동갑이네요. 그래서인지 그들을 보며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래의 사람들이 이렇게 아픈 아이를 키우며 삶을 감당하고 있는데 김애란씨나 저나 아직 가족을 이루겠다는 뚜렷한 계획도 없잖아요.

 

김애란 저도 요즘은 아이 낳는 분들이 무척 용기있게 보여요.

 

윤성호 저 역시 가족을 이루고, 이렇게 한 개체를 책임진다는 게 너무 겁나요. 아름이처럼 몸이 아프든 아니든, 똑똑하든 아니든요. 그런데 창작하는 사람들이 생물학적인 후손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낮대요. 자기에게는 정신적인 후손, 자신의 복제품 같은 책과 영화와 음악이 있기 때문에요.

 

김애란 그래도 저는 둘 중에 선택한다면, 삶을 선택할 것 같은데요.

 

윤성호 살짝 예상했던 답이긴 해요. 그렇게 유한한, 어쩌면 통속적인 생활을 택한 서툴고 약한 인물들에게 또래 작가들보다 수행평가 점수를 높게 주시는 편이랄까. 가령 이번 장편 속 아름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김애란씨의 기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제가 현실에서 보는 남자들보다 착하고 무던한 거 같아요.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나신 건가요,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착한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김애란 어디선가 김유정 소설의 인물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제가 그린 인물도 나쁜 쪽보다 못난 쪽이 많지 않나 생각해요.

 

윤성호 진짜 악한이 나오는 소설, 하드보일드한 장르를 써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김애란 재미있는 장르의 문법을 보면, 질투도 나고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근데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아픈 아이라서 조심스러웠어요. 또 진짜 나쁜 사람 혹은 진짜 착한 사람이 소설에 등장하면, 그 인물이 기능적으로만 느껴져서 제가 주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울퉁불퉁하게 그리고 싶어요. 사실 저도 그런 걸요. 더러운 욕망도 많고, 세속적이고 허영심 많고 치졸하고요.

 

윤성호 어떤?

 

김애란 알고 싶으시면 저랑 결혼하셔야 돼요.(웃음) 사실 얼마나 복잡해요. 사람속이 구불구불해서 별게 다 들어 있잖아요. 선(善)이라는 게 이 축축한 진창 속에서 피는 찰나의 꽃 한송이라 더 귀한 거고요. 근데 그 꽃을 보고 제가 꽃밭을 그렸다고 보지는 않으셨음 싶어요.

 

윤성호 우리가 서로 안 지 삼년 정도 지났고, 호감이 있지만 막역한 친구가 되지는 못했어요. 제가 김애란씨를 굉장히 좋아하고, 만나면 신이 나는데도요. 지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김애란씨는 굉장히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예리함 때문에 함께 있는 게 즐거운 한편, 긴장이 돼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욕망, 인정욕구, 또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쳐놓는 설정까지 다 들여다볼 것 같아서요.

 

김애란 저는 소설가지 보살은 아니에요.(웃음) 대신 그런 건 있어요. 팔짱을 끼고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앞에서 끌어주는 게 아니라, 옆에서 같이 걷고 싶다는.

 

윤성호 아름이의 첫사랑 서하가 이렇게 말하죠. “똑같이 되고 싶다…… 웃기지? 똑같이 한심해지고, 똑같은 실수를 하고, 똑같이 착각을 하고 싶다.” 일상의 비루함과 천박함에 대해 이 소설은 갑자기, 그렇게 똑같이 한심하고 싶다, 한심함이 얼마나 예쁘냐, 얼마나 절실하냐고 되물어요. 이런 게 고마우면서도 이상해요. 승승장구하는, 전도유망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어떻게 우리 같은 이들의 변명을 이렇게 잘해줄 수 있을까 하는 거지요.

 

김애란 저 같으니까, 제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아, 겸손한 거 싫어하시죠?(웃음) 제가 모두를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면 그거야말로 오만인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 안에서 출발한 이야기들, 그럼에도 다른 사람과 나눌 만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스무살엔 제가 되게 똑똑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스물한살이 되자, 겨우 한살 차이인데도, 스무살에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혀를 찼고요.

 

윤성호 그런 티를 많이 내셨나요?

