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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미국대학 우위론을 다시 생각한다
하워드 홋슨 Howard Hotson
옥스포드대학 쎄인트앤즈 칼리지 교수, 근대지성사. 저서로 Commonplace Learning: Ramism and its German Ramifications, 1543-1630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Don’t Look to the Ivy League”이며, London Review of Books Vol. 33, No. 10, 19 May 2011에 수록된 것을 번역했다. ⓒ Howard Hotson 2011/한국어판 ⓒ 창비 2011.
브라운 보고서(Browne Report, 대학에 대한 정부보조금 삭감과 등록금 상한선 폐지 및 등록금의 대학 자율운영을 골자로 하여 2010년 10월 12일에 발표된 영국의 고등교육정책 보고서—옮긴이)와 정부 고등교육정책의 핵심은 하나의 단순한 개념인데 경제학에 근거를 두었다는 주장이다. 즉 고등교육 부문에 시장의 힘을 도입하면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가격은 낮출 거라는 발상이다. 이러한 결과를 예언하는 장관들의 자신감은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만 아니라면 한층 안도감을 줄 법도 하다. 수업료의 상한선인 9천파운드(한화 1620만원—옮긴이)에 근접하는 부담을 학생들에게 부과하는 대학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이는 산업부 장관 빈스 케이블(Vince Cable)이 거듭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로 대학의 합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대학교육의 수준으로 말하자면—대학・과학부 장관 데이비드 윌레츠(David Willets)가 작년에야 대학의 지위를 부여한—BPP 유니버씨티 칼리지를 소유한 미국 회사는 주주들을 속인 것이 발각된 후 미국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학위의 직업적 가치를 학생들에게 속였다는 이유로 미국 고등교육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주로 수업료를 통해 대학교육의 재원을 마련하는 근거 중 하나가 영국의 대학에 민간 공급자들이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뉴스는 정부 정책의 타당성을 더욱 의심스럽게 만든다.
대학의 수준이 언급될 때마다 으레 비교근거로 드는 것은 THE-QS 연간 세계대학순위다.* 2004년 이래 이 순위표는 ‘미국 대학들이 세계순위를 지배한다’는 식의 머리기사와 함께 발표되었다. 그리고 매년 순위는 대동소이하다. 평균적으로 미국이 상위 20개 대학 가운데 13개를 차지하는 반면, 영국은 4개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대학은 순위표의 하위권에서도 영국 대학을 능가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 자연스런 우위에 어떤 나라도 도전조차 하지 못한다.
정부정책이 지금처럼 시장원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는 데 이런 순위표가 기여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표에서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13개의 미국 대학 가운데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사립대학인데, 신자유주의적 성향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현상을 우연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미국 사립대학들의 전지구적 우월성이 경쟁적 시장원리를 받아들인 결과라면 그런 시장이 영국에 도입되는 즉시, 우리도 ‘수준을 올리는’ 시장의 마법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영국 고등교육을 민영화하고, 미국 대학과 경쟁하고, 영국에 사립대학을 세우기 위해 미국 회사들을 불러들이는 정부의 열의는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 순위표의 상위권을 장악한 미국 대학의 지배가 너무도 압도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떠받치는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순위표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가령 순위표를 훑어보고 잽싸게 대학정책으로 넘어간 언론계 인사나 정치인들은 미국이 영국보다 큰 나라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미국의 인구가 3억 1100만이니 6200만인 영국보다 다섯배가 크다. 이것만 봐도 세계대학순위에서 미국이 3대 1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은 빛이 바랜다. 사실 지난 7년간 인구비율로 보면 상위 20위에 든 대학이 미국(2390만명당 1개 대학)보다 영국(1550만명당 1개 대학)이 더 많다. 그리고 상위 20위에 든 영국 대학들(학생수 2만 500명)이 평균적으로 미국 대학(학생수 1만 7300명)보다 조금 더 크기 때문에 인구 대비 거의 두배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20개 대학에서 공부해온 것이다(756명당 1명 대 1383명당 1명). 경제적 관점에서는 두 나라의 격차가 더 커진다. 미국의 국민총생산, 즉 GDP(14조 658억달러)는 영국의 GDP(2조 247억달러)보다 6.5배 높다. 지난 7년간 영국은 각각의 재정자원 단위로 보면 상위 20개 대학을 미국보다 두배나 더 많이 유지해온 것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영국보다 고등교육에 휠씬 많은 국가재정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OECD에 따르면 영국은 GDP의 1.3%를 고등교육에 투자했는데, 이는 정확히 EU의 평균치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3.1%를 지출했다. 따라서 미국은 영국보다 6.5배 더 큰 재정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4배나 많은 액수를 고등교육에 쓴다. 이를 계산해보면 미국이 고등교육에 투자한 재정자원은 영국보다 15배 이상 크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이런 세계대학순위에 따르면, 그 15배의 투자는 교육의 탁월성 면에서 3배의 보답도 받지 못했다. 영국은 미국이 지출하는 비용의 1/5정도만으로도 상위권 대학들을 운영해온 것이다.
