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과 현장
맑스의 비판적 유물론과 ‘단일한 과학’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사적 전환」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오늘날 인문학과 과학의 분열을 극복하는 과제의 모색에서 19세기의 인물 칼 맑스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묻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자기 시대에 이미 단일한 과학의 수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떤 뜻에서 과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맑스의 사상적 발전과정에 대한, 즉 변화나 단절 여부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맑스가 인간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는 단일한 과학을 제창한 것은 두번인데,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이하 『초고』)와 1845~46년 엥겔스와의 공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저술 간의 사상적 대립관계 여부—종종 인간주의 철학과 유물론적 과학으로 대비되어—는 맑스를 둘러싼 논쟁 가운데서도 극심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양 저술에서 단일한 과학을 주장하는 전반적인 논조도 약간 다르다.
역사 자체는 자연사의 현실적(wirklich, 혹은 진정한) 일부고 또한 자연이 인간으로 생성되어가는 현실적 일부다. 앞으로 인간과학이 자연과학을 포괄하듯이 자연과학은 인간과학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과학이 존재할 것이다.(강조는 맑스)
우리는 오직 하나의 단일한 과학(eine einzige Wissenschaft), 즉 역사과학만을 알고 있다. 역사는 자연사와 인간사라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고 그렇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양 측면은 분리 불가능하다. 자연사와 인간사는 인간이 생존하는 한 서로 의존한다. 자연과학이라 일컬어지는 자연사는 지금 여기서 우리 관심사는 아니다.1)
두 저술 간 차이는 겉보기에도 드러나는데, 가령 『초고』는 철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분열된 현실을 비판하는 반면, 『독일 이데올로기』는 ‘철학’의 종언을 공언하면서 처음으로 유물론적 역사관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맑스가 ‘단일한 과학’을 주장한 참뜻을 알고자 할 때 어느 쪽에 의지하는가에 따라 견해가 갈리고, 게다가 논자들 스스로 어떤 과학관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옹호와 비판이 겹쳐져 논쟁이 얽혀 있는 실정이다. 물론, 맑스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한다고 한 『자본』의 주장은 어딘가 『초고』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초고』에 대해서조차 하버마스(J. Habermas)처럼 인간과학을 자연과학이 포괄한다는 발상에 『자본』에서 드러나는 실증주의가 잠재되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는가 하면, 알뛰쎄르(L. Althusser)처럼 『초고』를 인간주의 철학의 문제틀에 사로잡힌 저술로 규정하고 맑스의 과학적 저술에서 배제하는 이도 있다.2)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 사상의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난다고 보는 알뛰쎄르는 인간과 사회를 특정한 관계들의 복합체로 보는 역사과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주의적 문제틀은 폐기되었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하버마스와 알뛰쎄르는 상반되는 성향의 철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비판과 지지로 나뉘긴 하지만) 과학주의자로서의 맑스 상(像)을 각인시켜주는 데는 일치하는 셈이다.
여기서 이 논란에 깊이 들어갈 겨를은 없다. 내 생각에는 위의 두 저술 간에 단절 같은 것은 없으며, 둘 다 맑스가 자처한 ‘반(反)철학’ ‘반(反)체계’의 ‘새로운 유물론’의 관점에서 단일한 과학을 제창했다고 본다. 이 유물론을 맑스의 취지대로 구분 없이 ‘비판적 유물론’ ‘실천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 가운데 그 어떤 것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 유물론의 입지점으로 인해 사회를 복합적 관계로 분석하는 역사과학이 가능해졌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 과학은 과학주의와는 근원적으로 대립된다. 실제로 알뛰쎄르가 과학의 독자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간주한 인간의 실천적 관심, 경험, 선과 미의 추구 같은 것들이야말로 맑스가 과학의 토대로 보았던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는 알뛰쎄르가 철두철미 철학자답게 맑스의 어떤 한 측면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우리에게 뭔가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준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은 그토록 논란 많은 이 문제에 대해 알뛰쎄르식의 ‘징후적 독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학자에게 익숙한 사료와의 대화를 통해 맑스 사상이 대략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추적해보려는 것이다.