 

김애란 나이 많은 학교 동기들하고 이야기할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당신들 상대가 되는 사람이에요 하며 드러내려고 했지요. 사실은 내가 상대가 되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날 받아준 거였음을 깨닫고 나중에 참 고마웠고요. 이담에 마흔살이 되고 쉰살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 무엇이 바뀌려나, 그리고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일까, 궁금해져요. 또 아주 예쁜 나이가 있잖아요. 20대의 십년요. 그 십년 동안 활짝 피고 다음 오륙십년은 시드는 일만 남잖아요. 생물학적으로는요. 그래서 나머지 오륙십년은 끊임없이 그 십년의 환함을 힐끔거리면서 살아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학생 보면 그러시지요?

 

윤성호 저는 대놓고 막 쳐다봅니다.(웃음) 소설 끝부분에 아름이가 “내가 아버지를 낳아드릴게요, 어머니를 배어드릴게요”라고 하잖아요. 말하자면 자기가 쓰는 문장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거지요. 저는 이게 창작에 대한 상당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또한 이처럼 문장을 치밀하면서 리드미컬하게, 말하자면 시(詩)처럼 쓰시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언어에 취할 때가 있잖아요.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목소리를 즐기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작가 입장에서는 어떠세요?

 

김애란 추파를 던지는 마음으로 써요. 실제로요. 근데 이 작품은 장편이니까 너무 힘이 들어가면 지칠 것 같아서 긴장을 조금 풀고 쓰려 했죠. 하지만 예쁜 문장은 아니더라도, 게으른 문장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되도록.

 

윤성호 추파를 던진다는 표현이 참 좋아요. 저는 사실 거의 모든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애란 너무 열심히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종종 질릴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추파도 요령인 거 같아요.(웃음) 실제로 이번 장편을 쓰면서 저도 새삼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 장면의 박자나 리듬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이 부분은 1인칭보다 3인칭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 정보는 여기에 오는 게 최선일까 하는 식의. 단편에서 안하는 고민은 아니지만 이번에 훨씬 적극적으로 궁리하게 됐던 것 같아요.

 

윤성호 요즘은 대중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잖아요.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게 좋지만, 가끔 허무하기도 해요. 그걸 잠시 채워주는 게 그런 반응들을 찾아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묻게 돼요. 왜 내겐 영원한 게 없을까, 나를 도약시켜서 늠름하게 만드는 건 없는 걸까. 김애란씨에게도 묻고 싶어요. 영원한 것, 그러니까 진짜 가치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 재미없는 세상을 버티면서 계속 쓰시는 건지……

 

김애란 글쓰기는 오랫동안 혼자서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이 더 궁금하고,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여러 반응을 살피다보면, 격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용기를 잃을 때도 많아요. 근데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밖으로 나가서 더 크게 숨 쉬고 더 많이 만나고 싶은 욕구도 들지만, 소통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싶기도 해요. 또 어느 때는 반대로 소통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싶기도 하고요. 가끔씩 찾아오는 찰나의 순간들, 그 작은 교감의 순간이 사건일 수 있겠다 싶고요. 그래서 그 순간에 집중하고 그것을 포착하고 싶어요. 제가 올해 서른둘인데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어요. 하지만 그냥 헛손질, 제가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지려고 허우적거렸던 손짓을 계속하고 싶어요. 살면서 생각이 끊임없이 바뀔 것도 같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뭔가 만지려고 했던 움직임, 그거면 됐다 싶어요.(2011624일 서울 원서동 까페 7-19)

 

*

 

그래서 독백. 맞아요, 애란씨. 근데 그래서 자꾸 아득해져요. 이제 방세도 늦지 않게 내고 통장잔고도 있는데, 홍대와 강남과 이태원과 포털싸이트 도처에서 부풀어가는 저 같은 속물들의 여전한 욕망은 무엇인가요. 고운 소설, 고운 인물을 만나면 이렇게 제 안에서 우문이 늘어요. 내 말의 많은 부분이 뻥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입을 다물려다가도 또 가끔 뱉는 한마디가 진실한 무엇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싶어 차라리 블라블라 떠들게 돼요. 이렇게 너풀대는 말들에서 어떤 진심을 봐줬으면 하지만, 막상 진심이랄 게 없음을 깨달아요. 안돼, 성호야, 이러다 순식간에 꼰대가 돼. 못난 마음을 들킬까봐 속이 덜컹거리는 거 말고 누구처럼 제 동행의 인생이 예쁘고 짠해서 두근두근거리고 싶어. 옳게 늙을 수 있을까? 무럭무럭 늙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