상위 10개 또는 20개 대학이 대개는 모든 관심을 독차지한다. 순위표에 포함된 200개 대학 전체를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7년간 상위 200개 대학의 평균 순위에 대한 요약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2010~11년의 THE 세계대학순위 지표를 검토할 수는 있다. 상위 50위 대학에서 미국은 영국의 대학보다 5대 1의 비율로 앞서고 있다. 그다음 순위(51~100위)에서는 경쟁력을 잃기 시작해서 미국 대학의 비율이 3대 1로 떨어진다. 101~200위에서는 두 나라가 차지하는 순위의 수가 휠씬 줄어든다. 다른 나라의 대학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여기서 미국 대학과 영국 대학이 실질적으로 백중지세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대학은 순위표에 상당히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바, 이는 최상위권에서 중위권, 하위권까지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대학들이 포진해 있음을 뜻한다. 반면 미국 대학의 체제를 보면, 재정자원이 소수의 부유하고 독점적인 사립대학에만 매우 불균등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누군가 전세계 대학에서 100개 대학만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순위표의 하위권은 무시해도 된다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 국립교육통계쎈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4년제 학위를 제공하는 대학은 2774개다. 따라서 상위 200개 대학 중 72개의 미국 대학은 4년제 학위를 제공하는 대학의 2.6%에 불과하다. 이는 THE 순위에서 받는, 투자 대비 형편없는 가치라는 인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미국 고등교육기관의 95%에 쏟아붓는 자금—공적이든 사적이든—이 세계대학순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위 200개 대학 중 29개의 대학이 올라와 있는 영국은 고등교육통계청에 등록된 165개 대학의 거의 1/5을 포함시킨 셈이다. 따라서 평균적으로 볼 때 영국은 미국보다 전세계 상위 200위에 진입한 대학이 거의 4배나 많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몇몇 필요한 수정사항을 데이터에 반영한다면 좀더 실상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먼저 인구수를 기준으로 수치를 조정한다면 영국은 처음부터 미국의 최상급 대학과 겨룰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두 나라는 1인당 사실상 동일한 수의 상위 50위권 대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위 50위권에서 51~100위로 옮겨가면 영국이 앞서기 시작한다. 101~200위에서는 영국이 미국보다 1인당 4배가 더 많은 대학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6.5대 1인 두 나라의 GDP 비율까지 고려해 넣는다면, 순위권 전체에서 영국이 미국보다 낮은 1인당 자원을 한층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영국보다 고등교육에 GDP 대비 두배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까지 계산에 넣을 때, 고등교육에 대한 영국의 투자는 심지어 미국 제도의 강점이 집중된 최상위 대학에서조차 거의 3배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1~200위에서 영국의 대학은 투자 대비 무려 12배나 더 나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일견 미국 대학제도의 월등한 장점을 증명하는 것 같은 자료조차, 가장 기본적인 분석만 해봐도 전혀 딴판임을 보여준다.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미국 대학은 분명히 최고 중의 최고가 아니다. 투자 대비 가치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면, 특히 긴축의 시대에 미국 모델은 영국이 추종해야 할 상대가 전혀 아니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분석이 정부정책에 말해주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사적 부문의 경쟁이 학문적 수준을 올린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시장경쟁이 가격을 올린다는 명백한 증거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학문적 탁월성은 영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요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일까? 소수의 엘리뜨 대학에 시장가격 제도를 도입하면 왜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량의 엄격하게 제한된 아주 양질의 상품—가령 하바드대학 같은 곳—이 진정으로 개방된 시장에 들어가면 그 사회의 가장 부유한 집단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 가격을 올린다. 이것이 소득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이래 상위권 미국 대학에서 일어난 현상의 본질이다. 수십년간 처음에는 가장 비싼 대학에서, 그다음에는 사립대학 전역에서 생활비 물가상승률의 두배, 세배, 심지어 네배로 수업료가 올랐다. 그래서 미국에는 이제 수업료와 기숙사비로 연간 최소한 5만달러를 학생에게 부과하는 사립대학이 100개도 넘는다.