2. 비판적 유물론과 과학
맑스가 근대과학의 본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은 1844년에 쓴 『초고』에서다. 다소 혼란스럽고 현란한 문투의 이 미완의 노트는 근대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이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의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실상 맑스는 헤겔 철학이 근대적 이성주의, 더 나아가 오늘날 의미의 과학주의를 대변한다고 보고 있다. 흔히 헤겔의 철학과 맑스의 과학이 대비되지만, 맑스에게 헤겔의 보편철학은 과학주의와 표리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에 대한 그의 비판의 요점은 논리적 추상에 의해 사물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화폐가 모든 사물의 차이를 무시하고 개별성을 전도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맑스는 헤겔의 논리학을 정신의 화폐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초고』는 근대인식론 전반, 인식과 대상의 일치를 진리로 보는 진리관 자체에 대해서까지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왜 진리의 거처가 두뇌 속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맑스의 비판의 요점은 헤겔의 철학에선 ‘진정한’ 인간활동은 지식활동이기에 인간의 ‘참모습’이 자기의식으로, 사물은 의식대상으로 상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맑스의 물음은 단순해 보인다. 인간의 사고는 자연적, 지적 유기체인 인간이 현실과 맺는 여러 방식의 활동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왜 ‘참된 것’이 관념인가 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연과학뿐 아니라 예술, 그리고 실천적 활동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헤겔 철학에선 지식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3) 맑스의 이런 생각은 “근대의 근본과정은 세계를 상(像)으로 정복하는 것”이라 규정하는 하이데거(M. Heidegger)의 생각과도 유사하다.4) 근대과학이 낯선 자연을 정복하듯이, 헤겔 철학은 인간주체 앞의 대상세계의 대상성 자체를 낯선 소외로 전제하고 그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헤겔이 사물을 지식대상으로 삼는 바람에 사물의 온전한 감성이 망각되고 있음을 계속 문제삼는다. 가령, 헤겔의 자연철학은 자연을 지식으로 극복(즉 개념파악)해야 할 낯선 외재성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연의 자기표현성이 망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목적은 추상의 확인이다…… 헤겔에선 자연의 외재성(Äußerlichkeit)이 스스로를 표현하여 빛과 감성적 인간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감성(Sinnlichkeit)으로 이해되선 안된다. 여기서 외재성이란 소외, 잘못, 있어서는 안될 위반의 의미다. 왜냐하면 참된 것(das Wahre)은 관념이기 때문이다.5)(강조는 맑스)
『초고』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감성’(Sinn)이란 용어, ‘감성적 욕구’ ‘감성적 의식’ ‘감성적 활동’ ‘감성적 현존’, 사고의 ‘감성적 자연인 언어’ 등의 표현을 통해 맑스는 두뇌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인간의 삶과 자연세계의 온전성을 강조한다. 추상은 여기서 나온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과학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감성(포이어바흐를 보라)은 모든 과학의 토대임에 틀림없다. 과학이 감성적 의식과 감성적 욕구의 이중형태에서 출발할 때만, 따라서 자연에서 출발할 때만, 과학은 현실적(혹은 진정한) 과학이 될 것이다.6)(강조는 맑스)
물론, 감성을 강조하는 『초고』가 바로 포이어바흐(L. Feuerbach)의 인간철학을 보여줄 뿐이라는 논자들도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맑스는 여기서도 포이어바흐가 활동이라는 매개를 통한 자기산출이라는 헤겔 철학의 긍정적인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미 비판하고 있거니와, 포이어바흐를 높이 평가한 이유가 바로 사회적 관계를 이론의 근본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초고』보다 이전에 쓴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도 맑스는 인간은 “세계 바깥에 웅크린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세계, 국가, 사회이다”(강조는 맑스)라는 식으로, (의식하지 못한 채) 포이어바흐를 계속 비판하고 있었다.7)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명제8) 역시 감성과 감성적 활동을 강조하는 이 문제의식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대체로 상하부구조론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질 뿐인 이 명제는 일단 사고가 삶과 현실적 관계의 표현의 일부라는 것이지만, 함축하는 바가 더 있을 수 있다. 삶과 사물에는 두뇌적 의식으로 다 포착되지 않는 온전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참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가 갖고 있다면 삶에서 진리의 거처를 찾아야 할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의식이 만든 범주와 추상, 그리고 언어가 특정한 역사적 삶의 관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제 ‘보편적 역사철학’과 ‘체계’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다.9)
맑스는 자기 한계를 망각하는 과학에 대한 비판, 즉 두뇌적 의식이 삶의 온전성을 망각하는 근대적 경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진리의 문제를 감성적 욕구와 활동, 즉 실천과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명제들(이하 명제들)에서 “인간의 사고가 객관적인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라고 주장하는데,10) 다만 우리 시대에는 맑스란 인물과 ‘실천’이란 용어를 함께 연상하면 좁은 의미의 정치적-혁명적 실천으로 받아들이는 통념이 있기 때문에, 그가 이 개념을 ‘감성적 활동’과 등치시켰음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의 명제에서도 ‘실천’을 ‘감성적 활동’으로 바꿔 읽게 되면 잇점도 없지 않다. 이 명제가 실천으로 확증된 지식이 진리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되고, 진선미의 동시적 추구 없이는 객관적 진리에 다가갈 수 없다는 뜻도 더 잘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참된 것’, 즉 진리의 본성에 대한 맑스의 모색이 더이상 진전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발상을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가 비판하면서 부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만, 대안이 무엇인지가 명확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맑스가 『신성가족』에서 진리를 이념으로 보는 헤겔에 대해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강조는 맑스)는 발상을 비판한다거나, 『공산당 선언』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진정한 욕구(wahre Bedürfnisse) 대신에 진리의 요구(das Bedürfnis der Wahrheit)”를 내세운다고 비판하는 것11)을 보면 지식으로 포착된 진리가 따로 있다는 발상을 배격하면서 다시 ‘욕구’(혹은 요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은 진리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활동을 매개로 삶의 요구와 연관되어, 또 모종의 자연적 생명체의 경험과 연관되어 삶에서 발생해 지속된다는 발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과학과 추상은 바로 여기서, 또 그 경험의 이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관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는 발상이었던 만큼 맑스가 이런 발상을 쉽게 버렸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12)
실제로 헤겔의 소외 개념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근대적 삶의 총체적인 경험을 문제삼는 것이었다. 고전경제학 역시 소외된 노동을 자기 과학의 전제로 함으로써 그것을 불변의 인간조건으로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헤겔과 마찬가지였다. 정교한 포괄적인 체계인 양자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단순히 논리적 정합성의 오류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비역사적 관점은 그것을 산출하는 계급적 기반과 무관치 않은, 즉 ‘감성적 현존’의 문제기 때문이다. 맑스는 참된 실천이 과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물신숭배를 예로 든다.
진정한 실천이 어느 정도로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이론의 조건인가는 가령 물신숭배에서 잘 나타난다. 물신숭배자의 감성적 의식은 그리스인의 그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물신숭배자의 감성적 현존이 그리스인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13)(강조는 맑스)
물신숭배자의 의식에서는 개별성이 발현되는 관계와 사물화된 관계가 판별이 잘 안된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체의 체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집중화 과정을 논할 때 종종 맑스가 생산이 소외된 상태로긴 하지만 사회적 형태로 전화한다고 말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것은 쉽게 이해된다. 생명체의 체험과 무관한 지식의 차원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비슷하게 되는 면도 있는 것이다. 맑스가 『자본』에서 자본주의사회를 묘사할 때 혹시 사회주의사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의 사회화의 가속화, 토지 및 생산수단의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공동적 생산수단)으로의 전화” “갈수록 대규모화하는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응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의 공동적 사용으로의 전화, 결합적 사회적 노동을 생산수단으로 사용함에 따른 모든 생산수단의 절약” 등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모습인 것이다.14) 개별성과 사물화의 판별, 친숙함과 낯섦 같은 것은 과학적 지식 이전의 감성적 체험, 총체적 경험의 문제라는 것이다.