이것이 미국 고유의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진보한’ 형태의 소비문화에서 파생한 결과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작동하는 논리는 영국의 좀더 작은 교육시장이라는 맥락에 놓으면 분명해진다. 경쟁의 도입은 즉각적인 생산이 가능한 상품시장에서만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만약 어떤 회사가 비효율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너무 많은 이윤을 거둬들인다면 더 효율적인 생산방식이나 경량화된 사업모델에 의해 추월당할 수 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생산할 수 없는 것들도 있는데, 유서깊은 대학들이 좋은 예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는 영국의 다른 경쟁 대학보다 600년이나 앞서 출발했다. 이들 대학이 누리고 있는 많은 잇점은 그 장구한 역사의 산물이다. 이들 대학의 건축환경, 도서관, 서고, 고유한 개인지도, 강의제도, 대학의 조직, 자치행정 등과 수십 세대에 걸친 학자, 철학자, 과학자, 시인, 총리들에 의해 축적된 대학의 명성 등등. 이들 대학의 경쟁자는 상대방을 능가하는 장점은 고사하고 어떤 가격으로도 이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가 제공하는 ‘학생경험’(student experience)은 많은 사람들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 법령의 규제에서 자유롭다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을 것이다. 둘이 서로 경쟁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말이다.
따라서 수업료의 상한선이 폐지되고 진짜 시장이 도입되고 대학이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각자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면, 즉 빈스 케이블이 생각한 것보다 대학이 더욱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면, 영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자.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는 수업료를 극적으로 인상할 것이다. 무엇보다 수업료, 정부보조금, 연구수입을 통해 버는 것에 더해, 자체 재정에서 매년 개별 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투자하는 약 8000파운드를 메우기 위해서 말이다. 더 능력있는 아이를 가진 덜 부유한 부모들이 근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수업료를 인상할 기회를 부유한 부모는 즐거워할 것이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수업료가 그렇게 오르면 영국의 다른 모든 대학이 수업료를 인상하기 시작할 것이다. 돈벌이가 잘되는 전문직 학위를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은 가령 옥스포드 같은 학교의 인문학 학위의 수업료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까지 올리려고 할 것이다. 영국의 대학순위에서 밑으로 갈수록 수업료 상승률은 점진적으로 떨어질 텐데, 바닥 근처의 대학들은 장관들이 줄곧 의도한 대로 6000~9000파운드선 안쪽에서 가격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시장의 힘은 미국의 사립대학이 그토록 비싸진 원인이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 쏟아붓는 그 모든 여분의 자금은 대학순위에서 왜 그토록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런 자금의 상당부분이 학문적 탁월성 이외의 다른 곳에 투입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 대학의 지도자들이 이런 자금의 누수를 보아넘긴 것은 아닌바, 이들은 자금 누수를 영국정부가 미국에서 수입하려고 계획하는 시장 주도의 대학문화, 즉 ‘학생경험’에서 찾았다.
컬럼비아대학의 교무처장과 학장을 지낸 조너선 콜(Jonathan Cole)은 작년에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에 이렇게 썼다. 즉 수업료 인상 외에 미국의 고등교육에서 비용이 증가한 주요인은
학생들은 ‘고객’이며 고객은 언제나 옳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구매해줘야 한다는 비뚤어진 가정이다. 심리상담에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포시즌(the Four Seasons, 캐나다에 본부를 둔 5성급 호텔 경영회사가 운영하는 위락시설—옮긴이)과 맞먹는 기숙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활동, 운동, 체육시설, 하계 취업지원, 외부위탁 식당 등에 집중하는 부서 수는 행정인력의 확대 및 행정비용의 증가를 불러온다.