맑스가 말하는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은 지식 이전의 감성적 체험에서 체득된다. 1857~58년의 『정치경제학 비판강요』에서도 그는 ‘개별성’(Individualität)을 반성적 ‘지식’(Wissen) 및 ‘의지’(Wollen)와 대립시킨다.
그러나, 저 단지 사물적인 관계를 자연스러운, 개별성(반성적 지식 및 의지와는 대립되는)의 본성(혹은 자연)과 불가분한 고유한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15)(강조는 맑스)
맑스는 개별성이 존재와 의식에서 존재의 편, 삶의 편에 있는 유물론적 범주임을 종종 의식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신성가족』에서는 개인들의 ‘개별성’을 ‘자연적 본질’이라 일컬으며 ‘이상’(Ideal)과 대립시키기도 하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사고가 현실적 삶의 표현”이라는 말은 곧 “그의 사고가 그의 개별성 및 그가 살아가는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사고”라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존재의 편에 위치시켰다.16) 헤겔의 관념론 철학과 대비시킬 때 개별성이란 범주는 맑스의 유물론적 사유에서 핵심적이다. 헤겔의 관념론에서 ‘자유’ 개념이 대상에서 정신을 관철시키는 것(즉 개념파악)인 반면, 맑스에서 “유물론적 의미”의 자유는 “자신의 진정한 개별성을 관철시키는 긍정적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17) 인간의 감성적 활동을 통해 현실과 자연의 개별성이 드러나지만 이는 인간이 자신의 개별성을 관철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헤겔의 진리 개념이 정신의 자기실현에서 온다면, 당연히 진리 개념을 포기하지 않은 맑스에게서 진리는 인간의 실천을 통한 개별성의 구현일 수밖에 없고 과학은 거기서 추상된 것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결국 맑스는 이런 맥락에서 단일한 과학의 도래를 말한 것이다. 그간의 공업과 과학 자체가 인간의 자연적 본질과 자연의 인간적 본질, 즉 인간과 자연의 개별성을 구현해온 방편이고 과학적 형식의 사유는 실천적, 사회적-개별적 삶의 과정의 한 계기라는 것이다. 그는 그 활동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고유한 본성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고 그럴수록 과학이 그만큼 더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았다.
공업을 인간적인 본질적 힘들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하면, 우리는 자연의 인간적 본질이나 인간의 자연적 본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자연과학은 추상적 유물론적 경향이나 관념론적 경향을 상실하고 인간적 과학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는 지금 이미 자연과학이 비록 소외된 형태이긴 해도 현실적으로 인간적 삶의 토대가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삶의 토대와 과학의 토대가 다르다는 것은 애당초 거짓말이다.18)(강조는 맑스)
그렇다면 맑스가 단일한 과학을 제창하면서 선언한 철학의 종언은 아무래도 맑스가 새로이 모색해간 진리관과 무관할 수가 없다. 다만, 실천과 진리를 연결짓는 이 모색이 서구철학의 사고틀을 전반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이었기에 딱히 언어로 규정되기 어렵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알뛰쎄르는 맑스가 공언한 ‘철학의 죽음’이 지금껏 이해되어온 두가지 방식을 ‘실천적-종교적 죽음’(이론적 실용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과 ‘실증주의적 죽음’(유물론적인 실증적 과학에 이르는)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새로운 대안을 내놓은 바 있다.19) 그 대안은 ‘이론적 반인간주의’라는 역사과학적 문제틀에 이르는 철학적 죽음인데, 한마디로 과학주의적 죽음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전통적 철학을 넘어선 실천적 유물론에 근거한, 말하자면 인간적인 실천에 근거한 과학으로의 길을 위한 철학의 죽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비판적 유물론과 ‘개별성’
맑스의 과학관의 밑바탕에 깔린 비판적-유물론적 사고의 독특성은 어쩌면 불가분한 한쌍의 주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인간과 사물이 특정한 관계들의 복합체로 존재한다는 것과 다른 한편 고유한 개별성이 그 관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맑스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당대 서구의 철학적 문법에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 무척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명제들에서 나오는 “인간적 본질은 현실적으로는(in seiner Wirklichkeit) 사회적 관계들의 총화(ensemble)”20)라는 표현은 ‘인간적 본질’이 인간다움의 구현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기에 그래도 꽤 적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발리바르(E. Balibar)는 ‘총화’라는 단어를 맑스가 독일어 das Ganze나 프랑스어 tout, totalité를 쓰지 않고 굳이 프랑스어 ensemble을 쓴 것 자체를 의미있게 보는데, 이 용어의 채택은 개인을 그 기능적 구성원으로 삼을 뿐인 전체의 우위를 거부하고 ‘구성적 관계’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21) 이는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발리바르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맑스의 이론적 인간주의와 이론적 반인간주의 간의 인식론적 단절을 설정하는 것을 보면 그 참뜻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맑스가 『초고』보다 조금 먼저 집필한 한 노트에서는 새로운 발상을 표현하기 위한 고투가 더욱 역력하다. 그는 “인간들, 추상에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살아 있는 특정한 개인들이 이 본질이다(sind).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Wie sie sind)이 그 본질이다”(강조는 맑스)라고, Sein(영어의 be) 동사와 Wie(how)를 강조하는 방식을 택했다.22) 그러고 나서 인간의 자연적 본질, 혹은 개별성이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발현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대상과의 관계에서만 개별성이 구현된다는 발상은 알뛰쎄르나 발리바르가 강조하는 복합적 관계를 분석하는 역사과학의 길로 자연스레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개별성이 대상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서 억압되어 있다면 당연히 그 사회적・물질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실천이 요청되고 그 관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분석하는 역사과학의 과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판적이고 유물론적인 과학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헤겔 철학에선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에 관한 역사과학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 그 관계를 언제나 낯선 것으로 설정하기에 관계의 특정 형태에 어떤 차이가 생성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알뛰쎄르는 헤겔의 총체 개념을 삶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내적 원리로 환원시키는 ‘표현적 총체’라고, 맑스주의적 총체를 ‘복합적 총체’라고 일컫는데, 맑스가 그런 총체관으로 나아간 것은 낯선 특정한 관계를 개별성이 발현되는 다른 특정한 관계로 변화시킬 과제를 제기한 데서 비롯된다. 결국 비판적 유물론의 입지점이 알뛰쎄르가 말하는 복합적 관계로서의 총체관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개별성이 사회적 관계에서만 구현된다는 발상은 흔히 실존주의의 선구자라 지칭되는 청년헤겔파 슈티르너(M. Stirner)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서도 중심적인 모티프다. 헤겔에 대한 맑스의 비판이 일종의 근대성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청년헤겔파에 대한 비판은 요즘의 탈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슈티르너는 1840년대에 근대 사회의 추상성이 구체적 인격인 자아의 개별성을 억압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국가, 사회, 헤겔의 이성 등의 억압성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주로 슈티르너를 비판하는 저술이다. 맑스는 추상이 지배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개인들의 삶의 관계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소외된 힘이 지배하는 데서, 결국 자본의 생산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점에서 그와 달랐다. 따라서 슈티르너에 대한 비판의 요점은 그가 추상성의 지배를 가능케 한 특정한 물질적・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과제를 제기하고 분석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그들의 현재의 의식을 바꾸라고 도덕적 요구를 제기한다는 것이었다. 즉 “관념의 지배의 붕괴를 자유로운 개별성의 산출과 동일시”23)한다는 것이다. 결국 헤겔과 청년헤겔파는 각기 동일성의 철학과 개별성 및 차이의 철학으로 대립되지만, 대상의 낯섦에 억눌려 대상과의 개성적이고 친숙한 삶의 관계를 맺는 경지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화폐나 지대, 이윤 등의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개별성뿐 아니라 “사물의 개별성까지 소외시켜” 토지나 기계 등의 고유한 본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개별성 여부를 판별하는 척도를 거론하기도 했다. 