만약 콜의 말이 맞다면 고등교육 부문의 민영화는 정부의 예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하나가 아닌 두개의 별개 사태를 일으킨다. 한편으로 상위 대학끼리의 실제 시장경쟁은 교육부문 전역에 걸쳐 평균 수업료를 올린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경험’의 판매는 대학재정의 지속적인 상승분을 학생‘고객’에게 전가한다. 첫번째 기제가 가격을 올리는 반면, 두번째는 들인 돈에 비해 거둘 수 있는 학문적 가치를 떨어뜨린다. 오른 수업료가 사치품에 낭비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험으로 본다면 편안한 시설, 풍부한 사회적 행사 프로그램, 최신식 운동시설 등은 대다수 18세 학생들이 자신의 ‘학생경험’을 선택할 때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의 선택이 ‘수준’을 올리는 동력이 된다고 할 때, 올라가는 수준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종류다.
더 나쁜 것은, 영국 정부의 관료들이 아름답게 다듬어진 미국 대학의 캠퍼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미국의 10대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영국 최고의 대학들조차 겉모습이 추레한 데 익숙한 그들은 부유한 미국 대학들이 제공하는 고급 시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망각한 것은 그토록 많은 영국 대학 건물들이 낡은 까닭은 학문적 경쟁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난 20년간 지속된 의도적인 정부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의 수입을 단단히 억제하는 동시에 학생수를 늘리며 RAE(Research Assessment Exercise, 4개의 영국 고등교육지원위원회가 대략 5년마다 대학의 연구결과를 평가하는 제도—옮긴이)를 통해 연구를 우선시함으로써 수업과 현행 건물의 관리보다는 학문적 업적 달성을 높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건물 신축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시장이 학문의 수준을 높이는 긍정적인 부수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많은 부분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장이 높일 가능성이 가장 큰 학문 수준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학점이다. 왕년에 미국 대학의 평균학점은 C였다. 요즘은 대학이 비싸면 학점도 높다. 사립대학의 평균학점은 이제 A-이다. 학점 인플레가 수업료 인플레와 어떻게 그토록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가? 이유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만약 4년제 학위과정에 20만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가장 비싼 100대 대학을 다닌다면 학점도 좋아야 한다. 이런 요구를 무시한다면 그 대학에 대한 ‘학생 만족도’는 추락할 것이다. 그 학위에 기꺼이 투자하려는 부유한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이런 사립대학들은 학교 전체에 걸쳐 수준을 고르게하기 위해 외부의 평가위원을 위촉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점점 높은 학점에 대한 학생주도의 수요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생들에게 떠밀려 시장의 힘을 도입해서 얻는 순수한 효과는 관료들이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씨스템 전체에 걸쳐 학문적 인증의 가치는 저하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시장 경쟁이 학점의 수준뿐 아니라 학문의 실질적인 학업 성취도 역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세계대학평가(World University Rankings)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세계에서 사립대학들이 서로 경쟁하고 휠씬 대량의 공립대학 집단과 경쟁하는 유일한 곳이 미국이다. 그리고 미국의 자료는 이런 경쟁이 공립대학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 7년간 THE-QS의 총순위에서 상위 20개 대학을 보자. 그 모든 아이비리그(Ivy League: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등 미국 동부의 7개 전통적 명문대학들—옮긴이)의 유명 대학을 거쳐 순위를 내려가면 마침내 20위로서 유일하게 공립대학인 미시간대학을 만난다. 미시간대학은 캐나다와 스위스에서 가장 좋은 공립대학(각각 공동 17위, 19위) 바로 아래 있고 캔버라 소재 호주국립대학(14위)보다도 밑에 있다. 캐나다의 인구와 경제 규모는 미국의 1/10이고, 따라서 자료는 캐나다의 공립대학 부문이 1/10의 자산을 동원하고도 미국의 대학을 살짝 능가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스위스는 미국과 대비하여 GDP가 1/30, 인구는 1/40에 불과하지만 미국을 앞질렀다. 그리고 호주도 1/14의 인구와 1/12의 재정으로 지난 7년간 미국의 공립대학 부문을 앞서는 데 어떤 식으로든 성공했다. 최근까지 단 하나의 작은 사립대학만 20위권에 들어 있던 영국은 최고의 공립대학 중 4개 대학을 상위권에 올렸다. 지난 7년간의 평균 순위는 2위, 공동 3위, 7위, 12위다. 우리가 만약 5배 차이가 나는 인구까지 넣고 계산한다면 영국의 시민은 미국의 시민보다 일급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기회가 20배나 많다.