지대, 이윤 등은 “특정한 생산단계에 조응하는 사회적 관계이며 그것들이 현존 생산력에 질곡이 되어 있지 않을 때만이 개별적”(강조는 맑스)이라는 것이다.24) 맑스가 ‘개별성’의 발현과 그렇지 못한 척도를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 여부에서 찾는 것은, 아무리 개별성을 실현시키는 데 유리한 사회적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얼핏 단순한 발상인 것 같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맑스에게 근대 자본주의사회는 역사상 이런저런 사회유형 가운데 하나인 예사로운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의 실천적 힘이 만들어낸 엄청난 생산력 발전과 끝없는 변혁을 자기 생존조건으로 하는 인류사 최초의 체제고 만약 이 생산력을 개인들이 자기화하지 못하면, 즉 그 생산력의 사회적 존재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그 사물적 힘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개별성의 상실이 깊어지는 사회다. 어쩌면 맑스에게 개별성이란 범주는 자본주의사회의 사물적 억압성이 극심해졌기 때문에 깨닫기 쉬워진 범주라 할 수도 있다.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발전할 가능성과 소외의 사실성의 대립이 근대적 삶의 본질적 특징이기에 어떤 역설을 가능케 한다. “이런 관점, 즉 고립된 개인이라는 관점을 산출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까지 가장 발전한 사회적(이 관점의 표현을 따르자면 보편적인) 관계들의 시대”라는 것이다.25)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사라져 인간 및 생산수단의 개별성이 발현되는 그런 소유라는 의미에서 맑스는 공산주의적 소유를 “개인적(혹은 개별성이 발현되는) 소유의 소생(蘇生)”이라 일컬은 것이다.26) 맑스는 역사상 인간이 생산수단 및 자연과 친숙해져 자유로운 개별성이 발현된 경험을 과거 자영소농과 수공업자들의 경우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 소유의 소생이란 것은 자본주의적 소유를 사물적 지배의 소유 내지 계급적 소유로 정의하고 과거 자영소농과 수공업자들이 경험한 친숙함을 집중화된 자본주의 생산수단에서 차원 높게 재생한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는 흔히 생각하듯이 소자영업자들의 멀쩡한 소유재산을 뺏어서 집단적 소유형태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개인적 소유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수행한 지리하고도 가혹한 독점적 집중화 과정이었다.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오히려 과거 자영소농과 수공업자가 자기 땅이나 자기 생산수단에 대해 가졌던 애착과 친숙함을 낯설게 집중화된 자본주의적 생산수단에서 개인들 간의 연합을 통해 소생시켜 새로운 인간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이룩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제껏 개별성을 맑스 유물론의 핵심범주로 주장하긴 했지만, 그 단어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그 발상만큼은 맑스의 사상에 고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임노동과 자본』에서의 주장은 그 점을 좀더 알기 쉽게 표현한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계는 면화의 실을 뽑는 기계다. 특정한 관계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 관계에서 떼어낸다면 그것은 자본이 아니다. 이는 마치 금이 그 자체로는 화폐가 아니며 설탕이 설탕가격이 아닌 것과 같다.27)(강조는 맑스)
기계 또한 자본이 됨으로써 고유의 개별성을 상실한다는 뜻인데, 어떤 기계도 특정 사회적 관계가 없는 진공상태에 있을 수 없기에 기계의 기계다움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지금과 다른 특정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맑스에게 공산주의란 근대의 특정한(사물적이고 억압적인) 계급관계를 다른 특정한(자유로운 개별성이 발현되는 친숙한) 관계로 변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과학은 이 특정한 복합적 관계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자 분석하는 과제를 떠안지만, 그 자체가 한편으로는 실제 삶에서 개별성을 발현하고자 하는 실천의 방편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과 사회를 사회적 관계의 복합체로 보는 시각은 맑스의 ‘반체계’ 과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맑스는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 개인들이 상호관련되어 서게 되는 연관들, 관계들의 총화를 표현한다”28)고 말할 정도로 그 복합적 관계를 강조한 인물이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이항대립이라는 문제설정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관계에서의 차이 생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차이의 판별은 인간의 총체적 경험에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입지점에서 가능한 것이기에, 객관적 진리의 문제를 실천, 즉 감성적 활동에서 보는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역사적 운동을 자연사적 운동으로 분석하는 것은 실천적 관심이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하버마스가 주장하듯이 실증주의의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맑스가 현재의 사회가 응고된 결정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메타포를 자주 쓰는 것은 자연사의 유기체야말로 복합적 관계의 역사성, 말하자면 특정한 총체의 생성과정을 다른 무엇보다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1860년대 『자본』의 집필과정에서 꽁뜨(A. Comte)와 다윈(C. Darwin)의 책을 읽고 나서 보인 반응은 너무 대조적이다. 그는 꽁뜨에 대해서는 ‘개똥 실증주의’라는 표현으로 경멸했던 반면, 다윈에 대해서는 비록 조야한 영국식 전개방식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연과학에서의 ‘목적론’에 결정타를 날렸다”고 반가워했다.29) 이는 무엇보다 꽁뜨의 ‘체계’에 대한 경멸과 다윈의 ‘반체계’에 대한 옹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에서 그는 꽁뜨류의 실증주의에 대해 과학에서 “미래의 주방을 위한 요리법”을 쓰는 것으로 조롱하는 반면 다윈에 대해서는 동식물이든 사회조직이든 생성의 역사적 과정을 분석해야 할 과제를 제기하며 호의적으로 평가했다.30) 이렇듯 맑스의 ‘반체계’의 과학은 특정한 복합적 관계의 역사성, 그리고 그 관계를 표현하는 범주의 역사적 특정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4. 맺음말
그렇다면 맑스의 사상이 오늘날 단절이 심화된 인문학과 과학의 통합작업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우선 그가 우리의 과학활동이 사회적 활동인 동시에 인간다움을 구현하는 실천임을 역설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모든 학문이 사회적 활동임을 강조하면서 단일한 과학을 제창하는 월러스틴(I. Wallerstein)과 맑스를 잠깐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월러스틴 역시 학문활동이 인간활동의 일부인 한, 진선미의 추구가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따라서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를 극복하고 진선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단일한 인식론에 대한 희망은 분석적, 도덕적, 정치적 지식활동의 통합된 지평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모두가 단일한 우주의 통합된 부분이고 시간성을 갖는 복합체라는 인식 또한 그가 맑스와 공유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월러스틴은 모든 학문이 과거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고 현재시제를 사용한 진술은 보편성을 가정하는 거짓이기 때문에 역사학과 사회과학은 하나의 학문임을 줄곧 주장해왔다.
모든 학문은 현재의, 끊임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활동이다. 어떤 학자도 현재의 요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는 또한 순간적으로 끝나기 때문에 실재들 가운데 가장 무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이란 과거에 관한 것이기에 나는 모든 사회과학이 과거시제로 쓰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모든 과학은 역사학적이기 때문에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특별한 권리가 없다.31)
사실상 월러스틴이 제창하는 ‘역사학적 사회과학’의 창시자가 맑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사회과학의 인식론에 관한 견해에서도 공유하는 바가 무척 크다. 특히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배격하면서도 총체성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인식론 역시 맑스와 월러스틴 모두에게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맑스는 19세기의 인물이다. 그는 월러스틴이 말하는 지식의 불확실성의 시대가 아니라 과학의 확실성의 시대를 살았고, 월러스틴이 영향을 받은 프리고진(I. Prigogine)의 ‘복잡계 연구’는커녕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조차 몰랐으니 20세기 과학의 새로운 전환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한계는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일한 과학의 수립이란 지난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월러스틴과는 다른 맑스의 문제의식에도 귀를 귀울일 필요가 있다.