2010~11년 THE 순위에서 상위 100개 대학 가운데 미국 대학의 지리적 분포를 살펴보면 또다른 흥미로운 양상이 드러난다. 순위표의 상위에 있는 가장 부유한—모든 아이비리그 대학을 포함한—사립대학들은 매싸추쎄츠에서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미국의 북동부 연안에 집중되어 있다. 윌레츠가 암시하는 것처럼 만약 사립대학들 근처에 있어서 그 영향을 받아 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면 동일한 지역에 좋은 공립대학이 모여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공립대학과 부유한 사립대학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전자의 성취도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 사례를 가장 잘 대표하는 주립대학 씨스템은 상위 10위 중 2개 대학을, 상위 100위 대학 중에는 9개 대학을 거느린 캘리포니아주에 있다. 이는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GDP가 상위 100개 대학 가운데 14개의 공립대학을 보유한 영국의 GDP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 주목할 만한 비교대상은 캘리포니아의 경제적・지적 호적수인 뉴욕주다. 뉴욕주는 컬럼비아, 코넬, 뉴욕대(NYU), 그리고 뉴욕주보다 남쪽 또는 북쪽에 위치한 아이비리그 학교들과의 시장경쟁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뉴욕주의 경제는 영국의 정확히 절반이지만, 공립대학 중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스토니부룩 소재 뉴욕주립대학(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은 전세계 순위에서 초라하게도 78위에 불과하다. 100위 안에 든 미국의 다른 14개 공립대학 가운데 10개는 큰 사립대학이 없는 남부와 중서부, 서부에 있다. 미시간대학(공동15위), 워싱턴대학(23위), 조지아공대(27위), 위스콘씬-매디슨대학(공동 43위), 미네쏘타대학(52위) 오하이오 주립대학(66위), 콜로라도-보울더대학(67위), 버지니아대학(72위), 유타대학(공동83위), 애리조나대학(공동 95위).
그러니, 다시 한번, 경험적 자료는 정부의 현재 가정을 곧바로 부정한다.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은 빈사상태의 공립대학에 활력을 주는 데 필요한 경쟁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 대학은 체제 안에서 자원의 불균형한 몫을 빨아들임으로써 이웃 대학을 궁핍하게 만든다. 이들은 최고의 실험실을 짓고 최고의 도서관을 채우고 가장 저명한 교수진을 사들일 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설은 가장 우수하고 부유한 학생을 끌어들이고 사회적・지적 명성의 시장을 독점한다. 이들은 좋은 공립대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그들 주위에서 빨아들인다. 상위 100위권 대학에 진입한 대다수 공립대학은 아이비리그로부터 미국의 광활한 대륙이 허용하는 만큼 멀리 떨어져서나 유지된다. 상위 100위권을 벗어나면 미국 대학의 성과는 확 떨어진다.
세계대학순위에 대한 사실적인 해석은 영국정부의 현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가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에서의 시장경쟁은 사립대학의 수업료를 올렸고 그로써 좋은 공립대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모조리 흡수했다. 시장경쟁으로 인해 그런 자원은 학문적인 우선과제보다 ‘학생경험’을 개선하는 데 엄청나게 낭비되었고, 시장 주도의 학점 인플레를 통해 학문적 신뢰를 떨어뜨렸다. 미국에서 편향적으로 민영화된 대학제도는 ‘최고 중의 최고’가 아니다. 투자 대비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의 대학제도가 훨씬 낫고 아마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윌레츠는 보건부 장관의 선례대로 ‘입법과정의 자연스런 틈새’**를 이용해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번역 | 유희석・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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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의 타임즈 고등교육지(Times Higher Education, THE로 약칭) 및 QS국제교육연구기구(Quacquarelli Symonds)는 합동으로 THE-QS 세계대학순위를 발표했다. 2010년 THE는 새로운 방법을 채택하여 독자적으로 순위를 매겼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내가 수집한 자료 가운데 2004~2009년 자료는 THE-QS 세계대학순위에서, 2010년 자료는 QS 순위에서 뽑았는데, 둘다 같은 방법으로 수집되었다. 2010~11년 자료는 THE 세계대학순위에 근거한 것이다.
**영국 보건부 장관 앤드류 랜슬리(Andrew Lansley)는 지난 5월 하원에 제출한 국가보건의료체계(NHS) 개혁안이 의회의 수정요구에 부딪히자 이 법안이 상원으로 송부되기 전의 기간을 이용해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