통합적인 단일한 과학을 모색하는 작업에서 월러스틴은 ‘역사학적 사회과학’의 중심적인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자연과학의 복잡계 연구와 인문학의 문화연구에 주목하는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주어진 태생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으니 지식활동의 사회적, 실천적 성격에 익숙한 ‘역사학적 사회과학’의 역할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지식의 사회적 규정성을 받아들이면서 사회과학화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든 지식의 사회과학화를 경유해 두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으며 역사학적 사회과학은 “오늘날 자연과학과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것들 사이에서 결정적인 연결고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32)
하지만 모든 학문의 사회과학화란 것이 맑스와의 대화를 통해 보면, 어딘가 지식을 통한 지식의 통합으로 보이기 때문에 과연 이것이 근원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맑스는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역사에서 인간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준 자연과학과 공업이 인간과 자연의 개별성이 발현된 것임을 우리가 바로 볼 때 자연과학 역시 인간적 과학의 토대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 형식의 사유가 삶의 과정의 한 계기로서 인간의 실천을 통한 창조적 가능성 구현의 한 방편임을 분명히하면서 단일한 과학을 제창했던 것이다. 맑스가 철학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유물론을 제시할 때, 객관적 진리에 다가가는 길에서 그토록 감성적 활동(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어쩌면 월러스틴처럼 어떤 학문을 중심에 둔 재통합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차원의 통합을 뜻했으리라는 생각이다. 19세기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오는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맑스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우선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
1)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K. Marx & F. Engels, Werke, Ergänzungsbände 1(Dietz Verlag 1957) 544면; K. Marx & 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Werke 3, 18면. 『독일 이데올로기』의 이 구절은 육필원고에서 가운뎃줄이 쳐진 부분이다.
2) 위르겐 하버마스 『인식과 관심』, 강영계 옮김(고려원 1983) 32~72면; 루이 알뛰쎄르 『맑스를 위하여』, 고길환・이화숙 옮김(백의 1990).
3)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15면, 568~588면.
4) 마르틴 하이데거 『세계상의 시대』(독한 대역본), 최상욱 옮김(서광사 1995) 53면.
5)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88면.
6)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43면.
7)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70면; K. Marx,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Werke 1, 378면. 맑스가 포이어바흐를 오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되는 바가 있다. 맑스는 헤겔이 자연 자체를 외재성이자 소외로 상정하는 것을 인간의 육신과 욕구 등 인간의 자연성을 낯선 것으로 상정해 억압하는 기독교 전통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도전을 획기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만큼 맑스가 포이어바흐에게 경도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8) K. Marx & 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Werke 3, 26~27면.
9) 하이데거는 “체계는 사유 안에서뿐 아니라, 세계가 상(像)이 되는 곳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 앞의 책 68~69면.
10) K. Marx, Thesen über Feuerbach, Werke 3, 533면.
11) K. Marx & F. Engels, Die Heilige Familie, Werke 2, 83면;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Werke 4, 486면.
12) 백낙청은 맑스가 1857~8년의 『정치경제학 비판강요』의 「서론」에서 그리스 예술이 아직도 예술적 즐거움을 주고 어떤 면에서는 표준이자 모범으로 통한다는 사실에 대해 논하는 대목을 두고 맑스에게서 “진리의 문제가 깨끗이 잊혀져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백낙청 『민족문학의 새 단계』(창비 1990) 367면.
13)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52면.
14) K. Marx, Das Kapital, Werke 23, 790면.
15) 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1857~58), 79면.
16) K. Marx & F. Engels, Die Heilige Familie, 180면; Die Deutsche Ideologie, 433면.
17) K. Marx & F. Engels, Die Heilige Familie, 138면.
18)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543면.
19) 알뛰쎄르, 앞의 책 31~32면.
20) K. Marx, Thesen über Feuerbach, 534면.
21) 에띠엔 발리바르 『맑스의 철학, 맑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문화과학사 1995) 55면.
22) K. Marx, Auszüge aus James Mills Buch ‘Elémens d’economie politique’, Werke, Ergänzungsbände 1, 451면.
23) 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1857~58), 82면.
24) K. Marx & 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71, 212면.
25) 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1857~58), 6면.
26) K. Marx, Das Kapital, 791면.
27) K. Marx, Lohnarbeit und Kapital, Werke 6, 407면.
28) 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1857~58), 176면.
29) Marx an Engels, 1866.7.7. Werke 31, 234면; Marx an F. Lassalle, 1861.1.16. Werke 30, 578면.
30) K. Marx, Das Kapital, 25면, 392~93면.
31)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식의 불확실성』, 유희석 옮김(창비 2007) 171면.
32) 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백승욱 옮김(창비 2001) 298면; 『지식의 불확실성』 61~62, 232~233면.